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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것을 빌어 어떻게 나의것으로 만들고 남과 달라야 산다...
2017년 11월 20일 00시 55분  조회:3704  추천:0  작성자: 죽림
 

폴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년 1월 28일 ~ 1956년 8월 11일) 은 미국의 화가로,

추상 표현주의 운동의 기수였다. 그의 부인은 추상화가 리 크라스너이다.

와이오밍 주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부터 표현주의에서 추상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 아침에 이름을 떨쳤다.

이것은 작가의 제작 행위를 직접 화폭에 기록하는 것이라 하여 '액션 페인팅'이라 불렀다.

대표작으로 〈가을의 리듬〉 등이 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폴록》이 있으며, 그의 생일인 2009년 1월 28일 구글의 로고가 그의 작품과

비슷한 그림으로 바뀐 바 있다.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년 4월 24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 1997년 3월 19일 미국 뉴욕 이스트햄프턴.

네델란드 태생의 미국화가. 1904년 로테르담출생.

 

 1926년에 미국에 정착하여 당시에 미국에 이민온 죤 그래함이나 아쉴 고르키 등과 친분을 맺고,

1935~36년에는 벽화 화가로서 연방 미술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소년시절에는 미술장식회사 견습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미술아카데미 야학에 다녔다.  

로테르담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장식미술가로 활동하던 그가 불법으로 미국땅을 밟은 때는

스물두 살이던 1926년 이었다.  
뉴욕의 건축사장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던 그는 1930년대 스듀어스 데이비스, 아쉴 고르키과 같은 뉴욕의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친해지면서 전업작가의 길을 결정한다. 

불법이민 노동자였던 윌렘 쿠닝(Willem de Kooning)은 이름에 드(de)를 덧붙여 작가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으로 변신 하게 된다.

 

2차대전 직후에 부상한 유럽과 미국의 추상미술이 기존원칙의 거부와 전통적 구성방법과의 단절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면, 드 쿠닝의 회화 또한 전통의 파괴 작업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남의 것을 빌어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하며, 또 나의 길은 남과 얼마나 달라야 하는가.  
이를 위해 모방이 있고 파괴가 있으며 재구성이 있고 재창조가 있듯이
  드 쿠닝의 초기 20여년에 가까운 작가 생활은 이러한 과정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왔다.  

1938년의<서있는 두 남자>에서 55년 <풍경이 있는 여인>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일관성 있는 진보과정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치밀한 파괴작업으로 50년대 말 탄생하는 드 쿠닝의 최고의 추상 작품들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드 쿠닝은 1940년까지는 인물화가이자 초상화가였다.  그리고 어떠한 특별한 환경속에 놓인 그의 인물 습작들은 자코메티의 그림과 유사성이 있다.    
그가 추상화를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 추상의 형태들은 고르키를 통해 드러난 피카소를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드 쿠닝의 작업이 바로 20세기 미술의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입체주의 미술의 바탕에서, 특히 피카소의 영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드 쿠닝이 자신의 작품에서 피카소의 흔적을 지우기 까진 장장 15년에 가까운 세월을 필요로 했다.


 전통회화에서 시작한 30년대 후반의 초기 작품은 사실적 구성회화로서 앵그르의 회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볼륨과 콘트라스가 뚜렸하다.  

이 시기의 작품의 대부분을 작가가 스스로 파괴시킨 탓에 그 흔적을 뚜렷이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간과해도 무관하다 할 수 있다.  
40년대 중반까지 입체주의에 바탕을 두고 마티스적 색채를 빌어쓴 인물회화가 주를 이루는데, 
피카소의 20년대 작품에서 보이는 생물형태학적인 무정형으로 인체의 윤곽을 설정하고

그 위에 마티스적인 색채를 반복 칠함으로 조금씩 3차원의 공간을 2차원화 시켜가는 용해작업의 시작이다.

