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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곡月光曲
박초란
1.
나는 한번도 저축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이십대가 다 지나고 삼십대가 될 때까지 대체 나란 인간은 통 어떻게 살아온 건지 늘 가난에 허덕허덕거렸다. 돈에 쫓기우면서도 자신은 가난한 게 아니라고 계속 억지를 부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카드빚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져갔다. 거품처럼 하얗고 몽골몽골하게.
빚을 진다는 건 죄악이였다.
언니가 나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였다. 두세번 쯤 급한 카드빚을 물어준 것도 언니였는데 내가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또 언니에게 부탁을 하자 언니는 모질게도 나와의 모든 련락을 끊어버렸다. 언니가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내 친언니가 맞긴 한 건가?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돋기 시작할 즈음이였다. 몇번의 구세주로 도움을 줬음에도 이미 그 고마움들은 내게서 구만구천리로 날아가버렸고 섭섭한 마음이 날로 쌓여 서서히 노기로 변해갔다.
스마트폰을 켠다.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이 손안에 쥐여있지 않아도 불안하다.거의 모든 것이 모바일 결제 가능한 세상, 모두가 다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물론 인터넷을 아예 접하지 못한 늙은이나 꼬맹이들이야 뭐…) 카드빚까지 지게 된 것은 스마트폰의 공로가 참 많다. 그것도 안다. 그럼에도 카페인에 중독된 자가 죽어라고 커피를 마시듯 나 역시도 죽어라고 스마트폰을 뒤적거린다.별세상, 스마트폰 하나로 이어진 별세상에서 나만의 우주려행을 한다. 어차피 산다는 건 뭔가 하나 쯤은 미쳐있지 않을가? 나는 이쯤에서 사람들에게 관대하다.
-언니, 련락줘. 제발.
-언니, 뭔 일 생긴 건 아니지?
-언니, 대체 뭘 하는 거야?
-강미연, 너 죽을래?!
-강미연, 빨리 답장 줘라.
-야, 살았어 죽었어?
-썅, 네가 이러구도 언니야?
-인연 끊어, 끊자고.
-정말 인연 끊고 싶은 건 아니지?
-죽고 싶어…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언니, 한번만 딱 한번만 도와주라.
결국은 혼자서 미친년처럼 떠들어댄 판이였다. 언니는 숨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있다. 나는 텅 빈 대화창을 들여보다가 한숨을 내쉬였다. 설마 오늘도 답장이 없을가 싶었는데 정말로 답장이 없다. 언니에게 철저히 버려졌다는 배신감이 온몸을 훑고 다녔다. 새들이 귀찮게 벤치 옆 손바닥 만한 잎사귀를 저팔계의 귀마냥 너펄거리는 오동나무 우에서 우짖어댄다. 찔 째려보다가 다시 몸을 옹송그렸다.지금 누굴(그게 참새라도 말이지) 걱정할 때가 아니다. 당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데…
“강미연. 너 한번 해보자 이거지?”
나는 애꿎은 나무를 쏘아보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서슬에 참새들이 잠간 소리를 죽이나 싶더니 다시 재잘대기 시작했다. 온 나무 우에 참새들이 열매처럼 그득 매달려있듯 - 열매들이 일제히 입을 열고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재잘거림 - 어느새 내 머리속은 온통 새들의 지저귐으로 그득 찼다.
스마트폰 련락처를 다시 훑어내린다. 그렇다고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짠하고 나타날 리는 없겠지만.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선뜻 말하기는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신희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월급이 들어오려면 보름 정도나 남았는데 내 호주머니에는 먹고 살 만한 돈 한푼 없다.먹는 거야 친구한테 빌붙어 때운다 쳐도 정 아니면 동네 슈퍼의 싸구려 라면으로 보름을 버텨낸다 쳐도 카드빚은 더 밀릴래야 밀릴 수가 없다. 제일 먼저 언니한테 전화가 가겠지? 언니가 모른다고 하면? 그 순간 온 천하가, 친구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내 처지를 알아버릴 테지…
진저리가 쳐진다.
“거기서 뭐 해?”
숙소로 들어가는 길녘에 룸메이트인 신희가 뭔가 담긴 검은 봉다리를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붙어다녔던 짝꿍이였던 신희가 나를 자신이 안착하고 있는 북경으로 부른 건 지난 3월의 일이였다. 그전에 나는 청도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심수로 철새마냥 옮겨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가 쓸 만큼의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였는데 늘 돈이 모자랐고 늘 여기저기 직장들을 기웃거렸다.
처음 신희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오던 때가 기억난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였고 지저분한 동네였다. 마침 비까지 내린 터라 길마저 질척거려서 더욱 그랬다.
“여기서 산다고?”
트렁크를 끌고 신희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추위에 떨며 몇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상상하고 있던 거랑 너무 달라서 조금 당황했다.
“응. 다 왔어. 저기.”
긴 골목을 들어가서 작은 창문들이 다닥다닥 달린 ㄴ자형 건물 앞에서 그녀가 잠간 멈춰섰다. 그리고는 ㄴ의 내리금과 건너금이 만나는 끝녘의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2층에 있는 저 집이야.”
모두 3층으로 되여있는 건물이였고 내부를 보지 않아도 세를 주기 위해서 지은 건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시내 안의 집세가 너무 비싸서 좀 멀긴 하지만 차라리 나와 사니까 돈도 남고 조용하고 좋아.”
신희가 앞장서서 들어가며 말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 같았다. 소리들이 구석구석에서 웅웅거리며 울렸다.
신희에게 차라리 터놓고 말해볼가?
나는 멀거니 내 앞으로 다가오는 신희의 주근깨가 박힌 민낯을 쳐다본다. 신희는 세월이 지났어도 중학교 시절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게다가 화장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쓱쓱 크림 하나만 바르고 밖에 나서는 신희를 보고 경악했다. 물론 내 커다란 화장품 통을 보고 신희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얼마야?”
신희가 짧게 외마디소리를 냈고 나는 그런 신희의 옆에서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지…
그게 불과 두개월 전 일이였다. 알게 모르게 한눈에 보아도 몇해는 입은듯한 날깃날깃한 신희의 옷차림을 비꼬았던 순간들이 떠올려졌다.
“옷 같은 옷이 없네.”
“옷 좀 사입어라.”
내 앞으로 다가온 신희는 역시나 그 조촐한 옷차림이다. 몇해 전부터 류행되였던 착용감 좋은 검정색 데님에 유니클로 회색 반팔티. 그리고 하얀 끈의 검정색 운동화.
