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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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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노오란 동그라미
2014년 08월 31일 21시 31분  조회:707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노오란 동그라미
                                    

 장학규
 
 

희미한 의식속에서도 영원이는 굴지의 기운이 신체의 어느 한 부위에로 서서히 모여지는 느낌이 들었다.잠결에도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어 옆자리를 더듬었다.뭉클할 것이라는 기대가 허공을 짚으면서 물거품이 되여 쪼각났다.
   막무가내로 시계를 보니 새벽 네시반이였다.초여름이라 바깥은 벌써 희끄무레해지고 있었다.
  잠은 이미 설쳐놓은 터였다.
  영원이는 담배를 더듬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몽롱한 야광속에서 담배연기는 노오란 색갈을 띠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이름이 문제인것 같았다.무슨 일에서나 마라톤처럼 질기고 꾸준한것이 참 걱정거리였다.
   연해도시로 나와 처음으로 그렇다할 연휴일을 쉬는 셈이였다.
   상주 인구의 격감으로 인해 위기감에 사로잡힌 신문사가 연해 지역 개발이라는 이슈를 벌리며 영원이를 낯선 황해변에 던진 그때로부터 석달간 정말 하루도 쉬어본것 같지 않았다.이제 좀 숨을 돌릴만 하니 마누라쪽 회사에 문제가 덜컥 생긴것이다.싼 인력만 바라고 들어온 한국기업이 요즘은 임금 인상의 압력을 받으면서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직원을 줄이고 있었던것이다.토사구팽이라던가.현지화 몇년에 통역 없이도 회사가 돌 지경이 되여 첫 매를 맞는게 초창기에 인기짱이였던 현장 통역 즉 조선족들이였다.안해도 그런 위기감에 끼워든 일원이였다.다행히 영원이가 기자증을 들고 다니며 회사쪽 일을 더러 봐준 일이 있어 지금까진 그렇다할 얘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안해는 마냥 불안해하고있었다.
   엊저녁에 초벌을 거쳤던것이 틀림 없었다.안해가 회사에서 짤리지 않으려고 부등부등 자진하여 밤대거리 나가는 것을 애원하듯 붙잡고 늘어진것이였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사업상 관계로 영원이는 예고 없는 출장을 밥 먹듯 다녀야 했다.게다가 현지 선전부와 공상국의 단속을 피해 멀리 변두리로 이사해간 분사가 집과 너무 떨어져 있어 한번 출장을 간다하면 어지간히 란리를 벌리군 했다.그것은 시끄럽다기보다 아예 신경이 번져지는 노릇이여서 영원이는 결김에 짐을 와락 꿍져가지고 회사 숙소에 들어가 한달에 둬어번 려관 들리듯 집으로 다녔었다.처음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이라는것은 달을 넘기기전에 들어나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얌전하기만 하던 안해의 입에서
  "굶은 승냥이 같네!"
  "학대광이잖아?"
  하는 욕설에 가까운 불만이 심심찮게 튕겨나왔고 나중엔 체념을 했는지 너는 너대로 요동을 하고 나는 나대로 잠이나 잔다는듯 행위도중임에도 불구하고 코를 쌔근쌔근 곯아대는 씨나리오를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엊저녁은 그게 아니였다."승냥이" 대신 "빨리빨리"였고 "학대광" 대용으로 "잉,오라다"가 련발되였다.완전한 방관자의 태도였다.영원이는 제풀에 멋적어 그만 중도하차 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
  영원이는 그때까지도 노란 연기를 가물거려대는 담배를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비벼꼈다.
