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1)
박초란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엄마가 알뜰히 챙겨넣은 송이버섯된장이며 직접 지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달인 간장이며 아끼던 크고작은 오래된 독과 단지들이며 천정에 두렁두렁 달아두었던 말린 명태와 고사리와 버섯들이며 항아리마다 가득했던 콩과 옥수수와 쌀들, 이외에도 한쪽 창고에 가득 장져놓았던 장작들과 석탄무지며 엄마가 장보러 갈 때면 쓰던 작은 끌차와 온갖 도구들, 남김없이 사라졌다.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외에 미처 기억 못한 것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거기에는 그녀가 소녀시절 애독했던 장서들과 친구들과 나눴던 편지들이 먼지를 들쓴 채 숨겨져 있었고 가끔 고향에 갈 때마다 산행을 나서며 신었던 등산화와 딱 한번 밖에 쓰질 않은 등산배낭도 거기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트렁크를 끌고 집에 들어선 엄마는 그 자리에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기가 막혀서… 엄마의 그 때 기분은 그랬을 거고 기가 막힌 엄마는 가까스레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했을 거고 엄마는 그녀가 전화를 받기 무섭게 내가 원, 기가 막혀서, 로 말을 시작했을 거였다.
기가 막혀서… 집에… 창고가… 텅 비였어…
창고는 텅 비여져 있었고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는 것에 엄마는 놀랐다. 창고의 물건들이 하나 둘씩 누군가에 의해서 날라져 가는 동안 아무도 정말로 아무도 엄마한테 전화로라도 소식을 알려주지를 않았다. 엄마가 살고 있는 동네, 그러니까 이미 개발이 시작된 판자촌 막바라지에 잡고 있는 동네는 차일피일 개발을 미루고 있었다. 엄마는 허물기 전까지는 거기서 계속 살 예산이였다. 두달 전 엄마가 떠나올 때까지도 아무런 조짐도 없었던 터였다.
그녀는 그 때 두 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 있었다. 크림이며 블루베리가 듬뿍 들어간 빵들과 요구르트와 멀리 프랑스에서 온 이백오십그람짜리 커피원두 두봉다리가 다였지만 꽤 무거웠고 겨우 이백여원어치의 쇼핑을 하고 딱 이백여원어치 만큼의 행복을 느끼면서 2층 홀에 위치한 태평양카페 앞을 막 지나려고 하고 있던 참이였다. 아래층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나무테이블 우에 빵과 요구르트와 커피가 들어있는 구럭을 내려놓고 나서야 겨우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가 있었다. 소소한 행복은 결국은 그렇듯이 소소했다. 엄마의 ‘기가 막혀서’에서부터 그 소소한 행복은 구만 구천리로 곧장 날아가버렸고 조금씩 그녀는 엄마의 분노에 점점 감염이 되여가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요란스런 음악이 기승스레 빠져나오고 있었다.
“신고했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응, 아니…”
“대체 신고한 거야? 안한 거야?”
분노에 이어 슬슬 엄마에 대한 짜증마저 치밀어오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언제까지 비워야 하는지 언제부터 허물 것인지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집을 비운 엄마 탓인 것처럼 그럴 때까지 뭘 하고 계신 거냐는 타박이 막 입 밖으로 쏟아져나갈 것만 같았다.
“신고를 하러 파출소에 가긴 했는데… 가두에 가서 해결을 하라고 해서… 파출소서 그러더라, 뭐 별거 잃어버린 거 없으면 그냥 두라구… 그 따위 소리 듣고 화가 나서 그냥 나와버렸지…”
“뭐 별거 아니라니… 힘들게 담근 장이며 간장이며 고추장이며 다 독 채로 없어졌는데… 그것들 뿐이겠니… 글쎄…”
엄마는 계속 엄마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렇게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어쩔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됐다. 그만하자… 더 말해 뭘 하겠니? 잃어버린 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모가 왔다. 끊는다…”
엄마는 그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멀리 타지에 살고 있는 딸이 직접적인 도움이 못될 것임을 엄마는 전화를 하기 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듯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갔던 음악이 다시 그녀의 귀에 쿵쾅거리고 들려온다.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 아래로 아래층 매장 입구들이 내려다보이고 훤히 트인 앞쪽으로 멀찍이 사람들을 싣고 올라오고 내려가는 엘레베터가 보인다. 역시 거리의 조용한 카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카페였다. 카페라기보다는 쇼핑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음료 같은 걸 마시면서 쉬여가는 간이역 같은 공간이였다. 간혹 그냥 쇼핑백을 내려놓고 쉬다 가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카페 프런트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배렬되여 있었고 처음부터 카페주인은 꼭 소비해야 하는 손님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좌석이라는 걸 아예 강조할 생각 같은 건 없었던 듯했다.
꽤 묵직해 보이는 쇼핑백에다 녀자의 핸드백까지 든 남자가 옆에 와서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으며 동행한, 의자에 쓰러질 듯 그녀 앞자리로 와서 털썩 들어앉는 녀자에게 뭘 마시겠냐고 묻는다. 그런 뒤 남자는 마지못해 하듯 그녀에게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주변을 살펴본다. 그녀가 눈치를 미처 못 챈 새에 하나 둘 사람들이 와서 주변 테이블을 거의다 채우고 있었다. 인조꽃들로 둘러싸인 으슥진 자리에는 아까부터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부지런히 노트북으로 뭔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그 때에야 그녀도 뭔가 따뜻한 것을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마주앉은 련인들이 시키고 난 뒤 그녀 역시 앞치마를 두른 시원한 단발머리의 카페직원에게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카페의 통나무느낌의 의자에 앉아 한참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앉아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활랑이면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편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집은 괜찮은가?’
