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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전문가" - 마광수님
2017년 09월 14일 01시 44분  조회:1931  추천:0  작성자: 죽림

자기 내면에 저항한 파격의 휴머니스트” /
‘윤동주 전문가’ 마광수 교수가 말하는 윤동주


이혜민 기자 | 
월간 [신동아] 2016년 04월 호

“윤동주는 자기 내면에 저항한 파격의 휴머니스트”

● 쉬운 詩語로 빛나는 은유 만들어
● ‘저항시인’보다는 ‘사랑의 시인’
● 영화 ‘동주’, 尹 시인의 문학 조명 못해
● 윤동주와 나의 공통점은 ‘솔직함’

윤동주(1917~1945) 시인과 마광수(65) 연세대 국문과 교수.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윤동주 시인은 청순(淸純)하고,
마광수 교수는 퇴폐(頹廢)한 이미지다. 하지만 연세대(연희전문) 출신인
두 사람을 잇는 다리가 있다. 마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마 교수의 학위논문을 검색하면
‘尹東柱 硏究 :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
(馬光洙,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3. 8 학위논문(박사)’가 나온다.
청년 마광수는 이 논문으로 좋은 평을 받고 이듬해 연세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두 사람은 대척점에 선 느낌이다. 윤 시인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펴낸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반면 마 교수는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소설 ‘즐거운 사라’로 외설 논란에 휩싸였다.
윤 시인은 특히 ‘서시(序詩)’로 유명한데, 마 교수도 책을 낼 때마다 서문 격으로 서시를 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1941년 11월 20일 作)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도덕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 수가 없네.(…)

--- 마광수 ‘서시’(2011년 7월 作)

자신에게 저항한 시인

영화 ‘동주’가 화제가 되면서 새삼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윤 시인, 그리고 그의 시가 지닌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싶어 마 교수를 만나고자 했다.
마 교수는 논문에서 ‘윤동주의 작품들은 일제 말 암흑기,
우리 문학사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고 평가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줌마 기자’와 영화 같이 보고 윤동주 문학 얘기를 하자”고 제안하자
마 교수는 다짜고짜 “집으로 오라”고 했다.
3월 7일 그의 집을 방문해서야 굳이 집으로 오라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기자와 대화하면서도 담배를 연신 피워댔다.


▼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윤동주 전문가라고 들었다. 

“내 논문이 1983년에 나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윤동주 연구가 별로 없었다.
대개 시 한 편 내지 두세 편을 연구했는데, 난 그의 시 전편의 상징적 표현에 주목했다.
요즘도 중·고교 참고서에 내 연구 내용이 나온다.”


▼ 그 시절 윤동주에 대한 평가는 어땠나. 

“평판 자체가 거의 없었다. 시집도 정음사란 출판사 한 곳에서만 나왔다.
‘그 어린애가 뭘 알았겠나…’ 했을 거다. 그가 어디 박사 감이 되나.
근데도 우기고 썼다. 내 연구 이후로 많은 사람이 윤동주를 사랑하게 됐으니 뿌듯하다.
물론 윤동주가 고결한 외모 덕에 점수를 받은 점도 있다.
윤동주는 심약한 휴머니스트다. 저항이 잘 안 보인다.”


▼ ‘미친 말의 수기’(마광수, 꿈의열쇠)에서 ‘윤동주 연구를 상징 분석 중심으로 써가면서
그가 절대로 저항시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면적 저항을 한 ‘자아 해부’의 시인이었다’고 설명했던데. 


“윤동주는 저항시인이 아니다. 소극적이지. 그 당시 시인이나 소설가는 방탕했다.
본처 버리기 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렇다고 윤동주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도 아니다.
창씨개명 하면서까지 일본에 간 건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러 간 거다. 그게 안타깝다.
연세대 학적부에 보면 ‘윤동주’에 줄이 그어 있고 일본 이름(平沼東柱)이 있다.
창씨개명을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윤동주는 비명횡사했다. 윤봉길이나 안중근이 아니다.”


윤동주의 저항은 자기 내면 또는 본능적 자의식과의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이러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가 목표했던 저항의 대상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압박이나 조국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별 헤는 밤’이 최고
▼ 왜 윤동주를 연구했나. 

“좋으니까. 시의 서정성이나 완성도의 최고는 ‘별 헤는 밤’이다.
중학생 때 문예지 ‘학원’을 봤다. 나는 ‘학원’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때 정호승 시인도 상을 받아서 지금도 알고 지낸다.
‘학원’에서 매월 ‘기억할 만한 시’ 한 편을 소개했다.
언젠가 그 코너에 윤동주의 ‘서시’가 나왔는데,
단순하면서도 의미의 함축이 대단했다.
이해하기 쉽고.”


