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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2021년 01월 18일 23시 37분  조회:2404  추천:0  작성자: 죽림
 

투르게네프
= 산문시=

 
 
 
 

참새

나는 사냥에서 돌아와 정원의 가로수 길을 걷고 있

었다. 개가 내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개는 걸음을 늦추더니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

했다. 마치 눈앞에 날짐승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 듯이.

가로수를 따라 눈을 돌리니 조그만 참새 새끼 한 마

리가 눈에 띄었다. 부리 언저리가 아직도 노랗고 머리

에는 솜털이 자라 있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참새 새끼

는(자작나무 가로수는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갓 나기 시작한 날개를 힘없이 벌린 채 꼼짝달싹 않고

앉아 있었다.

개는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자 별안간 가까운 나무

에서 가슴 털이 검은 참새 한 마리가 개의 바로 콧등

앞에 돌멩이처럼 날아내렸다. 그러고는 온몸의 털을 험

악하게 곤두세우고 필사적이고 애처러운 목소리로 울

어대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개의 입을 향해 두어 번 가량 깡충깡충 뛰어갔다.

어미새는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한 거다. 자기 몸

을 희생하며 새끼를 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뚱이는 온통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다 못해 쉬어버렸다. 드디어 어미새는 실

신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참새에겐 개가 얼마나 거대한 괴물로 보였을까! 그

런데도 그는 그 높은 안전한 나뭇가지 위에 그대로 앉

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의지보다도 강한

어떤 힘이 그를 아래로 내몬 것이다.

나의 트레조르는 걸음을 멈추더니 비실비실 뒷걸음

질을 쳤다······. 개도 그 힘을 인정한 모양이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개를 황급히 불렀다-그리고

존경 어린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조그만 영

웅적인 새 앞에 그 사랑의 충동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

보다도 더 강하다고, 바로 그 사랑에 의해서만 삶은 유

지되고 영위되어 나가는 것이다.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참새」


작은 어미 새는 둥지에서 떨어진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 자신보다도 몇 십 배는 더 크고 거대한 개를 향해 돌진한다. 두려운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그래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모한 줄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힘이다. 우리도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을 새우기도 하고,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그 누구보다 용감한 내가 되게 한다. 이렇게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자! 용기 있게 사랑하자!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 그건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대상이 연인이든, 운동이든, 영화든,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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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두 친구가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한길에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애처로운 신음소리, 난폭한 욕설, 구경꾼의 웃음소리

가 터져 나왔다.

「누가 매를 맞고 있군」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창문을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죄인인가 아니면 살인잔가?」 또 한 친구가 물었다.

「아니, 매 맞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무법적인 사형을 허용해선 안 돼. 자, 도와주러 나가세」

「그러나 살인자를 때리고 있는 건 아니야」

「살인자가 아니라고? 그럼 도둑인가? 어쨌든 마찬가지야, 가서 말리도록 해야지」

「아니, 도둑도 아냐」

「도둑도 아니라고? 그럼 회계산가? 철도 종업원? 군납업자? 러시아의 문예 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봉사가 나으리? ······ 어쨌든 가서 도와주도록 하세! 」

「아니 그렇잖아······ 신문기자가 맞고 있군그래」

「신문기자? 그럼 우선 차나 마시고 보지」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신문기자」


누군가 맞고 있다. 두 사내는 살인자, 도둑 같은 악덕한 사람에게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싸움을 말리려 한다. 하지만 맞고 있는 사람이 신문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차 한 잔이 식어가는 데에 눈길을 돌린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인, 살인자, 도둑 악덕한 자들보다 더 '악독한' 무리였던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이러한 무리가 단지 신문기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신문기자를 넘어서 그냥 기자로 범위가 확장된다. 그들이 책임 없이 뱉어내는 기사들은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무궁무진하게 생산되고 있고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그들의 책임 없는 권리 때문에 그들의 세치 혀에 핥음을 당한 당사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고 사회는 거짓을 판치게 된다. 기자, 그들은 언론의 자유라는 깨지지 않는 방패로 그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들의 책임 없는 권리 덕분에 그들은 '기레기'라는 새로운 작위를 받게 됐고 민중들은 더 이상 그들을 믿지 않는다. 시에서 나타난 두 사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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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대화

검은인부: 왜 우리한테로 기어드는 거지? 무슨 볼 일이 있어? 자넨 우리 편이 아니야……. 저리 나가줘!