그제야 엄마에게 제대로 된 반응을 못해준 것이 마음에 걸렸다는 걸 알아챘다.
‘엄마, 물건 잃어버린 건 괜찮아. 넘 급해하지 말고… 사람 써서 이사짐 나르고.’
문자메시지를 적어내려가다가 와그르르 삭제해버린다.
‘괜찮긴 뭐가 괜찮은데!’
엄마가 오히려 더 화를 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버리기로 작정한 것은 곰인형이였다. 그런 곰돌이인형이 왜? 왜! 집안에 있는 건지 한참을 생각했다. 노란 베개를 베고 반쯤 눈을 감고 누워있는 곰인형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크기가 아니였다. 두 손바닥으로도 넘쳐나는 곰인형을 내려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넌 어데서 왔니? 인형 같은 걸 사들인다는 건 결코 내게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였다.
곰돌이인형은 쏘파 밑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다. 시작부터 쏘파 밑 청소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였다. 물론 시작은 그 문제의 녹나무쏘파였다.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가 말가 한 촘촘한 구멍이 나있는 쏘파는 일단 청소하기조차 힘들었다.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친구가 특별히 화물트럭을 불러 배달까지 해준 삼인용과 두개의 일인용에 탁자까지 세트로 된 쏘파였는데 덩치가 컸다.
“사긴 샀는데… 저지르고 보니 둘 데가 마땅치가 않아서… 너 집 거실이 크지?”
친구는 인부들이 쏘파를 날라들이는 새 내게 말했다.
“내가 결혼하게 되면 가져갈게… 그 때까지 잘 써야 돼… 알았지?”
얄미운 그 친구는 그 때 뿐 아니라 일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남자친구도 없다. 친구가 돌아간 뒤 나는 꽤 넓었던 거실 절반을 날름 차지해버린 쏘파를 노려보면서 씩씩거렸다.
그러니까 나는 자리만 덩실하니 차지하고 청소하기도 힘든 그 쏘파를 내다버리고 싶었다. 이사하고 한달 쯤 됐을 때부터 나는 지쳐있었다. 부피가 어마어마한 쏘파들이 나를 지지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차츰 나는 거실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석달 쯤 되였을 때부터는 거의 침실에만 박혀있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그것이 쏘파 때문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어느 날 침실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쏘파를 도피해서 이러고 있는 거구나…
밤 늦은 시간이였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통화하기에는 약간 저어되는 시간임에도 나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왜?”
친구가 잠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간신히 목소리를 뽑아냈다.
“너 당장 쏘파 가져가. 안 그러면 내다 버릴 거야.”
내가 다짜고짜 어깃장을 놓았다.
“뭐야? 잠든 사람 깨워놓고 홍두깨 같은 소리나 하고…”
친구가 하품을 뽑아대면서 말했다.
“도저히 못 참겠어. 대체 내가 집을 너 쏘파한테 줄라고 산 거니? 너 이달 안으로 가져가질 않으면 내다버릴 거다. 이고 살든 타고 살든 맘대로 해.”
그리고는 전화기를 꺼버렸다. 친구는 그 달도 그 다음달도 그 다음다음달도 오질 않았다.
전화통화 뒤 석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쏘파를 쑤욱 빼냈고 빼낼 때까지만도 그 밑에 곰인형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질 못했다. 결국은 쏘파는 버리질 못했다. 대신 생각지도 못했던 곰인형은 쌓여져 있던 먼지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그 다음날에는 주방양념들을 버렸다. 한두번인가 쓰고 방치해둔 양념들이 봉다리 채로 통 채로 가득했다. 유리양념통에 담겨진 갈색 나는 가루가 대체 뭔 양념인지 비닐봉다리에 가득 담긴 하얀 가루는 또 뭔 가루인지 나는 기억하지를 못했다. 언제 내 손을 거쳐서 주방 서랍에 들어간 건지조차 모호했다.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들을 차곡차곡 찬장에 집어넣으면서 깨달았다. 귀퉁이를 뜯기운 채 혹은 병마개를 개봉한 채 쓰지 않고 방치해둔 똑같은 양념들이 몇개씩 된다는 사실을… 많게는 네댓개도 있었다. 간장이 그랬고 식초가 그랬고 기름도 그랬다. 혼자서 사는 녀자가 밥도 잘해먹지를 않는 녀자가 그 많은 양념들을 왜 갖고 있게 되였는지… 나는 단촐해진 양념통들을 차곡차곡 되넣으면서 생각했다. 살다 보면 밥도 잘해먹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걸가?
버리기는 그렇게 시작이 되였다. 처음은 류통기한이 지난 못쓰는 것들로, 그다음에는 내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조차 기억하질 못한 것들로, 그 다음에는 작아졌거나 망가졌거나 더는 사용이 불가능한 것들로 사냥군 같이 하나씩 찾아내고 가차없이 내다버렸다.
엄마는 그 날 엄마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창고 안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고 집안의 모든 것들은 아니였지만 엄마의 손때 묻은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이모와 함께 짐을 싸면서 엄마는 하나 둘씩 사라져버린 것들을 기억해냈다. 대체로 전기밥통이 없어졌다, 압력솥이 없어졌다, 목욕통이 없어졌다, 두터운 가죽옷이 없어졌다, 반지가 없어졌다, 그랬다.
할아버지가 산 오래된 손마선이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부터 엄마는 더 이상 사라져버린 것들을 헤아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철거가 진행된 란장판을 틈 타 누군가가 집안까지 침입해 휘젓고 간 거였다.
