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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다의 선물
박초란
1. 프롤로그
“어떻게 된 거지?”
네티는 자신의 팔다리를 차례로 쓰다듬어보고 배와 가슴께를 쓸어본다. 그러다가 생각난듯 꽉 닫힌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앗!”
네티는 가볍게 비명소리를 냈다.
분명 그 안에는 네티 그녀 자신이 희미하게 비쳐있었다. 싹뚝 자른 단발머리와 동그스름한 얼굴, 그녀를 가장 빛나게 해주었던 까만 눈동자.
갑자기 눈동자가 떨렸다. 어둠이 깃든 창 속 자신의 모습 뒤로 조그마한 침대를 발견했다. 몸을 돌렸다.
낯설은 방, 낯설은 침대.
그녀가 누워있던 침대 발치께로 작은 영아침대가 놓여져있었다.
네티는 몸을 일으켜 나무향이 솔솔 풍기는 침대 안을 들여다본다. 녀아가 주먹을 쥔 채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네티가 자그마한 소리로 불렀다.
“네티!”
꼬마 네티가 그 부름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잠결에 샐쭉 웃었다. 티없이 맑은 이슬 같은 얼굴이였다. 네티는 꼬마 네티를 이슬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충동을 그 순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네티의 입가에도 웃음이 상현달 같이 걸렸다.
그것이 네티와 네티의 첫 만남이였다.
2. 이기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기다의 눈’이라고 불렀다. 이기다의 네티는 세상에서 가장 까맣고 반짝이는 두눈을 갖고 있었다. 우주의 블랙홀마냥 모든 것을 흡수해버릴듯한 그녀의 눈동자는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까만색이였고 깊고 깊은 바다같이 검푸르게 넘실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나면 어떠한 지혜도 어떠한 희망도 무색해졌다.
이기다의 네티는 이기다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스물일곱번째의 네티로 거듭나고 있었다. 스물일곱번째 네티와 스물여덟번째 네티가 만나는 순간이였다. 전까지는 한번도 없던 일이였다. 스물일곱번째 네티가 태여나면서 스물여섯번째 네티가 사라졌고 스물여섯번째 네티가 태여나면서 스물다섯번째 네티가 사라졌다. 이기다에서는 영아가 어미를 필요치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새로 태여났다. 정자와 란자의 개념은 언녕 력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더불어 불필요해진 성행위나 구애 자체도 도태되여버렸다. 후대라는 개념도 사라져갔다. 새로 태여나고 싶다면 이기다에 가서 신청만 하면 가능했다. 무로의 과정을 즐기고 싶다면 100년이든 1000년이든 뒤로 설정을 해도 되였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존재 자체를 원했다. 인공자궁에 들어가 십초 만에 새로 태여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진화라도 설정할 수가 있었고 코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다음번 태여날 때는 원하는 코모양을 설정해 태여날 수도 있었다. 년령마저 설정할 수가 있었다. 다시 태여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다시 한번 살 수가 있다는 것. 이기다는 그런 도시였고 이기다는 모든 불만이, 모든 결함이 만족스럽게 변할 수 있는 희망의 자궁이였다.
이기다에서는 시간 자체가 그다지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생로병사, 이기다는 이미 그것을 초월한 세상이였다. 생이 있되 생명의 잉태와 위대함 따위는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였다. 사死가 있되 죽음의 숙연함과 비장함 따위도 이미 상실된 지 오래되였다. 이기다의 주민들은 모두가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자신을 원했고 또한 그런 시설마저도 빈틈없이 갖춰져있었다. 누군가의 유전자가 잘못된 습관이나 병독의 침해로 조금의 변화를 일으켜도 경고가 들어왔다. 치료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다. 얼마든지 가장 건강하고 밝은 나로 돌아갈 수가 있으니까.
3. 네티
“네티 뭘 해?”
내가 네티의 방문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아무 것도.”
네티가 문께에 서있는 나를 흘낏 되돌아보더니 대답했다. 열다섯살인 네티의 반항적인 모습에 요즘 들어 나는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조용히 부엌으로 돌아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따끈한 커피가 생각났다.
나에게 네티는 뭘가?
나는 대체 뭘가?
나 자신에 대한 곤혹이 계속해서 따라붙는다.
