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과 세오녀(延乌郎细乌女)신화는 우리 민족의 중요한 조상토템신화로서 우리 민족이 일월의 후예임을 알려주고 있다.
동해가에서 매일 남먼저 해와 달을 품던 연오랑과 세오녀는 각기 해와 달의 정기로 되였다.그들의 이름자에 태양의 본질을 상징하는 "오"(乌)자가 들어있는 것도 그들이 곧 일월의 정령(精灵)으로서 우리의 시조부(始祖父)와 시조모(始祖母)라는 것을 알수 있다.그들은 일월신(日月神)으로서 우리의 조상신인바 그래서 민족의 토템으로 되고있다.
달은 남성적인 해와 짝지어진 녀성적인 존재로 나타난다.달은 음(阴)이요 해는 양(阳)이라 달은 녀성을 대표하고 해는 남성을 대표한다.
달은 이지렀다가 둥그러지고 둥그러졌다가 이지러 든다.달의 이 차고 기울어지는 원리가 바로 녀성의 원리다.달이 차면 바다에 밀물이 생기고 달이 기울면 썰물이 인다.이에 따라 녀성은 몸의 변화를 체험한다.녀성의 경혈(经血)을 바다와 같이 원수(原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포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녀성은 임신을 하게 되고 몸이 점차 부풀어지면서 만삭이 된다.이런 현상을 만월(满月)이라고도 한다.저 밤하늘의 달처럼 점차 둥그러져 만월로 된다.달은 차면 기울어지고 녀성은 만삭이 되면 몸을 부리운다.차고 기우는 달과 바다의 밀물과 썰물,그리고 녀성의 원리는 신비하게도 이처럼 같다.
그래서 달의 원리가 신비한 모성의 원리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물에 비낀 달그림자가 룡의 알이라 하여 그것을 바가지로 떠 마시면 생남(生男)을 할수 있다고 해서 "룡알뜨기"라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이 생겼던 것이다. 달과 물 그리고 녀성의 일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다.
그래서 둥그러졌다가 기울어지는 달의 원리를 나타내는 우리 민족 녀성들의 원무 "강강수월래"가 생겨났던 것이다.
시인은 차고 기우는 달의 자연적 현상에다 생식과 생명의 반복과 영생이라는철리성을 부여하여 달토템의 항구적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교교한 달밤-/생남바라는 아낙네들 수줍게 우물가에 나와/달빛 어린 맑은 물 한바가지 퍼마신다/그래서 야드러운 풀밭에선-/흰옷 입은 숙녀들 나리꽃으로 만발해 원무 춘다/"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돌아가는 원은 하늘에서 내린 달이요/팔랑이는 아가씬 천상 선경의 선녀들이라/풍요의 원리는 이에 따라 밀물이 되고/모성의 원리는 이에 따라 회전이 되고/생명의 원리는 이에 따라 연장이 된다"
시인은 역시 생식과 생명의 반복과 연장이라는 달과 물,녀성의 일치한 원리로 달의 신비한 모성을 상징하고 있다.
2.곰
-민족의 시조모(始祖母)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중요한 시조토템신화로서 4300여년전 천신(天神)환웅의 하강과 더불어 사람되기를 소원한 곰이 녀성으로 변신해 천신과 함께 단군왕검을 탄생시킨 이야기를 담고있다.
천신과 지신(地神)의 결합에 의한 단군의 탄생은 토템탄생인바,단군의 탄생에서 모친역할을 했던 웅녀(곰)는 단군의 모친토템이다.
곰의 서식처는 눈내리는 북반구의 광활한 지역이고 곰은 동면동물이다.고대인들은 곰의 동면을 죽음으로 여겼고 봄에 동면에서 깨여난 곰을 재생의 존재로 여겼던 것이다.이렇게 곰은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고대인류의 동경을 자아낸 초자연적인 능력과 영생의 상징이였다.
그래서 곰은 고대인류의 보편적인 숭배와 경의의 대상으로 되였던 것이다.
그래서 시베리아원시민족의 가장 큰 제의(祭仪)가 곰제였고 아이누족도 곰제를 장엄한 축제로 삼았다.
중국고대에 황제(黄帝)의 모친이 "거인"(곰)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황제를 낳았다고 해서 황제의 토템은 곰이였고,오르죤족도 곰을 토템으로 삼는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곰과 정신적으로 밀접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은데 웅진(態津),웅강(熊江)),웅산(熊山),웅천(熊川,웅촌(熊村) 등 지명이 그러하다.여기서 한가지 례만 든다면 웅진에 대한 전설이다.나무군을 쫓아오던 녀자로 변한 곰이 빠져죽은 곳이여서 웅진(곰나루)으로 되였다는 것이였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곰을 경칭으로 부르지 않고 "곰할매"로 불렀던 것도 경외심에 의해서였다.
곰의 이름으로 명명된 지명들과 곰에 대한 전설이나 지칭역시 우리 민족의 곰 숭배가 유구하고 보편적이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더운 피와 열물 젖삼아 마셨기에/어진 성미에 너그러운 풍채 갖추고/억센 의지와 의력은 근골이 되고/
발톱은 쟁쟁 소리나는 도끼와 활촉이 되여/애탄이 무어랴/구걸이 무어랴/길 아닌 길을 거쳐/죽음길도 뚫고 나갔더라"
여기서 시인은 "열반"을 거친 곰의 건장한 모습과 견강한 의지를 격조높이 읊조리고 있다.
"태고의 전설속에 엉기적/백의의 넋속에 엉기적/요원한 미래속에 엉기적"
시인은 백의민족의 력사를 개척하고 영원한 미래를 개척하는 우리 조상 령 혼의 상징인 곰토템을 거듭 찬미하고 있다.
3.신단수
-조선민족의 세계수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을 탄생시킨 천신(天神) 신단수(神檀树)와 지신(地神 )웅녀(熊女)를 세상에 알린 시조신화로서 한폭의 장려한 민족"서사시"다.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서사시"의 주인공이 신단수다.4300여년전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환웅이 깃든 박달나무,하늘에 닿아 천신의 사다리가 된 그 박달나무가 바로 신단수다.아기소원을 가진 웅녀와 결혼하여 민족의 시조 단군을 탄생시킨 신단수는 천신 환웅의 화신(化身)으로 단군의 부친토템이다.
고대인들은 우주의 질서가 천계(天界)와 지계 (地界)그리고 지하계(地下界)로 이루어졌다고 여겼고,이러한 우주구조의 수직관(垂直观)에 따라 하늘과 대지와 지하세계를 하나로 얽매여 련결시킬수 있는 매개물이 즉 우주의 축(轴)이 수요되였다.그런 축으로 나무이상이 없다고 여긴 선조들은 어떤 한그루의 나무를 선택하여 그것을 우주의 나무 즉 세계수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수는 인간의 의지가 심고 가꾼 나무다.그런 나무들은 뿌리로 지하의 샘을 빨아올리고 초리로는 하늘의 샘을 자아내리기에 영원한 생명의 원천과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로 되여있었다.
시베리아 각 민족의 그런 세계수가 한그루의 봇나무나 락엽송이였다면 우리 민족의 세계수는 박달나무였다.높은 태백산마루에서 하늘을 떠받들고 솟아오른 신단수는 천신의 사다리고 천신의 상징이며 부성(父性)의 상징이였다.
그리 멀지 않는 옛날까지 우리 겨레가 모여 사는 촌락에 흔히 한그루의 높은 나무가 있어서 그것을 신이 오르내리는 나무라는 뜻으로 신나무(神树 )또는 당나무(堂树)라 일컬었고 그 나무아래에서 제사나 굿판이 벌어지군 했다.그 신나무나 당나무들이 신단수의 파생물이 아니였던가 싶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신단수"에서 웅위롭고 장엄한 신단수의 형상을 다음과 같은 시구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신단수의 형상묘사를 통하여 영구불멸의 생명력과 하늘에 닿는 기개,굽힘없는 굳센 의지와 천지개벽의 기백과 슬기를 지닌 민족령혼의 상징인 신단수를 격조높이 찬미하고 있다.
4.백학
-백의민족의 혼
옛날 금돼지에게 잡혀갔던 부인이 낳은 애가 꺼림칙해서 길에 내버린 원이 있었다.그런데 그 버려진 아기를 학이 날개로 덮어주었다고 한다.그 아기가 한 로파의 부양을 받아 자라서 큰 인물이 되였으니 그가 바로 고국의 전기문학과 전기소설의 개척자와 시조로 된 최치원이라 한다.
이 전설에서 학은 길에 버려진 갓난아기였던 최치원의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우리 조상들이 바라보는 백학은 워낙 청초하고 고귀한 새로서 신선이 부리는 령조(灵鸟)였다."군계일학"(群鸡一鹤)이란 닭무리속의 학이란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중의 뛰여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그래서 옛날 우리의 선비들은 백학을 즐겨길렀고 백학을 가까이 함으로서 자기의 품위를 나타내군 했다.
백학은 예로부터 소나무,사슴,불로초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간주되였다.그래서 선비들은 웃어른의 생일에 "구령학수"(龟龄鹤寿)라는 족자를 보냈다.거부기와 학처럼 장수하라는 축복으로 말이다.백학은 천지간에 아름다운 것만 취하여 그 몸을 보양하고 사기(死气)가 없는 가운데 살므로 장수한다고 한다.
백학은 다른 조류에 비하여 높이 나는 새로서 비상과 높이를 자랑하는 조류이다.
눈부시게 흰 몸뚱이와 억센 날개로 하늘높이 나는 새,풍운(风云)을 헤가르며 풍랑을 맞받아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새,그는 피와 불의 세례속에서 간난신고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던 백의민족 령혼의 상징이였다.
이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백학"을 보자.
"백의혼이여/천만년 깊이 묻힌 피비린 내음에 절고
/천만년 검붉은 질식속에 몸부림치고/천만년 무거운 층암속을 뚫고 나오며
/검은 삿갓 검은 두루마기 검은 적삼 불살라버리고
/천지간에 하얗게 다듬어진 넋"
백의혼은 바로 이렇게 유구한 세월 험악한 환경과 엄혹한 시련속에서 련마된,자유와 광명을 위해 굴함없이 억세게 싸우는 민족의 령혼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백학"은 태양을 숭배하는 백의민족의 상징인 백학을 소리 높이 찬미하고 있다.
5.흙
-인간과 만물의 모신(母神)과 수호신
우리 선조들의 흙신앙을보여준 신화들이 있다.
늙도록 후사가 없었던 해부루가 산천에 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타고 가던 말이 큰 돌을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자 사람들을 시켜 돌을 치우고 보니 그 자리에 금빛개구리모양의 사내아이가 있었다는 것이다.왕이 크게 기뻐 그애를 길러서 태자를 삼으니 그가 바로 금와왕(金蛙王)이였다.그가 돌밑의 흙에서 나왔은즉 흙은 돌과 함께 해금와를 탄생시킨 모친토템이였다.
흙토템은 인간을 탄생시키고 인간의 후예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자못 흥미있는 고사는 헌강왕대의 토지신의 이야기다.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시절은 태평성대였다.그 풍요한 세월을 즐기느라 왕과 신하들이 여념이 없을 때 한번은 왕이 동례전에서 연석을 베풀자 토지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나라의 위기를 지신(地神)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춤으로 예고하였으나 사람들이 태평세월에 마비되여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결국 나라가 망했다.
흙은 헌강왕에게 나라의 위기를 알려준 수호신토템이였다.
해금와신화가 인간에 대한 흙의 모신(母神)적이미지를 표현하였다면 헌강왕신화는 인간에 대한 흙의 수호신(守护神)적성격을 보여준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흙숭배는 력래의 장례문화에서 돌출하게 표현되였다.주검을 흙속에 묻는 토장(土葬)은 우리 선조들의 주요한 장례방식이였다.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흙에 묻어야 다시 태여나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관념에 의해서였다.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는것이 인생이라는 말은 인간이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귀숙한다는 말이며 그래서 인간은 결국 자연의 한부분임을 설명한다.
우리 선조들의 관념에대지는 남성적인 하늘에까 짝지어진 녀성적인 존재로 인간과 만물의 지모신과 수호신이였다.흙은 그처럼 소중하고 그처럼 신성하다.흙은 삼림을 키우고 곡물을 키워서 인간에게 이바지한다.인간과 만물의 생명을 위한 흙의 말없는 기여,그것이야말로 어머니대지의 사랑과 보호가 아니고 무엇일가.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흙"은 국내외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1998년 8월에 제18차 세계시인대회가 슬로바크에서 열렸을 때,주최측인 슬로바크의 텔레비죤방송국에서 특히 "중국시인의 밤"행사를 마련하여 남시인더러 "흙"을 랑송하게 하고 전국적으로 방송하여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농업국인 슬로바크인민들의 흙숭배를 알수 있다.
"흙은 자신의 무변한 체구로/돌을 뻐로 삼고/물을 피줄로 삼아/우중충한 하늘아래/언덕과 산줄기 쌓고/늪과 바다를 만들어/생령을 배태하고/만물을 낳아키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시구들로 대지를 이루는 흙의 신비한 조화를 묘사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모신적,수호신적 상징인 흙을 열정적으로 구가하고 있다.
6.물
- 생명의 근원
혁거세신화(赫居世神话)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물 신앙을 알려주고 있다.
하늘에서 내린 자주빛알에서 태여난 혁거세를 동천(东泉)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고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여난 알영(阏英)의 닭부리입은 북천(北川)의 물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물은 혁거세와 알영을 재생시킨 모친토템이다.