드 쿠닝의 작품의 핵을 이루는 주제는 여인과 풍경으로, 특히 <여인> 시리즈는 작품의 진보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이 시리즈는 드 쿠닝이 미술평론가였던 엘렌느 프라이드와 결혼한 1940년에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여인> 시리즈 작품은 <앉아있는 여인>(1940)이었다.

이어 <여인>(1944), <핑크 레이디>(1944), <여인Ⅶ>등을 거쳐 2년 동안의 작업으로 완성됨 
<풍경으로서의 여인>(1954∼55)에 이르기까지, 여인을 둘러싼 그의 작품은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변화과정을 면밀히 보여 주고 있다.   

 

<여인> 시리즈

   드 쿠닝의 여인은 뒤틀린 몸매의 흉란 얼굴을 한 드라마틱한 인물이며 복잡한 구성 속에 서서히 흔적을 감추어 버리는 미움받는 여인이다.  
이 여인을 지우고 또 지우면서 여인의 몸이 얼굴로 확대되고 그 입술이 풍경으로 되면서, 추상으로 변신되어 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드 쿠닝의 작품은 그 하나하나가 다음에 이어지는 작업을 위해 거쳐가는 미완성의 작품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1950년경에 제작된 검은색 바탕의 하얀색의 드로잉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다.  
또한 1950년까지 그는 칸딘스키, 고르키, 피카소 또는 그보다 앞선 어느 누구와도 다른 추상표현주의의 개성적인 측면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양식, 새롭고 격렬한 표현양식을 예언하는 자들의 한 사람으로 등장했다.  
동시에 인물에 대한 그의 향수는 그로 하여금 유명한 '여인화 연작'을 착수하게 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힘이 넘치고 때로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성의 상징이나 풍요의 여신으로서, 그리고 에드바르트 뭉크의 관례에서 피를 빨고 있는 흡혈귀등으로서의 여인을 최면에 걸듯 환기시킨다.  
위협적인 모습에서 부터 단순한 풍자만화, 온화한 에로티시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1950년대는 <여인Ⅰ>(1952∼53)이나 <여인Ⅵ>(1953)에서 보이듯 피카소적인 인물처리가 남아 있으면서도, 반복되는 터치작업으로 여인의 얼굴을 용해시키는 추상작업을 통해 붓처리가 난폭하면서도 강한힘이 서린 자신의 회화를 찾아가는 시기이다.  

이러한 과정은 <풍경으로서의 여인>(1954∼55)과 <구성>(1955)에서 모방과 그 영향의 탈을 벗는 피카소와 고르키의 망령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드 쿠닝 작업의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어지는 50년대 후반은 드 쿠닝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을 수 있겠는데, 
빨강과 노란색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붓작업이 뛰어난 추상회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60년대에는 장미색과 분홍색을 섞어 두껍게 칠한 우스꽝스러운 여인들이 재등장함으로써 다시 구상으로 뒷걸음질 한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드 쿠닝의 작품에 대해서 평론가들의 따가운 시각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정원의 여인>(1971)에 이르러야 드 쿠닝은 여인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해방된 50년대 후반의 추상에서 보다 더 세부적으로 파고든 자신만의 작업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그의 작업은 실체를 용해하면서 드러나는 변화의 회화이며, 그 과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귀결되는 미완성의 회화라는 의미를 지닌다.  

드 쿠닝은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기까지 수십번에 걸친 덧칠과 수정작업을 고의적으로 해왔다.  
완성도에 대한 커다란 집념을 지닌 그의 작품이 그에게 언제나 미완성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작업 자체가 드 쿠닝에게 있어 하나의 인간드라마 연출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것을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드 쿠닝의 작품을 세밀하게 관찰해 보면 놀라운 것은 작품이 마치 멀리있는 이미지를 가까이 끌어들이는 '클로즈업'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초기 구상작품에서 추상으로 발전한 해체작업과 이에따라 부분을 확대해 보다 세밀히 비춰내는 작업은 그의 조형예술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드 쿠닝처럼 이 문구가 잘 적용되는 작가는 드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그 스스로가 타인에게서 비롯된 회화라고 할 정도로 모방과 모방을 거듭한 끝에 찾고자 했다.  
그 때문인지 드 쿠닝의 작품을 처음 대할때 낯설지 않고 비교적 친숙한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가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많은 만큼 그의 그림을 보면 작품 하나에서도 마치 몇가지 작품을 보듯 복합적인 면이 느껴진다.  