  이맘때가 법처럼 화장실 출입해야 할 시간이였다.영원이는 공연히 침대에서 부시럭거렸지만 종내는 일어서지 않았다.배를 살살 간지럽히는 고통과 더불어 신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쾌감도 있었던 것이다.이때는 시간과 공간을 망각한채 오로지 그속에 완전히 도취되여야 했다.일단 배설을 결행하기만 하면 온갖 감각세포가 따라서 가뭇없이 소실된다는것을 경험은 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여섯시가 썩 넘어서야 영원이는 마지 못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볼장을 깡그리 보고나니 배가 살살 고파났다.무언가 먹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지만 바싹 마른 기분때문인지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전에도 가끔 그랬던것처럼 영원이는 집을 빠져나와 거리를 가로건넜다.마주켠에는 "부산스낵"이란 간판을 내건 간이식당이 있었다.번화가여서 전문 홀몸이나 지나가는 행인만 받아도 밥 벌이는 됨직한 그런 식당이였다.
   민영교원 노릇을 하다가 꼴 사나와 무작정 연해행을 결단했다는 삼십대의 녀인이 그 마담이였다.이곳에서는 한사람의 내력을 당자가 말한대로 믿어주는 습관이 있었다.서로 모르는 지방들에서 오다보니 사실 어떻게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이름은 고루하기가 이를데 없는 금옥이라던가.
  얼굴은 미인축에는 못 들어도 그런대로 밉지 않게 보아줄수는 있는 스타일이였다.무료한 남자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게 빼빼 마른 몸매에 젖무덤은 거의 보이지 않는,그야말로 부담 없이 장사할수 있는 알맞춤한 녀인이였다.
  녀인은 어딘가 모르게 맵짠데가 있었다.각난 입술때문일가 아님 또릿한 눈길때문일가고 그 범접하기 어려운 리유를 캐보았지만 판단은 잘 나지지 않았다.아무튼 일자리 없이 매일 미친년 널 뛰듯 하는 주위의 동포 나그네들도 이 식당에서만은 별로 말썽을 부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녀인임에도 영원이는 그 손등을 둬번 쓸어준 경력으로 으쓱대고 있는 편이였다.의식적이였던 무의식적이였던 취기를 핑게대고 슬그머니 목을 끌어안고 가슴에 손을 올리붙인적도 있었다.손은 어딘가 좀 투박한 느낌이였고 딱히는 알수 없지만 콩알만큼 자그마한 유두가 감각에 잡혀왔었다.이 동네에서 매일이다싶이 쉽사리 벌어지는 그런 일들이 그 녀인한테 적용할 수 있는 상대는 영원이라는 사나이 내놓고 다시 없을거라고 굳게 믿는 터였다.
  그래도 술기운이 가뭇없이 사라진 이날에는 스스로 무안에 빠져서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근래에야 다시 출입하게 된것이다.
   (이래선 안되는데...무슨 해결책은 없을가?)
  헛기침을 쏟으며 음식점에 들어서니 마담인 금옥이 혼자만 댕그랗게 의자에 앉아있었다.무슨 상념에 잠겨있었던듯 머리를 세차게 젓더니 불시에 가느다란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는것이였다.바로 그 웃음이였다.실수로 인한 영원이의 자격지심을 녹여주는듯 한층 더 심하게 불안에 떨게 하던 그런 웃음이였다.
  "아,오셨어요?"
  "음,그런데 왜 이리 썰렁하지?"
  "급한 손님은 먼저 먹고 가고 안 급한 손님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반중건중한 손님이란 말이군..."
   영원이는 아무렇게나 가까운 의자를 끄당겨 앉으며 씨부렁거렸다.
  "아니,그게 아니구요.진짜 귀한 손님은 이때에 오시는거지요.남들은 먹자바람으로 얘기도 없이 가버리는것이 아니예요."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살펴주는 말이였다.항상 그런 느낌이 들었던것처럼 참으로 편안한 녀자였다.그만큼 마음 씀씀이가 좋았고 구석구석을 녀인의 눈으로 더듬어주는 금옥이였다.그러나 그 어조는 어딘가 모르게 저락되여 있었고 고독이 묻어있었다.되도록이면 명항한 쪽으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듣다 반가운 소리군.마치 기다렸듯이 말하니깐..."
