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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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울눈 댓글:  조회:1141  추천:36  2009-03-04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리가 옷짐을 싸들고 IMG골프장에서 한 500메터 떨어진 《홀인원가든》에 찾아가는 날이자 올들어 장사가 젤 바쁜 날이였다.    출근 첫날은 식당일이라곤 해보지도 못한 유리한텐 정말 곤혹스러운 날이였다. 사장이고 종업원들이고 다 제할 일에 눈코뜰사이 없이 보내는지라 유리가 식당에 들어섰어도 알은체를 안했다. 남들이 팽이처럼 돌아칠 때 아무리 첫날로 것도 남의 소개로 일하러 찾아왔어도 이렇게 꿔온 보리자루처럼 서있는것이 일이 아님을 여긴 유리는 나이가 듬직한 녀인한테 눈길을 주면서 《저요, 김선생님의 소개로 여기 일하러 왔는데요. 짐부터 둬야겠네요.》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녀인은 《아, 그래요? 그럼 우선 짐부터 저기 창고에 갖다 넣으세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을 쟁반에 담아 들고 다급히 손님방에 들어가는것이였다. 그 복잡한 가운데서도 그 녀인의 기우뚱거리는 걸음걸이가 유리의 눈에 유표하게 안겨왔다.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한번 보니 녀인의 허리가 구부정한것이였다.(허리병이라도 있는건가?) 유리는 자기나름대로 추측하고 사장이 일맡기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유리한테 일 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리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절로 주방에 쑥 들어가서 그릇도 부시고 채소를 씻기도 하였다.     오후 한시쯤 되자 손님이 뜸했다. 주방안의 일군들도 그때에야 한숨을 내쉴수가 있었다. 료리사 녀인이 《자 , 절 따라 와요.》하고는 유리를 데리고 홀로 나갔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뜬 상은 반찬그릇들이며 술잔이며 물수건들이 어수선히 널려있다. 주방장은 유리한테 일하는 순서와 방법을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주방장 보기에도 유리가 별로 일을 해본 솜씨가 아니라고 여겨선지 《천천히 배우면서 열심히 하세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주방에 들어갔다. 그러니 유리는 주방서 한두시간 《실습》하고 홀로 나온셈이다.    10월이 되자 날씨는 제법 싸늘했다. 《홀인원가든》의 정원앞의  이름모를 나무잎도 어느덧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그중 어떤 나무 잎사귀는 계절 먼저 달려왔는지 벌써 락엽이 되여 바람에 어수선히 뒹글어 다닌다.    《홀인원가든》에선 매달 첫째 월요일하고 둘째 월요일에 휴식한다. 래일은 마침 첫째 월요일이라 휴식하는 날이다. 시골의 가을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유달리 싸늘하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유리가 사장보고 《사장님, 저 오늘 옷 가질러 서울 가려고 하는데요. 인젠 추워서 갖고 온 옷으론 안되겠어요.》라고 하니 사장은 《저녁 9시에 가.》라고 쌀쌀맞게 대답한다.    가을비는 지꿎게도 저녁이 되였어도 끊을줄 몰랐다. 저녁 8시까지 된장찌개 한그릇 팔지 못했다.    사장며느리인 정미가 《유리이모, 서울 가신다면서요. 손님도 없는데 왜 지금도 안가고 있어요?》라고 올롱하니 유리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9시에 가라 했어.》    사장은 미정이를 할끔 흘겨보면서 한마디 한다.     손님하나 없는데 밤길을 한시간이라도 먼저 보내면 죽나하고 유리는 고깝게 생각했다.     언제 내렸던가싶게 련속 나흘동안 징그러울 정도로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끊고 하늘이 말갛게 개였다. 비온뒤 가을하늘은 한결 푸르렀다. 비가 많이 내린 통에 골프 치러 자주 다니던 사람들 손바닥이 얼마나 근질거렸을가 하는 생각을 한 유리는 이런 날씨엔 골프치러 오는 사람들이 긍정코 많을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유리는 여느때보담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서 청소를 마치고 상추까지 한바구니 가득 씻어놓았다. 한낮이 되여서야 식당에 나온 리은경사장은 무둑히 쌓인 상추바구니를 보더니 《애두, 무슨 상추를 이리도 많이 씻었니?》 하고   못마땅하다는듯 눈꼬리를 치뜨면서 묻는다.《오늘 손님이 많을거 같아서요.》 유리가  대답하자 사장은 《상추야 그때그때 씻으면 되지 뭐가 그리 걱정이 돼서. 상추를 씻어놓으면 쉽게 상한단 말이야.》 하고 언성을 높인다. 전번엔 평일인데 손님이 많이 닥쳐들어 씻은 상추가 모자라게 되자 적게 씼었다고 나무람하기에 오늘 좀 많이 씻었더니 또 너무 많이 씻었다고 탓한다. (어휴~ 참 까탈스런 녀인이야. 저 녀인의 속엔 대체 뭐가 옹크리고 앉아있을가?)  