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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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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단편견 댓글:  조회:697  추천:0  2017-11-19
잡문 문단편견 장학규   문단의 편견이란 참말로 무서운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형용할 방법이 없다. 분명히 능력이 있는 사람도 그 가정출신이 나쁘거나 혹은 그 사람이 좋지 못한 전과가 있거나 또는 든든한 뒤심이 없게 되면 무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어떤 한정된 틀이나 테두리를 만들어놓고 그속에서 자작자의하는 것을 보면 나는 막 골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우리글은 도무지 볼 멋이 없다니까!”   전에 이렇게 흰소리를 치는 문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쓰는 글이 글 같은 것이 없어서 자기의 글밖에는 읽지 않는다는 호기스런 문인이였다.   “나를 따를 사람은 하나도 없어.”   이렇게 편견의 울타리를 세워놓고보니 아닌게 아니라 세계명작은 자기 혼자 써내는 것만 같은 감각인 모양이였다.   “아무렴 그렇겠지. 이거 내가 뭐 레브 똘쓰또이나 되는 것이 아니냐?”   자아감각이 훌륭하니까 이런 망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이런 과도구를 쓰고싶지 않지만) 레브 똘쓰또이 역시 “문단편견”의 피해자임을 남의 글을 보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한번은 우리의 존경하는 레브 똘쓰또이님께서 늘그막 잔꾀를 부린 적이 있었다.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레브 똘쓰또이”를 들이대니까 글이 너무 수월하게 발표되였었다. 그래서 생소한 이름을 도용할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발표해줄가? 알수 없는 일이였다.   하여 글 한편을 잘 다듬어서 투고를 했는데 꿩 구워먹은 자리랄가. 물에 던진 돌이랄가. 아무리 기다려도 종시 소식이 없었다. 제딴에는 여느 작품보다 더 잘 다루었던 걸로 믿었던 만큼 곧장 지팡이를 짚고 편집부로 어슬렁어슬렁 찾아갔다.   “아, 그 원고 말씀입니까? 미안합니다만…”   편집은 썩 달가와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래방자를 아니꼽게 흘겨보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이제 글을 써서 될가요? 로인님의 년세면 마땅히 레브 똘쓰또이만큼의 수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전에 더러 습작은 해보셨는가요?”   “네, 더러 해보았습니다만… 이를테면 ‘부활’이라든가 ‘안나 까레니나’라든가 ‘전쟁과 평화’라든가…”   하회는 더 말치 않아도 뻔한 일이다.   편견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도 이래서 생겨난 것이 아닐가. 문학작품은 다른 무엇과 달라서 그 우렬판단은 흔히 편집자의 “정세(定势)에 관계된다. 객관적인 표준이 그만큼 희미하고 몽롱한만큼 주관적인 자세에 많이 치우친다는 말이다.   레브 똘쓰또이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훌륭하다면 응당한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초학자가 쓰면 어느만큼 쓸가?)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보면 전혀 글같이 보이지 않을 때가 드물지 않다. “부활”도 그렇고 “안나 까레니나”도 그렇고 “전쟁과 평화”도 마찬가지이다. 흠집을 찾자면 많고도 많다. 일개인 사유의 산물인만큼 추호의 빈틈도 없다고 여기는 그것 자체가 편견이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명작으로 되기에 손색이 있다고 여기는 것 역시 편견이다.   이런 례는 적지 않다. 크랜데가 쓴 ‘아프리카사람”은 1967년에 출판되였으나 “창해속의 작은 구슬”로 되였다. 10년이 지나서 약삭바른 알렉스 헤이리가 깜찍하게 “뿌리”라고 제목을 고쳐서 다시 발표하였는데 우습게도 “플리처”문학상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전 미국의 열가지 거작중의 으뜸으로 되는 책이 되였다.   전에 필자는 소설 명색의 글을 써서 모 잡지에 투고하였다가 당연한 퇴고를 받았다. “당연”이라는 표현이 약간 우습강스럽긴 하지만 그 평가가 그랬다. “장면이 적고 서술이 많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봉투만 바꾸어서 그대로 다른 잡지에 보냈는데 뜻밖에도 “장면이 많고 서술이 적다. 미안하지만…”이였다.   사람이 복통이 아니 터진다면 궤변이다. 초학자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저 이 정도니깐.   후에 “흑룡강신문”에서 나의 그 소설을 발표해주었다. 1년이든지 반년이든지 세월이 흐른 뒤 선후로 상기의 두 잡지 편집을 만나는 영광이 차례졌었는데 분명히 내 작품을 취급했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그 작품을 올리춰주는것이였다.   나는 그 누구를 욕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글에선가 성명했던것처럼 내 필봉의 초점은 언제나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현상에 돌린다는 것이다. 세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중국조선족도 역시 마찬가지로 문단편견이란 근치가 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좀 다르다면 우리 문단이 약간 지나칠 지경으로 과열되고 팽창되였을뿐이라는 것이다.   