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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단편소설
겨울변주곡
장학규
그날도 해나른해진 주정뱅이처럼 멋대가리 없는 겨울날이었다.창밖에서는 둥그런 겨울해가 실없이 열기를 뽐내고 있었고 눈세례라군 못 받았다는듯 헐벗은 대지가 근육을 느슨히 풀어놓고 길가는 행인들의 신발을 매질하고 있었다.
"너 마구 지랄하더니 내가 애기 뱃잖아.빨리 와서 나를 델구가.안오면 개다."
해순이가 이런 전화를 걸어왔을 때 재석이는 어깨가 으쓱해졌다.창밖의 살풍경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그리고 개가 아닌 것을 시위라도 하듯 사람답게 고개를 꿋꿋이 세우고 해순이네 집으로 갔다.이 세월에 딸 가진 부모는 모두 그렇듯이 해순이 아버지는 울방자를 틀고 앉아 재식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렇건 말건 재식이는 무작정 해순이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가들고 싶어 왔습니다.해순이를 저에게 주십시오."
"임마,해순이 물건이야? 막 주게?"
"막 달란게 아니구 굉장하게 모셔가겠단 겁니다."
"그래도 안돼,아미를 튕겨가며 골라줄란다."
"줄바엔 저에게 주는게 낭패 없을 겁니다."
"허허,그 자식이 비위 하나는 떼먹었구나."
결국 해순이 아버지가 두손을 바싹 들고 투항해 재식이는 그달로 해순이를 맞아올 수 있었다.5,6년만에 처음 있는 희사여서 온 마을이 벅적 끓은 것은 물론 재식이도 해포나마 어깨를 살리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오랜 촌장인 아버지의 덕분에 재식이는 고중을 나오자바람으로 단지부서기에 민병 련장을 겸하게 되었다.일자무식인 아버지가 우뚝밸 하나로 마을의 패권을 틀어잡았다면 재식이는 가냘픈 체질에 알맞게 수완을 잘 쓰는 편이었다.
알아보면 해순이와의 만남도 그저 그렇고 그렇게 이루어졌었다.아버지 세대나 큰 형님 또래가 들으면 해괴하게 생각할 일이겠지만 그들은 별로 쑥스럽지도 않게 아주 자연스레 결합되었던 것이다.
해순이를 알기는 향에서 조직한 어느 한차례의 단간부모임에서였다.해순이는 건너마을 지서의 딸로 재식이보다 서너살 아래였다.오리무리에 끼어든 고니라 할가.주최측에서 용케 불러낸 몇 안되는 마을처녀중에 그녀는 유일하게 그런대로 보아줄 수 있는 얼굴이었다.게다가 걸줄한 농담도 술술 받아주어 처녀고갈에 맞다든 총각들에게 하나의 장미빛 유혹으로 부상했던 것이다.누구의 제의였던지 술을 얼근히 마신후 모두들 강에 나가 물싸움을 벌리게 되었다.재식이는 사전에 계확한대로 슬금슬금 물장난에 정신없는 해순이 옆에 다가섰고 그런줄도 모르고 무방비상태에 있는 해순이를 허궁 들어서 무작정 물속에 처박았다.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으리라고 언녕 작정했던 터이므로 해순이는 짐작대로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허둥대다가 간신히 일어난 해순이는 복수한다며 종주먹을 쥐고 암펌처럼 달려들었다.재식이는 헐레벌떡 달아나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지면서 바투 다가선 해순이의 손을 붙잡아 끄당겼다.몸이 맞붙어서 물속에 잠기기 바쁘게 재식이는 그녀의 궁둥리를 두손으로 넙적 끌어안았고 급해난 해순이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친다고 헤덤비다가 맞춤하게 남자의 요긴한 부분을 거머쥐게 되었다.화들짝 놀라 갈라져서 물우에 떠오른 후 그들은 누구 먼저라 할것 없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제?다.