흰 손의 사나이:나도 자네 편일세, 형제들!

검은인부: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편이라고! 웃기지 마! 내 손을 좀 보게. 자, 얼마나 더러우냐 말야. 게다가 거름과 타르 냄새까지 풍기는데─ 자네 손은 새하얗지 뭔가. 그래, 그 손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지?

흰 손의 사나이(두 손을 내밀며) 자, 냄새를 맡아보게.

검은 인부(냄새를 맡는다) 그거 참 묘하군. 쇠붙이 냄새가 나는 것 같군 그래.

흰 손의 사나이:쇠붙이 냄새가 틀림없어. 만 6년 간 쇠고랑을 차고 있었으니 말야.

검은 인부"그건 또 무엇 때문이었지?

흰 손의 사나이:자네들의 복지를 위해 애썼기 때문이지. 자네들같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자네들의 압제자를 반대하여 일어선 거야, 폭동을 일으켰단 말일세……. 그래서 감옥에 갇히게 된 거지.

검은인부:감옥에 갇혔다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폭동 같은 걸 일으킨담!.

2년 후

동일한 검은 인부(다른 인부에게) 이봐, 표트르! 2년 전 여름, 손이 새하얀 녀석이 찾아와서 우리하고 이야기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나?

제2의 인부: 기억하다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제1의 인부:그 녀석이 드디어 오늘 교수형을 받는다는 거야. 포고문이 내렸어

제2의 인부:역시 폭동을 일으킨 게로군?

제1의 인부:역시 그런가 봐.

제2의 인부: 흐음…… 그건 그렇고, 이봐, 미트랴이, 그 녀석의 목을 맬 밧줄 조각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가 없을까…… 그게 있으면 굉장한 행운이 굴러 들어온다는 거야!

제1의 인부: 그것 참 옳은 말이야. 표토르, 어떻게 손을 써보도록 하세.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지식인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고뇌. 지식인은 떨리는 지남철과 같이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어느 한 곳에 고정시켜서는 안되고 쉴 새 없이 떨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이 아직이 되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하여 머리가 아닌 발로 써 움직여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앎이 단순한 지식이 머무르지 않고 진짜 지식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한다 하더라도 민중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흰 손의 사나이가 검은 인부의 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민중들을 위해 혁명을 하고 목숨을 바쳐도 민중들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은 민중으로부터 멀어져서도 안되고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해서도 안된다. 민중들에게 대가와 인정을 받으려는 순간 그의 행위는 무지한 대중을 일깨우는 엘리트의 한낱 계몽주의에 불과하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민중들에 대한 알량한 호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민중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아도 민중은 그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 흰 손의 사나이를 살리기 위해 그의 목을 매달 줄을 없애려는 검은 인부들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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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내가 없을 때>

          Иван Тургенев —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언젠가 내가 없을 때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줌의 재로 변해 부서져 내릴 적에,

나의 당신이여나의 유일한 친구여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나보다 더 오래 살겠죠.

그렇지만 내 무덤에 오진 마시오당신한테는 거기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나를 잊지는 마오...그렇지만 일상의 일만족걱정 속에서 나를 떠올리지도 마오.

나는 당신의 삶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요편안한 삶의 흐름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외로운 순간이 혹여 찾아오거든부끄럽고 이유 없는 슬픔이 당신을 찾아오거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그럴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우리가 사랑했던 책을 한 권 빼들고서그 페이지들을 찾아요.

그 구절그 단어들기억나나요우리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달고 말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구절들...

 

그 대목을 읽어요눈을 감고서... 그리고 내게 손을 뻗어요.