신희는 길림에서 대학을 다녔다. 고중을 졸업한 뒤 신희와 나는 별로 만날 새가 없었다. 딱 한번 신희가 내가 취직해서 살고 있던 청도로 놀러 왔을 뿐이였다. 신희는 그 당시 실련의 마음을 달랠 곳으로 나한테로 왔고 꼬박 사박오일을 바다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커피숍으로 와서 내가 퇴근하기까지 어둠이 내려앉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있군 했다. 신희는 아예 술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 똑같은 실련이지만 이렇듯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구나 하는 것을 나는 그녀를 보면서 배웠다. 신희가 도착한 날, 나는 내 방식 대로만 생각하고 맥주를 한구럭 사들였다. 결국은 밤을 새면서 혼자서 다 마셔버렸지만. 신희는 딱 반잔을 마시고 힘들어했다. 알콜과민 때문에 맥주 한모금도 못 마시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는 잔뜩 눈꺼풀이 풀린 눈으로 신희의 팔과 다리에 돋기 시작한 좁쌀 만한 빨간 도드래기를 지켜보았다.
“우리 참 다르다 그치?”
그 때 신희가 했던 말이 떠올려진다.
앞에 다가온 신희에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우리 참 다르다 그치?”
“여기서 뭐 해? 안 들어가고.”
신희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응. 널 기다렸지. 생각할 것도 좀 있고…”
나는 앉으라는 표시로 벤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신희는 앉을 념을 안하고 그런 나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너 먼저 들어가던가.”
내가 멋적어져 말했다.
“날 기다렸다면서?”
신희가 다그치듯 반문했다.
“알았어. 가자고. 들어가자고.”
심드렁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미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 신희의 발자국을 폭폭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에서 걷는 신희의 어깨가 단단하다. 신희가 화가 나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야 알았다.
집 문 앞에 다다르자 열쇠를 꺼내던 신희가 몸을 돌려 내게 물었다.
“너 내 카드 가져갔니?”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카드? 카드라니?”
내가 반문하자 그녀가 싸늘하게 말했다.
“ㅌ커피숍 카드 말이야.”
그제야 나는 그녀가 화를 내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아… 그거 말이야? 응. 어제 잠간 나갔다 오면서 갖고 나갔지. 꺼내놓는다는 게 깜빡했어.”
“그런 건 동의를 얻고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야?”
신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고작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서 그런 건데…”
주눅이 좀 들긴 했지만 그녀의 그 민감함에 나도 발끈했다.
“그래. 너한테는 커피 한잔 값이 고작이긴 하겠다. 카페라테 효과(식사 후 자연스럽게 마시는 커피 한잔 값을 매일 절약하면 묵돈이 된다는 말)라는 말 들어나 봤을라나?”
신희가 코웃음 쳤다. 그리고는 문을 발칵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라테는 마셔는 봤다만.”
문밖에 남겨진 나는 무안해져서 궁시렁거리면서 잠시 문밖에서 서성거릴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문이 발칵 열리고 신희가 소리쳤다.
“빨리 안 들어오고 뭘 해!”
신희가 말없이 라디오를 틀었다. CD가 딸린 기기지만 고장이 생긴 뒤로 라디오만 듣고 있었는데 이 방안에서 유일하게 떠들어댈 수가 있는 기기였다. 그 흔한TV도 없었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월광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결이 찰랑거리듯한 선률이 좁은 방안에 꽉 찼다. 딱딱하게 버티고 서있는 벽마저도 좋아라고 흘러넘치는 음부音符들을 흡수하듯했다. 음악이 흐르는 한, 꽉 찬 이 느낌은 계속될 터였다. 조금씩 빳빳했던 긴장감이 느슨하게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은 나는 늘 뭔가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명품 가방에 고급 화장품에 브랜드 옷에 구두에. 신희가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내 표준으로 보면 궁색과 결핍 그 자체였지만 분명한 건 그 당사자인 신희는 결코 스스로가 궁색하지도 결핍하지도 않다고 여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십대를 버텨내는 내내 나는 적어도 스스로 궁색해지지 않으려고 결핍을 선택했지만 신희는 달랐다.
뭐지?
나는 참 그녀의 궁핍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낡은 옷을 입고도, 화장기가 없는 민낯을 하고도 거리를 활보하고 나다니는 신희의 당당함에 갑자기 화가 났다.신희는 뭔가 단단하고 굳건한 자신의 결의 같은 걸 갖고 있듯했다. 그녀는 결핍을 오히려 즐기고 있듯했는데 썩 뒤에 그녀의 적금통장을 보았을 때에야 나는 그게 대체 무엇이였는지 알 수가 있었다.
“너 피아노 잘 치지 않아?”
잠자코 음악을 듣고 있던 신희가 내게 물었다.
“오래동안 치질 않아서…”
내가 말끝을 흐렸다.
“혹시 피아노 치는 일자리 구할 생각 없어?”
신희가 다시 물었다.
“좀 련습하면 어떨지…”
다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본다.
“너 학교 다닐 때 콩클에 나가서 대상도 받고 하지 않았어?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네가 하고 싶다면 래일 점심에 우리 회사 앞으로 와. 내가 알고 있는 언니가 호텔 레스토랑 경리인데 피아노 칠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널 얘기했더니 한번 보자구 하데…”
신희의 눈빛이 재빠르게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내 심장이 후두둑 뛰는 소리를 들었다.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때가 떠올려졌다. 신희에게조차 한번도 터놓지 못한 얘기였다.
“피아노를…”
나는 울 것처럼 되여서 되뇌여본다. 피아노를 놓은 지 오래되였지만 나는 안다.내 머리 속에 있는 손가락들이 피아노 선률만 울리면 저도 몰래 보이질 않는 건반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넌 아무 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어. 드레스도 거기서 준비해준다고 했어. 래일 점심에 봐.”
신희는 두말이면 잔소리라는듯 말을 끊었다. 나는 온몸이 경직된 채 창가에 기대여 서있는 신희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이제 밥이나 먹을가?”
갑자기 신희가 몸을 발딱 일으키더니 좁아터진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목표가 정해지니 모든 게 단순해진다.
돈.
내게는 절실했다. 처음으로 아무도 기댈 데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아픔이였던 피아노를 다시 찾게 만든 동력이였다는 건 슬프게도 분명했다.
“얼마가 필요한데?”
신희가 그 날 밤 자기 전에 물었다.
“4만.”
땅바닥에 자리 깔고 누워 내가 어둠 안에서 신음처럼 대답했다.
“알았어. 도와줄게. 헌데 다 갚을 때까지 돈 관리는 내 의도 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해.”
“뭐?”
“그냥 이렇게 쫓기우면서 살기 싫으면 말이야. 싫다면 나도 도와줄 수가 없어.내 시간이나 돈을 수익은커녕 언제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투자하기는 싫거든.”
“투자? 네가?”
내가 어둠 안에서 피식 웃었다.
“돈이 많아야 투자를 할 수가 있다는 그런 생각부터 버려. 너 은행리자가 얼마인지 알아?”
나는 당장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번도 은행에 저축을 차곡차곡 해봤던 적이 없었던 까닭이였다.