"에씨,난 어쩌래?"
해순이는 살짝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투덜댔다.
" 어쩌긴? 나하구 살면 되지."
"체, 생각은 좋다.막 죽이고싶은데."
"그러면 꽉 틀어쥘거지."
"아이참,난 몰라,그럼 정말 죽인다."
해순이는 거세게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 들었으나 물속에 잠겨서는 곱다랗게 재식이의 유희에 호응해주었다.그런 에피소드로 하여 그들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밀접해졌고 종당에는 한집에 모이게 된 것이다.
재식이는 운수가 좋은 편이었으나 마음 한구석은 시종 탐탁치 않았다.이젠 간부경력도 그만큼 길고 또 그때문에 마을 노총각들중에서 유일하게 장가를 들었지만 아직까지 총각때를 벗지 못한 친구들이 시종 그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었다.사실 지금 실정에 그따위 벼슬 아닌 벼슬을 두려워할 놈팽이가 있을리 만무했다.봉급을 주면 입단하겠노라고 박박 엇서는가 하면 민병련이란게 어떤 부서냐고 애를 먹이기도 했다.그중에서도 만수란 자식이 가장 큰 골치거리였다.몸집도 웅장하고 주먹도 꽤나 센 편이었다.학교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또래들중에서 왕노릇을 했던 까닭인지 재식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뿐만아니라 가끔 재식이와 공개적으로 엇서면서 난처하게 굴었다.하여 재식이는 별 볼장 없는 중놈처럼 마을에서 위신을 크게 세우지 못한채 흔들흔들 회의나 다니고 년중과 년말에 둬번쯤 경비란 것을 타내가지고 패잔병처럼 흩어진 친구들을 긁어모아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으로 소일할 수밖에 없었다.
해순이가 고맙게도 아들을 낳아준 며칠후였다.그때 역시 겨울날이었고 재식이는 소위 활동경비라 이름하고 촌에서 돈을 타내어 친구들을 불렀다.그런데 어지간히 취기가 오르자 만수가 걸고들기 시작했다.
"야,임마.넌 애비 신세를 톡톡히 지고있구나.새해엔 촌장이 된다면서?"
아무래도 이 자식의 어느 구석엔가 노촌장인 자기 아버지의 흔적이 묻어있다고 재식이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냄새맡고 있었다.우덕진 체구도 그렇고 말하는 본새도 그렇고 노촌장을 꼭 닮아있었다.그러나 동류는 피하는 법인지 주먹 하나를 신주같이 모시는 만수도 늙은 재식이 아버지한테는 고양이앞에 나선 쥐격으로 사맥을 추지 못했다.그대신 재식이만 보면 묵은 빚을 받지 못한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동네 하나 변변히 틀어잡지 못하는 자식이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썩 물러나."
재식이도 체면은 있는 셈이었다.만수의 노골적인 언사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쿡쿡거리는 소리도 마찬가지로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겨주고 있었다.비록 벼슬 같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도 여하튼 그 덕분에 내년의 촌장개선때는 당당한 유망주로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물론 아버지가 뒤에서 밀어준 관계도 있지만 한편 선배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늙어버렸고 새 일대는 여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그러니까 재식이는 당연히 홀로 물우에 솟은 부용이었고 창턱에 놓인 꽃병이었다.그처럼 귀한 몸인줄을 만수만이 모른다고 할가.아무렴 눈치 무딘 만수에게 귀뜀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취했군.네가 해마다 임무공을 빼먹은걸 누가 뒤처리해주었는지 알고나 말해."
그건 만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앞으로 재식이가 이곳에서 일을 해나가려면 주먹질을 잘하는 만수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3백호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라 하지만 좀체로 단합이 되지 않고 있었다.서로 물고 뜯는 아귀다툼을 하루에도 수십번 곱씹고 있었다.아버지때는 그럭저럭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갔지만 일단 재식이가 일을 맡으면 형세를 틀어잡기 어려울 것은 뻔한 일이었다.그래서 언제부터 슬그머니 만수의 손을 봐주고 있는 실정이었다.물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만수가 느낄 수 있도록 기술적인 수잔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도 만수는 꼬물만큼도 사양하지 않았다.
