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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제목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2017년 05월 23일 23시 08분  조회:2941  추천:0  작성자: 죽림

3) 제목과 내용

시를 감상할 때 형식과 내용을 구별해 보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동전의 '앞과 뒤'와 같이 특유한 의의를 지닌다. 즉, 분별해 볼 때는 감상할 때의 유기적이며 종합적인 요건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를 짓기 위해서는 시가 될 수 있는 소재나 대상이 있어야 된다. 무엇에서 시를 짓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보면 음식의 특유한 냄새가 나고 먹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온다. ㉡ 주위가 산만하거나 머리에 복잡한 생각이 있을 때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침착해질 때가 있다.

㉢ 갑자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웃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 '나'가 친구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고 헤어졌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은 생리적인 욕구요 ㉡은 정적이며 정신적인 욕구이다. 또 ㉢은 인간의 윤리, 도덕적인 심성이 발동하는 대목이다. ㉣은 나와 타자간에 일어나는 갈등이며 이는 소외에까지 이른다.

이처럼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 사물에 대한 분별력, 가치관의 차이, 체험하고 경험한 세계에 따른 미적 인식세계 등이 모두 시의 소재가 되고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시문학의 내용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시인의 역량이 작용하게 된다.

① 제목

시의 제목에서부터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시의 제목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과거엔 마땅한 제목을 붙이지 못해 그냥 무제(無題)라고 쓰는 경우도 많았다.

시의 제목은 작품이 완성된 다음에다는 수도 있고 먼저 제목이 결정된 다음에 작품을 완성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는 다양한 차원에서 동기 유발이 이뤄진다. 단순히 낱말 하나가 강렬하게 다가옴으로써 작품을 쓰게 되는 예도 있다. 또 사물에 대한 명칭, 즉 꽃의 이름이나 지명(地名), 사람의 이름 기타 등이 그대로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예상을 뒤집는 제목도 가끔 대할 수 있는데 정진규의 「몸時」와 조태일이

「식칼論」의 표제화 동기화 의도를 보자.


등나무 덩쿨은 덩쿨 끝의 끝자리에서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있었다 첫 번째 햇살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그렇게 뻗어가고 있었다 여름 내내 씩씩했다. 맨발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이 열리는 속도와 맨발이 뛰는 속도가 똑같았다 쫓아가는 게 아니었다 만들고 있었다 그 길 위에 나를 의탁했다 그는 나를 등에 업고서도 속도에 변화가 없었다. 나를 그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집에 당도했다 혼자서도 잘 다녀왔다고 이제 다 컸다고 어머니께서 칭찬하셨다. 이 비밀을 나는 아직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정진규, 「몸時·83―등나무」 전문


·작가의 표제화 동기

나는 왜 이토록 「몸時」라는 말에 매달려왔는가. 스스로 지은 말의 감옥에 갇혀왔는가, 기회 있을 때마다 고백해 오긴 했지만, '몸'은 가시적인 육신이면서 불가시적인 또 하나의 육신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은 그릇이 아니다. 그것 자체이다. 시간 속의 우리 존재와 영원 속의 우리 존재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실체를 나는 '몸'이란 말로 만나고 있다. 시는 바로 몸이다. 그렇게 그것은 늘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멀다. 나는 소년시절부터 영성적인 것으로서의 詩性과 육신적인 것으로서의 散文性 사이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이 '몸'이라는 말이 내게 다가오면서부터 그것이 나의 그간의 상처들을 열심히 핥아주고 있음을 황홀하게 실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시는 애초에 「몸時」라는 제목으로 번호를 붙이다가 뒤에 소제목을 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몸時」가 이 시의 제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정진규의 일련의 산문시에 대한 보기로도 주의깊게 읽어둘 필요가 있다.

왜 나는 너희를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너희가 꺼리며 침까지도 빠리 뱉는
내 몸뚱아리까지도 아슬아슬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도둑의 그림자가 도둑의 그림자를 사알짝 덮치듯, 그렇게 나마 못 만나고,
너희들이 피하는 내 땅과
내가 피하는 너희들의 땅은
한번도 당당히 못 만나는가.
땅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서
뼉다귀가 뼉다귀를 부르는
저 목마른 음성처럼,
땅속 깊이 아우성으로 흐르는
저 눈물 같은 물줄기가
물줄기를 만나는 끈기처럼.

만나지 못하고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
내 홀로 여기 서서
뜨드득 뜨드득 이빨 갈 듯이
내 정신만을 가는가.
내 외로운 살결을 살결끼리 붙여서
시간을 가는가, 아아 칼을 가는가.

-조태일, 「식칼론⑤」 전문

·작가의 표제화 동기

일반적으로 시의 주제를 압축하여 상징화하거나 시의 제재를 그대로 제목화하는 경우가 많다.

