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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경계의 눈"을 가진 비평가를 만나는것이 즐거운 일이다...
2017년 11월 13일 01시 12분  조회:2148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인의 좋은 산문 / 장석주

-『경계(境界)의 시읽기』, 오태환, 고려대학교출판부, 2008

 

 

 

 

 

 

『장자』에서 포정의 우화가 나오는 「양생주(養生主)」 대목이 늘 흥미롭다. 포정은 소를 잡는 백정이다. 그 솜씨가 얼마나 숙달되었는지 소의 몸통을 가르는 칼의 움직임이 마치 상림(桑林)의 무악(舞樂)을 연주하는 듯 했다. 문혜군은 포정의 솜씨에 반해서 거듭 “훌륭하다 !”고 감탄했다. 포정은 그 기예가 최고의 경지에 이른 고수다. 그는 소를 잡을 때 소를 정신으로 대했지 눈으로 보지 않았다. “보는 이가 보이는 것에 내속하고, 만지는 이가 만져지는 것에 내속하고, 느끼는 이가 느껴지는 것에 내속한다.”(메를로-퐁티) 포정은 홀연 그 내속을 넘어서서 무위자연에 이르렀다. 천한 기술을 가진 백정이지만 이미 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마음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어 형체가 있는 것을 형체로 보지 않고 무형한 것으로 보았다. 포정의 칼이 얼마나 날렵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던지 마치 무악을 연주하는 것 같고 명곡의 음률이 울려 퍼지는 듯 했다. 칼이 움직이되 소의 힘줄을 다치지 않고 뼈를 다치지 않으니 소는 고통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가르고 베는 칼은 춤추는데 피 한 방울 튀지 않고 소의 살점이 투두둑 떨어졌다. 포정의 칼은 움직이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았다.

 

『경계(境界)의 시읽기』를 읽으며 불현듯 ‘포정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태환이 시를 고르고 읽고 분석하는 솜씨가 무르익어 마치 포정이 소를 잡는 모습과 겹쳐진다. 시는 날것이다. 죽어나자빠진 사물이 아니다. 시는 심장이 뛰고 맥박이 펄떡거리는 생물이다. 그걸 읽고 분석할 때 생물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오늘날 시를 다루는 많은 비평가들은 제대로 된 분석의 눈도, 떨림으로 공감하는 가슴도, 사려 깊은 태도도 모자라는 초짜 백정 같다. 그들은 시를 생물로 다루지 않고 이념과 자기 확신의 칼로 난도질한다. 마치 도끼로 소의 대가리를 찍고 칼로 소의 몸통을 해체하는데, 비명이 천지를 진동하고 여기저기에 튀는 피로 낭자한 흔적을 남기는 것과 같다.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비평이라는 이름을 빌린 폭력이다. 가히 서툰 백정들의 전성시대다. 이즈막의 우리 시단에는 시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고문하는 초짜 백정들이라는 유령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나쁜 비평들은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 공해물질 같이 우리 시의 생태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비유와 상징을 적당히 꾸겨 넣고 처삼촌 묘 벌초하듯 얼렁뚱땅 가위로 줄을 오린 것들, 서푼짜리 관념이나 신파에 가까운 감상을 시 비슷하게 위조한 것들, 해체니 뭐니 하는 유행을 터득하고 흉내내는 게 첨단을 걷는 것인 양하며 해괴한 표현을 일삼”(「다시, 미당을 위한 잡념」)는 시들이다. 나쁜 비평가들이 득세하는 곳에 설익은 시, 감상적인 시, 괴물 시, 돌연변이 시들이 득세한다. 이건 우리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인데, 많은 시비평가들이 시맹(詩盲)이란 사실이다. 딱하다, 헛발질만 하는 비평가들아. 집어치워라, 좋은 시와 나쁜 시에 대한 분별이나 감식안도 없는 비평들 !