"치사하게 공자랑 말어.다 세월 잘못 만난 탓이다."
"세월 만나면 뭐가 될 거 같애,너가?"
"해방전에 탄생했으면 장군감이다."
"해방후면 토개간부이겠지?"
만수가 타령처럼 외우는 말이어서 이젠 재식이도 뒤말을 이어댈 수 있었다.
"문혁때면 반란파 두목을 했을테지."
"그렇찮구.개코같이...지금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야.재수 나쁘게 태어난게 원통하다."
그게 누구 탓이냐고 질문하려다가 재식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취중에도 만수의 어머니가 남편 없이 만수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었다.그것도 재식이 아버지인 노촌장과 구설이 오가는 실정이었다.어렸을 때 재식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그리고 어머니와 만수의 어머니가 서로 싸우는 틈서리에서 살았었다.어쩌면 해명하기 어려운 그런 역사가 재식이와 만수 사이를 벌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래서 재식이는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그 용기면 외지애들이나 좀 다스려.말이 아니잖아.우리 애들이 날마다 얻어타지기만 하구."
"치보는 뒀다 어디에 쓰는거야?"
"늙었잖아,제 몸도 돌보지 못하는데..."
"그러면 털고 나앉아야지.그것도 벼슬이라구 깔고 앉아서..."
"쓸데 없는 소리는 말구.어쨌든 한번 결판내야지."
"독불장군이랬어.일이 벌어졌다 하면 뿔뿔이 꽁무니를 빼지 않아.모두들..."
"그 힘은 제사람이나 잡자고 남겨."
"여자한테 퍼부을거야.씨팔.여자가 있어야 어쩌지.먹자."
"마시자."
재식이는 한고뿌 가득찬 흰술을 단숨에 굽을 내었다.만수의 눈은 대번에 데꾼해졌다.잇따라 그도 한모금에 한고뿌를 입에 털어넣었다.새벽닭이 첫홰를 칠 때까지 그들은 내기라도 하듯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재식이가 심한 뇨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밖은 아직도 거무틱틱한대로였다.손목시계는 10분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바지궤춤을 추스리며 부시시 밖으로 나섰다.허리띠를 끌렀다가 배설을 단념하고 비칠비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밤에 어떻게 드러누웠는지 알쏭달쏭했다.술을 너무 과음한 것 같았다.속이 메쓱거려왔다.꼭 술량으로 해결해야 할 대결도 실상 아니였다.그저 자기쪽에서 그렇게 하고싶었을 따름이었다.이제 이 겨울이 지나면 재식이는 당연히 촌장으로 승진할 것이다.촌장이면 이 마을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제 아무리 한다하는 만수라 해도 촌장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이게 바로 "관"과 "민"의 차이점이였다.그렇지만 만수를 옆에 두고 싶은게 재식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만수도 입은 거칠었지만 그런 눈치를 나타내고 있었다.그리고 재식이가 영화에서 나오는 호한들처럼 술을 연거퍼 들이키자 저으기 감복하는 눈치도 보여주었다.어쨌던 그것은 좋은 징조였다.
마을은 쥐죽은듯 조용했다.겨울의 농촌은 할 일이 없어진다.닭장을 더듬어 술추렴을 하던 일도 왕창 옛날로 되어버렸고 그대신 매캐한 연기속에서 마작쪽을 다듬는 일에 빠져있었다.그런대로 무료함이 달래지고 있었지만 아침은 언제나 동면상태였다.