▼ 마 교수도 글을 이해하기 쉽게 쓰는데, 그런 점에서 통했나.

“맞다. 광복을 전후해 나온 시들 중에서 주석(註釋)을 안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는
윤동주 시밖에 없다. ‘또 다른 고향’만 난해한 편이다.
정지용 시만 해도 어려운 조어가 많다. ‘향수’에도 ‘해설피’(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진 모양)가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지 않나. 서정주도 일반인이 못 알아듣는 시어를 많이 썼다.
다른 사람들은 더했고.” 


▼ 백석의 시도 이해하기가 쉽진 않다.

“이상하게 비평가들이 어려운 글을 높이 평가한다. 언제부턴가 백석을 막 띄우더라.
하지만 백석과 정지용은 기교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자, 이름을 대보자. 김훈, 이문열 이런 사람들의 문장은 두 번씩 읽어야 한다.
난 학생들에게 ‘한 줄을 두 번 읽게 쓰지 마라’고 한다. 소통이 안 되는 건 문학이 아니다.
우리나라 책이 안 팔리는 데는 (작가들의) 어려운 문장 탓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책도 안 사면서 노벨문학상 수상만 바란다’는 기사가 나왔던데,
창피한 일이다.” 


▼ 영화 ‘동주’는 봤나. 

“봤다. 실망했다. 윤동주의 비애를 상기시켜주긴 했다. 끝날 때 눈물 한두 방울은 나왔다.
윤동주 역(강하늘)이 시 낭송을 아주 잘했다. 일본말 외우느라 고생도 많았을 거다.
근데 너무 저예산으로 찍었다. 윤동주가 경성 시내 다방도 많이 갔고,
헌책방 순례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장면이 하나도 안 나온다.
동경 거리 장면에선 거리는 안 나오고 전차만 나온다. 그마저 너무 조악하다.
더구나 연희전문이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 연희전문? 졸업식 장면에서 본 것 같은데…. 

“예고편에 기숙사 건물이 보이는 것 같던데, 영화에서는 안 보이더라.
졸업식 장면이 나오지만 실내가 정체불명이다. 그동안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잘 봐왔는데
이번에는 좀 날로 먹었다. 윤동주가 살던 기숙사 건물,
공부한 건물이 그대로 있으니 찍으면 됐을 텐데….”


▼ 연희전문이 등장하지 않은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 

“당연하다. 윤동주는 대표작들을 연희전문 다닐 때 거의 다 썼다.
그때가 낭만이 꽃피던 시절인데, 왜 그런 묘사를 안 했을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연전 캠퍼스 오가며 착상한 건데,
일본 장면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오더라. ‘서시’도 연전 졸업할 때 출판하려다
못한 시집의 서문인데 라스트 신에 나오고. 고등학생들은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보는데,
시를 봐라, 사랑이다. 가난한 사람, 여린 것들, 비둘기, 토끼, 노루…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나.” 



▼ ‘동주’를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보고 평가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너무하다. 재판 장면도 안 나온다. 판결문이 명확히 남아 있는데도,
윤동주의 죄목이 뭔지도 불분명하다. 영화에는 문학적인 조명도 빠져 있다.”


▼ 영화에 시가 내레이션으로 나와서 좋던데…. 윤동주 문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윤동주는 한국문학의 축복이다. 근데 윤동주 시집이 왜 정음사에서 나왔을까.
그 이후에도 시집이 군소(群小) 출판사에서만 나온다.
이번에 나온 복각본 시집도 1인 출판사에서 나왔더라.
모 교수는 ‘윤동주 시인은 동시를 썼다, 유치하다, 유아기로의 퇴행’이라면서 폄하했다.
우리나라는 문단이 권력이 됐다. 나만 해도 문단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나.” 


▼ 마 교수는 논문에서 ‘부끄러움’이란 단어로 윤동주 시를 해석했다.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이 10편이나 된다.
이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적 이데올로기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볼 때
가히 파격적이리만큼 독특한 문학 세계다’라고 했는데. 


“시 ‘자화상’은 자기혐오다. 우물에 왔다, 갔다 하는 거다.
마지막에, 우물 속에는 하늘이 있고 추억처럼 한 청년이 서 있다고 하는데,
자기 갈등을 그린 거다. 윤동주 시에는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무지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아주 독창적이다.”


“자기 내면에 저항한 파격의 휴머니스트”

▼ 얼마나 독창적인가. 