“다 쓰고 나서 돈을 저축하겠다고? 말도 안되지. 명심해! 선저축 후지출.”
신희가 간단명료하게 나의 그동안의 상황을 정리했다.
선저축 후지출.
속으로 신희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보았다. 카텐 쯤으로 밝고 둥근 달이 갸웃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던 걸가?
달빛 아래 익어가고 싶었다. 빨갛게 익는 도마도나 사과처럼. 앵두나 꽈리 같이 가만히 익어가고 싶었다. 나는 나를 익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해살, 바람, 땅, 이슬, 달빛, 별빛… 농염하게 무르익어서 흘러내릴 때까지 푹푹 익어가면 그 종자 한알에 담긴 커다란 꿈을 제대로 깨우치게 될가나? 어두컴컴한 어둠 아래 노오랗게 잠든 새싹의 꿈을 소중히 여겨야 되겠어. 이제 달빛 한오리가 비춰들고 있잖아… 갑자기 나는 소리내여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말을 건넨다. 어쩌면 그냥 내 입으로 중얼거리고 내 귀로 듣고 싶었던 그런 말들을. 그 소리들을.
“할 거야. 다시 해보고 싶어!”
피아노란 단어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엄마가 집안의 모든 돈을 박박 모아서 내게 사주었던 피아노를 눈앞에 그려본다.
국내에서 생산된 많지 않은 모델 중의 하나였다. 반짝거리는 까만 몸뚱이를 가진 그 피아노를 보는 순간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하얀 건반을 두드리면서 나는 행복을 느꼈던 것은 분명했다. 고작 다섯살이였는데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 새벽같이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련습을 했던 것도 신기했다. 어쩌면 필사적으로 언니로부터 피아노를 지키고저 했던 욕심 때문인지도 몰랐다.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나는 한번도 그런 열정과 시간을 어덴가에 몰부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때부터 피아노와 한몸이 되였다. 그 피아노가 두분의 일년치 봉급보다 더 비쌌다는 건 커서야 알았다.
2.
신희가 근무하는 호텔은 오성급까진 아니였지만 꽤 근사한 호텔이였다. 내가 근무하는 북카페도 그 근처 쇼핑몰에 위치해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중관촌과 원대도공원 사이를 갔다 왔다 오고 가고 있었다. 간혹 둘 다 일찍 퇴근하게 된 경우, 원대도에서 산보를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귀가하군 했다. 휑뎅그레한 5호선을 10호선에서 갈아타고 돌아오는 길은 멀었지만 빨랐고 그 즘이면 우리는 지하철 안의 수많은 타인처럼 심드렁해져있었다. 지하철 마지막 역에서 내려서 다시 뻐스를 갈아타고 이십분 가까이 - 아침 출근시간이면 한시간도 넘어 걸릴 때가 있는 그 길 때문에 신희는 스쿠터를 살가 자전거를 살가 한달째 고민하고 있었다 - 달려서 동네를 걸어들어 갈 무렵이면 벌써 어떤 집들은 불을 끄고 이미 잠들어있었다.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노라면 한층 더 고즈넉해진 밤공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라도 온듯 생경하기도 했다.
“미희야, 여기!”
정장을 입고 가슴에 빠찌를 단 신희가 엘레베터가 아닌 복도문 쪽에서 나를 불렀다. 엘레베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터라 신희의 갑작스런 부름소리에 깜짝 놀라 호텔 로비의 쏘파에서 발딱 일어섰다.
“어.”
신희가 그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맞은편에 앉았던 중년의 녀자가 내 손에 들린 샤넬백을 보더니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내 손에 들린 명품백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한순간에 알아챈다. 명품백의 종착지인 ‘샤넬’, 나는 알게 모르게 내 등허리가 쭉 펴지는 걸 느낀다. 그것이 내가 굳이 무리를 해서라도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리유라는 걸 신희가 안다면 뭐라고 할가? 나는 아주 어릴 적 옆집 할머니가 키우던 잘난 수탉 모양(그 순간에 왜 하필이면 나만 보면 쫓아다니던 그 수탉이 떠올랐는지,참)으로 턱을 치켜든 채 씩씩하게 신희에게로 향했다.
“아가씨, 올라가볼가요?”
신희가 소리없이 웃으며 엘레베터 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잔뜩 긴장을 한 채 엘레베터를 탔다.
홀 중간에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 거만한 신사 같이 나를 그 앞으로 불렀다.
“아무 거라도 좋으니 연주해보세요.”
레스토랑 담당자가 말했다. 신희가 나를 피아노 앞으로 떠민다.
조심스럽게.
정말로 조심스럽게 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착석. 내 두손이 자연스럽게 건반 우에 올려진다.
피아노를 내 평생 다시는 만지지 않을 줄로만 알았는데…
귀에 익은 선률이 홀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월광곡.
내 손끝에서 터져나오는 선률이 아닌 내 마음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선률임을 나는 안다. 빨간 피방울이 되여 터져나온 음들. 누구의 말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한마디만이 계속 마음 안에서 에돌았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
집안의 수입 대부분이 피아노레슨비로 들어갔다. 엄마는 삶의 유일한 위안이 피아노 신동으로 소문난 작은딸이라고 했다. 엄마가 나를 감싸안을수록 언니와 아버지 관계는 단단해져갔다. 아버지는 엄마로부터 소외된 언니가 상처를 입을세라 보듬어안았다. 그 안에서 내가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 같은 건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넌 어머니의 전부의 관심을 받고 있었잖아.”
삼년 전인가, “아버지는 내 친아버지가 아닌가봐.” 했던 내 말에 언니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꼬박 14년 동안 나와의 대면도 대화도 회피하셨다. 억울하고 슬펐던 시절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도 점점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내게 아버지가 있다는 그 사실 전체를 외면하고저 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 한국에 나간 아버지는 언니하고만 련락을 했다. 언니 앞으로 생활비를 보내왔고 언니의 일본류학 경비 모두를 대주었지만 나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이 없었다.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을 다니는 언니에게서 간간이 생활비에 보태라면서 용돈이 왔지만 그것 뿐이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도 그리고 대학진학도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도끼로 장작 패듯 패버린 피아노는 그 날 밤 아버지의 손에서 불살라졌다. 겨우 내 손안에 남겨진 까만 건반 한쪼각을 억지도 뺏아내서 불 속에 던져넣던 아버지의 손길이 거칠어서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 했다. 정작 아버지가 패서 불 속에 던져버리고 싶은 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때 했었다.
손가락이 건반 우에서 춤추듯 질주를 한다. 눈물방울 하나가 투덕 하고 건반 우로 떨어졌다. 피아노를 치는 나를 정겹게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나타난 건 그 때였다.
“엄마!”
내가 발딱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아노의 열린 뚜껑에 비친 내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였다.
“왜 그래?”
신희가 달려왔다.
“괜찮은 거야? 너…”
내 얼굴을 쳐다보던 신희가 나를 안았다.