속으론 감주같은것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누군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스트레스 받으면 일부러 흥겨운 《강원도 아리랑》을 흥얼거리는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짚고 넘어간다 했다. 이 시각  유리야말로 그런 식으로라도 찜찜해진 기분을 풀고싶었지만 입에서 도저히 노래가 나오질 않았다. (에이, 그냥 한쪽귀로 듣고 한쪽 귀로 내보내자. 차라리 안 들은걸로 치자. 아님 뭐가 짖거니 하자.)    과연 그날 손님이 무척이나 많았다. 먼저 온 팀이 가기전에 또 새로운 팀이 쳐들어왔는데 어느 방마다 손님들로 꽉 찼다. 어떤 손님들은 유리가 상을 거두기를 선채로 기다리기까지 하였다.《청실1호》방에 앉은 손님들은 골프에서 홀인원까지 하고  하늘에 떠오른 고무풍선마냥 기분이 둥둥 뜨는지 갖고온 양주 한병을 다 마시고서도 소주에다 맥주 그리고 사이다까지 청했다. 그러다보니 잔만 해도 물컵으로부터 양주잔, 소주잔, 맥주잔, 커피잔까지 20개나 되였다. 그 손님들이 가자 유리는 뺀 그릇들을 쟁반에 가득 담고 주방에 씽하니 날라다가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순간 쟁반에 담겼던 양주잔이 또르르 굴러내리더니 아차소릴 내기도 전에 《쟁그랑!》하고 땅에 떨어졌다. 이쁜 양주잔이 순식간에 두개나 박산났다. 유리는 급한김에 인차 몸을 쪼크리고 앉아 깨진 유리쪼각들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손바닥이 때끔해나더니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애두 조심해야지, 그렇게 덤비고서야 써빙  어떻게 하니?》    《죄송해요, 급하다니깐 일이 더 안되네요.》    《죄송하다면 다니? 양주잔을 깼으니 배상해얄거 아니니? 하나에 천오백원이야.》    (어휴~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더니 한국은 시골아낙네마저 왜 인심이 이리도 박할가? 정말 인정이 매말라가는 나라구나.)    유리는 가방을 둔 창고에 씽하니 달려가 새파란 만원짜리 지페 한장을 0리은경사장한테 주었다. 리은경사장은 두말없이 받아선 금고에 넣는다.     《거스름돈 7천원 여기 놨어. 》    사장은 거스름돈을 카운터에 놓은채로 유리앞을 지난다. 그러는 사장이 얄밉다못해  발로 지렁이 밟듯이 콱 밟아라도 놓고싶었다. 유리는 이 바쁜 통에 여기 지나면서 거스름돈 가져다 주면 손목이 부러지나요 라고 한마디 내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키였다. 그러노라니 목구멍이 막 아파나기까지 했다. (그래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더라. 억울하고 화가나도 참아야지. 참는게 어른이다. 오늘은 내가 어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유리는 왜선지 절로도 웃음이 나왔다. 한편 세살먹은 코풀레기 애들의 입가에 말라붙은 이밥알을 뜯어먹고도 남을 그런 위인인 리은경사장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졌다.    리은경사장은 위가 안 좋아서 평소에 손으로 늘 위부분을 슬슬 어루만지군 한다. 뿐만아니라 쩍하면 식사를 거르고 또 이번끼를 먹으면 다음끼는 먹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손님이 많은 날에는 여덟달 내기 애기가 딸린 며느리인 정미까지 동원해서 홀을 본다. 사장이 까탈스럽게 노는걸 봐선 아프겠으면 아프고 말겠으면 말고 하고 짚고 넘어가고 싶지만 사람사는게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리다. 남들이 자기한테 얼음산을 보내면 유리는 오히려 따뜻한 햇살이 무르녹는 봄동산을 통채로 안겨주는 그런 타입이다.     오늘도 리은경사장은 손님방에 들어갈 돌솥의 누렁지를 긁으면서 위를 슬슬 어루만진다.    《사장님, 위가 아프세요?》    《응 오랜 병이야, 약먹어도 그때뿐이지 잘 낫질 않아.》    《자, 이걸 먼저 드세요.》    유리가 중국서 갖고간 위약 - 《위강령》네알을 사장한테 넘겨주었다.     《이걸 먹고 죽는거 아니야?》    《죽는거라면 전 열번도 죽었을거예요.》 그러자 리은경사장은 배시시 웃으면서 위약을 받았다.    《이제 퇴근해서 제가 매일 발맛사지 해드릴게요. 한주일만 견지하면 뚜렷한 효과를 볼겁니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 옳고 아니고는 해보시면 알게 아닌가요?》    저녁퇴근을 마치니 시침은 열시를 가르치고있었다. 유리는 지치고 힘든 나머지 샤워하고 그냥 잠자리에 눕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가 없었다. 사장하고 한 약속도 약속이거니와 자기가 좀만 덜 자고 베푼다면 한사람의 고통을 덜거나 없애버릴수가 있는것이다. 유리는 커피물을 끓이는 물주전자에 물을 끓여서는 가루소금 한줌 푹 쥐여놓고 골고루 저었다.    《사장님, 이리와서 먼저 발부터 불구세요.》    《아니, 오늘 힘들었을텐데 일찍 자지 그래.》    《아니요. 한 40분만 하면 돼요.》    평소에 늘 가시가 딱딱 맞혀오는듯하던 리은경사장의 말투가 퍼그나 온화해졌다.    유리는 식지관절끝으로 위반사구 위치인 발바닥의 제1척지 관절의 뒤쪽,  제2척골체중간 앞부분을  발꿈치방향으로 경한데로부터 중하게 힘을 주어 누르면서 긁듯이 안마했다. 이렇게 두발을 골고루 안마하고나니 열한시가 되여가고있었다.     이튿날 종래로 아침식사를 안하던 사장은 일찌감치 식당에 나와서 배고프다고 밥재촉한다. 