참죽나무싹들이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웃자라 있다. 울퉁불퉁한 산초나무가지마다 손톱눈 만한 잎새들을 매단다. 언젠가 누군가가 산초나무가지를 손안마나 해보라고 한토막 잘 다듬어서 갖다주었던 기억이 난다. 집안 어딘가에 아직 남겨져 있을 터였다. 뻐스에서 내려서 대여한 자전거를 바꿔타고 거리를 달린다. 자주 가던 문방구집에 가기 위해서다. 아직도 노트들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가끔은 아무 노트를 들고 우적우적 옥수수여물을 씹는 당나귀처럼 씹어먹을 때가 있다. 진짜로 종이장을 여물 삼아 씹어먹는단 얘기는 아니고 여물 대신 나는 노트 안의 빈 공간을 우적우적 씹어삼켰다. 필 하나로 충분히 가능하다 해서 기분이 그냥 그랬다.
문방구집은 정법대 뒤켠 골목에 있었다. 우연히 지나다가 들린 문방구집은 꽤 고급진 문방구들로 즐비했고 나는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여기구나… 그 뒤부터 그 곳은 얼마 되질 않는 내가 자주 찾는 공간중 하나가 되였다.
문제의 사달은 역시 버리기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쓸 만한 노트 한권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아챘을 때에는 버리기를 시작해서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내가 아껴뒀던 노트들이 상자 채로 비워져 있었다. 책장의 책들을 비워내면서 같이 치운 것이였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상심했지만 다시 기운을 내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노트를 사러 나가기 위해서였다. 쓰레기를 버릴 쓰레기통이 필요했듯 나는 외로움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분노를 버릴 쓰레기통이 필요했고 그 적임자로 노트를 선택했다. 노트를 선택하기 전엔 술로 풀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끝이 간단명료하지 않았다. 머리도 빠개질 듯 아프고 속은 계속 메슥거리고 이삼일은 그렇게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을 감내하기엔 소위 고통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이없이 부풀려져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몸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에 비해서 그 고통이라고 여겼던 것이 얼마나 사치한 일이였던가, 그런 깨달음을 위해서 계속 술을 선택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임을 깨달아버렸다고나 할가, 나는 좀더 간단명료해지기 바랐을 뿐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노트는 참 좋은 대상이였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쓰는 작가라거나 그런 일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나는 그냥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인일 뿐이였다.
그 남자를 본 건 분명 문방구점에서였다. 남자의 자근자근한 목소리가 별로 크지 않은 건물 안에 울렸다. 카운터 앞을 지날 무렵 카운터의 젊은 녀자가 남자에게 이사 잘했냐고 묻고 있다가 그녀에게 급히 어서오세요, 반겼다.
네…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카운터를 지나 곧장 노트들이 늘여져 있는 뒤쪽으로 들어갔다. 매번 올 때마다 젊은 녀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고 간혹 비슷한 또래의 녀자와 함께 진렬대에 새로 들여온 물건들을 올려놓군 하기도 했다.
주방에서 주전자에 수도물을 받다가 무심히 내다본 창밖엔 노란 베개를 벤 곰인형 하나가 갸우뚱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로수로 심은 오동나무잎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였고 푸른 하늘 아래 싱싱한 빛갈이 강렬하게 두 눈을 자극해왔다. 하얀 곰이였을가 아니면 회색곰이였을가 확신이 서지 않는 곰인형이 파란 쓰레기통 우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늘만 쳐다보는 곰인형과 눈맞춤을 포기하고 나서 막 넘쳐나기 시작한 물을 서둘러 끈다. 그리고는 그릇 하나를 내리워 주전자 가득한 물을 반나마 옮겨놓고는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가스불을 켠다. 흔히 볼 수가 있는 커다란 불수강 주전자였고 물론 이 주전자도 친구 누나가 이민을 가면서 두고 간 물건중의 하나다. 그는 일주일 전에 친구 누나의 아빠트로 이사를 왔고 어쩌면 친구의 충고처럼 이 집을 사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누나가 자신 앞으로 남긴 아빠트를 그의 유일한 친구녀석은 처음부터 그에게 팔고 싶어했다. 어차피 너도 집을 사고 정착해서 살아야지 않겠어? 친구녀석은 볼 때마다 통화할 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들이댔다. 그렇다면 일단 살아봐… 살아보다 보면 그 동네가 좋아져서 다른데 가고 싶어지지 않을 걸. 친구녀석은 누구보다 그를 관심해주고 있었고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친구 누나는 가면서 대부분의 물건을 처분했다. 친구녀석이 인테리어를 다시 할 거라고, 모든 가구들은 다 버릴 거라고 협박을 했다고 했다. 녀석은 그 무렵 목공일에 재미를 들이고 있었고 모든 인테리어를 직접 자신의 두 손으로 하고 싶어했다. 일년 너머 끌어온 친구의 인테리어공사는 끝내는 사람을 써서야 간신히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친구가 나중에도 작업실로 쓸 작정이였던 탓에 집은 거의 휑뎅그렁했다. 가구는 하나씩 친구가 직접 만들 거라고 했지만 침대를 해도 될 만큼 커다란 앉은뱅이 상 하나를 작업한 뒤 친구는 그 일에서 손을 뗐다. 그 덕분에 그는 지금 침대도 없이 매트만 깔고 살게 되였고 결국은 그런 생활도 일주일 만에 금방 습관이 되여서 더 이상 침대가 필요하다는 생각마저도 않게 되였다. 140평의 아빠트 안의 가구라고는 거실의 커다란 상 하나와 방석 하나, 침대매트, 몇벌의 옷이 걸린 나무옷걸이 하나가 전부였다. 그 흔한 옷장 하나 없이도 그는 참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쭉 잘 지낼 것만 같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책소개를 보다가 자신이 별 의도도 없이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런 것도 책으로까지 출판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였다는 게 그는 영 희한한 일 같이 생각되였다. 그는 씩 웃고 나서 곧바로 그 책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건 결코 단순하게 살고 있지 않아서 그래서 필요한 게지…