문고리를 거머쥐었을 때에야 재식이는 그때까지도 배설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중얼거리며 돌아선 재식이는 스적스적 바자쪽으로 다가섰다.막혔던 골물이 터지듯 쏴아 줄기차게 쏟아져나왔다.방광에 무겁게 가해졌던 압력이 서서히 물러감과 더불어 난생 처음 배설도 하나의 향수였구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이때 어디선가 문 열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동쪽 최과부네 집이였다.조그마한 체구의 최과부가 나타나더니 사방을 두리번 살폈다.사람이 없음을 확신했던지 둬걸음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대범하게 허리를 풀고 주저앉는 것이었다.궁둥이를 재식이쪽으로 돌린채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희미한 윤곽이었지만 최과부의 궁둥이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재식이는 소리가 날세라 숨을 죽인채 최과부의 궁둥이를 흔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두 자원 낭비야,조물주에게 미안한 노릇이고...)
최과부가 집으로 들어간 후 재식이는 멍청하게 선채 이런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외국에 돈벌러 갔던 남편이 시고로 죽은쥐 2년나마 최과부는 철부지 딸애를 데리고 홀로 지내고 있었다.남 같으면 열두번도 넘게 재가하여 복을 누릴터이지만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왜서인지 독신을 고집하고 있었다.대개 최씨집 여자는 퍼그나 드세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과부는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모습을 꾸미고 있었다.드센 성격과는 사돈에 팔촌도 걸리지 않는다는듯 언제 어디서나 해면처럼 부드러운 표정이었고 말소리는 무척 잔잔하면서도 애교적이었다.눈웃음을 살살 흘릴 때면 당장 그속에 빨려들것만 같았다.특히 걸음을 걸을 때 별로 꾸미는 흔적 없이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예쁜 궁둥이가 남달리 인상적이어서 한번쯤 만져보고싶다는 욕망과 충동을 동네남정들은 누구나 체험해온 터였다.
재식이도 예외는 아니었다.농촌에서 떠도는 말대로 하면 그런 도적마음은 있었어도 그런 도적 담량은 없었다고나 할가.여하튼 어슴푸레하게나마 최과부의 벗은 궁둥이를 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하느님의 덕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몇시쯤이나 되었을가? 10분전 다섯시였지.)
밖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아마 지금쯤은 다섯시가 되었겠지.그렇게 어림짐작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짐작이 문제거리로 되고 말았다.그것이 기억의 창고에 숨어있다가 정각 다섯시가 되면 꼭 재식이를 깨우는 것이었다.재식이는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막무가내로 긴 하품을 연발하면서 끌신을 찾아신고 부시시 밖으로 나선다.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이었지만 별로 싫증이 나지 않았고 오히려 일종 스릴을 느끼고 있는터였다.웬일인지 궁궁이가 저도 모르게 율동적으로 움직여졌다.습관이 자연으로 된다는 동방철학이 참으로 신통한 것이었다.처음에는 틀림없이 최과부의 동작을 모방했던 것이었으나 어느새 저절로 몸에 익혀진 것이다.이제는 신경을 도사리지 않고도 궁둥이를 멋지게 흔들어댈 수 있었다.연후에는 역시 자연히 되어버린 습관적인 동작으로 바자곁에 붙어서서 배설하는 동시에 바자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최과부네 초가집을 흘끔 거너다본다.
그렇게 한달나마 흘러갔다.구정이 아득바득 가까와오고 있는 대목이었지만 아직까지도 봄이 끙끙 앓는 소리를 저 멀리에 둔 추운 겨울이어서 날은 여전히 그대로 어두웠다.그러나 최과부는 아쉽게도 다시 나타날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느님은 공정한 편이었다.어느날 끝내 다른 방식으로 재식이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날도 재식이의 생물시계에 맞춰 바자너머 초가집에서 나온 사람은 최과부가 아니라 어떤 남자였다.퍼그나 낯익은 모습이었지만 구경 누구인지는 딱히 알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세번째로 최과부네 집에서 나올 때 운동화를 바꾸어 신은 재식이는 멀찌감치에서 어슬렁 뒤따랐다.이 골목 저 골목을 에돌던 그 사람이 오차없이 만수네 집으로 쑥 들어갔다.
