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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고도 경주
2014년 09월 01일 06시 59분  조회:517  추천:0  작성자: 비전


천년의 고도 경주

장학규

 

한국 땅을 많이 밟아본 것은 아니나 아름다운 추억은 많이 남겼다.그중에서 항상 가슴 언저리에서 숨쉬고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고장이 경주이다.

천년의 고도 경주

중국에는 옛 수도가 수 백개가 된다.우리는 경주부터 해서 부여,공주,서울 ,개성,평양,졸본,국내성 등 이렇게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지만 중국의 옛 수도를 손가락으로 꼽자면 숨이 넘어간다.그래도 경주같은 천년고도는 없다.장안이 천년을 이어왔다고는 하나 딱히 계산 할 방법이 없고 그나마 북경이 정확한 계산이 나오는데 말갈족의 요나라,여진족의 금나라,몽골족의 원나라,한족의 명나라,만족의 청나라 해서 북경이 800여년이다.그러나 경주는 신라 한개 조대만도 쳔년을 유지해왔다.

아...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

 신라하면 경주부터 떠올리는 것처럼 경주하면 먼저 찾게 되는 것이 불국사이다.신앙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불교를 많이 좋아한다.그래도 불교에 밝은 분들이 많기에 섣뿔리 불교를 설교하려는 생각이 없다.단 중국 불교와 틀리는 부분만 언급한다면

우선 일주문의 특이함이다.사찰의 간판(편액)이 걸리기도 한 일주문은 기둥 네개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주택 형태가 아니고 일직선상의 두 기둥에 지붕이 얹어진 독특한 모습이였다.날듯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처마,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기둥 두개가 그것을 받치고 있었다.센바람이 불어치면 넘어지지 않을가 남몰래 걱정도 했었다.

일주문 지나면 천왕문이 보인다.중국에서는 흔히 천왕전으로 되어 있는데 문이라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확실히 틀린 데가 있었다.대전이 아니구 말 그대로 문이다 보니 그저 지나치면서 보게 되는데 양옆으로 두 분씩 사천왕이 모셔졌는데 중국과는 달리 나무 난간으로 막아 놓고 있었다.지품도 남방 증장천왕과 동방 지국천왕은 같았으나 북방 다문천왕은 중국처럼 우산 든게 아니라 왼손에 창을 잡고 오른 손에 불탑이 들려 있었으며 서방 광목천왕은 지향대로 룡을 잡고 다른 한손에는 여의주를 든 형상으로 중국처럼 비단으로 용을 상징한것이 아니였다.곁가닥 얘기지만 불국사는 물론 해인사 통도사 할 것 없이 모두 사천왕이 잡귀를 밟고 있는 모습인데 반해 중국에서는 사찰의  취지에 따라 밟고 있는 것도 다리를 들고 있는 것도 있다.흔히 중국 사찰의 천왕전은 정면에 미륵불,뒤면에 위태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불국사는 그대로 문이기에 이런 절차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지난후 또 오리무중에 빠진 것은 연화교 칠보교와 백운교 청운교에서였다.일반적으로 다리 교가 붙으면 호형의 다리여야 하는데 계단에 가까운 것이였다.아니,아예 계단이 분명했다.전에 그 밑에 연못이 있었다고는 하나 어딘가 궤변같은 생각이 들었다.그 옆 자하문을 들어서면 불국세계가 이어진다는 설명을 듣고 어쩌면 중국 사찰의 해탈교와 비슷한 역할을 노는게 아닐가 싶기도 했다.

그 다음 내용물은 거의 비슷했다.다르다면 불국사의 단청이 기 막히게 화려하고 사치하고 정교했다는 것이다.중국 사찰이 거의 비교가 안될 정도의 섬세와 조화로움에 한동안 대뇌는 정지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불국사를 떠나서 갔던 곳이 국립경주박물관이다.책에서 감명깊게 있었던 에밀레종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높이 3.75메터,입지름 2.27메터,두께가 11-25센치인 에밀레종이 한때 신라의 황페를 몰아왔다고 생각하니 그저 눈물겹기만 하다.아무리 10만근의 놋쇠로 만들었다고 해도 종 하나에 나라의 기강이 흔들렸다는 건 자원의 결핍을 되돌아 보게 하는 역사의 경종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일명 성덕대왕신종이라 하는 에밀레종은 효성을 자처하고 나선 신라 34대 임금 효성왕이 봉덕사를 지으면서 구상되었고 35대 임금 경덕왕을 거쳐 36대인 혜공왕이 서기 771년에 완공한것이다.엄마를 찾는 어린애의 에밀레 소리가 지금도 가슴을 저민다.

에밀레종을 만들게 한 성덕왕은 불교적인 입장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인물이다.중국에서 거의 신화적인 인물로 전해지는 김지장왕 보살인 김교각스님을 낳은 이가 바로 성덕대왕이기 때문이다,고국인들은 거의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지장보살이 지옥을 관장하는 보살쯤으로 알고 있어 민망할 때가 많다.중국 구화산에 와서 높이 득도한 김교각스님은 드디어 김지장왕보살로 높이 받들리게 되는데 세상뜰 때 년세가 99세였다.일반적으로 불교 스님들은 세상 뜨면 화장하는 것이 법이다.허나 지장은 화장하지 않고 항아리에 앉아서 열반하셨다.3년이 지나서 항아리 뚜겅을 뜯었는데 육신이 그대로 있더라고 한다.사람은 죽어서 3일후부터 육신이 썩기 시작한다.3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았다는 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얘기이다.불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등신불"이라고 한다.미이라와 혼동하지 말라,미이라는 사람이 죽은 다음 내장을 모두 걷고 방부제 처리를 한다.그러나 등신불은 오장육부를 모두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는다.그럼에도 왜 썩지 않을가?항아리 밑바닥으로 두툼하게 숯을 깔고 숨이 넘어가기 전에 항아리에 밀봉된다.몸 속의 수분이 생명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고 습기가 숯에 막혀 육신을 침습하지 못한다.그래도 누구나 될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불교 역사에서 등신불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은 수천이 되어도 진정 성공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성공하였고 신분도 가장 높은 분이 바로 지장보살 즉 김교각 스님이다.성덕대왕의 아드님인 김지장왕보살의 육신보살은 지금도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 모셔져 있다.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첨성대,우리는 봉화대인줄로만 알았다.아니면 적의 동향을 살피는 보초막쯤으로 보였다.천문대라고는 실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러나 천마총에서 또 한번 힘을 얻었다.역사를 읽으면서 항상 비해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우리가 우물가의 알 속에서 나왔소 니무 궤짝에서  태어났소 또는 닭의 자식이오 따위로 선조들의 출생 연대를 밝힐 그때 중국은 이미 백가쟁명의 춘추 전국시대와 한초전쟁시기를  넘어 오늘 중국의 판도를 만든 한나라의 전성기도 마무리되고 오늘날 우리가 즐겨읽는 삼국지연의의 그 시기가 바야흐로 다가오던 시기였다.문자가 없었고 문물이 적었던 이유가 아닐가.다행히 천마총에서만도 1만 1500여 점의 문물이 출토되었다고 하니 그보다 더 다행이 없다고 하겠다.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 유물인 천마도장니는 또한 우리의 예술 역사를 더 멀리로 끌어간 유력한 증명이 되고 있다.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겹으로 겹쳐 누빈우에 하늘을 나는 천마-

그날 술을 억수로 마셨다.그리고 단란주점에 가서 목청 터지게 노래 불렀다.
 ...
고요한 달밫어린
금옥산 기슭위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노래를

경주의 밤하늘엔 아직도 나의 노래소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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