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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 타고르의 시와 그리고 오해, 진실...
2017년 10월 30일 23시 54분  조회:3873  추천:0  작성자: 죽림

 

 

 

 

동방의 등불 타고르(R ,Tagore)

 

 

주요한(朱耀翰옮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전문>

 

 

 

조선인 달래주던 동방의 등불’ -우호상징으로

 

◀2011년 5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인근에 세워진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흉상.

 

일즉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빗나든 아세아 등촉(燈燭)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비치 되리라.’

 

인도의 시성(詩聖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는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빗나든 아세아 등촉(燈燭)’이란 시를 통해 조선을 동방의 밝은 빛으로 묘사했다.

 

영어로 쓰인 이 시는 당시 주요한 편집국장의 번역으로 지면에 실렸다일제 치하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한 줄기 등불이었다.

 

한국인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타고르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 가면 만날 수 있다. 2년 전인 2011년 518일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인근에 타고르의 흉상이 세워졌다타고르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인도의 유명 조각가 고담 팔 씨가 제작한 길이 107cm, 좌대까지 포함하면 210cm 크기의 흉상으로 인도 정부와 국민이 한국에 기증했다.

 

흉상 제작은 2006년 압둘 칼람 당시 인도 대통령의 방한 때부터 추진되다가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도 국빈방문 때 본격적으로 진행됐다주한 인도 대사관의 제안으로 건립 준비가 시작됐고 동방의 등불을 게재한 동아일보사 앞광화문 광장 등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최종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동방의 등불에 대해서는 의미가 과장됐다는 논란도 있다지난해 말 출간된 계간 시전문지 시평’ 겨울호(통권 50)에서 홍은택 대진대 교수(영문학)는 교과서에 실렸던 동방의 등불’ 중 처음 4행만이 타고르가 조선인을 위해 써준 것이며뒷부분은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35’에서 갖다 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타고르와 동방의 등불은 한-인도 양국의 우호의 상징으로 깊게 뿌리내렸다신라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과 동방의 등불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대화 소재다흉상 제막식 당시에는 메이라 쿠마르 인도 하원의장이그해 7월에는 프라티바 파틸 당시 인도 대통령이 흉상을 찾아 헌화했다지난해에는 흉상 앞에서 인도 민속음악을 주제로 한 거리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2013-05-20 / 동아일보 김재영 기자

 

 

 

 

 

 

 

 

 

 

 

타고르 동방의 등불’ 한국위해 쓴 詩 아니다

 

홍은택 교수 시평서 지적

 

인도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시 동방의 등불로 우리에게 유명하다이에 대해 이면의 진실을 제기하는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출간된 계간 시전문지 시평’ 겨울호(통권 50)에서 홍은택(영문학대진대 교수는 타고르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당초 타고르가 (조선인에게준 것은 메모 형식의 6행이며뒷부분은 시 기탄잘리 35’에서 갖다 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동방의 등불이 심각하게 왜곡·편집된 것이라는 요지의 지적이다.

 

홍 교수에 따르면교과서에 실렸던 동방의 등불’ 중 처음 4행만이 타고르가 조선인을 위해 써준 메모 형식의 글이며, 5행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부터는 기탄잘리 35’와 같다는 것이다더욱이 마지막 행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는 원문을 임의로 바꾸기까지 했다는 것. ‘기탄잘리 35’의 마지막 행은 저 자유의 천계(天界)에로주여이 나라를 깨우쳐 주옵소서이다.

 

홍 교수는 원문에 있지도 않은 코리아를 삽입한 것은 명백한 왜곡이라며 맨 앞의 네 행과 전혀 별개의 시를 한데 붙여 한 편의 시로 짜깁기를 하고 더구나 원문에 없는 코리아를 넣어서 마치 타고르가 한국을 위해 지은 시인 것처럼 각색을 했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또 타고르의 또 다른 시 패자(敗者)의 노래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이 시는 육당 최남선이 타고르에게 청해 원고를 받은 뒤 그가 발행하던 잡지 청춘에 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타고르에게 원고를 청탁한 사람은 진학문이며그는 1916년 7월에 타고르를 만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패자의 노래는 타고르의 영문시집 과일 따기에 포함돼 있었으며이 시집은 1916년 1월 미국 맥밀런 출판사에서 이미 출간했다는 것.따라서 알려진 것처럼 새 생활을 갈구하는 조선청년을 위하야” 타고르가 쓴 시는 아닌 것이다.