그 자리에 없는 친구에게 당신의 손을 뻗어요.

 

나는 내 손으로 당신을 쥘 수는 없을 겁니다내 손은 땅 밑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놓여 있겠지요그러나 당신이 혹시 당신의 손에 가벼운 건드림을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나는 기쁩니다.

 

그리고내 모습이 당신 앞에 서겠지요그러면당신의 감은 쌍꺼풀 밑으로 눈물이 흐르겠죠.

아름다움에 취한 우리들이 언젠가 둘이서 흘렸던 그 눈물이...

당신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когда всёчто было мноюрассыплется прахом— о ты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о ты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тыкоторая наверно переживешь меня— не ходи на мою могилу… Тебе там делать нечего.

 

Не забывай меня… но и не вспоминай обо мне среди ежедневных заботудовольствий и нужд… Я не хочу мешать твоей жизнине хочу затруднять ее спокойное течение.

 

Но в часы уединениякогда найдет на тебя та застенчивая и беспричинная грустьстоль знакомая добрым сердцамвозьми одну из наших любимых книг и отыщи в ней те страницыте строките словаот которыхбывало— помнишь— у нас обоих разом выступали сладкие и безмолвные слезы.

 

Прочтизакрой глаза и протяни мне руку… Отсутствующему другу протяни руку твою.

 

Я не буду в состоянии пожать ее моей рукой — она будет лежать неподвижно под землею… но мне теперь отрадно думатьчтобыть можетты на твоей руке почувствуешь легкое прикосновение.

 

И образ мой предстанет тебе — и из-под закрытых век твоих глаз польются слезыподобные тем слезамкоторые мыумиленные Красотоюпроливали некогда с тобою вдвоемо ты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о ты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이반 투르게네프는 1874년 파리 근교의 부지발에 러시아식의 작은 저택을 하나 샀다. 평생의 유일한 연인 빨리나 비아르도가 사는 빌라 맞은 편이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 투르게네프는 발코니가 딸린 이 집의 이층 방에서 1883년 9월 3일 숨을 거두었다. 이 작은 집은 그의 유명한 여러 산문시를 탄생시킨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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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국내 최초 완역
  • 2018.11.08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의
산문시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민음사)가 번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했다.

 

자연과 여성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러시아 제일의 문장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투르게네프는 언어의 장벽을 깨고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처음으로 소개한 작가.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소설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 산문시집은 그의 말년에 창작된 것으로,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들이다.
투르게네프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리고 환상적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길게 말하지 않고도 본질을 꿰뚫는
대가의 솜씨로 이 한 권의 시집에 완성돼 있다.

“어미 새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했고,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몸뚱이는 공포로 벌벌 떨었고, 어미 새의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게 쉬어 버렸다.
어미 새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강하다.
삶은 사랑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움직인다.”― 투르게네프 ‘참새’에서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러시아 문학은 다른 어떤 외국문학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중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3대 작가 중 하나였다. 투르게네프 산문시의 쉽게 읽히는 시어와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투르게네프는 프랑스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프랑시스 잠 등의
산문시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산문시는 다시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전통의 정형시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인 시를 모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거지’였는데,
1910년~1930년 사이 최소 12회 반복해 번역됐다. 가난이라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민중에게 손 내밀고자 하는 공감과 연민의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는 당시 지식인들의
영혼에서부터 공명을 이뤄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졌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가 차디찬 내 손가락을 꼭 잡아 주며 속삭였다.

“형제님, 저는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형제님, 그 역시 적선이지요.”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르게네프 ‘거지’에서

투르게네프 특유의 “꿀과 기름처럼 완벽하게 유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러시아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예술적 특징은 그의 시적 내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산문시집에서도
역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이야기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문시집의 투르게네프의 목소리는 대체로 슬프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때로 냉정하고 신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산문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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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이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한 이번 시집은 투르게네프의 탄생일인
11월 9일에 맞춰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소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간된 산문시집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거장이 말년에 남긴 작품들이다.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작가 중 하나일 정도로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가 남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당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인기를 끈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거지 중에서)

그의 산문시에서는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또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현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산문시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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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의 길

                                               /이반 투르게네프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정열로, 이끌어질 수 있다.

