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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의 유래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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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의 유래 최초의 하이힐은 기원전 4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테베 고분 벽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벽화에서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답니다. 그 후로도 남자들이 하이힐을 즐겨 신은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말을 타는 남자들이 등자에 발을 넣으면 고정이 잘 되기 때문에 하이힐을 애용했답니다. |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이힐의 유래를 알려드리려고 하는데요.
여성분들이 다리를 더욱 이뻐보이기 위해서 하이힐을 신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것 알고 계신가요?
원래는 하이힐이 여성을 위한 신발이 아닌 남자를 위한 신발이었단 사실을..
모르셨던 분들이 많이 계실거예요.
지금부터 정보드리미가 하이힐의 유래를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
하이힐의 유래는 똥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15~16세기 경 르네상스 시대부터 하이힐을 신게 되었다고 해요.
르네상스 시대만의 이상한 사상으로 인하여 하이힐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르네상스시대 유럽사람들이 집안에 생리현상을 처리하는 화장실을
두는 것은 야망스러운 행동이라고 여기게 되며 모든 생리현상을
길에서 해결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길거리에는 똥이 널리게 되었고길을 걷기 위해서 똥을 피해가며 걸어야 했다고 해요.
하지만 17세기경 바로크시대에 왕인 루이14세가 똥을 피하기 위해서
굽이 50cm가량 하는 높은 신발을 신게 되며 귀족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고 해요.
이 신발이 하이힐의 유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이힐의 유래를 알려드렸는데요.
똥을 피하기 위해서 생기게 되었다니..
탄생비화가 참 재밌는것 같아요ㅎㅎ
하이힐이 어떠한 비화로 생겼는지 궁금하셨다면 하이힐의 유래를 알아두세요~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는 이유, 긴 설명 필요 없이 마릴린 몬로가 했던 이 말을 인용하면 됩니다. “하이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천재성에 큰 덕을 보았다.” 만약에 마릴린 몬로가 하이힐이 아니라 운동화를 신었다면 특유의 유혹적인 걸음걸이와 몸매가 덜 돋보였겠지요. 그녀도 몰랐던 하이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구체적인 이름은 언급돼 있지 않지만, 이탈리아의 구두 장인이었다고 합니다. 1533년, 피렌체의 캐서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을 앞두고 굽 높은 구두를 제작했습니다. 프랑스 궁정에 들어설 때 본래의 키보다 훨씬 커 보이고 싶어서였지요. 피렌체에서 온 새신부의 굽 높은 신발은 곧 프랑스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이렇게 16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하이힐 열풍은 유럽 전체로 퍼졌고, 17세기 베니스에서는 굽 높이가 무려 75센티미터에 달하는 구두까지 등장했다고 하는데요. 영국 귀족 존 에블린이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여자들이 곤돌라처럼 엄청난 크기의 신발에 기어 올라갔다 기어 내려오는 광경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마치 자진해서 교수대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꼴이다. 그런 신발을 신은 여자들이 무려 서른 명이나 몰려다니는 광경을 본 적도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긴 장대가 절반은 거기에 모인 것 같았다.”
신발이 아무리 크기로서니 설마 곤돌라만 할까 싶지만, 그 정도로 존 에블린에게 충격을 준 신발이 바로 하이힐입니다. 그런데 당시 하이힐은 굽의 높이도 높이지만 너무 얇아서 균형을 잡기 힘들었습니다. 패티 코트로 한껏 부풀려 무거워진 드레스에 그렇게 약한 하이힐을 신고 걷기까지 상당한 연습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위험천만해서 여성의 무게중심을 받쳐줄 수 있는 파트너의 팔이 필수였습니다. 그게 없으면 아마 외출을 포기하든지, 하이힐을 포기하든지 했겠지요.
이처럼 최초의 하이힐은 부상의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성들 중에는 “하여튼 여자들이란……” 하고 혀를 차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성들도 하이힐을 신었습니다. 앞서 존 에블린에게 충격을 준 하이힐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서도 유행하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신었는데요. 딱 달라붙는 스타킹과 함께 하이힐을 신으면 종아리의 근육이 단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안토니 반 다이크의 그림 〈존 스튜어트 경과 버나드 스튜어트 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 두 청년은 당시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사촌들로 형인 존 스튜어트는 열여덟, 동생인 버나드 스튜어트는 열일곱이었습니다. 둘 다 미남은 아니지만 치장이 화려합니다. 잘 다듬은 금발이 어깨까지 내려왔고 형제가 입은 의상은 윤이 나는 비단과 정교한 레이스로 만들어진 사치품입니다.
먼저 옆으로 서 있는 동생이 신은 구두를 봅니다. 언뜻 보기에도 굽이 10센티미터 정도는 돼 보입니다. 이 디자인 그대로 지금 출시해도 꽤 인기를 끌 만큼 멋지지요.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웨지힐입니다. 쐐기형의 굽이나 힐이 붙은 구두를 총칭해서 웨지힐이라고 하지요. 옆에 서 있는 형이 신은 구두는 굽이 보이지 않지만 발꿈치를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니 역시 하이힐을 신고 있을 것입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이 1638년, 당시 영국 남자들이 하이힐을 신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이로부터 백여 년 후인 1827년, 러시아의 화가 오레스트 키프렌스키가 그린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초상〉을 보면 19세기 러시아 남자들이 손톱치장에 신경 썼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푸시킨은 팔짱을 끼고 있는데 팔에 얹은 손가락의 손톱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톱이 길기도 하지만 네일숍에서 전문가에게 손질 받은 것처럼 손톱 끝이 반원형으로 잘 다듬어져 있기 때문인데요. 이 손톱으로 펜을 잡고 글을 쓰려면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푸시킨은 당시에 러시아에서 소문 난 멋쟁이였다고 하지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인데, 그림 속 하이힐과 손톱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림 속 인물들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습니다. 스튜어트 형제들은 이 그림이 완성되고 6년 후 크롬웰 공화파에게 피살됐고, 푸시킨은 신사의 결투에서 얻은 총상으로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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