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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화투" 유래?...
2017년 12월 17일 00시 09분  조회:3456  추천:0  작성자: 죽림

화투의 비광  우산  
사람은 누구일까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대한매일신보〉에 이완용이 판돈 수만 원 규모의 화투판을 벌였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심지어 이지용은 며칠 만에 수만 원을 잃었다고 했는데요. 당시 조선 국채 총액이 1,300만 원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을사오적이 화투로 날린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투는 알려진 대로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입니다. 19세기경 쓰시마 섬의 상인들이 장사차 우리나라를 왕래하면서 전했다는 설도 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뱃사람들이 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고유의 놀이는 아닙니다. 16세기경 포르투갈 상인들이 즐기던 ‘카르타’라는 카드놀이가 전신입니다. 일본인들은 카르타를 본떠 마흔여덟 점의 ‘우키요에1) ’를 그린 다음 두꺼운 종이에 찍어냈는데 이것이 ‘하나후다(花札)’의 시작입니다.

하나후다를 한자 그대로 읽으면 ‘화찰’, 즉 ‘꽃패’라는 뜻이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화투(花鬪)’, 즉 ‘꽃싸움’이 됐는데요. 공통적으로 꽃이 들어가는 이유는 그림의 주된 소재가 나무와 화초, 꽃이기 때문입니다. 정월이 소나무, 2월이 매화, 3월이 벚꽃, 4월이 흑싸리, 5월이 난초, 6월이 모란, 7월이 홍싸리, 8월이 산과 보름달, 9월이 국화, 10월이 단풍, 11월이 오동, 12월이 비(雨)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화투에 대한 소개이고 하나후다는 약간 다릅니다.

하나후다에는 광(光)이 없습니다. 그리고 11월과 12월이 바뀌었습니다. 11월이 비이고, 12월이 오동이지요. 또 8월의 산과 보름달에는 기러기에 억새가 더해지는데 화투에는 억새가 없습니다. 그 외에 그림은 비슷해도 화투에서 달리 해석하는 것은 4월의 흑싸리와 5월의 난초입니다. 하나후다에서는 각각 등나무 꽃, 창포로 본다고 하지요. 그런가 하면 늘 보면서도 잘 모르는 것이 8월과 11월을 제외한 나머지 열 달의 홍단과 초단에 보이는 붉은 띠입니다. 이것은 깃발이 아니라 일본의 ‘단책(丹冊)’입니다.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하이쿠)’를 적는 긴 종이지요. 하이쿠는 에도시대에 마쓰오 바소라는 걸출한 시인이 등장하면서부터 크게 유행했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불립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는 패가 있습니다. 오광 중 하나인 ‘비’입니다.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고 또 가장 난해한데요. 일본에서 11월을, 한국에서 12월을 상징한다면서 한여름에나 어울릴 법한 비와 버드나무가 배경인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웬 남자 한 명이 우산을 들고 버드나무 아래 서 있는데요. 한때 이 남자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차마 웃지 못할 풍문이 떠돈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수염이 나지 않은 것을 보니 나이는 많이 먹어봐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인 것 같고, 그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림새가 고관대작 같습니다. 그의 왼편에 납작 널브러져 있는 것은 개구리입니다. 하도 커서 두꺼비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개구리입니다. 그리고 널브러진 것이 아니라 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어디로 뛰어오르려고 하느냐면 청년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검은 수풀 위로입니다. 이 거대하고 검은 수풀의 정체는 수양버들입니다. 그냥 버드나무가 아니고 수양버들이라고 콕 짚을 수 있는 단서는 청년의 뒤에 있는 파란색 띠가 하천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구성에 대담한 구도, 입체감이 거의 없고, 검정색을 많이 사용하는 우키요에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일본 역사에 생소한 우리로서는 수수께끼처럼 보이지만 일본에서 유명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오노의 전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10세기경에 활약했던 일본 최고의 서도가 오노노도후(小野道風, 894~967)입니다.

우리가 서예(書藝)라고 말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고 부릅니다. 붓글씨의 특성상 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대는 순간 단번에 획을 그어야 합니다. 그럴 수 없으면 망친 글자가 돼버리지요. 붓글씨를 잘 쓸 수 있는 비결이 일본에서는 도(道)에 있다고 보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예(藝)에 있다고 보았는데, 붓글씨에 있어 도와 예 모두 중요하지만 일본이 좀 더 정신적인 면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일본인들이 서도가를 어떤 인물로 봤을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에 담긴 이야기 역시 바로 그 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번듯한 차림새는 그가 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붓글씨를 아무리 열심히 써도 발전이 없자 깊은 회의와 좌절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회의와 좌절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방황이기 마련입니다. 마침 비까지 내렸던 모양입니다.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걷다가 그에게 큰 깨우침을 준 장면을 목격합니다. 개울이 빗물로 불어나 물살이 거셌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수양버들로 필사적으로 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뛰어올랐다가 도로 떨어지고, 다시 뛰어올랐다가 또 떨어지고를 거듭했지만 개구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기어이 수양버들의 나뭇가지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노노도후는 그 길로 돌아가 붓글씨에 매진했습니다. ‘나는 저 개구리만큼 필사적으로 붓글씨에 매달려봤던가?’ 하는 자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회의와 좌절이 방황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아직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이 포기냐, 재도전이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계기가 될 수 있지요. 오노노도후는 그 반성의 계기를 개구리로부터 얻었습니다.

화투의 비광에 담긴 메시지가 이처럼 의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왜 이 그림을 11월, 혹은 12월의 상징으로 삼았느냐 하는 것인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1년을 마무리하는 시기니만큼 오노노도후처럼 스스로를 돌아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있지만 억지춘향 같습니다. 일본의 서민을 위한 풍속화로 그려진 우키요에는 그렇게까지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으니까요.

한편으로는 화투가 일본의 놀이라는 것이 ‘비’에서 확실히 드러나는 것도 같습니다. 오노노도후가 나오는 그림도 그렇지만 문짝 그림도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이라면 금세 알아차릴 그림을 우리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정작 일본 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신나게 화투를 가지고 놉니다. 참고로 비의 문짝 그림은 ‘라쇼몬(羅生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동명의 단편소설이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와는 무관하며 시체를 내보내는 쪽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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