재래로 우리 잡지들은 기성작가들의 놀음판이였다. “흑룡강신문”처럼 초학자들을 포섭할 능력과 흉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로신이나 모순 같은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질이다. 문학토양이 경직되고 퇴화했는데 그런 기대를 건다는 자체부터 잘못되여도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 아닐가.   그리고 곰곰히 따져보면 해결책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 면목이 가려울 지경이니까. 일부 편집들이 서로 내 글을 내주지 않으면 네 글도 아니 내주는 판국이니깐. 그래서 죽어나는 것이 초학자들뿐이다. 보복당할 념려도 없고 글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잡지의 품위가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세상 좋게 만만한 개살구들이다. 지면을 약간만 드텨주어도 만족하고 상이 차례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고 작가협회 같은데 들어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재야문인”들은 말 그대로 불쌍한 족속들이다. 편집들은 글 둬편만 긁적거리면 곧바로 시인, 소설가, 평론가이지만 야문인(野文人)들이야 어찌 그것을 바랄 수 있으랴. 글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의 은혜 같은데 분에 넘친 욕심을랑 아예 걷어치워야지.   나의 한 문우도 이렇게 끝장나버렸다. 삼십미만에 2백여 수의 시를 써낸 천재적인 “화랑”이였지만 작가협회 회원은 물론 시인 소리 한번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곧바로 타락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가령 그에게 응당한 대접이 차례졌더라면 오늘의 참상이 눈앞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문학사를 정리하고 기록해야 할 소위 전문가들마저 학자의 량심과 도덕을 내팽개치고 이런 문단의 못난 폐단에 편승하여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친소 관계에 따라 마구 락서하는 일이다. 대강 한자리 하거나 글을 내줄 사람이거나 얼굴이 가려운 사람이면 그가 글 몇개 썼든, 어떤 성과를 냈든지를 막론하고 무작정 유명작가 타이틀을 걸어주고 대표주자란 뱃지를 달아준다.     모름지기 사설이 길어진듯싶다. 소정의 3천자가 넘은 것 같다. 아무렴 시장경제시기에 맞다들었으니 문단편견도 따라서 없어지겠지. 누구를, 무엇을 망치자고 그럴수가 있을라구.
9    웅녀를 슬퍼한다 댓글:  조회:928  추천:1  2017-10-03
웅녀를 슬퍼한다     나는 술을 많이 즐기는 편이어서 일반적으로 술을 저장해두는 법이 거의 없다. 일단 어찌어찌하다가 그놈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친구 하나쯤 더부살이로 불러들여 깡치를 내고야 마는 성질이니깐,그래서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종래로 찬장에서 술병을 끄집어 내며 "이 술 좀 맛보소." 따위로 으시대본 적이 없고 언제나 손님의 주머니를 넘보는 듯한 "술 사오라."는 재촉이 불쌍한 아내를 괴롭히기 일쑤이다.      그런데 일전 이사를 하다가 고방 한구석에서 난데 없는 술 한병을 발견하였다.그것도 다섯근 들이 대짜배기 병이었다. 병에 인삼, 오미자 명색들이 잔뜩 불궈져 있는  것을 보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놓은 것이 틀림 없는데 언제 그랬는지는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아무튼 술이 생겨서 좋았다.땅콩을 공짜로 주어 먹는 심정이었다.꿀 본 벙어리처럼 헤벌써해진 나를 발견하고 요즘 들어 잔소리가 갑자기 늘어난 아내가 누룽지 긁는 소리로 짹짹 시까스르는 것이었다.     "왜 술 보지 못했어요?벌써 1년도 넘은 술인데..."   "그랬던가?"   "당신이 직접 불궜지 않구 뭐예요.뭐,곰 사양장 하는 기업가가 웅담분을 주더라며...하긴 잘해요.우리는 곰의 자손이라고 입버릇처럼 중얼대더니..."     아내의 빈정이 갑문이 되었던지 그날 나는 술 한모금도 넘길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의 식인종이면 또 모를가. 괜히 할머니의 담낭을 먹는 듯한 꺼름직한 환각이 얼른거려서 도무지 마음을 가라 앉힐 수가 없었다.      문학을 즐기고 그 중에서도 평론을 편애하는 까닭에 나는 남달리 문학동태에 주의를 돌린다. 아니,민감하다는 편이 나을 것이다.그래서 우리 문단에 남영전이라는 토템시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시를 잘 모르면서도 그 분의 토템시만은 꽤 읽어보았다. 물론 여러 토템가운데서도 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었다.단군신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곰은 틀림없는 우리의 토템이었던 것이다.       하다면 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숭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단순히 문자기록만 본다면 물론 단군할아버지때부터였을 것이다. 곰이 바로 그 어머니였으니깐.       재미있는 얘기가 되겠지만 조선족 노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젊었을 때 모두가 한두번쯤은 범을 때려 잡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 점은 어디까지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범은 고작 백날을 참지 못해서 우리의 선조가 되지 못했으니깐 맞아죽어도 쌍통이지.동정해줄 사람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렇게도 인내성이 없고 우쭐거리니 생존력도 미약할 것이 아닌가?      하다면 우리의 선조가 되어진 곰은 대접 받고 행복했을까? 그런것도 아닌 것 같다. 