(자식이 힘을 뺄 여자를 찾긴 찾았구나.어디 두고보자.)
한밑천 단단히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수도 이젠 코 꿴 송아지었다.네댓살 연상인 과부와 가정은 뭇지 않을 것이다.동네에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던 재식이는 생각을 고쳐 최과부네 집으로 들어갔다.만수에게 자기가 어떤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문을 떼고 들어서기 무섭게 가마목에 웅크리고 누웠던 최과부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왜 또 왔소? 남들이 알면 어쩌자구 그러오?"
재식이를 만수로 오인한 것이었다.최과부가 앙칼지게 소리치는 것을 처음 듣는 재식이었다.그렇다면 최과부의 유연함도 결국은 조합해낸 것이 분명했다.여인은 분명 여인이라는 편견을 세우며 재식이는 고집스레 어두운 봉당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그제야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지 최과부는 몸을 일으키며 전등을 켰다.
"게 누구요? 아..."
"왜 난 오면 안되우?"
"이렇게 남의 집에 막 뛰어드는 법이 어디 있소? 과부라고 업신여긴거요?"
"능청떨지 마오.내 다 알고 있소."
재식이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무작정 방에 걸터앉았다.간단했던 최초의 동기는 최과부가 괜스레 역정을 부리는 바람에 복잡하게 번져갔다.최소한 골려라도 주어야겠다는 오기가 머리를 쳐들었던 것이다.
"나도 한번 재미보면 안되우?"
"..."
최과부는 낯색이 새까맣게 질린채 그대로 무너졌다.솟옷차림인 몸매가 유난히 눈부셨다.궁둥이도 맨살로 보았을 때보다 퍽 유혹적이었다.사람은 그래도 적으나마 옷은 입어야 한다고 느끼면서 재식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푸더분한 여인의 궁둥이를 어루쓸었다.감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보드랍고도 탄력이 강했다.남성이 서서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아내가 해산한 후 잠시나마 여체를 멀리했던 재식이었다.최과부는 나를 잡아잡수 하는듯 두 눈을 꼭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젠 돌아가오.집에서 각시가 기다리겠소."
이윽고 최과부가 들뜬 소리로 말했다.
"내가 싫소?"
"애가 깰 때가 되었소."
1학년에 다니는 최과부의 딸애가 이불을 걷어차던진채로 한쪽 구석에 쪼크리고 자고있었다.
"괜찮소.날이 밝자면 아직 멀었소.이리 오우."
재식이는 최과부를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전등불을 꺼버렸다.
최과부는 반항하지 않았다.아무래도 피하기는 어렵다고 자각했던지 오리려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주었다.남자의 손이 젖무덤에 대이기 바쁘게 "흐흑-" 하고 신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벌써 몸이 달아있었다.재식이는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떠올리며 애가 깨어날가봐 조심스레 최과부를 안아서 돌려세웠다.그리고 애무와 더불어 뒤로 밀고 들어갔을 때 최과부는 난생 처음 그렇게 당해본듯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을 톺아냈다.
"그 사람은 일요일에만 오기로 되어있소.그날외에는 아무때 와도 되오."
재식이가 자리를 뜰 임박에 최과부는 그의 이마에 조용히 키스를 해주며 흥분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효과적으로 쓰고 있는걸.괜히 낭비라고 아쉬워했군.)
그날 아침은 아버지 집에서 먹었다.아버지한테서 자기가 이미 유일한 촌장후선인으로 최종확정되었으며 향의 비준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이젠 형식에 불과한 선거만 남았을 뿐이었다.그리고 당지부서기가 1년후에엔 지서책임마저 떠맡길 의향을 밝혀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아무튼 복이 쌍으로 굴러들어온 셈이었다.아버지도 매우 흡족한듯 벽에 등을 기대며 위엄기있게 분부했다.