그러는 사장을 보고 주방장인 정숙이가 의아한 눈길로 사장을 바라본다. 식사시면 하냥 제일 작은 밥공기가 사장앞에 차례진다.그러나 사장은 푹푹 뜨면 두어숟가락이 되나마나한 밥마저 남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밥이 제일 적게 담긴 공기가 사장앞에 놓였다. 근데 사장은 그 밥을 다 축내곤 반공기쯤 더 달라기까지 하였다.      실은 유리는 전업성적인 안마사가 아니다. 아픈데가 너무 많아서 《약석안마방》에 가서 꼬박 한달동안 발맛사지를 받았더니 신기하게도 여러가지 병이 가셔진듯이 나아졌다. 그뒤로부터 유리는 정기적으로 안마받으러 다니면서 안마사들한테서 혈위하고 반사구 찾기와 안마지법까지 배웠다. 또 《족부반사구안마》란 책을 사다가 탐독하면서 집에서 자기의 발로 부지런히 연습하였던것이다.    리은경사장은 이튿날부터 절로 물을 끓이고 유리가 하던대로 소금 한줌을 푹 넣고는 발을 불구었다. 안마를 한주동안 하니 리은경사장은 하루세끼 꼭꼭 밥을 챙겨먹었다. 병색이 띄여서 검푸르던 얼굴색이 차츰차츰 새뽀야지더니 제법 홍조까지 어렸다. 옛날부터 한동네에서 언니동생하면서 살았다는 주방장인 정숙이가 《언닌 요즘 련애라도 하는거 아니야? 얼굴색이 이뻐지네. 》하고 롱조로 말하자 《응, 요즘엔 애인 하나 생겼는데 너무 잘해줘서 오만가지 병이 떨어지고 미용까지 된단다.》하고 사장은 맞장구친다.     리은경사장은 오랜 허리디스크때문에 천안시내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무더기로 가져다 먹어도 별 차도가 없다. 허리를 구부정하고 걷는 리은경사장의 뒤모습을 보면 갓 50대에 진입한 녀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것이다. 그녀가 걷는 뒤모습은 마치도 70대로인을 방불케 한다.아니 요즘은 70대들도 백두산 미인송처럼 꿋꿋한 로인들이 너무나 많다.    위병이 나아지자 유리는 허리디스크로 고통을 받고있는 리은경사장의 허리부위도 안마해주었다. 한 열흘 하니 사장은 허리를 쭈욱 펴고다니기 시작하였다. 기분이 좋아선지 아니면 자신한테 정성을 몰부은 유리가 감사해선지 고기집을 경영하면서도 종업원들한테 삼겹살 한번 먹이지 않았다는 리은경사장은 요즘은 가끔 함경도 맛이 다분한 《아바이순대》를 사온다, 함흥냉면을 사온다 탕수육을 사온다 하면서 부지런히 맛있은 음식을 사들였다. 그덕에 종업원들은 요즘 창자에 곱이 들어앉을 지경이다. 한번은 일인분에 2만5천원씩 하는 소고기등심까지 구워먹으라 내놓았고 또 평소에 감히 엄두도 못낸다는 전복생회에다 전복죽까지 쑤어서는 종업원들한테 큰 사발에다 푹푹 떠주기까지 하였다.     세월이 쏜살같으다더니 인젠 유리가 여기 온지도 석달로 접어든다. 초겨울에 접어들면서부터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한국은 첫눈이 많이 내렸다. 그래서 텔레비에서고 신문에서고 많이 내린 첫눈이 톱뉴스거리다. 유리도 인젠 한국에서의 생활체험을 할대로 다 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겪을거 겪어봤던것이다. 애초에 일 시작하면서 가졌던 적어도 한번쯤은 한국에 있는 우리 동포녀성들의 삶을 직접 몸으로 부닥쳐보려는 목적에 충분히 도달했던것이다. 뿐만아니라 용돈도 꽤나 벌수있어서 심신이 고달팠지만 기분은 나쁘질 않았다. 마침 졸라라는 젊은 몽고녀자가 홀써빙으로 들어왔기에 유리가 오늘 당장 떠난다해도 식당영업엔 별 지장이 있는것 같질 않았다.    《저 사장님, 사정이 있어서 인젠 집에 가야겠어요. 자 이건 저의 명함장이예요. 이제 중국에 오시면 제가 중국 10대골과명의가운데에 든 의사를 소개해드릴게요. 그 의사한테서 치료하면 허리디스크는 인차 나아질거예요.》    《어머 , 유리야, 넌 원래 작가였구나. 근데 왜 일찍 말하지 않았어?》    《제가 연변에서 작가일뿐이잖아요. 저 랠 모레 떠나갈게요. 그동안 일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사고도 잘 치고요.》《알았어, 랠 내가 월급 다 계산해줄게. 그리고 랠은 오전까지만 일하고 오후엔 떠날 준비나 잘해.》    유리가 갖고 온 옷짐들을 그대로 가지고 막 식당출입문을 나서고 있을 때였다. 새까만 호화형《에쿠스》표 승용차가 유리앞에 와서 치익! 하고 멈춰섰다.     《자 올라타, 내가 서울까지 태워다 줄게.》    《혹시 서울에 볼일이라도 있는거예요?》    《딱 볼일이 있어야 서울 가나? 유리도 데려다 줄겸 오래동안 못해본 서울구경도 할겸 가는거지.  자, 어서 타.》    《전 뻐스타고 천안역까지 가서 렬차 갈아타면 되는데요. 저때문에 굳이 갈 필요는 없어요.그 먼거리를.》    《자 올라타, 너답지 않게 무슨 말 그리도 많어.》    리은경사장은 유리의 팔을 마구 잡아 끌었다. 정말 모를 사람이 봤으면 랍치라도 당하는줄 알겠다고 생각한 유리는 싱거울 정도로 혼자서 피씩 웃곤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    《자 받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어머 사장님 , 선물은 무슨.》    《한국에선 선물을 준 사람앞에서 펼쳐보는거야.》    《그래요? 암튼 고마워요. 근데 뭔데 꽤 묵직하네요.》    《펼쳐보면 알거 아니야? 얼른 펼쳐봐.》    유리가 꽃천으로 이쁘게 싼 장방형 모양의 박스를 풀어보니 새까만 새노트북이였다.    《어머 사장님, 이건 너무 귀중한건데요.》    《니가 작가니 아무래도 이게 필요할거 같아서 생각다못해 걸로 선물했어. 이다음엔 작품을 써선 나한테 먼저 보여줘. 내가 유리의 첫 독자로 될거야. 그 노트북 싸구려가 아니야. 거기 영수증까지 있는데 170만원짜리야. 