  "그럴지도 모르지요...선생님이라면 기다릴만도 하거든요...아,너무 심심하니 사람이 그리운가 보죠..."
   녀인은 깜찍하게 둘러붙혔다.아무렴 교원노릇을 헛되이 한것은 아니였다.무시당한 감도 약간 들었으나 여하튼 약삭바르다는 생각이 앞섰다.그래서 한마디 더 지껼였다.
  "거두 절미하고 가운데 말만 가슴에 새겼소."
  "문자 사용하시니까 전 무식해서 알아 들을수 없군요."
  "그럼 어미만 팽개치겠소."
  "호...참,어머니를 어떻게 팽개친다구 그러죠?"
  "허...그런가...? 어차피 얘기를 할바엔 조용해야잖겠소.직원들 출근하기 전만이라도 문을 좀 닫으면 어떻소?"
   순간이나마 금옥이의 눈빛이 날이 섰다가 인츰 희미하게 사라진다.주저하는듯 바른손을 허공에 올렸다가 맥없이 내린다.
  영원이는 더이상 말없이 담배를 붙여물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들이대고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실눈속에 잡혀들어오는 담배연기는 노란 색갈이였다.이상한 생각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금옥이는 그 자리를 떠나 구석쪽으로 가고있었다."영업중지"란 간판을 밖에 내걸고 문을 절컥 잠가버리는 것이였다.그리고는 영원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채 안방쪽으로 쑥 들어가는것이였다.
  (기분이 잡쳐졌나? 뭐 어쩌지도 않았는데...)
  그때 머리속에는 사유의 핑게와는 딴판으로 엉뚱하게도 콩알만한 유두가 떠올랐다.금옥이의 여윈 가슴에 달려있는 그것은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좀 부족한 편이였다.살뜰하고 세심한것외에는 사실상 금옥이는 녀인다운데가 적었다.마누라와 정반대였다.그런데도 다리 사이는 벌써 부자연스러워지고있었다.뇨기가 온것이라고 의레 짐작하고 화장실에 들어갔으나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금옥이는 미리 준비나 했던것처럼 여러가지 채소를 날라왔다.맨 나중 난데 없는 "북대황" 술 한병 들고 나왔다.
  "울 고향 술이네."
   "얼마전 고향 갔다가 선생님 드리려고 사온거예요.마셔요.오늘은...저도 한잔 하고파요."
   얼마간 흐트러진 자태였다.종래로 없던 일이였다.
  전에도 가끔 술상에 마주 앉아주었지만 음료같은것을 따라놓고 해쭉해쭉 웃으며 말동무나 해주었을 뿐이였다.
  영원이는 그게 싫지 않았던것이다.하여 모름지기 자신의 고통이나 번뇌같은것을 스르럼 없이 얘기했던것 같다.
  "아이구 그랬어요?"
  "전 선생님같은 분들은 고민이 없는줄로 알았어요"
  "참 안됐네요.그래도..."
  맞장구 쳐주는 금옥이 때문에 말 못할 부부 사이의 일도 더러 비쳐던것 같았다.물론 금옥이도 자신의 신세를 상대를 위로해준다는 명목하에 더러 말했었다.고향에 있는 남편은 정리실업 당한지 벌써 3년이 되었는데 와서 마누라를 도와줄념을 않고 맨날 한국갈 궁리로 허송세월한다고 했다.자존심만은 강해 아낙에 붙어살 위인이 아니라고 땅땅 큰소리 친다고 했다.그런 내역을 서로 통한 다음부터 둘 사이는 재빨리 친근해졌고 남들이 비리라 할만큼의 큰 폭의 동작들도 영원이는 할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관계는 맺지 않았다.금옥이는 녀인 특유의 부드러움을 시종 베풀면서도 남편을 향한 충성심은 잃지 않고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히 취할 잡도리였다.한잔 또 한잔 입에 털어넣기에 급급했다.영원이도 묵묵히 따라 마셨다.경주라도 하둣 쉴새없이 잔을 비우면서 결코 이런 장면을 눈앞에 보고싶었던건 아니라고 속으로 왼고개를 쳤다.