"애에미에게도 알려라."
마침 재식이의 심중에 들어맞았다.공백이 펑 뚫린 아침 시간의 내막을 이리같은 해순이가 아는 날에는 끝장이 날 것은 불보듯 뻔했다.
재식이는 느긋한 어조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기다렸다는듯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가 튕겨나왔다.
"식전 아침부터 어디에 가서 뒈졌소?"
"아버지네 집이오."
"거긴 뭘하러 갔소?"
재식이는 한줄에 이어대기 어렵다는듯 상황설명을 구구히 전달했다.그 긴 소식을 듣느라고 여직껏 눌러있었다는 깜찍한 발뺌이었다.머리가 길어도 소갈머리는 앝았던지 해순이는 금시 해시시해졌다.
"나도 지금 거기에 가겠소."
"정신 나갔구만.그 몸으로 바람 맞으면 큰 일 나오."
해순이를 눌러놓은 후 재식이는 그길로 만수를 찾아갔다.아무래도 궁둥이에 좀이 쑤셔 그대로 앉아있을 수 없었다.만수와는 의사소통이 있어야 할것만 같았다.걸림돌이자 골치거리인 만수의 마음을 틀어잡으려면 얼마쯤 양보해야 한다는 각오는 있었다.물론 그의 양기를 한껏 키워주어도 안되었다.만수는 작은 언덕만 있어도 충분히 갈비대를 들이밀 위인이다.그러나 일단 덜미만 잡아놓으면 훌륭한 조수가 될 사람이기도 했다.
남수는 홀로 구들에 대자로 누워 애궂은 담배를 태우며 마작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언제부터인지 만수네집은 마작굴이 되어있었다 재식이도 가끔 마작군들과 어울렸기에 마작이 시작되는 시간을 대충 알고 있었다.아직 한시간 푼히 남아 있었다.
"간밤에 기운을 크게 뺐군.축 처진걸 보니..."
어떻게 이런 말들이 의식의 지배를 물리치고 터져나갔는지 재식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가슴 한구석에서 널장같은 것이 쿵 하고 떨어지면서 저으기 당황했으나 적재적소의 진격이라는 생각이 잇따라 들어 인츰 마음을 눅잦힐 수 있었다.반면에 만수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게 무슨 소리야?"
도적이 발 저린 격으로 왕 소리를 질렀다.내친김에 재식이는 한마디 더 시까슬렀다.
"놀라긴...일이 있긴 있었구나."
"허튼소리 마.주둥이 성하려면 가만 있는게 좋아."
"좀 작작 으시대.나한테 걸려든 사람은 온전하지 못할걸."
"도대체 무슨 감투끈이야?"
만수의 곤두섰던 표정이 누그러드는 것을 보며 재식이는 천천히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갔다.만수의 옆에 풍덩 주저앉으며 말을 이었다.
"난 종래로 근거없는 말은 하지 않아."
"..."
만수는 씩씩거릴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무언의 투항이라는 것을 해쓱한 얼굴이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촌장이 되는건 이미 결정났어.앞으로는 지부서기도 겸할거구,그러니 너도 무슨 일인가 할 준비를 해."
"상세하게 말해봐."
만수의 눈동자가 급작스레 확대되며 재식이를 교활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그때면 너를 지금의 내 자리에 앉힐테다."
"난 단원도 아니잖아."
"그건 간단해.하루 이틀품이야."
"왜 나를 찾는거야?"
"마을에 완력을 쓰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마을을 다스리자면 지도부가 강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약속하자."
"깍지!"