그 정도면 한국에서도 알아봐주고 있거든.》    《아니예요. 이렇게 무거운 선물 전 못받아요. 그리고 일한 대가는 한푼도 차나지 않게 다 계산받았기에 안 이러셔도 돼요. 암튼 성의만은 고맙게 받을게요. 》    유리가 노트북을 막 밀어놓자 리은경사장은《애두, 뭔 고집이 그렇게 세니? 내가 중국가면 니가 가이드 안해주겠니? 그리고 명의도 소개 해준다면서. 내가 가이드비하고 의사소개비를 먼저 주는셈치면 안되니?》하고 동그란 눈을 곱게 흘긴다.    유리의 가슴은 어느덧 훈훈해난다.     창밖 고속도로 량켠에 쌓인 겨울눈이 해볕에 새물거린다.     (겨울눈이 아무리 차디차다 해도 이제 봄이면 따스한 해볕에 다 녹아내릴테지!)    《유리야, 너 요까짓거 있을거면 왜 왔니? 바람결처럼 왔다가 정만 두고 가니 내가슴 아퍼 죽겠다야.》    리은경사장의 눈엔 어느덧 보석같은 이슬이 맺힌다. 유리의 가슴속에서도 푸르디 푸른 두만강이 떵떵 얼어붙었다가 봄철을 맞아 강심에서 얼키설키 흐르는 눈석임물마냥 뜨거운 그 무엇이 타래치친다.                              끝  
3    보물함 댓글:  조회:1062  추천:26  2009-02-27
    오늘도 H시 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바다를 이룬다. 모두들 자기 삶에 쫓기는지 제 갈 길만 재촉한다.더러는 왼쪽길로, 더러는 오른쪽길로…    한 할머니가 인행도로 스적스적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오금이 불편한지 한쪽 다리를 살짝살짝 절는다. 할머니는 부지런히 걸음만 재촉한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다.    갑자기 할머니 눈이 어둑새벽의 하늘중천에 간신히 걸려있는 별마냥 반짝한다. 가로수아래에 뭔가 네모반듯한 물건이 놓여있는것이 보였던것이다. 할머니가 찬히 여겨보니 파란 판에 빨간 장미꽃포장지로 이쁘게 포장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함인것 같았다.     <<이그그, 누가 이걸 떨구고 지나갔구나. 이렇게 잘 포장한걸 봐선 아마 귀중한거 같은데….떨군 사람은 얼마나 아까울가? 내가 주어서 임자 기다려볼가?>>    <<아니, 아니야, 요즘 세월에 누가 주은것을 돌려준다고. 내가 주으면 내물건이나 다를바가 없는거지. 근데 이 안에 뭐가 들어있을가? 혹시 금반지? 아니면 손목시계? 훗훗훗… 암튼 좋은 물건이 들어있을지도 몰라.>>    할머니가 굼뜬 오금을 꺾으면서 가로수 밑에서 주인을 기다리듯 고스란히 놓여있는 포장함을 주어들었다.     이때다. <<스즈끼>>표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뒤에 요염하게 차려입은 약혼녀인지 아니면 친군지 하는 녀자를 싣고 할머니옆에서 급정거를 하는것이였다. 청년은 다짜고짜로 할머니손에서 포장함을 빼앗아 쥐였다. 그리곤 뒤좌석에 앉은 녀자한테 넘겨주려고 한다. 찰나 할머니가 대노하면서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그래 이것이 니 물건이란 말이냐?>>    <<그럼요. 그래 할머니 물건인감? 금방 할머니가 줏지 않았어요? 제물건이란 말이예요.주은 물건을 임자한테 돌려주는것이 도리가 아닌가요?>>    <<니 물건이란 근거가 어디 있니? 있으면 어디 대봐.>>    <<이 로망할 할머니라구야. 내거라면 내건거지 무슨 근거구 떡대가리구 할거 있어요?>>    <<뭐야? 안돼. 이 물건 그렇게 내줄수 없는거야. 니것이란 근거두 없이 왜 널 줘?>>    <<이 로친이 어디서 아다모끼상하는거네. 그래 할머니꺼란 말입니까? 되지도 않을 소리 그만두고 손놓으세요.>>    <<못놓아. 내가 주은거야. 니가 뭐래서 니거라니?>>    할머니는 청년의 우악스런 손을 콱 밀쳤다. 아무런 방비도 준비도 없던 청년은 기우뚱하다가 바로 섰다. 하마트면 뒤로 넘어갈번하였다.    <<이긍, 이 할머니 정말 무법천지네. 인젠 손까지 대려고 하네. 늙은이라고 봐주니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고 살았군. 좀 나이 들었으면 헴차리세요. 주제파악도 모른 로친네라구야…>>    <<너 뭐 어쩌구 어째? 이마에 피도 안마른 놈이 누구하고 함부로 주둥아리 놀리니?>>    <<할머니, 그 물건이 우리거란데두 왜 그렇게 왕아다모끼상하세요? 제가 부주의로 떨구고서도 몰랐다가 집에 간다음에야 발견하고는 제 남자친구한테 전화해서 지금 이렇게 급히 오토바이 타고 온거래요.근데 할머니께서 번연히 줏었음에도 무슨 말이 그리도 많고 또 악쓰고 가지려고 해요?>>    오토바이 뒤좌석에 앉았던 처녀가 목청을 높이며 웨치다싶이 말했다.이에 할머니는 어리벙벙해났다.한동안 할말을 찾지못했다.    할머니가 아쉬운대로 물건에서 손을 놓으려는 찰나,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장정 하나가 나타났다. 얼굴이 검붉고 키가 장대같이 큰 그 장정은 몸도 곰처럼 우둑지였다.     <<그 물건서 다 손을 못 뗄가? 제것도 아니면서 뭐 서로 제것이라고 옥신각신이야? 그 물건임자는 이 로인도 아니고 너희들것도 아니고 바로 나야.>>    <<아니예요. 제것이예요. 제 남자친구하고 쇼핑했는데 아까 이 가로수 밑에서 쉬다가 그만 부주의로 두고 간거예요.>>    <<뭐? 부주의로 두고간거라구? 허허… 리유도 안될 소리를 하지마. 그래 딱 이 물건만 두고갔단 말인가? 차라리 욕심나서 가지고 싶다고나 하는게 딱인거 같은데?>>    <<말조심하세요. 입에서 나온거라구 다 말인거 아닙니다. 그럼 이 물건이 아저씨것이라도 된다는 리유가 어디 있어요?>>    <<뭣이? 죄꼬만 자식이… 내것이라면 내것인거야. 