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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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철응주석과 맺어진 우연한 인연
2007년 10월 21일 20시 57분  조회:4660  추천:98  작성자: 허룡석

회고

철응주석과 맺어진 우연한 인연

허룡석 연변작가협회 주석


가을의 열기가 아직 사그러지지 않았던 2006년 11월 중순, 당중앙의 따뜻한 배려하에 중국문학예술계련합회 제8차 전국대표대회와 중국작가협회 제7차 전국대표대회가 북경에서 동시에 성황리에 개최되였다. 호금도, 온가보, 리장춘, 당가선 등 당과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이 선후로 대회에서 중요한 연설을 발표하였다. 

대표들은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자면 조화로운 문화건설을 앞세워야 하며 문학예술인들의 로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호금도총서기의 보고정신에 가슴들이 부풀어있었다. 

11월 12일 오전, 북경호텔 금색대청은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중국작가협회 제7차 전국대표대회는 예정된 대회의정에 따라 중국작가협회 제7기 전국위원회 개인위원선거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각 성, 시, 자치구 및 중앙직속기관, 신강건설병퇀과 연변조선족자치주 등 전국 43개 단체회원작가협회의 사업을 주관하는 단체위원 43명은 주석단에서 통과를 마친 뒤였다.

전국 950명 대표중 사유로 대회에 출석하지 못한 대표들을 제외한 845명 대표들이 무기명투표방식으로 위원 후선인들에게 신중한 한표를 찍었다. 156명 후선인 모두가 순조롭게 위원에 당선되였다. 그런데 유독 이번기 주석의 후선인으로 지정된 철응의 표가 800표 아래로 떨어져  795표에 머물렀다. 나는 철응이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다고 문단에서 그의 주석부임에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것은 들어 알고있었지만 전국위원선거에서부터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많은 대표들도 투표결과에 저으기 놀라는 표정들이였다. 오후에 있을 주석, 부주석선거에서 철응이 과연 무난히 통과될수 있을런지.

오후 3시경, 제7기 전국위원회 위원들이 제7기 전국위원회 주석, 부주석, 주석단위원을 선거하게 되였다. 단체위원 43명과 개인위원 156명중 사유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위원을 제외한 175명 위원들이 선거에 참가했다.

중공중앙조직부책임자가 나서서 중앙은 작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신중한 토론을 거쳐 철응동지를 중국작가협회  제7차 대표대회 전국위원회 주석후선인으로 추천한다고 공포하고나서  그의 경력과 성과를 선독하였다.

총감표인과 감표인들이 공포되고 위원들은 무기명투표에 들어갔다. 중국문단에서 5년만에 새로운 주석이 탄생하는 력사적 시각이였다. 전국의 수많은 작가들과 문학도들, 그리고 국내외 보도매체들이 지금의 이 시각을 조용히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두말없이 철응에게 찬성표를 찍었다. 총감표인은 175표중 174표가 유효표라고 공포했다. 무대아래에서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무대우를 쳐다보며 투표결과를 기다렸다. 나는 저으기 긴장해났다.

《철응 득표 162표!》

순간 나는 무거운 짐이라고 부리운듯 긴장이 풀렸다. 위원들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기타 부주석, 주석단위원들도 모두 순조롭게 선거되였다. 

선거가 끝나자 숱한 위원들이 철응한테 몰려가 손을 잡아흔들기도 하고 포옹하기도 하며 열렬한 축하를 보냈다. 나도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마와요!》

철응은 나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철응의 당선으로 하여 중국문단은 두가지 돌파를 가져왔다. 중국작가협회창립 57년이래 철응은 나이가 가장 어리고 유일무이한 녀성주석으로 되였다. 그는 중국문단의 거두들인 모순과(1∼3기 주석) 파금의(4∼6기 주석) 뒤를 이어 세번째로 중국작가협회 주석의 자리를 굳혔다. 

1957년에 북경에서 태여난 철응은 하북성 조현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백양전》파 문학의 대표작가였던 손리를 흠모했던 철응은 1975년 하북성 보정시 제11중학을 마치자 도시에 남거나 해방군2포병문공단에 문예병으로 들어갈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중국의 녀《고리끼》가  되려는 꿈을 안고 농촌에 내려갔다. 그는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면서 그해부터 문학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단편소설 《오, 향설이》, 《6월의 화제》는 1982년과 1984년에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받았으며 중편소설 《단추 없는 붉은 적삼》은 전국 제3차 우수중편소설상을 탔다. 이밖에 수필집 《녀인의 낮과 밤》은 제1차 로신문학상과 제6차 장중문문학상을 받았으며 1982년에(25세) 중국작가협회 회원으로 되였다. 