“정지용처럼 모더니즘도 아니고, 청록파같이 자연회귀도 아니다. 일기 같은 시다.
작품마다 날짜를 적어두지 않았나. 이광수처럼 계몽가로서의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도 아니다.
저항시도 아니고 시류를 전혀 타지 않았다.
‘내 모가지를 드리워서 꽃처럼 드리우는 피를 흘리겠다’는 건 마조히즘이다. 독창적이다.
다만 본능에 충실했다. 시 ‘팔복’을 보면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란 대목이 나온다.
예수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로 간다’고 했는데
기독교에 대한 회의도 한 거다.”


▼ 시 ‘자화상’의 우물을 ‘자궁으로 가는 통로’라고 설명했던데, 동의하기 어렵다. 

“정신과 의사들이 보는 ‘정신분석 상징사전’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물의 이미지가 양수, 자궁, 여자다. 자궁은 물이 아니라 긴 통로를 거쳐야 하는 양수다.
윤동주에게도 성욕이 있었을 거 아닌가. 이상은 여성편력이 심했는데
윤동주는 연애도 한 번 못 한 것 같다.”


▼ 논문에서 ‘윤동주는 가장 솔직한 인물이면서도 내면의 본능에 솔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 이상 정도는 프로이트를 알았고, 성에 대한 시를 몇 개 썼다.
다방 개업할 때 ‘69’라고 했고. 하지만 윤동주는 술도, 연애도, 담배도 안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윤동주 시인과 마 교수가 닮은 점도 있다고 보나. 

“우리 둘 다 ‘솔직’하다. 소통도 잘하고. 내가 69학번인데
그때 연세대에 윤동주 시비가 생겨서 자주 갔다.
윤동주처럼 ‘알아듣기 쉽게 써야겠다’ ‘구어체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만약 윤동주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 보면 윤동주가 더러운 꼴 안 보고 죽은 게 다행이다 싶다.
6. 25가 나고 세상이 얼마나 복잡해졌나.
살아서 월북했다면 다른 월북 문인들처럼 이용만 당했을 테고,
남한에 있었더라도 납북될 수 있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행복한 죽음일 수 있다.
기다리던 광복을 맞았는데,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겠나.” ☆ 

 

"난 욕망에, 윤동주는 내면에 솔직.......그와 난 닮았다"
/ 2016년 8월에 정년퇴임하는 마광수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6.03.31  

순결의 시인 윤동주 현상에 대해 ‘세속 작가’ 마광수가 입을 열었다.
윤동주 시에 대해 “내면 갈등을 투명하게 드러내 아름답다”고 했다. 


요즘 문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70년 전 세상을 뜬 시인 윤동주(1917∼45)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5만 부 넘게 팔리고,
5억을 들인 저예산 영화 ‘동주’는 114만 명이 관람했다(29일 현재). 관련 출판도 잇따른다.
시 소개 평전 『처럼』, 사진 자료를 강화한 시·산문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3월호는 일본법원의 1944년 윤동주 판결문을 구해 실었다.
그가 조선 독립의 야망 실현을 위해 릿쿄(立敎)대에서 도시샤(同志社)대로 학교를 옮겼다는
억지 주장이 나온다.


늘 회의하며 내면 파헤친 윤동주, 그의 저항 대상은 자기자신, 과장도 없고 가르치려하지도
않아 
왜 지금 윤동주인 걸까.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여러 가지로 훼손된 우리 삶의 모습과
정 반대인, 흠 없는 사람을 찾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종교적 경건함마저 느끼게 하는
희생 제물 이미지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연세대 마광수(65) 국문과 교수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여대생 제자와 성관계를
갖는 대학교수가 나오는 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로 구속·해임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국내 윤동주 박사 1호다. 83년 윤동주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시 전편을
상징주의 이론으로 분석했다. 윤동주가 상징주의를 배워 활용한 적은 없지만 쉬우면서도
모호해 풍부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내용이다.


2016년 3월 24일 오후 마 교수의 서울 이촌동 자택을 찾았다. 그는 8월이 정년퇴임이다.
아직도 90년대 소설 외설 시비의 상처가 큰 듯 했다. 자꾸 자기 얘기로 돌아갔다.
기관지가 약해져 줄인 게 하루 두 갑이라며 줄담배를 피웠다.


뜻밖이다. 윤동주 1호 박사라니.
응답 : “내가 변태 교수로 몰려 억울하게 잡혀가는 바람에 윤동주와 내가 안 맞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사람도 솔직했고 나도 솔직했다. 둘 다 글을 아주 쉽게 쓴다.
그리고 나도 시인 아뇨. 소설보다 시로 먼저 등단했잖아.”