 

홍 교수는 타고르와 한국의 접촉은 그가 보낸 두 편의 시와 한국의 강연 방문을 요청 받았으나 병으로 좌절된 것이 전부라며 두 편의 시도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패자의 노래는 진학문의 요청에 의해 이미 출판된 시집에서 한 편을 보내준 것이고, ‘동방의 등불은 강연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메모 형식으로 건네준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2012년 12월 10일 / 문화일보 김영번 기자

 

 

 

 

 

 

 

 

 

 

☆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The Lamp of the East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192942일자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던 인도의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을 알고 계신가요?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Tagore, Rabindranath: 1861-1941)가 1929년 일본을 세 번째 방문했을 때당시 이태로(李太魯동아일보 토오쿄오 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하였습니다그러나 거기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여즉석에서 넉 줄의 시동방의 등불을 써서 건네주었습니다영어로 쓴 시의 원문과 주요한(朱耀翰)선생의 번역이 곁들여져 그 해 4월 2일자동아일보1면에 실렸습니다타고르의 이 시는 예언자적인 비전과 무한한 격려와 사랑을 담고 있어우리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짧게 끝나 아쉬웠던지언제부터인가 이 뒤에 기딴자리(Gitanjali)의 제 35번째 시가 덧붙여져서 유포되었습니다.

 

이 시는 타고르가 영국에 항거하는 인도 사람들을 위하여 쓴 시인데아마 우리의 처지도 그와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끌어들여진 것 같습니다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음에 두려움 없이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 작은 칸으로 세계가 나누어지지 않은 곳 /

말씀이 진리의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곳 / 피곤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뻗는 곳 /

이상의 맑은 흐름이 무의미한 관습의 메마른 사막에 꺼져들지 않는 곳 / 님의 인도로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더욱 발전하는 곳 /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눈뜨게 하소서나의님이시어.

 

Gitanjali 35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 Where knowledge is free ;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기딴자'는 타고르의 대표 시집으로 "()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라는 뜻입니다'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는 1901년에 인도에 샨티니케탄이라는 시골에 학교를 세워 인도 근대교육에 체계화하는데 앞장섰다인도는 영국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보다 앞서 근대식 교육을 해 왔다우리나라 80년대 선보인 대안학교는 이미 100년 전에 등장했다바로 대안학교를 만든 이는 타고르이다.

 

그가 교육에 앞장서게 된 것은 그 자신이 공교육에 제대로 적응 하지 못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그는 유년시절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14살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아이들을 무시하는 교사들의 태도와 거친 학생들 때문에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타고르는 17살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을 못해 단 한 개의 졸업장도 갖지 못했다.

 

학교 교육을 그만둔 타고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특히 타고르에게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건은 11살 때 4개월 동안 아버지와 함께한 히말라야 여행이었다타고르 부자가 처음 도착한 곳은 샨티니케탄으로 후에 타고르가 학교를 세운 곳으로 현재 비슈바바라티 대학교 등 세계적인 교육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아버지가 첫 여행지로 샨티니케탄을 택한 것은 아들을 위한 미리 계획된 여정이었던 것이다타고르 부자는 한 달 후 히말라야에 도착해 3개월을 보냈다아버지는 여행의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소년에게 대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호흡하게 하면서도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와 영어를 가르쳤다대자연을 체험하는 모험여행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여기에 맞춰 여행을 진행한 것이다타고르가 4개월간의 여행에서 돌아 왔을 때 이전의 타고르가 아니었다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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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지상(1929년 4월 2일자)을 통해 전해진 타고르의 시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잘못 알려진 것들이 꽤 있습니다.

먼저 동아일보에 실린 넉 줄의 ‘동방(東方)의 등불’이 긴 시로 둔갑해 버린 것입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펴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2002년 교육과학기술부 검정을 거쳐 펴낸
고등학교 문학(하) 교과서 293쪽 ‘동방(東方)의 등불’입니다.

다른 교과서들과 일반 책들에서도 ‘동방의 등불’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형설출판사의 ‘고등학교 문학(하)’(2002년 검정, 131쪽)이나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지리’(2002년 검정, 9쪽)도 이 같은 시를 ‘동방의 등불’이라며 싣고 있습니다.