곰쓸개가 건강에 이롭다고 말 그대로 닥치는대로 잡는 것이 다름아닌 바로 우리 민족이다. 범을 잡는 똑같은 방식으로 곰을 대처하는 우리 민족이다. 웅담은 간염에 좋고 무엇은 정력에 좋고 아무튼 우리 눈에는 곰의 모든 것이 보배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돈벌이를 위해 곰사양에 궐기한 우리 민족이 엄청나게 많다.뿐만 아니라 신문,방송,잡지 할 것 없이 웅담분 광고가 비지 않는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에 한국의 골목마다에 조선족 곰열장사군이 나타나 일대 풍경을 장식했다고 한다. 마치도 중국의 곰은 조선족이 몽땅 잡았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하긴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파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누구누구라 할 것 없이 옹근 민족이 일떠나 곰 토벌을 하는 셈이 아니고 뭔가?!      토템이란 하나의 문화이다.   그것의 산생,발전,발달의 과정에 원인이 있고 계기가 있고 지속될 수 있는 도리가 있기 마련이다. 토템에 대한 숭배도 각도를 바꾸어보면 민족성의 구심력과 지구력을 대변한다.그럴진대 토템은 우리의 둘레속에 있고 마음속에 있고 머리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을 잡다 못해  "곰처럼 미련하다."는 비유구까지 애써 만들어내어 자기를 신고스레 세상 보게 해준 선조를 모욕하는 민족은 그래 대체 무슨 민족이란 말인가?     지금도 만족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는 신적인 존재이고 세상의 모든 사물을 초월한 마음속의 기둥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만족마을에서 자랐던 나는 만족들이 개가 늙어 죽을 때까지 정성들여 키우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죽은 후에는 또 깨끗한 땅을 골라 묻는 것이 법처럼 되어있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처럼 남들과 비교해보면 우리에겐 모자라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뿌리가 없고 철학이 없을 뿐만 아니라 까놓고 말해 토템마저도 없는 것이다. '단군신화"는 어떤 사람들이 그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닌가고 의심할 지경이다.      하기에 우리는 웅녀를 슬퍼할 이유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의 석달 열흘간의 고행을 동정하고 자식을 갖고 싶었던 그녀의 애끓던 마음을 가엾이 여기고 더구나 그녀의 원 족속들이 오늘날 당하는 고통에 연민을 표할 수밖에 없다.    하다면 구경 누가 웅녀의 응어리진 마음에 만족할만한 답안을 적어줄 수 있을가???
8    황하의 물은 막을 수 없다 댓글:  조회:396  추천:0  2017-10-03
황하의 물은 막을 수 없다     요즘 날씨가 좀 서늘해진다. 저 앞동네 강바닥이 거의 말라갈 무렵 비방울이 드문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 오지 않으면 강에 물이 없는 요즘 세상이 하도 수상하다.   그래도 다른 고장에서는 꽤나 많은 비가 내린 모양이다. 특히 황하 류역이 물난리가 더러 난듯 싶다. 같은 하늘아래서도 색다른 세상이 펼쳐치는 것을 보면 요상하기는 하다.   하기사 황하의 범람은 하루이틀 사이의 일도 아니니까 대개 리해할만 하다.   저 머얼리 순임금시절부터 황하는 굴레벗은 망아지처럼 날뛰였다고 한다. 순임금이 동이출신이라고 적혀있다고 해서 우리민족이라고 아득바득 뻐기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던 총명이 과인했던 분인 건 틀림없었는 모양이다. 요임금의 선양을 받아 황위를 이어받은 순임금은 황하를 다스리는 사람한테 자리를 물려주기로 했었다.    그래서 나선 사람이 곤, 곤은 갈래 없이 마구 흐르는 황하를 막아 한곳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물난리를 막으려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목이 날아났다.   그 아들 우가 릴레이를 이어받고 황하를 둘러보니 기가 찰 일이였다. 얼기 설기 뻗어나간 강줄기를 어찌 막을 수 있을손가. 곤이 우둔한 짓거리를 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강바닥을 준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대성공이였다. 또 결국 그때문에 순의 양도를 받아 보위에 오르게 된다.   물론 이 친구부터 자기 자식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는 세습제가 시작되여 오늘날 맑은 하늘아래에서도 세습을 일삼는 국가들이 남아있기는 하다.   여하튼 세상 대세는 소통해야지 막을 수는 없다는 도리를 수천년전 우임금이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래도 인간은 날벌레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한번 껌벅 죽어봤으면 교훈을 살려서 다시 오유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꼭 자기만 잘난 것처럼, 남은 모르는 것처럼 눈 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독단과 독선과 독행을 일삼는 무리들이 아직 있으니 백성을 못난 이로 여기고 마음대로 우롱하는 이런 행실들은 마침내는 그게 독초가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   백성의 눈과 귀는 막을 수 없다. 마치도 황하의 흐름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처럼! 감추고 덮고 숨기고 치운다고 있는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백성을 시녀처럼 여기는 권력은 언제가는 터져나가는 황하의 보에 밀려 력사 뒤안골로 처박혀질 거란 걸 알아야 한다. 