 

『경계(境界)의 시읽기』는 마치 시읽기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걸 시범하는 것 같은 책이다. 이정록, 오탁번, 김남호, 송수권, 장옥관, 김수복, 정끝별, 정일근, 김신용, 김춘수, 정진규, 장석주, 황학주, 최정례, 권자미, 정경화, 안현미, 윤관영, 손택수, 홍신선, 이영식, 이상규, 김종태, 심언주 등의 개별 시편을 읽어낼 때 오태환의 예리한 詩眼은 반짝거린다. 오태환은 시의 문면과 그 사이의 행간을 이룬 여백들, 그리고 시행 너머에 숨은 곳까지 의미의 공간으로 읽어낸다. 아울러 시가 말놀음이라는 본질을 꿰뚫는다. 예를들면 오탁번의 “풀귀얄로 / 풀물 바른 듯 / 안개 낀 봄산 / 오요요 부르면 / 깡종깡종 뒤는 / 쌀강아지 / 산마루 안개를 ?이불 시치듯 호는 / 왕겨빛 햇귀”(「춘일」)를 읽을 때 시가 단순한 의미의 텍스트가 아니라 말들의 즐거움으로 이루어진 집이라는 걸 실감한다. 오태환은 풀귀얄, 풀물, 시치다, 호다, 깡종깡종, 쌀강아지, 햇귀와 같은 우리 토박이 말들이 모여 이룬 언어의 광합성의 결을 섬세하게 더듬는다. 마찰음을 내는 시옷과 파찰음을 내는 치읕이 어우러진 모음환경 속에서 어떤 소리맵시를 지어내는가를 주목하고, “따로 모여 사분대듯, 물수제비뜨듯, 어미 태내에서 발길질하듯 스스로 갈무리하며 굿질하는 子母의 짧고 빠른 속도감에 홀리게” 된다고 쓴다.

 

오태환과 궁합이 잘 맞는 시인은 서정주다. 이 책에도 서정주에 관한 글이 세 편이나 있다. 「놋요강 표면에 쨍쨍거리는 붐햇볕과 그윽하게 발효하는 한」은 서정주의 시 「영산홍」을 분석한 글이고, 「다시, 미당을 위한 잡념」은 서정주의 「우중유제(雨中有題)」를 다룬 글이고, 「신병(神病), 검은빛과 황금빛 펜터치로 사생한 눈부신 전율」은 본격적인 서정주론이다. 그 중의 한 편을 살펴보자. “신라의 어느 사내 진땀 흘리며 / 계집과 수풀에서 그 짓 하고 있다가 / 떠러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 / 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리듯 /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 // 쏘내기속 청솔 방울 / 약으로 보고 있다가 / 어쩌면 고로초롬은 될법도 해라.”(서정주, 「우중유제」) 눈 맞은 사내와 계집이 수풀 아래에서 씹하는 비속한 한 대목을 잡아채 이렇듯 유장한 솜씨로 형상화해낼 수 있는 게 서정주다. 사내가 양이라면 계집은 음이다. 하늘이 양이라면 땅은 음이다. 양과 음이 만나 흘레붙는다. 그러니까 이 시는 그 흘레붙기의 현장을 생중계한다. 남의 시선을 피해 으슥한 수풀에서 흘레붙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니, 두 남녀의 사랑은 떳떳할 게 없는 사련(邪戀)임이 분명하겠다. 그런데 그만 엉뚱한 사고가 터져 차질을 빚는다. “그 짓”에 진땀까지 흘리며 몰입해 있던 사내는 “떠러지는 홍시”에 그만 마음을 뺏겨버린다. 예정에 없던 엉뚱한 것이 개입해서 “그 짓”의 삼매경에 빠진 사내의 흥을 깨버린 것이다. 사내의 몰입에 이완을 가져온 것은 그 몰입과 아무 상관이 없는 “떠러지는 홍시”다. 한번 맺혀 가지에 맺힌 것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맺힌 게 무르익어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 짓”의 몰입에서 벗어나자 “그 짓”은 과연 그게 진땀까지 흘려가며 몰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하는 뜻밖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주(성행위)가 뒷전으로 물러서니 객(떠러지는 홍시, 쏘내기속 청솔 방울)이 앞으로 나선다. 그 대목에서 시인이 끼어든다.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라고 떨어지는 홍시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사내의 마음에 제 마음을 겹친다. 떨어지는 홍시 따위가 무엇이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고로초롬”이라는 어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그 달관과 무심에 드는 것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다. 오태환은 떨어지는 홍시를 따라 사내의 마음이 “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리”는 사내의 마음에서 “자연의 순정성에 닿아 있는 상태”를 읽는다. “덧붙인다면, 소나기를 ‘쏘내기’라고 표현한 것은 절묘하다. 그럼으로써 듬성듬성한 굵은 빗방울이 작은 물보라를 튕기며 사선으로 후드득, 후드득 내리꽂히는 인상을 훨씬 강렬하게 풍긴다. 그 서슬에 ‘청송 방울’의 푸른빛가지 비치면서 코끝에 물기 머금은 솔향이 청신하다. 게다가 첫 번째 연의 홍시의 붉은빛까지 가세하면 후드득, 후드득 내리꽂히는 ‘쏘내기’ 사이에 채색된 색감도 선도(鮮度)가 한결 높아진다. 첫 번째 연에 ‘쏘내기’가 내리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두 번째 연에서 각인된 ‘쏘내기’는 첫 번째 연의 이미지에도 무의식 중 간섭하기 마련이다. 또 오뉴월 소나기는 쇠등을 두고 다툰다는 속담도 있거니와, 그것은 언제 내릴지 모르게 내렸다가 어느 결에 사라진다. 첫 번째 연에 ‘쏘내기’가 내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기에 ‘고로초롬’이라는 장난기 어린 듯하면서도 입안에 잔뜩 침이 고이게 하는 음감도 이 에피소드의 무봉한 정황과 어울리면서 감칠맛을 돋운다.” 아무렴, 시비평을 쓰려면 이렇게 시를 깊이 어루만져 그 속살까지 더듬듯 쓰렸다 !

