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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영화아리랑"과 각본, 주연, 감독 라(나)운규
2018년 10월 03일 22시 34분  조회:3512  추천:0  작성자: 죽림

일제 강점기 나운규의 영화아리랑

 

 

1. 서론

 

고려 패망의 한을 담은 정선아라리(정선아리랑)는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산의 노래로 불리어졌다. 강원지역에 머물던 정선아라리는 조선 말기 경복궁중수로 강원도 인부들에 의해 한양에 전파되면서 제1차 분화과정을 겪는다. 한양에서는 강원도아라리가 경기제로 바뀌면서 경기도긴아리랑과 경기도자진아리랑이 파생된다. 경기도에서 긴아리랑은 주로 전문창자에 의해 불리어질 만큼 상당한 가창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자진아리랑은 누구든지 쉽게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널리 유포되었고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심지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내에서도 불리어졌을 뿐 아니라 양반계층에게도 불리어졌을 만큼 대중성이 있었다.(2. 구한말의 구조아리랑(7. 16) 참조)

이때 민간에서는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조정의 과도한 세금과 노역에 대한 원성을 노래로 표현하였다. 반면 조정에서는 아리랑 경창대회를 여는 등 백성들의 원성을 달래기 위한 유희요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천지역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의 곡물과 자원을 수탈해 가는 것에 항거하는 노래로 불리어졌다. 지식인층에서는 농사를 장려하는 권농가(勸農歌)로 불러지기를 원했다.

이 시기에 아리랑의 음악적 실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는 1896년 미국 워싱턴 하워드대학 조선인 유학생 안종식, 양손, 이희철의 ‘한민족 최초 음원자료’와 같은 해 국내에서 육영교사 헐버트에 의해 최초로 서양오선보로 채보된 바 있다. 헐버트는 글에서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음식에 있어서 밥과 같은 중요한 노래임을 지적했다. 이후 1914년에는 한국인 이상준에 의해 아리랑이 채보되었고, 1917년 조선인 2세 러시아인으로 세계 제1차 대전에 참가하여 독일 포로가 된 김그리고리(김홍준)와 안스테판이 부른 아리랑이 녹음된 음원이 존재한다.

악보 또는 음원 자료들은 음악적으로 약간의 시김새를 달리하지만 모두 당시의 경기지방에서 유행했던 ‘경기도자진아리랑’, 즉 ‘구조아리랑’이다. 사설은 당시의 세태를 담아내거나 유희적 성격을 띠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1926년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경기도자진아리랑’은 민중의 노래로써 한양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되어 다른 지역까지 전파되었다고 보여 진다.

2. 나운규의 영화아리랑

1)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가. 감독 및 배우 나운규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나운규(羅雲奎 1902~1937)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선구자로, 호는 춘사(春史)이며 1920년 홍범도 장군의 부대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4년부터 배우로 명성을 날렸으며, 영화감독으로 1926년 항일정신을 주제로 하는 <아리랑>을 제작하였다. 영화인으로 활동한 약 15년 동안 그는 29편의 작품을 남겼고, 26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직접 각본·감독·주연을 맡은 영화를 15편이나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아리랑>을 비롯하여 <풍운아> <금붕어> <들쥐> <벙어리 삼룡>등이 있다.

 

나. 영화 <아리랑>의 줄거리

영화 <아리랑>은 일제 침략에 빼앗긴 조선 민중의 쌓인 울분과 일제에 항거하는 항일정신이 주된 내용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와 함께 제1편이 시작되면 ‘개와 고양이’라는 자막에 이어 변사의 해설이 시작된다.

“…평화를 노래하고 있던 백성들이 오랜 세월에 쌓이고 쌓인 슬픔의 시를 읊으려고 합니다. …서울에서 철학공부를 하다가 3·1운동의 충격으로 미쳐버렸다는 김영진이라는 청년은…” 영진에게는 영희(신일선 분)라는 여동생이 있으며, 그는 광인(狂人) 특유의 사랑으로 영희를 아낀다.