그 인연의 풀리지 않는 끄트마리를 계속 헤집어본다. 당시 나는 다만 이기다를 통해 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었을 뿐이였다. 흑진주 같이 윤기나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지 일주일 쯤 되던 날이였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이기다를 통해 몇백번을 다시 태여난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에서 나처럼 몇십년에 한번 어쩌다 이기다를 리용하는 인간은 극소수였다.
이기다에 들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작은 네티가 작은 침대에 누워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당신의 아이예요.”
침실에 들어온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아이라니?”
내가 놀라자 간호사가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교수님 모셔올게요.”
맞다. 잠시 뒤에 만난 그 칠십대로 보이는 교수란 작자가 내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 잉태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코웃음 치지도 못했다.
“엄마가 된 기분이 어때요?”
흰머리를 날리며 침실로 들어서면서 그 작자가 싱글벙글했다.
굳이 왜 흰머리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언젠가 한번 쯤 만났던 적이 있을지를 속궁리해봤다. 중년과 청년이였던 그의 모습들을 하나씩 그려보면서.
전혀 기억에 떠오르는 게 없다.
“나에겐 지금 모습이 가장 좋아요. 젊은 시절의 그 어느 때보다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지금이. 그래서 죽음이란 영원으로 한발 들여놓은듯한 지금이 가장 좋거든요.”
그 작자가 내 마음을 궤뚫어보기라도 한듯 말했다. 그 진지한 모습에 뭐라 대답거리를 잃어버린 채 할일 없이 하얀 머리카락만 쳐다보았다.
“안기홍입니다. 소개가 늦어졌군요. 안교수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 작자가 아니구요.”
“여긴…”
멋쩍어진 기분으로 말을 돌렸다.
“네티, 여긴 이기다의 가장 중심지입니다. 이기다의 근원인 셈이지요.”
안교수의 등뒤, 활짝 열린 문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실험기구들이 보였다.
“당신은 이기다의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자궁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요. 자궁이 뭔지 아시지요? 인공자궁이 아닌 진정한 자궁. 당신은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지요. 우리의 짐작이 맞았어요. 당신은 이제 건강하고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되였지요. 저 아인 당신이 낳은 딸입니다.”
내가 가볍게 소리를 질렀다. 한번도 아이 같은 걸 낳는다는 생각을 못해봤던 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교수의 눈빛을 따라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가 얼굴을 잔뜩 이그러뜨리고 피식거렸다. 나는 묵직해진 유방 앞 옷이 축축히 젖어듬을 느꼈다.
“배고프군요. 먼저 아이한테 젖을 먹이시지요. 잠시 뒤에 계속하지요.”
안교수가 나가면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는 아이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을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네티, 너랑 닮은 거야? 아기였던 너랑 닮은 거야?
나는 어릴 적의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없다. 나 역시도 이기다의 모든 이들처럼 인공자궁 안에서 다시 한번 잉태되였고 기계사람인 ‘마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컸고 걸음마를 옮길 즈음 이기다의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뛰놀며 함께 컸다. 우리에게는 이기다가 엄마였다.
나는 서투른 손짓으로 가슴을 들춰 아이의 조그마한 입안으로 조금만 다쳐도 젖이 흘러나오는 유두를 갖다 대였다. 아이가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네티는 그렇게 조그마한 입으로 먹고 또 먹으면서 날이 다르게 커갔다.
“엄마가 된 기분이 어떠세요?”
그 한마디는 화두와 같이 15년 동안 순간순간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 물음을 떠올린다.
“엄마가 된 기분이 어떠세요?”
4. 안교수
이기다로 다시 태여남으로써 인간은 불사의 몸이 되였다. 불사의 몸이 되고 난 뒤 인간은 후대를 잉태해야 할 의무 따위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한세대 또 한세대를 통해 업그레이드되여왔던 인간은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세대교체를 하지 않아도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인격체로 승화시킬 수가 있게 되였다.
인간의 욕망이 최고조에 도달하고 나서 처음으로 일어난 변혁은 인간의 자궁의 퇴화였다. 자궁 뿐 아니라 정자와 란자마저 말라가다가 그 자취를 감춰버렸다.
피 한방울, 머리카락 한오리, 손톱 한점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태여날 수가 있는 이기다, 나는 이기다를 사랑했다. 이천년이란 세월 동안 내가 해온 일이기도 했다.