  "아무래도 리혼해야겠어요."
  술병이 굽날 무렵에 금옥이는 입을 실룩거리며 한마디 뱉어냈다.
  "애를 봐서도 안된다고 했잖아?"
  "누가 자기를 말해요? 제가 하겠단 말이지."
  "그건 나도 알아들었어.경솔하게 처리하는것이 아니야."
  "그 자식도 당신처럼 이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흐흑..."
  상에 엎드려 흐느끼던 녀인의 울음이 점차 대성통곡으로 번져갔다.영원이는 당황하여 급히 녀인의 어깨를 감싸안고 달래둣 속삭였다.
  "이러지 마.동네에서 들으면 어쩔려구 그래?"
  "돈은 번대로 다 갖다 쓰고...그 주제에 어떻게 번 돈이냐고 따지기는 좋아하고...애인 데리구 노래방에 죽쳐 앉아서 큰소리 땡땡하고...이게 복통 터질 일이 아니구 뭐예요..."
  한번 풀린 녀인의 입을 다시 비끌어매기는 어려웠다.영원이는 녀인을 감싸안고 팔에 힘을 가하며 가냘푼 그 몸체를 다독이기만 반복했다.
  금옥이는 많은 말을 했다.어쩌구 저쩌구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남편에 대한 실망이 더덕더덕 묻어났다.
  "자기는 나가서 바람만 피우구...남자는 모두가 숫캐야!"
  재잘대던 금옥이가 급작스레 히스테리를 부리며 몸을 터는 바람에 영원이는 하마트면 뒤로 허망 나가 넘어질번 했다.왜서였던지 영원이는 심한 분노를 느끼며 일어선 녀인을 선 자리에서 빙 돌려세우고 무작정 꽉 끌어안았다.
  "여기 숫캐 한마리 또 있어."
  "놔! 짐승같은것들!"
   "숫캐의 맛을 보여줄테야!"
  "빨리 놔,소리치겠어!"
  "맘대로 쳐봐!"
  종주먹을 부르쥐고 버둥대는 금옥이와는 달리 영원이는 여유작작했다.싸우둣 톤을 높히며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싫다고 한사코 뻗치는 금옥이의 얼굴을 끄당겨 억지로 입을 맞췄다.금옥이는 꼭 깨물것처럼 날치더니 정작 혀가 입속으로 밀려들어가자 발광을 멈추고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노끈한 혀로 맞유희를 벌리면서 자꾸자꾸 가슴속으로 옹그러들어왔다.
   단지 쓴지 감각으로 잡혀지지 않는 긴 키스였다.
  술을 무드없이 마신 때문인지 사유가 혼돈되여 왔다.그래도 기어이 남성을 깨우치고있었다.녀인의 간절한 신음에 재촉 받으며 영원이는 입을 맞붙인채로 녀인을 훌쩍 들어 온돌우로 올라갔다.금옥이는 눕혀지는줄도 모르고 열심히 키스에만 열중했다.
  어느새 영원이의 손은 녀인의 옷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금옥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으나 한사코 고집스레 파고드는 영원이를 당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맥을 풀었다.짐작대로 녀인의 가슴은 아무리 끌어모아도 한줌이 되지 않았다.그래도 생각밖에 작은 보석은 탱탱하게 돋아나고있었다.손가락으로 슬쩍 밀었따가 놓으니 씽하고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는것이 생동하게 알려왔다.저도 모르게 손이 녀인의 허리띠를 거머쥐였다.원래부터 남자들의 목적은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여직껏 취한듯 받기만 하던 금옥이가 그때 후다닥 떨어져 나갔다.
  "안되요.그건 안되요!"
  "왜?"
