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범, 불선과 사악을 증오하는 산신령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어린 시절 우리가 어른들에게서 늘 듣던 옛말의 첫마디이다. 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아주 까마득하게 흘러간 옛날, 즉 고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원전 2333년,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 전에 범 한마리가 곰 한마리와 한굴에서 살면서 사람되기를 소원했다는 이야기가 단군신화에 있다. 그가 비록 참을성이 부족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했지만 사람이 되려고 마음 먹었댔다는 전설로 보아 조상들의 관념세계에서 범은 사나운 야수이면서도 인간과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동물이였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한굴에 살면서 사람되기를 소원했던 범은 곰과 한가족이였다. 한가족이였기에 당연히 가족식구를 수호하기 마련으로 범은 웅녀가 낳은 단군 왕검(王俭)과 왕씨의 수호신토템이였다.
단군 왕검의 후손이며 고려태조의 5대 선조인 호경(虎景)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여럿이 함께 동굴에서 쉬는데 범이 와서 “따웅-”하고 울부짖으며 굴 앞에 버티고 서서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사람이 범의 밥이 되여야 여럿이 무사하리라 여긴 일행은 일제히 머리에 썼던 관(冠)을 벗어 범의 앞으로 내던지되 범이 무는 관의 임자가 여럿을 위해 죽기로 했다. 관들을 던지자 범이 호경의 관을 제꺽 물었다. 호경이 죽음을 각오하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덧 범은 사라지고 뒤에서 동굴이 무너지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결국 밖으로 나온 호경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범이 단군 왕검과 왕씨의 수호신토템이였기에 호경의 관을 무는 방식으로 왕씨의 후손을 보호한 것이였다.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아기 적에 부모들이 일밭에 나가며 나무 밑에 뉘여놓았는데 범이 와서 젖을 먹여주었다는 전설도 있다. 범은 리씨(李氏)의 토템이였다. 리씨 성은 구려(九黎)민족의 하나의 족칭(族)인데 고요(고陶-소호의 후손으로 순임금 때의 법관)가 리씨 성의 시조(始祖)이며 려(黎)란 바로 범을 가리킨다. 리씨의 토템은 호(虎), 목(木), 자(子)로 구성되였는데 호(虎)는 고요의 시조 소호(少昊)씨를 대표하고 목(木)은 고요 현조족(玄鸟族)의 토템을 대표하고 자(子)는 제비알을 가리키는데 후손을 상징한다. 견훤은 원래 리씨의 후손이였으므로 범토템의 보호를 받은 것이다.
우리 민족의 범 숭배는 산악(山岳)숭배와 밀접하게 련관되여 있다. 《산해경》(山海经)에 묘사되여 있다싶이 고대 동이족(东夷族)의 생존환경은 흔히 산악지대와 산림이였다. 그처럼 첩첩 뭇산과 거치른 원시림은 고대인류의 생존환경이였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였다. 그 동물의 왕국에서 범은 뭇짐승들의 왕이였다. 범처럼 사납고 완강한 짐승이 아니고서는 험악한 생존환경에서 끄떡없이 살아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계에서 벗어나기 전의 고대인류와 우리 조상들의 시각에 범은 상설같은 위엄과 굴함없는 투지와 완강한 생명력의 신으로 우러러 보였고 또한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범그림이나 단오에 궁중에서 나누어주었다는 쑥으로 만든 범에서도 이 같은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를 인류의 고향과 서식처인 산악과 더불어 숭배하게 되였고 산의 신령으로 모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영전시인은 우리 민족의 범 관련 신화와 범숭배에 근거하여 토템시 ‘범’을 창작해냈다. 시인은 토템으로서의 범의 선명한 형상과 고귀한 품질을 표현하고 있다.
“불의가 얄미워/불선이 얄미워/혼탁과 우매 꼴 사나와/따웅 포효”하는 범은 고대인의 의협심과 정의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설사 폭풍우에 뼈와 살 썩는다 하더라도/뼈는 굽히지 않고/위풍은 삭지 않고/예기는 죽지 않는다//”시인은 범의 불요불굴의 의력과 불의와 사악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모습을 통하여 력사적 풍운을 헤쳐온 정의롭고 용감한 민족의 형상을 표현하였다.
범의 토템이미지는 산을 지키는 산의 신령으로서 불굴의 투지와 완강한 의력으로 고향을 지켜온 우리 겨레 영웅들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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