7    못 말리는 유전인자 댓글:  조회:1556  추천:1  2014-09-16
못 말리는 유전인자 장학규   조깅에 재미를 붙인지도 꽤나 된다. 젊었을때는 새벽까지 책을 보고 늦잠 자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열시만 되면 눈꺼풀이 저절로 내리덮여서 도무지 이겨낼수가 없다. 대신 새벽 4시가 좀 넘으면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을수가 없다. 아무리 눈을 감고 숨을 죽여도 잠이라는 물건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어슬렁 기어 일어나 식구들이 덩달아 깨날가봐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늙지도 않은 몸이 지금 난시부르스를 하고 있는셈이다. 고작 조깅을 시작하게 된 동기설명이 좀 길어졌다. 그런데 이건 좀 심각한 문제인데 매일 조깅하러 나갈때마다 눈쌀이 찌프려지는 일이 하나 있다. 간밤까지 멀쩡하던 아파트 앞의 쓰레기통이 아침만 되면 널부러져서 '내장'을 산지사방에 헤쳐버리고있는것이다. 처음에는 동물들의 짓거리일 것이라 의례 짐작했었다. 요즘 뉴스에서 메돼지 수가 불어서 피해가 막심하다는 소식을 가끔 들어오는 중이였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내에 벼라별 형형색색의 강아지를 키우는 업주들이 많았다. 솔직히 그 메돼지류나 강아지류들의 짓거리일지 누가 안단말인가? 그러다가 오늘 아침 그 '동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아주 멀쩡하게 차려입은 쉰나마 됨직한 아저씨였다. 쓰레기 통을 뒤져서 병사리나 종이따위를 챙기고 있었는데 진짜 메돼지처럼 쓰레기통에 사람 머리가 다 들어가다싶이 하고있었다. 일전 반도도시보에 희한한 기사가 떠서 나는 그걸 보고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했었다. 청도 이촌의 어느 강 하나가 늦가을 비로 하여 불어서 거기에 빠져죽은 사람 하나가 있다는 기사였다. 좀 랭혈적인 말일지도 모르지만 별로 관심이 가는 소식은 아닌상 싶다. 강물이 불어서 사람이 빠져죽는 일은 어느 동네서나 예사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불감증에 절어있는 사회에서 산다. 매일 이 동네 저 마을에서 사건사고가 다발적으로 터져 인명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가는것을 목격하고 듣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마비되어 무감각적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솔직히 좀 부아통이 돋아나는 그런 사건이었다. 발단은 물이 불어나면서 강으로 여러가지 륙지의 물건들이 떠내려오는것이었다. 사고를 친 사람은 그 떠내려오는 물건들중에 쓸만한 것이 보여서 그걸 주으려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밀려간것이다. 아주 허황한 희생임에 틀림없다. 그 기사를 쓴 기자라는 인간도 참 재미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생방송을 하고있었는데 자기가 취재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러 사람이 강물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널판자나 플라스틱박스 같은 이런 저런 "보물"을 건지고 있었다고 덧붙인것이다. 보물? 세상에! 거리나 강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것을 '보물'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기자가 있다니 같은 기자로서 그저 얼굴이 뜨끔해난다. 하기사 내가 필요하지 않는걸 남이 유용하게 쓸수 있다면 그게 그 남한테는 보물일수가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주인도 쓸려고 챙겨두었던것이 폭우에 쓸려 떠내려왔을지도 모를 남의 물건을 공짜로 챙기려고 목숨까지 내거는 그 행위는 어쨌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할수는 없겠다. 행여 주어서 원주인한테 돌려주려고 했다면 또 모를까 기자의 취재에서 보다싶이 그런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니 아무튼 이래저래 정당하지도 깨끗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조소거리행위라고 할수밖에 없다. 산동사람들의 위생관념은 말하지 않아도 세상사람들이 다 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밥 먹는 자리에서도 꺼리낌없이 휭하고 코를 풀고 그 손을 씻지도 않고 만두를 쥐어 된장에 찍어먹는 일은 다반사이다. 남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이 자기 몸만 빠져나갈수 있다면 아파트 계단이고 입구고 아무렇게나 쓰레기들과 물건들을 쌓아둔다. 물론 공용장소나 공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온통 쓰레기 천지다. 내가 살고 있는 백사하 강변만 해도 그렇다. 정부에서 숱한 돈을 들여 강변을 공원처럼 꾸며놓았다. 그런데 매일 수백명의 낚시군들이 모여들면서 강변에는 별의별 오가잡탕들이 버려져서 쓰레기장을 방불케한다. 낚시군들이 낚시를 하면서 낚시밥 봉지나 이것저것 군입질하면서 생겨나는 쓰레기들을 바로 옆에 그대로 버리기 때문이다. 이틑날 그 자리에 와서 또 낚시질 할것이 분명한데도 오늘만 편하면 만사대길이라는 인간족속들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미국 인디안인들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글로벌시대를 맞이했는데도 인디언들이 계속 원시생활을 고집하니까 미국 정부에서 한번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토굴 같은 것들을 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층아파트를 지어준 것이다. 