물이 끓으면서 씩씩 소리를 낸다. 반쯤 되던 물이 그새 졸아서 밑굽에 조금 남아있다. 또 창 앞에 선 채 잠들어버린 거다. 소름이 쭉 돋아난다. 겪고 또 겪어도 놀라기는 처음보다 덜하진 않다. 전기포트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오늘은 당장 나가서 하나 사와야겠군, 결심한다. 그는 그렇게 가끔 까무락하니 곯아떨어지는 버릇이 있다. 그냥 버릇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병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크는 내내 그 덕분에 욕도 많이 먹었다. 게으른 놈, 큉한 놈, 잠귀신이 붙은 놈… 암튼 온갖 소리를 다 들으면서 자랐다. 가장 많이 들은 욕은 좀 정신 차려 자식아, 였다. 기면증, 그것이 병이라는 것은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그는 그즘 거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져 있었다. 치솔질을 하다가 졸고 수업을 듣다가 졸고 시험을 보다가 졸고 밥을 먹다가 졸고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였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무가내로 돋아나기 시작한 수염, 면도질은 그 자체가 커다란 위험이였다. 그 당시 한 숙소에 있던 녀석이 그의 손에서 면도칼을 빼앗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였을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오른손에 들린 면도칼이 번뜩이며 목덜미로 떨어지던 찰나였다고 녀석은 그 일이 있고 난 썩 뒤 술을 마시면서 그에게 말했다. 녀석은 기어코 그의 할아버지가 쓰시던 면도칼을 내버리고 자신이 쓰던 전동면도칼을 쓰도록 했다. 그것은 면바로 발등에 떨구지만 않는다면 여러모로 안전한 기계였다. 그는 할아버지의 유품인 면도칼을 버리기는 아쉬웠지만 안전하지 못한 요소는 미리감치 주변에서 치워버려야 된다는 녀석의 말에 공감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곤혹을 게으른 놈으로나 정신 못 차린 놈으로 해석하지 않고 곤혹으로 받아주는 사람을 만난 셈이였다. 그는 녀석에게 자전거를 탔다가 졸아서 큰 사고를 당할 번할 일이며 졸업시험 때 졸아서 시험지 절반도 채우지 못했던 일이며 첫 데이트에 나갔다가 좋아하는 녀자 앞에서 잠들어버려 녀자친구가 떠나간 일이며 그런 이야기들을 녀석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처음이였다.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면도칼사건으로 녀석과 그 사이에 동지와 같이 끈끈한 뭔가가 생겨났다고 그는 믿었다. 낮 동안 그는 자신이 대여섯번 정도 잠든다고 했고 녀석은 그가 열댓번은 깜빡깜빡 곯아떨어져버린다고 했다. 그로서는 자신보다도 녀석의 말에 더욱 신뢰감이 감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녀석은 누나가 근무하고 있다는 병원으로 그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병증에 관련해 듣게 되였다. 기면증, 그런 병도 있다는 걸, 자신의 증상이 게으름이나 정신 못 차리는 거랑은 아무런 련관이 없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커오면서 부모에게서조차 게으른 놈이라고 정신 차려란 소리를 듣고 자란 것이 너무 억울해지는 순간이였다.
차를 마시고 나서 그는 오랜만에 외출준비를 한다. 가게에도 나가 매장상태를 살펴봐야 되고 나갔던 김에 전기포트도 하나 구입해야 했다. 그는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는다. 창밖 주차장에서 차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다. 갑자기 그는 뭔가가 생각나서 주방 쪽으로 급히 몸을 움직인다. 아직, 노란 베개를 벤 곰이 쓰레기통 우에서 하늘을 향해 웃고 있었다. 이번에 그는 곧장 문을 열고 한달음에 쓰레기통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곰인형을 집어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뭔가 비밀스러운 작전이라도 치른 듯 그의 별로 뜨거워진 적 없는 심장이 툭툭툭 소리를 낸다. 그는 화장실 개수대 안에 곰인형을 던져놓고 화장실문마저 꽁꽁 닫아놓고 나서 거실로 나와 하나 밖에 없는 방석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로서도 자신의 방금 한 행동을 리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남이 버린 곰인형을 주어와야 될 리유 같은 걸 죽었다 깨도 찾아낼 수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 녀자를 떠올렸다. 남들 다 자는 이른 새벽,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던 그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집어들었던 노란 베개를 벤 곰인형을 쓰레기통 우에 살며시 올려놓던 그녀, 조금 뒤 현관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녀자가 현관 맞은 편 문 안에서 산다는 걸 알았다.
가끔 더 근사한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떨가? 그런 생각을 내가 전혀 안해봤던 건 아니다. 문방구 사장이라… 대학을 나오고 나서 한참은 직업다운 직업, 그러니까 금융전업이란 타이틀에 어울릴 만한 직업을 갖고 싶었다. 녀석은 본지 호구라서(이건 순전히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제꺽 누구라도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은행에 취직이 된 반면 나는 겨우 사립학교의 교사자리를 얻게 되였다. 어릴 적부터 돈에 대한 의식을 키워줘야 한다는 학교의 방침 덕분에 나는 엉뚱하게 사범학교를 나온 다른 경쟁자들을 뚫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선생님, 그 호칭에 적응할 만한 시간도 결국은 주어지질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해온 전부의, 유일한 직장 경력이였다. 내가 기면증이라는 희귀병이 있다는 것은 리력서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였다. 또한 그것은 곧바로 들통이 나버릴 일이기도 했다. 한달도 안되여 나는 교장실로 호출을 받았고 나는 내 병명을 터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였다. 결국은 그 학기를 마칠 때까지만 근무하게 하기로 학교 측의 통보를 받게 되였다. 기면증은요, 수업 도중에 깜빡깜빡 졸기는 하기만 결코 옮는 병은 아니랍니다! 그렇게 소리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였다. 그것이 벌써 16년 전 일이였다.