철응의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대욕녀》, 《분화》, 《비 없는 도시》, 《장미문》 등이 있고 중편소설로는 《영원이란 얼마나 먼가》, 《대면》, 《목화더미》, 《단추 없는 붉은 적삼》등 14편이 있으며 단편소설로는 《오, 향설이》, 《임신부와 소》, 《안드레의 저녁》등 80여편이 있다. 이밖에 160만자에 달하는 《철응문집》 5권이 있다. 그의 일부 작품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로씨야, 에스빠냐, 오지리, 덴마크, 노르웨이 등 나라에서  번역출판되여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철응은 《화산》잡지 편집부에서 소설편집으로 근무했고 선후로 하북성문련 부주석, 하북성 제4기 리사, 주석, 당조부서기, 전문작가로 있었으며 39세에 중국작가협회 제5기 주석단 성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 중국작가협회에서 유일한 녀성 부주석을 겸임하였다. 또한 전국단체회원단위 주석중 그는 유일한 중앙후보위원이였다.

내가 철응주석을 알게 된것은 참으로 우연한 기회였다. 우연한 기회에 맺어진 우연한 인연은 한번 만나는것으로 끝난것이 아니라 작가협회란 이 집단속에서 공동한 사업을 끈끈한 뉴대로 자주 만나면서 필연으로 이어져갔다. 

내가 작가협회에 전근된지 몇달 안되는 지난 7월 중순의 어느날, 퇴근해 돌아온 안해가 문득 나한테 이렇게 물어왔다. 

《중국작가협회에 철응이라는 부주석이 있는가요? 중앙후보위원까지 한다던데요?》

《응? 철응부주석?…》

《대단한분이시라던데요, 그분이 며칠후면 연변에 오신다는걸 알고있나요?》  

《뭐? 연변에 오신다구? 그런 통지는 받지 못했는데… 누가 그럽데?》

《성에 있는 절친한 친구가 소개하면서 본인의 요구가 그러하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데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 오신다는데 어찌 당신한테야 알리지 않겠어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 온다면서 왜 연변작가협회와는 련락이 없을가? 나는 작가협회 원 부주석 서진청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기도 철응이 연변에 온다는 소식은 못들었다면서 지난해 우리 협회에서 하북성작가협회와 손잡고 호가장전투장에 김학철, 김사량문학비를 세울 때 큰 수고를 하신 분이니 잘 접대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작가협회와는 련락이 없이 친구의 소개로 온다지만 이름난 작가이고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인데 연변작가협회가 등한시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나는 안해와 상론하고 접대임무는 작가협회에서 넘겨받기로 하고 구체 스케줄을 짰다. 

7월 18일 점심, 나와 안해는 각기 승용차 한대씩 가지고 공항에 나가 철응일행을 맞이했다. 우리가 내든 환영패쪽을 따라 예쁘장한 중년녀인을 앞세운 일행 네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철응주석이 아니신지요?》 안해가 나서며 반갑게 물었다. 

《네, 제가 철응이예요.》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장춘에 있는 친구가 얘기하던 김xx예요!》

《네,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김녀사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번에 와서 페를 끼치게 되였어요. 제가 소개하지요. 이분은 저의 아버지시고 이분은 저의 어머니예요. 그리고 이분은 인민문학출판사 소설편집 쑈포예요.》

안해가 주역이고 나는 보조역인지라 안해와 철응일행의 인사가 끝나서야 내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환영합니다. 저는 이 사람의 남편되는 사람입니다.》

나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안해를 뒤따라나온 남편역을 했다.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모처럼 가족이 나와 마중해주니 고마운 말씀 어떻게 드려야 할지…》

《천만에요. 가족이 오셨으니 가족이 나와 마중하는거야 응당한 일이지요. 안해의 친구가 안해를 믿고 접대임무를 맡겼으니 남편된 저도 등한해서는 안되는 일이지요, 안그래요? 허허허.》

《호호호, 참 고마와요!》

철응은 워낙 용모가 예쁘장한데다가 녀성이 간부가 되면 흔히 남성화되는 그런 모습은 꼬물만치도 찾아볼수 없고 첫 인상에도 부드럽고 아련한 녀성의 매력을 그대로 가지고있는 인상만점 스타일이였다. 