조상들의 관념세계에서 물은 흙과 마찬가지로 남성적인 하늘과 짝지어진 녀성적 존재였다.물이 신화에서 녀성적 의미를 가질수 있은 것은 달과 물과 녀성의 밀접한 관계에서 비롯되였다. 달이 둥글어지고 이지러짐에 따라 물의 집인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고,녀인들은 생리적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또한 우물에 비낀 달그림자를 룡의 알로 여기고 그것을 떠마시면 생남을 한다고 믿어 밤중에 살그머니 우물가에 나왔던 녀성들이 얼마였던지 모른다.이렇게 달과 물과 녀성은 다 같이 생명력과 생산력,그리고 풍요의 상징이다.때문에 바다물과 녀성의 생리수를 원수(原水)라고 불렀다.원수는 인류의 시원(始源)을 내포하고 있다.
물은 또한 경세지언(警世之言)을 상징하기도 한다.의자왕시절 우물의 물빛이 피빛으로 변했고 보장왕때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사건이 생겼다.
물은 피빛을 띠거나 역류(逆流)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위기를 경고한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났으나 왕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나라를 망쳤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물"에서 물과 인간 및 모든 생명의 밀접한 관계를 묘사하면서 물의 신비함과 신성함을 찬미하고 있다.
"사람은 물우를 오가고/고기는 물속을 헤염치거니/물우도 물속도 모두 생명의 락원이라"(중략)"물의 신화는 인간과 함께 숨쉬고/물의 위엄은 하늘과 함께 살아간다/물,물,물/모든 생명과 령혼의 대문 여닫는 신령이여"
물은 인간과 만물을 잉태하고 낳아기르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명수"라는 이름으로 물을 찬미하는 것이다.
시인은 물과 모든 생명의 밀접한 관계를 천명하면서 인류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7.사슴
-천지간의 신비한 사자(使者)
천신(天神) 해모수가 수신 (水神)하백(河伯)과 술법을 겨룰 때 하백이 사슴으로 변한적이 있다. 수신 하백인즉 주몽의 모친 류화의 부친으로서 주몽의 외조부이다.하백이 사슴으로 변할수 있었다는 것은 사슴이 하백의 토템이였음을 보여준다.
훗날 주몽이 비류국을 합병할 때 사슴을 거꾸로 매달아 그 울음소리로 큰비를 불러다가 비류국을 홍수에 잠기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사슴은 호풍환우(呼风唤雨)의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천지간의 사자였고 주몽의 령토확장을 도와준 수호신토템이였다.조상의 토템이 후대를 수호한것이다.
우리 민족의 사슴신앙은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다.경북 고령지방에서 발굴된 고분에서 나온 록각이 이 점을 증명한다.록각(鹿角)은 우리 선조들의 호신부(护身符)와 부장품(陪葬品)이였다.록각은 남권(男权)의 상징이자 수장(首长)의 상징이였다.우리의 고대왕관(王冠)이 록각모양을 이루고 관리들이 각간(角干)으로 불리운것도 사슴숭배에서 기인된 것이다.
록각숭배자 사슴숭배였다.선조들의 관념세계에서 사슴은 머리에다 나무를 키우는 동물이였다.그래서 사슴은 대지의 원리를 지닌 신령이였다.봄에 돋아나서 한해동안 무성하게 자라며 딱딱한 각질로 굳어졌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지고 또 새 뿔이 돋아나는 록각의 순환기능을 생명의 반복과 연장이라는 달의 원리처럼 여긴 우리의 선조들이였다.
그래서 사슴은 우리 민족의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되였다.
시인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호방한 필치와 조상들의 원시적사유를 결합하여 사슴의 장엄한 토템형상을 부각하고 있다.시에서 표현된 사슴의 상징이미지는 신비한 천국의 사자이다.
8.범
-징악(惩恶)과 영웅의 상징
옛날 왕건(王建)의 선조 호경(虎景)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여럿과 함께 동굴에서 쉬는데 굴이 무너지는 순간 범이 호경의 관을 무는 방식으로 화를 면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견훤이 아기적에 그 모친이 남편에게 밥을 날라가느라 나무밑에 눕혀놓았더니 범이 와서 젖을 먹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신화들에서 왕씨와 리씨의 토템인 범이 왕씨의 후손 호경과 리씨의 후손 견훤의 수호신토템으로 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범 숭배는 산악(山岳)숭배와 밀접하게 련관되여 있다. "산해경"(山海经)에 묘사되여 있다시피 고대 동이족(东夷族)의 생존환경은 흔히 산악지대와 산림이였다.
그처럼 첩첩 뭇산과 울창한 원시림은 고대인류의 생존환경이였을 뿐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였다.그 동물의 왕국에서 범은 뭇짐승들의 왕이였다.범처럼 사납고 완강한 짐승이 아니고서는 험악한 생존환경에서 끄떡없이 살아나갈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계에서 벗어나기 전의 고대인류와 우리 조상들의 시각에 범은 상설같은 위엄과 굴함없는 투지와 완강한 생명력의 산신령으로 우러러 보였고 또한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인정되였다.우리 겨레의 옛날 범그림이나 단오에 궁중에서 나누어주었다는 쑥으로 만든 범에서도 이같은 의미를 알수 있다.
시인은 범의 불요불굴의 의력과 불의와 사악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모습을 통하여 력사적풍운을 헤쳐온 정의롭고 용감한 민족의 형상을 표현하였다.
산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중왕으로서의 범은 불굴의 투지와 완강한 의력으로 삶의 터전을 지켜온 우리 겨레 영웅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9.백마
-천사(天使)와 용사(勇士)의 상징
혁거세신화에 의하면 나라도 임금도 없던 전한 지질 원년에 있은 일이였다.그때 여섯 부락의 촌장들이 임금을 세우려는데 먼 발치에서 번개불기운아래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안겨왔다.다가가서 보니 백마의 앞에 자주색 알이 놓여있었고,백마는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혁거세신화에서 백마는 성인의 탄생에 없어서는 안될 조산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하늘로부터 그 신비한 알을 날라왔을 백마,혁거세의 탄생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그 백마는 분명 천신으로서 혁거세의 수호신토템이였다.
우리 겨레의 옛날 혼인풍속에서도 백마숭배를 알수 있다. 사모관대차림의 새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갈 때,신랑이 탄 말이 흔히 백마였다.그것은 흰색이 광명을 나타내고 흰색과 광명은 바로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즉 백마는 하늘의 태양을 상징하고 태양은 남성을 표시한다.그래서 혼인날 신랑이 타는 말은 백마가 가장 적합했다. 그리고 그 말이 신부의 집 앞에서 크게 울면 첫아들을 보게 된다고 했다.
우리의 류행가에도 백마가 나온다."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가 그러하다.식민지시대 망국민의 한을 표현한 노래에도 백마가 백의겨레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백마"를 보자.
"자욱한 물안개 헤치고/타래치는 먹장구름 꿰뚫고/
아득한 창천너머에서 지동치듯 달려온다"
이 표현들은 토템인 백마는 하늘의 천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람차고 맹렬한 백마(천마)의 모습은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이 시에서 시인은 두려움과 지칠줄을 모르는 진격자,자유와 리상의 왕국을 향해 나래치는 천마의 심상(心像)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10.사자
-대지의 태양
우리가 잘아는 서동이와 선화공주의 이야기에 사자사(狮子寺)라는 이름이 나온다.
선화공주가 서동이의 감자밭에서 숱한 금덩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왕궁에 보내려고 찾아간 곳이 사자사였다.
옛 우릉도사람들이 조정에 공물을 바치지 않아 왕이 사람을 시켜 나무로 만든 사자를 싣고 가서 위협하니 그제야 겁을 먹고 복종했다고 한다.
사자가 없는 고국에 사자숭배를 보여주는 사자사가 세워지고,사자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사자의
위력을 아는 원인은 무엇일가?
고국의 사자숭배는 수로왕(首露王)이 배필로 맞아들인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관계된다.인도의 귀족들은 일반적으로 호랑이와 사자를 토템으로 했는데 사자를 토템으로 하는 사람들이 범을 토템으로 하는 사람들보다 우월했다고 한다.아유타국의 왕실에서 태여나서 자란 공주 허황옥의 토템도 사자였다.
이 허황옥이 아들 열을 두었는데 첫째가 부친의 김씨성을 물려받아 태자로 되고 둘째와 세째가 모친의 허씨성을 물려받았는데 그 가족이 번성해서 사자를 토템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허씨족이 산생했던 것이다.
이는 고국에 사자사가 세워진 원인이고 사자숭배가 산생된 원인이다.
금황색갈기를 날리며 초원을 질주하는 용맹한 사자,그 눈부신 모습을 대지에서 굴러가는 태양으로 련상하는 것은 절대 무리가 아니다.
7500년의 눈부신 고대문명을 자랑하는 애급의 금자탑과 금자탑주위에 세운 인면사신상(人面狮身像)들이 태양숭배를 설명하고 있다.광명과 정의를 불좇고 암흑과 사악을 몰아내는 사자신(狮子神)은 바로 태양의 상징이였다.
7,200년의 고대문명을 지닌 바빌론에는 초원이 많고 인도에도 무연한 초원들이 펼쳐져 있다.그 광활한 초원들이 사자의 서식처다.그래서 고대바빌론과 고대인도에서 일찍 사자숭배가 산생된 것이다.
인도의 사자숭배는 중국과 조선반도에 영향을 주었다.중국의 명절행사나 경축행사들에서 행해지는 사자춤과 조선반도 봉산,황주,강령,통영,북청지방의 사자탈춤이 그것을 보여준다.사자의 힘을 빌어 사귀(邪鬼)를 몰아내고 경사로움을 이루고 마을의 평안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였다.
지금도 중국의 건물들의 대문 량켠에 흔히 사자조각상이 세워져 수호신으로 상징되고 있고,고국의 옛집들에서 사자머리모양의 문손잡이가 발견되고 있는데 역시 가족의 평안을 보위하는 수호신(문지기)으로 사자를 숭배한 흔적이라 할수 있다.그리고 반도에 사자산(狮子山)도 있다고 한다.이런 사실들은 사자가 일찍 우리 민족의 토템이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사자"를 보자.
"초원을 질주하는 태양이여"
시인은 이렇게 첫련을 이룬 한구절의 형상화한 시구로 사자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였다.황금색갈기를 날리며 대지를 질주하는 사자의 모습을 보는듯하다.이는 우리의 눈으로 감지되는 사자의 영상(影象)이미지다.
"사자의 포효소리/팔방 산천에 울려퍼졌고/사자의 갈기/눈부신 금빛 갈기 휘저으면/터지는 천둥/무너지는 눈사태/돌아치는 태양/쏜살같은 별찌라/ 깊디 깊은 어둠 멀리 물리치고/악마를 바다 끝에 내쫓고/요귀를 갈팡질팡 헤매게 했다"
이것은 사자에 대한 심층(深层)묘사로서 우람하고 용맹하며 암흑과 불의와 사악을 물리치는 태양의 상징인 사자신의 위력을 찬미하였다.
11.황소
-희생자와 봉사자의 상징
주몽신화에 의하면 하백(河伯)의 딸 류화가 해빛감응으로 낳은 닷되만한 알을 불길하게 여긴 왕이사람들에게 소우리에 던지라고 분부했는데 소들이 비단 그 알을 해치지 않을뿐더러 조심스레 보호해주는 것이였다.왕은 다시 길에 내다 버리라고 명령한다.그러나 지나가는 마소가 알을 조심스레 피해다녔다.
소나 말이 밟고 다니라고 길에 버려진 그 알이 무사하게 된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라고 할가.인성과 통한 령물(灵物)들의 보호가 있었기에,다시 말해서 령성(灵性)을 지닌 소들의 보호가 있었기에 우리의 시조가 무난히 탄생했던 것이다.
길에 버려진 알을 밟지 않은 소는 주몽의 탄생을 지켜준 수호신토템이다.
고대동이족(古代东夷族)의 유구한 농경사회에서 황소는 중요한 생산력이였다.소는 인간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여 인류의 막중한 부담을 덜어주었다.인간을 위한 봉사에서 표현된 소의 근면성과 인내성은 사람들의 경의를 자아냈다.하기에 동이족시기 사람들의 소 숭배는 아주 보편적이였다.동이족수령 치우(蚩尤)의 화상(画像)에 의하면 머리에 뿔이 돋아 소를 토템으로 했다는 전설과 동이족시기 소가 6축의 하나로 관직명이 되였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 민족도 동이족의 갈래였다.선조의 토템이였던 소가 후대인 주몽의 탄생을 보호한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소는 또 가죽과 고기를 인간에게 제공해 준다.
"나는 풀을 먹는다.그러나 짜내는 것은 피와 우유이다."
중국현대문학가 로신의 이 말은 바로 사심없는 희생자와 봉사자인 소의 본질을 대변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황소"를 보자.
"하늘은 푸르고/물길은 가없는데/황소는 죄꼬만 빙산 받들어/우리네 토지를 넓혀준 시조"
이 시구들에서는 농우(农牛)로서의 황소의 형상이 표현되고 있다.우리 조선민족은 부림소를 조상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 있었다.이 시구들은 우리 민족의 소숭배를 표현하고 있다.
"물길은 아득하고/땅은 가없는데/황소는 삭막한 황야의 희망/희망이 무르익을 징조여라"
이 시구들은 황소의 심상(心象)이미지를 발굴하여 이 땅을 지키고 가꿔갈 우리 민족의 희망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황소는 희생자과 봉사자의 상징이다.
12.양
-평화와 희생의 상징
옛날 리성계가 양을 잡으려고 하는데 양의 뿔 두개가 스스로 빠져나가더니 뒤이어 꼬리도 불쑥 빠져나가는 것이였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꿈이였다.
리성계는 그 꿈이 하도 이상해서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청했다.무학은 양(羊)자에서 량뿔(丷)과 꼬리(丨)가 없어지면 왕(王)자만 남으니 경하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훗날 과연 무학의 해몽이 맞아떨어졌다.
양이 리성계의 토템이였기에 그의 꿈에 나타나 령험을 보일수 있었던 것이다.