그러니까 그 남자의 이름은 박수남이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딱 학교 다니기 전까지만 그렇게 불렸다. 학교 다닐 나이가 되여서야 호구부에 박수납이라고 적혀있다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등록처의 직원의 실수로 나의 이름은 박수남이 아닌, 박수납이 되여버렸다. 한자로 버젓이 朴书呐라고 적혀져 있었고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박수남이 아닌 박수납으로 불렸다. 내 지독한 잠버릇에 아버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결국은 본인도 수납이 이 놈! 정신 차려! 했다. 참고로 내 아버지는 지독하게 수납을 잘하시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길거리에 떨어진 나사못 하나라도 주어다가 창고에 있는 못통에 집어 넣어두는 그런 분이셨다. 랑비는 죄악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평생의 신조였다. 쓸 만한 것들을 버린다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였다. 아버지는 구두 하나를 삼십오년 신으셨다. 본인도 그러했지만 식구들에게도 그렇게 하길 바라는 정도를 이미 넘어서서 요구를 했다. 한창 클 무렵 옷가지나 신을 새로 사야 할 때면 어머니는 며칠이고 아버지의 눈치를 봐가면서 아버지에게 사정사정하군 했던 광경은 아마도 내 평생 잊혀지지 않을 터였다. 당시 막 성년이 된 작은고모가 립스틱을 가만히 샀다가 빨래방치를 집어든 아버지를 피해 천방지축 도망치던 광경 또한 지금까지도 작은고모를 보면 떠올려지는 기억의 하나였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내가 어린 아이 때부터 들었던 오래된 나무통의 라지오를 듣고 반세기도 훨씬 넘은 오래된 집에서 사신다. 아직도 땔나무를 손수 해다가 때시고 가마에 물을 끓여 낡고 둥그런, 어린 나와 동생들이 써왔던 목욕통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신다. 어머니의 소원은 뜨거운 물이 마음대로 나오는 샤워기가 있고 앉은뱅이 변기가 있는 그런 화장실을 가지는 거였다. 아마도 어머니 평생 이루시기 힘든 소원이 될 것이였다. 한동안 고향집 화장실과 주방을 편하게 고쳐드릴가, 내심 곰곰히 고민해봤던 적이 있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변변한 직장 대신에 문방구를 차렸다는 소식에 벌끈하신 아버지의 노기가 그 때까지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까닭이였다. 아버지는 힘들게 대학공부까지 시킨 자식이 결국 코흘리개 애들이나 대상하는 문방구점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다행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깜빡깜빡 조는 버릇이 있는 자식이 밖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질 않아도 된다는 것에 어머니는 안심스러워했다. 딱 한번 어머니에게 전화로 화장실을 고쳐줄가? 물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좋긴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다, 하셨다. 어머니는 그 순간에서 자신의 소원보다도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아버지의 성정을 더 걱정하고 계셨다.
문방구점은 대학가의 뒤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오셨어요?”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이양이 반색한다. 벌써 구년째 이양은 가게일을 봐주고 있었다. 처음 이양을 보았을 때를 그는 기억한다. 고집스러워보이는 눈매를 갖고 있는, 아직 시골에서 자란 아이다운 수더분함과 수줍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의 수더분함과 수줍음이 마음에 들었다. 9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당시 스무살이던 이양은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련애도 좀 하고 그래. 그가 매번 큰오빠처럼 다그쳐보지만 이양은 그가 알기에는 한번도 련애를 한 적이 없다. 한창나이의 녀자애를 그렇게 가게에 묶어두는 것이 안스러워서 점원을 차례로 두명 더 들였지만 이양은 이양 대로 가게에 하루종일 붙어있었다. 너 어떡하니? 좋은 시절을 이런 가게 안에서 다 흘려보내서… 3년 전인가, 한번 그가 롱담 절반 진담 절반 그녀에게 터놓았던 적 있다. 그럼 사장님이 책임지세요. 이양이 그의 눈을 쳐다보면서 대답했고 그는 그만 아차, 싶어 황급히 말을 돌려야 했다. 어데 적당한 사람이 없나 좀 알아볼가? 그 동안 이양은 점점 가게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여갔고 매일마다 가게에 붙어있어야 하던 그가 지금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게에 얼굴을 내밀어도 될 정도로 제법 잘 돌아갈 수가 있게 된 것도 이양이 있어 가능한 일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사는 잘하셨어요?”
이양이 그에게 묻다가 젊은 녀자손님이 들어서자 깍듯이 어서 오세요, 인사를 했다.
급히 노트코너로 들어가는 녀자손님의 어깨가 낯익다는 것이 느껴져서 그가 다시 돌아보았지만 녀자는 이미 매장 깊숙이 들어간 뒤였다.
“이사는 잘하셨어요?”
이양이 다시 물었다. 얼마 전까지만도 그는 이양과 또 다른 한명의 점원과 셋이서 한 아빠트에서 살았다. 방 두개에 거실이 큰 아빠트였고 방 하나를 그가 썼고 다른 방 하나를 이양과 민이가 썼다. 민이가 오기 전까지는 이양과 그가 방 하나하나씩 쓰면서 살았고 지금은 나간 훅이란 남자애가 거실에서 살았다. 그동안에 서너번 점원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여온 셈이다. 가게는 장사가 잘되였고 그는 더 이상 근사한 직장을 나가는 친구들이 부럽지가 않았다.