 

김수영의 「풀」을 분석하며 ‘풀’을 민초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투박한 시읽기의 어리석음을 조목조목 짚어 일러바치고, 그것이 “윤리와 풍속과 이념이 흔적없이 증발된 언어유희의 공간”임을 지적할 때 오태환의 다른 시선이 나타난다. 「풀」을 민중문학의 시금석으로 받아들이려는 자들은 풀/바람, 눕다/일어나다, 웃음/울음 따위의 대립을 권력과 민초의 저항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얼토당토 않은 해석의 과잉이다. 시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해석인가를 금세 알 수 있다. 바람은 풀을 억압하지 않고 풀은 바람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오히려 풀과 바람은 마치 연인과 같이 끌어안고 눕고 일어서는 유희를 한다. 김수영은 역사나 사회, 혹은 이념 따위가 틈입할 수 없을 만큼 그것이 지시하는 바에서 자유롭게 된 절대 언어들이 “자기들끼리의 규칙과 질서 안에서 숨 쉬며 역동”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풀」은 의미의 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의미를 지운 무의미의 시다.「풀」이 문학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 전체를 감싸안은 채 파동치는 경묘한 음악의 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태환은 꽤 길게 「풀」에 작동하는 음악적 구조를 밝혀내고, “즉물성(卽物性)의 건조한 아름다움”이 발생하는 “언어와 음악과의 가슴 떨리는 내통(內通)”의 생생함을 시 안에서 찾아낸다. 일찍이 음악이론가 서우석이「풀」에 작동하는 음악적 리듬에 대해 분석한 예가 있지만 오태환의 분석은 그것보다 훨씬 더 언어위상학적으로 정교하다.