하지만, 드 쿠닝의 작품 뿐 만아니라 그보다 더 유명한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품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더 많이 있다.  

그러기에 드 쿠닝의 작품이 모방으로 이루어졌다고 비난할 수 도 없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비교해 자신있게 지적하고 평할 수가 없다.  

단지 그의 작품을 단순히 하나의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그 작품을 감상할 뿐 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흔히 말하듯 정말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작업, 화면을 가르는 힘찬선이 두드러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속에 담겨진 인물의 모습이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다시볼 땐 전혀 다르게 화면의 구성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남을 의식 하기보다는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뤄내고자 수많은 모방의 작업을 거듭하고 완성을 찾아 불태운 그의 집념이 그를 추상표현주의의 거장으로 이루어 놓지 않았나 생각된다.

 

프란츠 클라인(1910-1962)은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윌크스-바에서 출생하였다.

1931~1935년에 보스턴대학을 다녔고, 그 후 1936~1938년에는 런던의 Heatherley 예술학교를 다녔다.

1939년에 런던에서 돌아와 뉴욕에 정착하였으며,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도시풍경과 그가 자란 지역의 광산촌의 풍경들을 그렸다.

1943년 클라인은 콘라드 마르카-렐리의 작업실에서 윌렘 드 쿠닝을 만났고, 또한 그 후에 잭슨 폴락을 만났다. 
그의 그림에서의 추상적 스타일에는 분명히 이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또한 클라인의 일본예술에 대한 관심도 이 당시에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영향 탓일까?

194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그의 성숙한 추상적 스타일은 빠르게 마르는 백색과 흑색 에나멜의

과감한 붓질이 특징적이다.

그의 첫 단독 전시회가 1950년 뉴욕의 에간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 후 그는 추상표현주의 운동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클라인은 주로 흑백그림으로 유명하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말년까지 색채그림도 광범위하게 그렸다.
클라인은 1960년에 유럽에서 1달간을 지냈는데, 이때 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그가 사망하기 전 10년간 여러 세계 전시회에 참가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1956년과 1960년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1957년에 열린 상 파울루 비엔날레 등이다.

클라인은 1962년 5월 13일 뉴욕에서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워싱턴주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추모전이 열렸다.///지식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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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렘 드 쿠닝의‘인터체인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락과 네덜란드 태생의 추상표현주의 미국 화가 윌렘 드 쿠닝의 추상화 각 1점이 5억달러에 팔려 미술품 프라이빗세일(컬렉터를 개인적으로 만나 진행하는 판매) 가격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23일(2016년 2월),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은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시타델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켄 그리핀이 프라이빗세일을 통해 작년 가을 폴락의 ‘넘버 17A’를 2억달러, 쿠닝의 ‘인터체인지’를 3억달러에 각각 사들였다고 전했다.

그리핀이 사들인 이들 미술품 두 점은 미국 대중문화계의 ‘큰 손’인 데이빗 게펜이 소유했던 작품들이다.

 



지금까지 경매가 아닌 개인간 미술품 거래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폴 고갱이 타히티에서 활동할 때 그린 ‘언제 결혼하니’다. 이 작품은 지난해 가을 카타르 왕가가 소유한 미술관에 쿠닝의 작품과 같은 3억달러에 팔렸다.

