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마른 가루는 익반죽을 해야만 한다. 나무주걱으로 김이 물물 솟아오르는 쌀가루를 젓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직까지 한번도 아이한테 떡은커녕 근사한 밥상 한번 차려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이를 보러 시댁으로 갔을 때도 시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아이와 함께 먹기만 했었다는 사실을, 수많은 날 이름도 모를 낯선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주변의 친인들에겐 린색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힘껏 쌀가루를 젓는다. 그러다가 나무주걱이 귀찮아진듯 손을 집어넣고 손바닥으로 쌀가루를 비비기 시작한다. 아직 가루는 뜨거웠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마저 불에 덴듯 뜨거워짐을 느낀다. 손안에 움켜쥐우는 쌀가루의 촉감, 그녀는 조금 물을 더 넣는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으로 쌀가루를 비빈다. 너무 물이 많아도 안된다. 물기를 해주어 마르기 전의 촉촉한 쌀가루의 촉감으로 되돌리면 된다. 쌀가루가, 바싹 말랐던 가루들이 물기를 머금고 조금씩 살아나는듯 그녀의 손안에서 뭉쳐졌다가 다시 부서지기를 계속한다. 그녀는 손바닥안의 쌀가루와 함께 포실포실 숨을 쉰다. 이제 쌀가루는 갓 방아간에서 나온듯 폭신하고 차분해져있다. 그녀는 언녕 창 밖의 초미세먼지 따위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숨쉬기가 힘들었던 것도 옛날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가루를 가는채로 내린다. 하얀 눈송이같이 채밑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떡가루… 그녀는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채를 살살 친다. 톡톡 손바닥으로 동그란 대나무채틀을 두드려 가면서…
허리를 펴고 숨을 내쉰다. 크게… 쪼크리고 앉아있었던 탓에 허리가 뻐근하다. 배가 다시 고프기 시작했다. 그냥 동네시장어구에 있는 만두집에 가서 찐만두나 구운 떡으로 대충 때우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몸 한켠에 오랜 세월 숨겨져있던 졸깃졸깃한 떡을 한입 베여물었을 때의 촉감이 더더욱 간절해진다. 이제 시작이다. 찜틀에 면포를 깔고 어머니가 했던 듯이 물을 더 뿌려 버무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둥그렇게 빚어 차곡차곡 빙둘러 줄세워 그것들을 포개놓은 뒤, 이미 한벌 김을 올린 시루에 넣고 찌기 시작한다. 조금 뒤 물이 끓는 소리에 이어 김이 쌕쌕 빠져나오는 소리가 주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녀는 떡이 쪄지기를 기다리며 거실 쏘파에 벌렁 누워버린다. 떡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였어? 아직 절반도 못했는데도? 그녀는 의아해진다. 매일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 많은 량의 떡을 만드는 걸 볼 때는 그것이 세상 쉬운 일 같았는데 말이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네이버에 들어가 검색해본다.
골무떡.
가래떡의 경상도 사투리… 라는 단어해석이 뜬다. 그리고 다른 한 사이트에서는 멥쌀가루에 물을 내려 찌고 청, 홍, 황색 물을 들여서 오래 치댄 후 골무모양으로 만든 떡(도병)이고 평안도 지방의 떡이라고도 했다.
그 외에는 골무떡에 관련된 건 아무리 찾아볼려고 해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이상 찾는 걸 포기하고 사이트에서 나오고 나서 그녀는 다시 시댁으로 전화를 한다.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열두시가 지나있다. 점심때면 한창 모여서 식사를 할 시간이였다.
모두 어데 간 건가? 그녀는 다시 시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본다. 역시 받지를 않는다.
이상한데? 웬 일이지? 그녀는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서둘러 남편에게로 전화를 한다.
전화벨이 한참을 울리고 나서야 간신히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어디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그녀가 조금 짜증을 냈다.
남편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녀는 사람들 소리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분명 시어머니의 어쩐다니… 내가 뭔 면목으로… 본다니… 하는 흐느낌소리 혹은 넉두리 비슷한 것을 들었다. 그녀는 소스라치듯 놀란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어머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응? 아니… 응…”
남편의 대답이 영 시원치가 않다.