「식칼論」이란 제목은 얼핏 생소하고 비시적(非時的) 상상혁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주제를 압축하다보니 이같은 제목이 되었다.

연작시 「식칼論」은 당시 정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3선 개헌, 유신체제로의 전환의 조짐이 구체적으로 일어나는데 대한 단호한 대응의지가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느 가정에서나 구비하고 있는 식칼을 제목화함으로써 강성(强性)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었다. 식칼은 어머님이 매일같이 식탁에 오를 음식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다.

그런 점에서는 전쟁터에서 쓰거나,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살인검이 아니라 모성(母性)을 연상시키는 부엌의 식칼로 대비코자 함이었다.

이것은 정서적인 여름보다 논리적 대응으로서의 제목이 된 셈이다.

한편 의외성을 주어 삭막한 느낌을 주는 제목이 될 때 독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② 내용

이순신 장군을 내용으로 한 서사시를 몇 시인이 썼다고 하자. 시인 A는 이순신 장군을 무공(武功)에 빛나는 인물로 그렸는가 하면 시인 B는 무공보다는 문신(文臣)으로서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어 된다.

이 경우 한 사람의 인간 됨됨이나 역사적인 업적 등에 대한 인식이 시인이 따라 달라진 경우이다. 이처럼 한 가지 사실을 시인이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각기 다른 관점, 인식, 윤리관, 미의식이 드러나게 된다.

봄이 왔다. 들에 새로 풀이 돋고 꽃이 핀다. 이때 어떤 시인은 겨우 내 죽어있던 풀고 꽃의 뿌리나 씨앗이 흙 속에 살아 있다가 살아나는 것, 즉 생명의 끈질김, 신비성 내지 존엄성에 이르는 것에 감탄하며 시를 짓게 된다. 또 한 시인은 먼 들판을 배경으로 길가에 핀 꽃 한송이의 아름다움, 며칠 안가서 시들어버릴 짧은 유한성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게 된다. 또 한 시인은 그 꽃에서 잊어버렸던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게 된다. 또 한 시인은 그 꽃에서 잊어버렸던 한 추억 속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보면서 시인은 각기 다른 것을 떠올린다. 또 때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떠오르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이 격렬하게 부각되는 가는 시인의 의식 작용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이든지 시의 소재가 되고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하나,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 가에 따라 시가 되고 안되는 분수령이 된다.

많은 시인이나 시비평가들은 시에는 시인의 眞·善·美의 정신이 담긴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진·선·미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가치 기준이 바뀔 수도 있다.

시의 내용적인 차원에서 그 표현법을 대별해 보자.


ⓐ 주정적 내용

① 감각적인 것 ② 정서적인 것 ③ 정조(情操)적인 것

ⓑ 주지적 내용

① 기지적인 것 ② 지혜적인 것 ③ 예지적인 것

ⓒ주의적(注意的) 내용

① 주제적 ② 줄거리 중심 ③ 평면적 진술

주정적인 시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에서 그 주된 흐름을 볼 수 있다. 시적 기교보다는 직설적이요, 정서의 원형적 요소가 바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찾아온 손님의
다감한 눈빛으로
방을 훈훈히 하는
한 장의 편지
그것이 이룬

하늘에서 살짝
隱密히 내린듯
빈 책상 위에 이미,
뜻 있는 이 밝음은
써 보낸 사람의
마음의 그것
초롱을 벗어난 새의
自由가 되어
나를 부르러 온 아아,
나의 知友여

피봉의 글씨
귀를 기울이며
이 밝음의 가상이를
곱게
편지를 뜯는다.

-이수익, 「편지」전문

주지적인 시들은 고도의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의 지식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감상이 가능할 경우가 있다. 주지시에 동원되는 표현들은 고도의 기지와 예지가 따라야 한다. 시를 짓는 이도 직관적인 에스프리에 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헐벗은 비행장 옆
낡은 예레미야 병원 가까이
스물 아홉살의 强한 그대가 죽어 있었지.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
스토브조차 꺼진 다락방안 추운 氷壁밑에서
검은 으로 뎃상한 그대 어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킬리만자로의 눈속에 묻혀 있는 표범 이마.
빛나는 대리석 토르소의 흰 손이 떠오르지.
지금 낡은 예레미야 병원 가까이의 지붕에도
눈은 내리고
겨울이 빈 나무허리를 쓸며 있는 때.
캄캄한 안개 속
침몰하여 가는 내 은
이제 고달픈 닻을 내리어 정박하고서
축축히 꿈의 이슬에 잠자는 인 것을,
짙은 밤 부둣가 한 모퉁이로
내 아무렇게나 혼자서 떠나보네.

-이가림, 「빙하기」 부분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기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우리들은 멈춘 자리에
다시 멈추게 한다.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

그들이 기는 한 사내의
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 속으로 한 사람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는 사람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 겠다.