박수소리가 터졌다.
나는 내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는 걸 그 순간 알았다. 엄마와 함께 말이다.
3.
수익이 떨어진 날.
기분이 찜찜하다. 괴로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맛이구나 싶었다.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가 있을가? 늪 속 깊이 가만히 누워있는 조개처럼 입을 여닫으면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있을가?
그런 내공이 필요하다.
딱 일주일 만에 신희가 내게 넘겨준 펀드는 그 때 쯤 벌써 루적 3%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그동안 신희에게서 배운 대로 내가 시작한 펀드는 계속 마이너스를 갱신하고 있지만 이럴수록 기회라고 생각하라던 신희의 조언이 도움이 되였다.
신희가 제일 처음 내게 요구한 일은 샤넬백을 되팔아버리는 일이였다. 그 백을 갖기 위해서 신용카드를 긁었는데… 말도 안된 일이라고 내가 코웃음 쳤다.
“모든 쇼핑은 금지야! 인터넷쇼핑도 금지야! 내가 가만히 보니까 네 월급 절반 이상이 쇼핑에 들어가고 있어. 그것보다 심각한 건 신용카드 한도를 네 돈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큰 문제야! 그거 알아? 네 돈이 대체 다 어디로 갔는지? 계속 이렇게 월광족으로 살 거야?”
신희가 소리질렀다.
“내 돈을, 내 맘대로 쓰겠다는 게 뭔 상관이야!”
내가 뿌루퉁한 얼굴을 한 채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신희가 어이없다는듯 웃었다.
“내 백 하나만 남겨도 되지?”
내가 애원했다.
“안돼. 안된다고! 하나도!”
신희가 매몰차게 대꾸했다.
“그걸로 신용카드 빚 청산해야 해. 넌 부자처럼 살고 있는듯했지만 실속은 아무 것도 없잖아!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니?”
불행하게도 나는 한 인간의 차림새나 장신구나 들고 있는 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속물(?) 중의 일인에 불과했다.
신희가 도와주겠다고 했던 말은 돈을 전액 꾸어주겠다는 말이 아니였다. 나는 화딱지가 났지만 별 수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신희가 내가 아끼던 백을,그 다음은 옷과 신발을, 주얼리를 인터넷에 올려 혹은 지인들에게 돌려가며 팔아치우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내 지난 십년의 모든 것이였다. 샀던 가격의 절반도, 절반의 절반도 안된 돈이 입금이 될 때 절망했다.
“물건들은 자산이 될 수가 없어. 봤지? 사는 순간 그 가치가 떨어져. 다시 팔 때면 그 가격을 절대 받을 수가 없는 거.”
“희귀템은 가격이 올리뛰기도 해.”
내가 혀아래소리로 변명했다.
“올리뛰면 뭘 해? 팔지도 않을 거면서.”
신희가 귀찮은듯 손을 휙 저었다.
신희가 대신해서 여기저기 내놓은 물건들 대부분을 다 팔았지만 들어온 돈은 5만원이 조금 넘었을 뿐이였다. 그나마 샤넬백은 구입한 지 겨우 4개월 밖에 안된 터이고 현재 가격이 어느 정도 오른 터라 원금은 충분히 받을 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빚을 갚고도 만 2천원이 남았다. 그 돈으로 신희는 내 이름으로 된 적금카드를 만들고 주립식 펀드에 넣었다. 단 일주일 만에 모든 일이 진척이 되였다. 그나마 구찌백 하나를 사수해서 다행이다 싶긴 했다.
“이제 네가 할 일은 황금알 잘 낳는 거위 한마리 키우는 거야.”
카드빚을 갚은 날, 신희는 내가 넘겨준 하나 또 하나의 신용카드를 사정없이 가위로 잘라버리면서 말했다. 내 손가락이 신희가 휘두르는 가위에 잘려나가듯 섬뜩했다.
“황금알? 거위 한마리?”
어이없게도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이렇게 후텁지근한 날은 치맥이 딱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풍기 바람마저도 화기를 품고 있었다.
“너 치맥 생각했지!”
신희가 정곡을 콕 찔렀다.
“그런 말이 있어. 우리가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시간의 두배 이상을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모을지를 생각한대. 뭔 얘기인지 감 잡혀?”
“거위는 모르겠고 오리 두마리는 키웠던 적이 있지…”
내가 심드렁해서 대답했다.
“뭔 소리야?”
신희가 세탁기 속 빨래를 꺼내면서 핀잔했다.
열여덟살, 처음으로 내가 했던 일은 랭면집 복무원이였다.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무거운 랭면그릇들을 쟁반에 쌓아서 나르는 일이였다. 연변에서는 가장 크고 오랜 력사가 있는 랭면집이지 않을가 생각된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녀자아이들이 여덟명이서 숙소 하나를 썼다.
어쩌다 쉬였던 어느 날, 서시장에 나갔다가 걀걀거리는 노란 오리새끼들을 만났다. 고작 아이스크림 두개 값을 주고 오리새끼들을 깨워 파는 장수의 손에서 박스에 담긴 두마리의 오리새끼를 받았다. 지금도 손에 잡힐듯 말듯, 보송보송한 노란 솜털과 납작한 주둥이에 가냘퍼보이는 발목 아래 넙죽한 발가락을 바둥거렸던…
어떤 리유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숙소는 추웠다. 옹송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가 새벽이면 추위에 깨군 했다. 그 새벽 머리맡에 두었던 오리새끼가 이상했다. 두마리 중 하나가 널부러져있었다. 추워서 그러나 보다고 오리새끼들을 박스에서 꺼내 내 가슴 안에 품었다. 오리새끼들이 자꾸만 내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다음날 새벽, 깨여나서 보니 그중 한마리가 계속 제대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괴롭게 걀걀거렸다. 먹이를 주어도 먹지를 않았다. 머리도 쳐들지 못하는 고 놈을 계속 손가락으로 만져주다가 깨달았다. 오리새끼 같은 건 내 삶에 사치라는 것을. 내가 들고 들어온 건 고작 두개의 아이스크림이 아닌 생명이였다는 걸. 더럭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살다가 가끔 생각나군 한다. 내가 박스에 담은 채 결국 그 새벽 쓰레기통 우에 내다 놓았던 그 오리새끼들은 맘씨 좋은 누군가를 만나 살았을가?
암만 벌어도 내 월급으로는 삼년을 모아도 피아노 한대 사기 힘들다는 것도 그 때야 알았다. 그 뒤부터였다. 나는 월광족에서 빛의 속도로 일광족이 되였다.
“그러게. 오히려 부자들이 더 검소하게 산다 하더라.”
