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의사 출신 조니 김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달·화성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임무를 부여받게 될 새 우주비행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 NASA]
한국계 최초로 NASA 우주비행사 된 조니 김
“한국계 이민 2세로 정체성 혼란을 겪던 어린 시절 덕분에 우주비행사를 꿈꾸게 됐습니다. 우주는 종교·피부색·출신 배경을 따지지 않는 인류 모두의 것 아닌가요. 가진 것 없이 태어나도 다음 세대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인 최초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로 선정된 조니 김(Jonny Kim·35)은 1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같은 소감을 전했다. 지난 2년간 NASA 기초훈련을 마치고 유인(有人) 달 탐사 임무 ‘아르테미스’를 수행할 최종 13인에 이름을 올린 조니 김은 인류 최초로 화성을 밟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 교포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니 김은 두뇌와 체력을 겸비한 ‘우주 최강’ 스펙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 미 해군 네이비실 요원으로, 이라크 등에서 100여 차례 전투를 치렀다. 당시 미군에게 수여되는 훈장 중 셋째로 높은 은성 무공훈장과 동성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후 하버드대 의대에 진학,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로 근무했다.
미 해군 특수부대 출신에 하버드대 졸업한 의사
하버드 출신 의사로 충분히 존경받는 삶을 누릴 수 있던 그가 우주비행사가 됐다는 소식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 소재 존슨우주센터에서 열린 NASA 훈련 졸업식에 참석한 테드 크루즈(공화당) 텍사스 상원 의원은 조니를 “말도 안 되는(ridiculous) 경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하며 “당신은 우주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살릴 수도 있다”고 농담까지 건네며 추켜세웠다.
날 때부터 신동일 것 같은 조니 김은 사실 이민 2세로 암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화 통화로는 다 전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 많았다”며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굉장히 변변치 않은(humble)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 꿈도, 자신감도 없던 내가 인류를 위해 희생과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시작은 미약해도 그 끝은 창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서 동료 죽음 목격, 의사의 길 밟아
고등학교에서 ‘말수가 적은 소심한 아이’였던 조니 김은 졸업 직후인 2002년 네이비실에 지원했다. 그는 “해군 입대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이었다”며 “겁이 많고 조용했던 한 소년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조니 김은 이라크 파병 도중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며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2006년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동료가 얼굴에 총상을 입었는데, 피가 기도를 막지 않게 부축할 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며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력감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 속에서 연민이라는 감정을 뼛속 깊이 사무치게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해군 장교와 내과 의사는 언뜻 관계가 없는 직업군으로 보이지만, 조니 김은 두 가지 경험이 우주비행사가 되는데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네이비실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는 회복력(resilience) 등 하드 스킬을 배웠고, 의사로서는 환자와 소통하고 연민을 가지는 소프트 스킬을 키웠다”며 “모두 우주 탐사에 나서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했다.
"한국 우주 탐사, 이소연 이후 10년간 정체 안타까워"
그는 한국의 정체된 우주탐사와 산업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니 김은 한국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유인 탐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은 2008년 첫 번째 우주인인 이소연씨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낸 이후로 유인 우주 탐사를 멈추었다고 들었다”며 “세계 각국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지만, 인류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우주에 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제 우주라는 대상은 탐사를 넘어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니 김은 두 살 때 이후로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늘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계) 아내와 늘 서울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일이 바쁘고 아이가 셋이나 되다 보니 좀처럼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며 “한국에 여전히 친척들이 살고 있어 언젠가 꼭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되돌아 올 수 없는 화성탐사라도 당연히 나설 것"
세 명의 자녀와 아내를 두고 최악의 경우 되돌아올 수 없는 화성 유인 탐사에 정말 나설 수 있겠냐고 묻자 조니 김은 “물론이다”며 힘차게 답했다. 그는 “올해 9살이 된 첫째 아이가 NASA 졸업식에서 울면서 걱정을 하더라”며 “아이의 감정은 당연하고 인간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나”고 말했다.
조니 김은 인류가 화성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그는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0년 내로 달에 간다’고 말했을 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현재 화성 여행도 영화 속 상상으로만 여겨지지만, NASA에서 근무하는 모든 이들의 염원으로 가능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인은 울타리 옆에 등장한 바다거북"
조니 김이 가장 존경하는 우주비행사는 존 글렌과 닐 암스트롱이다. 그는 “국가에 봉사한 것뿐 아니라 겸손한 그들의 태도를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NASA 훈련 졸업식에서 조니 김의 겸손한 발언은 화제가 됐다. 그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우주비행사는 거북이라고 별명을 붙인 일화를 소개했다. 조니 김은 “울타리 옆에 바다거북 한 마리가 있다면, 혼자서 거기까지 갔을 리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이 무대에 서 있는 13명 모두 NASA의 직원, 국민의 응원으로 덕분에 성장하고 움직이는 거북이”라고 말해 관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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