이기다에는 어미가 없다. 그리고 그 자식 또한 없다. 인간자궁을 통해 새롭게 태여나는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 부모와 형제, 이런 친인이란 개념 자체가 멀어진 지 오래다. 결혼 그 자체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아주 극소수인들의 선택일 뿐이다. 갑자기 다음달에 십대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도 많았으므로.
그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저 이기다는 법으로 규정되였다. “결혼한 뒤 14년은 이기다를 리용할 수가 없다.”라고. 이기다는 7년을 한주기로 셈을 한다. 즉 7년에 한번을 이기다로 들어가는 기회를 얻는다. 만약 그 사이 이외의 사고나 변을 당했을 경우에만 이기다로 들어갈 수가 있는데 정확히 그 나이 만큼만 허용이 되군 했다. 모든 호칭들이 거의 의미를 상실했고 주민 모두가 이름으로 불렸다. 일곱살 아이가 일흔살의 로인에게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누구도 정확히 자신이 몇살인지를 알지를 못했다.
나는 정확히 2071년 하고도 242일을 살았다.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밤이면 창밖에서 술렁거린다. 지난 천년을 나는 이기다의 행복에 취해 지내왔다. 앞으로 닥칠 위기가 무엇인지 알지를 못한 채.
위기,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인간이 자궁을 잃어버린 뒤였다. 미친듯이 병원과 연구소를 돌아다니면서 정자와 란자를 찾았고 그것을 배양하기 위해 수억번의 실험을 진행했다.
네티를 발견하게 된 건 행운이였다. 이기다의 네티. 네티는 거의 70년에 한번 정도로 이기다를 사용하고 있었다. 네티는 영아기를 거치고 십대와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와 사십대와 륙십대와 칠십대를 거쳐 안온하게 자신의 생명을 즐기는 극소수의 부류에 속했다. 인간은 너무도 많이 젊음에 집착해있었다. 네티가 내 눈을 끌게 된 건 이기다의 반응 때문이였다. 이기다가 70년에 한번 정도 잠간 정지되군 했는데 그 원인이 네티라는 걸 발견하고 나서였다.
왜서일가?
네티의 모든 자료를 조사해나가다가 네티한테 지금의 인류에게는 없는 자궁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기다가 멈칫거린 것은 그 때문이였다.
5. 내 이름도 네티
내가 세상을 알기 시작해서부터 알게 된 건 이 세상 아이들 누구도 나처럼 엄마가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였다.
엄마.
아이들은 엄마란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키워준 건 엄마가 아니라 ‘마마’라고 불리우는 기계사람이였다는 걸 어렸을 적의 나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나처럼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란 건 분명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배꼽이 아파났다.
엄마의 이름은 네티였다.
네티와 네티.
나는 엄마와 딸은 다 이름이 같은 법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였다. 네티는 이 세상에 하나 뿐이여야 했다. 이기다의 법률이 그랬다. 끝없는 복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는데 꼭같은 유전자는 다만 한명만이 인정이 되였고 누군가가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 시 발각만 되면 3000년 동안 강제수면에 들어가야 했다.
나와 엄마는 이기다의 중심지인 안교수의 연구소 안에서 내가 아홉살 때까지 살았다. 나는 세살부터 밖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뛰놀면서 컸다. 물론 그동안 엄마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 뒤 안교수는 엄마가 살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가 자연인간족(인간의 자연적인 생사를 즐기려는 사람들 군체) 집거구역에 집 한채를 마련해 우리를 살게 했다. 집안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여있는 집이였다. 열두살 쯤 되여 나는 나 자신이 네티의 복제인간이 아닌지에 대해 큰 곤혹을 느꼈었다. 엄마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꽤 큰 곤역을 치렀다. 뭔가 이상했다. 엄마, 하면 자꾸 이기다가 떠올려졌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 만큼은 아니겠지만. 엄마는 가끔 나를 숨막히게 한다. 나에 대해서 엄마는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여긴다. 나는 나인데 엄마가 어떻게 나를 안다는 건지, 나는 가끔 네티가 아니고 싶다. 그냥 내 이름을 이슬이라고 부르지 왜 그랬어? 타박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머리 우에서 비둘기가 꾸룩꾸룩 소리를 내더니 퍼드득 날아간다. 보지 않아도 재빛 비둘기다. 웃집 주택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키우고 있는 비둘기 한쌍은 해질녘이면 늘 내 방 창문 우에서 깃을 다듬군 했다. 노르스름한 해살이 창가에 비스듬히 기울어져있다. 거실에서 엄마의 흥얼거림이 들려온다. 엄마는 바다가의 주택에서 살면서부터 가끔 일을 하다가도 흥얼거리군 했다. 엄마의 노래소리는 듣기가 좋았다. 엄마는 땀을 흘리면서 집안 곳곳을 쓸고 닦았다. 그러다가 가끔 생각난듯 내 방문을 열고 빠끔히 들여다보거나 내 이름을 자그마한 소리로 불러보군 했다.