솔직하다면.
응답 : “사람이 먹는 거 하고 섹스, 둘밖에 더 있어. 나는 인간의 성적인
욕망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다 피 봤지. 아무도 안 하는 걸 해봐야겠다
그런 거였거든. 이 사람 역시 성적인 것을 빼고는 자기를 다 드러냈다.
시가 곧 자기 고백이다. ‘참회록’ 같은 시를 봐라. 온통 자기에 대해 분석하고
부끄러워하는 내용이다. 끊임없이 회의와 모색을 하며 자기 내면을 해부한 사람이다.
시에 교훈도 별로 없다. 맑은 동심으로 쉽게 시를 썼다.”


저항 시인의 이미지가 강한데.
응답 : “그의 시를 저항시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그의 저항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일본에 독립운동하러 간 게 아니다. 도항증(渡航證)을 받기 위해 창씨개명까지 하며
문학 공부하러 갔다. 시에 명시적인 저항이 없다. 오히려 내 목을 댈테니 잘라라, 는 식의
마조히스트 색채가 있다. 그만큼 내부 갈등이 많았던 사람이다.”


문학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응답 : “당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정지용과 교류했지만 모더니즘 계열이 아니다.
좌파 문학과도 관련 없고 청록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 도 아니었다.
당시 시인들은 뭘 가르치려 하거나 과장되게 흐느끼거나 아니면 카프처럼
나가 싸우자고 부르짖거나 였다. 윤동주에게는 세 가지가 하나도 없다.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다. 시가 일기 같다.”


내성적이었나.
응답 : “말도 못하게. 술·담배도 모르고 여자도 몰랐다. 아무리 추적해도 연애한 기록이 없다.
연희전문(연세대 전신) 다닐 때 수업 끝나면 본정통이라고 불렀던 지금의 명동에 가서
책방 순례를 한 다음 카페에서 차 마셨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가 기적이라고 본다.
그의 작품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출판한 정병욱 같은 친구가 없었다면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 거다. 기적이고 축복이다. 그런 윤동주가 부럽다.
나도 곧 죽을 텐데 내 원고를 보관해 줄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


요즘 윤동주 현상은 어떻게 보나.
응답 : “사람들이 이제야 시를 볼 줄 알게 된 거다. 그동안 난해하고 철학적인 것만
좋은 건 줄 알았지. 윤동주는 신통하게도 주석 없이도 누구나 알 수 있게 썼다.
윤동주의 그런 점에 끌렸다. 난 난해한 걸 제일 싫어한다. 문학이 결국 소통 아닌가.
역시 영화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다. 또 윤동주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일찍 죽었다는 점, 우리에게는 요절한 사람에 대한 이상한 숭배가 있다.
내 제자지만 기형도도 그렇고. 또 하나는 잘 생겼다. 정직하고 깨끗하게 생겼다.
못생기고 뚱뚱했다면 이런 신화나 열광은 없었을 거야.”


곧 정년퇴임인데.
응답 : “고난이 많았다. 내가 잡혀간 지 25년이 됐는데 제2의 마광수도 안 나오고
검열은 더 심해졌다. 한국이어서 일어난 일이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잡혀간 사람을 동정하기는 커녕 오렌지족의 대부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페이머스(famous·유명한)’뿐 아니라 ‘노토리어스(notorious·악명 높은)’도
질투한다. 퇴임하면 수입이 팍 줄 거다. 중간에 8년을 놀아 연금도 얼마 안 된다.
외로운 독거노인이지 뭐.”


후회는 없나.
응답 : “많지. 마흔한 살에 잡혀 들어가 40대 10년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변절은 안 했다.
다른 글은 몰라도 적어도 소설과 시로는 성을 파고 들었다.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는 최근 산문집 『섭세론(涉世論)』을 출간했다.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경구를 모은 책이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허무한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성적 쾌락 추구로 달래야 한다는 튀는 주장을 담았다. 집필 계획을 묻자
“『인간에 대하여』라는 또 다른 산문집도 곧 내고 누가 웹소설 써보라고 해서
곧 연재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독창적인 예술작품이 나올 수 없다.
개인들도 공포를 느끼며 살 정도니….”


★ 마광수=1951년 서울 출생. 77년 박두진 추천으로 시인 등단.
산문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냈다.
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로 구속(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 된데 이어
95년 연세대 교수 직에서 해임되며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렀다.
98년 복직됐으나 2000년 논문실적 부실 판정을 받고 휴직했다가 2003년 다시 강단에 섰다.


글=신준봉 기자 

[출처: 중앙일보] "난 욕망에, 윤동주는 내면에 솔직…그와 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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