양은 닭,소,말,돼지,개와 더불어 고대 동이족 사양권의 6축(六畜)에 속하는 동물이였고 양을 포함한 그 6축이 동이족의 관직명으로도 되였었다.양은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물과 재운(财运)의 상징, 효도와 선량함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
"반포지효"(反哺之孝)하면 사람들은 대뜸 까마귀를 련상할 것이다.새끼까마귀가 자라서 늙은 어미를 먹여살리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지만,양도 까마귀와 같은 효성을 지닌 동물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미양의 젖을 먹고 자라난 새끼양이 늙은 어미에게 젖을 빨리는 것이다.말하자면 새끼양이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제젖을 먹여주며 봉양하는 것이다.까마귀의 "반포지효"와 얼마나 흡사한가!
옛날 제주도의 민속에는,새해 첫 양의 날인 상미일(上未日)에는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양의 온순한 천성에 근거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양은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천사(天使)거나 인간을 대신한 제단의 희생품으로 상징되여 왔다.기독교에서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대죄양" (替罪羊)으로 불리운다.
중국 광주(广州)가 "오양성"(五羊城)으로 불리우는 리유가 바로 태고시절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양이 신기한 곡식이삭을 물고 그 땅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복을 안겨주었다는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 남영전은 토템시 "양"에서 양의 성격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양과 인간의 관계,양과 우리 민족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몰몰 피여나는 향불연기와/말끔히 떠가는 흰구름이/경건한 기도와 서로 엉키여/하얀 옷차림에 하얀 마음 갖췄다/
시인은 "흰구름","하얀 옷차림","하얀 마음"이라는 표현에 치중하여 양이 우리 백의민족의 토템임을 암시하고 있다.
"저 아득한 하늘너머 저켠에서/잡초 붐비는 이 황야에/돌부리 웅크린 이 황산에/방치같은 이삭 하나 물어왔더라/이에 메마른 땅에 신록 우거지고/굶주린 자들 밥사발 들게 되였지만"
시인은 신화를 인용하여 양이 인간에 복음을 가져다 준 천신임을 밝히고 있다.이러한 양의 형상은 아래와 같은 표현에서 더욱 승화되여 희생자로서의 양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너만은 낟알과 인연이 없어/저물면 풀밭에서 서식하면서/홀로 남아 바장이누나"
토템시 "양"은 평화의 상징이고 희생자의 상징으로서의 양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이 또한 평화를 사랑하고 화목과 우애를 중히 여기는 백의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13.백조
-생존과 안녕의 추구자
해모수신화에 의하면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임술년(bc59)4월 8일에 오룡거를 타고 홀승골성에 내려와 나라를 세웠는데 해모수의 가족이였던 백조들이 그를 수반한 신선들을 등에 태우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신선들을 태우고 강림한 백조들은 역시 천신들로서 해모수의 수호신토템이였다.
고대 동이족(东夷族)은 류달리 조류를 숭배했다.이는 동이족의 거주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대 동이족의 서식처는 지금의 산동반도와 하남의 동부,안휘 동북의 연해 지구였다.말하자면 사계절이 분명하여 철새들이 많이 오가는 지방들이다.고대에고국과 일본은 다 같이 동이문화권(东夷文化圈)에 속해 있었다.우리 민족의 조류숭배 역시 고대 동이족의 영향에서 산생되였다고 할수 있다.
동이족은 흰색을 선호했다.흰색에 대한 애착으로 동이족은 옷도 흰천으로 지어입었다.동이족의 흰색선호는 태양숭배에서 나왔다.동이족은 태양빛을 흰색으로 간주했으며 그래서 태양이 비추는 낮시간을 "백천"(白天)이라고 불렀다.그 고대 동이족의 관념세계에서 태양을 상징한 흰빛과 하얀 빛갈의 백조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가.
그들의 관념세계에서 백조는 그래서 하늘의 새였다.눈빛처럼 희고 커다란 몸집, 시원하게 기다란 목과 다리와 억센 두 날개,그 억세고 커다란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천지간을 날아예는 그 모습만 보더라도 그는 하늘의 새, 역시 천신(天神)이였을 것이다.
이처럼 고귀한 신분이였건만 백조의 운명은 불우한 때가 있었다.
시인 남영전의 토템시 "백조"는 백조의 특성과 지난날 백의민족의 운명을 련계시켜 백조의 상징적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일가식솔 거느리고/한 부락 거느리고/평생 불우한 운명 거느리고/떠난다/떠난다/떠난다"
"떠난다"는 백조의 본질적 특성이다.백조가 자꾸 떠나가는 것은 평화롭고 안정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이처럼 악렬한 생존환경에서 백조는 열반과도 같은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그래서 백조의 안정된 삶에 대한 의념은 더욱 견강해지고 추구는 더욱 견정해진다.
"한오리 목숨 붙어있는 한/두 날개 퍼덕일수 있는 한/영원한 보금자리 찾아/보금자리의 영원 지키려고/떠난다/떠난다/떠난다"
이 시에서 백조는 정녕 삶에 대한 신념과 평화와 안녕에 대한 견정한 추구자의 상징이다.
14.매
-풍운을 헤가르는 용사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해모수가 하백과 술법을 비길때 매로 변했고 석탈해가 김수로와 술법을 겨룰때 매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해모수와 석탈해가 적수와의 겨룸에서 매로 변한것을 토템변신이라 하는데,그들의 토템이 매였다는 것을 설명한다.
매는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고 곡식을 먹지 않기에 고결한 새로 불리운다.
신문왕시절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사냥군 하나가 매를 놓아 꿩을 쫓게 하는걸 발견한다. 매에게 쫓기는 꿩이 금악을 지나 사라지고 매도 보이지 않았다. 매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를 따라 말을 달려 간곳이 굴정현 관청 북쪽의 우물가였다.
매가 우물가의 나무우에 앉아 우물을 들여다보며 요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충원공이 우물을 들여다보니 물이 마치 피빛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꿩 한마리가 두 날개를 펼쳐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다.매도 그것을 보고 차마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였다.매가 신령스러운 새였기에 차마 새끼를 보호하는 꿩을 잡지 못한것이다.
충원공이 감동되여 그곳에 절을 세워 이름을 령취사(灵鹫寺)라고 했다.매의 인애를 기리고 매의 덕성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령취사는 전문 매의 신령을 숭배하고 신앙하는 절로서 황룡사(黄龙寺),사자사(狮子寺),오회사(乌会寺)와 더불어 고대의 4대동물신숭배사찰로 부상되였다.
우리 겨레에게 매는 예로부터 사냥도구로 리용되여 왔다.그래서 "꿩잡는 게 매"라는 말도 생겼다.날파람과 진격이 특성인 매는 사냥군들의 사양물로서 애대를 받았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매"는 우리 민족의 매 숭배를 바탕으로 하여 기발한 상상으로 매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싸우지 못하면 망하고/강하지 못하면 망하거늘/진격하여 나래치는 길만이/세상을 살아가는 길이다"
이 시구들은 매의 심층이미지를 발굴하고 있다.이는 진격이 특성인 매의 형상을 더욱 승화시키고 있다.
이 시에서 매는 풍운을 헤가르는 용사의 상징이다.
15.뻐꾹새
-봄날의 신령
우리 겨레의 달미신화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옛날 달미라는 소녀가 늙고 병든 부모를 위하여 지주집에 부엌데기로 들어갔는데 부뚜막에 덮어놓은 떡국을 개가 먹은 탓으로 억울하게 루명을 쓰고 호되게 매를 맞아 집으로 기여가다가 죽었다.
이듬해 봄 달미의 조그마한 무덤속에서 새 한마리가 날아 올라 "뻐꾹(떡국)!뻐꾹(떡국)!가갸각(개가)!"하고 울었다.원통하게 죽은 달미가 뻐꾹새로 변하여 억울함을 하소한 것이다.
이 신화는 인간이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돌아간 사례를 이야기한다.달미의 토템이 뻐꾹새였던 것이다.
"장자는 나비되여/새벽 꿈속을 헤매고/망제는 두견 되여/춘삼월을 슬퍼하네"
당조(唐朝)시인 리상은의 "거문고"에 있는 시구다.
동이족시기,촉국의 망제(望帝)는 백성을 관심하고,그래서 백성의 애대를 받는 임금이였다.
그 망제에게서 황위를 양도받은 새 황제가 황음무도해서 국고가 비고 백성들이 재난을 입어 원성이 길에 깔릴때 산속에서 도를 닦던 망제는 한없는 후회와 걱정끝에 죽어서 뻐꾸기로 되였다고 한다.뻐꾸기는 망제의 토템으로서 인간이 죽은후 토템으로 돌아간 또 하나의 사례이다.
망제는 뻐꾸기로 되여 해마다 봄이면 하늘을 날며 피맺힌 울음으로 농사일을 재촉하고 있었고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며 울음마다 피를 토하고 있었다.뻐꾹새의 울음은 그래서 농경사회의 권농(劝农)과 근면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뻐꾹새는 친절한 존재였다.수전농사가 위주였던 우리의 농민들에게 있어서 뻐꾹새의 울음소리는 모내기를 재촉하는 신호로 인정되여 왔다.
그래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뻐꾹새"는 "피맺힌 울음"에 랑만적성격을 부여하여 뻐꾹새의 상징이미지를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
시인의 붓끝에서 뻐꾹새의 피맺힌 울음소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축복으로 찬미되고 있다.
이 시에서 뻐꾹새는 인간의 봄날을 기도하고 축복하는 신령이다.
16.수탉
-태양의 상징
알영신화와 김알지신화에 수탉이 암시되여 있다.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여난 알영의 입이 닭부리같았다는 것은 수탉이 그의 부친토템이였음을 말해주며 김알지의 탄생을 밤에 흰닭이 알렸다는 것은 그 흰닭이 바로 수탉으로서 김알지의 수호신토템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고대동이족의 수령 소호씨(少昊氏)의 토템이 봉황이였다.고대에는 수탉이나 산닭이 봉황의 상징이였으므로 소호씨는 당시의 6축숭배에서 닭을 첫자리에 놓았다.수탉은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을 불러오는 신령으로 태양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겨레에게도 옛날부터 수탉의 울음소리가 귀신을 쫓고 닭의 피가 부정을 물리친다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그리고 혼인잔치상에 붉은 고추를 문 두마리의 삶은 수탉을 앉혀놓는 것으로 평안과 생남(生男)을 축복했다.이토록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수탉은 상서로운 동물이고 광명과 평화의 상징으로 숭배되여 왔다.
시인은 무엇이든 자꾸 쪼아대는 수탉의 특성에 삶의 소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부여하고 있다.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 한/혼돈이 가셔지지 않는 한/머리우에 지지 않는 태양을 이고/목을 빼들고 길게 길게 홰친다"
이는 수탉에 대한 심층묘사로서 수탉이 광명의 사자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볼수 있는바,수탉은 불같은 열정으로 암흑을 물리치고 광명을 불러오는 태양의 상징이다.
17.까마귀
-재난과 봉변을 경보하는 신령
연오랑(延乌郎)과 세오녀(细乌女)신화는 까마귀숭배관이 짙은 토템신화이다.
동해가에 살면서 매일 남먼저 해와 달을 맞은 연오랑과 세오녀는 일월(日月)의 정기를 품었고,또한 그들의 이름에 다 까마귀를 뜻하는 "오"(乌)자가 들어있다.전설의 삼족오(三足乌)가 태양의 본질을 이루는 남성을 상징한다고 한다.이런 맥락으로 볼때 그들 부부는 일월의 정령(精灵)이였다.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인간에 대한 까마귀의 수호신역할을 보여준 이야기들이 있다.
쥐가 시킨 대로 까마귀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말을 타고 따라가다가 피촌길섶에서 싸우는 두 마리 돼지에게 발목이 잡혀 멈추어 서고 거기의 못에서 나온 로인이 전한 "사금갑"(射琴匣)내용의 편지를 받고 수도중과 왕비의 간통현장을 덮쳐 화를 모면한 내용의 비처왕신화에서 까마귀는 비처왕의 수호신토템이였을 알수 있다.그리고 그때부터 정월 16일을 오기일(乌忌日)로 정하고 출행을 삼가하고 약밥으로 까마귀를 제지냈다.
선덕왕 을해년에 령묘사 행랑에 40개의 까마귀둥지가 생겨나 사람들을 경악케 했는데 얼마 안되여 나라가 망했다.절에 둥지를 트는 비상방식으로 왕과 사람들에게 나라의 위기를 귀띔해주고 있었던 까마귀들은 선덕왕의 수호신토템이였다.
까마귀신을 숭배하고 제 지내던 오회사(鸟会寺)는 황룡사(黄龙寺),사자사(狮子寺),령취사(灵鹫寺)와 더불어 고대의 4대동물숭배사로 되여 우리 민족의 까마귀토템의 유구한 력사를 보여주고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까마귀"에서 세속적편견에 물든 까마귀의 부정적인 명예를 회복시켜 그의 긍정적성격을 표현하므로써 역설적으로 까마귀의 상징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이에 침침한 야밤/림해와 황야에서 날아올라/인가마을 변두리서 돌아치며/수상한 조짐 보고 까욱까욱/짐승의 주검 보고 까욱까욱/재화를 막아내라 까욱까욱/소식을 전하느라 까욱까욱"
이 시에서의 까마귀는 세속의 비난이나 멸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초탈한 군자의 상징이며 재난과 봉변을 귀띰하는 인류의 수호신이다.
18.까치
-행운과 평화의 상징
남해왕시절의 어느날 바다가운데 닿은 배 한척을 옹위한 까치들이 울어댔다.사람들이 배를 끌어당겨 보니 배에 큰 궤 하나가 실려있는데 길이가 20자에 너비가 13자나 되였다.궤를 열어보니 단정한 동자와 칠보와 노비들이 가득했다.