“잘했어. 좀 멀긴 해도 조용해서 좋아.”
그가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요… 또 잠든 줄…”
이양이 조금 머리를 돌리고 웃었다.
“뭐? 뭐라고?”
그가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이양은 깜빡깜빡 잠들어버리는 그의 잠버릇에 대해서, 몇해 전까지만도 담배를 피운 과거에 대해서도, 한동안 담배 대신 필을 손가락에 끼우고 돌려대는 새로운 버릇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지붕 아래서 살아오는 동안, 땀 흘리며 같이 일하는 동안, 이양과 그는 가족 아닌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여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그것이 조금 불편해짐을 느꼈다. 이양은 스스로 그를 위한 모든 일을 떠맡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여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거뒀다. 처음에는 집안에 곳곳에 도는 온기 때문에 그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잘 알고 있었고 이양이나 다른 점원들 외로움까지 보듬고저 했다. 그것이 선뜻 자신의 아빠트의 공간을 내주도록 만든 원인이였다. 한번도 그는 이양을 이성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집안일을 하고 있는 이양과 마주치면 웬지 모르게 불편해졌다. 안해가 생긴다면 저기 저러고 있질 않을가? 그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령역이 침범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기 전에 그는 떠나야 했다. 더는 묵인하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였다. 이양 혼자서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도리가 아닌 듯 싶었다. 이양도 그가 이사를 나가게 된 리유를 알가?
“집들이 한번 해야죠?”
이양이 물었다.
“집들이는 무슨… 번거롭게.”
그는 아예 이양도 직원중 아무도, 어쩌면 친구들도 새로 살게 된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는 그 공간을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품이 나오려고 한다. 약간 고개를 돌려 조금씩 하품을 삼킨다. 이양의 앞에서 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양은 스스로 너무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듯했다. 그는 한번도 이양에게 자신의 기면증에 대해 말했던 적이 없다. 그녀도 그의 기면증을 자주 곯아떨어지는 잠버릇이나 피곤함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다만 그녀는 그의 잠버릇을 비난하는 대신 곯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곯아떨어진다면 그녀는 그럴 것이다. 아유, 잠꾸러기 우리 꿀꿀이 또 잠들었네… 그녀는 그렇게 사람을 당혹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처음 쯧쯧 혀를 다시는 이양을 보았을 때 그는 어린 그녀의 표정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싫지는 않았다. 싫지는 않다 해서 난처하지 않았던 건 아니였다. 열한살이나 어린 녀자애한테서 우리 꿀꿀이, 그런 얘기를 듣는다는 건, 언제 봐도 쑥스러운 일이였다.
갈색의 줄무늬가 있는 운동화가 카운터 쪽으로 절주 있게 움직여왔다. 그가 머리를 들었다. 노트를 집어든 녀자가 거기 서있었다. 그가 카운터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녀자가 잠간 그에게 눈길을 돌리나 싶더니 인츰 이양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이거로 주세요.”
이양이 계산을 하는 새 그는 카운터에서 한발 물러선 채 깜빡 존다. 까무룩 잠 속에 빠져드는 순간, 매번 그는 내가 지금 자고 있구나, 확인에 재삼 실패한다. 그 순간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마저도.
텅 비여버린 상 우에 노트를 꺼내놓는다. 기분이 좋아진다. 비여있는 노트장을 바라보고 있는 일도 만족스러워진다. 애니메이션영화의 최초의 토끼 경찰관 주디 홉스가 두 귀를 빨쭉하고 웃고 있는 표지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다지 두텁지가 않은 두께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몇개월 간 쓰고 있던 검은색 가죽노트가 점점 지겨워지고 있던 참이였다. 좀더 활발하고 무게 있어보이는 것보다는 가벼운 걸로 바꾸고 싶었다. 빼곡이 적어넣었어도 금방 채워질 수가 있는 그런, 가볍다는 건 결코 그 무게 뿐은 아닐 텐데 싶어지면서 나는 나를 알 수 없게 지지누르고 있는 것들과 노트와의 관계를 잠시 생각해본다.
새벽 눈을 뜨면서 강렬한 목소리를 나는 분명 들었다. 그래, 잘못된 거였어! 아예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 한낮이 되여 뻐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면서 차창 밖 점점 푸르러져가는 나무잎들을 바라보면 후회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후회가 아닌가 싶은 의심 또한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후회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였다.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비난하고 타매해 스스로를 최악의 상황에 밀어넣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했다.
뻐스에서 내려 자전거로 바꿔타면서 나는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걸 의식했다. 자전거를 타고 교정을 누비던 그 때의 녀자아이가 더 이상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이제 2년이 지나면 나도 사십이 되는구나, 하고. 사십대가 아니라 삼십대라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 뭔 재미로 살지? 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지금 그 시기를 꾸준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니?
사람들은 이제 결혼은 했냐고가 아니라 아이가 몇살이냐고 혹은 몇이냐고 묻는다. 처음엔 그 물음 자체가 황당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무렇지 않은 걸 봐서는 분명 나도 나이를 먹었다. 결혼을 안했으니 당연히 아이는 없다. 이제 몇해만 지나면 출산적임기를 넘어가고 어쩌면 아이 같은 건 내 생에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아예 들지가 않는다. 결혼에 관해 조금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건 엄마가 와서 같이 있을 때 뿐이였다. 아주 잠간 여기저기에서 녀배우들이 란자를 랭동시켜 보관한다는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저걸 해야 되나? 고민 정도는 해본 적이 있다.