우리는 서둘러 공항홀을 빠져나와 안해가 가지고 온 차에 철응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앉은 차에 철응과 쑈포를 모셨다. 차는 시내로 향했다. 

《존함은 들어모신지 오랩니다만 오늘 이렇게 뵙게 되여 영광을 느낍니다.》

《친구의 친구라서 그런지 저도 어쩐지 두분이 초면이라는 감이 없이 아주 반갑네요.》

《연변에 처음 오시는가요?》

《네, 처음 와요. 저 쑈포가 장춘출신이라 연변이 여차여차하게 좋은 고장이라고 소개하는통에 연변을 택하게 되였어요.》

《이 고장에 오시길 잘했습니다. 사실 연변은 참 좋은 고장이지요. 10대 명산중의 하나인 천혜의 장백산이 있구요, 이웃나라들인 조선과 로씨야에 잇대여있어 해외관광도 편하지요.》

《참 기대되네요…》

《저, 그런데 철응주석이 연변에 오시는걸 연변작가협회에서는 알고있는가요?》 

나는 시치미를 떼며 정색해서 물었다. 

《아니요, 작가협회에 알리지 않았어요.》

《관청어른이 내려오시는데 지방관리가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이번에 저희들이 공무로 오는것이 아니니깐 길림성작가협회와 연변작가협회에 모두 알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작가협회란 모두 넉넉치 못한 단위인데 알리면 괜히 페나 끼치게 되지요. 게다가 이곳 작가협회 주석도 바뀌였다고 하던데 저는 면목도 모르고, 그저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갈려 해요.》

하는 말도 명인이나 큰 간부 같지 않게 틀거지가 없고 소박했다. 

《그래도 이곳 작가협회에야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알려도 이곳 작가협회에서는 벌써 다 알고있는것 같던데요?》

《네? 작가협회에서 제가 오는걸 알구있다구요? 그럴순 없는데요…》

철응의 고운 두눈은 금시 올롱해졌다. 

《허허, 사실은 제가 바로 김녀사의 남편이자 새로 왔다는 연변작가협회 사업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원래의 명함장에 단위와 전화번호를 고쳐쓴 낡은 명함장을 건넸다. 

《네? 새로 오신 주석님이시라구요?》

철응과 쑈포는 너무나 뜻밖이라는듯 서로 쳐다보며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공교로울수가 있어요? 전연 뜻밖이네요.》

《만일 안해의 친구가 저의 안해가 아니라 다른 친구한테 접대임무를 맡겼더라면 이른바 연변작가협회 책임자라는 사람이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 연변에 왔다가셨다는것조차 깜깜 모르는 허수아비가 될번했습니다. 참 너무하시는군요.》 

나는 섭섭함을 드러냈다. 

《아니, 그런게 아니구요. 이번 걸음은 개인휴가차니까 어디에도 페를 끼치지 않으려 했거든요. 하지만 연변은 초행이라 그저 길안내를 해줄 분이 있으면 되지 싶었어요. 그래서 저의 친구가 연변에 아주 믿음직한 친구에게 부탁해놓았다기에 시름놓고  온건데 그분의 남편되는 분이 새로 오셨다는 작가협회 주석일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어요. 이건 참으로 한부의 소설 같네요. 피치 못할 인연인가 봅니다. 참 너무너무 반가와요.》

우리는 작가협회란 한넝쿨에 오롱조롱 달린 열매라는 의미에서 다시한번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과연 그런가 봅니다. 만나야 할 인연은 피할수 없는가봅니다.》 

멀어졌던 거리가 순식간에 바싹 당겨져 우리는 오랜 친구마냥 기분좋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차는 어느새 백산호텔에 와 멎었다. 방을 배정받고나서 우리는 모여앉아 철응일행의 행차로선을 의논했다. 그들은 우리가 짠 훈춘―장백산―경박호 스케줄을 보고 시간표에 찬성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걸음은 공무가 아니니 절대 지방당정기관과 보도매체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겉보기가 속보기라더니 철응은 확실히 허장성세하는 여느 명인들과는 달랐다.

