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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일품 용정차
2014년 09월 01일 06시 52분  조회:519  추천:0  작성자: 비전

 

천하일품 용정차

 


항주에 온지 얼마 안되어 내 안해가 있고 내 아파트가 있는 청도에 돌아 가게 되었는데 딴에는 인사를 낸다고 만여원 들여 용정차 한아름 사들고 친구들께 선물을 했었다.나름대로 괜찮다는 사람들인데 한번은 술을 먹다가 너 가져온게 이 식사보다 작지 않느냐는 식들로 얘기하는 것이였다.천원도 안되는 식사를 만여원의 값어치와 비기다니 몰상식해도 유분수지.억울하고 원통해도 씩하고 웃고 말았다.

부지자 불괴!(不知者不怪!)라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탓한단 말이..

사실 용정차는 어디나 다 있다.북경에도 상해에도 광주에도...그러나 그게 우리가 흔히는 말하는 서호용정차가 아니라는 건 항주인을 내놓고는 잘 모른다.중국 10대 명차에 속하는 서호 용정차는 첫 차가 500그람에 2천원도 넘어 한다.재배 면적이 500헥타르가 될가..?그게 전국 각지에 널려진다면 틀림 없는 거짓말이다.그것도 첫 차는 나라 규정에 따라 일정 부분을 국가에 바쳐야 한다.용정차가 중국 전역 나아가서 세계 여러 나라에까지 수출된 이유는 아무래도 절강성 내에서 나는 절강 용정,항주광역시 지역에서 나는 항주 용정이 한몫 단단히 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10대 명차에서 톱으로 꼽히는 차는 항주 서호주변에서만 나오는 서호용정차이다!

서호용정차는 나라 국자를 쓰는 국차이고 항주는 그때문에 차의   수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茶为国饮 杭为茶都 라는 말이 성행하고 있다.

 모두 잘 아는 얘기지만 차를 크게 종류로 나누면 세가지가 있다.우선은 발효차이다.이 발효차를 세상인들은 8국 연합군이 중국 대문을 연후 차를 유럽으로 반출하면서 시간이 너무 오라 유럽 도착시 차가 떠서 생겨난줄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명나라 중기에 벌써 발효차 즉 홍차가 있었다.홍차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운남성에서 나오는 기문 홍차이다.다음은 반발효차인 오룡차이다.대만에서 나오는 것이 유명하다는데...나중은 미발효차인 녹차이다.녹차중 대표적인 것이 용정차인데 이런 세가지 종류중 가장 좋은걸 뽑아 중국 10대 명차라고 하는데 서호 용정차는 그중에서도 톱으로 꼽힌다.

차를 말하면 용정차를 실례로 말하게 되는게 관습이다.

실제로 중국사람들이 차를 먹을수 밖에 없는 지리환경적인 요소가 있다.땅이 너른데다 평지가 많고 예로부터 환경보호도 잘 하지 않아 먼지가 쉽게 일어난다. 밖에 나가 한바퀴 돌고 돌아오면 기관지에 먼지가 앉아 매캐하다.그런데 기관지에 들어앉은 먼지를 청결할 방법이 없다.그래서 중국인들은 기름기와 육류를 즐겨 먹게 된다.장기간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면 그에 대응되는 음식문화,식생활이 생성되기 마련인데 기관지에 앉은 먼지를 씻어내리는 데는 기름기와 육류가 좋다는것을 알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런 음식을 먹으면 먼지는 씻어내리지만 대신 몸에는 지방질이 들어차기에 사람은 어쩔수 없이 비대해지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오면 비대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그것은 바로 차를 즐겨 마시기 때문이다.차는 지방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논다.

그러나 차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는 서기로 760년의 일이다.뭍 육(陆)자 깃 우(羽)자를 쓰는 육우가 "다경'을 써서 부터이다."다경"은 세계적으로 최초로 차를 재배하는 방법,차를 따는 방법,다도,다예를 상세하게 저술한 책이다.그래서 육우는 다성으로 높이 받들리고 있다.시에는 시선이 있어 이백,시성이 있어 두보,서예에는 서성이 있어 왕희지를 꼽는 것처럼 차의 성인이라 해서 다성이라 하는데 육우가 바로 그 사람이다.