-오규원,「순례의 서·1」 부분

주의적 시는 단독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떼어내서 볼 때 주제, 줄거리, 또 이들을 평면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그 내용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표현상의 특별한 기교를 염두에 두지 않을 경우가 많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향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주슨 한이 날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그날이 오면」 전문

위에서 본대로 주정적, 주지적, 주의적이라는 것은 실제 작품마다 세가지 요소가 모두 합쳐져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4) 창작의 실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전문

·작가의 창작 동기

하나의 시상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만 의거하는 것은 아니올시다. 또 모든 과거의 상념들과 전연 무관하게 단독으로 우연히 성립될 수 있는것도 아니올시다.

「국화 옆에서」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더라도 여기에는 네 개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습니다만, 이것들은 그 하나도 한 순간에 우발적으로 투영된 것에만 의거한 것은 아닙니다.

4연 중 맨 첫연의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의 ---한송이의 피어 있는 국화꽃의 색채와 향기의 배후에 봄부터 첫가을까지 계속되었던 저 소쩍새의 울음의 음향을 참여시킨 이미지는 물론 색채와 음향을 조화시켜 볼려는 표현적의도에 의해서 결정을 보게 된 건 사실입니다 만은 이 한 개의 국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미지가 고정되기까지에는 그 전에 이와 비슷한 많은 상념이 내 속에 이루어지고 연멸하고 다시 이루어지면서 은연중에 지속되어 왔었던 거을 나는 기억합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면, "저 우리 이전의 무수한 인체가 하여 부식해서 흙속에 동화된 그 골육은 거름이 되어 온갖 풀꽃들을 기르고, 그 액체는 수증기로 승화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우리 위에 퍼부었다가 다시 승화하였다가 한다"는 상념이라든지, "한개의 사람의 음성에는---그것이 청하건 탁하건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저 먼 의 음향이 포함되리라"는 상념이라든지 "저 많은 길거리의 젊은 소녀들은 한 우리 애인의 분화된 갱생이라"는 환상이라든지---이런 것들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념들은 언뜻보기엔 「국화 옆에서」의 첫 연의 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인체 윤회'의 상념이나, 저''의 환각등은 --요컨대 이러한 상념과 환각의 거듭 중복된 습성은 한송이의 국화꽃을 앞에 대할 때, "이것은 저 많은 소쩍새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 운 결과러니"하는 동질의 을 능히 불러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또한 제2연의 내용이 되는 국호개발의 한 원인으로서 여름의 천둥소리들을 끌어올 수도 있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에 쓴 '인체 윤회'나 ''이나 '愛人부활'의 상념 등이 「국화 옆에서」의 1·2연의 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이 '천둥과 국화'나 '소쩍새와 국화'에 관한 상념의 습성은 여기에서만 해소해버리는 일이 없이 내 인생의 다음 체험에 반드시 그 그림자를 던지게 될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거야 하여튼 다음의 제3연은 이 모든 젊은철의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인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어있는 한 여인의 美의 영상이 내게 마련되기까지에는 이와 유사한 많은 격렬하고 잔잔한 여인의 영상들이 내게 미리부터 있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 새로 자라오르는 보리밭 위에 뜬 달빛과 같은 애절한 여인의 영상도 있을수 있습니다. 오월의 아카시아 숲을 보고 그 향기를 맡는 것 같은 신선한 여인의 영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저 에집트의 여왕 크레오파트라와 같이 오만하고 요염한 여인, 또는 산악고 같이 든든하고 건실하고 관대히 아름다워 우리가 그 무릎 아래 가서 포근히 쉬어보고 싶은 여인, 또는 성모마리아와같이 다수굿하고 맑고 성스러운 여인 또는 저 와 같이 스스로도 멋지고 또 고차원의 온갖 멋을 이해할 수 있는 여인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성질의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여인의 미의 영상이 우리의 속에 계속해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모든 여인의 미의 영상의 체험 역시 그 중복됨을 따라 우리에게 여인들의 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옴은 사실입니다. 좀 쑥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형편이 이 되었습니다만은, 내가 에 '소복하고 거울 앞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있는 의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면, "흥! 저 아주머니는 핼쓱한게 밉상이야. 얼이 빠졌어!" 하고 비웃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지만, 인제 이만한 여인의 미를 새로 이해하게 된 것도 앞에 쓴바와 같은 것들의 많은 되풀이, 되풀이의 결과임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해 새로 이해한 이 정일한 사십대 여인 속에 잠재해 있다가, 一九四七년 가을 어느 해 어스름때 문득 내 눈이 내 정원의 한그루의 국화꽃에 머물게 되자, 그 이 내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국화는 물론 내가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꽃이고, 가끔 꺾어서 책상 위에다 꽂아 놓기도 했고, 또 '아름답다'고 말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때처럼, 절실하게 가깝고, 그립고, 알 수 있고, 까닭없이 기쁘게 느껴진 적은 그 전엔 없었습니다. '이것을 시로 쓰리라' 작정하고 책상머리에 와서 앉아, 내가 맨저 기록해 놓은 것은 제3연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써 놓고, 몇 시간을 누었다 앉었다 하는 동안 제1연과 제2연의 이미지가 저절로 모여 들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게 있어서는 오랫동안 어느 구석에 잊어버렸다가 앞서 찾아내서 쓰게 되는 낯익은 내 옛날의 소지품을 상용하는 것과 같은 감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연만은 좀처럼 표현이 되지 않아, 새벽까지 누었다 앉았다 하다가 그만 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은 며칠 동안을 그대로 있다가, 어느 날 새벽 눈이 띄어서 처음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밖에선 무서리가 오는 듯한 늦가을의 상당히 싸늘한 새벽이었는데 '내가 안 자고 혼자 깨어있다'는 호젓한 생각 끝에 밖에서 서리를 맞고 있을 그 놈을 생각하자, 그것은 용이히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만은 그 뒤에도 많은 문구상의 수정을 오랫동안 계속했던 것을 말해 둡니다. 이상과 같이 나는 내 미진한 작품 「국화옆에서」의 13행의 문자를 기록했었습니다. 요컨대 나는 인생이란 되도록 오래 체험하고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박이도 <문예창작실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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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윤후명 (1946∼)