  대답이 없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천정만 쳐다보더니 불쑥 물어왔다.
  "리혼할수 있어요?"
  머리가 저절로 흔들어졌다.무드가 없을뿐이지 어리무던한 안해를 버러야 할 리유는 별로 없었다.
  "그럴줄 알았어요.당신은 책임감 있는 남자이니깐요."
  금옥이의 눈가에는 순간에 이슬이 맺히더니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모님은 왜 그리 행복하지요? 저는 또 왜 이렇게 불행하구요..운명인가봐요.그러나 저는 남의 애인 노릇은 절대 할수 없어요.우리는 계속 이렇게 친구로 지내자요."
  그러면서 몸을 탈아 영원이의 품속에 안기며 자그마한 입술을 내밀었다.뜨거운 키스가 또다시 이어졌다.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영원이의 손을 잡아 자기의 가슴속에 넣어주기도 했다.우정과 사랑의 계선을 허리에 귀결시키는 행동이 우스웠으나 그녀는 내내 진지한 표정이였다.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안고있다가 점심 영업을 위해 몰려올 종업원들 때문에 별 아쉬움 없이 갈라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홉시가 금방 넘어서고 있었다.그사이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안해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있었고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영원이도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안해는 한창 출근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밤대거리를 신청한 그녀에겐 실업보다 더 큰 관심거리는 없는 모양이였다.
  "여기 좀 와!"
  ":왜?"
  텁텁한 음성이였다.
  "두주일이잖아!"
  "어제 일은 뭐예요?"
  "그게 어디 한게야?"
  "꼭 굶은 승냥이야.악착두 하지!"
  안해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당기는대로 순순히 주저앉았다.
  언제나 그랬다.옷을 홀랑 벗기고 이불속으로 끌때까지도 멀쩡하게 앉아있었다.아직 열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행진곡 같은 안해의 재촉이 개시를 올렸다.
  "좀 빨리요.으흑...시간이 다 돼요."
  그바람에 반쯤 정서가 식어갔지만 그래도 오늘은 포기하지 않으리라 작심하는데 어처구니없이 발설되고말았다.안해는 꼬물만큼도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이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는 급급히 나가버렸다.
  (빌어먹을 년! 아무래도 남이를 데려와야겠어.)
  남이는 아들이다.우리 말을 잃지 않게 하려고 고향에 있는 외가집에 보내놓고 있었다.남이가 돌아오면 안해는 밤대거리를 할수 없을거고 그러면 "승냥이"는 계속되더라도 "빨리빨리"는 다시 연주되지 않을것이였다.
  "빌어먹을..."
  투덜대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방광을 깨끗이 비우고나니 배가 고파났다.밥상에는 안해가 챙겨놓은 음식들이 놓여있었다.잠시 금옥이를 또 찾아갈가고 생각했다.술도 얻어 먹을겸 손도 쥐여볼겸...허지만 인츰 도리를 저었다.리혼이 주문되지 않는것처럼 육연도 결코 베풀어 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그녀와의 거래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라다녔다.
  영원이는 대충 배를 다지고나서 거리에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회사로 들어갔다.
  "일요일인데 집에서 푹 쉬지 않고 왜 나왔소?"
  숙직실 할아버지가 관심조로 묻는것을 건성으로 대답하고 4층 사무실문부터 열었다.해야 할 일들이 하자면 끝이 없었다.금방 자료더미를 끄집어내였는데 따르릉-전화벨소리가 울려왔다.발작적으로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집에 돌아가시지 않았군요.역시 짐작대로네요."
  대학동창생 선희였다.한때는 그렇게 따라도 거뜰떠 보지도 않던 선희가 근자엔 사흘이 멀다하게 전화를 주고있었다.야한 목소리인것으로 미루어보아 또 무슨 부탁이 있는 모양이였다.머리속에는 그녀의 화사한 얼굴과 만두같은 유방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무슨 일이요?"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할수 있나요?"