동자는 워낙 룡성국(龙城国)의 국왕과 적녀국(积女国)의 공주사이에서 신비한 알로 태여났던 것이다. 동자가 알을 깨고 나왔다고 이름을 "탈해"(脱解)라 짓고 그를 옹위해 왔고 울음소리로 그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준 까치의 "작(鹊)"자에서 "석(昔)"자 변을 떼내여 성을 삼았다.
머나 먼 바다길,만경창파를 가르며 달리는 배를 옹위하여 함께 온 신령스런 까치들,그 까치들에게 령성이 없었더라면 그 신비스러운 알속에 들어있는 미래의 군주를 알아볼수 있었을가.이 신화에서 까치는 석탈해의 탄생을 알려주고 보호한 수호신토템이다.
까치는 보은(报恩)의 상징으로도 유명했다.지난 날 구렁이로부터 자기를 구해준 선비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선비가 위험에 처했을 때 머리로 종을 들이박아 경종을 울리고 죽은 까치의 "살신성인(杀身成仁)"도 자못 갸륵하다.
까치는 또 경세지언(警世之言)을 상징하기도 했다.효공왕 임신년,봉성사에 난데 없는 까치둥지가 하나 생겨났고 선덕왕 을해년에는 령묘사 행랑에 34개의 까치둥지가 생겨났으니 까치는 절에 둥지를 트는 비상방식으로 나라의 위기를 귀띔한 수호신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현대사회에도 까치는 길상물로 인정되여 "희작"(喜鹊)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까치는 흔히 맑은 날 아침에 우는데 그렇게 맑게 개인 날이면 일이 잘될수 있는 것이다.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일을 축냈을 것이고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는 고기를 많이 잡았을 것이고 먼길을 떠난 길손은 무난했을 것이고...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까치"에서 세속적인 관념에 길조로 락인된 까치의 일반형상을 열반을 거친 신격화한 까치로서의 숭고한 경지에로 승화시켰다.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축복을 주는 까치 역시 세상의 풍파와 세월의 역경을 겪고 있다.그렇기에 까치는 인류에게 단지 축복만이 아닌 충고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열반을 거친 까치의 승화된 형상을 통해 사심없는 희생자의 고귀한 령혼과 행운과 평화의 상징인 까치를 찬미하고 있다.
19.거부기
-인내력과 희생자의 상징
주몽신화에서는 거부기는 금와왕의 왕자들에게 쫓기여 강가에 이른 주인공에게 물고기들과 더불어 다리를 놓아준다.이 신화에서 흥미로운 것은,강이 앞을 막자 주몽이 활등으로 물을 갈기며 웨친 말이다.
"나는 해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자다!"
해의 아들이란 그가 해빛감응으로 태여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고 하백의 외손자란 말은 저의 모친인 류화가 바로 수신 하백(水神河伯)의 딸임을 두고 한 말이였다.중국에서거부기는 황하의 수신인 하백의 사자(使者)로 되여있다.
그 아슬아슬한 관두에 하백의 사자인 거부기들을 비롯한 수중동물(水中动物)들이 하백의 외손에게 다리가 되여주었던 것이다.이 신화에서 거부기는 주몽의 수호신토템이다.
최근에 발행된 족보에 의하면 평강 채씨(平康蔡氏)의 시조 채원광(蔡元光)의 토템도 거부기였다.평강 허씨댁의 딸이 밤마다 찾아오는 푸른색옷차림의 남자와 상관이 되여 임신을 한후 명주실꾸러미의 한끝을 그 남자의 옷자락에 매놓고 실꾸러미가 풀려나가는 곳을 찾아가니 커다란 련못이였다. 실을 당기니 푸른 등의 거부기가 딸려나왔다.견훤신화와 비슷한 경우였다.일설 평강 채씨의 시조가 채송년(蔡松年)이라고도 한다.
옛날 선비들이 웃어른의 생일에 보내는 족자의 내용이 "귀령학수(龟龄鶴寿)"란 네글자였다.거부기와 학처럼 장수하라는 축복이였다.거부기와 학은 우리 민족의 "십장생(十长生)"에 들어있다. 고분벽화에서도 거부기가 무덤의 수호신으로 표시되여 있다.무거운 비석을 등에 지고있는 그 모습에서 눈물겨운 인내력과 희생정신을 보게 된다.
인내력과 희생정신은 거부기의 성격이다.
그러기에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거부기"에서 세월의 풍랑을 겪은 거부기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는데 필묵을 아끼지 않았다.
"수정같은 눈동자 가졌기로/쟁쟁한 철갑등 가졌기로/솔개의 발톱도 두렵지 않았다"
이처럼 대자연의 풍랑속에서 련마된 거부기의 굳센 의력은 력사적 풍운을 헤가르며 강포와 억압에 맞서 자기를 지켜왔던 민족의 운명이 아니였을가.
"수정같은 눈동자"와 "쟁쟁한 철갑등"으로 두려움 없는 존재이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거부기,평화로운 환경에서는 오로지 자기의 소리없는 삶을 영위하는 선량한 거부기의 삶이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거부기의 토템이미지는 력사의 비바람속에서 련마된 우리 민족의 인내와 선량한 성격이다.
20.고래
-선각자의 상징
고래는 물고기의 왕으로서 문자이름은 "경어(鲸鱼)"이다.주몽신화에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준 이야기가 나오는데,이 수호신토템들속에 물고기의 왕인 경어신(鲸鱼神)의 역할이 없었을리가 없다.
울산에 고래박물관이 있다. 절벽으로 깎아지른듯 높이 솟은 바위에 크고 작은 고래의 도안들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벽처럼 횡단된 바위에 새긴 그림을 암벽화(岩壁画) 또는 암각화(岩刻画)라고 하는데 그런 암벽화(암각화)가 있는 곳이 바로 토템제의(图腾祭仪)가 진행되던 곳이였다고 긍정할수 있다.그런데 중국에는 4700여년의 력사를 가진 이런 암벽화(암각화)가 여러 곳에 있고 그 내용도 다양한 반면에 고국에는 그런 암벽화가 있는 곳이 울산뿐이며 내용이 고래와 범 두가지토템뿐이라는 점이 사뭇 신비스럽다.이는 고래가 우리 선조들의 중요한 토템이였음을 알려준다.
고래의 도안이 새겨진 울산의 암벽화는 300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고 있다.고래도안이 새겨진 암벽화가 3000년전의 일이라니 놀라운 점은 우리의 선조들이 그 훨씬 이전부터 고래와 접촉하였고 고래를 숭배했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고래의 도안이 새겨진 암벽화가 있는 곳이면 우리의 선조들이 고래를 잡던 해안선이요 고래에 대한 제의가 치러지던 곳임을 의심할 나위 없다.
동물암벽화는 두가지 의미를 가졌을수 있다.하나는 동물이 쉽게 포획되기를 비는 사냥의 주술에 리용되였을 것이고 하나는
동물의 번식을 비는 제의에 리용되였을 것이다.
울산의 고래암벽화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듯 하다.
현대에도 우리 겨레들 속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표현이 남아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서 묘사된 고래의 형상은 사람들의 깊은 사색을 자아낸다.
"바다를 짊어지고/무한대의 무게를 짊어지고/늘쩡늘쩡 헤염쳐 간다"
마치 거대한 고래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그렇게 바다를 그대로 짊어진듯한
거대한 물체가 침착하게 움직인다."무한대의 무게"는 력사의 중임을 암시한다.
고래는 흡사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부조리를 두고 묵묵히 사색하는 인물의 모습이기도 하고 풍운을 질타하는 영웅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고래는 광명의 도래를 위해 고민하고 울부짖는 선각자의 상징이다.
21.개구리
- 봄날의 신령
금와왕신화에 의하면 해부루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를 올리군 했는데 하루는 기도를 올리고 돌아오던 중 곤연이란 못가에 이르러 그가 탄 말이 뚝 멈춰서더니 앞에 놓인 큰돌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였다.괴이하게 여긴 해부루가 수하들을 시켜 돌을 치우고 보니 그 자리의 흙속에 금빛개구리모양의 동자가 있었다.
돌과 흙은 금와를 탄생시킨 모친토템이였다.
훗날 금와왕에게 일곱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개구리의 다산적기능이 전수되였다고 볼수 있다.
개구리의 예언적 기능을 보여주는 신화도 있다.
신화문헌에 의하면 선덕녀왕시절의 어느 겨울날 령묘사 옥문지(玉门池)에 개구리들이 모여서 울어댔다.동면중의 개구리들이 나와서 울었다는건 비상경보가 아닐수 없었다.
선덕녀왕이 급히 두 각간(角干)에게 명하여 각기 정병 1000명을 이끌고 서쪽 교외의 녀근곡(女根谷)에 가서 적병을 포위하게 했다.
의자왕시절인 경신년 4월에는 수만마리의 청개구리가 나무우에서 긴급회의를 하는듯 의론이 분분했다.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가 망했다.
이 두 신화에서 개구리는 나라의 위기를 사람들에게 알린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지금도 우리들속에는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거나 "개구리가 처마밑에 모여들면 장마가 진다"는 등 개구리의 예언적기능을 보여주는 속담들이 남아있다.
북방 개구리는 동면동물로서 달이나 곰과 같이 죽음과 부활의 원리를 갖고있다고 선조들에게 인정되였고 이는 개구리를 신비한 존재로 부상시켜 숭배의 대상이 되였던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개구리"는 "북풍,빙설,동토,잔혹한 무게,잔인한 질식"에 묻힌 북방개구리의 생존환경과 개구리의 생존방식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외롭게 /외롭게 살다가
/일단 감옥에서 뛰쳐나오면/다시는 묻히지 않고저
/다시는 어둠에 갇히지 않고저/다시는 외롭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저/논밭에서/못가에서/나무가지에서/밤마다 지난날의 운명을 울면서/날마다 영구한 봄날을/영구한 화창을 기도한다"
토템시 "개구리"에서 묘사되고 있는 북방 개구리의 운명은 지난 날 불행한 운명의 노예로 살던 우리 민족의 처지와 흡사하다.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고 속박된 몸은 자유를 갈망하는 법이다.
이 시에서 개구리는 영원한 자유와 재생을 지향하는 봄날의 신령이다.
22.산
-위대한 모성 (母性)
우리의 신화문헌에 자못 흥미있는 산신의 이야가가 있다.
화랑도의 통수 김유신이 한창 적국을 멸망시킬 계획을 하는데 백석이란 랑도가 같이 적정을 살피러 가자고 하였다.그들이 길에서 세 녀자를 만났는데 세 녀자가 김유신에게 자기네는 내림(경주 남산),혈례(오산),골화(금강산)의 호국신들인데 백석이란 자가 실은 적국의 간첩이니 조심하라고 가만히 일러주었다.그들의 말을 들은 김유신이 마수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 세 녀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산신들로서 김유신에게 간첩의 진상을 알려주어 화를 면하게 했기에 김유신의 수호신토템이였다.
헌강왕시절에 군신(君臣)이 태평세월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을 때 포석정에서 남산의 산신이 왕의 술상앞에 나타나 춤을 추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왕의 눈에만 보이였다.산신은 나라의 위기를 왕에게 가만히 귀띔했던 수호신토템이였다.
선조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산은 흙토템,돌토템,물토템의 결합체로서 그 봉우리가 하늘의 해,달,별,바람,비,구름,우뢰 등 천신과 가장 가까이 있어서 산토템은 천신과 조화되여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을 탄생시킨 산토템이 인간의 후대를 보호하는 것은 토템설에 부합된다. 김유신과 헌강왕의 신화가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
산에 대한 우리 겨레의 애착은 장례문화에서도 충분히 표현되였다.주검을 묻은 무덤을 "산소"(山所)라고 한것이다.산에서 태여났으니 산으로 돌아가라고 묘를 산에다 썼던 것이다.그런데 산이 없는 곳들에서 들이나 강변에 묘를 써도 그것을 굳이 산소라고 일컫는 여기에 산 숭배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산"을 보자.
"우매때문에/혼돈때문에/밀치우고 짓눌리워진/장대한 근골/장대한 육체/장대한 혈맥이여"
시인은 지각의 압력으로 "밀치우고 짓눌리워 진"산의 고통스러운 형성과정과 그 가운데서 련마된 "장대한 근골/장대한 육체/장대한 혈맥"을 격조높이 읊조리면서 위대한 산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시인의 붓끝에서 산의 위대한 형상은 바다같은 흉금으로 초목과 금수,인간을 안아주고 키워주는 더욱 높은 경지를 이룬다.
"자신의 피로/자신의 살로자신의 정기로/자신의 팔로/모든 날고 기는 생명 안아주고/춤추고 노래하는 령혼 길러낸다"
이것이 바로 산의 품격이다.시인의 붓끝에서 표현된 산의 형상과 산의 품격은 력사의 질곡속에서 불요불굴의 의지를 갖추고 우뚝 일어선 우리 민족과 세상만물을 안아 키우는 위대한 모성(母性)의 상징이다.
23.불
-정열,광명과 신성(神圣)의 상징
혁거세신화에 따르면 옛날 여섯 부락의 수령들이 모여서 왕을 세우려고 할때 양산아래 라정곁에서 번개불빛이 일어나고, 그가운데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절을 하고있었다 한다.다가가 보니 그앞에 자주빛 큰 알이 놓여있었다.그 알에서 태여난 동자를 동천에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다.그가 바로 훗날의 혁거세왕이다.
우뢰(번개)는 해와 더불어 하늘의 불이다.혁거세신화에서 번개불빛은 혁거세의 탄생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수호신토템이다.
희랍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인류를 위하여 불을 훔쳐온 이야기가 있고 중국신화에는 수인씨가 나무와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발명한 이야기가 있다.우리 겨레에게는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가 부싯돌로 불을 일으켰다는 전설도 있다.