내가 이 물건을 두고 갔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부랴부랴 찾아왔는데 니것이라니? 되지도 않을 소리 싹 그만두어.>>    그 한쌍의 남녀와 장정은 서로 니 물건이니 내물건이니 하면서 한동안 옥신각신 다투었다. 할머니는 한복판에 서서 청년 남녀를 쳐다봤다 장정을 쳐다봤다 한다. 아까 잠간 반짝하던 좀은 시뿌연 눈에 초조함과 실망이 더러 실려있다. 물건 하나 놓고 임자가 두셋씩 나타나서 문제가 복잡해지니 더 삐치기도 시끄럽고 또 더 삐칠 용기도 힘도 없었던것이다.    이때다. 열둬살 되는 단발머리 녀자애가 이들한테로 다가온다. 그 애는 사람들이 옥신각신 다투던 나머지 서로 얼굴 붉히는것을 한참 지켜보고 있었다. 나중에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거칠고 또 목소리까지 점점 높아지니 숱한 행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의 오가는 말을 듣던 행인들은 더러는 시끄럽단듯이 자기 갈 길은 재촉하고 더러는 별 할일이 없는지 흥미있게 구경하고 있다. 마치도 재롱을 떠는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듯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하여도 그들의 쟁론은 끝날줄 몰랐다. 서로 제물건이라고 우격을 부리는데서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    이때다. 그 열둬살 되여보이는 단발머리 소녀가 챙챙한 목소리로 오돌차게 말했다.    <<저, 다들 싸우지 마세요. 대체 누가 물건 임자인지 하는건 판단하기가 간단한겁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서로 제것이라면 어떻게 해요?>>    <<그럼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니? 니가 말해봐.>>    구경군들속에서 누군가 제꺽 맞장구쳤다.    <<거야 간단하죠. 이 함안의 물건이 대체 무엇이며 색갈이며 모양새까지 정확히 맞추는 사람, 그리고 더 나아가서 물건값까지 정확하게 맞추면 임자가 아니겠어요?>>    <<맞다. 그럼 니가 재판서고 이 분들은 자기가 잃어버린 물건이 무엇인가를 바로 대면 되는것이구나. 그럼 량쪽 분들은 서로 자기가 잃은 물건이 무엇인가를 대보시죠.>>    두 청년 남녀는 잠간 얼굴에 망연한 기색을  띄웠다. 하지만 인차 태연자약한, 그리고 자신만만한 자세를 취하였다. 반대로 장정은 아주 느긋한 다시 말하면 별문제가 아니라는듯한 표정이다.    <<자 그러면 제가 잠시 재판서는걸로 하죠. 먼저 누구부터 맞춰보시겠어요? 먼저 언니네들이 맞춰봐요.>>    녀자애는 청년남한테 우선권을 주었다. 술렁이던 구경군들도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더러는 엄숙한 분위기가 사람들 속을 묘하게 감돌기까지 하였다. 어쩌면 인민법원에서 하는 공개재판같은 느낌도 들군 하였다. 다만 판사가 없을뿐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깐 지금 이 죄꼬만 녀자애가 <<판사>>노릇하고 있는것이다.    청년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내가 약혼녀한테 사준 반지가 그 안에 들어있다. 황금반진데…>>    <<맞아. 금반지야.>>    <<네 금반지라 했어요. 몇그람짜리세요?>>    <<저….그람수까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않았는데 아마 6그람 좀 넘는다는것 같아.>>    처녀가 말을 이었는데 어쩐지 대답이 시원하질 않았다.    <<자, 그럼 이번엔 아저씨 차례예요. 어서 말씀해보세요.>>    <<그 안의것이 목걸이란다. 백금목걸이. 내가 산건데 누구한테 례물로 드리려고 샀다가 그만 부주의로 떨구었거든. 그래서 나도 찾아온거야.>>    <<네, 알겠어요. 그럼 풀어봐도 되겠네요. 그럼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펼쳐볼테니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판단하자요.>>    삽시에 구경군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대체 누가 그 보물함의 주인일가 하고 무척이나 궁금해났던것이다. 반대로 청년남녀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녀자애가 겉포장지를 풀기 시작하였다. 그애는 죄꼬만 손으로 조심조심 종이를 뜯어냈다. 겉포장지를 뜯어내니 안엔 또 하얀 백지로 포장되여있다. 그애는 또 침착하게 뜯어냈다. 드디여 함이 나타났다. 찬히 여겨보니 빨간 칠까지 한 꽤나 정교하게 만든 나무함이였다. 다행히도 함은 못같은것으로 단단히 박지 않았다. 녀자애는 청년 남녀와 장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주위에 삥~ 둘려선 구경들을 휘~익 둘러 보았다. 한숨을 호~내쉰 녀자애는 드디여 큰 결심이라도 한듯이 나무함뚜껑을 열어제꼈다. 청년남녀와 장정이 먼저 머리를 내밀고 들여다보았다. 구경군들도 밀물처럼 우르르 다가왔다. 순간 <<부르릉~>>하는 오토바이 발동소리가 들리더니 청년남녀는 내꼴봐라 하고 달아나고 있었다. 여태 자신만만하고 태연자약하던 장정도 워낙 불그스럼하던 얼굴에 모닥불이라도 뒤집어 쓴듯이 지저벌개지더니 슬그머니 구경군속을 빠져 나갔다.    <<하하하…호호호…훗훗훗…허허허…>>    구경군들속에서 삽시에 웃음주머니가 터졌다. 