증오로,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

그리고 멸시까지도 그렇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단 하나 감사만을 빼놓고.

감사는---부채, 사람은 누구나 부채를 갚는다…

그러나 사랑은---돈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회의적인 자문을 할 때는, 대개는 지난한 사랑이 끝난 후이다.
투르게네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사랑의 요소로 대답하고 있다. 너와 나는 모든 감정을 ‘증오도,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그리고 멸시까지도 차용할 것이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동원될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안온하고 평화로운 요소보다 불행한 요소를 더 추가하며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사’를 제외하며, 사랑은 교환의 가치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사랑은-돈이 아니’라며,
사랑이 ‘자본화’ 되어가는 점을 경계한다. 만약에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된다면, 사랑이 도착하고
사랑이 발전하고 사랑이 사라지는 동안, 낯선 자기를 대면하게 되고 당황하게 될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나와 네가 몰랐던 너와의 마주침. 하지만 ‘몰랐던 존재’는 없었던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들이다. 몰락과 부활의 반동사이, 침잠했던 그들은 불쑥 출몰할 것이다.
불시에 마주칠 증오와 연민과 공포의 음표들, 그리고 존경과 연민과 우정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끝날 수도 있다. 문득 사랑이 지나간 뒤,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당신도 묻고 싶을 것이다.

/박소원시인



[출처] 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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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과 섣부른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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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문학적 경력은 서정시로 시작해서 산문시로 마무리된다. 『루진』(1856)을 필두로 하여 마지막 장편 『처녀지』(1877)까지 여섯 편의 ‘사회 소설’을 쓴 투르게네프는 이후 생의 말년에는 80여 편의 산문시를 썼다. 산문시는 러시아 문학의 고유한 장르가 아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던 투르게네프가 보들레르의 산문시에 영향을 받아 시도한 것이 그의 산문시다. 

투르게네프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문학 형성기에 가장 많이 읽히고 번역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그의 산문시는 문학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처럼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어서였다. 일본을 통해 투르게네프를 수용한 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많이 번역돼 읽혔던 산문시 ‘거지’를 읽어 보자. 

시적 화자인 ‘나’는 거리를 걷다가 늙은 거지를 만난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화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늙은 거지는 손을 내밀어 나에게 적선을 청하는데, 호주머니를 뒤져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빈손으로 산책을 나온 것이다. 동냥을 청하는 거지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다.” 

당혹한 나는 하는 수 없이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그때 문득 ‘나’는 깨닫는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식민지 조선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주제인데, 특히 윤동주도 이 ‘거지’에 반응한 독자였다. 그런데 윤동주의 반응은 공감과 함께 위화감도 포함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거지’를 명백히 패러디해서 쓴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에서 시인은 ‘거지’의 기본 골격을 반복하지만 몇 가지 설정을 비튼다. 시적 화자가 걷는 길은 ‘고갯길’로 바뀌고 ‘늙은 거지’는 ‘세 소년 거지’로 대체된다. 

나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는 넝마주이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 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이들의 행색은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 마찬가지로 비참하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나는 탄식한다.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는 건 인지상정이다. 투르게네프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호주머니를 뒤져 본다. 한데 투르게네프의 화자가 빈손이었던 것과는 달리 윤동주의 화자에게는 두툼한 지갑과 시계·손수건 등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것이 윤동주 식 반전이다. 거지 아이들에게 동정심은 일지만 선뜻 자기 물건을 적선할 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하련만, 나는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아이들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 역시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는 다르다. 세 아이가 모두 피곤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라지고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거지’의 반복이지만 ‘차이 나는 반복’이고 변주다. 시의 의미는 이 차이에 의해 생산된다.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의 주제는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다. 길에서 만난 늙은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었던 나는 되레 늙은 거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투르게네프는 적선의 의미를 뒤집고 있는 것인데, 시에서 나보다 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오히려 더럽고 남루한 행색의 거지였다는 사실에 시적 화자는 물론 독자도 감동을 받는다. 
 