몇달이 지나서 이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 어떻게 하냐고 찾아가보니 아파트엔 돼지나 닭 같은 동물들을 키우고 자기들은 숲속에다 초막집을 다시 지어놓고 지내더란다. 이것은 어느 학자의 글에 게재된 내용이다. 결코 타민족이나 타국민을 비하하려는 생각은 없다. 내가 말하고저 하는것은 대를 이어오는 유전인자는 그래서 말릴수 없다는것이다. 어렸을 적에 한족들이 애 돍잔치를 하면 우리가 애에게 의식적으로 연필이나 책을 쥐도록 유인하는것처럼 한족들은 쥐꼬리를 쥐도록 애를 닥달하는것을 많이 보아왔었다. 쥐처럼 뭐나 집으로 끌어들이라는 고심이였다. 그런 문화속에서 인성이 자사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법이 있는가?! 그런게 몸에 배겨지면 인디언들처럼 아파트가 초막집보다 불편해지게 되는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사회는 발전한다. 거기에 맞추어 사람도 적응하면서 탈피를 거듭해야 하는것이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것이 나쁜 문화라면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조상이 초막집에서 딩굴었다고 그 후손들이 살기 편한 아파트를 거부한다면 인류는 퇴화되고 말것이다. 요즘 청도 민족사회도 많이 변모되여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모진 가난에 찌들렸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정말 억세게 일하고 벌었었다. 그런데 이제 주머니에 몇푼 담겨지기 시작하니까 점차 고향에서의 나쁜 버릇들이 되살아나고있는것 같다. 술도박이 머리를 쳐들고 허풍떨기가 다시 성행하고있다. 니 잘났니 내 못났니 다투기가 또 시작되고 너나없이 얼굴을 빳빳이 쳐들고 안하무인으로 거리를 쓸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역시나 유전인자란것은 못말리는구나 하는 막무가내와 더불어 더 늦기전에 이제라도 고향을 어렵게 떠났던 초심을 되새기며 각자가 자신의 유전인자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6    예스 위 캔 댓글:  조회:527  추천:1  2014-09-01
예스 위 캔 장학규       지난 1월 20일 버락 오바마가 미국 제4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세계적인 인기를 몰아온 오바마때문에 무드가 억망인 세계가 요즘 그나마 너무 고루하고 심심한 편은 아니라고 형용할 수 있을 거 같다. 무엇무엇해도 미국은 참으로 위대한 나라란 생각을 감출 수 없다. 탄복하다 못해 막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숭양이라 해도 무방하고 미외라 해도 달갑다. 아버지가 케냐 출신, 그러니까 오바마는 케냐 이민 2세인 것이다. 유색인종인데다가 이민 2세인 오바마가 한 나라의, 그것도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다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미국 문화의 흉금과 도량에 찬사를 아낄 수 없다. 물론 오바마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간과할 수 없다. 그의 매력은 분열과 대립의 분계선에 선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 어떤 세력이나 관념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재의 미국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시급하고 거침없이 무너지고 있는 경기를 부추겨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특이하고 신비하고 생신한 오바마란 캐릭터가 꼭 필요한 미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에 각인되는 오바마의 파워는 아무래도 그의 뛰어난 연설재주가 아닐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오바마가 선거에서 이기고 당선 연설을 하던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오바마가 얼마나 선동성이 강한 연설가인가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편의 연설을 원고지도 없이 거침없이 구사하는 것을 보고 괜히 폼을 잡으며 느릿느릿 원고지를 읽어내려가는 지도자들의 모습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의 경우라면 가히 메가톤급이 아닐 수 없다. "예스 위 캔!" 그 연설에서 오바마는 자기의 선거구호이기도 한 이 말을 여러번 곱씹었었다. 수만의 현장 청중들이 합창하기도 한 이 말은 우리 말로 직역하면 아마 " 그렇다. 우리는 된다!" 일 것이고 문맥을 맞추어 번역하면 " 그래, 하면 된다!"가 아닐가 싶다. 더 알맞은 번역은 나름대로 스스로 하는 것으로 하고 우선 "예스 워 킹!"의 메시지를 파보기로 하자. 글로벌 금융위기로 하여 세상은 억망진창이 되고 있다. 사람마다 전전긍긍하고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이럴 때 "우리는 된다." 또는 "하면 된다." 는 구호는 정신력을 분발시키는 힘을 발휘할 것이 틀림 없다. 솔직히 우리는 여직껏 피동적인 삶의 모식에 젖어있었다. 어떤 장애물에 부딪치거나 의도적인 방해에 직면하거나 또는 무슨 위협에 마주서면 곧바로 단념하고 포기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인종차별경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미국에서 오직 "하면 된다."는 집념으로 모든 불평, 불공, 불신과 떳떳이 마주하여 투쟁하고 성공한 오바마의 정신은 우리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예스 위 캔!" 우리도 이런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대가나 희생이 없이 저절로 성사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올 한해는 오바마와 더불어 이 구호를 웨치고 실천해보자. "예스 위 캔!"   