버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 나는 집안을 모조리 비우고 텅 빈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여러 나라를 돌면서 사들였던 기념품들과 아빠트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을 비워내고 싶어졌다. 그것은 그것을 사들일 때와 비슷한 열정의 무게로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즘 나는 조금 랭정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떤 리유를 불문하고 그 어떤 열정이 일렁인다는 건 내가 알 수 없는 어데론가 무분별하게 흘러갈 수가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테니까.
내가 돈을 벌고 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엄마에게 아빠트를 사드리는 일이였다. 고향집과 가까운 도시의 아빠트를 사고 엄마에게 들어가서 살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싫다고 했다. 일흔이 아직 안된 년세였을 적이였지만 엄마는 익숙한 곳에서 살기를 원했다. 허름한 집이긴 하지만 이미 정든 곳이기도 하고 앞마당에 밭도 있어서 떠날 수가 없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흔적이 곳곳에 배인 그 곳을 정작 내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였다.
노트에 끄적이다 말고 나는 거실을 휘둘러본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6인용 단풍나무식탁을 제외하고 거실에만도 상이 참 많다. 베란다에 유리테이블 하나, 커다란 쏘파에 딸린 차탁으로 쓰고 있는 앉은뱅이 상 하나, 거실에만 상이 세개나 된다. 식구는 나 하나. 혼자서 왜 이렇게 많은 상이 필요한 거지? 좁다란 서재에도 커다란 책상이 하나 있고 2년 전인가 열성을 보였던 거문고가 놓인 앉은뱅이 긴 상이 하나 있고 침실에도 화장품을 올려놓은 소나무원목상과 읽은 혹은 읽을 책을 올려놓거나 차 한잔을 올려놓기도 하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이제는 고물이 된 개다리 소반 하나가 거기 머리맡에 놓여있다. 북쪽 방에도 어마어마한 무게와 크기의 황화리나무 차탁 하나가 주인처럼 낮다랗게 틀고 앉아 있을 터였다. 나는 어느새 노트 앞에서 일어나서 이 방 저 방 기웃거리고 있었다.
상을, 버려야겠다!
나는 중대한 결정을 한 듯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상들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밥상도 필요하고 차탁도 필요한 듯하고 책상도 필요하고 차탁이 두개니까 그걸 하나 버려야 하나? 헌데 하나는 언젠가는 친구에게 돌려줘야 할 쏘파세트로 된 거고 하나는 넘 무겁고 또 비싼 건데… 베란다에는 유리상 밖에 놓을 수가 없는데 해볕 때문에… 결국은 화장품을 올려놓은 소나무원목상을 빼서 버리기로 한다. 화장품은 그냥 화장실 밖 세면대 우의 나무가름대에 올려놓기로 하고.
그녀는 나무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 좋았다. 나무의 싱싱한 냄새. 대패날에 잘게 부서진 대패밥에서 나는 나무의 속살냄새. 어린 그녀는 그것이 아버지의 냄새였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나 옷자락 어딘가에는 늘 대패밥이나 톱밥이 락엽마냥 붙어있었고 문밖에서부터 툭툭 옷자락을 털고 바지를 터는 소리로써 어린 그녀는 아버지가 왔음을 알아챘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문을 열기도 전부터 우리 딸, 아빠 왔다. 어린 그녀를 찾던 아버지는 결국은 그녀와 엄마를 버렸다. 그녀가 열두살 때 일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친구라는 사람의 일을 도우러 나갔다 사고를 당했다. 새로 산 전기톱이라고 했다. 전기톱에 나무처럼 잘리웠을 아버지의 다리, 그녀는 지금도 가끔 꿈속에서 본다. 동맥이 잘려 피를 철철 흘리는 아버지의 다리를. 한번도 전기톱을 다뤄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친구는 왜 전기톱을 샀을가? 그리고 호기롭게 통나무를 벤다고 설쳤을가? 통나무 대신에 아버지의 다리를 베면서 말이다. 그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다리도 아버지의 얼굴도 아버지의 시신도 본 적이 없다. 장례식 내내 어린 그녀의 기억에 남겨져 있는 건 아버지가 어떻게 저 조그마한 골회함에 들어갔을가? 그 궁금증 뿐이였다. 아버지는 그 조그마한 골회함에 담겨져서 그녀가 클 때까지 화장터의 골회함 보관처에 보관되여 있었다. 결국 그녀는 엄마에게 아빠트를 사드리는 대신에 아빠가 누울 자리를 양지바른 곳에 마련했다. 죽어서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든다는 걸 그녀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내다버리는 일도 힘들다. 무거운 원목상을 낑낑거리고 거실로 끌고 나왔다. 나는 혼자 하는 일에 이제 습관이 되여서 웬만한 것은 다 절로 한다. 혼자서 살다 보면 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꽤 많이 생긴다. 두터운 소나무 널판으로 만든 화장대로 써온 그 상은 그러니까 내가 직접 짠 상이다. 아니, 내가 사람을 시켜서 직접 짠 상이다. 목수의 딸이지만 그렇다고 손재주마저 이어받는 건 아니였다. 나는 칼날을 톱날을, 날카로운 날이 있는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이 손톱깎개나 작은 가위 같은 것이랄지라도. 그래서 료리 같은 건 죽어도 못해먹는다. 엄마가 잃어버린 물건 중에는 아버지가 쓰던 대패나 톱 같은 도구들도 있었을 터였다.