이로 보면 하늘의 불은 해와 우뢰고 땅의 불은 돌과 나무라는걸 알수 있다.돌과 돌이 부딪쳐 불꽃이 생기고 나무와 나무가 마찰되여 불이 산생되는만큼지상의 불은 돌과 나무에 깃들어있는 신령인 셈이다.
불이 성과 관련되는 원인은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일으키는 기술에 있다.대목과 발화봉이 마찰하여 생성된 불은 곧 성을 상징한다.때문에 "정염(情焰)에 불탄다"는 말로 이성의 열렬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불은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광명,열정,생명,정화,위력의 신령으로서 올림픽성화에서,성탄절밤의 초불에서,혼사날의 화촉동방에서,서민들의 우등불에서 그 상징이미지를 빛내고 있다.불은 인간의 개화와 진보와 문명을 촉진하였고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옛날 우리 민족에게는 부엌의 불씨를 보존하고 못하는 것을 며느리의 우렬로 여기는 관습이 있었고,조왕신을 모시는 풍속이 있었다.조왕신이란 부엌의 불을 관장하는 신인데 해마다 년말이면 그집 식구들의 행실을 하늘에 고하기 때문에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거나 초상집에 갔다가 돌아온 식구들은 먼저 부엌에 들려 몸에 묻어왔을수 있는 오예(污秽)를 불의 령능(灵能)으로 정화시켜야 했다. 이는 우리 겨레의 화신(火神)숭배에서 나온 풍속들이였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불"에서 불과 인류의 밀접한 관계를 제시하면서 불의 상징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였다.
"불의 위력/불의 신성/숲속에서, 진펄에서/산기슭에서,동굴에서/아름다운 생령 수없이 키우고/따사로운 복음 수없이 전했다
/하여 화로엔 대대로 불씨 묻히고/하여 불을 섬겨 경건한 제사 지낸다/생존도 불에 빌며/풍작도 불에 빌며/정결도 불에 빌며/강녕도 불에 빌며"
이 시에서 표현된 불은 광명과 신성과 정열의 상징이다.
24.해
-생명의 시원,부성(父性)의 원리
옛날 해와 달이 솟는 동해가에 살던 연오랑과 세오녀(延乌郎细乌女)는 매일 남먼저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 일월의 정령(精灵)이 되였던 우리의 시조부(始祖父)와 시조모(始祖母)였다.
선조들의 관념에서 해는 양(阳)이고 양은 강직하여 남성을 대표하고 달은 음(阴)이고 음은 부드러워 녀성을 대표하며 양광(阳光)이 음(물)을 비추어 생명을 배태시킨다.
그래서 해는 부성(父性)의 원리이고 달은 모성(母性)의 원리이며,그렇기에 일월(曰月)의 원리는 생명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다.
고대동이족은 각별히 해를 숭상하였다."현조생상"(玄鸟生商)이란 동이족의 수령 제곡의 부인 간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제비알을 무심히 받아 삼키고 나서 상조의 시조 설을 낳았다고 해서 생긴 전고이다. 조류숭배는 태양숭배에서 파생된 것이였다.고대동이족관념에 태양도 날아다니는 새였다.동이족수령 소호의 토템은 봉황이였는데 봉황은 조류의 왕이였다.
하여 동이족에게서 처음으로 란생신화(卵生神话)가 생겼다.고대선민들은 조류의 알을 해와 달로 여긴 것이다.이 제비알은 바로 일월의 상징이였다.그런 신성한 알이기에 성인을 낳았다고 여긴것이였다.
그 란생설의 영향으로 동이족문화권이였던 우리민족의 조상들에게도 자기 시조의 높은 출자(出自)를 자랑하는 란생신화들이 생겨났다.이를테면 주몽,탈해,혁거세,수로 네시조가 알에서 탄생한다.
그 알들이 바로 우에서 든 해와 달,즉 일월의 상징이다.무릇 생명은 음양의 결합으로 탄생한다.해빛이 류화의 몸을 비추어 임신이 된 일도 해빛이 물을 비추어 생명을 배태시키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이미 생명이 배태된 그 알들이 해와 달이란 음양의 결합물이다.말하자면 해빛이 비친 양수(阳水)가 들어찬 자궁(子宫)과 같다.그러므로 해는 네 시조의 부친토템이고 달은 모친토템이다.
미추왕의 선조 김알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에서 태여났다.이 금빛 함도 기실 일월의 변형된 상징이라 볼수 있다.
선조들의 관념에 이 다섯 조상들은 다 하늘의 뜻에 의해 인간에 내려온 천손(天孙)들이고 태양의 후예들이다.태양은 그들의 공동한 부친토템이다.
시인은 해와 백의민족의 밀착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해의 정기와 조상의 령혼을 하나로 통합시켜 해의 형상은 바로 백의민족 조상의 형상임을 제시하고 있다.
"아득한 태양성에 조상의 하얀 대문 박혀있다./저 영원히 닫기지 않는 조상의 문/자손만대 복받는 원천이여라"
해의 정기와 하나를 이룬 조상의 령혼은 해의 정기와 더불어 영구불멸함을 제시하고 있다.이런 민족이야말로 자손만대를 이어가며 번영륭성할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해의 토템이미지는 항구한 생명의 시원이며 부성의 원리이다.
25.별
-신비한 인생계시
우리의 신화문헌에 의하면 김유신은 등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태여났다고 한다.대덕 자장률사와 원효법사는 그들의 모친들이 별이 품안에 날아드는 꿈으로 잉태되여 낳은 성인들이다.
별은 등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탄생한 김유신과 별의 감응으로 탄생한 자장률사와 원효법사의 부친토템이였다.
유구한 농경시대였던 옛날 우리 민족에게는 별의 움직임을 보고 농사의 풍흉(丰凶)을 판단하는 농점(农占)이란 것이 있었다.음력 2월 6일날 묘성(昂星)에 해당되는 작은 별무리가 달보다 앞서 있으면 풍년,달과 평형이면 평년,달보다 처져있으면 흉년이라고 판단이 나왔다.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천상(天象)을 점치는 것이다.인간이 하늘과 자연과의 일체화를 이루고 하늘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반응한다고 믿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고대에 궁마다 점성가(占星家)가 있었다.별을 보며 점을 치는 리유는 별을 인생계시로 여겼기 때문이다.
선덕녀왕시절에는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한다.첨성대는 별을 관찰하는 높은 탑으로서 일명 점성대(占星台)라고도 했다.
인간과 별의 운명이 상응된다고 여긴 조상들은 지상에 사는 인간의 수효와 하늘에 있는 별의 수효가 같으며 인간의 생사가 별이 뜨고 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별에 관한 우리의 신화에 따르면 이 세상의 맨 처음은 암흑과 혼돈이였다.혼돈에서 차차 새벽기운이 감돌아 하늘에서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물이슬이 솟아올라 세상에 만물이 생겨났는데 동쪽에는 직녀성 서쪽에는 견우성 남쪽에는 로인성 북쪽에는 북극성 가운데는 삼태성이 자리잡고 그런후 옥황상제가 해와 달을 보내주었다고 한다.이 신화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의 관념중에서 별이 일월보다 먼저 생긴 것이다.이는 우리 조상들의 별숭배가 유구한 세월을 이어왔음을 말해준다.
현대사회에도 인류의 별숭배가 보편화되여 많은 나라의 국기들에 별이 수놓였고 많은 군인들의 모휘와 견장에 별이 박혀 빛뿌린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별"에서 별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별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창망한 밤하늘 저 별은 뉘의 눈동자인가"
시인은 시의 첫 련에서 조상들의 사유를 빌어 직접 별과 인간의 상응관계를 표현하고 있다.하지만 시인의 목적은 단지 별과 인간의 상응관계만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이처럼 인간과 별의 상응관계보다도 인간과 별의 감응관계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갔다가도 다시 오며/깜빡깜빡 반짝임은/신기한 암시/야릇한 계발/이에 사람은 별의 눈속에 반짝이고/
별은 사람의 맘속에 반짝인다"
이같이 시인의 붓끝에서 묘사된 별과 인간의 정감교류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인류의 탐색과 필연의 왕국으로부터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려는 인류의 리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된 "별"의 토템이미지는 신비한 인생계시다.
26.구름
-화합과 생성의 상징
단군신화에는 천신 환웅이 인간세상에 내려올 때 바람의 주술신 풍백(风伯),비의 주술신 우사(雨师)와 함께 구름의 주술신인 운사(云师)를 거느리고 와 인간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고 농사를 주관했다고 했다.여기의 운사는 구름신으로서 풍백,우사와 함께 의인화되여 있다.단군신화에서 구름은 바람,비와 함께 천하대지본인 농사를 관장하는 신령들로서 인간을 교화하는 천신 환웅의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천제 해모수가 천지간을 오갈 때 항상 채색구름이 동반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구름은 해모수의 수호신토템이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사륜왕이 죽은뒤 구름토템으로 돌아가 생전에 사모하던 도화녀의 방에 현신했을 때 오색구름이 동반했고 구름의 감응으로 신기한 재주를 가진 비형랑을 낳았다는 "도화녀와 비형랑"신화다.이 신화에서 구름은 비형랑의 탄생토템이다.
우리 선조의 구름숭배는 고분벽화와 칠기(添器)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도 보여진다.
지난날 우리 겨레의 부락입구량켠에 각기 하나의 장승(长拯)을 세워놓았는데 하나는 처용랑이고 하나는 비형랑이였다.처용은 룡토템이고 비형은 구름토템인데 그들의 얼굴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하여 나무말뚝에 새겨서 세운것이 장승이다.북경천안문 동서 량켠에 룡과 구름의 형상을 새긴 기둥이 서있는데 그것이 기실 토템주(图腾柱)인 화표(华表)이다.역시 사귀를 누르는 룡과 구름의 수호신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구름은 바람,비와 맺어져 서로 불가결의 관계로 되고있다."풍운"(风云)이란 바람과 구름을 짝지은 말이고 "운우"(云雨)란 구름과 비를 짝지은 말이다.이는 구름과 바람,구름과 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이외에도 구름과 안개를 짝지운 "운무"(云雾)라는 말이 있고 구름과 물을 짝지운 "운수"(云水)와 높은 벼슬을 상징한 "청운"(青云)이란 말과 학덕이 겸비한 선비를 가리키는 "청운지사(青云之士)"란 말도 있다.
구름은 또한 룡과 맺어져 풍요와 조화를 나타내기도 한다."수호전"에서 호풍환우하는 량산박의 군사 공손승의 별호가 "입운룡(入云龙)",구름속에 들어있는 룡이란 뜻이다."삼국연의"에서 조조가 류비와 청매(青梅)를 두고 술마실 때 시중군이 타래구름을 가리키며 룡이 올라간다고 했다.구름은 흔히 그렇게 룡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간의 숭경을 자아낸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구름"은 구름의 형상에 신성하고 랑만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형체없는 바람의 날개/어여쁜 나비의 날개/가벼운 날새의 날개/모이고 모였네/높은 하늘에 모였네/높았다가도 낮아지며/가다가도 멈춰서며"
이처럼 천태만상의 구름이 높은 하늘에 모이여 다양한 변화를 이루고 있다.이러한 구름은 높은 하늘에 모여 비가 되여 쏟아진다.
"이에/바람의 날개없는 곳에도/바람의 날개 퍼덕이고/나비의 날개없는 곳에도/나비의 날개 퍼덕이고/날새의 날개없는 곳에도/날새의 날개 퍼덕이네"
구름들이 높은 하늘에 모여 비로 쏟아져 "바람의 날개,나비의 날개,날새의 날개"가 없는 곳에도 이 모든 생명력을 생성시키는 그 조화에 대한 랑만적인 묘사,실로 가관이다.여기에서 시인은 구름과 비를 련관시켜 구름이 산생시키는 지상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로 구름의 역할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 시의 중점은 구름의 모임이다.천태만상의 구름의 모임은 우주와 자연의 조화일뿐만이 아니라 인간세상의 화합을 의미한다.
시인이 이 시에서 표현한 구름은 화합과 생성력의 상징이다.
27.바람
-우주의 숨결과 거대한 생성력
단군신화에 바람의 신 풍백(风伯)이 구름의 신 운사(云师),비의 신 우사(雨师)와 함께 인격화되여 환웅을 배동하여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주곡(主谷),주명(主命),주병(主病),주형(主刑),주선악(主善恶) 360가지 일로 홍익인간(弘益人间)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 신화에서 바람은 구름,비와 더불어 천신 환웅의 가족으로서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바람은 구름과 비를 좌우지한다. 유구한 농경시대와 어렵시대 바람이 인간의 생산과 삶에 주는 혜택과 피해가 아주 컸다.바람의 이중성격은 선조들의 경외심을 자아냈다.그래서 바람신을 숭상하게 되였다.
"심청전"에 나오는 림당수는 수심이 깊은 해면인데 거기에서는 세찬 풍랑이 늘 일어 어선이 봉변을 당하기 일수였다.그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선주는 쌀 삼백석으로 열다섯살 나는 처녀 심청이를 사서 림당수에 넣는다.이는 기실 바람신에 대한 제의(祭仪)였다.
바람은 인류의 생산로동뿐아니라 전쟁에도 곧잘 리용되였다.황제(黄帝)가 치우(蚩尤)와 싸울때 치우는 바람의 신 풍백을 데려다가 세찬 바람을 일으키게 했고,제갈량은 동남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战船)을 불살랐다 한다.
세종대왕시절에 풍기대(风旗台)를 세워 풍향(风向)과 풍속(风速)을 관측했는데,지금의 천기예보에서도 풍향과 풍속은 불가결의 요소이다.