철새들 乙乙乙 날아간다

乙乙乙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러나 乙乙乙

고개를 들라고 날개를 친다


모름이 곧 앎이니

날아갈 뿐이니

삶이 곧 낢이니

날개를 친다

너는 어느 땅에 붙박혀 있는가

묻는 상형문자 乙乙乙

음역하여 내 삶에 숨을 불어넣는다

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을…의

소리글자 날개


춘분도 지나고 이제 겨울철새들 날아갈 때인가. 추운 고장을 향해 먼 길 떠나는 새들이 딱하다. 하지만 내가 따뜻한 걸 워낙 밝히듯이 그들은 추운 날씨를 좋아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설레고 있을지도. 저마다 타고난 체질과 성정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늘 높이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면 겨드랑이가 들썩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깃털 달린 영혼의 소유자들. 비행기를 봐도 그들은 발바닥이 간지러울 것이다. 그 유랑의 무리가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먼 고장, 다른 고장에 대한 향수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이나 몸이나 끊임없이 떠돌아야 사는 체질 때문이리라. 사실 우주의 본질은 움직임 그 자체이니 그들의 삶이야말로 우주의 이치에 합당한 것일 테다. 시인은 말한다.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 것, 움직이는 것, 곧 날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정체해 ‘어느 땅에 붙박여 있구나!’ 철새들의 비행 행렬을 보며 시인은 한 삶에 안착한 자신의 모습을 새삼 깨닫고 호흡곤란을 일으킬 지경이다.

새 을(乙). 과연 둥긋하게 앉아 있는 새의 형상이다. 상형문자의 형상을 이용해서 시 속에 새를 그려 넣었다! 그 글자의 소리를 ‘을을을을을을을…’적어서 아득히 날아가는 새떼들의 날갯짓과 날개소리, 그로부터 땅으로까지 전해지는 공기 가득한 떨림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살갗에 느끼게 한다. 그 발상과 솜씨가 기발하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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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시적 발상, 령감, 동기, 언어 등 시작 준비를 구체적으로 해야 2017-01-26 0 2676
144 시인은 직접적 체험을 통하여 진실된 인생을 운운해야... 2017-01-26 0 2677
143 시는 이미지적 회화성과 배후에 숨겨진 의미성의 암시이다... 2017-01-24 0 2499
142 시인은 올바른 인생관과 정립된 가치관이 있어야... 2017-01-23 0 2854
141 "조선족 대표"와 "덜된 대표" 2017-01-22 0 2696
140 "조선족"과 "선족" 2017-01-22 0 2581
139 로익장(老益壯)의 문학을 위하여... 2017-01-22 0 2915
138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 어릴 때부터 글쓰기 훈련을... 2017-01-22 0 3322
137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을... 2017-01-22 0 2671
136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 어릴 때부터 한자 공부를... 2017-01-22 0 2994
135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어릴 때부터 절약정신 교육을... 2017-01-22 0 2578
134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어릴 때부터 "말 잘하기"훈련을... 2017-01-22 0 3270
133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어릴 때부터 올바른 용돈교육을... 2017-01-22 0 2835
132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5000억 뇌세포를 깨우라... 2017-01-22 0 3398
131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어릴 때부터 동시조 공부를... 2017-01-22 0 2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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