친구들은 나 역시도 이기다에서 태여난 줄로 알고 있었다. 내가 첫 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이들은 어떤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가? 이기다의 아이들은 은근히 많은 생을 살아왔다는 것에 자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주 가끔 엄마의 자궁에서 태여난 아이라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군 한다. 정확히 그것은 수치심이였다.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나의 비밀이였다. 안교수는 나의 미세한 변화라도 알고 싶어 안달을 떨었지만 나는 이제 어떤 생각들은 감춰야 한다는 걸 배웠다. 생각마저도 읽어낼 수가 있는 기계를 인간이 만들어낸다면 참 공포스럽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이미 안교수의 독심술에만도 충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6. 생명의 근원
그 겨울 나는 고립되였다. 눈 한송이도 내리지 않던 긴긴 겨울이였다.
고립된 상태를 나 스스로가 바랐다고 해야 하는 게 맞았다. 모든 인연들과의 주춤거림. 싹뚝 잘라지지 않는 게 인연이였고 나는 여기저기서 부딪쳐오는 사람관계 때문에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다.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넘쳐났고 늘 열려있는 눈과 귀로 사정없이 들어오는 정보들 때문에 힘들었다.
2056년 전의 나. 서른아홉의 나는 당시 이미 생명과학원의 교수였고 한 녀자의 남편이였다. 나와 안해는 결혼한 11년간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안해의 문제였다. 안해의 자궁은 아이를 잉태하기를 거부했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왜지?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결국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보아버렸다고 할가? 나는 그 순간 사랑했던 안해로부터 쭉 멀어져갔다. 내가 한때 죽을 만큼 사랑했던 그녀가 가증스러워졌다. 그녀의 살뜰함 모두가 허위처럼 보였다. 멋모르는 량가 부모님들은 일만 일이라 말고 빨리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볼 때마다 우리에게 닥달을 했다. 그녀도 나도 서서히 지쳐갔고 거기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하루이틀 한 게 아니였다. 몸도 힘들어졌고 정신도 잔뜩 긴장되여있다는 건 그 시간들이 흘러간 뒤 깨달았다. 어쩌면 그녀와 나 사이엔 영영 아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껌딱지처럼 매달렸다. 그녀와의 인연을 끝내는 게 가장 간단한 방식임을 알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너무 쉽게 내뱉는 친구들의 말들이 상처가 되고 있었다.
“안교수,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너 참 복도 많다. 그 고생을 면했으니…”
“안교수, 애를 낳으려면 둘은 낳아야 돼. 이제 한꺼번에 쌍둥이를 낳으면 되겠군.”
“안교수, 당신 부부는 언제 아이를 가질 생각이야? 돈도 명예도 이제 그만큼 하면 됐지 않았어?”
나보다도 안해가 감당해야 할 부담감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안해에게 그런 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못해줬다.
안해가 죽고 나서야 나는 번쩍 정신이 든 기분이였다.
안해에게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안해의 이름은 기다였다.
7. 이게 아니라
나는 그동안 진화하고 변해온 과정들을 즐겼다.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의 그 과정을 즐겼듯 아이가 진화하고 변해가는 과정들을 즐겼다. 아이가 나를 초월한 그 뭔가의 발견, 내 삶 속에서는 그 신비함이 차넘쳤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그 신비함보다 아연함과 초조함이 더 많아졌다. 아이는 더 이상 나와 교류하기를 꺼렸다. 아이의 눈빛에서 나는 살짝 비껴가는 경멸 비슷한 감정을 발견하기도 했다.
‘엄마가 뭘 알아?’