  "그런게 아니라..."
  "사실은 그쪽으로 출장갈 일이 있어서 기다려 달라구 그래요."
  "언제?"
  "금요일 오후."
  "알았어."
  "그리고 그날 돈을 좀 드텨받았으면 해요.새집을 장식하자니 돈이 모자라서요.자꾸 시끄럼을 끼쳐서 미안하지만..."
  "얼마쯤?"
  "5천원이요."
   "그렇겐 없어."
  "그럼 2천원만이라도 해결해줘요."
  "그때 보지."
   영원이는 메치듯 수화기를 내려놓았다.이젠 일을 보긴 다 틀려먹었다.웬일인지 조금만 자극 받아도 정서파동이 심해지면서 정력을 집중시킬수 없었다.
  선희와의 재회는 10년만에 이루어졌다.동기동창생은 일반적으로 같은 계통에 떨어지는것이 상식이였으나 당시 선희는 남편감으로 선정된 사람이 사범전업이여서 지방학교로 함께 배치되여간것이였다.
  일이 만들어질려고 그랬던지 본사에 있을 때 교육면을 책임졌던 영원이는 어느 한차례의 교육연구토론회에 갔다가 약속없이 선희와 마주쳤다.10년전보다 퍽 성숙되고 풍만해진 30대 중반의 녀인이 되여있는 선희는 회의의 초점인물이였다.워낙 몸매도 근사했지만 얼굴 또한 비례에 맞춤하게 해사했다.
  회의가 끝난후 둘은 동창생이라는 허울아래 조용히 한자리에 앉을수 있었다.어느 고급호텔의 레스토랑에서였다.
  "오늘 밤엔 돌아가야 해요.남편이 마중나오기로 했으니깐요."
  "자꾸 남편을 거들지 마! 짜증나. 누군 녀편네가 없남!"
  영원이는 좀 취한 상태였다.워낙 술을 즐기는데다 권주에 약한 편이여서 차례로 돌아오는 술을 모두 받아 마셨던것이다.서로가 면목없이 만났다가 아쉽게 갈라지는 마당에서 사양이란 금물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니깐.그리고는 오차없이 선희의 손목을 잡고 이쪽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술 먹는것도 그렇고 성질도 그렇게 꼭 옛날 그대로네요."
  선희는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웃었다.
  "남편이란 사람 어때?"
  "남편이란 사람 그냥 고린내나는 아홉째죠.근데 어투가 너무 무리해요."
  "무리는 힘을 대변해.무리가 많으면 힘이 크다고 했잖아.모택동이...왜 여직껏 소식 한장 없었어?"
  "기다렸던가요?"
  괜한 투정에 반발심이 생겼던지 도전적으로 물어왔다.크고 까만 쌍겹눈이 두려움 없이 영원이를 직시했다.
  "당근이지...미친듯 사랑했던 여자인데..."
  "그때 왜 끝까지 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아마 지금쯤 당신의 마누라가 되였을지도 모르잖아요."
  어조는 갈아앉아 있었으나 퍼그나 충격을 주고있었다.이처럼 직설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알려주기는 처음이였다.청춘을 돌이킬수 없기 때문일가!
  영원이는 그만 기가 죽었다.하긴 몇번의 시탐이 박대를 받았다고 혈기의 나이답게 앵돌아졌던 그였다.
  "언제든 꼭 찾아오리라 믿었어요.사내다왔으니깐.그래서 결혼도 늦게 했어요."
  "애가 몇살인데?"
  "없어요."
  찾아갈 생각도 못했거니와 기다렸을줄은 더욱 몰랐었다.