이 광경을 지켜 보던 할머니가 풍덩 하고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함안엔 워낙 죽은 파랑새가 고스란히 누워있었던것이다.아마 어느 애가 기르던 새가 죽으니 너무도 맘아파 이렇게 포장하여 나무아래에 두는걸로 자신의 새에 대한 애정을 표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애구구, 보물인가 했더니 이게 뭐야? 세상에, 이렇게 멋진 함안에 이게 뭐람? 기가 막혀 쯧쯧쯧…>>    <<참 어른들이란 너무 해요.어른들은 우리 어린이들한테 늘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오늘은 이게 뭔가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자기 자식이랑 교육해요? 제것이 아닌 물건을 가지고서도 서로 자기거라고 싸우고 하니…참 어른들은 너무 미워요.흥!>>    녀자애는 억울한듯 그리고 화가 난듯 얼굴까지 새빨개나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한다. 그리곤 여러사람들 앞에 <<보물함>>을 다시 내보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물함>>을 손에 든채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술렁이던 사람들은 모두가 뒤통수를 하나 탕!하고 얻어맞은듯한 느낌이다.모두들 입에 자물쇠를 놓은듯이 한마디 말이 없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수그리고 깊은 사색에 잠기였다…….                         끝
2    사과 한상자(박초란) 댓글:  조회:1156  추천:61  2007-12-06
사과 한상자박초란김할머니는 오늘도 넝마주이에 나섰다. 인젠 직업처럼 된 일이다. 할머니는 자식 셋이나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어쩐 일인지 다 제살림에만 열중하고 어머니의 생활엔 전혀 무관심이다. 로인이 앓아도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고 또 생활비거나 약비 같은걸 보내줄념 하지 않는다. 자식들 얼굴이래야 설날에 피뜩 보이군 한다.  김할머니는 넝마주이해서 돈잎이나 만들어 생활한다. 그러니 넝마주이가 김할머니의 유일한 생활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밑이라 벌써부터 설기운이 감돈다. 도처에서 폭죽 터치는 소리가 가담가담 들려오고 또 길가의 난전들에선 벌써 한족들이 설이면 대문에 붙여놓을 알록달록 멋진 주련들을 가득 펼쳐놓고 사구려를 부른다. 김할머니는 이태전에 새로 선 아파트단지부근에 들어섰다. 듣자니 이 아빠트엔 급이 높고 또 잘사는 사람들만 모여서 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앞의 쓰레기주머니를 들추어도 깡통이랑 광천수병사리랑 술병이랑 많이 나온다. 세밑이라 요즘 돈 될만한것들이 많을것이라 여긴 김할머니이기에 오늘 집을 나서자마자 여기부터 들린것이다. 김할머니는 습관적으로 일단원부터 여겨봤다. 누가 이미 한고패 들추어갔는지 아니면 청소공들이 쓰레기운반차에 마구 실어갔는지 별로 눈에 띄이는게 없다. 이때다. 이 단원의 출입문이 삐걱 하고 열리더니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한 귀티가 줄줄 흐르는 녀인이 뭔가 들고 나오더니 문어구에 탕 놓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문안으로 사라진다. 김할머니는 수확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물건을 향해 엉기적거리면서 다가갔다. 김할머니가 다가가보니 사과상자였다. 꾸겨진 흔적도 별로 없고 또 새것이나 다름없는지라 할머니는 상자를 팔아도 돈이 되는 일이라 기쁘게 생각하면서 상자를 집었다. 근데 상자는 묵직했다.(안에 뭐가 있나?) 김할머니는 이상하다싶어서 사과상자를 열어보았다. 금방 포장을 딴듯한 흔적이 있다. 열어보니 안에는 사과가 있었다. 보아하니 하나도 안다친듯하다. 포말그물 포장을 한 사과가 석줄로 정연하게 배렬되여있는데 향긋한 사과향기가 코를 쿡 찔렀다.  《쯧쯧쯧∼ 사람들도 인젠 배가 부른 모양이다. 이 좋은 사과를 다치지도 않고 버리다니? 암튼 이 로친이 불쌍하다고 그리고 설을 쇠라고 과일 보내준거라고 생각하고 가져다 먹어야지. 덕분에 싱싱한 과일 잘 먹게 됐네.》 김할머니는 기쁨에 겨워 사과상자를 넝마주머니에 통채로 넣었다. 그리고 다른데 더 둘러봐도 돈 될만한 물건이 안보이는지라 그리고 사과상자를 통채로 넣은것땜에 주머니가 묵직한지라 할머닌 무거운 걸음으로 낡은 단층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 도착한 할머니가 수확물인 사과상자를 꺼내놓고 다시 펼쳐봤다. 넝마주이를 하면서도 언제나 알뜰살뜰 살림하는 김할머니는 사과가 혹시 썩은게 없나 가려내려고 작심했던것이다. 할머니가 그릇을 가져다 생생한 사과는 한곳에 집중시켜놓고 시간이 흘러 좀 상처가 간 사과는 다른 그릇에 가려냈다. 이렇게 한참 가리느라니 한층이 다 가려지고 다음엔 마분지가 한층 놓여있다. 김할머니는 마분지를 꺼내놓으면서 이렇게 포장도 잘된 사과를 버린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있는 사람들일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마분지를 꺼내놓으니 또 새하얀 백지가 한층 놓여있었다. 김할머니는 백지를 꺼내들었다.  《어마나 이거 뭐냐?》 