그런 찌가 내 슬픔을 톡톡 건드리면서 아이의 까만 눈동자 안에서 일렁이였다.
처음 아이의 눈동자가 내 눈동자보다도 더 까맣고 깊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그 순간에 가뭇없이 사라져버린다.
‘이게 아닌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티. 산스트리트어로 네티는 ‘그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베단타학파의 몇몇이 령적인 길을 일러 ‘네티’라고 불렀는데 벗겨없애는 과정을 통해서 본질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게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불러본다.
“네티…”
그러니까 나도 결국은 ‘그것이 아니다’였다.
슬프지만 그랬다. 나는 슬픈 눈으로 그런 슬퍼하는 ‘그것이 아니다’인 네티를 들여다본다. 여기 있는 네티와 저기 있는 네티, 성인이 된 네티와 작은 소녀인 네티.
‘그것이 아니다’인 우리는 대체 어데로 가고 있는 걸가?
나는 안교수가 원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나 스스로도 ‘그것이 아니다’인 그 마지막 남겨진 뭔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나, 가 점점 희미해져갔다고 하는 게 맞았다. 내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존재 때문일가?
어둠 속으로 떨어져내리는 꿈속에서 소스라쳐 깬 날 새벽, 문득 나에게 묻는 소리가 푸르끄레한 어둠 속에서 음울하게 울려나왔다.
그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말라버린 감자마냥 쭈그러들고 있었다.
한번도 없던 느낌이였다.
스물일곱번의 로쇠를 겪어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였다. 벗겨진 매미의 허물 같이 홀가분해진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묵직함과 홀가분함의 공무共舞, 나는 네티여야만 했다. 그 아이가 네티여야만 했던 것처럼.
해가 뜬다. 해 뜰 무렵이면 나는 이기다의 가장 중심이고 가장 높은 곳인 연구소의 침실 창가에 기대여서서 잠에서 서서히 깨여나는 만다라 모양의 이기다를 내려다보았던 그 날들을 떠올린다. 아기였던 네티의 말랑말랑한 볼과 팔과 손과 다리, 나는 그 순간들의 행복을 떠오르는 노란 해살 속에서 받아안는다.
8. 가족
안기홍교수는 내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련관이 없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 분이야말로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사람이였다. 나는 엄마가 안기홍교수를 그 작자라고 부르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발생한 잉태와 출산 자체를 혐오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가 내 눈을 마주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아챘다. 엄마가 엄마 나름 대로의 판단 우에 내 판단을 더 얹지를 말아야지 생각했다. 엄마와 부딪치기를 포기하고 나서 집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미 충분히 조잡하고 화약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터라 그 적막이 더 숨막힐 것만 같았는데 엄마는 태연하게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가끔 코노래까지 흥얼대군 했다.
엄마는 나를 낳기 전 이기다의 눈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새도나 마스카라나 아이펜슬 같은 유명 브랜드의 대표적 광고모델이였다. 엄마의 눈은 이기다의 도처에 걸려져서 검푸른 바다와 같이 보는 사람들을 향해 넘실거렸다. 사람들은 나를 그 네티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게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게 싫었다.
“네티는 내 엄마예요!”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건 아빠에게서 주의를 받았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엄마나 나 둘 중 하나는 영영 사라져야 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 사라짐이 존재하지 않는 이기다에서는 사라진다는 말이 금기였다.
나는 가끔 그런 유혹을 느낀다.
“난 이기다가 아닌 네티의 자궁에서 태여난 아이예요.”
왜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는지 나는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사람들은 동물들만이 그 더러운 자궁을 통해서 후대를 번식한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를 잊어버릴 수가 없다. 내 짝꿍이였던 수림이 그림책을 같이 보다가 내게 말했다.
“토끼가 이렇게 태여난대. 이봐. 어미토끼 자궁 안에 있는 새끼들을.”
함께 보고 있던 그림책 안에는 여섯마리의 새끼가 바글거리는 어미토끼의 자궁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피비린내가 확 코에 달라붙듯했다.
나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내 온몸에 달라붙어있던 피와 양수 그 진득함이 느껴졌다.
고작 다섯살이였던 나는 그 순간 진한 살기를 느꼈다.
9. 그만하고 싶어, 이젠
잠결에 안해가 혼자말 하는 소리를 어슴프레 들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깨고 나서야 나는 안해가 11층 베란다에서 아래로 뛰여내렸다는 걸 알았다. 네번째 실험관아기가 실패하고 난 뒤였다.
