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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수필

고향을 조립하다
2017년 08월 23일 08시 36분  조회:1234  추천:2  작성자: 장학규
 
 
 
수필
 
고향을 조립하다
 
장학규

 
 
일전 내 고향에서 뜻하지 않은 소식 하나가 날아왔다. 외자녀를 두고 있으면서 부부 쌍방이 모두 일자리가 없는 경우  “외자녀 부모 장례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 소위 장례금 액수를 전해 듣고는 치미는 분노를 도무지 억누를 수 없었다.
(멍멍이같은 애기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한달에 5원씩 1년에 고작 60원이란다. 장례금치고는 참 치사하고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부부 쌍방이 모두 무직업자여야 한다니 기가 막히고 억이 막히잖은가?! 그래놓고는 관심 어쩌구 배려 저쩌구 매체에 대서특필할 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막 소름이 끼친다. 
5원이면 요즘 시세로 저가쌀도 한근 사면 부스럭 돈이 몇잎 남지 않는 액수다. 일자리가 없는 세 식구가 쌀 한근으로 살면서 감격에 목 메여 만세라도 불러달라는 건가 뭔가? 
(멍멍이같은 애기들!)
사람을 바보 취급해도 유분수지. 백성을 거지 취급하는 못난 행실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흥분이 한번 대뇌를 훑어지난 다음 마음을 차분히 눅잦히고보니 그나마 어딘가 모르게 감격스러운데가 좀 있긴 했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우리가, 아니 내가 노예 근성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상야릇하게 감사한 마음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우리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바로 그거였다. 
산해관을 넘고 황하를 건너 멀리 장강이남까지 내려갔다가 항주 서호가에서 어렵사리 자식이라고 딸을 낳아서 다시 북상하여 중원의 산동땅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의 가슴에는 시종 응어리같은 것이 있었다. 
“아빠, 내 고향이 어디지?”
이제는 다 큰 딸애가 이렇게 물어올 때마다 나는 할 말이 궁해 변이 마른 사람마냥 끙끙대기만 했다. 
고향의 사전적의미는 “태여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그렇다면 딸애의 선차적인 고향은 마땅히 절강성 항주여야 했다. 딸애는 그곳에서 잉태되고 태여나 세살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딸애에게는 전혀 기억에 없는 고장이다. 고향은 과거가 숨쉬고 정이 살아있는 고장이라고 전제하면 항주는 아무래도 아닌듯 싶다. 지금도 딸애는 가끔 자기는 미인의 도시 항주에서 태여났다고 으시대군 하지만 일방적인 억지에 다름 아니다. 그곳에는 딸애의 연고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며 딸애를 기억해줄 사람도 거의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청도가 딸애한테는 가장 고향에 가까울듯 싶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쭉 살아왔고 친구들도 이곳에만 있다. 거기에다 사는 집도 이곳에 있으니 가히 고향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딸은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컴퓨터 순차(电脑排位)에 운명을 맡겨야 했다. 그건 딸애가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는 명백한 설명이다. 외지인에 대한 구박이 심한 중국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청도는 딸애가 고향으로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딸애의 호적이 있는 목단강은 더욱 고향일 수가 없다. 딸애는 딱 두번 목단강에 갔었다. 한번은 엄마 배속에 들어서 출생증 받으러 갔었고 또 한번은 여덟살때인가 나를 따라 려권을 만들러 가서 3일간 머문적이 있었다. 그게 고작이였다. 딸애는 지금도 목단강이 어느 성에 속해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고 목단강이 무슨 급의 도시인줄도 료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호적이 올라있는 서장안가란 거리가 있는줄조차 모르고 있다. 물론 그곳에는 딸애를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 걸 어떻게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그 목단강이란 고장에서 아이러니하게 딸애가 외자녀라고 장려금을 줄 수 있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부모 쌍방이 일자리가 없어야 하고 또 한달에 고작 5원밖에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런 은혜는 항주도 청도도 도무지 줄 수 없는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특혜를 나는 방귀 한번으로 왕창 거절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다면 딸애의 고향은 어디여야 할가?
우리세대는 엄마 배에서 나와서 만난 동네가 곧 고향이였다. 그때 임산부들은 병원이란데 가보지도 못하고 혹은 산파 혹은 시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의 손을 거쳐 자식을 해산하군 했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생물학적 탄생지가 곧바로 지리학적인 고향으로 전변되였고 그때로부터 주변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때의 우리에게는 세상이 쳐다보이는 하늘 정도가 전부였다. 그밖의 세상은 알수도 없었고 다가가기도 두려웠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제일 편했고 내 동네가 가장 친근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시대이다. 세계를 지구촌이라고 형용할만큼 가고싶은 고장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세월이다. 그리고 또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치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려면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오갈수밖에 없고 이런저런 사람과 만났다 헤여져야 하고 그러다보면 삶의 터전을 자주 옮길 수밖에 없다. 옛날처럼 내 죽었소 하고 한고장에 죽치고 몇십년씩 살아가기에는 요즘 세상이 결코 록록하게 허락치 않는다. 
너무 오래동안 리력서나 등록표따위를 써본적이 없어서 지금도 그런 문서에 “고향”이란 코너가 있는지 모르겠다. 력사의 퇴물같은 그런 것이 아직 살아있으리라고 믿을 수 없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어차피 상리로 판단 불능이니만큼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하등의 소용도 없는 물건짝을 두고 난감해 갸우뚱할 우리 후대들을 위해 한마디 하고싶은 말이 있다. 즉 기분 내키는대로 적어넣으라 그 말이다. 
태여난 항주가 고향일 수 있다. 그곳은 서시가 활동했던 미인의 도시이다. 기분이 상쾌할 것이 아닌가.
청도 역시 고향이래도 무방하다. 다시 멀리 가더라도 언젠가 찾아오면 공부했던 학교와 살았던 마을과 친했던 친구들을 볼 수 있다. 회상이라도 할 수 있잖은가.
호적지인 목단강 역시 고향이라 칭해도 괜찮다. 부모가 그곳 사람이고 더우기 한달에 5원이라 해도 외자녀 장려금을 아끼지 않는다. 정이 붙게 당기는 멋이 있잖은가.
한마디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향을 둘러맞추면 된다. 지금은 고향을 마음 내키는대로 조립하는 시대라고 단언하면 틀린 표현이 될가?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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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하얀 진주
날자:2017-09-19 15:39:50
그렇네요. 우리 애들도 고향이 어딘지 애매합니다. 짜릿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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