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서 3國 공동 특별전 / 동아시아 문화서 수호와 길상의 상징 / 한국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 해학 넘쳐 / 18세기 日 병풍엔 고양이 연상 호랑이 / 中, 지배층 위세품·무기에 많이 등장
호랑이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오랜 시간 수호와 길상(吉相)을 상징했다. 한국에서는 호랑이가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상이었다.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던 일본에서도 호랑이는 설화를 통해 전해졌고, 중국에서는 용맹과 벽사, 길상을 상징했다.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호랑이는 민족의 영물에서 예술의 주체로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동아시아 미술에서 호랑이의 모습을 조명하는 특별전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 한국·일본·중국’을 26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중국 국가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특별전으로 호랑이 미술 작품 105건, 145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여는 호랑이 전시이자 한·일·중 국립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세 번째 특별전이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토의 3분의 2가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은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해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다. 한민족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단군신화는 곰과 호랑이로부터 시작한다. 전시를 기획한 박경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호랑이를 수호신이자 군자(君子)로 여기는 생각은 중국에서 전국시대와 한대 이후 시작돼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됐다”며 “한국에서는 호랑이를 신성시하거나 친구처럼 인식했는데, 친근감 때문에 해학적이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호랑이 민화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작자 미상의 18세기 ‘맹호도’(猛虎圖)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맹호도 3점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선보인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 중 가장 큰 작품도 비슷한 크기의 용 그림과 함께 공개된다. 이 그림은 한 변의 길이가 약 2.2m로, 조선시대 관청의 문이나 대청에 붙인 세화(歲畵: 새해를 축하하는 그림)로 추정된다. 박 연구사는 “맹호도를 보면 가는 붓으로 털을 한 올 한 올 그려 생동감과 기세가 느껴진다”며 “호랑이가 산에서 나오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선비의 출세를 은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던 일본에서는 호랑이가 상상이나 종교를 통해 전해졌다. 도교 미술에서는 사신과 십이지로, 불교 설화에서는 맹수로 묘사됐다. 전시에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소가 조쿠안(曾我直庵)과 18세기 화가인 가노 미치노부(狩野典信)의 ‘용호도’(龍虎圖) 병풍, 마루야마 오쿄(圓山應擧)가 그린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호랑이 그림 등이 출품됐다. 제니야 마사미(錢谷眞美) 도쿄국립박물관장은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어 상상하거나 한국, 중국의 호랑이 회화를 참고해 그림을 그렸다”며 “기본적으로 일본의 호랑이 그림은 귀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청나라 말기 서예가 옹동화의 ‘호’(虎).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중국에서는 상대(기원전 1600∼1046) 청동기에 호랑이 무늬가 등장할 만큼 호랑이 숭배 문화가 일찍부터 형성됐다. 전국시대(기원전 475∼221)와 한대(기원전 220∼206) 이래 음양오행설과 천문학에 기초하여 호랑이가 포함된 사신과 십이지가 성립됐다. 박 연구사는 “중국 미술에서 호랑이는 군자와 덕치를 상징해 지배층의 위세품과 무기의 모티프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3000년 전 제작된 호랑이 장식 꺾창, 청나라 관료 옹동화가 쓴 웅장한 필치의 글씨, 자기로 만든 호랑이 모양 베개를 볼 수 있다. 베개에는 ‘대낮에는 경전을 싣고 오며, 밤 내내 호랑이 허리를 베고 자네. 그 꼬리를 밟을 자 없고 누가 감히 그 수염을 건드리겠는가’라는 시구가 적혀 있다.
일본 에도시대의 ‘유마용호도’(維摩龍虎圖).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는 5부로 구성된다. 1부부터 3부까지는 한국, 일본, 중국의 호랑이 미술을 소개한다. 4부는 동아시아 3국의 호랑이 미술 중 걸작들로 꾸며졌고, 마지막 5부에서는 근현대 호랑이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박종우 감독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호랑이, 우리 안의 신화’가 상영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동아시아에서 호랑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품에 많이 등장했다”며 “세 나라의 문화적 공통점을 발견하고 차이점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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