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때 같으면 부녀주임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기분을 만들던 오지서가 오늘은 풀이 죽어 아무 말도 없이 차에서 내리자 바람으로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리가 짜른 부녀주임이 그 뒤를 밟느라고 아득바득 애를 쓰면서 거의 뛰다 싶이 하였다.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따라온 부녀주임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였다. 하지만 오지서는 곁눈도 주지 않고 그냥 황소처럼 씩씩거리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얼마간 따라오던 부녀주임도 맥이 진했는지 저 멀리에서 가쁘게 걸어오고 있었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며 기여들었다. 마을은 벌써 가물가물한 전등불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을의 제일 앞에 덩실하게 세워진 오지서네 집은 아직도 어둑시그레 한것이 꼭 마치 자신의 어수선한 마음과도 같았다.
(이사람이 아직도 저녁을 안하고 어데로 간거냐?)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집문을 떼고 들어섰다.
썰렁한 집안에는 텔레비만 혼자서 돌아가고 있었다. 오지서는 올라가자 바람으로 쏘파에 털썩 들어누웠다. 술기운이 퍼지면서 온몸이 날씬해났다. 오지서는 멍하니 파리똥이 다닥다닥 말라붙은 천정을 초점없이 바라보면서 입가에 쓴 웃음을 띄웠다. 그럴수록 진장이 술상에서 하던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섰다.
<<어이, 오지서 말이야, 당신네 촌에는 녀자 가물이 들었나봐. 아마도 전 향적으로 당신네 부녀주임이 제일 못생긴것 같다이. 아무리 뜯어봐도 고운데라곤 하나도 없네. 그 노래방에서 열창하고있는 노래 <바꿔>를 아는가. 당장 하나 바꾸라구. 좀 멋진 녀성을 부녀주임으로 바꾸란 말이야. 술상에서 당신네 부녀주임을 보면 술맛이 다 떨어진다구. 하하 >>
오지서는 픽- 하고 돌아 누웠다. 그리고는 각 촌의 부녀주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정말 어느 촌의 부녀주임을 보아도 하나같이 인물이 쭈욱 빠진 미녀들이였다. 게다가 술재간까지 좋아서 어지간한 일들은 지부서기가 나서지 않고도 척척 해결하였다. 어딘가 부러움도 없는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다른 사람을 선거한다는것도 말이 아니였다. 워낙 마음씨가 비단같고 촌민들의 일이라면 밤중에도 맨발바람으로 달려가는 오지서였다. 촌민들도 하나같이 오지서를 높이 받들고 있었다. 하여 촌민대회에서도 그 무슨 어려운 문제라도 오지서의 한마디면 끝이였다. 그리고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의견조차 찾아볼수 없었다. 이만하면 오지서도 공작에서는 실력이 상당한것이였다. 하지만 진장어른의 그 한마디가 자꾸만 자신을 어둠의 골짜기로 밀어넣는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였다.
부녀주임도 오지서와 함께 공작을 해온지 어언 10년은 잘되였다. 늘 오지서의 손발이 되여 함께 촌민의 일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해왔다. 비록 잘 생기지는 못했어도 책임감하나만은 아주 높았다. 그리고 요즘 녀성치고도 비교적 정직한 성품이여서 가면을 모르는 스타였다. 언제 한번 자신의 리익을 위해 눈길을 세우는 일도 없이 늘 무던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자신의 사업을 해왔다. 그리고 마을의 부녀들치고는 공부를 비교적 많이 한 녀성이였다. 당시 부녀주임 선거에서도 사리가 밝고 지식이 있다는 우세로 올라온것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순준급의 부녀주임에는 손색이 없었다. 다행이도 그 당시에 부녀주임이 화장실로 갔기에 말이지 그러지 않고 당면에서 그 말을 들었더라면 아마도 백에 구십은 거두어치우려고 나섰을것이다. 실상 오지서도 다른 지서들처럼 멋진 부녀주임하고 회의를 보러 다니는것을 부러워한적도 있었다. 게다가 어른들앞에서 꿀바른 소리들을 한두마디 하면 어지간한 일들은 지서의 노력이 없이도 잘된다는것을 모르는 오지서가 아니였다.