5    언제까지 떠올아야 할까 댓글:  조회:527  추천:0  2014-09-01
언제까지 떠돌아야 할까 장학규 일전 야채시장에 갔다가 조선족장사군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쪽 아주머니의 남편이 방문취업 추점에 걸려 한국에 가게 되어 장사를 거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시정에서 시도때도 없이 듣게 되는 얘기여서 별로 시답지 않았으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저쪽 아주머니의 화들 반응이 더 흥미 있었던 것이다. "그 집은 좋겠네!" 좋겠네? 시골서 농사를 짓는 집에는 정말로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해종일 하는 일 없이 집구석에 들어박혀 요행수로 한국행을 바라는 백수들에겐 진짜로 흥부박이 굴러온 희사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근데 이건 다른 상황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태를 묻고 나서 자란 정든 고향을 떠나 수천리 이역 타향에 와서 어렵사리 창업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이다. 언론의 조사에 의하면 청도의 조선족 식품장사는 불경기 상황에서도 그나마 장사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년씩 꾸준히 장사를 해온 집들은 거의가 아파트를 구입했고 차를 장만했다. 금방 자리를 튼 집들도 어려움보다는 창창한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스타스선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안한 한국취업을 선망하다니 억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묻지마 한국행은 우리 몸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떠돌이의식의 작간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현재 한국의 경기도 꽁꽁 얼어붙는 상황이다. 더우기 한화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세로 인하여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취업자들도 소득이 급감하여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다.경제 불황에 배기지 못해 매일 수백의 조선족 귀국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또 매일 수백 수천의 출국행렬이 줄서는 이런 풍경은 중국 조선족을 내놓고 세계 어디서도, 어느 민족에게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옛말에 자주 움직이면 먼지도 앉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생계 마련이 약속된 터전에서 지속발전이 가능한 포인트를 벗어나 굴곡적인 길을 걸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먼지마저 회피하는 떠돌이 삶을 영위할 것인가?  
4    위기냐 쓰나미냐 댓글:  조회:527  추천:1  2014-09-01
위기냐 쓰나미냐 장학규       구정연휴기간 홍콩에 다녀온 한 지인이 홍콩신문 몇장을 필자한테 갖다주었다. 신문을 꾸리는 사람이라고 가끔 좋은 자료들을 챙겨다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그 신문들을 뒤적이다가 퍼그나 생동하고 형상적인 단어조합을 발견하고 한동안 흥분되었었다. "금융쓰나미!" 역시나 세계 금융중심으로서의 홍콩인들의 사유가 민첩하고 관점이 독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의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를 두고 우리는 지금껏 "금융위기"란 말로 지칭하고 대처했던 것이다. 아니, 이름은 대수 지어놓고 사태 그 자체만을 주목해온 거 같다. 이렇게 지적하고보니 "위기"와 "쓰나미"는 표현상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쓰나미"의 사전적 해석은 "지진성 해일로 조석파라고도 하며 주로 해저 지진에 의해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해일파"라고 한다. 