요양 차 고향에 내려와 있는 영진에게 어느 날 대학 동창생 윤현구(남궁운 분)가 서울에서 찾아온다. 그러나 영진은 친구인 현구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영희가 오빠를 대신하여 그를 맞이한다. 영진의 불행을 걱정하는 두 남녀 사이에 어느덧 순수한 애정이 싹튼다.

마을에서 풍년의 농악제가 열린 날 악덕지주 천상민의 머슴이며 왜경의 앞잡이기도 한 오기호가 마을을 기웃거린다. 때마침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있는 영희를 보고 그녀를 범하려 든다. 이때 현구가 돌아와 기호와 격투를 벌이게 된다. 영진도 이 자리에 있었지만 정신이상자인 그의 눈에는 두 남자의 격투가 마치 재미있는 장난처럼 보여 히죽히죽 웃기만 한다.

그러던 영진이 환상을 본다. 사막에 쓰러진 한 쌍의 연인이 지나가는 대상(隊商)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상인은 물 한 모금 대신 여자를 끌어안는다. 그 순간 영진이 낫을 번쩍 들어 후려친다. 그 순간 대상은 사라지고 영진의 낫에 찔려 쓰러진 것은 기호였다. 이 때 영진은 기호가 흘린 피를 바라보다 충격을 받으며 정신을 되찾는다.

이 자리에 영진의 아버지, 교장선생님, 천가, 일본순경,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느새 영진의 손에는 포승이 묶여진다. 안타까움에 오열하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영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이 몸이 삼천리강산에 태어났기에 미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지금 이곳을 떠나는, 떠나려는 이 영진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갱생의 길을 가는 것이오니 여러분 눈물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러한 변사의 해설과 함께 영진은 일본 순경에 끌려가고, 주제가 <아리랑>이 남아 흐른다.

 

다. 영화 <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의 의미

작품 줄거리에서 보듯이 주인공 영진은 3·1운동 때 잡혀서 일제의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된 민족청년이다. 그리고 그가 미워하고 죽이게 되는 기호는 일제에 아부하는 반민족적인 인물이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면 올바로 살 수 없었던 일제시대, 그리고 정신이상자이기 때문에 살인행위가 가능하였던 작품의 방법론이 매우 돋보인다.

영화의 촬영도 당시로서는 드물게 우리 농촌의 생생한 현장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하여 한국 리얼리즘영화의 시작을 이루었다. 또한, 작품 속에서 기호를 살해하게 되는 대상의 환상장면의 설정과 처리는 뛰어난 기법으로 크게 찬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감동은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항일민족정신으로 높이고, 그것을 전통 민요인 ‘아리랑’과 연결, 승화시킨 점이었다.

비록 영화이기는 하지만 영진은 지성인이면서 정신이상자였기 때문에 일본 순경의 뺨을 치고 때려눕히는 쾌사를 감행할 수 있었고 일인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악질 지주의 수족 오가에게 낫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라스트 신에서 영진이 일경에 의해 오랏줄에 묶인 채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서 불러대는 주제가 ‘아리랑’에 모든 관객은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감독 나운규는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일제가 경복궁 내에 조선 총독부 건물 낙성식을 거행하던 1926년 10월 1일, 단성사(團成社, 1907년 서울 종로3가에 세워진 한국 최초 상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개봉하였다. 당시 이 영화의 전단지에 “문전옥답은 어디가고 동냥의 쪽박은 웬 말인가”라는 문구 때문에 일경에게 전단지 1만장이 압수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오후 7시에 한 차례 상연하여 닷새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곧바로 지방에서 관객을 끌어들여 장장 5년간에 걸쳐 당대 최고의 흥행작으로 공연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리하여 민족의 가슴에 불을 지핀 ‘아리랑’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이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은 암담한 시대를 사는 온 겨레의 애국가요, 겨레의 가슴마다 민족혼을 불어넣는 노래로 전하여지게 되었다.