나는 내 자신이 월광족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욜로족이라고 부르짖었던 어제의 자신이 떠올라서 한심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담한 체구의 신희는 어릴 때부터 딱 부러진 그런 아이였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엄마는 신희를 볼 때마다 그렇게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신희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랑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집안의 온갖 살림을 다 도맡아했다. 아버지가 술을 퍼마신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어머니가 어린 신희와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먼저였는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신희는 늘 만취가 되여 퍼져있던 아버지를 위해 장국을 끓이고 북어국을 끓였다. 열두살 때부터는 김치 같은 것도 직접 담그었다.
“도전을 할 용기가 있다면 이 세상은 말이야 참 근사한 곳이야.”
신희는 어느새 자존감이 강하고 적응력이 강한 어른이 되여있었다. 신희를 보면서 나는 내가 아직 크지 못한 어른아이라는 걸 알게 되였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좋아. 난. 소름이 돋게 좋지!”
침대에 기대여있던 신희가 몸을 흐드득 떨었다. 신희가 집세를 꼬박꼬박 받고 있는, 아직 은행대출이 남아있는 자그마한 아빠트도 한채 소유하고 있다는 소식보다는 신희의 그 모습이 내게는 더 충격적이였다.
내게는 빡빡한 이 세상을 신희는 즐기면서 살고 있듯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붙이지 못하고 살아온 나와는 완연 다른 삶의 자세였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 순간 분명하게 알게 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이 불공평한 세상과 운명을 탓하느라 온 기운을 모조리 소모해왔다는 걸.
모두들 열심히 사는구나. 출퇴근길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뒤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 안에서 희석해진 오래 전의 꿈을 만져보려 손을 내밀어보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던 날들. 내 령혼을 흔들었던 음률과 헤여나올 수 없던 떨림과 마력 같은 표현력, 묵직한 울림이 빠져나간 삶.나는 나 자신이 절박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절박한 만큼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가 있지 않겠냐고 쏙닥거리는 어둠의 소리를 잠자코 듣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지만.
빨래를 건조대에 탁탁 털어 널고 나서 평소와 다름없이 잠옷차림으로 침대에 기대여 앉아있는 신희가 우러러보였다. 내 눈높이로 신희를 폄하해왔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고작 내 눈높이가 고만큼 밖에 안된다는 것에 처음으로 심하게 수치심을 느꼈다. 명품만 찾으면서 나는 내 눈높이가 높아진 줄로만 알았다. 착각이였다.
4.
내가 먼저 밥상머리에서 일어섰다. 신희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있는 듯했다.
“어제 말이야…”
신희가 입을 뗐을 때 나는 벌써 서너발작 건너 창가 앞에 서있었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신희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제 그 사람이 왔었어… 너한텐 미안한데…”
“신희야! 나 괜찮아.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내가 나갈게.”
창밖 서쪽 하늘에 가느다란 조각달이 걸려있다. 또 혼자가 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니야. 아직 넌 힘드니까 내가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애. 이번 참에 그 사람이랑 다시 합칠가 생각 중이야.”
신희가 힘겹게 말을 마쳤다.
신희가 결혼 일년 만에 남편과 리혼을 하게 된 것은 술 때문이였다. 술 한잔도 못하는 줄로 알았던 남편이 술만 들어가면 괴물이 되여버린다는 건 결혼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였다. 화장실의 변기를 부셔버린 날 신희는 리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나 그 사람이랑 같이 상해에 가기로 했어.”
신희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직 밥이 절반이나 남아있었다.
“사람 인연이 그렇더라. 쉽게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더라. 그 사람이랑 아주 가끔 계속 련락은 유지하고 있었던 건 맞아. 문안 정도는 할 정도라고 할가.그 사람이 찾아올 줄은 생각 못했어.”
신희가 긴 말을 늘여놓았다. 맺고 끊음이 매사에 분명했던 신희가 아니였다.
“너 어데서 잤어?”
신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텐데 그 순간은 아무 것도 말하기가 싫다. 내가 대답이 없자 신희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미희야!”
내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응.”
“이제 말 좀 해줄래? 화 좀 풀고.”
“너 꼭 그렇게 해야겠어? 신희야.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신희가 창가로 다가와 내 곁에 나란히 섰다.
“너랑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게 돼서 미안해. 미희 네가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 알아. 네 엄마가 그렇게 되고… 얼마나 자상한 분이셨는데… 나한테도 엄마 같은 분이셨지. 알지?”
신희가 훌쩍거렸다.
누군가를 떠내보내는 일은 내게는 늘 힘들었다. 이제 이 커다란 도시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신희마저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늘 누군가를 가까이하기를 거부했다.
블랙 금요일이다. 언제나 기다려지던 금요일이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금요일이 두려워졌다. 특히는 이렇게 주가가 떨어져버린 날이면 더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내야 하는 일이 힘겨웠다. 자진해서 북카페에 휴일 종일 근무를 신청했다.저녁이면 레스토랑에 가서 피아노를 쳤다. 돈 쓸 새도 없이 움직이다 보니 돈도 통장에 꼬박꼬박 착실하게 쌓였다. 신희를 따라 돈을 펀드에 넣으면서 쏠쏠한 그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그 때부터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펀드를 하면서부터 생긴 조급증이다. 맘에 쏙 드는 물건을 사고 싶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함이랑 비슷했다. 어떻게 될가? 일년이 지나고 오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가? 평정심이 쉽지가 않다. 그 스릴 안에서 느끼는 건데 재미있다. 쇼핑으로 카드를 긁어대던 시간보다도 더 재밌다. 빠져버린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싶다. 다른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신희가 이 도시를 떠나 상해로 간 지도 두주일이 지났다.
6월이다. 혼자서 맞는 이 도시에서의 6월. 날씨는 39도로 넘나들고 있다.
지난 주부터 주가가 푹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희는 괜찮으니 좀더 지켜보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불안했다. 오랜만의 휴식일이였다. 아침 아홉시에 출근을 해서 저녁 다섯시 반까지 북카페에서 그리고 저녁 일곱시부터 아홉시 반까지 레스토랑에서 출근을 하는 단조로운 날들이 계속되였다. 돈 쓸 시간마저 없구나 하면서 적금통장과 펀드에 돈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눈을 뜨자 바람으로 휴대폰으로 펀드를 확인해본다. 어제 하루만도 460원이 빠져나가있었다. 펀드에 든 만 팔천원 외에도 적금을 든 2만원이 있었다. 지난 두달 월급을 받은 것까지 차곡차곡 넣었더니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쇼핑사이트는 휴대폰에서 삭제되였고 가끔 쓰지 않는 물건들을 팔 중고사이트만이 남겨져있었다. 처음 왔을 때 탐탐하게 느껴졌던 방이 널직해졌다. 신희가 가고 나서부터 더했다.
“무역전쟁이 시작되였습니다…”
복도를 들락거리며 지나다니다 주어듣는 뉴스에서는 매일이다 싶이 그런 소식이 흘러나왔다.
위기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들었다.
입안이 바싹 말라든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더욱 불안해진다.
이러다가 다 없어지는 거 아니야?