둘은 아주 경건하게 깍지를 걸었다.무슨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듯 말없이 서로 응시하며 오래도록 걸고 있었다.한 아득한 소년시절이 머리속에 우럿이 떠올랐다.신의와 믿음을 기초로 한 깍지걸이는 그때의 전매특허였다.그것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써 동시에 의무가 부여되어있고 희생이 요구되어있었다.또한 약속력이 강했고 혹독한 배타성이 안받침되어 있었다.두사람만의 목적이나 이익을 대변한다는데서 깍지걸이는 사실상 보편성을 띠기 어려웠다.불가피면적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되는 깍지걸이었다.때문에 시골애들은 깍지걸이를 아주 정중한 행사로 대해왔었다.
성인이 된후 재식이는 단 두번 깍지를 걸었을뿐이었다.한번은 강변의 버드나무숲에다 해순이를 깔아눕혔을 때였다.결혼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해순이가 손가락을 내밀 때 재식이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맞걸었었다.그리고 이번이 두번째 였다.
마작군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둘은 아무 일도 없었던듯 그들과 어울려 마작을 번지기 시작했다.마작을 놀면서 일면 엊저녁 아무개네 집이 털렸다느니 설대목이어서 경찰들이 소비돈을 마련하느라고 눈알이 빨개서 도박판을 찾아다닌다느니 만만한 이 동네가 여러가지로 당하고 있다느니 하며 입방아들을 찧는중에 토끼꼬리만한 겨울해는 어느덧 중천에 걸렸다.재식이는 더 놀 흥심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을 대신 앉히고 그만 물러났다.워낙 돈을 적잖게 잃은 까닭에 별로 고까와하는 사람도 없었다.새 사람이 들어앉아 자리를 정돈하는데 불현듯 문이 벌컥 열리며 최과부가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아이구,모두들 여기 있구만.어쩌겠소.우리 애가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었소."
누구라 없이 후다닥 일어섰고 여기저기서 "왜?","누가 때렸소?" 하고 중구난방으로 물어댔다.
"아.글쎄 그 '미친개'가 길 가는 우리 미연이를 불러세워 따귀를 치고 발로 짓밟았다오."
"미친개"라면 이웃 마을의 한족인 풍삼이를 가리킨다.동네방네에 쏘다니며 행패를 일삼는 악당이었다.마을 청년들은 물론 늙은이들도 심심찮게 그의 매를 맞아오는터였다.
최과부의 눈길은 꼿꼿이 만수의 몸에 꽂혀졌다.애원에 가까와보이는 그 눈길은 아무래도 너밖에 믿을 데가 없다는 호소가 틀림없었다.그런데 지목된 당사자는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일어설 때와는 달리 구들에 물앉고 있었다.
"풍삼이가...왜 그런다오?"
"내가 알턱이 뭐요."
최과부는 금시 얼굴이 빨개났으나 어조는 무척 거세고 텁텁했다.인간의 본성은 관건적인 시각에 나타난다는 말이 그른데 없었다.
"그 새끼 심심하면 우리 동네에 와서 행패 부리지 않구 뭐요."
""하긴 그렇소.그 닥달에 사람이 어디 살겠소.이사가든지 어쩌든지 해야지."
"모두 우리가 업시보여서 그렇지."
"무슨 방법을 대야지 안되겠소."
나도나도 지껄이다가 금시 재식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그 무엇인가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조소의 성분을 다분히 담은 눈길이었다.앞날의 부모관이 한번 태도표시를 하라는 무언의 촉구였다.그중에서도 만수의 눈길이 가장 선명하고 질리였다.재식이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어찌보면 이번이 마을에서 자신의 형상과 위신을 춰세우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재식이는 작감으로 느꼈다.
"풍삼이 지금 어디 있소?"
"지금도 저 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소."
"좋소."
재식이는 한걸음 썩 나섰다.마치도 전쟁마당에 나선 지휘관마냥 팔을 휘두르며 열변을 토했다.