《중앙후보위원이자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인 모모한 분이 오셨는데 상급에 회보하지 않으면 저의 실책으로 됩니다.》

《제가 온걸 주석님 내외간밖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실책이 될거야 없지요.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저희들 경비문제 같은건 절대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할테니깐요. 저를 그저 동사자로 친구로 대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하거든요.》

상론의 여지도 없이 짤라 말하는 철응의 말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거참 딱하군요.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하면 저는 할 일이 없군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어쩌다 오셨는데 이번엔 제가 책임지고 배동해드리겠습니다.》

《일이 바쁘시겠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철응네 일행은 못내 기뻐하였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더욱 즐거워했다. 

《그런데 한가지 요구가 있습니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철응주석님의 행차를 아무리 비밀에 부친다 해도 우리 작가협회끼리 그러면 안되지요. 이후엔 별로 시간이 있을것 같지 않은데 오늘저녁 우리 작가협회주석단과 함께 식사하시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철응은 뭔가 생각하더니 통쾌하게 응낙했다. 

나는 즉시 작가협회에 전화를 걸어 저녁에 철응주석과 함께 식사하게 되니 기관일군들과 주석단성원들에게 통지하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우리는 행차스케줄에 따라 훈춘에 가 묵으면서 경신, 권하, 방천을 돌아보고 변방초소망경대에 올라 세 나라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훈춘에 가서도 철응일행의 행차를 작가협회에만 알렸을뿐 당정기관에는 알리지 않았다.

우리가 장백산에 가는 날에는 하루종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숱한 사람들이 천지도 보지 못한채 물병아리가 되여 덜덜 떨며 내려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올라가지도 말라고 손을 홰홰 내저었다. 우리 일행은 래일은 어떨가 하여 하루 묵기로 했다. 이튿날은 과연 뜻대로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개인날이여서 파아란 천지와 천태만상인 장백산절경을 마음껏 감상할수 있었다. 철응일행은 하루묵기를 잘했다면서 몹시 기뻐하였다. 

《저도 많은 곳에 가보았지만 연변처럼 아름답고 경치 좋은 곳은 정말 드물게 보는군요. 훈춘도 그렇고 장백산도 그렇고. 이번에 연변에 오기를 정말 잘한것 같네요. 쑈포, 감사해.》 철응은 연신  감탄했다. 

로화가인 그의 아버지도 연변은 가는 곳마다 수채화라며 래년에는 그림을 그리러 다시 오고싶다고 했다.

철응일행이 즐거워하자 안내하는 우리도 자연 기분이 좋았다. 

천지에서 내려와 방에 든지 얼마 안되여 철응이 갑자기 나를 찾았다. 방금 단위에서 전화가 왔는데 급한 일이 있으니 꼭 돌아오라고 한다면서 아마 경박호에는 가보지 못하고 래일 떠나야 할것 같다고 했다.
《별수가 없군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여태까지는 주석님의 분부대로 비밀을 지켜드렸는데 가실 때에라도 우리 자치주지도자들한테 알려야지 않겠습니까?》

철응은 처음에도 안 알렸는데 이제 알리겠느냐며 극구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나는 즉시 등개서기 비서한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등개서기가 집에 계신단다. 나는 이 며칠 철응주석이 휴가차로 며칠간 연변에 체류한 정황과 급한 사연이 있어 스케줄을 마치지 못하고 래일 떠나야 한다는 사연을 등개서기한테 회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비서한테서 전화가 왔다. 등개서기한테 회보했더니 저녁에 철응일행을 만나보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겠다는것이였다. 등개서기가 이렇게 중시해주니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우리는 서둘러 장백산에서 내려왔다. 

