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자식 셋이나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어쩐 일인지 다 제살림에만 열중하고 어머니의 생활엔 전혀 무관심이다. 로인이 앓아도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고 또 생활비거나 약비 같은걸 보내줄념 하지 않는다. 자식들 얼굴이래야 설날에 피뜩 보이군 한다.
김할머니는 넝마주이해서 돈잎이나 만들어 생활한다. 그러니 넝마주이가 김할머니의 유일한 생활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밑이라 벌써부터 설기운이 감돈다. 도처에서 폭죽 터치는 소리가 가담가담 들려오고 또 길가의 난전들에선 벌써 한족들이 설이면 대문에 붙여놓을 알록달록 멋진 주련들을 가득 펼쳐놓고 사구려를 부른다.
김할머니는 이태전에 새로 선 아파트단지부근에 들어섰다. 듣자니 이 아빠트엔 급이 높고 또 잘사는 사람들만 모여서 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앞의 쓰레기주머니를 들추어도 깡통이랑 광천수병사리랑 술병이랑 많이 나온다. 세밑이라 요즘 돈 될만한것들이 많을것이라 여긴 김할머니이기에 오늘 집을 나서자마자 여기부터 들린것이다.
김할머니는 습관적으로 일단원부터 여겨봤다. 누가 이미 한고패 들추어갔는지 아니면 청소공들이 쓰레기운반차에 마구 실어갔는지 별로 눈에 띄이는게 없다.
이때다. 이 단원의 출입문이 삐걱 하고 열리더니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한 귀티가 줄줄 흐르는 녀인이 뭔가 들고 나오더니 문어구에 탕 놓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문안으로 사라진다. 김할머니는 수확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물건을 향해 엉기적거리면서 다가갔다. 김할머니가 다가가보니 사과상자였다. 꾸겨진 흔적도 별로 없고 또 새것이나 다름없는지라 할머니는 상자를 팔아도 돈이 되는 일이라 기쁘게 생각하면서 상자를 집었다. 근데 상자는 묵직했다.(안에 뭐가 있나?)
김할머니는 이상하다싶어서 사과상자를 열어보았다. 금방 포장을 딴듯한 흔적이 있다. 열어보니 안에는 사과가 있었다. 보아하니 하나도 안다친듯하다. 포말그물 포장을 한 사과가 석줄로 정연하게 배렬되여있는데 향긋한 사과향기가 코를 쿡 찔렀다.
《쯧쯧쯧∼ 사람들도 인젠 배가 부른 모양이다. 이 좋은 사과를 다치지도 않고 버리다니? 암튼 이 로친이 불쌍하다고 그리고 설을 쇠라고 과일 보내준거라고 생각하고 가져다 먹어야지. 덕분에 싱싱한 과일 잘 먹게 됐네.》
김할머니는 기쁨에 겨워 사과상자를 넝마주머니에 통채로 넣었다. 그리고 다른데 더 둘러봐도 돈 될만한 물건이 안보이는지라 그리고 사과상자를 통채로 넣은것땜에 주머니가 묵직한지라 할머닌 무거운 걸음으로 낡은 단층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 도착한 할머니가 수확물인 사과상자를 꺼내놓고 다시 펼쳐봤다. 넝마주이를 하면서도 언제나 알뜰살뜰 살림하는 김할머니는 사과가 혹시 썩은게 없나 가려내려고 작심했던것이다. 할머니가 그릇을 가져다 생생한 사과는 한곳에 집중시켜놓고 시간이 흘러 좀 상처가 간 사과는 다른 그릇에 가려냈다. 이렇게 한참 가리느라니 한층이 다 가려지고 다음엔 마분지가 한층 놓여있다. 김할머니는 마분지를 꺼내놓으면서 이렇게 포장도 잘된 사과를 버린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있는 사람들일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마분지를 꺼내놓으니 또 새하얀 백지가 한층 놓여있었다. 김할머니는 백지를 꺼내들었다.
《어마나 이거 뭐냐?》
김할머니는 너무도 놀라서 뒤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곤 가슴을 잡아쥐였다. 널뛰듯 툭툭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김할머니는 목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시 사과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두 손등으로 두눈을 쓱쓱 부비면서 다시 들여다보아도 틀림없었다. 할머니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상자안의 물건을 꺼냈다. 하나, 둘, 셋∼ 도합 스물다섯묶음이였다. 모두 새빨간 좀은 고리타분한듯한 냄새가 푹푹 나는, 다시말하면 바람한점 안맞은 새돈묶음이였다. 할머니 세상에 언제 이렇게 많은 돈을 쥐여볼 꿈이나 꾸어보았으며 또 쥐여보리라 생각이나 했을가? 김할머니는 무둑한 돈무지를 놓고 올리보고 내리보았다. 어찌 보면 괴물 같기도 하고 또 쓸모없는 마분지더미 같기도 하고 또 자그만한 황금산 같기도 했다. 사과상자를 다시 들여다보니 나비꼬리모양으로 접은 종이쪽지가 눈에 띄였다. 김할머니는 조심조심 펼쳐보았다. 해방직후 문맹퇴치반이랍시고 야학교 다닌덕에 간단한 글자를 알아볼수 있는 김할머니다. 그 쪽지내용을 보니 대략 이러했다.
김시장님: 지난해에 잘 돌봐주신 덕에 제가 돈을 잘 벌었습니다. 새해에도 개발구 공업단지건물 공개입찰에 많이 도와주시길 부탁합니다. 시장님만 ok! 하면 만사대길이니깐요. 암튼 명절도 즐겁고 옥체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사과 한상자》 새해 선물로 드립니다.
H시길흥건축유한회사 박길호 드림
그제야 사과 한상자의 내막을 대충 짐작하게 된 김할머니는 이 사과는 범상치 않은 사과라 함부로 《먹어서는 안되는》것임을 희미하게나마 알수 있었다. 할머니는 부랴부랴 돈을 사과상자안에 있던 마분지로 포장하고는 넝마주이를 할 때 쓰는 때가 덕지덕지한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고 종이쪽지를 품속에 깊숙이 간직하고는 문밖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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