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9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말과 글은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
2019년 01월 11일 20시 24분  조회:3317  추천:0  작성자: 죽림

“말과 글이라는 게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인데, 사전을 만들어야죠.”(영화 《말모이》 중)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을 향한 염원은 무력투쟁으로만 발현되지 않았다. 망각에 저항하는 일,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맞서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 즉 독립운동은 민족의 혼이 담긴 말과 글을 지키려는 ‘정신적 투쟁’을 통해서도 일어났다. 《말모이》는 ‘총’ 대신 ‘말’로 엄혹한 시절을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다.   

‘말모이’란 우리의 말을 모은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편찬이 시도된 국어사전의 이름이자 우리의 말을 모으는 운동, 이 일의 중심에 조선어학회가 있었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한글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한국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가 모체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이들이 우리말을 지키려 한 이유는 명백했다. 언어 안에 국가와 민족, 사람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어학회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투옥한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이 발생한 것도 같은 연유였다. 《말모이》는 1942년 벌어진 ‘조선어학회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했다.

《말모이》는  어깨에 힘주지 않고 담백하게, 투박할지언정 정직하게 달린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가 ‘말모이’를 위해 모인 이들의 자세와 닮았단 생각이다.

《말모이》는 ‘말’을 다루는 영화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인 김판수(유해진)는 까막눈이다. 그는 글을 쓸 줄 모른다. 읽을 줄도 모른다. 조국 독립의 원대한 꿈을 가진 인물도,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자식들이 조금 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길 바라는 마음을 지닌 보통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런 인물을 중심으로 끌어올린 영화의 선택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것이 《말모이》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조선어학회 사건 배경으로 스토리 전개 

이 영화가 다루는 큰 사건은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이지만, 진짜 감동은 “돈을 모으지, 왜 말을 모으는지 모르겠다”던 판수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 편찬의 의의를 알아가는 순간들에서 나온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한글을 하나둘 터득한 판수가 거리의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며 눈물 쏟게 됐을 때 새삼 언어가 지닌 힘을 돌아보게 된다. 판수가 개인적인 안위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위기에 놓인 학회 사람들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 힘을 얻는다. 양심에 따라 움직인 그의 용기는 결국 역사를 바꾼다.  

판수는 여러모로 뜻하지 않은 계기로 역사적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 《택시운전사》의 만섭(송강호)을 연상시킨다. 먹고사는 데 바빴던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은 광주라는 공간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대사의 비극을 마주하고 이를 통해 성장했다. 판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두 인물의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말모이》는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집필한 엄유나 감독의 작품이니 말이다.  

영화가 역사를 그려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역사에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해 시대를 돌아볼 수도 있고, 비범한 능력을 지닌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도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 공감을 줄 수도 있다. 이 중 마지막 방법을 사용한 《택시운전사》와 《말모이》는 말한다. 역사란, 보통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도 전진할 수 있음을. 

한국 최초의 사전이 편찬될 수 있었던 배경에, 전국 각지에서 우리말과 글을 모아 보내준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 역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역사를 바꾸는 건 뛰어난 한 명의 열 걸음이 아닌, 보통 사람의 한 걸음이 모여 나온다”는 정환의 대사는 《말모이》를 정확히 관통하는 말이다. 

‘착한 영화’라는 뜻이 딱히 있는 게 아니지만, 《말모이》는 그 의미가 얼추 이런 모양새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깨에 힘주지 않고 담백하게, 투박할지언정 정직하게 달린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가 ‘말모이’를 위해 모인 이들의 자세와 닮았단 생각이다.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지점이다. 


전반적으로 밋밋, 아쉬움 남아

그러나 이것이 《말모이》의 약점이기도 하다. 캐릭터들 변화가 너무 쉽게 감지되고, 인물들 갈등과 화해가 전형적인 설정 안에서 일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밋밋한 인상을 준다. 가족애와 웃음, 우정을 너무 안전하게 배합한 탓에 소재가 지닌 장점 그 이상을 터뜨려 보이지도 못한다.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 창작자들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장르적으로 작품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붙들어 맨 느낌이 든다. 그동안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의병이나 독립군을 다룬 영화는 많았으나, 《말모이》처럼 언어, 우리말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사례는 드물었다. 새로운 시도가 주는 기대감을 생각했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재를 돌파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197 [동네방네] - 35년만에 영화관 문 활짝... 2018-04-22 0 4818
219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수달 보호협조,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2 0 3242
219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황새의 방사,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2 0 3598
219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생태조사연구,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2 0 3175
219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반달곰관리,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2 0 3052
219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노루 서식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2 0 3399
219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들아, 숲은 너희들 활무대... 2018-04-22 0 4645
2190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다... 2018-04-21 0 4448
2189 장벽 무너뜨리기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쉽게... 2018-04-21 0 3937
2188 "이 벽을 허무시오"... 2018-04-21 0 5040
2187 [그것이 알고싶다] - "베를린 장벽"?... 2018-04-21 0 5475
218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장벽을 허무는 "동심" 2018-04-21 0 3377
218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 아기야, 무럭무럭 자라거라 2018-04-20 0 3154
2184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동물교감학교"가 있었으면... 2018-04-19 0 4366
2183 [별의별] - 돼지를 타고 다니다... 2018-04-19 0 4318
218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 통증,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19 0 4962
218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멸종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19 0 4895
2180 [그것이 알고싶다] -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고릴라... 2018-04-19 0 4897
217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사자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19 0 5408
2178 [그것이 알고싶다] - 뻐꾸기는 "뻐꾸기"가 아니다... 2018-04-18 0 4877
2177 [지명유래] - 로과(盧菓), 죽림(竹林) 2018-04-17 0 3466
2176 [고향소식] - "죽림이여, 너는 나의 마음속에" 2018-04-17 0 5679
2175 [그때와 추억] - 동년이 그립다... 2018-04-17 0 4607
2174 언어는 인권이며 "한글 병신체"는 도구 장치, 모독 폭거이다... 2018-04-17 0 3431
2173 [쉼터] - 1만개의 금속실과 "천수천안" 법랑화 2018-04-16 0 5105
2172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축제다운 대표 축제"가 있어야... 2018-04-16 0 5458
2171 [그것이 알고싶다] - 한자 상형문자 알아보기... 2018-04-16 0 3611
217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사랑스러운 동물들... 2018-04-16 0 3396
2169 [이런저런] - 간이 큰 할매... 2018-04-16 0 3008
2168 "믿거나 말거나"의 미국 화가 - 로버트 리플리 2018-04-15 0 5206
2167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두만강떼목축제"가 있었으면... 2018-04-15 0 5542
2166 [동네방네] - 문화 + 관광 2018-04-15 0 5307
216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경찰견과 녀경찰 2018-04-15 0 4873
216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커피찌꺼기도 보배... 2018-04-15 0 3365
2163 [그것이 알고싶다] - 제2의 인생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2018-04-14 0 3530
2162 [동네방네] - 심양 "윤동주문화원" 선다... 2018-04-14 0 3288
2161 [별의별] - "제비뽑기"와 징병제도 2018-04-12 0 5357
2160 [그것이 알고싶다] - "장백산석경(石磬)"?... 2018-04-11 0 3544
215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고래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11 0 5170
2158 [그것이 알고싶다] - 문화와 력사를 배우는 "국기"... 2018-04-11 0 5393
‹처음  이전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