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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 전 (련재 29)
2021년 01월 11일 15시 55분  조회:2140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제 3부 ;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2, 자연의 대문을 열어가는 사람
                                                                                (3)

당중앙에서 마련해주신 과학의 새봄은 여기 변강에도 찾아 왔다. 아, 얼마나 고대하던 새봄인가. 김선생의 가슴속에는 설음의 얼음장이 녹아 내리고 봄물결이 출렁인다
이근년에 늘 박해와 압제속에서 억울한 모자를 쓰고 피눈물을 삼키면서 해오던 사업이 아니였던가.
좋구나. 인젠 마음도 통쾌하고 몸을 내번지고 일할 때 로다.
버섯분류는 식물학에서 일종 난제로 제기되고 있다. 연변은 물론 국내 각 지와 조선에서도 버섯분류는 공백으로 되고 있다. 때문에 이 산마루를 점령하는 것은 과학령역, 대외무역, 인민생활 등 각 방면에 커다란 의의를 갖고 있다.
전인들이 올라보지 못한 산마루, 거기로 오르는 길이 험난한 줄 알면서도 만난을 물리치고 기어코 오르는 여기에 과학공자자들의 긍지와 사명이 있는 것이다.
김선생은 결연히 이 길을 선택하였다.
진균의 일종인 버섯은 참 까다라운 식물이다.  적지않는 버섯들이 해가 지면 돋아나기 시작하여 이?z날 해가 뜨면 늙어서 죽는다. 또 아주 섬세하고 연하게 생긴 이 식물은 어떤 것은 손을 대거나 뜯자 마자 원형체를 읽고 스르르 쓰러져 버리고 만다.
때문에 버섯을 정확하게 분류하고 그들의 특성을 잘 알아내기 위해서는 제때에 채색원형도를 정밀하고도 생동하게 그려야 한다.
날마다 푸름푸름 먼동이 터오면 어깨에 채집통을 멘 한 사람이 마을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하루일을 시작한다. 어떤 때는 날 밝기전에 마을 뒤에 자리잡은 모아산에 오른다. 그가 바로 식물연구를 위해집까지 농촌에 이사 온 김선생이다. 버섯원형을 보존하기위해 어떤 버섯은 따지않고 그자리에 세워둔 채로 두 세시간씩 공력을 들여 그린다. 어떤 버섯은 따자마자 가지고 집으로 달려와 분초를 다투며 그린다. 또 매 버섯의 특성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버섯마다 먹어본다. 하여 남녀로소 할 것 없이 마을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여“제일 부지런한 분”“버섯박사”라고 부른다.
국경절 전날 밤, 외지에서 공작하는 다섯 남매는 부모와 함께 명절을 쇠려고 모두 한자리에 단련히 모였다. 은하수도 서천가에 기울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가족식솔들도 잠자리에 들었건만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소박하게 꾸민 연구실에 들어간 김선생은 아직도 공작에 여념이 없다. 맏아들 상술이는 이리저리 망설이던 끝에 조용히 연구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벽에 빈틈없이 붙여놓은 각종 버섯의 채색원형도, 천정주변을 돌아가며 빼곡히 박은 못에 줄지어 걸어놓은 버섯표본들, 창턱에 줄줄이 놓은 유리병버섯표본들… 그 어디를 보나 아버님의 탐구적 열정과 피타는 노력이 력력히 알린다.
“아버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엉?” 확대경으로 버섯을 비추며 원형도를 그리던 김선생은 머리를 돌린다. 아들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는 자애로운 빛이 흐른다.
“자지, 곧자지.” 그리곤 다시 필을 놀린다.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머리, 수척한 얼굴에 부채살처럼 퍼진 굵은 주름살, 아, 30년을 하루같이 식물연구에 온갖 정력을 몰부어 온 아버님! 연구실을 나서는 아들의 눈에는 맑은 이슬이 맺혔다.
“이 버섯이름을 어떻게 단다?” 송이버섯 원형도를 다 그리고 그 옆에놓여 있는 흰색갈에 털이 보송보송한 버섯을 조심스레 쥐는 김선생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너 때문에 걸음도 적잖게 걸었지.”