한편 미술품 경매 최고 기록은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로 지난해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1억7,936만5,000달러에 팔렸다. /한국일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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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는 빌렘 드 쿠닝 ‘인터체인지’ 
슈퍼리치들 간 미술품 손바뀜 한눈에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가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에 낙찰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간2017년 11월),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는 뉴욕 2017 가을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Salvador mundiㆍ구세주)’가 4억5000만달러(한화 약 4935억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기존 미술품경매작품 최고가였던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1억7936만달러ㆍ약1975억원)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며, 작품의 소장자였던 러시아 부호이자 AS모나코의 구단주인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제시한 가격(1억 달러)도 네 배이상 넘겼다. 이로 인해 세계미술품 고가 랭킹도 재구성됐다. 헤럴드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그림 5선’을 정리해 봤다. 경매는 물론 개인거래를 포함, 시장에서 거래됐던 작품만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 15일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는 뉴욕 2017 가을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Salvador mundiㆍ구세주)’가 4억5000만달러(한화 약 4935억원)에 낙찰, 최고가미술품기록을 경신했다. [사진=AP연합]
 


 1위 : 레오나르도 다빈치 ‘살바도르 문디’= ‘남자 모나리자’로도 불리는 ‘살바도르 문디’는 ‘세상을 구원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구세주’인 예수의 초상화인 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던 1500년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푸른색 로브를 입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왼손에는 투명 구를 들고있는 이 작품은 목판에 유화로 그려졌다.  

작품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지난 2011년부터다. 이전까지는 다빈치의 작품이 아니라 그를 추종하는 제자가 그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불과 45파운드(6만6000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당시 작품은 예수의 얼굴과 머리부분이 심하게 덧칠해져 있었다. 2005년 미국아트딜러협회는 이 작품이 다빈치의 것이라는 확신으로 1만달러(약 1100만원)에 사들였고, 이후 6년간의 복원과정을 거쳐 2011년 세상에 내놓는다. 복원을 거친 작품은 다빈치 특유의 스푸마토 기법이 명확했고, 다수의 평론가들로부터 진품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2011년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다빈치 작품으로 처음 전시됐으며, 2013년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1억2750만 달러에 구입했다.  

 2위 : 빌렘 드 쿠닝 ‘인터체인지’ = 역대 두번째로 비싼 작품은 네델란드 출신 작가인 빌렘 드 쿠닝(1904~1997)의 1955년작 ‘인터체인지(Interchange)’다. 지난 2015년 9월 헤지펀드사 시타델의 창립자인 켄 그리핀이 데이비드 게펜 재단으로부터 3억달러(약 3300억원)에 구매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그리핀은 잭슨폴록의 1949년 작품도 구매하는 조건으로 5억 달러(5500억원)를 지불해 크게 이슈가 됐다. 인터체인지는 드 쿠닝의 추상표현주의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지난 2015년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 전시되기도 했다.  

3위 : 폴 세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3위는 폴 세잔(1839~1906)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11년 4월 카타르 왕가의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가 2억5000만 달러(약 2750억원)에 그리스 선박왕 조지 엠비리코스로부터 구매했다. 1892년~1983년에 제작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여러 명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그린 연작 다섯 작품 중 하나로, 완숙기인 50대에 그린 작품이다.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가 이 그림을 구매하면서 세계 미술계 큰 손으로 떠올랐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공주가 연간 미술품구매에 쓰는 비용은 약 10억달러(1조1000억원)에 달한다. 
 

 

4위 : 폴 고갱 ‘언제 결혼 하니’ = 4위 역시 카타르 왕가가 소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는 지난 2014년 9월 폴 고갱(1848~1903)의 ‘언제 결혼하니’를 스위스 개인 소장자인 루돌프 슈테린으로부터 3억달러(3300억원)에 구매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예술전문매체인 아트넷뉴스는 지난 7월 영국 슈테린이 카타르 왕가에 실제 넘긴 가격은 2억1000만달러(2300억원)이라고 보도했다. 슈테린을 대리한 유명 미술 중개인 시몽 드 퓌리와 카타르 왕가 미술품 구매대리인 기 베넷이 3년여의 협상끝에 도달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실제 거래가가 2억1000달러라고 할지라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작품 4위에는 변함이 없다.  

