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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우려낸 국물 가운데 저는 제주에서 맛본 ‘접짝뼈국’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접짝뼈”라는 돼지의 뼈(이 뼈가 어느 부위인지는 사람마다 말이 달라요)를 푹 끓인 다음 입이 쩍쩍 들러붙을 만큼 걸쭉하게 메밀가루를 풀어 먹지요. 접짝뼈국 한 그릇이면 제주의 겨울바람도 튕겨낼 것처럼 든든합니다.
그런데 뼈를 먹는 일을 불편해하는 문화도 있어요. 다음은 만화와 영화로 유명한 신 ‘토르’가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는 두 마리 염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여행합니다. 토르는 천하무적의 신인데 어째서 맹수가 아니라 염소와 함께 다닐까요? 배고플 때 잡아먹을 수 있거든요. 깨끗이 발라먹은 다음 가죽 위에 뼈를 모으고 망치를 휘두르면 염소들이 살아난대요. (어차피 다음에 다시 먹히겠지만요.)
한번은 토르가 가난한 농부의 집에 묵었어요. 얻어먹기는커녕 먹을 것을 나눠줘야 할 상황이었죠. 토르는 염소를 잡아 농부 가족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아들 티알피가 염소의 다리뼈를 분질러 골수를 빨아먹었어요. 살아난 염소가 다리를 절자, 토르는 화를 내며 티알피를 몸종으로 데려갔대요.
신화의 세계에서 뼈는 부활과 관계가 있나 봅니다. 다음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들려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예요. 인간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들소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기네 살을 내줬대요. 그 대신 우두머리 들소가 인간 소녀를 아내로 데려갔지요. 소녀의 아버지가 몰래 딸을 만나러 갔다가 소떼에게 들켜 흔적도 없이 짓밟혀 죽습니다. 우두머리 들소는 매정하게 쏘아붙였어요. “너희도 우리 가족을 이렇게 죽였지.”
서럽게 울던 소녀는 우물가에서 아버지의 등뼈 한 조각을 발견했어요. 소녀는 뼈 위에 담요를 덮고 마법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되살아났대요. 들소들은 깜짝 놀랐어요. “우리를 죽였을 때도 이렇게 해주지 않겠는가?” 이후로 동물들은 ‘자기들의 피가 대지로 돌아가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꺼이 죽임을 당했다’고 신화는 전합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 눈에는 우리처럼 뼛속까지 쪽쪽 빨아먹는 일은 지나쳐 보일 겁니다. 먹는 쪽이 먹어치우는 일에 바빠 먹히는 쪽이 되살아날 가능성까지 빼앗는 것 같으니까요. 반면 저는 기왕 목숨을 빼앗은 마당에 깨끗이 남김없이 먹어야 먹히는 쪽에 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어느 쪽 생각이 맞을까요? 애초에 맞고 틀리고가 있는 문제일까요? 다시 생각해 보니 목숨을 빼앗긴 쪽은 이리 먹히나 저리 먹히나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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