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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 리유가 없다"...
2017년 10월 25일 01시 28분  조회:3508  추천:0  작성자: 죽림

[경향신문] ㆍ부탄, 행복에 특별한 비밀은 없다

부탄의 관문 도시인 파로 교외 밭에서 지난 15일 농부들이 갓 수확한 가지와 고추 등 유기농 농산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부탄 정부는 2015년 GNH(국민총행복)지수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은 직군인 농민들을 위해 보조금 지급, 농산물 판로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파로(부탄) | 정지윤 기자

그들에겐 지겨울 법한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부탄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가요?”

부탄이 2010년 영국 신경제재단(NEF) 행복도 조사에서 1위에 오른 사실은 늘 회자된다. 부탄 패키지여행 상품은 ‘행복의 아이콘 부탄 여행’ ‘지상 최후의 샹그릴라로 떠나자’ ‘행복지수 1위 부탄으로!’라며 환상을 부추긴다.

정작 행복정책을 관장하는 부탄 관료들은 ‘부탄 유토피아설’을 부인했다. 지난 12일 수도 팀푸에서 만난 부탄 경제부의 경제정책 담당 관료인 소남 도르지는 “지구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부탄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고 했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가 된 과정을 보면 사실과 허구, 오해가 뒤섞여 있다.

부탄이 전부터 ‘행복’에 유독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1729년 만든 옛 부탄 왕국 법전에는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쓰여 있다. 1972년에는 부탄의 4대 국왕이 현재 부탄 정책에 반영되는 ‘GNH(Gross National Happiness·국민총행복)’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 유엔이나 유럽, 영미권에서도 행복지수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최근 부탄은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자살률 통계를 보면 부탄은 인구 10만명당 13.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률이 세계 20위권이다. 약물중독 문제도 불거져 팀푸 시내 곳곳에는 약물중독 방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청년들의 이농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부탄은 2010년 1위였던 신경제재단 행복도 조사에서 지난해 56위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푼초 왕겔 GNH위원회 평가조사팀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지구상 어디에 유토피아가 있겠는가”라며 “부탄 정부는 시민 개개인 행복의 총합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탄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아닐지라도 시민 행복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나라라는 솔직한 말이다.

■ 가장 불행한 사람에게 정책 초점

부탄 정부의 ‘행복한 나라’를 향한 노력은 4대 국왕이 창안한 GNH를 기반으로 한다. 부탄이 활용하는 GNH는 다른 국가나 기관에서 만든 행복지수와 달리 모든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GNH가 국가 정책에 적용될 때 출발점은 GNH 설문조사다. 부탄연구원(CBS)은 시민들의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해 2008년, 2010년과 2015년 세 차례 표본을 뽑아 GNH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015년에는 전체 인구 79만명의 약 10%인 7153명을 최대 2시간씩 심층 인터뷰했다.

2015년 GNH 설문조사 항목은 크게 4개 축과 9개 하위 지표로 나뉜다.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 경제 발전, 문화 보전과 증진, 생태계 보전, 투명하고 참여도 높은 의사결정과정(굿 거버넌스)이 4개 축이다. 9개 지표는 생활수준, 교육, 건강, 문화적 다양성과 복원력, 공동체 활력, 심리적 웰빙, 시간 사용, 생태적 다양성과 복원력, 굿 거버넌스다. 9개 지표는 다시 33개 세부 지표와 148개 질문으로 나뉜다.

33개 세부 지표는 가중치가 서로 다르다. 노동시간과 수면시간(50%), 도시문제·정치참여(40%) 등의 가중치가 높다. 1인당 소득·자산·주택(33%)의 가중치도 높은 편이다. 흔히 부탄은 ‘가난해도 행복한 나라’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GNH는 경제적 요소도 간과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2015년 GNH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이 낮은 농촌 지역이 상대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부탄에서는 9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중 35.4%(34명)가 농촌 거주자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부 정책은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 장려, 보조금 지급, 농산물 판로 확대를 위한 도로 건설 추진 등을 전보다 강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부탄, 행복의 비밀>을 출간한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GNH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며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GNH의 기본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 정부 정책 ‘스크리닝’도 하는 GNH

님 도르지 부탄 재무부 차관은 인터뷰에서 “GNH로 정책 방향만 잡는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정책은 GNH를 통해 다시 한번 스크리닝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GNH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해 내놓는 정책은 GNH위원회 심사를 받는다. 위원회는 설문조사에 사용한 9개 지표에서 형평성, 경제적 안전, 반부패, 성평등, 공공 건강, 토양 파괴, 문화, 스트레스 등 22개 하위 지표를 추출해 각 지표별로 1~4점을 매긴다. 위원회는 총 점수가 66점(평균 3점)을 넘지 못하면 ‘불완전한 정책’으로 간주한다.

총리와 10개 부처 장관은 위원회가 매긴 점수를 받아본 뒤 평균 점수가 66점 아래라면 대개 낮은 점수를 받은 지표를 보완토록 권고한다. 위원회 권고에 따라 관계 부처는 해당 정책의 약점을 보완해 다시 위원회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탄 경제부의 경제정책팀 당국자 소남 도르지는 “가장 최근에는 광산 개발정책이 GNH를 통과하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며 “광산 개발이 환경오염을 불러오고 노동자보다는 개발자들의 이익에 기울어져 있다는 GNH위원회의 지적에 수차례 정책 수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다만 위원회의 권고에는 구속력이 없다. 국무총리는 10개 부처 장관들과 협의해 66점에 미달한 정책을 그냥 추진해도 무방하다. 왕겔 GNH 평가조사팀장은 “권고를 무시한 정책 추진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총리와 집권 여당이 감수해야 한다”며 “이에 총리와 장관들이 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 행복을 위한 지난한 여정

부탄이 GNH 설문조사를 하며 본격적인 행복실험에 나선 지 이제 막 10년이 지났다. 10년 사이 부탄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왕이 통치에서 손을 뗀 뒤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고,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8.64% 성장했다. 부탄의 지난해 1인당 GDP는 2804달러다.

다만 다른 경제지표가 보여준 결과는 밝지만은 아니다. 눈높이가 높아진 청년들이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해 지난 10년 동안 실업률은 3% 내외였지만 청년실업률은 10% 안팎을 유지했다. 수치가 높을수록 소득분배가 불평등함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2003년 46.78에서 2007년 38.09로 크게 감소했다가 2012년 다시 38.81(세계 72위)로 소폭 증가했다.

공교육 무상교육이 기본 방침인 부탄 사회에서 10세 미만 어린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국공립학교는 학비가 무료지만 사립학교는 매달 20달러(약 2만2500원)씩 내야 한다. 사립학교는 한 반이 20명 정도로 국공립학교보다 10~15명가량 적다. 이로 인해 점차 교육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모두 내년 국회의원 선거로 들어설 차기 부탄 정부가 행복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10년이 GNH를 통한 행복정책의 과도기였다면 부탄의 행복실험은 이제 막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왕겔 팀장은 “정책을 통한 시민의 행복 달성은 행복에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행복정책은 이해 관계자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길고 긴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탄이 북유럽 국가처럼 행복정책을 펼 수는 없지만, 제한적 조건하에서 정부는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지난한 여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팀푸(부탄) |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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