바람의 상징성은 아주 풍부하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서러워했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윤동주의 시구에서는 자아성찰이나 신의 계시같은 것을 상징했다면 "바람을 피우다"라는 말에서는 에로시티즘(性爱)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바람"에서 바람의 이중성격을 틀어쥐고 인간에 대한 바람의 혜택과 피해를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생존환경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바람의 집은 삼림/바람의 집은 초원/바람의 집은 크고 작은 푸른 잎과 꽃망울"
시인은 바람이 생성하고 바람이 잠들수 있는 삼림과 초원 그리고 푸른 잎과 꽃망울을 렬거하면서 실은 인간의 생존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할것을 촉구하고 있다.
시인은 "바람의 집"인 삼림과 초원을 파괴한 것은 인간들이고 "바람의 집"을 지어주지 않는 것도 인간들임을 암시하고 있다.바람의 집인 삼림과 초원이 없으면 생태위기를 초래하여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하여 바람은 황사를 일으키고 민둥산을 핥고 광야에서 울부짖으며 "잠들곳이 없어 "헤매인다.
인간과 만물이 호흡을 할수 있는 것은 바람의 덕택이다.이 시에서 시인은 사람들에게 자연과의 공존공생과 생명일체화를 호소하고 있다.
이 시에서 바람은 우주의 숨결이고 천신의 호흡으로서 거대한 생성력을 상징한다.
28.우뢰
-하늘의 화신(火神)
혁거세신화에 우뢰가 등장한다.여섯 부락의 수령들이 왕을 세우려고 할때 언덕아래에서 번개불빛이 비치는 가운데 백마가 꿇어앉아 절을 하고 있었다.그래서 발견된 것이 혁거세가 들어있던 알이였으니 우뢰(번개)는 백마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광명의 도래와 혁거세왕의 탄생을 알려준 수호신토템이였다.
혁거세신화에서 하늘의 불인 우뢰는 광명의 사자로 나타나지만 다른 설화들에서 흔히 부정과 사악에 대한 천신의 징벌을 상징한다.
문무왕(文武王) 2년에 여동(如冬)이란 사내가 어미를 때렸는데 하늘에서 우뢰가 울리며 벼락에 맞아 죽은 일이 있었다.이렇게 민속에서는 우뢰를 인간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천신의 노여움으로 믿고있었다.그래서 사람들은 근신하면서 하늘의 노염을 사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 민족에게 있는 "벼락을 맞을 짓"같은 표현이나 "천벌을 받을 일"이라는 표현도 부정과 사악을 징벌하는 우뢰의 성격에서 파생된 말이 아닌가 싶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우뢰"를 보자.
"컴컴한 광야/흐려진 하늘에/아름찬 새는 날개를 퍼덕퍼덕/무쇠발톱 번쩍인다/아름찬 룡은 믈을 차고 하늘에 치솟아/귀청 째며 포효한다"
시인은 대붕(大鹏)과 거룡(巨龙)이란 신화적동물을 합성시켜 우뢰의 거대한 위력을 표현하고 있다.대붕은 하늘의 새고 룡은 물속의 동물이라 이 두 거대한 동물의 합일(合一)로 천지를 진감하는 우뢰의 형상을 완성시킨다.우뢰는 바람,구름과 함께 대지의 생명수인 비를 생성하는 천신이다.
"우뢰의 화살/우뢰의 도끼/우뢰의 돌멩이/창망한 천지를 짓쫏는다"
"우뢰의 눈 제일 밝고/우뢰의 소리 제일 우렁차고/우뢰의 몸짓 제일 날쌔다/우뢰소리 지나가면/아늑한 봄비 내린다"
시인은 우뢰의 위력을 표현함과 아울러 암흑을 몰아내고 사악을 징벌하는 우뢰의 심상이미지를 발굴해내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된 우뢰의 토템이미지는 부정과 사악을 징벌하고 암흑을 내쫓는 하늘의 화신(火神)이다.
29.비
-생존과 풍요의 상징
비는 단군신화에서 우사 ( 雨师)라는 이름으로 같은 천신인 풍백(风伯),운사(云师)와 함께 천신 환웅을 동반하여 인간세상을 교화하러 내려온다.우사는 인류의 유구한 농경사회에서 생명수의 원천인 비를 주관하는 천신으로서 홍익인간세상을 가꾸려는 환웅의 수호신토템이였다.
고대농경사회에서 비는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는 생존의 근원이였다.가뭄이 들면 왕은 식음을 전페하고 거처를 초가로 옮기고 죄인을 석방했다.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는 것이 왕과 대신이 부덕하여 천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그래서 비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기우제가 성행했다.
우리 민족 기우제의 한 장면을 보면,남자들이 물을 질그릇에 담아 삿갓을 쓴 녀인들의 머리에 들씌운다.이때의 남성은 하늘이요 녀성은 대지이다.남성인 하늘의 정액을 상징하는 비를 녀성인 대지에 불러와 생성과 풍요를 가꾸려는 소원에서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비"는 독특하게 씌여졌다.시인은 비를 인격화하여 공업화시대에 비가 당한 피해를 묘사하므로써 비의 상징이미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루 밤새에 비는 손가락 잘리웠다/하루 밤새에 비는 두 다릴 잘리웠다/하루 밤새에 비는 옷을 홀딱 벗기웠다/하루 밤새에 비는 머리 하나만 달랑 남았다"
비는 이렇게 처참히 유린을 당하고 있다.이토록 비의 운명을 잔혹하게 유린한 장본인은 누구일가.
비는 대지의 만물을 소생시키고 키워준 신령이다.비의 형상과 비의 이미지는 푸른 초원과 무성한 삼림과 혼연일체를 이루어야 한다.그것이 비의 가치이다.그러나 대지의 환경피해는 비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20세기이래 공업화의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들의 자연환경은 엄중하게 파괴되였다.삼림을 마구 찍어내고 땅을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비의 손가락",비의 두 다리","비의 옷"인 삼림과 초원이 사라지고 대지가 황페해진다.하여 홍수가 범람하고 황사가 울부짖고 태양빛이 직사하는 자연재해들이 인류의 생존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비의 토템이미지는 만물의 생존과 풍요의 원리이다.
30.바다
-생명의 고향
탈해왕신화는 까치들에게 옹위된 배에 실려 먼먼 바다를 표류하던 알에서 태여난 석탈해의 고사를 담고 있다. 이 신화에서 바다는 까치와 더불어 탈해왕의 탄생을 지켜준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우리 민족의 바다숭배는 삼면이 해면인 지리적환경에서 산생되였다.
선조들의 관념세계에서 바다는 하늘과 짝지어진 또 다른 피안 신들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탈해왕이나 가락국의 허황후나 다 바다 저 너머에서 바다의 도움으로 온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친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제 몸을 팔아 바다에 뛰여들었던 심청이는 바다에서 예쁜 련꽃으로 환생했고 그 련꽃으로부터 다시 부활한다.바다는 이렇게 재생적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바다는 또한 룡과 맺어져 풍요를 이루고 있다.문무왕이 사후에 동해의 룡으로 되였고 처용은 동해룡왕의 아들이였다.거타지는 활재주로 서해룡왕의 사위가 되였다.
고국 남해안에는 몇가지 금기의 풍속이 있었다.바다에 어로작업을 나갈 경우 녀색을 가까이 해서는 안되며 개고기를 먹어선 안되며 식구나 벗들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서도 안된다.바다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기에 불결한 몸으로 나갈수 없고,경외의 대상인 바다에 나갈 때 경망스러운 말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였다.
"살어리 살어리랏다/바라래 살어리랏다/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바라래 살어리랏다"
이 민요는 바다와 우리 겨레의 밀접한 관계와 우리 민족의 바다숭배를 보여주고 있다.
바다는 달의 운행과 밀접히 련관되여 있다.달이 차면 조수가 밀려오고 달이 기우면 조수가 물러간다.바다와 달의 자연적관계는 녀인과 달의 자연적관계와 일맥상통한다.그러기에 바다는 생명의 고향이며 만물을 낳아준 어머니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로서의 바다,인류와 만물의 고향으로서의 바다에 대한 숭엄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생명을 낳아 키우고/중생을 품에 안고/천지간의 변천 마음에 묻어놓고/인간의 창상 맘속에 묻어놓고/골육상잔의 피비린 칼과/세인이 알수 없는 비밀마저/깊숙이 마음에 묻어두고/천만년 흘러도/입을 철문처럼 다물고 있다"
이 시구들은 만물을 안아키우는 바다의 넓은 흉금과 위대한 모성을 표현하였다.
이 시에서 표현된 바다는 지구상의 조물주이고 생명의 고향이다.
31.산호
-군체(群体)생명의 상징
탈해왕신화는 룡성국의 국왕과 적녀국의 공주사이에서 신기한 알로 태여나 노비와 칠보(七宝)와 배에 실려 바다를 표류하던차 아전포에서 알을 깨고 나온 석탈해의 이야기다.
이야기에 나오는 칠보란 금(金),은(银),유리(琉璃),마노(玛垴),호박(琥珀),산호(珊瑚),차거(砗碟)로서 부모가 탈해에게 준 물건이였다.
우리 민족에게 "십장생"(十长生)이란 것이 있다.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열가지 물체로서 거기에는 태양,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이 포함된다.
산호도 돌이다.그런데 산호는 바다밑의 무수한 산호충(珊瑚蟲)들이,말하자면 미생물들이 한데 융합하여 이루어진 화석(化石)이다.돌이 "십장생"에 들수 있는 리유는 그 견고성과 영구성이다.
돌의 화제는 다양하다.산호도 옥(玉)도 청금석(青金石)도 철광석(铁矿石)도 돌의 족속들이다.산호는 돌중의 꽃이다.산호는 그 아름다움과 견고성으로 하여 인간의 장식품이나 호신부(护身符)로 씌인다.
탈해왕신화에서 산호는 주인공을 보호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한 호신부로서 탈해왕의 수호신토템으로 되고있는 것이다.
시인은 미소하고 취약한 개체생명이 모여 견강하고 장대한 군체생명으로 이룩되는 장엄한 려정을 노래하고 있다.이러한 군체생명이야말로 "흩어지지 않는 합력"이고 "불패의 군체"이다.
토템시 "산호"에서 표현된 산호는 우리 민족 응집력의 상징이고 찬란하고 유구한 군체생명의 상징이다.
32.돌
-.영구한 생명과 불멸의 상징
금와왕(金蛙王)신화에 따르면 늙도록 자식이 없었던 해부루가 산천에 자식소원을 빌고 돌아오다가 말이 큰돌을 마주하고 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돌을 치우고 보니 그 자리에 금빛개구리모양의 동자(童子)가 있었다 한다.그 동자가 훗날의 금와왕이다.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 문다성(文多省
)이나 봉우(奉佑)의 출생도 돌과 관련된다고 한다.그 둘은 다 못중의 석갑(石匣)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돌은 금와와 문다성,봉우를 탄생시킨 모친토템이였다.
산이 많은 고국반도는 돌의 고장이였다.금강산을 비롯하여 산마다 기암괴석들이 솟아있고,신석기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선돌(立石)을 비롯하여 자연석(自然石)을 리용하여 국경,분묘 등을 표시한 돌 문화의 흔적이 많다.
하여 우리 민족은 돌과 밀접한 관계였고 우리의 돌문화는 유구하고도 다양하다.주추돌이며 돌담이며 방치돌이며 맷돌이며 돌절구며 돌이 쓰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었다.돌의 견고성을 리용한 것이다.
돌은 옥 (玉)과 금강석이나 청금석(青金石),철광석(铁矿石)을 포함하여
견고하고 불멸의 상징으 로 우리 민족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되였다.그래서 자식들의 이름에 돌 또는 돌 석(石)자를 많이 넣은 것도 돌처럼 튼튼하고 오래 살라는 념원의 표시로 되였거니 가히 우리 민족의 유구하고 보편적인 돌숭배력사를 알수 있겠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돌"을 감상해 보자.
"돌은 쇠할줄 모르는 기억으로/세상만물의 명멸을/세기풍운의 궤적으로 새기고/썩지 않는 영구로 새긴다"
시인은 돌과 인간이 동화되여 이루어진 강의한 령혼을 제시하므로써 인간과 자연의 조화,그리고 민족과 인류의 영구한 생명력을 촉구하고 있다.
토템시 "돌"에서 표현되고있는 돌은 영구한 생명과 불멸의 상징이다.
33.개
-충성과 의리의 상징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개가 자주 등장한다.
주몽은 그 어머니 류화의 몸에 해빛이 따라다녀서 잉태된 닷되만한 알에서 태여난다.사람이 알을 낳은 것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긴 금와왕은 알을 개에게 던져주었으나 개는 먹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준다.
지철로왕은 음경의 길이가 한자여섯치나 되여 배필을 얻지 못했다.그러다가 개 두마리가 다투어 먹는 인분의 임자를 왕후로 맞을수 있었다.개가 배필을 알려준 것이다.
의자왕은 후기에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가 위태롭게 되였다.경신년(660)6월에 사슴만한 개가 서쪽으로부터 사비수해안에 이르러 왕궁을 향하여 컹컹 짖어대다가 사라졌고,이어서 성안의 개 여러 마리가 길가에 모여 더러는 짖고 더러는 곡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자 흩어져 사라졌다.그일이 있은뒤 얼마 안되여 나라가 멸망되였다.
경명왕시절인 정명 5년 무인년(918)에 사천왕사 벽화속의 개가 갑자기 컹컹 짖어 사흘동안 독경 (读经)을 멈추게 했으되 반나절이 지나자 또 짖었고 ,7년 경진년(920)10월에 벽화(壁画)속의 개가 급히 뛰여나와 뜰을 마구 달리다가 쑥 들어갔다.그후 얼마 안되여 나라가 망했다.
이렇게 개는 신화에서 주몽의 탄생을 보호했고 지철로왕의 혼인을 맺어주었으며 의자왕과 경명왕에게 나라의 위기를 알려준 수호신토템이였다.
우리 민족의 개토템숭배는 고대동이족의 영향에서 비롯되였을 것이다.고대동이족의 사양권에서 개는 소,말,돼지,양,닭과 더불어 6축(六畜)에 속하여 관직명으로 되였었다.