시집 ‘세계명시선 – 그 이해와 감상’(김희보 편, 대광문화사, 1977년, 302쪽)과

‘대학교양국어’(대학국어편찬위원회 편, 백산출판사, 1986년, 254쪽),
‘세계의 명시’(안도섭 편, 혜원출판사, 1998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일보에 게재된 시의 원문은 요즘 ‘동방의 등불’로 알려진 시의 3분의 1에 불과한 분량입니다.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그렇다면 3분의 2나 되는 뒷부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 시의 뒷부분은 타고르의 대표 시집 ‘기탄잘리’ 35번입니다.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Where knowledge is free;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그곳은 마음에 공포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려 있는 곳,


  그곳은 인식이 자유로운 곳,


  그곳은 세계가 좁은 가정의 담벼락으로 조각나지 않은 곳,


  그곳은 말이 진리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곳,


  그곳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그 팔을 활짝 펴는 곳,


  그곳은 이성의 맑은 냇물이 죽은 습관의 쓸쓸한 사막으로 잦아들진 않는 곳,


  그곳은 마음이 님에 인도되어 늘 열려 가는 사상과 행동으로 나아가는 곳-


  저 자유의 천계(天界)에로, 주여, 이 나라를 깨우쳐 주옵소서.”


  (박희진 옮김, ‘기탄잘리’, 현암사, 2002년,55쪽)


 일제강점기엔 시인 김억이 타고르를 조선에 소개하기 위해 ‘기탄잘리’를 완역했고

해방 후에는 박희진 시인(78)이 ‘기탄잘리’의 대표적인 번역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1959년 처음 ‘기탄잘리’를 번역한 박 시인은

1961년 5월 4일자 한국일보에 타고르 탄생 백주년 기념 글을 기고했고
자신이 번역한 시집 ‘기탄잘리’의 역자 후기에 이 글을 인용했습니다.

 “(전략)…‘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운운의 시로

이미 우리와는 인연이 옅지 않은 이 시성의 백년제를 맞이하여 이제 우리는 또다시 그의 노래를 들어 보자.


그 곳은 마음에 공포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려 있는 곳,


  그곳은 인식이 자유로운 곳,


  그곳은 세계가 좁은 가정의 담벼락으로 조각나지 않은 곳…(후략)”


  (박희진 옮김, ‘기탄잘리’, 홍성사, 1982년, 131쪽)


 홍성사의 ‘기탄잘리’는 평판이 좋아 스테디셀러로서 22쇄의 발행을 기록했습니다.

‘기탄잘리’ 35번과 ‘동방의 등불’이 관련이 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는데
두 개의 시가 어느새 짜깁기돼 버렸습니다.
박 씨는 “전혀 별개의 시가 합쳐져 하나의 시로 읽히는 것을 볼 때마다 분노마저 느낀다.
이것은 타고르를 모욕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타고르가 동아일보에 ‘동방(東方)의 등불’을 기고하기 전

조선인에게 준 또 하나의 시가 있다는 얘기도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그가 조선 민중에 보낸 시로서는 ‘쫓겨 간 자의 노래(패자의 노래)’가 있고

이번 동아일보를 통한 ‘조선의 등촉’이 있다.”
(‘출판경찰개황 – 불허가 차압 및 삭제출판물 – 삼천리 창간호’,
‘조선출판경찰월보’ 제9호, 1929년 5월 7일 발송)

 “타고르가 ‘청춘’지를 통해 첫째 번으로 써 준 글은 ‘The Song of the Defeated’이다.”


  (김윤식, ‘근대한국문학연구’, 일지사, 1973년, 202쪽)

 “강화(講話)가 끝난 다음, 진학문과 단독 회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잡지 ‘청춘’을 위하여 글을 써 줄 것을 부탁했더니
타고르가 쾌히 승낙하고, 얼마 뒤에 시 한편을 보내왔더라고 한다.