  사범전업생은 사랑이 이루어질수 없는 상대였다 한다.결혼을 앞두고 서너번 살을 섞으며 지내보니 아주 볼품 없는 남자였다고 한다.그래서 서운한 느낌도 없이 갈라졌고 그것이 상처가 되여 몇년을 홀로 지내다가 아무렇게나 붙잡아놓은것이 지금의 남편이란다.숫총각이 분명했는데 자기는 경험있는 녀인이여서 가끔 량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나마 아무런 조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한테서 모두 애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였다고 한다.그리고는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어디던지 맘대로 데려가줘요.원을 풀어드릴게요."
  영원이는 틀림없이 사내였지만 대장부는 아니였다.즉시 카운터로 가서 독방을 신청했다.하루 방세가 저그만치 680원이였다.
  방에 들어가서 우선 티비부터 켰다.마침 연한 무도곡이 흘러나오고있었다.
  "먼저 춤을 추자요."
  틈서리 하나 없이 엉켜붙어 돌아갔다.큼직한 살덩이 두개가 아름차게 가슴에 떡 맞쳐왔다.대학시절때부터 그렇게 쥐여보고싶던 선희의 젖무덤이였다.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어느새 미칠듯한 입맞춤으로 번져갔다.입술과 입술간의 탐닉,혀와 혀간의 갈구, 그것은 정녕 혼육을 융화시키는 마력이였다.
  "사랑했어."
  "저두 사랑했어요.'
  헉헉거리며 침대가로 다가가 그대로 쓰러졌다.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홀몸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것 같았다.그러나 그처럼 소유하고 싶었던 녀인의 유방이 한입 가득히 밀려들어와 요동을 칠 때 모든것은 이미 보상받은 셈이였다.
  "젖이 너무 크지요?"
  "응.포유기 녀인같아!"
  "아,애를 갖고파요."
  "낳아,만들어줄게."
  "아니요.그럼 안되요."
  그러건 말건 그대로 힘있게 밀고 들어가 화려하게 폭발했다.
  "넌 마귀야.예쁜 녀인은 마귀의 화신이랬어."
  "마귀맛 한번 더 보세요."
  그 충동질에 사그라졌던 남성이 재빨리 부활했고 어쩔새 없이 영원이는 밑에 깔리우는 신세로 전락했다.그래도 달가왔다.진땀을 빼는 선희가 미친것만 같았다.
  눈을 뜬 이날은 오히려 서먹서먹했다.
  "아이참,이게 무슨 노릇이죠?"
  선희는 수치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러는 그녀가 자극을 받을가봐 영원이는 한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호텔을 빠져나온 그들은 묵묵히 거리를 걸었다.선희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듯 영원이의 뒤만 졸졸 따라왔다.그러다가 문득 기차역으로 가고있다는것을 발견했던지 우뚝 멈춰서는것이였다.
  "애가 생기면 어쩌지요?"
  "그럴수가 없어,하루밤새에 무슨..."
  "그걸 누가 알아요.애가 생기면 책임져요."
   영원이는 흠칫 놀랐다.거기까진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것이다.
   "어떻게?"
  "놀랄것까진 없어요.그저 아버지 노릇을 착실히 하면 되는거예요."
    선희는 갈피를 잡을수 없는 희미한 웃음만 날릴뿐이였다.
   그후부터 두려움을 앞세우면서도 한달에 한번씩은 정해놓고 선희와 만났다.상화에 따라 그녀가 오기도 했고 그가 찾아가기도 했다.물론 그때마다 결코 엷지 않은 선물을 그녀에게 선사하군 했다.대개 미모의 녀인들은 옷차림을 즐기는 법인가.선희는 남달리 쇼핑을 좋아했고 보는것마다 욕심냈다.
   "아이,저 치마 좀 봐요.멋있죠?"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도 사주지 않으면 그만이였다.별로 고까와하는 기색도 없었다.대신 기분이 좋아서 통 크게 사주면 기뻐서 해종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랬지만 사주었던 사주지 않았던 침대에서의 그녀의 표현은 구별 없이 뜨거웠고 열렬했다.정열에 불타는 녀인이 분명했다.
   "임신했어요.두달이 돼요."