이렇게 입속말로 되뇌이는 그의 머리속엔 그저께 베개봉에서 있은 일들이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그가 청산대대에서 20리 떨어진 베개봉밑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경이 였다.  양지바른 산밑에 양봉장이 산뜻하게 자리잡았는데 집앞에서 한 로인이 버섯을 말리우고 있었다. 부쩍 호기심이 든 그는 로인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인사를 올리였다.
“어디서 오시는 손님이시우?”
“룡정에서 옵니다.”
“사냥을 오시우?” 로인은 그를 아래우로 쭉 ?f어보더니 채집통에 눈을 박으며 묻는다.
“아닙니다. 버섯을 채집하려구요.” 그는 소탈하게 웃으며 채집통을 열고 용처를 알려드리니 로인은 그제야 오해를 풀며 호탕하게 웃었다.
로인이 말리우는 버섯을 살펴보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버섯인가? 난생 처음 보는데.” 버섯을 들고 유심히 뜯어보는 그의 심사를 알아 차린 로인은“이 산꼭대기루 해서 구새먹은 나무통안에 서너잎 돋은 걸 뜯어 왔수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로인님, 이 버섯이 저에겐 참 쓸모 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가져 가시우, 버섯을 구하려 불원천리하고 산에 오신분인데 무얼 아끼겠수” 로인은 참 시원시원한 분이였다.
“로인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버섯이 손상받지않기 위해 베개봉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가지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리였다.
“아니, 혼자몸으로 말이우? 이 산에 올라갔다가 길을 잃구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두 적지 않은데…”로인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짙게어렸다.
“로인님, 안심하십시오. 그전에도 세번올라 갔댔습니다.” 그는 로인께 인사하고 산기슭에 붙었다.
백두산과 어깨를 겨루는 베개봉.
산기슭에 선 오미자덩굴, 머루덩굴이 밉살스럽다. 한걸음 두걸음 덩굴을 헤치며 오르노라니 어애와 잔태미가 살 때를 많났다고 옷에 착착 달라붙는다. 낯을 가리운 면사포에 붙은 놈들은 살에 들어 붙겠다고 바글바글 끓으며 악을 쓴다. 이를 악물고 첫 방선을 뚫으며 중턱에 이르렀다. 절묘한 기암들이 둬길되게 깎아지른 절벽이였다. 절벽틈 사이엔 바줄같이 굵은 넝쿨이 주렁주렁 드리워 있다. 넝쿨을 몇번 힘주어 당겨본후 꽉 틀어잡고 몸을 우로 솟구며 한번 또 한번, 발톱을 틈사이에 박으며 한번 또 한번… 온 몸엔 바늘 같은 신경이 돋고 옷은 땀에 물자루가 된다…
산마루다. 그 어떤 태풍에도 끄떡않는 왕사스레나무와 석송이 꽉 박아섰다. 산마루에 오르고 나니 온 몸이 햇솜처럼나른해 진다. 강대나무에 기대니 소르르 잠이 몰려든다. “쿵!” 진대나무가 넘어가는 굉장한 소리에 벌떡 놀라깨여 난 그는 지궂게 달라붙는 졸음을 쫓아버리며 몸을 털고 일어났다. 그가 갓 넘어진 진대나무 부근으로 다가갔을 때 였다. 그 옆에 서 있는 중둥이 부러진 강대나무에 인삼처럼 귀하다는 령지버섯이 달려 있지 않는가. 그는 날듯이 기뻤다.
그는 잽싸게 령지버섯을 뜯어 소료에 싸서 품속에 간직하고는 바삐바삐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백두산을 닮아 베개봉의 날씨도 변덕이 많았다. 난데없는 먹장구름이 꾸역꾸역 멍석말이로 밀려들더니 삽시에 구름 한점 없던 하늘을 삼켜버린다. 잇달아 허공에 불빛칼질을 하며 번개가 일고 꽈르릉ㅡ하늘이 무너지둣 우뢰가 운다. 쏴ㅡ일진강풍이 지나가고 창살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회초리 같은 비살이 그의 몸을 마구 후려 갈긴다. “허참, 설상가상이로군.”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다그친다. 쭈르르 미끄려 넘어지면 일어나고 나무에 걸려 뒹굴다가는 다시 일어서며 뽀얀 물보라를 헤쳐 나간다.