반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에서는 적선은커녕 교감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세 소년 거지’에게 잠시 동정의 마음이 일지만, 그것은 고작 일시적인 기분에서 머문다. 나의 동정심은 이기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기 것을 내줄 만한 ‘용기’가 없는 나는 아이들과의 거리를 한 치도 좁히지 못한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는 섣부른 휴머니즘, 말뿐인 동정심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시의 ‘나’가 시인 자신이라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가혹한 자기 비판의 시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자주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초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신의 휴머니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두 편의 시를 거울로 삼아 비춰 봐도 좋겠다.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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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

메리 셸리(1797∼1851)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한 1818년 러시아에는 잊히지 않을 인물이 태어난다. 산문시와 소설, 희곡 모두에서 천품을 발휘한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주인공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더불어 19세기 러시아 황금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다 보면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투르게네프의 ‘처녀지’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를 이식받은 식민지 조선 문인들이 열광했던 작가 가운데 하나가 투르게네프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다. 일본 지식인과 문인들 역시 투르게네프의 문학적 성과에 매료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배경에는 ‘뜬구름’의 작가이자 러시아문학 번역가였던 후타바테이 시메이(1864∼1909) 같은 인물의 열성적인 노력이 자리한다. 뛰어난 원작과 성실한 번역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문학의 융성과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젊은 날 윤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을 읽고 망연해진 적 있었다. 제목에 들어있는 어휘 ‘툴계녭’이 너무 친숙했던 때문이다. ‘저건 분명 투르게네프지!’ 그런 확신에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이었다.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에 있던 ‘툴계녭의 언덕’.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읽는다. 당대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만년의 투르게네프가 인생의 깨달음과 소회를 질박하고 깊이 있게 드러낸 걸작이기 때문이다. ‘거지’(1878)는 그 가운데 하나다. 길 가던 시인이 거지를 만난다. 새빨간 가난에 무너져버린 거지가 그에게 적선의 손을 내민다.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조리 뒤져 보지만 시인에게는 돈과 시계는커녕 손수건도 없다. 거지의 손을 황망하게 잡아주는 시인. 거지는 몹시 미안해하는 시인에게 ‘그것도 적선’이라며 고마움을 전한다.

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은 전혀 다르다. 연희전문 2학년 시절에 쓴 시에서 시인은 인도적이며 낭만적인 투르게네프와 사뭇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갯길을 넘다가 거지 소년 셋과 마주치는 시인. 무서운 가난에 삼켜진 아이들의 묘사가 우리를 전율케 한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이었다.” 시인도 이 장면에서 러시아 시인처럼 주머니를 뒤진다.

 

식민지 조선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두툼한 지갑도, 시계도, 손수건도.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만지작거릴 뿐 내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용기’가 없다. 이야기나 해볼 요량으로 “얘들아!” 하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흘끔 돌아볼 뿐 제 갈 길을 간다. 아무도 없는 언덕에는 짙은 황혼만이 밀려올 뿐이다. 왜 동주는 적선하지 않았을까?! 돈이나 시계는 몰라도 손수건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투르게네프처럼 아이들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용정의 부모가 보내주는 월사금으로 공부하는 유학생이라 해도 그의 시에 내재한 영혼과 정신은 분명 적선을 요구했을 터. 일회적인 적선이 소년들을 가난에서 해방하지는 못한다 해도 인간적인 동정과 연대감 표시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프랑켄슈타인’에서 셸리는 창조주의 위치로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망과 비겁함과 무대책을 그려낸다. 투르게네프는 ‘거지’에서 공감과 연대를 보여준다. 반면에 동주는 대학생의 화사하고 소심한 자아에 멈춰있다. 연민과 동정과 연대가 사라진 문학에는 예술혼과 미래가 없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장자의 ‘학철지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갈급한 지경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잠시 옛시인들을 돌이키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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