제목은 ‘패자(敗者)의 노래(Song of the Defeated)’로 되어있는데
그 때 일본 총독부의 검열 관계로 제목을 ‘쫓긴 이의 노래’라고 고쳐서
‘청춘’지 11월호에 게재하였다.”
(조용만 역·해설, ‘신에의 송가 – 타고르 시선’, 삼성미술문화재단, 1982년, 224쪽)

사실 타고르가 일본을 처음 방문한 1916년 육당 최남선의 요청으로
직접 타고르와 면담한 진학문은 타고르가 조선인을 위해 시를 써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진학문은 다음해인 1917년 육당이 발간하던 ‘청춘’지 11월호에 ‘쫓긴 이의 노래’를 번역해 실으면서
“특별한 뜻으로써 우리 ‘청춘’을 위하야 지어 보내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타고르 자신이 번역해
미국에서 발간한 시집 ‘채과집(Fruit-Gathering)’에 실린 것입니다.

국문학자인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진학문은 이 시를 타고르의 특별선물이라고 믿은 것 같다.”며
“여기서 진학문의 타고르 소개가 지니는 과도기성(過渡期性)이 드러난다.”고 평했습니다.

 타고르를 ‘청춘’지에 소개한 진학문의 착각으로
‘쫓긴 이의 노래’가 타고르가 조선인에게 준 최초의 시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동방의 등불’이 타고르가 조선인에게 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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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61년 2월 26일자 석간 4면


동방의 등불

                           /타고르(R ,Tagore)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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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Tagore, Rabindranath)의 생애와 시  

1. 생애

 




캘커타 출생. 벵골어로는 타쿠르(旱h嚆kur)라 한다. 
벵골 명문의 대성(大聖)이라 불리는 아버지 데벤드라나트의 
15명의 아들 중 열넷째 아들로, 형들도 문학적 천분이 있었고, 
타고르가(家)는 벵골 문예부흥의 중심이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11세경부터 시를 썼고, 16세 때 처녀시집 《들꽃》을 
내어 벵골의 P.B.셸리라 불렸다. 

인도 고유의 종교와 문학적 교양을 닦고, 1877년 영국에 유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며 유럽 사상과 친숙하게 되었다. 귀국 후 벵골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동시에 스스로 작품의 대부분을 영역하였고, 산문·
희곡·평론 등에도 문재를 발휘하여 인도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초기 작품은 유미적(唯美的)이었으나, 1891년 아버지의 명령으로 
농촌의 소유지를 관리하면서 가난한 농민생활과 접촉하게 되어 
농촌개혁에 뜻을 둠과 동시에, 작풍에 현실미를 더하게 되었다. 
아내와 딸의 죽음을 겪고 종교적으로 되었으며, 1909년에 출판한 
시집 《기탄잘리 》로 1913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아 세계에 알려졌다. 

그뒤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문화의 융합에 힘썼고, 캘커타 근교에 샨티니케탄(평화학당)을 
창설하여 교육에 헌신하였으며 벵골분할 반대투쟁 때에는 벵골 스와라지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세운 학당은 1921년에 국제적인 비스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는 국립대학이 되었다. 

시집에 《신월(新月) The Crecent Moon》 《원정(園丁) The Gardener》(1913) 등, 희곡에 《우체국 
The Post Office》(1914) 《암실의 왕 The King of the Dark Chamber》(1914), 소설에 《고라Gor嚆》
(1910) 《카블에서 온 과실장수》, 평론에 《인간의 종교》 《내셔널리즘 Nationalism》
(1917) 등이 있다. 벵골 지방의 옛 민요를 바탕으로 많은 곡을 만들었는데, 그가 작시 ·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 Jana Gana Mana》는 인도의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M.K.간디와 함께 국부
(國父)로 존경을 받고 있다. 

2. 초생달에 나타난 타고르의 시세계

'초생달'은 1913년에 간행되었는데, 이 시집의 특색은 타고르 자신이 무구한 상태인 어린이의 관점
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쓴 것을 묶은 것이다. '초생달'이 어린이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타고르의 삶이 그만큼 순수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타고르처럼 계속 낮아지며 비워내며 산 삶이 마지막 
돌아갈 곳이라는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고르의 어린이에 대한 애정은 그의 일생을 통해 변함이 없었는데, 그는 어린이를 성숙하지 않은 
어른으로 보지 않고 순수하고 완성된 상태에 살고 있는 한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그가 어린이들을 
노래한 시들 중에 순수하고 완성된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나타내 주는 시가 바로 '바닷가에서'
라고 할 수 있다.