 

라. ‘아리랑’의 제작과정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을 만든 배경 중에는 영화 감독술을 연구하고 있던 이경손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계에 투신하기 전후하여 이경손은 많은 민요와 동요를 발표한 바 있었는데 ‘아리랑’이 나오게 된 것도 그의 민요 노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

또 하나의 배경에는 나운규가 지은 것이다. 회령이 고향인 나운규는 어릴 때 청진에서 회령까지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남쪽에서 온 노동자들이 철길을 닦으면서 ‘아리랑…’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후 서울에 내려와 영화 <아리랑>을 제작할 때 예전에 들었던 멜로디를 생각하여 가사를 짓고 곡보는 단성사 음악대에 부탁해서 만들었다고 하였다. 당시 단성사 음악대에 김영환(金永煥, 1898~1936)이 ‘아리랑’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한편 이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유행되면서 초기에는 ‘유행가아리랑’ 또는 ‘영화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전파되었으며 나중에는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구별하기 위해 ‘본조아리랑’이라고 하였다. 이 아리랑이 파생된 이전의 경기도자진아리랑을 ‘구조아리랑’이라고 하였고 이 아리랑보다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이 새로운 아리랑이므로 ‘신아리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역 명을 넣어 ‘경기아리랑’이라고도 하고 오늘날 ‘아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 이 ‘아리랑’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기도

자진아리랑

(구조아리랑)

 

 

영화아리랑 (신아리랑)

 

 

 

경기자진아리랑과 영화아리랑의 전렴구 선율비교

 

 

 

 

 

 

3. 지역 아리랑의 탄생

1) 진도아리랑

가. 유래

‘진도아리랑’에는 두 가지의 설화가 전해내려 온다. 하나는 진도에 세습 박수가 되는 것을 비관한 총각이 있었다. 총각은 사랑하는 처녀와 약혼한 채 진도에서 도망쳐 버린다. 총각은 경상도 대갓집에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밀애 끝에 주인에게 들키게 되고 두 사람은 쫓기는 몸이 되어 다시 진도로 도망쳐 들어오게 된다. 이미 총각과 혼약한 진도 처녀는 총각이 육지에서 다른 처녀를 데리고 오자 이를 원망하며 슬픈 노래를 지어 불렀다. 또한 육지 처녀와 부부로 살아가던 중 남편이 병들어 죽게 되자 아내가 애환이 서린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길 왜 왔던고

바다에 뜬 배는 날 실어다 놓고

환고향 시킬 줄을 널 그리 모르냐.

 

다른 하나는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이다. 설이향과 소영공자는 굴재(진도군 임회면 광전마을)를 오가며 사랑을 하였는데 어느 날 소영공자가 진도를 떠나게 되었다. 해가 바뀐 봄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소영공자가 육지 처녀와 결혼하여 진도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실의에 빠진 설이향은 신표로 만든 비수를 품고 그들이 오는 신행 길목에서 사생결단을 내려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하늘에서 만사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실행하지 못하였다. 말은 주인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집으로 가지 않고 남산에 있는 왕무덤재를 넘어 쌍계사로 들어가 울분을 달랠 길 없는 설낭자는 비수로 머리를 잘라 말 등에 실어 집으로 보내고 쌍계사의 중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나. 특징

 

‘진도아리랑’ 노래비

 

 

영화 <서편제>중에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진도아리랑’은 일제 중엽 진도 출신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39)가 ‘남도아리랑’을 기초로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아리랑의 특징은 육자배기조에 판소리의 구성진 목청이 어우러져 혼자 부를 때에는 느릿하여 신세타령처럼 애조를 띠지만, 소리판에서 여럿이 부를 때에는 빠르고 흥겨운 노래로 신명과 일체감을 갖게 한다.

 

또 다른 특징은 남도의 무악(巫樂)을 바탕으로 신명성과 즉흥성이 넘쳐난다. 소리판에서 다함께 부를 수 있는 소리의 개방성과 사설의 화자(話者)는 주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기층의 삶으로부터 스며나오는 풍자와 해학을 하나씩 소리로 풀어나간다. 이때 메기는 사설은 좌중을 돌아가며 주고받는다. 노래는 긴장을 풀게하고 즉흥성의 폭을 넓혀 노래 부르기를 놀이로 충족시키는 ‘노래와 놀이판’으로 전이된다. ‘진도아리랑’을 부를 때에는 음에 따라 굵고 강하게 떠는소리와 흘러 내리 듯 꺾어내는 소리 등을 잘 표현하여야 소리의 참 멋과 흥을 낼 수 있다.