김할머니는 너무도 놀라서 뒤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곤 가슴을 잡아쥐였다. 널뛰듯 툭툭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김할머니는 목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시 사과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두 손등으로 두눈을 쓱쓱 부비면서 다시 들여다보아도 틀림없었다. 할머니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상자안의 물건을 꺼냈다. 하나, 둘, 셋∼ 도합 스물다섯묶음이였다. 모두 새빨간 좀은 고리타분한듯한 냄새가 푹푹 나는, 다시말하면 바람한점 안맞은 새돈묶음이였다. 할머니 세상에 언제 이렇게 많은 돈을 쥐여볼 꿈이나 꾸어보았으며 또 쥐여보리라 생각이나 했을가? 김할머니는 무둑한 돈무지를 놓고 올리보고 내리보았다. 어찌 보면 괴물 같기도 하고 또 쓸모없는 마분지더미 같기도 하고 또 자그만한 황금산 같기도 했다. 사과상자를 다시 들여다보니 나비꼬리모양으로 접은 종이쪽지가 눈에 띄였다. 김할머니는 조심조심 펼쳐보았다. 해방직후 문맹퇴치반이랍시고 야학교 다닌덕에 간단한 글자를 알아볼수 있는 김할머니다. 그 쪽지내용을 보니 대략 이러했다. 김시장님: 지난해에 잘 돌봐주신 덕에 제가 돈을 잘 벌었습니다. 새해에도 개발구 공업단지건물 공개입찰에 많이 도와주시길 부탁합니다.  시장님만 ok! 하면 만사대길이니깐요. 암튼 명절도 즐겁고 옥체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사과 한상자》 새해 선물로 드립니다.                                    H시길흥건축유한회사 박길호 드림 그제야 사과 한상자의 내막을 대충 짐작하게 된 김할머니는 이 사과는 범상치 않은 사과라 함부로 《먹어서는 안되는》것임을 희미하게나마 알수 있었다. 할머니는 부랴부랴 돈을 사과상자안에 있던 마분지로 포장하고는 넝마주이를 할 때 쓰는 때가 덕지덕지한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고 종이쪽지를 품속에 깊숙이 간직하고는 문밖에 나섰다. 할머니가 닿은 곳에는 《H시 인민검찰원》이란 간판이 걸려있었다… <<연변문학>> 2007년 8월호
1    [단편] 기다림 (박초란) 댓글:  조회:1184  추천:80  2007-11-21
기다림박초란혜진이는 텔레비죤을 보면서 남편 돌아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애타게 기다린다. 시침은 벌써 열한시를 가리킨다. 초저녁까지만 해도 재잘거리면서 함께 텔레비죤을 보던 아들애도 어느새 뿌리 썩뚝 잘린 무우처럼 나동그라져 쌕쌕 코숨을 쉬면서 잘도 잔다. 그러나 혜진인 좀처럼 잠들수가 없다. 이 채널 저 채널 리모콘으로 요리조리 돌려보았지만 하나도 재미없다.  《앙~앙~》 밖에서 고양이 울부짖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온다 《아웅~ 아웅~》 어찌보면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애기우는 소리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저 고양이는 왜서 저렇게 울고있을가? 사랑하는 새끼를 잃어버렸나 아니면《남편》 혹은《안해》를 잃어버렸나, 아니면 수족 같은 형제를 찾나? 깊은 밤이라서 그런지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밤의 정적을 깨뜨리면서 살갗을 허비는듯한 그리고 심장을 긁는듯한 소리로 들려온다. 혜진이는 불안에 온몸을 바르르 떤다. 쌕쌕 잠든 아들애를 보니 아들애도 애처로운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이마살을 잠간 찡그렸다가 다시 안온한 모습으로 잘도 잔다. 철모르는 4살짜리 아들애지만 이 시각만은 깨여났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갈마들었다. 혜진이는 창밖을 내다본다. 길 량켠에 있는 가로등이 조을듯이 희미하게 거리를 비춘다. 깊은 밤이라 행적이 뜨음직하다. 밤올빼미처럼 손님 찾아 거리를 여기저기 누비며 다니는 택시들만이 지칠줄 모른듯이 속도를 내여 신나게 달리고있다. 택시를 보는 순간 혜진이의 가슴은 어쩐지 석마돌로 눌러놓은듯이 답답해난다. 눈앞에는 처참한 정경이 너무나 또렷이 나타난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남편이 비칠거리면서 거리를 걷다가 달려오는 차에 뿌리워 저만큼 나가 동그라진다. 삽시에 콩크리트바닥은 피바다로 된다. 차는 의연히 달린다. 마치도 아무 일도 없는듯이. 숱한 차들이 지나면서도 서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가기만 한다… 남편의 목숨이 경각을 다툰다. 숱한 피를 흘린 남편은 결국은 맥없이 눈을 스르르 감는다… 혜진이는 더는 앉아있을수가 없다. 남편신상에 무언가 상서롭지 않은 일이 일어날것만 같다. 아니 일어나고있는것만 같았다. 혜진이는 안절부절한다. 애가 깨날가봐 낮게 틀어놓은 텔레비죤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낮춘다. 그러다가 아예 리모콘으로 꺼버렸다. 집안이 삽시에 조용해진다. 기괴한 기운이 온 집안을 감돈다. 숨이 막힐것만 같았다. 혜진이는 아예 집안의 등불이란 등불을 다 켜놓았다. 지어 화장실의 등불까지 켜놓았다. 집안은 대낮처럼 환해진다. 그러나 맘은 의연히 불안하고 종잡을길 없다. 갑자기 애가 기지개를 켜면서 모로 돌아눕는다. 