육우의 인생은 기구했다.호북성 천문현 출생인 육우는 어렸을 때 부모한테 버림받은 아이였다.지나가던 스님이 발견하고 사찰에 안아다 키웠는데 지적스님이란 이 스님이 차를 많이 즐겼던 모양이었다.어린애가 귀여우니까 차를 우리게 하고 또 출장갈 때면 육우를 데리고 다니기 즐겼었다.그래서 륙우는 어려서부터 차에 대한 학문을 익히고 또 당시 유명한 인물들과 면목을 익히게 된다.그런데 아무래도 불교와는 연분이 없었는가 본다.육우가 열서너살될 쯤에 지적스님은 세상을 떠나고 그래서 그 이듬해 육우는 사찰을 떠나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걷게 된다.그때로부터 전에 만났던 유명인사들을 차례로 찾아 다니며 차에 대한 학문을 진일보 넓이게 되고 그래서 절강성에 와서 세계적인 거작인 "다경"을 쓸 때 연세가 고작 스물 여덟이었다.지금도 절강성 호주(湖州)에 육우의 무덤이 있고 도처에 그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우리 민족이 차를 접한 것은 통일신라때부터라고 한다.지금으로 부터 천이백여년이 되였다는 얘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구화산에 갔다가 지장왕보살로 추앙된 김교각스님이 한국에서 차씨를 가져와서 구화불차가 생겼다는 설명을 들었다.김교각스님도 역시 천이백년전의 사람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전에 우리한테 차가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유구한 음다 역사를 자랑하기에 우리에게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차 전문 저서가 적지 않다.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조선왕조 말기 초의선사가 쓴 "다신전"이 아닐가 싶다.초의대선사가 말씀한대로 곱씹으면 차는 아홉가지 덕이 있는데 첫째로 머리를 맑히는 두명의 덕이고 다음은 눈을 밝히는 명목의 덕이며 세째로 잠을 몰아내는 소민의 덕이요 네번쨰는 더위를 가시는 피서의 덕이고 다음은 추위를 피하는 거한의 덕이며 여섯번째는 내장을 지켜주는 보내장의 덕이요 일곱번째는 입맛을 돋우는 구미조장의 덕이고 다음은 소화를 돕는 체소의 덕이며 끝으로 마음 놓고 먹을수 있는 안심지음의 덕이라 하여 "차유구덕"이라 이름 한다.그런데 초의선사와 동시대 분이였고 동시에 스승격이였고 우리 민족사에도 아주 유명한 다산 정약용선생이 "차를 오래 마신 사람은 죽을 때 뒤틀거리지 않고 곱게 죽는다."라고 한마디 더 붙혀서 "차유구덕"을 "차유십덕"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차를 말하면서 청나라 건륭황제를 간과할 수 없다.풍류임금이었던 건륭은 생전에 항주를 여섯번 다녀 갔는데 비행기 없고 기차가 없던 그 시절에 항주 한번 다녀 가자면 거의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임금이란 양반이 자꾸 자리를 비우니 갑갑해난 신하들이 "나라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됩니다."고 충고를 하게 되었고 언론 길을 넓혀놓은 건륭도 '나라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되지만 임금은 하루도 용정차가 없어서는 안되느니라."고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다도에는 차를 받는 사람이 엄지 중지 식지를 모아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는 예절이 있는데 이것도 건륭으로 부터 기원했다고 한다.평복으로 나돌기를 즐겼던 건륭은 다방에 들어가서도 상하 구분을 하지 않고 내키는대로 부하한테 차를 부어주기가 일쑤였다.신하된 사람이 임금이 부어주는 차를 앉은 자세로 받을 순 없고 그렇다고 궁중에서 처럼 무릎 꿇고 받을 수도 없고 급한 김에 세 손가락을 모아 "무릎 꿇고 받나이다."란 뜻을 보였다는 미문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이 양반이 즐겨 먹었다는 열여덟 그루 어차 나무 가 오늘날까지 남아있고 거기서 나온 백여그람 차가 경매에서 18만 인민페에 팔리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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