그날 저녁 등개서기는 백산호텔에서 연회를 차려 철응일행을 초대하고 기념품을 증정하였다. 주당위상무위원이며 선전부 부장인 리득룡, 부부장 채영춘도 자리를 함께 했고 나와 안해도 동석했다. 등개서기는 철응주석의 연변방문에 대해 환영을 표하고나서 전국의 더욱 많은 이름난 작가들이 연변에 와서 생활체험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해에는 유명작가들이 연변에 모일수 있는 프로젝트를 작성해보라고 했다. 이튿날아침에 리득룡부장과 채영춘부부장이 철응일행과 아침식사하고 이들을 환송했다. 식사후 철응이 생각밖에 옆칸에서 대기하고있던 신문, 방송, 텔레비죤 등 보도매체들의 취재를 받다보니 그만 시간이 지체되였다. 우리 부부가 곁에서 거듭 재촉하여 부려부랴 공항에 도착해보니 비행기좌석표가 다 나가고 없었다. 공항일군들은 이게 어느땐데 인제야 오는가고 나무라며 저녁비행기를 타고 가는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와 안해가 공항책임일군을 찾아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고 중앙후보위원이라고 설명하며 돌아쳐서야 겨우 비행기에 오를수 있었다.

철응일행은 우리 손을 잡고 연신 사의를 표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짧디짧은 며칠사이지만 우리는 동행하면서 사업, 창작, 가정, 혼인 등에 대하여 무랍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두 작가협회와 두 가정사이에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이튿날저녁 철응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와 나와 안해에게 자기들을 친인처럼 환대해준데 대하여 재삼 사의를 표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전화를 바꾸어가며 고맙다는 말을 곱씹으며 꼭 한번 내외간이 석가장에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후에도 철응은 북경에서 중국작가협회 회의가 있을 때면 내가 든 방번호를 알아가지고 먼저 전화를 걸어와 안해까지 곁들어 문안하군 했다. 그는 연변행은 자기들에게 잊을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다면서 작은 성의라며 나의 안해한테 잠옷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철응가정과 우연히 맺어진 인연때문에 이번 주석선거에 나는 은근히 신경이 씌였다. 

지난 8월 북경에서 중국작가협회 제6기 10차주석단확대회의가 소집되였을 때 중앙조직부와 중앙선전부 두 간부 3국 책임자들이 각 단체회원단위 책임자들과 개별담화를 나누며 작가협회 주석후선인을 추천하게 했다. 당시 중앙에서 내놓은 후선인이 따로 없는지라 추천범위가 넓어 적지 않은 작가들이 제기되였는데 그중에서도 왕몽, 하경지 등 유명한 로작가들이 많이 거론되였었다. 

그런데 9월 중국작가협회 제7차 대표대회 주비좌담회를 할 때에는 철응과 다른 한 유명한 작가를 후선인으로 내놓고 우리들더러 선정하라고 했다. 지난번에 있은 주석후선인 추천시에 많은 단체회원단위의 서기, 주석들이 새 시대 사업수요로부터 고려하여 이번기 주석선거에는 70세이상의 작가는 후선인에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중앙에서 받아들인것 같았다. 

철응이 주석후선인에 오르자 나는 사실 깜짝 놀랐다. 로작가, 명작가들이 수두룩한 중국문단에서 40대 녀작가가 주석후선인에 거론된다는것은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기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몹시 기쁘기도 했다. 우연히 맺은 인연이지만 철응이 주석후선인이 된다면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였다. 

중앙조직부와 중앙선전부 두 간부 3국 책임자들이 나와 담화할 때 나는 두말없이 철응을 추천하며 네가지 리유를 들었다. 

첫째, 당의 령도하에 있는 인민단체인 중국작가협회도 반드시 정확한 정치방향을 견지해야 하는바 철응은 우선 정치면에서 믿음직하다. 중국작가협회 단체회원단위의 주석중 그는 유일한 중앙후보위원이다. 
둘째, 그의 창작성과가 돌출하여 중국문단에서 확실히 긍정을 받고있으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실무면에서 설득력이 있다. 

셋째, 한창 정열적으로 사업할수 있는 40대의 나이여서 사유가 활발하고 관념이 참신하여 중앙에서 제기한 조화로운 문화건설수요에 알맞는다.

넷째, 중국작가협회창립 57년 력사에 녀주석이 나온적이 없다. 비슷한 조건에서 녀작가가 주석이 된다면 국내외적으로 그 영향력이 훨씬 클것이다. 

나의 말에 만족되는지 두 간부 3국 책임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담화가 끝난후 나는 곧장 철응을 찾아갔다. 