그가 산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였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양봉장은 어디에 있는가? 주위를 한참 살펴보고서야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지남침을 꺼내들고 방향을 가렸다. 여기서 동쪽으로 한 10리 가면 림업마을이 있다. 몇 년전에 거기에 들린적이 있다. 그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팽이에 몸을 지탱하며 마을을 향해 걸었다.
마을부근에서 한 청년을 만났다. 청년은 몹시 놀라면서 사연을 묻는다. 자초지종을 들은 청년은 심히 감동되여 기어코 자기집에 주무시라고 한다. 허나 그는 청산초대소에서 지금 사고난 줄로 알고 몹시 걱정한다며 꼭 떠나야한다고 했다 청년은 만류하다 못해 길동무로 나섰다.
그가 청년과 함께 청산초대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경이였다. 대대에서 한창 인원을 동원하여 그를 찾으려 떠난다고 법석이는 판이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그는 눈귀가 축축히 젖어듬을 금할수 없었다.
잠자리에 누운 그는 이리뒤척저리뒤척하며 종시잠을 이를수 없었다.  래일 룡정에 도착해야 모례예 전대로 교학을 할수 있다. 헌데 양봉장의 이름모를 버섯은 꼭 가져가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룡정방면으로 가는 뻐스가 래일 아침 8시에 있으니 그 전에 양봉장에 갔다와야 한다.
이튿날 새벽 3시, 그는 전날의 피로도 말끔히 잊은듯 다리에 휘휘감기는 젖빛안개를 헤치며 베게봉으로 뻗은 오솔길로 씨엉씨엉 걸어간다.
이른 새벽에 꿈같이 나타난 그를 바라보는 양봉장로인은 반가워 어쩔줄 모른다. 어둡도록 기다려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니 밤 늦게까지 홰불을 해 들고 산에서 그를 찾았다는 실로 고마운 로인이다.
소료에 싼 버섯을 그에게 주는 로인의 눈엔 물기가 흥건히 고이였다.
“근 70년을 산에서 살면서 버섯을 이렇게 귀히 여기는 분을 처음 만났수다!”
……
“청산ㅡ베개봉, 청ㅡ봉, 그렇지! 청봉버섯이라 달자!” 그는 무릎을 탁치며 벌떡 일어섰다.
100여가지의 버섯표본을 만들고 100여장의 버섯채색원형도를 그려 3년 계획을 금년 1년에 완성한 그 기쁨! 이 속도대로 해 나간다면 후년에 문제없이 버섯분류의 산마루에 오를수 있다!
새날이 밝아온다. 붉게 타는 아침노을을 거느리고 시월의 첫 태양이 온누리에 금빛주단을 펼친다.그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얼마나 상쾌한 10월의 아침이냐. 당중앙에서 우리에게 두번째 생명을 주시고 과학연구의 광활한 천지를 마련해 주시니 일할수록 새힘이 솟구치고 일할수록 젋어만 진다. 아, 이한 몸을 깡그리 바쳐 과학기술현대화의 봉우리에 오르는 디딤돌로 되리라!
과학에는 평탄한 큰 길이 없다. 전인들이 걸어보지 못한 생소한 초행길. 이 길을 뚫고 헤치며 겪는 말못할 고생을 아무도 모르건만 실천과 노력의 열쇠로 자연의 대문을 하나 또 하나 열며 과학의 높은 봉우리에로 한걸음 또 한 걸음 톱아오르는 무명영웅들!
동지들이여, 우리 모두 그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드리자!
과학의 첨병들에게 영광이있으라!
김웅 (김호근)
연변문예 1979년제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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