“뭐야? 집에 간 거면 간 거지 못 갈델 간 것도 아니고 왜 이래? 어머님은 왜? 우시는 거 같은데? 어머님 혹시 아버님이랑… 아니다…”
남편이 거기 있다는 것에 그동안 졸였던 그녀의 마음이 좀은 가라앉는다. 헌데 시어머니는 왜 우시지?
“분명 뭔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일은 잘 마무리된 거야? 래일에야 돌아올 것 같다더니…”
그녀는 좀더 남편의 말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응, 아무 일도… 일은 일찍 끝났어. 아까 금방 여기 도착했구…”
남편이 자리를 옮긴듯 통화가 이제 한결 조용해졌다. 그녀는 가만히 웃는다.
“딸냄이가 보고 싶었구나… 나도 보고 싶어서… 우리 이쁜 딸 먹일라고 떡 만들고 있다가 통화라도 할가고 전화를 계속했는데 안 받아서… 웬 일인가 했지… 아, 맞다… 우리 딸 좀 바꿔줘봐요…”
그녀는 공연히 분주해진다.
“그게… 영이야… 아이가…”
남편이 말을 잇지를 못한다. 누군가가 “먼저 오라고 하는 게…”하고 뒤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급습한다. 그 불안감이 미세먼지같이 그녀의 목안에 걸려 지걱거린다. 눈이 매웠다.
“혹시, 애가… 뭔 일이… 있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라면서…”
공포가 스멀스멀 그녀를 핥고 지난다.
“지금 와야 될 것 같애… 혼자서… 올 만하지?”
남편의 어조는 가라앉아있었다. 그 목소리 안에는 뭔가 감추고저 하면서도 감출 수가 없는 비통함 같은 것이 깔려져있는 것만 같았다. 순간, 그녀는 설마하는 요행마저도 바람받이 초불마냥 쑥 꺼져버리는, 와장창 뭔가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아이가… 우리 아이가… 왜 그래… 모두들… 아까부터 전화도 안 받고…”
그녀는 두렵다. 그녀는 허둥거린다. 부엌에서 김이 올라오는 소리가 더욱 크게 집안에 울린다.
“잠깐만… 잠깐만 있어봐요… 가스불에 떡 올려놨는데… 다 해가지고 가면 안될가? 애 먹일라고… 그래서… 그래서…”
“정신 차려! 그냥, 지금 옷 입고 나와… 내가 차를 불렀으니… 근처에 사는 내 친구 알지? 동욱이가 마중을 나가 있을 거야. 나와서 차 타고 공항에 가면 돼… 신분증 챙기고… 티켓은 이미 끊어놓았으니까.”
남편의 목소리가 랭정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져버린다.
이제 떡도 거의 쪄져가고 그것을 치대고 틀로 찍으면 되는데… 그럼 되는데… 되는데…
그렇게 옴씹다가 그녀는 바락 아스러지는 비명을 지른다.
“뭘 하자는 거야? 대체! 애가… 애가 죽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녀는 악을 썼다. 세상이, 온통 미세먼지에 둘러싸였던 세상이 어두컴컴해졌다.
“와서… 와서 얘길 하자. 제발!”
남편이 애원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물앉아버렸다. 온몸이 흙속으로 잦아들듯 싶었다. 고운 모래알들이 차곡차곡 그녀의 몸우에 쌓였다. 하늘 땅에 넘쳐나던 미세먼지들이 눈깜짝할 새 그녀를 묻어버리고 만다. 그녀는 꺽, 숨이 막혔다. 가슴이 미여지듯 아파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오른손 하나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가슴을 투덕투덕 두드리기 시작했다.
똑, 똑, 똑.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조금 뒤 나지막하고 웅글진 목소리가 들렸다.
계시지요… 시간이 급해서…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현관문을 노려본다. 거기에 저승사자라도 서있기라도 하듯… 그녀 등뒤에서 김이 씩씩 악다구니질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
아이는 비탈아래에 가득 핀 제비꽃을 보았다.
꽃, 꽃…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할아버지는 한참 떨어진 저편 밭머리에서 비습한 땅을 삽으로 번지고 있었고 할머니는 아이와 가까운 비탈아래 밭머리에서 달래를 캐고 있었다.