《축하합니다. 주석후선인이 되면서 왜 말 한마디 없었습니까?》

《뭘요, 다 조직에서 하는 일인데 제가 뭘 말하겠어요. 아직 온양중인데요. 되면 좋고 안돼도 무방하고 두가지 사상준비를 해야죠.》

말하는 사람은 담담히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다시한번 그의 넓은 흉금과 대범함에 감탄했다. 큰 그릇은 큰 그릇이였다. 

이야기중에 내가 개별담화정황을 말했더니 그는 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참 개괄을 잘하시네요. 아무튼 적극 지지해주셔서 고마와요!》

지난 10월에 연변작가협회창립 50돐 기념행사때문에 중국작가협회에 갔을 때에도 작가협회기관임직원들이 철응이 주석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의론하는것을 보고 나는 은근히 기뻤다. 

이번 대표대회에 가서도 철응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이 돼있었으나 철응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았다.  9일 저녁, 전체 대표들과 함께 전국정협례당에서 래일 진행될 대표대회예비회의를 마치고 북경호텔로 돌아오니 아홉시가 넘었다. 9시 30분쯤 뜻밖에도 철응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시간이 나는데 허주석님은 어떠세요? 제가 건너갈가요?》

《아니, 제가 건너가지요.》

우리는 북경호텔 A청에 들고 철응이네는 귀빈청에 들어 가운데 라이부스청을 지나야 했다.  

내가 귀빈청 8층에 이르러보니 철응이가 복도에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삼촌과 아주머니는 그냥 건강하시지요?》

《녜. 건강하세요. 언니는 잘 있지요?》
 
우리는 서로 열정껏 두 가정문안을 하고나서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주석으로 당선되면 우리와 우리 연변작가협회를 잊으면 안됩니다.》 내가 롱을 했다. 

《아직 될지도 모를 일이니깐 그 얘기는 하지 말자요.》

철응은 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회피했다. 그냥 그 겸손하고 소박한 태도였다. 

《연변작가협회와 하북성작가협회가 지난해에도 손잡고 김학철, 김사량문학비를 세우는 큰 일을 했는데 이제 중국작가협회 주석으로 되면 함께 손잡고 더 큰 일을 해야 할게 아니겠습니까?》

《사실 연변에 대한 인상이 참 깊어요. 또 허주석님과 언니를 통하여 문화수준이 높고 례절이 밝고 인정이 깊은 조선족을 한층 더 알게 되였어요. 저의 아버지, 어머니도 자주 외우군 한답니다. 사업이 바쁘신 등개서기도 모처럼 저희를 환대해주셨구요. 지난번 연변작가협회창립 50주년때에도 제가 출국하지 않았다면 꼭 가서 축하했을거예요. 언제든 다시한번 기회를 내여 연변에 가보고싶어요.》

《그때 함께 식사할 때 등개서기가 철응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더욱 많은 유명작가들이 연변에 오시는걸 환영한다지 않았습니까? 저희들더러 새해에는 뭔가 프로젝트를 만들어 큰 문화행사를 만들어보라고 했지요. 등개서기는 문화사업을 아주 중시하는분입니다. 새해에 중국작가협회와 손잡고 연변에서 큰 문화행사를 벌려봅시다.》

《호호, 허주석님도 꽤나 성급하시네요. 저를 너무 협박하시네요.》

전국에서 온 대표들은 드디여 대표대회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새로운 희망과 신심에 부푼 가슴들을 안고 14일 저녁부터 륙속 북경을 떠났다. 연변대표단 성원들은 15일저녁 비행기로 북경을 떠나게 되였다.
 
떠나기전 나는 철응주석과 작별인사를 나누려고 그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더니 그는 한창 석가장으로 돌아가는 차안에 있었다. 그는 많은 구체적 이야기는 이후에 다시 나누자고 하면서 연변에서 작가대표대회를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허락되면 연변작가대표대회에 꼭 참가하겠노라고 했다. 연변에 두터운 감정을 갖고있는 그의 진정어린 마음이 내심으로 고마왔다. 그는 빠른 시일내에 하북성작가협회사업을 교대하고 중국작가협회로 정식부임해야 했다. 

나는 조화로운 문화건설을 구축하는 새로운 력사시기에 시대적인 중임을 떠멘 철응주석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기를 빌면서 귀로에 올랐다. 

                                  2006년 11월 30일  

연변문학 2007년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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