모두가 얘기하듯 햇부추新韭菜가 되여 싹뚝싹뚝 잘리는 거 아니야?
먼산 보듯했던 세상형세가 나와 이렇게 실질적으로 닿아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늘 먹어왔던 간장이나 기름이나 양념들 그리고 진렬대에 늘어져있는 먹거리들이 례사롭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들먹들먹했다. 미처 알아채고 말 것도 없이 눈앞에 닥치고 나서야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매초마다 증폭했다. 어떻게 하지? 대책보다는 어서 빨리 그 불안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벌써 7% 떨어졌어.
신희가 저편에서 위챗으로 대답을 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좀더 지켜봐.
-도망치고 싶어. 더이상 못 견디겠어!
-다 떼우고 마는 거 아니야?
-또 떨어졌어. -12.3%가 됐어.
눈물을 좔좔 흘리는 이모티콘을 다다닥 눌러서 보낸다.
-겨울엔 나무를 베는 게 아니야. 알지? 좀만 더 지켜보고…
신희가 보낸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스마트폰을 꺼버린다. 탐났던 하나 남은 백이 그냥 계속 그 자리에 있을가 조바심을 내면서 매장으로 종종걸음 치던 때보다도 더욱 쫄깃한 마음 졸임이였다.
그렇게 나흘째.
어느새부터였을가? 나는 중고사이트 안을 휘집고 있었다. 견뎌야지 하면서 스마트폰까지 꺼버렸는데… 안 보고 있는 게 더 괴로웠다.
차라리 다른 관심거리를 찾아보자…
피아노를 보고 있었다. 몇천원짜리도 있고 몇만원짜리도 있고. 가슴이 활랑거렸다.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 충분히 근사한 브랜드 피아노 한대를 살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돈이 빠져나가게 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아노 한대 사는 게 낫지 않겠어?
내 안에서 그런 소리가 울려나왔다. 온몸이 피아노를 칠 때마냥 부풀어오른다.내 손가락이 펀드매출을 누르고 있다는 것도, 적금해제 확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는 것도 의식할 새도 없이 온 세상이 부풀어올랐다.
한참 뒤, 내 입에서 비명이 새여나왔다. 눈 깜짝할 새였다.
5.
꿈이 무엇인가요?
라디오 DJ가 묻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나는 동네슈퍼에서 산 맥주 다섯캔을 검정봉다리에 담아든 채 슈퍼의 미닫이 유리문을 드르렁 열고 나오고 있던 참이였다. 에어컨을 켜놓아서 시원했다. 밖에 나오는 순간 후텁지근한 열기가 불편하게 얼굴로 달라붙었다. 그 때 등뒤 슈퍼 안에서 켜놓은 라디오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꿈이 무엇인가요?
문턱에 걸려 휘청거리면서 검정봉다리 속 캔맥주의 철렁거림과 함께 내 안에서 뭔가가 철렁거렸다는 걸 알았다.
꿈이… 무엇인가요?
엄마가 어린 나에게 물었다.
우리 미희는 꿈이 뭘가?
엄마와 함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였다.
6.
매주 토요일이면 엄마와 함께 피아노 배우러 다녔다. Y시로. 뻐스를 타고 한시간은 푼히 가야만 했다. 날로 손님이 빠져나가는 식당료리사였던 아버지는 학교 음악선생님한테서 배워도 될 일을 유난을 떤다고 못마땅해했다. 지금도 리해가 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백화점 식료품 판매원이였던 엄마는 어떤 계기로 어린 딸들에게 피아노를 배워주기로 마음먹었던 걸가? 지금에 와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였지만 엄마는 딸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를 바랐던 게 아닐가 싶긴 했다. 부모님은 지인 분의 소개로 만나 한달 만에 결혼을 했다고 했다.나긋나긋한 성미의 어머니와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는 그렇게 차례로 언니와 나를 낳았다. 지금 와보면 오히려 언니가 더 나긋나긋했고 내가 더 불같았다. 언니는 늘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렀고 언니가 아빠라고 부르는 아버지를 나는 늘 아버지라고 불렀다. 우리 자매는 가끔 그 호칭 때문에 토닥토닥 다투기도 했다.
“너 엄마잖아!”
“너 아빠잖아!”
그 날도 엄마와 함께 피아노 교습을 받고 귀가하고 있었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한겨울이였다. 뻐스터미널에서부터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뻐스가 움직일 즈음부터는 눈발이 한결 굵어지기 시작했다. 뻐스운전수가 차에 시동을 걸면서 “이러다가 눈에 발이 묶여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하며 근심어린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백미러로 보였다. 조금 뒤 뻐스가 부르릉 몸체를 떨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열네살의 겨울이 그 눈발과 함께 얼어붙게 될 줄은 그 순간에도 상상조차 못했다. 동지가 가까워오면서 이웃집 할머니 말씀처럼 노루꽁지 만치 짧아진 해도 이제 네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데론가 사라진 뒤였다. 어둑어둑 어둠 속으로 이제 펑펑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가도가도 끝없는 산들도 촌락들도 눈 속에 소복히 파묻혔다. 뻐스는 투덜투덜 몸을 떨면서 힘겹게 오르막길을 올랐다. 차바퀴가 자꾸 헛돌고 미끌어져내리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저도 몰래 엄마의 손을 움켜잡았다. 어이씨 하는 누군가의 짧은 비명이 뒤에서 울렸다. 기를 쓰는 엔진소리로 꽉 들어찬 뻐스 안은 어느새 공기마저 얼어붙은듯 빳빳하게 경직되여있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가뜩이나 길옆에 잔뜩 쌓여있던 눈 때문에 이제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웅덩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올리막길에서 몇번이고 시도하던 운전수가 시동을 꺼버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더는 못 가게 생겼구만. 여기서 내릴 분들은 내리고 다시 돌아갈 분들은 자리에 남으시오.”
“못 간다오?”
옆줄의 할머니가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눈이 많이 쌓여서 올라 못 가나 봅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엄마가 다시 묻자 할머니는 요 앞동네까지라고 했다. 할머니의 뒤를 따라 우리도 뻐스에서 내렸다.
“내리자. 래일도 뻐스가 통할지 모르니까. 가다가 정 아니라 싶으면 동네에 들려 하루밤 자구 가자.”
엄마는 짐짓 큰일이 아니라는듯 가벼운 어조로 내게 말했다.
춥다. 눈에 둘러쌓인 길 저편으로 먼저 내린 사람들이 몸을 잔뜩 앞으로 만 채 바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흰눈빛만 희끗희끗 비쳤다. 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쳐왔다. 그 때마다 엄마는 내가 날려가기라도 할세라 내 어깨를 부둥켜안았다. 사각사각 눈을 밟는 소리만이 한참을 울렸다. 갑자기 엄마가 나를 불렀다.
“미희야, 저기 봐.”