3. 타고르의 시에 대하여

 타고르의 시의 경향을 대강 분류해 보면 우선 종교 및 철학적인 시가 있다. 애인을 그리워하는 
소녀의 순정으로 신을 사모하는 감동적인 종교시가 있다. <중략>

 다음 영국의 식민지 정책 압제하에 신음하는 조국 인도의 비참한 상황과 형극의 길을 걸어가면
서도 줄기차게 앞날의 영광을 노래하는 민족적 또는 사회적 저항시가 있다. 갖은 압박과 고난과 
실의 속에서 뚜렷이 조국의 앞날을 예언하면서 동포에게 용기와 의식을 높이고 세계 열강의 횡포에 
단호한 심판의 예언과 경고를 보낸다. 이에 겸하여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하고 또 인류
의 정의감을 호소하는 절규가 시사되어 있다. 이러한 민족 사회시라고 일컬을 만한 것으로서는 
'시들,' '꽃다발,' '백조는 날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셋째는, 서정적인 사랑의 시다. 인도 고유의 풍속과 향토미에서 우러나는 애정을 편력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깃들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서를 발굴한다. 그리고 이를 근대화의 과정에 있는 
시대 조명에 비추어 감각적이요 또 순수한 표현으로 극적이고도 서정적인 맛을 보태고 심오한 
정신적 깊이까지 더하도록 한다. 이런 경향의 작품들로서는 '정원사,' '애인의 선물,' '샤말리
에서,' '망명자 및 기타' 등이 있다.

 넷째는, 어린이 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속세와 현실에 오염되지 
않은 인간 원형 시대의 어린이 세계를 어른의 입장에서 혹은 어린이 자신의 입장에서 노래한 
것이다. 참으로 독자로 하여금 천사의 세계에 놀게 하고 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로 사람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법열(法悅)이 경지를 방불케 하는 예술의 세계다. 여기에 또 룻소의 자유와 
자연의 사상이 은연중에 스며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인류의 씨로서 또 그 핵으로서 또 미래의 
인류의 주인으로서의 어린이 세계를 참으로 고귀하고 또 아리땁게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이 경향
에는 '저녁 노래,' '어린이,' '초승달' 등을 들을 들 수 있다. (출처 : 류영, <타고르의 문학>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3)

4. 한국을 소재로 한 시 두편 
 
타고르는 한국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시, 《동방의 등불》 《패자(敗者)의 노래》를 남겼다. 그 중 
《패자의 노래》는 최남선(崔南善)의 요청에 의하여 쓴 것이고, 다음에 전문을 든 《동방의 등불》
은 1929년 타고르가 일본에 들렀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그 대신 《동아일보》에 기고한 작품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주요한 옮김. 1929.4.2.《동아일보》).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5. 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 만해는 타고르의 영향을 받은 데 그치지 않는다. 한용운의 시는 타골의 시보다 훨씬 격렬하고 
적극적이고 변혁적이다. 이처럼 이 시에서 만해는 타고르를 찬양하면서도 보다는 그의 시를 혹심
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1련에서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
을 불러 '죽은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로 공감과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 연부터는 '눈물이 능히 떨어진 꽃을 옛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 없'음을 힐책하고 
'눈물을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다,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말고 '피묻은 
旗대를 세우'라고 타고르의 시를 신랄하게 비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은 한마디로 타고르의 시세계에 사회나 역사가 없고 투쟁이 없다는 힐책으로 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혁의 의지가 없고 너무나도 안온한 속에 영적 세계에 안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평은 아울러 한용운의 시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한용운
은 선시들도 적지 않게 썼고 그의 시작들에 불교적인 유연한 세계와 종교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한용운의 시를 타고르의 시와 비교하여 명상적이고 신비로운 종교 시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만해의 시세계에 대한 일면을 전체로 보는 오류로 된다고 생각한다. 만해는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바른 정통의식의 소유자였으며 그의 민족주의 이념이나 근대화사상은 가장 명백하고 당당한 논리 
위에 입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회와 역사, 정통의식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음을 우리는 올바르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용운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내 나라, 내 조국의 뜨거운 숨결로 생의 한걸음, 한걸음을 
걸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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