오지서는 혼자서 씨물씨물 웃더니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의 얼굴에는 뭔가 흡족해하는 기색이 그냥 그대로 어려있었다.
그후에도 여러번 진에서 회의를 열었지만 오지서는 변함없이 그냥 부녀주임과 함께 회의를 다녔다. 가끔은 얄팍한 기시도 받았건만 그래도 마음은 하냥 편해서 좋았다. 그럴때마다 오지서는 그냥 픽- 하고 웃고 말았다.
그뒤로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였다. 금방 밥상에 마주 앉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른 아침부터 누가 전화를 하는가?)
혹시 마을의 누구네집에 일이라도 생긴건 아닐가 생각하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보니 진장 어른의 번호가 찍혀있었다.
<<오지서요, 래일 모레 진에서 년말총화 회의를 하겠는데 꼭 참가해야 하오. 알겠소? 이번에는 현의 어른들도 오시니깐 당신네 형상에 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소. 아, 그리구 그 못난 부녀주임도 꼭 같이 오오.>>
전화기를 놓은 오지서는 근심부터 앞섰다. 다른 촌에서는 이런저런 농산물들을 가져다 준다고 야단법석인데 오지서는 그런 노릇을 하기가 참으로 싫었다. 담배를 몇모금 길게 빨던 오지서는 픽- 하고 웃으면 밥상에 마주 앉았다.
어느덧 회의를 보는 날이 돌아왔다. 아침 일찍 오지서는 부녀주임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만은 옷도 좀 멋지게 입고 어느 정도 화장도 하라는 부탁을 억지로 했다. 그리고는 돌아 앉아서 혼자서 씨물씨물 웃었다.
회의실에는 벌써 각촌의 지부서기와 부녀주임들로 흥성흥성 하였다. 무사한 한해를 넘기였고 이젠 좀 쉴수 있는 겨울이 다가왔으니 그럴법도 하였다. 금방 문을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진장이 어느새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지서가 급히 일어서 악수를 하려는데 어느새 진장이 부녀주임의 손을 꼬옥 잡고 몇번이고 수고를 했다는 말을 하였다. 어안이 벙벙해난 오지서는 그저 말없이 진장만 바라보았다.
<<자, 오지서, 오늘은 당신의 자리를 특별히 마련했소. 자 , 내따라오오.>> 하면서 오지서를 주석단으로 끌었다. 하지만 오지서는 그렇게 무작정 끌려갈 사람이 아니였다. 황소처럼 딱 벋치고 서서 갈념을 않았다. 그러자 진장은 오지서를 맨앞의 걸상에 앉히고는 주석단으로 올라갔다.
진장이 직접 회의를 소집하였다.
<<각촌의 여런 지부서기와 부녀주임들 한해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제가 진정부를 대표하여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하면서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지부서기들과 부녀주임들은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쳐댔다. 하지만 오지서와 부녀주임은 아직도 그방 있었던 일에 어열이 풀리지 않았는지 두눈만 떼군하게 뜨고 있었다.
<<제가 이제 곧 현정부로 조종하게 됩니다. 같이 있는 동안 각촌의 지부서기들과 부녀주임들의 열정적인 지지에 다시 한번 뜨거운 경례를 올립니다!>>
또 한바탕의 터질듯한 박수소리가 회의장을 흔들었다.
오지서는 말없이 담배만 풀풀 태웠다.
<<예, 며칠동안 현정부와 진정부의 토론끝에 한분을 물색하여 진장으로 선거하기로 하였습니다. 진장은 반드시 각촌의 지부서기들속에서 한분을 물색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정도 농산물이랑 보내드린 지부서기들은 머리를 쑤욱 들면서 최종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 진장어른께 해해 거리던 지서들은 때가 되였다고 신경을 도사리고 있었다.
<<자, 조용합시다. 이제 최종의 결정을 반포하겠습니다. 영구진 진장에 오용삼지부서기를 임몀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열렬한 박수를 보냅시다.>>
부녀주임이 제일 먼저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쳤다. 그러자 옆에서도 곁다라 박수를 쳤었다. 오지서는 아무말도 없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진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부녀주임도 어느새 달려나와 진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또다시 회의 장에는 터질듯한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을로 돌아온 오지서는 저녁으로 촌민대회를 열고 부녀주임을 지부서기 후보로 당당하게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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