개는 충성과 의리의 대명사로 되여 충견(忠犬)이나 의견(义犬)으로 불리운다.우리 민족의 신화에 개가 수호신토템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개가 사양권에 속하는 동물들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기 때문일것이다.
어렵시대나 농경시대에 사람들은 사냥용이나 가택보호용동물로 개를 많이 길렀고 주인이 출행할때 개가 따라다니며 보호했다.옛날 전북 임실군 오수리 김개인(金盖仁)이란 사람이 개 한마리를 기르고 있었다.하루는 이웃마을 잔치집에서 술에 취해 둑에서 잠들었는데 입에 물었던 담배불이 떨어져 잔디에 불이 붙었다.이때 개가 물에 뛰여들어 온몸에 물을 적셔와 주인의 주변에 뿌리고 그렇게 거듭 해서 주인을 구해내고 저는 타죽었다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절목의 보도에 의하면 몇년전 한 로인이 버림받은 개를 거둬주었는데 로인사후(死后)에 그 개가 3년동안이나 무덤을 지켜주었다는 것이였다. 개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며 개의 수호신역할을 보여주는 새로운 전설이다.의협심이나 효성이 없는 인간을 개보다 못하다고 하는 말이 이래서 생긴것이겠다.
개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아득히 멀고 먼 태고적부터 시작된다.개는 아세아주에서 그들의 선조인 승냥이와 함께 살고있었다.어느날인가 춥고 배고픈 개가 우연히 털이 없는 한무리의 원숭이를 만나 구원을 받는다.그 원숭이들이 최초의 인류였다.그때부터 개는 사람들을 도와 집을 지키고 사냥도 도왔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개"는 바로 인간과 개의 이런 밀접한 관계로부터 개의 성격을 부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개의 충성이고 개의 의리다.개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개는 가난한 주인의 멀건 죽물을 먹으면서도 이웃 부자집의 고기굽는 냄새에 혹하여 주인을 배반하는 일이 없다.
개는 한평생 주인에게 충성하면서도 안일과 탐락을 모르고 사리를 도모할줄 모른다.
이 시에서 개는 충성과 의리의 상징이다.
34.돼지
-풍수(风水)와 재부의 상징
옛날 금돼지에게 잡혀갔던 부인이 낳은 태아를 꺼려서 길에 내버린 원이 있었는데 웬 로파가 그 태아를 거두어 알뜰히 키워주었다 한다.그애가 자라서 성인이 되니 그가 바로 최치원이였다는 것이다.
해빛감응에 의해 태여난 주몽이 들어있는 알을 사람들이 돼지우리에 던졌으나 돼지는 해치지 않고 조심히 피해다녔다.
비처왕(毗处王)시절인 488년에 왕이 천천정으로 행차할때 돼지 두마리가 싸우는데 정신이 팔려 피촌길섶에 멈추었다가 그곳 못에서 나온 로인에게서 "거문고갑을 쏘라"는 편지를 받고 화를 면했다고 한다.
돼지는 또한 국도(国度)의 풍수(风水)를 보는 혜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류리왕 21년에 하늘에 제물로 바치려던 돼지가 도망을 해서 따라가 국내성 위내암(尉那岩)에 이르러 보니 그곳은 산수가 깊고 험요하며 오곡이 풍등하고 미륵과 어별(魚鳖)이 많아 살기 좋은 곳이였다.왕은 직접 그곳을 살펴보고 국도를 그곳에 옮기였다.
왕건(王建)의 조부 작제건(作帝建)은 서해룡왕을 도와준 덕으로 돼지를 얻었는데 돼지를 우리에 가두던차 놓쳐버렸다.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송악(松岳)의 남쪽기슭에 드러누운 돼지를 발견했다.그곳이 뒤날 국도로 되였다.
이 신화들에서 돼지는 직접 최치원의 친족토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주몽과 비처왕의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국도의 풍수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돼지가 우리 조상들의 토템으로 된것은 고대동이족의 돼지토템숭배로 인해서라고 할수 있다.돼지도 동이족의 사양권에서 6축에 들어 관직명으로 되였었다.
조상들의 만물유령관에 따르면 동물들에게도 령혼이 있으며 령적인 동물들은 바로 대지의 신령들이였다.돼지도 례외일수 없었다.고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돼지는 워낙 부지런하고 풍수도 볼줄 알고 재부도 축적할줄 아는 신령이였다.하기에 농가에서 기르는 돼지는 재부축적의 상징이였다.지금도 식당의 카운더에 흔히 금돼지모양의 저축함이 놓여있어서 절약과 축적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현상을 보게 된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돼지"를 보자.
"한쌍의 혜안으로/풍수를 잘 보아/도회에 좋은 터자리 잡아주고/그 발길 머무는 곳 복지였네"
이는 풍수신으로서의 돼지에 대한 찬미다.
"옛적엔 벼슬자리도 얻어 /그 명성 널리 떨쳤건만"
동이족시절에 돼지가 6축의 하나로서 관직명으로 된 사실을 반영하였다.그러나 훗날 돼지의 운명은 달라진다.
"지혜도 갇히우고/근면도 갇히워 /지혜롭고 근면한 정령에게/추한 별명까지 덮씌웠네"
이 시구들은 인간의 토템이였던 돼지가 당하고 있는 봉변을 통하여 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대한 파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그래도 돼지의 고풍스런 풍채/뛰여난 축적능력/풍운속에도 바래지 않았네/오늘 류행되는 저축함은/그의 뚱뚱한 배라 할가/끊지 못하는 그 태줄에는/까마득한 태고의 피 흐르고있네"
이 시구들은 자연의 법칙은 인위적으로 개변할수 없다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돼지의 토템이미지는 풍수와 재부이다.
35.두꺼비
-달의 정령
동이족신화에 의하면 두꺼비의 전신은 상아(嫦娥)였다.
아득히 멀고 먼 옛날,하늘에는 동시에 열개의 해가 떠서 너무 뜨거워 살수 없었다.그 열개의 해들은 천제(天帝)의 아들들이였다.인간세상의 고초를 헤아린 천제는 천신(天神)예에게 해들을 다스리게 했다.예는 활로 아홉개의 해들을 쏴 떨구고 하나만 남겨두었다.인간세상은 살기 좋아졌으나 예는 천제의 노염을 샀다.워낙 천제는 예가 자기의 아들들을 쏘아죽일줄을 몰랐던 것이다.천제는 워낙 천신이였던 예와 그의 안해 상아를 인간세상에 추방하여 서민으로 만들어버렸다.
예는 봉래산에 있는 서왕모(西王母)를 찾아가 선단(仙丹)두알을 구해왔다.그것을 먹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갈수 있는 것이였다.예는 상아에게 선단을 단단히 맡기면서 날을 택해서 함께 먹기로 했다.
그런데 예가 없는 사이 강도를 만난 상아는 그만 두알의 선단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더니 별안간 몸이 둥둥 떠서 삽시간에 태공으로 날아올랐다.천제는 그가 남편 몰래 선단을 훔쳐먹었다고 오해해서 그의 죄를 다스리기 위해 달에 가두어버리고 추한 모습의 두꺼비로 변신시켰다.
그때로부터 두꺼비는 사람들의 멸시와 학대를 받는 존재로 되였다.그러나 죄책감으로 그는 말없이 고통을 참고 영구한 세월 달의 정령(精灵)으로 되여 비가 내리고 날씨가 궂히는 등 천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예언적기능을 소유하게 되였다.그래서 민간에는 "두꺼비 눈물 흘리면 날씨가 궂히고 두꺼비가 처마밑으로 들어가면 비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이같은 동이족의 신화가 고국에 흘러들어가 두꺼비가 달을 숭배하는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된것이였다.평남 강서 고분천장의 일월화(日月画)나 고시대의 와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불화(佛画)등에서 두꺼비가 들어있는 월상(月像)을 볼수 있다.조선민족의 유구한 두꺼비토템숭배를 증명하는 그림들이다.
시인 남영전의 토템시 "두꺼비"는 동이족신화와 조선민족의 두꺼비숭배에 바탕을 깔고 두꺼비의 인내와 희생에 대한 찬미를 통하여 두꺼비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남의 멸시 눈망울에 담고/ 남의 학대 살갗에 배였는가"
두꺼비는 자유를 지향하다가 억눌린 상아의 변신이다.
"천만년 오랜 세월/오해받고도 원망없이/줄욕먹고도 노염없이/강기슭 고요한 물처럼 담담하게/창상지변 겪어냈다"
이 시구들은 인고의 상징인 두꺼비에 대한 찬미이다.
"대대손손 억눌렸어도 /대대손손 이악스레 뻗쳤기로/끝내 생명의 막바지엔/명월을 끌어왔구나
상아는 비록 억울하게 천벌을 맞아 미운 두꺼비로 되였으나 놀라운 인내와 희생정신으로 천년만년 변함없이 달의 정령이 되여 달을 빛내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된 두꺼비의 토템이미지는 인고를 겪어낸 희생자와 달의 정령이다.
36.흰토끼
-백의민족의 상징과 달의 정령(精灵)
고대에 인류는 토끼가 달을 보고 배태한다고 여겼다.이렇게 토끼는 달과 련관된 동물이였다.
고대동이족의 사양권에 속한 소,말,양,개,돼지,닭 6축(六畜)에 이어 후에 사슴과 토끼가 보태져서 8축(八畜)이 되였는데 선조들의 관념에 닭은 해의 정령이였고 토끼는 달의 정령이였다.달의 이칭(异称)인 토월(免月)은 달속에 토끼가 살고있다는 전래의 민간의식에서 유래했다.
상아가 선단(仙丹)을 혼자 먹은 죄로 달에 갇히워 두꺼비로 되였다면 옥토끼는 계수나무아래에서 절구로 장생불사약(长生不死药)을 찧는다고 한다.선단과 장생불사약의 동일한 의미로 하여 선단을 먹은 죄로 두꺼비가 된 상아와 장생불사약을 찧는 옥토끼는 몇천만년을 두고 저렇게 길이길이 달에서 같이 살고있는 것이다.음양의 리치에 따라 달속의 두꺼비를 남성으로 옥토끼를 녀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옥토끼(玉兔)와 흰토끼(白兔)는 의미가 같다.
선조들의 관념에 의하면 토끼는 뒷다리가 튼튼해 잘 뛰므로 사기(邪气)로부터 달아날수 있고 귀가 크므로 장수(长寿)할 상이며 웃입술이 갈라져 녀음(女阴)을 나타내니 다산(多产)을 의미하고 털빛이 희니 백옥같은 선녀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달의 전설은 이러한 토끼의 특징에 두꺼비의 특징이 보태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흰토끼는 백의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우리 민족의 유명한 전설"토끼전"은 미련한 자라를 이겨낸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달과 관련되는 토끼의 신화나 강자를 지혜로 이긴 토끼의 전설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토끼숭배력사를 증명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흰토끼"에서 흰토끼의 선량하고 소심스러운 성격특징을 틀어쥐고 약세군체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어질고 온순한 생령/아늑한 굴 하나 갖고 싶었건만/
언제나 악마가 덮쳐왔기에/쫓기워 도주도주/도주할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흰토끼의 운명으로 나라와 고향을 잃고 정처없이 헤매던 우리 민족의 비참했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이 시구들은 기실 강세의 위협에 처한 민족과 나라들의 운명에 대한 동정을 나타내고 있다.시인은 흰토끼의 형상을 통하여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선량한 인민들의 숙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된 흰토끼의 형상은 백의민족의 상징이고 달의 정령이다.
37.제비
-천조(天鸟)의 상징
동이족수령 제곡의 부인 간적이 어느 여름날 강에서 자매들과 미역을 감다가 우연히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삼키고 임신을 해서 아들 설을 낳으니 그가 자라서 상나라의 시조가 되였다 한다. "현조생상"이란 "까만 새(제비)가 상나라의 시조를 낳았다"는 말이다.제비의 알로 하여 태여난 설의 토템은 제비였다.
동이족은 일월(日月)의 후예로 자처했다.그들의 관념세계에서 조류는 곧 태양의 상징이였는바 봉황,닭,까마귀,제비가 대표적이였다.
경북 안동에 연비사(燕飞寺)라는 절이 있었다.그 연비사라는 이름이 와공하나와 련관되여 있었다. 워낙 그곳의 석불(石佛)을 중심으로 큰 법당(法堂)을 짓게 되였는데 그 법당을 완공하던날 지붕을 덮던 와공(瓦工)하나가 실족을 하여 높은 지붕에서 추락되였다.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와공의 몸에서 홀제 제비 한마리가 나오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그래서 그 법당의 이름을 "연비사"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와공의 토템이 제비였던 것이다.와공이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돌아간 것이다.
연비사의 전설도 우리 조상들의 제비숭배를 말해주고 있다.이 연비사가 세워진 년대는 력사상에서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고국에 세워졌던 황룡사(黄龙寺), 오회사(乌会寺),사자사(狮子寺), 령취사(灵鷲寺)와 더불어 고대의 5대동물토템신앙사찰로 되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제비와 한집에서 살아왔다.아마 조류중 유일하게 제비만이 사람과 한집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비가 대들보에 둥지를 틀게 놔두었고 제비를 식구처럼 대했다.그 실례로 제비를 해치는 뱀을 낫으로 찍어죽이고 제비의 상한 다리를 고쳐준 덕으로 이듬해 봄 제비가 물고온 세알의 박씨를 심어 부자로 된 흥부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흥부전의 이야기도 제비숭배의 반영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제비"는 해마다 남북으로 자리를 옮기는 제비의 특성에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므로써 선량한 제비의 시각을 빌어 세상의 추악한 현상들을 고발하고 있다.
