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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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自序)
2019년 12월 31일 20시 45분  조회:1037  추천:1  작성자: 박문희



자서(自序) 
 
 
 
정년 후 서예라든가 다른 뭔가는 할 생각이 있었으나 시를 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데 작년 이맘때 우연이랄까 우리 문단의 하이퍼시 주창자 최룡관 시인과 나 사이엔 시와 관련 두 차례의 진지한 토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토론은 자연적으로 흘러나온 것이었고 두번째 토론은 나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바이지만 토론 끝에 나의 시흥은 유발되었고 종당에는 시 창작을 시작하여 첫 시집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시초 시에 대한 나의 이른바의 견해(시를 배운 적도 없는 나지만 여러 면으로 받은 기성관념의 영향은 퍽이나 심각했던 모양이다.)는 최 시인과 상당히 어긋났던 고로 근 네 시간 지속되었던 첫번째 토론은 가끔 치열한 논쟁 양상을 띠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 견해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기존의 이론을 무기 삼아 대방의 이론을 쉽게 혹은 무작정 부정해 버리는 그런 우는 범하지 않았다는 점, 그 결과로 시의 본질 나아가 시 창작의 본연에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음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잘못된 것이 가득 들어찬 속을 다소나마 비워냄이 없이 현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딴에는 뭔가 안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의 어설픈 생각을 고집했더라면 나는 오늘까지 시 창작은커녕 시의 진실이 뭔지도 몰랐을 게 뻔하다. 그 이상 남을 웃기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아무튼 지난 일 년 간 시 공부를 하면서 시어의 자유결합, 작품 속 사물의 자유전이, 나아가 시 형식의 중요성 등 주요 관심 사항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질 수 있었음에 안도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시를 시작한다니 내 머리에 열이 심한 것 같다며 이마를 짚어 보는 친구가 있었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나는 늦깎이임에 틀림없는 바에야 더 이상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현재를 시점으로 시 인생을 한번 살아보는 것도 살맛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시심을 깨워 준 최룡관 시인에게 감사한다.
 
2017년 초봄
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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