"언제부터 외지건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마음 먹었소.한두놈 되게 두들겨 버릇을 고쳐줄 필요가 있소.닭잡아 여우 혼내운다고 먼저 풍삼이부터 잡치기오.후과는 내가 책임질테니 그저 죽이지만 말고 족치오."
"와-"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만수가 먼저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뒤로 모두 우르르 따라나섰다...
그날 저녁 재식이와 만수는 최과부네 집에서 조용히 만났다.최과부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상을 마주하고 말없이 술잔만 비우기에 여념 없었다.
들려오는 소식은 한결같이 불길했다.먼저는 뭇매를 맞은 풍삼이가 지금까지 인사불성으로 심한 뇌진탕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다.잇따라 향파출소에서 이미 입안했는데 주모자를 엄하게 징벌할 것이라는 소식을 재식이 아버지가 전해주었다.그리고 촌사무실에 동정을 살피러 갔던 최과부가 경찰들이 금방 마을에 들어섰음을 알렸다.일은 예상밖으로 많이 빗나가고 있었다.이무튼 술상은 끝나가고 있었고 둘은 체념하듯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오히려 최과부가 더 안절부절 못했다.
"도대체 어쩔 셈들이유?"
허공에 던지는 질문이었다.이 시각 딱히 누구에게도 관심의 분동을 높여줄 수 없는 그녀의 입장이었다.둘 다 그녀에겐 은인인 셈이었고 또 두사람에게 모두 속살을 내주었던 사정이었다.최과부는 또다시 이전의 유연함으로 되돌아가 있었다.아련한 자태로 회복되었고 그늘진 얼굴에는 선량한 여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근심을 싣고 있었다.
"내가 책임진댔잖소.그 미친개도 나쁜짓은 너무 많이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게요."
아버지한테서 즉살나게 욕을 먹고 온데다가 술까지 많이 들이켜서 재식이는 머리가 무척 혼잡해왔다.
"그래서 되겠소.그러면 촌장노릇은 다 해먹었잖소."
"그잘난거 안해먹어도 괜찮소.그게 뭐 큰 벼슬이라구."
"아직도 젊었는데 무슨 말이오.내 공안대를 찾아가서리 어떻게 벌어진 일인가를 다 말 하겠소."
최과부는 다시 얼굴을 붉혔으나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그녀와 풍삼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재식이는 인츰 의식할 수 있었다.
여직껏 애궂은 담배만 태우면서 덤덤히 앉아있던 만수가 자리를 차고 있어서는 최과부의 손목을 냉큼 거머쥐어 주저앉혔다.
"너 오늘 아침 한 약속이 진짜지?"
재식이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최과부가 앉아있는 마당이라서인지 만수의 검붉은 얼굴은 더 진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넌 패해,내가 책임질테니.누구말마따나 미친개가 먼저 단 불이니 크게 어쩌지 못할거다."
"우리 아버지도 그건 따지겠다고 했어.촌에서 나서면 쉽게 해결되겠지."
"그럼 됐어.네가 끌어안으면 우린 둘다 볼장이 없어진다.내 말 알아들었지?"
"음-"
"그럼 약속하자."
만수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듯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저의를 재식이는 얼마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아니,약속력을 재한층 검증하는 순간이었다.
"걱정마.촌의 입장으로 파출소에 강하게 나설거야!"
재식이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만수의 손가락에 깍지를 걸었다.이날 두번째로 거는 깍지걸이였다.
최과부는 울상이 되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제 뭐 볼게 있소.오기만 하면 다 말할테요."
어딘가 모르게 애수가 묻어있는 절절한 그 호소에 재식이는 코마루가 찡해났다.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했다.동시에 질투심 비슷한 감정도 가슴속에서 까닭없이 용을 쓰고 있었다.
만수의 재촉에 못이겨 재식이는 최과부네 집을 나섰다.만수와 최과부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주기 위해 재식이는 총총히 촌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우쳤다.얼굴을 스치는 겨울바람은 여전히 차가운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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