 

고은의 「스무 살」을 읽어낼 때 오태환은 개인적인 이데올로기와 민족 이데아의 강박이 지어낸 의미론적인 비약의 폐해를 날카롭게 끄집어낸다. 미제의 이라크 침공을 배경으로 삼은 이 시는 왜 감동이 없는가. 초강대국이 첨단무기를 동원해 저지르는 부도덕한 전쟁 폭력을 고발하려는 「스무 살」은 절박한 체험에서 유로되지 않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이고 민중을 억압하는 폭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관념과 이데올로기의 화석으로 떨어진 시다. “오 젖비린내 자욱한 그 방에서 울고 싶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 벌써 한 살입니다 // 다른 나라에서는 / 아기가 태어난 지 / 1년 뒤에야 / 한 살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 아기가 태어나기 전 / 어머니 몸 안에 계실 때부터 / 이 세상을 온전히 시작하고 계십니다 / 몇 살이냐구요 ? / 내 나이 스무 살입니다 / 다른 나라에서는 / 아직 열 아홉입니다 // 서해 낙조였습니다 / 동해 총석정 해가 떠올랐습니다 / 내 나이 열아홉 살 / 우리나라에서는 스무 살입니다 // 지금 이라크 바스라에서는 / 열화 우라늄탄이 퍼붓고 있습니다 / 눈썹 진한 스무 살 처녀가 될 / 두 살짜리 아이가 죽었습니다 / 열아홉 살 총각인 / 한 살짜리가 갓난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 나는 분노의 스무 살입니다”(고은, 「스무 살」전문) 옳다고 믿는 것을 옳다고 믿고 따르며 행동하는 것과 그것을 시로 쓰는 것은 층위가 다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옳다고 믿는 것을 그대로 시로 썼다고 그 시가 옳은 것은 아니다. 시의 주제나 동기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작품의 심미적 깊이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 작품은 실증한다. 오태환은 나이 헤아리는 방식과 스무 살에 이르지 못하고 열화 우라늄탄에 생명의 꽃이 꺾이고 마는 한 살짜리 갓난아이의 죽음이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문제 삼는다. 시 안에서 그 둘은 의미론적으로 제각각 분절된 채 따론 논다. 굳이 그것을 연관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의미론적인 비약이다. 그 비약은 시인 특유의 우렁찬 목청으로 가려 얼버무리는 것은 시적 권모술수라는 게 오태환의 또렷한 생각이다. 「스무 살」에서 오태환은 “적을 상실한 시대에 대승적 담론을 소재로 끌어쓴 많은 시인들의 정신적 공황과 그에 따른 곤혹스런 선택의 표지(標識)”를 읽어낸다. 「스무 살」은 진정성의 밀도가 옅은 까닭에 시에 표현된 슬픔이나 분노는 아무런 공감도 자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시선만 바꿔 민중문학이 금과옥조로 섬기는 이데올로기를 동어반복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오태환은 묻는다. 시대는 흘러가고 전시대의 전위였던 신념과 이데올로기는 이제 묵은 것,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시대가 흘러갔다하더라도 여전히 그 유효성을 다한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사람들은 있다. 오태환의 어법을 빌린다면 “오래된 깃발을 초조하게 부여잡”고 있는 형국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는 것을 저 혼자 아니다라고 외치는 오태환의 삐딱한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태환은 시인이다. 좋은 시인은 좋은 산문을 쓴다. 김수영이 그랬고, 고은이 그랬고, 오규원이 그랬고, 이성복이나 황지우가 그랬다. 좋은 산문을 쓰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시인은 아니지만, 좋은 시인은 반드시 좋은 산문을 쓴다. 형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쓴 『경계의 글쓰기』는 좋은 시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잡고 곧바로 빨려 들어가 그 자리에서 통독을 했다. 읽는 내내 마두금(馬頭琴) 소리가 머릿속으로 울려 퍼진다. 오태환의 글들에는 마두금 소리가 배음(背音)으로 깔린다. 나쁜 시와 이상한 시들이 난무하는 이즈막에 좋은 시들을 가려내고 감식하는 눈을 가진 비평가와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현대시학>(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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