거실의 밥상 앞에 앉아 한숨 돌린다. 무겁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소나무 냄새.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나무냄새가 솔솔 나는 나무상을 내다 버릴 생각을 했다니… 죄의식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어느 순간 나는 말도 안되는 일임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아침나절이 다 지나가 있다. 산보를 나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나는 내올 때보다 더 무거워진 소나무원목상을 다시 침실 침대의 머리맡에 갖다 놓는다. 다른 걸, 일단 다른 걸 먼저 버리는 걸로…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늦은 산보길에 나선다. 이렇게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진행하지 않으면 금방 일상은 엿가락처럼 흐물흐물 아무런 모양을 잡아볼 새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혼자 사는 사람은, 특히 직장이나 꼭 해야 할 일 따위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일과를 만들고 진행시켜야 한다. 나오는 길에 나는 현관에 내다 놓은, 외국 려행 때 사들고 왔던 몇개의 기념품이 담긴 종이봉투를 쓰레기통 곁에 기대여 놓았다. 아직은 쓰레기는 아닌 것 같았으므로.
“언제 이사한 집 보여주실 거예요?”
이양이 또 물었다.
“그거야…”
“필요한 거 있으시면 사갖고 갈려구요. 다 두고 가셔서 장만해야 할 것이 많을 텐데…”
“그럴 건 없구… 간단한 게 좋아.”
그는 나올 때 자신의 옷가지와 덮던 이불만 들고 나왔다. 다른 물건들은 어차피 거기서도 계속 써야 할 것들이였고 꼭 필요하게 되면 그 때 그 때 살 예정이였다. 친구녀석이 쓰던 무거운 후라이팬과 그릇 세개가 부엌살림 전부였지만 그다지 더 필요한 것도 없어보였다. 거기에 맞게 국수를 삶아 먹으면 되였다. 아직 밥은 한번도 시도해본 적 없지만 그는 조금씩 부족한 부분마저 즐기고 있었다. 근사한 다기가 없어도 그냥 유리컵에 차잎을 넣고 물을 부어마시면 그만, 도마가 없어도 그냥 접시에 대고 대충 썰어서 국에 넣으면 그만, 화병이 없어도 그냥 마시고 남은 와인병에 산보길에 꺾어온 도화 한가지를 꽂아넣으면 그만, 그렇게 살다 보니 그만그만인 것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는 불편함마저 감수하면서 즐기고 있었지만 그다지 불편하다는 생각마저도 들지가 않았다.
“지금 어디세요?”
이양은 통화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듯 끈덕지게 그를 붙잡았다. 그는 빨리 통화를 끝내고 싶었다.
“집이야. 별일 없으면 이만.”
그는 재빨리 말을 끊어버리고 빨간 버튼을 눌러버린다. 그는 이양에게서 자꾸 이양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자신을 본다. 뭔 사이라도 되는 것도 아니면서. 그는 그 때마다 절레절레 머리를 젓는다. 찝찝하긴 마찬가지였다.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그는 산보를 나오면서 굳이 휴대폰을 갖고 나온 데 대해 막 후회하는 중이였다. 그는 서둘러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다. 지금 산보를 하고 있는 이 순간만은 누군가에게 계속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는 계속해서 아빠트 단지를 돈다. 아침이면 그는 물 한잔을 마시고 나서 아침산보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렇게라도 하면 좀더 하루종일 정신이 나서 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한 산보가 지금은 아예 습관으로 굳어져버렸다. 이양도 물론 잘 알고 있는 습관이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등뒤가 쌔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 산보. 이양. 습관.
그가 돌아섰다. 꽃이 지기 시작하고 이파리를 너울거리기 시작한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 그의 짐작대로 이양이 서있었다. 한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 밑에는 커다란, 무거워보이는 종이박스를 내려놓은 채.
“어떻게… 왔어? 왔으면 왔다고…”
화가 난 듯 그를 노려보던 이양이 가까스레 웃음을 물더니 그에게 손을 저었다. 그가 스적스적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걸 갖다만 주려고 했는데… 다신 그러지 마세요.”
다가설 때까지만도 이양이 이번 쯤은 뭐라고 화를 낼 줄로만 알았던 그는 이양의 말에 고마워해야 되나 미안해야 되나 어리둥절했다. 이양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감출 줄 알았다. 그런 이양이 대견스럽다가 이어 감탄스럽다가 지금은 무섭기도 했다. 이양의 부드러운 말투 뒤에 숨겨져 있는 로련함에 그는 당황했고 어느 순간 징그러워졌다. 그냥, 화가 난다고 소릴 지르는 게 더 좋을 것만 같이 갑갑하고 피곤했다. 그녀가 화를 안으로 삭히면서 스스로를 감추고저 할수록 그를 향해 올가미 같이 서서히 옥죄여오는 알 수 없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가 얻어낸 결론은 그녀가 그를 짝사랑하고 있다였다.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거요…”
이양이 낑낑거리고 박스를 든다.
그가 한걸음 다가서서 박스를 받았다. 무겁다.
“뭔데?”
그가 물었다.
“전기밥가마예요. 아버지가 집에 하나 더 있다고 해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한국 거라서 쓰기 좋을 거예요.”
조선족이긴 하지만 그는 굳이 한국산을 찾는 사람은 아니였다.
“그냥 쓰지 무거운 걸 갖고 오긴…”
“우릴 쓰라고 두고 와서 어차피 하나 사야 하잖아요. 저 오늘 오전 가게 휴식이예요. 이따 점심에 나가기로 했어요. 두사람이서 잘 보고 있을 거예요…”
이양은 인츰 돌아설 태세가 아니였다. 별수 없는 일이였다. 아침부터 근처의 카페나 식당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고… 그는 망설였지만 결국은 박스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의 등뒤로 조심스럽게 따라오던 이양이 어느새 그와 나란히 서서 그의 손에 들린 박스 한쪽 모서리를 받들어 든다.
그러면서 이양이 혼자소리처럼 중얼댔다.
“동네가 참 조용하네? 좋다…”
출처:2017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