그러니까 "쓰나미"는 "갑작스러움"이 돌출되고 "순식간"으로 규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한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쓰나미 해일로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했던 사건이 아닐가 싶다. 9급 지진으로 인해 발생했던 그번 쓰나미는 눈깜짝할 사이에 20여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었다. 사람들은 쓰나미의 위력에 놀랐고 깊은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반면에 "위기"는 강도가 상대적으로 좀 약한 느낌이다. "위험한 고비나 시기"라는 뜻풀이만 보아도 마음에 그늘은 지어도 심장이 그대로 멈춰질거 같은 상황은 아니다. 대신 꽤나 지루한 시간이 필요하고 상처도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대표적 례로 역시 미국으로 인해 발생했던 지난 세기 30년에 발생했던 경제공황을 들 수 있다. 그 전의 잠복기로부터 위기가 해소된 때까지 지꿋게 10년을 이끌어간 그번 위기에 미국 전체 은행수의 3분의 1 되는 9천 여 개 은행이 파산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이제 두 사건을 되새겨보니 홍콩인들의 판단에 손을 들어야 할 거 같다. "쓰나미"는 순간적인 충격이 강한만큼 고통도 크지만 회복 역시 빠르다. "위기"는 잉태, 산고, 회복이라는 "타임머신"이 작동하기에 작은 상처가 긴 아픔을 몰아온다. 비유해 말하면 "쓰나미"는 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거라면 "위기"는 암이나 당뇨에 걸린 형국이라고나 할가. 그러니까 이 글은 현상 그 자체로 말하면 "쓰나미"가 더 가까울 수가 있다는 말이다. 경제는 잘 모르지만 지구상 누구나 느끼는 "추위"를 체감하기는 역시 같은 입장이고 저 앞에서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떠오르는 징조를 피부로 느끼기는 너나없이 마찬가지이다. 일전에 "중국경제 바닥을 지났다."란 기사가 떴다. "쓰나미"가 지났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3    선택이 인생 그라프를 좌우한다 댓글:  조회:556  추천:0  2014-09-01
선택이 인생 그라프를 좌우한다 장학규   주식에 재미를 붙힌지도 여러해된다. 주식을 놀면서 인생도 주식처럼 변화무쌍하고 한치의 앞마저 바라보지 못할만큼 도박성이 강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왔다. 이미 개장된 인생은 마냥 상한가를 기록하며 상승랠리를 지속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언제까지 끝없는 하한가에 주저앉아 뭉개지도 않는다. 인생 그라프 역시 등락을 거듭할수밖에 없다. 널뛰기 장세에서 상승세를 잡으면서 여유로움을 즐기는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강보합세 정도로 마감하는것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잡주나 저가주만 피해도 역시 아름다운 인생이 될줄로 믿는다. 실적주를 거머쥐었다 해도 강장세가 아니면 추락을 피면할수 없듯이 가끔은 테마주나 주도주가 상위권에 랭킹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때면 손바꿈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도 따져보면 그렇다. 솔직히 인간은 필경 성인이 아니기에 살아가면서 주식투자자처럼 시행착오를 자주 번복할수밖에 없다. 주먹을 불끈 쥐고 허겁지겁 정신 없이 달리다가 잠간 스톱하고 돌아보면 인생은 온통 후회와 허무, 그리고 상처로 얼룩져 있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좌클릭하지 말고 직진했을걸, 우클릭보다는 잠시 후퇴가 좋았을걸 이런 아쉬움은 고비마다 가시처럼 박혀있다. 이런 마음의 가시는 육체에 박혀진 가시처럼 뽑아서 바로 치유되는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하면서 우리의 육신을 좀먹고 아프게 할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매 걸음마다 선택과 판단, 결정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기분내키는대로 살아가는 인생은 두더지 이상으로 해괴하지 않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책임지지 않는 노릇인 동시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 단초일수도 있다. 그라프는 미리 그려지지 않는다. 어떤 마음 자세를 가졌냐에 따라서 그라프는 좋게 또는 나쁘게 그려지게 된다.  