5위 : 마크 로스코 ‘넘버6(바이올렛, 그린 앤 레드)’= 5위는 추상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다. 2014년 8월 프랑스 와인제조업체를 이끄는 크리스티앙 무엑스가 마크 로스코의 1951년작 ‘넘버6(바이올렛, 그린 앤 레드)’ 프라이빗 딜러인 이브 부비에를 통해 1억8600만달러(2000억원)에 판매했다. 작품 구매자는 미술품사상 최고가로 낙찰된 ‘살바도르 문디’의 전 소유주인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다. 최고가 작품을 놓고 벌어지는 슈퍼리치들 사이 손바뀜이 흥미롭다. 


================ <상식과 지식>...

일본 사이타마 현의 인터체인지
일본 사이타마 현의 인터체인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인터체인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인터체인지
인터체인지 종류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는 이리저리 복잡하게 돌도록 만들어져 있다. 간단한 평면 대신 이렇게 입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고속도로상의 신호대기는 교통흐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위험한데, 입체적으로 설계하면 신호대기 없이도 자동차가 뒤얽히지 않고 좌우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차하는 2개의 고속도로에서 차들은 동서남북, 4개 방향으로 달리므로 모두 좌회전이 가능해야 하는데, 고속도로 2개가 직각으로 교차한다면 좌회전을 하기 위해서 신호대기를 거쳐 90도 왼쪽으로 꺾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90도 우회전을 세 번 하면 신호대기 없이도 90도 좌회전을 한 번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반대편 차량의 흐름 위 또는 아래를 지나 90도 왼쪽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인터체인지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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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한 점보다 못한 韓미술시장...단색화 열풍 사그라들며 위축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사상 최고가격인 4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낙찰됐다. 신원을 드러내지 않은 매입자는 전화 응찰로 그림을 낙찰받았다. /AFP=연합뉴스

 

 

그림 한 점의 경매 시작가가 1억 달러. 약 1,100억원이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예수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구세주)’를 손에 넣기 위해 5명의 응찰자가 45번이나 경합했다. 3억5,000만 달러에 이르자 전화 응찰자가 단숨에 5,000만 달러를 높여 “4억 달러”를 불렀다. 꼭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결국 세상에 16점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다빈치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한 이 희귀작은 그의 소유가 됐다. 다빈치가 말년에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위해 그린 이 그림은 17세기 영국 왕 찰스 1세, 18세기에는 노르망디공에게로 옮겨갔고 덧칠과 훼손으로 인해 1958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는 작자미상의 작품으로 단돈 60달로도 안되는 값에 팔렸다. 이후 주목받지 못하던 이 그림에 의문을 품은 그림 딜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2005년 약 1,000만원에 낙찰받아 연구 및 복원작업을 진행했고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2011년에는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공개전시를 했고 상당수 르네상스 미술사 전문가들이 ‘진품’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이후 러시아의 컬렉터이자 축구팀 AS모나코 구단주인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2013년 1억2,750만달러에 이 그림을 구입했고 이번에 시작가 1억달러에 다시 내놓았다. 

수수료를 포함한 이 작품의 낙찰가는 4억5,000만 달러로 한화 약 5,000억원에 달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발표하는 한국 미술시장 전체 규모인 약 4,000억원 보다도 더 큰 액수다. 

◇글로벌 아트마켓과 달리 흔들리는 한국 미술시장=다빈치의 ‘구세주’는 미술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다. 지금까지 경매에서 최고가로 거래된 작품은 지난 2015년 약 1억7,940만달러(약1,980억원)에 낙찰된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었다. 비공개 시장인 개인거래로 팔린 빌렘 드쿠닝의 ‘인터체인지’도 3억 달러였다.  