분홍머리삔을 한 아이는 제법 잘 달아다녔다. 말도 곧잘했다. 이제 막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한 아이의 눈에는 보라빛 제비꽃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로 머흘머흘 구름송이들이 동쪽으로 흘러갔고 사리사리 누군가 밭에서 태우는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져가고 있었다. 어데선가 귀맛 좋은 종달새소리가 울렸다. 아이가 꽃을 꺾다 말고 귀를 쫑긋거렸다.
할머니, 저거 뭐야?
아이가 노래하듯 소리쳐 물었다.
달래를 캐다 말고 할머니가 허리를 쭉 펴고 아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또 뭐가?
저 노래하는 거…
아이가 다시 귀를 쫑긋거렸다.
노래하는 거? 종달새구나. 종달새가 노래하네…
종달새가 포드등하고 머리 우를 스쳐지나간다.
종달새?! 참 이뻐… 할머니, 그치? 참 이쁘지? 왜 종달새는 저렇게 빨리 날아가? 울 엄마한테도 들려주고 싶은데…
아이는 이미 자취도 없어진, 새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꽃 많이 뜯었어? 그 꽃 누구 줄라고?
이번에는 할머니가 물었다.
엄마!
아이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키워줘도 엄마밖에 없네. 없어…
할머니는 구시렁거리며 웃다가 다시 달래를 파기 시작한다. 바구니를 거의 다 채워가고 있었다.
아이는 비탈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제비꽃을 꺾었다. 애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이는 제비꽃을 하나 또 하나 꺾었다.
그러다가 아이는 이른봄 번데기에서 막 까나온 새하얀 나비를 보았다. 처음 보는 나비였다. 아이는 좋아서 짝짜궁을 치다가 손을 내밀었다. 나비는 제비꽃처럼 쉽게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팔랑팔랑 날아예며 나비는 잡힐듯 말듯 아이를 희롱했다. 까드득, 아이의 웃는 소리가 하늘가로 가득 넘쳐났다. 아이는 온힘을 다해서 나비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비가 지친듯 비탈 웃쪽의 제비꽃우에 앉았다. 아이는 비탈우로 조심스럽게 숨도 죽인 채 살며시 올라갔다. 거짓말처럼 아이가 손을 내밀자 나비는 또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저편의 비탈 아래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너무 아쉬웠다. 서둘러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나비를 향해 몸을 날려 덮쳤다. 그 순간, 아이는 소리 한번 지르지도 못한 채 경사가 강한 비탈아래로 데굴데굴 구을러 내려갔다. 돌멩이가 떨어지 듯, 아이는 비탈밑 강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에 쑥 빠져들었다. 몇번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할머니,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시커먼 강물이 사정없이 아이의 코와 입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이의 두 손이 물우로 뻗었다.
엄… 마…
아무도 아이의 손을 잡아주질 않았다. 새하얀 나비도 언녕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아이의 할머니가 바구니를 다 채우고 아이를 찾았을 때는 아이의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기겁한 할머니는 바구니를 던져버리고 할아버지를 불렀고 할아버지가 시커먼 물에 들어가서 한참을 찾았지만 이미 아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떡집앞을 지나고 있었다. 화려하고 앙증맞게 이쁜 온갖 떡들이 오구작작 모여살고 있는 집. 그녀는 그중 아이한테 먹이고 싶었던 골무떡을 닮은 듯 닮지 않은 절편을 본다. 뚫어져라 괴물을 보듯이…
“떡이… 왜요?”
그녀의 표정에 놀란듯 떡집 녀자가 다가와 물었고 그녀는 소리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알았다. 그녀가 먹고 싶었던, 아이한테 먹이고 싶었던 떡은 결국은 떡집에서 살 수가 있었던 화려하고 이쁜 떡이 아니라 아무렇게 손으로 막 뭉그러뜨리면서 먹을 수가 있는 망글망글한 떡이였다는 걸… 잘 차려진 밥상이 아니라도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그냥 소박하다 못해 그냥 그런, 아무런 장식도 모양도 색감도 없는 그런 떡이였다는 걸 말이다. 그 옛날 어머니의 쪼가리떡처럼 말이다.
“괜찮은 거냐? 영아…”
어머니는 가끔 그녀에게 전화로 묻는다.
“응, 괜찮아!”
그녀는 씩씩하게 대답한다. 먼 하늘아래서라도 어머니가 이렇게 숨 쉬고 있다는 게 이렇게 위안이 되는 일인 줄 그녀는 그때 알았다. 아이의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아슴아슴하게 어데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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