2    해피 소의 해 댓글:  조회:548  추천:1  2014-09-01
해피 소의 해 장학규     기축년이 서서히 밝아왔다. 소년시절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대했던 새해는 아니었던거 같다. 어차피  흐르는 물처럼 줄창 멈춤이 없이 기계적으로 연륜을 그리며 다가오는 새해가 아닐까 싶었다.. 근데 다소 당황했던 점은 예상밖에 새해의 태양은 남달리 밝고 생기가 있었던 것이다.빛바랜 달력같이 흐리터분하고 후줄근할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새해의 하늘엔 꿈의 낭만이 질게 깔린 희망찬 햇살이  펼쳐진 것이다. 하긴 관성적인 사유로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 일이다. 그만큼 지나간 한해는 정말로 돌이키기도 짜증이 나는 다사다난한 한해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대강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것들만 골라도 세상이 그럭저럭 귀찮아질만 하다. 남방의 눈피해가 탄광 사고, 열차탈선사건으로 이어졌고, 사천지진참사가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올림픽성화봉송트러불이 생겨나고, 멜라민사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난장판이 된 경제를 끝모르는 시궁창으로 밀어넣었다. 정말이지 어느 하나도 머리 동이지 않고는 입밖에 내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것들이었다. 대사건은 어필하고, 청도의 한겨레 사회도 솔직히 거의 실망의 변두리로  접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이다싶이 파산 소식을 접하고 야반도주를 곱씹어야 하는 현실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새삼스럽게 느꼈었다. 특히 한동안 회자되었던, 홍콩동로의 어느 한식점 사장의 잠적은 가히 메가톤급이었으나 그걸 글로 다루기 어려웠던 속사정은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민족사회의 기반을 흔들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는 어디까지나 당위성을 가진다고 변명삼아 말하고 싶다. 내남에 결코 도움이 안되는 그런 엽기사건을 활자화하지 않았던건 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가슴은 아프나 후회는 되지 않는다.그만큼 이제 겨우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민족사회가 더없이, 한없이 소중하다는 말이겠다. 더우기 사람마다 불황, 위기를 운운하는 이런 아수라장에서 작은 침질이 전반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소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해 첫날, 가장 많이 받은 축복 메시지가 "해피 소의 해"이다. 해피 뉴이얼의 "뉴"가 한자로 "소"의 발음과 동일하고 마침 금년은 또 소해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기특하고 기발한 발상이어서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정말이지 우리에겐 소의 우직과 끈기가 있어야겠다고 일침을 가하게 된다. 일이 안된다고 쩍하면 뺑소니치는 건 좋은 습관은 절대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소다운 침묵과 감내가 필요할 거라고 충고하고 싶다. 별로 좋은 일도 아닌데 막 떠들고 다니는 것도 꼴불견이 틀림없을 거 같다. 따라서 소의 흉금과 여유를 따라 배워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떳떳이 맞서 나가는 마인드는 영원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일 것이다. 새해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털어버리고 환하고 정열적이며 진취적인 이야기를 골라서 엮도록 함께 노력하자. 해피 소의 해!    
1    험한 정말로 그럴까? 댓글:  조회:587  추천:1  2014-09-01
 혐한 정말로 그럴까? 장학규      일전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어느 언론간담회에 참석했다가 남다른 주문을 받게 되었다. 요즘 중국내의 혐한 기류가 심상찮으니 언론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건의였다. 하긴 메뉴를 내놓은 상대방이나 그 주문을 받은 필자나 대개 입장은 비슷할 거 같다. 모두가 중한 양국의 친선을 도모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현시점에서 어찌보면 긴박한 사안으로 떠오른 이슈인듯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인데 3류 인터넷 사이트의 토론방이나 자유게시판에 들어가보면 정말 가관이라고 한다. 중국이나 한국에 관여되는 화제에는 악플내지 왜곡이 빌 새가 없다고 한다. 서로의 단점이나 열세만 끄집어내어 요리하기에 여념이 없고, 또는 전혀 없는 사실들을 날조하여 때리고 비난하며 말그대로 피 보이지 않는 전쟁에 혈안이 되어 있고 한다. 내가 유일하게 다니는 이곳 자유게이판에서도 매일 그런 싸움을 하고 있지 않는가? 단순히 사이버 공간에만 파묻혀 있으면 정말 일이 나도 큰 일이 난게 분명해 보인다. 이대로 계속 나가면 양국간 수천년간 이루어놓은 친선의 뉴대는 끊어지고 곧장 전쟁발발의 위험수위에까지 이른 것 같다. 정말로 그럴까? 솔직히 실생활에서도 이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입장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고, 주변 중국인들의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아 좀 있는 거 같다. 저 아래 글에서 누군가 말했다싶이, 우선 한국인들이 돈 냄새를 너무 피우며 다닌다는 뉴앙스가 강하다. 시장경제체제에 들어선지 어언 30년이 되는 중국인들에게 쌀밥을 때마다 먹느냐는 질문 자체가 어이 없다는 태도다. 그것보다는 돈 몇잎을 날리면서 여린 아가씨들을 농낙하고 거래처 사람들을 여지없이 낮잡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여기에 수년전에 화제를 모았던 사기건들도 한몫 단단히 한것이 틀림없다. 필자가 직접 목격한 일이기도 한데 어느 한국사장은 중국 현지공장을 일임시킨 한족 공장장을 앞에 놓고 "너희 중국인들은 왜 모두 돌대가리냐?!"고 호통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일뿐이다. 실제로 중국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혐한 분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 미다어에서 한때 플레이되었던 중국 TV프로에서의 한국드라마 소실건을 들 수 있다. 지금도 채널을 돌려보면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한국드라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주류 사이트에서 한국드라마 방영을 촉구하는 네티즌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국 가전제품은 여전히 인기 그 자체이고 한국 의류들은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바이다. 지금은 옷차림새만 보고는 그 사람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도무지 판별할 수 없는 추세이다. 혐한이란 말에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 매체에서 혐한 언론 플레이를 지나치게 한 것이 인터넷상의 싸움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면 너무 과할까? 이젠 좀 적극적인 방향으로 사유를 돌려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언론이 그 앞장에 서야 할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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