내가 머리를 돌려보니 저만큼 산자락에 노루 두마리가 두귀를 쫑긋거리며 노닐고 있었다.
“와, 엄마. 노루야!”
내가 걷는 것도 잊은 채 환성을 질렀다.
“쉬-”
엄마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내가 목소리를 낮췄다.
“어미노루와 새끼노루야. 그치?”
“응, 그래. 그런 것 같아.”
“가까이로 가서 보고 싶은데…”
나는 노루가 길녘까지 내려왔다는 게 신기해서 저도 몰래 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미희야, 안돼.”
엄마가 뒤쫓아와서 내 팔을 잡았다.
그 순간이였다. 발밑에서 부지직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내 몸이 눈과 함께 아래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아악!”
저도 몰래 비명이 터져나왔다. 같이 부서져내린 눈덩이들이 사정없이 내 머리 우로 쏟아졌다.
“미희야!”
엄마의 손아귀가 점점 내 손끝에서 미끄러져 멀어져가고 있었다. 엄마가 가슴을 언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다시 내게로 손을 뻗었다. 눈구덩이는 깊고도 가파로왔다.
“엄마, 어떡해…”
엄마가 사람들이 사라진 앞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눈보라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온통 하얀 세상이였다. 눈구덩이 안으로 계속 푸실푸실 눈이 날려떨어졌다. 울음이 터졌다. 이러다가 영영 눈 속에 갇혀버릴 것만 같았다.
“미희야, 걱정 마. 울지 말구. 엄마가 있잖니…”
엄마가 주저없이 눈구덩이 안으로 뛰여들었다.
“엄마!”
“미희야!”
엄마가 이미 꽁꽁 얼어버린 내 손을 매만졌다.
“미희야, 내 말 잘 들어. 내 밑에서 받쳐주면 너 우로 올라가서 빨리 동네를 찾아가야 된다. 가서 사람들을 불러와. 알았지?”
“엄마, 혼자서 기다려야 하잖아요.”
“엄마는 안 무서워.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가 얼른 가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돼. 응?”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엄마가 허리를 굽혔다.
“내 등 밟고 올라가. 빨리.”
울면서 엄마의 등을 밟고 안깐힘을 써서 눈구덩이를 톺아올랐다. 내 발을 우로 추슬려올리느라 맥이 진해버린 엄마의 마지막 파들거림이 그대로 발끝에 남겨졌다. 눈구덩이를 톺아오르느라 손끝이 얼어버려 아무런 감각이 없다.
“미희야, 너 손가락 얼면 안돼. 알았지? 빨리 가. 빨리!”
엄마가 눈구덩이 밑에서 소리쳤다.
“엄마, 꼭 기다려야 돼. 인츰 올게요!”
“응. 기다릴게. 갔다 와.”
엄마는 그 아래서 손을 저으며 내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웃음이 엄마가 내게 보인 마지막 웃음이라는 걸. 엄마를 그렇게 보낼 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 터였다. 지금도 꿈에 그 자리에 가있다. 춥고 슬프고 두려운 그 눈구덩이 속에. 그 순간에도 아기주먹 만큼한 눈송이들이 계속 내 머리 우로 쏟아져내렸다. 깨고 나면 눅진하게 녹아버린 눈송이들이 내 눈가에 축축히 자국을 남기군 했다.
7.
피아노가 배달이 된 것은 다음날 오후 늦은 시간이였다. 어제 밤을 새면서 마신 맥주 때문에 늦잠을 실컷 자고 점심녘에야 깨여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서 다시 침대에 누워 오늘은 뭘 하지 생각하면서 빈둥거리고 있다가 다시 낮잠까지 두시간 정도 자고 막 눈을 뜰 무렵이였다. 오랜만의 휴식일이였다.
스마트폰이 울렸고 모르는 전화번호였지만 받았다. 모르는 전화번호라도 받지 않으면 불안한 내 오래된 습관이였다. 혹시 련락을 끊었던 언니의 전화일 수도 혹시는…
“피아노 배달인데요. 집에 계시죠?”
침대 우에서 발딱 일어났다.
“피아노?”
그제야 피아노를 구입한 일이 생각났다.
“이렇게 빨리요? 네. 집에 있어요…”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피아노를 실은 차 한대가 골목길 어구에 서있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책임자인듯한 얼굴이 하얀 남자가 집이 어디냐고 다시 확인했다. 내가 2층 창문을 가리켰다.
“자, 일합시다.”
해볕에 구리빛으로 탄 얼굴의 세명의 일군이 피아노를 트럭에서 내리웠다. 피아노의 덩치가 하도 커서 책임자인듯한 남자까지도 걱정스러운듯 다가서서 받든다. 골목길이 좁아서 그중 일군이 피아노를 경사지게 들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조률을 해야 하는 터라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야 하고 위안했다.
십메터도 안되는 골목길이 길게 느껴졌다. 굳이 브랜드 피아노로 구입한 게 약간 후회가 되였다. 이제야 더럭 겁이 났다. 좁아터진 방안에 놓으려면 침대마저 내놓아야겠구나 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한참 이동해서 동쪽에 위치한 건물 입구로 통과해 2층까지 무사히 들어오면 되였다.
갑자기 남자가 일군들에게 피아노를 내려놓으라는 지시를 했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집문으로 들어갈 것 같아요?”
“네?”
내가 반문하자 남자가 알았다는듯 가서 한번 봅시다 했다.
남자가 앞서서 2층으로 올라갔다. 내 방 앞에 서서 자를 꺼내 대보더니 한숨을 내쉬였다.
“안되겠군. 당최 안될 일이여.”
조심스럽게 내가 물었다.
“안 들어갈가요? 그럼 어떡하죠?”
“창문으로 올려오는 수 밖에.”
남자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하더니 한번은 물어보고 싶었다는듯 이번에는 나를 되돌아 쳐다보면서 물었다.
“저 방에 저 피아노가 들어갈 수가 있어요?”
남자의 눈빛이 집요했다.
“네?”
결국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결국 묻고 싶은 말은 “대체 이렇게 작은 방에서 살면서 저렇게 큰 피아노를 살 생각은 어떻게 한 거예요?” 일지도 몰랐다.
남자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남자를 따라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남자가 일군들과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한쪽켠에 떨어져서서 그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지게차를 끌고 와야 돼요. 창문을 다 뜯고 넣는 수 밖에 없겠네요.”
빨갛게 타고 있는 석양이 유난히 아름답게 2층 창가로 비쳤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벌써 다섯시 반이 넘고 있었다.
“일단 여기다 두지요. 래일 지게차를 끌고 와야 돼요.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남자가 내게 말했다. 아직 날이 훤한데 늦다니? 좀 황당한 생각이 들어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근처에서 지게차를 찾을 수 있겠어요?”
남자가 미심쩍은 얼굴로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게차를요?”
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나 보고 지게차를 찾으라고?