안해는 유서 한장 남기지 않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경찰에서는 자살로 판정이 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안해를 베란다로 떠밀어낸 살인용의자로 인식이 되였다.
혼자서 연구소에 파묻혀 지내는 날들이 늘어났다. 안해의 목소리가 계속 내 귀 속으로 파고 들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 때 잠에서 깼더라면 안해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살인자로 심판석에 올렸다.
나도 이제 그만하고 싶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내쉬는 일을.
그 날도 안해의 목소리가 내 귀가에 울렸다.
“당신, 할일이 많잖아. 난 정말이지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어. 남들에겐 그렇게 쉬운 일이 왜 나에겐 그렇게 힘들었을가? 당신 한번 나를 위해서 살아봐. 이기다, 그래. 이기다를 만들어봐. 인류를 낳는 이기다를.”
번쩍 눈이 띄여지는 기분이였다. 내 평생을 다해서 해야 할 일을 이제 찾았다는 걸 알았다. 안해가 나를, 이기다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났고 내 안해가 되였고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불임으로 고통을 겪었고 베란다에서 뛰여내렸다는 걸 알았다.
10. 무엇을 보여주든
그렇다. 나는 나를 낳았다. 그 작자가 내 딸이라고 했지만 나는 안다. 내가 낳은 것은 정자와 란자가 결합해 낳은 아이가 아니라 나라는 걸. 그것을 밝혀야 하는데 그 분명했던 목표가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무의미해졌다고 확인하는 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다.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정자였어요. 다른 생각 하지 마세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당신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니까. 아시죠?”
안교수가 나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그가 애를 쓸수록 나는 점점 모든 것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이 작자가 나를 연구소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꽁꽁 숨겨놓을 때부터 솔직히 의심스럽긴 했었다.
네티와 함께 살면서 정확히 말해서 네티가 점점 성장해오면서 나는 알았다. 매일매일 내가 씻기고 먹이고 했던 그 아이가 나라는 걸.
왼쪽 발바닥의 점마저 똑같았다. 웃을 때면 코를 잔뜩 매다는 것도 같았고 불안할 때면 손톱을 씹는 습관도 똑같았다. 고집스럽게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것도 다름이 없었다.
마흔둘의 네티가 열다섯의 네티를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확히 말하면 열다섯의 네티의 잔뜩 긴장된 어깨를 바라보았다.
“내려와서 간식 먹을래?”
내가 물었다.
“아니, 배가 안 고파.”
네티가 뒤도 돌아볼 념을 않고 대답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열다섯의 나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거니까. 화를 내봤자 내가 내 자신한테 화를 내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슬퍼진다. 나는 나에게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고 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두 네티 중 하나가 사라져야 한다면 나는 내가 사라지고 싶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저 아이는 엄마가 주었던 그 사랑을 그 때 가서 아주 가끔이지만 떠올려보겠지? 그게 위안이 된다. 나는 열다섯의 네티가 엄마가 있었던 날들을 이제 살아가야 할 수많은 날들에 기억해주길 어쩌면 바라고 있었다.
나는 네티를 사랑했다.
11. 나는 양파가 아니야
비가 올 것 같다.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공기 속 물방울들과 찰랑찰랑 부딪친다.
저녁식사 전이였다. 물 마시러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표정이 이상했다. 까고 있던 양파 한알을 손안에 든 채 노려보고 있었다.
“뭐 해?”
내가 핀잔했다.
엄마는 양파 하나를 바라보는 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양파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짜증이 나려고 한다.
엄마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연거퍼 세겹의 양파껍질을 벗겨버렸다. 양파의 알싸한 냄새가 코끝에 묻어났다.
내가 손을 내밀었다. 엄마가 내 손을 거칠게 밀어냈다. 엄마의 손끝은 양파로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엄마는 멈추지 않고 계속 양파를 벗기기 시작했다. 주먹 만큼 했던 양파가 어느새 계란 만큼 작아졌다.
“이건가?”
엄마가 혼자소리를 했다.
“뭐가?”
내가 다급히 물었다.
엄마가 나를 돌아보았지만 엄마의 눈동자 안에는 내가 없다. 불안해졌다.