세기의 거래가 이뤄진 글로벌 아트마켓은 지금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주 빈센트 반고흐의 ‘들판의 농부’가 906억원에 낙찰됐고 앤디 워홀의 ‘60개의 최후의 만찬’은 670억원, 싸이 톰블리의 ‘무제’는 510억원에 팔렸다. 13~17일 단 닷새간 크리스티의 뉴욕 경매에서만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까지 1조5,600억원 어치 이상이 팔렸다. 블룸버그는 11월 경매주간의 뉴욕시장 거래액이 전년 대비 45%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인상파 회화가 10년 만에 최고 낙찰총액을 기록하며 글로벌 미술시장이 호황세라고 보도했다.

반면 한국 미술시장은 2013년부터 달아오른 ‘단색화’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위축되는 모양새다. 박서보·정상화·하종현·권영우·이우환 등 ‘단색화’ 작가들의 활약으로 지난 2015년 약 1,120억원의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410억원대로 매출이 급감했다. 양대 미술경매사인 서울옥션(063170)과 케이옥션의 11월 현재 올해 낙찰 총액은 각각 622억원, 595억원 정도로 특히 서울옥션이 전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구세주' 한 점보다 못한 韓미술시장...단색화 열풍 사그라들며 위축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510억원에 낙찰된 싸이 톰블리 ‘무제’ /사진출처=크리스티 

◇내우외환…그래도 안전자산 희망적=‘단색화’ 거래가 주춤거리는 것은 일종의 안정기를 모색하는 시장 다지기로 분석된다. 미술시장은 작품 가격이 급등한 후, 형성된 가격대가 적합한지를 살피는 시장의 검증시기를 거치는 선례를 보여왔다. 낙서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미국의 추상화가 사이 톰블리의 경우 2011년 타계 이후 작품값이 폭등하다가 총 거래액 감소 등 안정기를 거치며 시장에서의 가격검증을 거쳐 다시 상승세를 탔다. 현재 그의 작품은 값이 떨어지지 않는 ‘안전자산’이 됐다.

하지만 경매 총액의 부진 등에는 국내 소비심리의 위축과 더불어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 분위기로 중국 큰손이 떠난 것과 한반도 안보위기가 악재로 작용했다. 남북관계 악화 등이 외신을 통해 자주 보도되자 외국인 컬렉터들이 불안감을 느껴 한국 미술품을 구매하는 데 더욱 신중해졌다. 한한령의 조짐이 보이자 민첩하게 홍콩경매를 전격 취소하고 국내에 집중한 케이옥션의 낙찰총액은 감소하지 않은 반면 홍콩경매를 지속한 서울옥션은 낙찰총액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서울옥션 측은 아시아 시장을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홍콩 현지에 ‘상설전시장’을 여는 등 적극적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방침이다. 서울옥션은 오는 26일 홍콩 완차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개최할 올해의 마지막 홍콩경매에 약 240억원 규모의 작품을 내놓는다. 마르크 샤갈,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탐 웨슬만 등 해외작가의 수작을 확보해 경쟁력을 더했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다음 달 국내 마지막 메이저 경매를 1회씩 남기고 있다. 

디트로이트컨설팅은 최근 내놓은 ‘미술과 금융 보고서’에서 경제불확실성의 증가가 미술품 수집에 대한 수요를 더 키울 것이라 전망했다. 2001년 ‘9·11사태’ 직후 뉴욕의 11월 경매가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것도 미술품을 안전자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술시장은 부동산이나 금융시장과 무관하게 고유한 사이클로 움직이며 특히 한국 미술시장은 아주 왜소한 시장”이라며 “단색화가 추진력을 다시 얻거나 대체작이 등장하고,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가 더해진다면 상승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글로벌 호황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조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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