“저희 회사의 차는 래일이라야 가능해요.”
남자가 우린 별수가 없으니 알아서 해보라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멍청하니 아직 포장비닐로 칭칭 감긴 커다란 피아노를 노려보았다. 너무 커서 숨이 콱 막혔다. 숨막히도록 무더운 날이기도 했다.
“비는 안 오겠지… 자, 여기.”
남자가 일군 중 한명이 들고온 방수포를 내게 내밀었다.
“그럼, 래일 올게요.”
하얀 얼굴의 남자가 내게 짤막한 손짓을 해보이고는 일군들을 데리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석양이 더욱 진하게 타오르다가 잦아들 때까지도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버텨서있었다. 마음 안에서 “이럴 거면 안 살 거예요. 갖고 가세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그 커다란 피아노의 압박감에 눌리워 기진맥진해있었다. 귀가하는 사람들이 “뭐야, 피아노잖아?!”, “여기 웬 피아노?” 하는 소리가 울림처럼 귀가에 여운을 남겼다.
침대를 빼내고 그 자리에 놓으면 피아노가 들어갈 것 같았는데 문제는 옷장이였다. 작은 사이즈의 옷장임에도 하도 방이 작은 터라 틀림없이 옷장문마저 막혀버릴 터였다. 옷장마저 빼내야 할 판이였다. 허둥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있지? 나야!”
집주인이였다.
문을 열자 집주인 아저씨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도둑이라도 잡아낼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안의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물었다.
“마당에 놓은 피아노 209호 거야?”
“네.”
내가 대답하자마자 아저씨가 기운 좋은 매미의 톤으로 물었다.
“어디다가 놓으려고?”
“저 침대를 빼고 놓으면 비슷할 것 같은데… 아마 이 옷장도…”
내가 침대와 옷장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이 집주인 아저씨의 눈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그럼 그럴 수 밖에 없겠군. 침대와 옷장 처리할 데가 없으면 사람 불러다가 내가 가져가지. 피아노가 방을 다 차지해버리면 자넨 어디서 자나? 설마 피아노 우에서 잘 생각은 아니지?”
주방과 방 사이 한 사람은 누워도 될 만큼의 공간은 되여보였다.
“책상도 빼야지 않겠어?”
주인아저씨의 눈길이 탐욕스럽게 화장품들이 가득한 책상 우의 경대를 훑어내려갔다.
“그건 래일 피아노를 넣으면서 보죠.”
내가 대답하자 아저씨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침대와 옷장을 움직이지.”
주인아저씨가 휴대폰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나는 급히 옷장의 옷들을 꺼내 책상 우에 콩케팥케 쌓기 시작했다. 신희가 남긴 침대와 옷장이였다.
주인아저씨는 자리를 피할 념도 없이 내 뒤에서 말로 거든다.
“내가 좀 거들어줄가? 매트 들어줄가? 아니, 매트 놀 자리가 남으려나?”
조금 뒤 옷장이 텅 비였다. 만족스럽게 옷장을 들여다보던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생각난듯 말했다.
“피아노 말이야. 이건 지켜줘야겠어. 저녁 7시 이후에는 치질 않는 걸로. 다른 사람들 피곤하게 하면 안되지 않나? 헌데 자네 피아노 칠줄 알아?”
텅텅텅 발자국소리가 울리더니 몇번 층계에서 마주친 적 있던 이십대 초반 쯤 돼보이는 젊은 남자가 활짝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어, 왔어?”
“예. 아버지.”
주인아저씨 아들이였다.
“이거 좀 들자.”
나는 창가에 걸터선 채 그들 부자가 옷장과 침대를 차례로 문밖으로 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옷장과 침대가 빠져나간 자리가 컸다.
“래일 사람들이 오면 내게 꼭 전화해.”
주인아저씨가 나가면서 당부했다. 창문을 뜯어야 한다는 말에 걱정스러운듯했다.
문을 닫고 나서 나는 텅 비여버린 공간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있었다. 신희가 그리워났다.
보름달이 훤하다. 매트를 깔고 일찍 자려니 잠이 오지 않는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피아노는 그 자리에 있었다. 피아노라도 만져보면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잠옷바람에 문을 나선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혹은 선풍기를 돌리는 소리가 복도에서도 윙윙 들린다. 층계를 내려서며 이상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혀버린다. 아직 열시가 안된 터라 여기저기 TV를 틀어놓은 소리도 요란스러웠다.
둥근달이 누군가가 그립게 커다랗게 허공에 걸려있다. 슬그머니 한줄기의 찬바람도 이마를 스쳤다. 무더위에 지친 벌레들이 이제 막 겨우 잠들가 말가 하는 한여름의 밤, 나는 밤하늘 아래에 서서 진득한 열기가 아직 미지근하게 남아있는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방수포를 걷어내고 피아노를 감싼 포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조금 뒤 거대한 피아노가 달빛 아래 거만한 펭귄마냥 번쩍이는 몸을 드러냈다. 피아노 밑에 숨겨두었던 걸상도 빼낸다. 그리고는 피아노의 덮개를 열었다.
그것은.
88개의 내 모든 세상이였다. 까맣고 하얀 건반. 달빛과 별빛의 소리를 머금고 있고 바람의 소리를 품고 있고 낮과 밤의 이야기를 그리고 삶의 노래를 써내려가는, 칠색의 무지개의 빛갈이 슬프게도 아름다운…
건반 우에 손을 얹는다. 명주 같이 매끄럽고 바람이 빵빵한 고무풍선 같이 탱탱한 골감骨感. 조심스럽게 건반을 눌러본다.
도-
긴 여운이 어둠 끝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나는 그 음을 듣는다.
또다시 한번.
도-
그리고 또다시 한번.
어둠 안으로 뻗어나가는 빛 한줄기를 본다. 하늘 한끝에 보이지 않는 피아노 해머 하나가 내 손끝 건반과 이어져 온 우주가 둥- 울리듯 싶다. 그것은 산사의 종소리마냥 은은하게 나를 전률했다.
호흡을 다잡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달빛을 타고 선률이 흐른다. 애잔한 음들이 어둠을 간지럽힌다. 이제 고조로 치닫기 시작한다. 눈먼 소녀가 달빛 아래서 춤을 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다. 손가락 끝마다 뼈에 사무치는 행복이 부딪쳐서 찡찡 맞혀온다. 그리고 춥다.
그 때였다. 창문이 탁 열려젖히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 꼭대기에서 웬 사내의 술 취한 듯한 거친 욕설이 우박처럼 투투둑 하고 피아노 우로 내 정수리로 쏟아져내렸다.
“몇시야! 잠이나 퍼질러 자자. 좀! 할 지랄이 없어? 미친년!”
거의 동시에 창문을 걷어닫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텅텅 울렸다.
나는 미친듯이 정말이지 달빛 아래서 춤이라도 추어대고 싶어졌다.
출처:<장백산>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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