“엄마, 왜 그래? 무섭게.”
엄마의 눈동자 속에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늘 그랬던듯 엄마에게는 내가 전부라고만 믿었다. 변하지도 변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것 봐.”
엄마가 내 눈앞으로 메추리알 만큼 된 양파를 내밀었다. 엄마의 눈굽은 이미 양파의 매운 맛에 축축해져있었다.
엄마가 마지막 한겹을 벗겼다. 허물 같이 벗겨진 마지막 한겹이 엄마의 손끝에서 떨어져내리고 엄마가 다시 물었다.
“이거 보이지?”
나는 엄마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멍청하니 서서 그런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한겹한겹 다 벗겨내고 나니 마지막에 이게 남았어. 네티도 이렇겠지?”
나는 엄마의 텅 빈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거기 소중한 것이 담겨져있기라도 하듯 두 손바닥으로 떠안고 있다.
“이걸 기억해야 돼. 언젠가 너도 양파처럼.”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의 눈동자 안에서 양파 하나를 보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내가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싫어. 나는 양파가 아니란 말이야!”
12. 이게 아니더라도
“그것을 만났군요.”
그 작자가 부엌으로 들어서다 말고 아이의 어깨를 두손으로 잡으면서 소리쳤다. 아이가 조금 놀라나 싶더니 안교수인 것을 알고는 올려다보며 샐쭉 웃었다. 아이가 저런 웃음을 내게 보이길 거부한 지가 꽤 오래되였다는 생각이 난다.
이게 아니라.
나는 나 대로의 삶을 그냥 살게 내버려두지 않은 그 작자를 노려보았다. 아이가 제멋대로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귀에 거슬렸다.
“아빠.”
아이가 또 한번 내 앞에서 그 작자를 아빠라고 부른다. 주먹을 쥔다.
“아빠란 소리 하지 말랬지.”
내가 으르렁거렸다.
아이가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는 분명한 아이였다.
“왜 또 그런대?”
아이가 들릴락말락 내쏘았다.
“왜 그러냐니?”
입안에서만 감돌기만 하는 말들.
내가 나를 낳았는데, 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내가 나를 먹이고 키웠는데… 왜 그러냐니? 이 한심한 네티야! 넌 아비가 없이 태여났단다… 그렇다고 내가 단성생식으로 바다와 하늘을 낳은 ‘가이아’인 것은 아니잖니?
나는 삽시간에 분노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양파의 뿌리를 잘랐던 가느다란 칼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북쪽으로 난 창으로부터 비쳐들어오는 석양빛에 반짝거리고 있는 칼날. 내 마음이 그 칼날에 베인듯 섬뜩했다. ‘그것이 아니다’인 나는 이제 과거가 되였다.
“미친 놈, 네 놈은 인간도 아니야!”
내가 고함을 질렀다.
어느새 손에 잡힌 칼이 정확하게 그 작자의 심장으로 푹 꽂혔다. 피가 뿜겨나오면서 내 얼굴과 머리카락에 들씌워졌다. 뜨끈뜨끈한 피였다. 내 몸안에도 이렇듯 뜨끈뜨끈한 피가 흐르고 있겠지?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이미 땅바닥에 널부러진 그 작자의 심장을 향해 칼을 꽂았다. 그러다가 지쳐버린 나는 시체마냥 널부러져서 부엌문가에 가까스레 기댄 채 하얗게 질려버린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말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젠 헛갈린다. 내가 과거의 나인지 저 아이가 과거의 나인지? 아이가 나의 과거인지? 내가 아이의 과거인지?
밤이면 미래의 수많은 ‘나’가 우르르달려들어 나를 집어뜯고 사지를 찢는다.
더 이상 심장이 아프지가 않으리라. 이젠 아프지가 않으리라! 우리와 함께 사라져갈 것은 영원으로 사라져버릴 테니까. 이젠 멈춰지겠지… 헛갈리기만 했던 나. 스물일곱번째 네티가 그립다.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완정했던 네티. 완정한 하나의 ‘그게 아니다’가.
등뒤에서 퍽, 소리가 나나 싶더니 심장을 도려내는듯한 통증이 밀려온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피 묻은 가위를 손에 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또 하나의 네티가 어쩔 바를 몰라 서있었다.
그 순간, 배꼽이 불에라도 덴듯 모질게 아파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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