동류간의 략탈과 동족상잔으로 얼룩진 인류의 력사와 인간의 무지와 과욕으로 조성된 대자연의 참혹한 피해를 미물의 시각을 통해 표현한 토템시 "제비"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인간의 평화를 이룩하며 인류의 생존환경을 개선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토템시 "제비"에서 제비는 영구한 평화를 촉구하는 천조의 상징이다.
38.나비
-부활의 상징
고대동이족의 한사람이였던 장자(庄子)는 도가(道家)학파의 대표인물이였다.그가 죽어서 나비로 되였다는 전설이 있다.그의 토템이 나비였던 것이다.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는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의 주인공들인 량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도 동이족이였다.그들도 역시 죽어서 나비토템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공간에서 훨훨 날아예며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동이족의 중요한 토템인 나비는 우리 민족에게 영향을 주었다.아랑신화가
그러하다.
악한 관리의 피해를 입어 원통하게 죽은 아랑이라는 처녀가 새로 부임한 원님과 약조를 하고 나비가 되여 자기를 죽인 그 관속의 모자우에 앉음으로서 범죄자를 짚어낸 이야기다.
이 신화들에서 보면 장자와 량산백,축영대와 아랑의 토템이 나비였다. 이 세 신화는 주인공들이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돌아간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고시조 "청구영언"(青丘永言)에서 나비는 사랑하는 남녀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
"나비야 청산 가자/범나비 너도 가자/가다가 저물거든/꽃에 들어 자고 가자"
여기에서 물론 나비는 남성을 상징하고 꽃은 녀성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나비는 또한 금슬이 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혼수에 많이 쓰이였다.함을 비롯해서 병풍,침구,의류,베개,문보에 쌍나비를 그리거나 수놓았다.
이 시구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볼수 있는 나비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시인은 나비를 하늘의 아롱진 노을과 대지의 아롱진 산꽃으로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이 묘사는 단지 나비의 아름다움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천지간의 신령임을 암시하고 있다.
"나비와 함께 날자/나비와 함께 춤추자/나비의 길은 아름다운 삶의 길/나비의 길은 죽은후 부활의 길/나비의 길/나비의 길/나비의 길"
저자가 필묵을 들이고 있는 "나비의 길"은 기실 평화와 행복에 대한 인간의 추구이며 지향이다.
이 시에서 나비는 천지를 수놓는 봄날의 신령으로 부활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39.대
-수련의 상징
미추왕의 아들 류리가 왕으로 된후의 일이였다.어느날 이서국의 군사가 갑자기 금성을 공격해 왔다.나라에서 비록 방어에 힘썼으나 적군의 기세를 당하지 못해 당황해 할때 홀연 귀에 대잎을 꽂은 무수한 군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적군을 물리치고 사라졌다.다음날 사람들은 미추왕의 릉묘앞에 수북히 쌓인 대잎을 발견하였다.그제야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잎군이 하늘에서 내려와 적군을 물리친것이 선왕의 음덕임을 깨닫고 깊이 감동되였으며 그때부터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现陵)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미추왕과 대잎군"신화가 죽은 미추왕이 대토템으로 돌아가 후대를 보호해준 이야기라면 "문무왕과 만파식적(万波息笛)"신화는 신비한 참대로 만든 피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문대왕이 부친인 문무대왕을 기리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동해 가운데 있는 섬 하나가 감은사쪽으로 떠왔다. 산의 형세는 거부기머리 모양인데 그 우에 낮이면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로 합쳐지는 신비한 대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 신비한 대나무는 죽어서 바다의 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마음을 합쳐 나라에 값을 매길수 없는 보물을 내린 것이였다.왕이 그 대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병이 낫고,가뭄에는 비가 내리고,장마에는 비가 그치며 바다의 풍랑도 잠재울수 있었다. 그리하여 만파식적이라고 불렀다.만파식적은 재난을 물리치는 신기한 피리였다.
대는 문무왕과 김유신의 토템이였던 것이다.그들도 죽어서 대토템으로 돌아가 후대를 보호한 것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였는다/저리도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참대를 읊은 윤선도의 "오우가"다.
중국고대의 시가총집 "시경"의 "위풍"(伟风)에도 대를 찬미한 시구가 있다.
"훌륭한 저 군자여,잘라내고 다듬고 쪼고 갈아 자신을 닦는도다"
대는 일찍부터 이렇게 곧고 바른 군자(君子)라는 인격체를 상징해 왔다.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다리 이름을 "선죽교(善竹桥)"라고 부른 것도 대쪽같은 충절을 표방한 것이다.
그외에 속을 비우는 참대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청정히 하는 수련자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참대는 민간의 수호신으로도 거듭났다.예로부터 정월 초에 참대를 터치워 잡귀를 쫓고 부정을 물리치는 풍속이 있었다.그것이 바로 폭죽(爆竹)이였다.
이것이 참대의 수련이다.참대의 수련은 간고하다.참대는 바로 간고한 수련을 통하여 자신을 갈고 벼린다.
"한마디 퍼내면 그만큼 키가 커지고/한마디 퍼내면 그만큼 허리가 실해 진다/퍼낼수록 한결 성결해지고 /퍼낼수록 한결 충실해진다."
인간의 수련도 마찬가지다.인간이 수련을 통하여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려면 우선 자신을 무자비하게 해부하고 마음을 비워야 할것이다.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속에 있는 온갖 깨끗하지 못한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시인은 이렇게 참대의 형상을 통하여 인간의 수련을 강조하면서 민족의 정신적가치를 발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묘사된 참대는 간고한 수련을 통한 참된 인격을 상징하고 있다.
40.룡
-비약의 상징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룡토템에 관한 여러 편의 신화가 수록되여 있다.
석탈해는 룡성국(龙城国) 국왕의 아들로서 배에 실려 붉은 룡의 호위를 받아 가락국으로 왔으니 룡은 그의 수호신토템이였다.
헌강왕시절 동해 룡의 아들인 처용이 인간세상에 나와 사귀를 물리치는 인간의 수호신토템으로 되였다.
진성왕 시절에 거타지라는 명궁이 기이한 활재주로 서해룡왕을 구원해주고 룡녀와 배필을 무은 이야기를 담은 "거타지와 룡녀"는 인간과 룡의 밀접한 사이를 표현하였다.
무왕 장은 그 모친이 남지(南池)변에 홀로 살면서 우연히 못의 룡과 상관하여 낳은 아들이였다.
견훤은 그 모친이 큰 지렁이와 상관하여 낳은 아들인데 지렁이는 지룡(地龙)이라 불리웠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창녕 조씨(昌宁曹氏)의 시조 조계룡(曹鸡龙)은 그의 모친이 안질을 고치기 위해 룡소에 가서 기도하다가 룡의 감응으로 잉태되였다 한다. 그의 이름이 혁거세의 왕후 알영을 낳은 "계룡"을 답습한것도 사뭇 흥취롭다.
이 신화들에서 룡은 무왕장과 견훤,조계룡을 탄생시킨 부친토템이였다.
우리 민족의 룡토템숭배는 삼면이 해협으로 덮힌 자연지리적특점에서 유래되였다고 볼수 있다.룡과 물은 불가분리의 관계다.사람들은 무릇 물이 있는 곳이면 룡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100여년 전에 지금의 중국 길림성 룡정시의 우물에서 룡이 날아올랐다는 전설이 있다.그 우물이름을 "룡정"(龙井)이라고 하고 그 우물이름이 지명으로 되였다.고국에도 "룡정"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그 외에 "룡호"(龙湖),"룡지"(龙池),"룡소"(龙诏),"룡강",(龙江)"룡담"(龙潭)등 지명들이 있다.또 룡토템을 위한 제의장소도 물가라는 점에서 룡의 수신(水神)적 성격을 알수 있다.룡은 지상계의 비를 관장하는 신령이고 농경사회에서 농사와 룡토템 신앙은 필연적인 관계였다.
우리 민족이 생남을 하면 망자성룡(望子成龙)의 의미로 자식의 이름에 "룡"자를 많이 쓴것도 룡토템숭배의 흔적이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룡"을 보자.
"창공을 날고뛰는 룡이여/천국을 드나드는 사슴의 뿔을/왕가물에도 죽지 않는 약대의 머리를/활촉도 뚫지 못하는 물고기의 비늘을 /번개같이 날랜 매의 발톱을/산악을 진감하는 범의 발바닥을/모두 모두 한몸에 지녔는가/이 모든 날짐들의 령기를 모아/이 모든 길짐승들의 혼백을 모아/변통많은 자유신 되였다"
룡은 이렇게 여러 토템의 특점들을 한데 모아 창조해낸 토템이였다.시인은 이 여러 토템의 특점들로 합성된 룡토템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룡에 대한 심층묘사이다.시인은 이처럼 날고 기는 모든 동물의 령성을 한몸에 지닌 룡의 위력과 조화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천지개벽의 비약과 인간의 희망을 그리고 있다.
토템시 "룡"에서 묘사된 룡은 비약의 상징이다.
41.봉황
-천도(天道)의 상징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혁거세왕의 왕후인 알영은 알영정(阏英井)이라는 우물가에 나타난 계룡(鸡龙)의 옆구리에서 탄생했다.선조들의 관념에 봉황은 닭의 머리에 룡의 꼬리를 가졌고 그래서 계룡은 봉황의 별칭이였다.사람들은 계룡이 나온 그 우물이름을 따서 녀자애의 이름을 "알영"이라 짓고 고이 길러서 혁거세와 배필을 무어주었는데,그 알영왕후가 혁거세왕의 훌륭한 내조로 되였다고 한다.알영을 낳은 계룡이 바로 봉황이였으니 봉황은 알영의 모친토템이였다.
알영이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여난 이래 봉황이 조정에 날아드는 일들이 생겼다고 한다.동명왕 10년에 푸른색 봉황이 왕궁에 날아들었고 류리왕 2년에도 봉황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대무신왕 3년에는 외국에서 보내온 붉은 봉황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길상스러운 봉황은 성천자(圣天子)의 탄생과 덕치(德治)세월에만 나타난다고 한다.봉황의 몸은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지고있다고 한다.즉 머리는 "덕"(德)을, 날개는"의"(义)를,등은"례"(礼)를,가슴은 "인"(仁)을,배는 "신"(信)을 각기 상징한다는 것이다.그래서 봉황은 기린,거북,학과 더불어 "사령"(四灵)에 속한다.
고대 동이족의 각별한 조류숭배가 조류의 왕인 봉황을 부각해 냈다.동이족수령이였던 소호(少昊)의 토템이 봉황이였다.소호가 태여나던 날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봉황이 날아내렸고 그가 보좌에 오르는 날 또 봉황이 궁에 날아들었다 하니 봉황은 소호씨의 수호신토템이였다.
우리 민족이 생남(生男)을 하면 "망자성룡"(望子成龙),출중한 재목으로 자라도록 기원하여 이름자에 "룡"자를 흔히 썼고,생녀(生女)를 하면 "망녀성봉"(望女成凤),아름답고 현숙하게 자랄것을 소원하는 마음으로 이름자에 "봉"자를 흔히 썼다.민간에서는 지금도 남녀쌍둥이를 일컬어 "룡봉태(龙凤胎)"라고 한다.
그럼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봉황"을 보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자신의 어여쁜 채색으로/높은 하늘 꽃구름을 물들이고/그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자신의 유연한 음색으로/대지의 뭇새들을 우짖게 이끈다"
여기에서 시인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봉황의 모습과 소리를 묘사하고 있다.기실 봉황은 룡과 마찬가지로 상상의 동물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상상에 의해 그려지는 봉황은 하늘을 수놓는 신령이요 뭇새들을 이끄는 조류의 왕이다.
"봉황새야 봉황새/세인이 우러르는 봉황새/죽실아니면 먹지 않는/샘물아니면 마시지 않는/태평성세아니면 나타나지 않는/오동나무아니면 깃들지 않는/봉황새야 봉황새"
이 시구들이 묘사하는 봉황은 성결한 새이고 태평성세에만 나타나는 신령이다.
봉황은 대나무열매인 죽실(竹实)만 먹고 오동나무에만 깃든다고 한다.오동나무는 진귀한 나무다. 높이 십미터까지 자라는 나무,봄에 보라색꽃을 피우며 그 목재가 가볍고 휘거나 트지 않아 거문고나 장롱의 재료로 쓰인다.그렇게 진귀한 나무에만 깃드는 봉황은 과연 하늘의 도를 깨친 성결한 신령이다.
이 시에서 묘사된 봉황은 천도의 상징이다.
42.비둘기
-평화의 상징
주몽이 동부여왕자들의 박해를 피해 도주할 때 모친 류화는 보리씨를 목구멍에 감춘 비둘기를 아들에게 날려 보낸다.주몽은 그 비둘기를 활로 쏘아 떨구고 목을 갈라 보리씨를 꺼낸후 상처에 물을 뿜어 되살려내여 돌려보냈다.
이 신화에서 비둘기는 곡모신(谷母神)의 사자(使者)로서 주몽의 건국을 도운 수호신토템이 되고 있다.
비둘기는 인류에게 평화의 사신(使臣)으로 인정되여 왔다.비둘기는 무속(巫俗)을 비롯해 여러 종교에서 신의 사자와 평화의 사신으로 인정되는데,그래서 구약성경의 창세기에도 비둘기가 감람가지를 물고 와 홍수를 만났던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준 이야기가 있다.
비둘기는 날개가 아주 억세고 발달해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단번에 1000킬로미터의 거리를 나는데,밤에도 거침없이 날며 절대 길을 오끼지 않는다.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비둘기의 이런 특성을 리용하여 편지나 소식을 전했다.
비둘기는 원앙새처럼 금슬이 좋은 부부의 상징이기도 하다.비둘기는 암수 한쌍이 한 둥지에 사는데 알을 품는 것도 암수가 번갈아 품는다고 한다.우리 민족에게서 나온 "비둘기장같이 오붓한 살림"이란 말은 바로 그래서 나왔고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의 형용어로 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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