 

 

육자배기 조의 주요음계

 

떠는소리 평으로 내는 소리 꺾는소리

 

 

 

 

 

 

 

 

 

진도아리랑

 

 

 

 

2) 밀양아리랑

가. 유래

 

‘밀양아리랑’ 노래비

 

 

영남루와 아랑각

‘밀양아리랑’에는 아랑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아랑(阿娘)은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의 딸로 일찍 어머니를 여위고 유모의 품에 자란 외동딸 정옥(貞玉)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 온 아랑은 자라면서 자태가 곱고 인덕이 아름다워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아랑이 16세가 되던 때 유모의 권유로 영남루에 달을 구경하고 있는데 유모는 사라지고 한 관노가 그녀에게 간곡히 사랑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조금도 흐트러진 기색 없이 관노의 무례함을 꾸짖었다.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관노는 연정이 증오로 변하여 아랑을 살해하고 시신을 대나무 숲 속에 묻어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밀양에 부임해오는 부사들마다 첫날밤에 죽어 나가고 마을에 우환이 돌았다. 그러던 중 이 지역 출신의 담대한 부사는 첫날 밤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랑에게 그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다음날 아랑을 살해한 관노와 유모를 붙잡아 처벌하고 아랑의 원혼을 달래주었다. ‘밀양아리랑’은 아랑이 억울하게 죽은 것을 슬퍼하여 이 지역 사람들이 “아랑 아랑” 하고 부른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영남루 아래 시신을 묻은 대나무 밭에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아랑각을 세워 영정을 모셔 놓았으며, 매년 4월 아랑제 때 규수를 뽑아 제향을 받들고 있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있네

아랑의 굳은 절개 죽음으로 씻었고

고결한 높은 지조 천추에 빛난다.

 

나. 특징

‘밀양아리랑’은 일제 초기에 ‘아롱타령’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은 지역적으로 동부 민요에 속하지만 가락은 동부지역의 메나리조와 경기지역의 창부 타령조가 혼합되어 나타나며 일반적인 경기민요의 선율형태와 유사하다. 첫 부분의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호소력 있는 가사와 질어내는 높은 음은 호탕한 기질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다른 아리랑에 비해 빠르고 경쾌하다. ‘밀양아리랑’에는 인정세태의 풍류유락(風流遊樂)을 바라는 밝은 풍의 사설이 많으며 곡의 성격이 씩씩하고 활달하여 일제 때 만주 일대 동포들과 광복군들에게 군가로도 사용되었다.

 

 

4. 결론

고려의 패망으로 생성된 아리랑이 ‘정선아리랑’이라면 조선의 패망과 일제에 압박을 받는 민족의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영화아리랑’이 파생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나라 잃은 슬픔과 애환을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아리랑’을 통하여 울분을 토하였다. 이 아리랑은 민족의 가슴에 깊은 곳에 각인되면서 삽시간에 전국에 전파되었다. ‘정선아리랑’과 ‘영화아리랑’은 공통적으로 나라 잃은 슬픔을 표현하였다. 개인의 한을 뛰어 넘어 민족의 한스러움을 노래하였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든지 아리랑을 곧잘 부른다. 이제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한편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이 전파되는 시점을 전후하여 지역 명을 딴 ‘○○아리랑’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전라지역에서는 ‘진도아리랑’, 영남지역에서는 ‘밀양아리랑’ 그리고 평안지역에서는 ‘해주아리랑’이 만들어지고 전파되었다. 각 지역의 아리랑은 그 지역의 음악적 특성이나 정서를 반영한 사설과 선율을 갖게 된다. 영남지역에는 ‘밀양아리랑’ 외에 각 지역에 향토아리랑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

 

< 다음 주 강의 예고 >

 

청아카데미

通  Academy

234

:

아리랑을 아시나요?

(경상도의 아리랑)

 

유대안(음악학 박사, 뮤지컬 작가)

일시:

2014. 7 30.

(수) pm 7:00 ~ 9:00

장소: 대구시립수성도서관 제1 강좌실

문의

010-3928-2866

h.p.

cafe.daum.net/tongchung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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