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편견이란 참말로 무서운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형용할 방법이 없다. 분명히 능력이 있는 사람도 그 가정출신이 나쁘거나 혹은 그 사람이 좋지 못한 전과가 있거나 또는 든든한 뒤심이 없게 되면 무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어떤 한정된 틀이나 테두리를 만들어놓고 그속에서 자작자의하는 것을 보면 나는 막 골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우리글은 도무지 볼 멋이 없다니까!”
전에 이렇게 흰소리를 치는 문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쓰는 글이 글 같은 것이 없어서 자기의 글밖에는 읽지 않는다는 호기스런 문인이였다.
“나를 따를 사람은 하나도 없어.”
이렇게 편견의 울타리를 세워놓고보니 아닌게 아니라 세계명작은 자기 혼자 써내는 것만 같은 감각인 모양이였다.
“아무렴 그렇겠지. 이거 내가 뭐 레브 똘쓰또이나 되는 것이 아니냐?”
자아감각이 훌륭하니까 이런 망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이런 과도구를 쓰고싶지 않지만) 레브 똘쓰또이 역시 “문단편견”의 피해자임을 남의 글을 보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한번은 우리의 존경하는 레브 똘쓰또이님께서 늘그막 잔꾀를 부린 적이 있었다.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레브 똘쓰또이”를 들이대니까 글이 너무 수월하게 발표되였었다. 그래서 생소한 이름을 도용할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발표해줄가? 알수 없는 일이였다.
하여 글 한편을 잘 다듬어서 투고를 했는데 꿩 구워먹은 자리랄가. 물에 던진 돌이랄가. 아무리 기다려도 종시 소식이 없었다. 제딴에는 여느 작품보다 더 잘 다루었던 걸로 믿었던 만큼 곧장 지팡이를 짚고 편집부로 어슬렁어슬렁 찾아갔다.
“아, 그 원고 말씀입니까? 미안합니다만…”
편집은 썩 달가와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래방자를 아니꼽게 흘겨보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이제 글을 써서 될가요? 로인님의 년세면 마땅히 레브 똘쓰또이만큼의 수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전에 더러 습작은 해보셨는가요?”
“네, 더러 해보았습니다만… 이를테면 ‘부활’이라든가 ‘안나 까레니나’라든가 ‘전쟁과 평화’라든가…”
하회는 더 말치 않아도 뻔한 일이다.
편견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도 이래서 생겨난 것이 아닐가. 문학작품은 다른 무엇과 달라서 그 우렬판단은 흔히 편집자의 “정세(定势)에 관계된다. 객관적인 표준이 그만큼 희미하고 몽롱한만큼 주관적인 자세에 많이 치우친다는 말이다.
레브 똘쓰또이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훌륭하다면 응당한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초학자가 쓰면 어느만큼 쓸가?)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보면 전혀 글같이 보이지 않을 때가 드물지 않다. “부활”도 그렇고 “안나 까레니나”도 그렇고 “전쟁과 평화”도 마찬가지이다. 흠집을 찾자면 많고도 많다. 일개인 사유의 산물인만큼 추호의 빈틈도 없다고 여기는 그것 자체가 편견이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명작으로 되기에 손색이 있다고 여기는 것 역시 편견이다.
이런 례는 적지 않다. 크랜데가 쓴 ‘아프리카사람”은 1967년에 출판되였으나 “창해속의 작은 구슬”로 되였다. 10년이 지나서 약삭바른 알렉스 헤이리가 깜찍하게 “뿌리”라고 제목을 고쳐서 다시 발표하였는데 우습게도 “플리처”문학상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전 미국의 열가지 거작중의 으뜸으로 되는 책이 되였다.
전에 필자는 소설 명색의 글을 써서 모 잡지에 투고하였다가 당연한 퇴고를 받았다. “당연”이라는 표현이 약간 우습강스럽긴 하지만 그 평가가 그랬다.
“장면이 적고 서술이 많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봉투만 바꾸어서 그대로 다른 잡지에 보냈는데 뜻밖에도 “장면이 많고 서술이 적다. 미안하지만…”이였다.
사람이 복통이 아니 터진다면 궤변이다. 초학자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저 이 정도니깐.
후에 “흑룡강신문”에서 나의 그 소설을 발표해주었다. 1년이든지 반년이든지 세월이 흐른 뒤 선후로 상기의 두 잡지 편집을 만나는 영광이 차례졌었는데 분명히 내 작품을 취급했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그 작품을 올리춰주는것이였다.
나는 그 누구를 욕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글에선가 성명했던것처럼 내 필봉의 초점은 언제나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현상에 돌린다는 것이다. 세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중국조선족도 역시 마찬가지로 문단편견이란 근치가 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좀 다르다면 우리 문단이 약간 지나칠 지경으로 과열되고 팽창되였을뿐이라는 것이다.
재래로 우리 잡지들은 기성작가들의 놀음판이였다. “흑룡강신문”처럼 초학자들을 포섭할 능력과 흉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로신이나 모순 같은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질이다. 문학토양이 경직되고 퇴화했는데 그런 기대를 건다는 자체부터 잘못되여도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 아닐가.
그리고 곰곰히 따져보면 해결책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 면목이 가려울 지경이니까. 일부 편집들이 서로 내 글을 내주지 않으면 네 글도 아니 내주는 판국이니깐. 그래서 죽어나는 것이 초학자들뿐이다. 보복당할 념려도 없고 글을 보내주지 않는다고 잡지의 품위가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세상 좋게 만만한 개살구들이다. 지면을 약간만 드텨주어도 만족하고 상이 차례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고 작가협회 같은데 들어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재야문인”들은 말 그대로 불쌍한 족속들이다. 편집들은 글 둬편만 긁적거리면 곧바로 시인, 소설가, 평론가이지만 야문인(野文人)들이야 어찌 그것을 바랄 수 있으랴. 글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의 은혜 같은데 분에 넘친 욕심을랑 아예 걷어치워야지.
나의 한 문우도 이렇게 끝장나버렸다. 삼십미만에 2백여 수의 시를 써낸 천재적인 “화랑”이였지만 작가협회 회원은 물론 시인 소리 한번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곧바로 타락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가령 그에게 응당한 대접이 차례졌더라면 오늘의 참상이 눈앞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문학사를 정리하고 기록해야 할 소위 전문가들마저 학자의 량심과 도덕을 내팽개치고 이런 문단의 못난 폐단에 편승하여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친소 관계에 따라 마구 락서하는 일이다. 대강 한자리 하거나 글을 내줄 사람이거나 얼굴이 가려운 사람이면 그가 글 몇개 썼든, 어떤 성과를 냈든지를 막론하고 무작정 유명작가 타이틀을 걸어주고 대표주자란 뱃지를 달아준다.
모름지기 사설이 길어진듯싶다. 소정의 3천자가 넘은 것 같다. 아무렴 시장경제시기에 맞다들었으니 문단편견도 따라서 없어지겠지. 누구를, 무엇을 망치자고 그럴수가 있을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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