   어느날 선희가 전화로 이런 소식을 알려왔을 때 영원이는 온몸이 얼어드는 충격을 받았다.그러나 그뒤에 이어진 말은 더욱 그를 아연해지게 하였다.
  "도대체 누구 씬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돌려가며 당했으니 말이예요.절반 책임만 지울게요."
  무게를 가볍게 하느라고 태연하게 하는 말이였지만 천근같은 부담이 느껴졌다.
  사실상 연해의 분사로 영원이가 내려온것도 어쩌면 그런 황당한 립장에서의 도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것이였다.
   선희는 금옥이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였다.내성적이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인 금옥이는 종래로 선물 같은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쪽에서 고급 담배나 라이타 같은것을 몰래 쥐여주군 했다.그녀의 허리띠는 리혼과 결혼만이 풀수 있는 것이였다.그래서 책임감이 묵중하게 딸려있었다.그러나 선희는 리혼이나 결혼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듯 싶었다.금옥이 한텐 책임감이 부여된다면 선희는 부담을 첨가시켜주고 있었다.
   선희는 정확하게 닷새가 지나서 찾아왔다.금요일 오후였다.허줄한 커피점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둘은 마주 앉았다.몸이 많이 불어난 선희를 직시하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몸은 어때?"
  "괜찮아요.부담을 가지지 마세요.당신 피줄 아닐거예요."
  선희는 전에 없이 순한 모습을 보였다.
  영원이는 돈을 넣은 봉투를 그녀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직감이예요."
   영원이는 주머니에서 따로 준비해온 돈 2천원을 꺼내 선희의 매끈한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로 병원에 가서 떼버려!"
  "싫어요!"
   선희는 실신하듯 고함쳤다.주위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흘끔흘끔 건너다 보고있었다.그러건 말건 선희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과 인연을 끊더라도 애는 못 지워요.홀몸으로 마흔을 바라보는 녀인의 심정을 당신은 알수 없을거예요.고독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니예요.모성의 피로예요.알겠어요?흐흑..."
   영원이는 어깨를 세차게 떨며 우는 녀인을 망연히 바라보다 묵묵히 일어섰다.녀인은 여전히 요지부동인채 입을 열었다.'
   "다신 만나지 알을거지요?"
  "..."
  "늦게나마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마지막으로 하루만 함께 있자요.저의 마지막 소원 풀어주시죠?"
  "이러지 마! 내 마음이 약해지고 있어.우린 너무 깊이 빠진거야.헤여나오기 어렵도록 말이야.이젠 정신을 차려야 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 나갔다,그리고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달렸다.귀가에는 피뜩 들은 선희의 마지막 말이 쟁쟁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당신은 틀림 없는 사내예요.수캐 같고 마귀같은..."
   택시운전수의 재촉을 받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집앞에 와있었다.급히 료금을 물고 내리는데 마침 가게밖으로 나서는 금옥이와 마주쳤다.매양 그러하듯 금옥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인제 오세요? 전번엔 실수가 많았어요.히스테리가 왔던가봐요."
  "제가 오히려 죄송합니다.량해를 바랍니다."
  "아니,아니예요.래일 아침 또 오세요.기다릴게요."
  "아...앞으로는 그런 시간이 나질거 같지 않습니다."
   영원이는 헤식게 머리를 긁적거렸다.녀인의 얼굴에 가는 실망이 흐르는것 같더니 인츰 개여지며 고운 인사를 남기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영원이는 그 자리에 선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어두운 황혼빛때문인지 담배연기는 노오랗게 피여오르고 있었다.
   내일이면 또 연휴이다.쉽지 않게 벌어진 휴식날이다.
   영원이는 오늘 저녁에도 달갑게 "굶은 승냥이"가 되고 "학대광"이 되리라 작심하며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들어갔다.아마 이맘때면 안해는 야간작업 나갈려 준비하고 있을테지...영원이는 입으로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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