그녀는 다시 방마다 다 켜놓았던 등불을 하나하나 꺼버렸다. 그리고는 옷을 벗고 애옆에 누웠다. 하지만 눈은 말똥해지기만 한다.(내가 왜 그렇게 못된 생각부터 할가? 금성이 아빠가 어떤 사람인데 사고를 치고 다녀?) 혜진이는 잠시라도 그렇게 고약한 생각을 한 자신이 미워났다.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눈을 슬며시 감았다  죽마고우로 자라다가 부부로 되여 별탈없이 영위해온 자신의 가정은 네다리가 반듯하고 든든한 그리고 편안한 쏘파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있던 혜진이다.  그러나 오늘은 왜서인지 그냥 불안하기만 하다. 요즘은 무슨 세월인지 애인바람이 불어가지고 좀 잘 나아간다는 사람들은 저마다 애인이 있단다. 그래서 발렌타이데이면 꽃점의 장미는 평소보담 가격이 세배나 더 높아도 무더기로 팔린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식당이고 뀀점이고 초만원이란다. 더우기 성준이처럼 잘 생기고 또 직업 좋고 사람됨됨이까지 좋은 남자를 녀자들치고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가? 어느 책에서 보았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도 좋아할수 있다는것이 요즘 애정론리이다. (안돼. 이렇게 불안하게 앉아서 기다리기보담 시원히 나가보자.) 혜진이는 쌕쌕 코숨을 쉬면서 깊이 잠든 아들애를 살펴보고는 옷을 걸치고 밖에 나갔다. 혹시 동네 혹은 아는 사람들의 눈에라도 띄울가봐 혜진이는 가로등에 의해 가로수그림자가 시커멓게 진 담벽밑에 조용히 서서 길 량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초조한 혜진의 맘을 헤아리는지 마는지 가로수는 의연히 아무 부담없는듯 느긋하게 설레이기만 한다. 길 량켠으로 오는 택시차량들마다 다 살펴보았지만 택시들은 혜진이앞에 멈춰설줄 모른다. 혜진이는 스적스적 가로수밑에서 걸어나와 길에 나섰다. 그러나 동으로 가얄지 서로 가얄지 방향감이 서질 않았다. 큰 도시는 아니여도 국가급 개방도시로서 자그만치 25만명의 인구를 갖고있는 도시 어느 곳에 찾아가면 성준이를 만날수가 있을지 묘연하기만 했다.  갑자기 귀전에서 애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진이는 불에 덴겁한듯 부랴부랴 돌아져서 집으로 향했다. 집문을 떼고 들어서니 다행히도 애가 그냥 이불만 차던졌을뿐 쌔근쌔근 자고있다. 혜진이는 이렇게 속수무책인게 안타까워났다. 그래서 평소에 언니 동생하면서 지냈었고 또 남편끼리도 형님동생하던 사이였던 채연이한테 전화를 넣어보았다. 비록 전화할 시간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별나게 지내던 사이였고 또 채연이 전화는 하루 스물네시간 켜져있으니 아무때건 전화해도 된다던 채연이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뚜ㅡ뚜ㅡ 신호가 여러번 가서야 채연의 잠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채연언니, 나 혜진이예요.》 《응, 이 시간 웬 일이야?》  《언니, 나 잠도 안오고 또 걱정도 돼서 언니한테 전화한거예요.》 《무슨 일인데 이 밤중에?》 《금성이 아빠가 지금까지 오질 않고있어요.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 잘하던 사람이 오늘은 웬 일인지 전화도 없어요. 나 왜서인지 자꾸 나쁜 생각만 들어요.》 《참, 다 큰 사람이 뭐가 걱정돼? 아무 일도 없을거니 어서 자기나 해. 별일 없을거야.》 채연이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잠기가 싹 가셔지고 어느새 또랑또랑해졌다. 《언니,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될가?》 《그럼, 걱정말고 푹 자. 성준이 평소에도 얼마나 점잖고 또 행실이 바르니? 그러니 걱정말어.》 《네, 알았어요. 그럼 아무 걱정 안하고 저도 잘거예요. 깊은 밤중에 언닐 놀래워서 미안해요. 그럼 잘 자요.》 혜진이는 채연언니 말처럼 성준이가 아무 일도 없을거라 확신하였다. 그렇게 맘가짐 가지니 크나큰 돌무지에 눌리운듯하던 맘이 좀 들리는것 같았다. 혜진이는 옷을 벗고 애옆에 다시 누웠다. 그러나 두눈은 의연히 말똥말똥하였다. 그래서 아예 자리차고 일어나 창문밖을 내다보았다. 혜진이네 집은 4층이다보니 밖의 정경이 한눈에 확 안겨올 정도이다. 이때다. 빨간 택시차가 스르르 미끌어지듯 아빠트아래에 와 멈춰선다. 차에서 성준이가 내린다. (아이구, 인제야 오는구나) 혜진이가 속으로 이렇게 말하려던차에 안에서 누군가 뒤따라 내린다. 혜진이가 살펴보니 녀자이다. 가슴이 널뛰듯 쿵쿵거린다. 두눈에선 불길이 확확 뿜겨나온다. 찬히 여겨보니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틀림없는 채연이였다. 금방까지 전화에서 걱정말라던 채연이였던것이다. 채연이는 성준이하고 뭔가 몇마디 말하는것 같더니 손바닥으로 키스를 날려보낸후 성준이를 살며시 끌어안아보고서야 차에 올라탔다. 성준이가 손을 젓자 차는 부르릉 하고 꽁무니를 내뺐다. 순간 혜진이는 그 자리에 팍 꼬꾸라졌다. 두눈에선 눈물이 좔좔 흘러내린다. 기다림의 대가가 이게였던가? 갑자기 목안이 꽉 미여오더니 뭔가 울컥 하고 쏟아나왔다. 시뻘건 피덩이였다… <<연변문학>>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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