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기의 인생을 감오하며
김운룡선생의 단편소설집 "사랑의 그림자"의 인간상 고찰
김운룡선생하면 흔히 력사학자 또는 력사소설가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상 김운룡선생의 저서와 창작생애를 살펴보아도 이러한 견해 내지 정의는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만큼 항일투사의 자손으로서 김운룡선생은 항일을 둘러싼 우리 민족의 이민사, 수난사, 투쟁사에 남달리 집념하고 있으며 따라서 김학철, 리근전, 윤일산, 김송죽, 김길련 등등과 더불어 민족력사 바로 알기와 민족의 뿌리의식을 고양하는데 많은 힘을 이바지해왔다.
그리고 더욱 보귀한 점은 환갑을 넘긴 김운룡선생이 창작관성에 얽매이지 않고 시야를 새로 정비하여 한창 대하 력사소설 "광야의 아리랑"의 창작에 무비의 정력을 몰붓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라던가. 특히 작가론의 경우에는 그 작가가 태여나게 되는 시대배경과 사회환경을 무시할수 없다. 독립운동지사의 자손이라는 운명은 김운룡선생으로 하여금 선조의 발자취를 더듬지 않을수 없게 하였고 의식형태에 관여하는 국가공무원이라는 경력은 그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작업에 참여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1979년,36세의 나이에 처녀작 "한 실련자의 눈물"(한문)로 문단에 데뷔했다는것은 좀 늦은 감도 없진 않으나 그해가 바로 이 땅에서 좌경사조를 점차 청산하기 시작한 해빙기라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력사소설가 김운룡"의 뒤늦은 탄생은 별로 해괴한 일이 아니다. 필경 그 이전의 살벌했던 년대에는 금기도 너무 많았었다.
실제로 "력사"나 "민족"이란 테마는 너무도 민감하고 묵중한것으로 남다른 경력, 견식이나 노력이 없이는 운운하기도 어렵다. 다른 문학쟝르보다 기술적인 문제 시스템이 많을수 밖에 없고 그런만큼 상대적으로 더 길고 어려운 작가적인 고행을 겪게 된다. 하기에 우리는 대한민국림시정부와 조선의용군이 활동한 지역을 샅샅이 답사한 김운룡선생을 만나게 되고 따라서 김운룡선생이 작가수업의 실행으로 굵직한 력사적품 사이사이에 현실주제로 펴낸 단편 편린들을 접하게 된다.
지금 필자의 앞에도 력사무드의 주류에서 삐어진 "편린"들의 묶음인 "사랑의 그림자”가 놓여있다. 물론 이것이 확실히 작가적인 준비작업으로 이루어진 "편린"이냐가 논란의 게제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김운룡선생의 전반 작품활동에서 현실주제의 작품들이 적은 비중을 분담한다는것은 의논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다. 김운룡선생에게도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주제의 작품들이 적잖게 있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흥분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의 그림자"는 1983년부터 1989년까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주지하는바 이 시기는 맞춤하게도 중국사회가 변혁기로 막 들어선 시기였다. "전형(转型)"이라는 단어가 난무할 지경으로 정치나 경제계는 물론 문학도 그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을수 없었다. 여러가지 문학사조가 나타나고 색다른 문학주장들이 제기되었다. 20세기 80년대는 말 그대로 다시 돌이켜보게 되는 획기적인 시기였다. 물론 재래로 시대변천에 둔한 반응을 보여준 민족문학의 고루한 인습때문에 동안을 두고 억지로 따라간 약점도 보아내게 되지만 그러나 우리는 김운룡선생의 작품들에서 다른 곳에서는 대면한 적이 없는 생경한 인물, 특이한 인물, 개성적인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상형의 생경한 인물
대체로 이 부류의 인물들을 생경하다고 말하게 되는것은 지금의 시각으로서는 리해가 잘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러한 주인공들이 모순이나 갈등이 설정되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의 주장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주와 선주"(1984년)의 주인공 은주는 산촌의 교육사업에 헌신할 결의가 되여진 처녀이다. 어려서 장백골에서 자랐던 은주는 학교가 없고 선생님이 없는 시골 어린이들의 설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하기에 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멀동학교에 오게 된다. 여기까지는 별 무리가 없다. 문제는 선주가 남자친구를 찾아서부터 생긴다. 로처녀로 늙어가는 선주를 사랑밖에 모른다고 타매하는가 하면 공안국에서 사업하는 애인을 멀동으로 조동시키면 되지 않느냐며 가능성도 없는 충동질에 신경을 몰두한다. 나아가서 "난 멀동산에 사랑을 심을래." 하는 혁명적랑만주의를 펼치기도 한다. 인물형상이 극단화에로 나아간 전형이다. 다행히 결말이 희극적으로 반전이 되면서 최미자선생이 림업부문에서 사업하는 남편과 함께 멀동으로 오는가(합리성 내포) 하면 은주에게 합당할 법한 "박창혁"이란 남자선생도 등장한다.
사실 작가의 설계도에는 이상이 없다. 산재지구의 민족교육은 시종 정부나 민족유지의 골치거리였다. 금방 정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인민과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한다."는 기치를 내건 문학도 당연히 거기에 주목하게 되였고 따라서 관성적인 작법으로 전형이라는것을 수립하게 되였다. 그 시절에 흔히 그랬던것처럼 은주도 전형화가 지나쳐 코미디언같은 별종이 되고있지만 이 인물은 중국 사회가 서서히 변화되여가고있음을 깨닫게 하는데 모름지기 일조하고 있다.
1984년이면 농촌에서 이미 도급제를 실시하고 도시에서는 연해개방도시를 가동한 시기였다. 농민들은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였고 도시는 인구유동의 관제를 늦추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와지게 되었다. 중국농촌인구의 역성장은 이때로부터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나타난 문제는 어쩌면 현재에도 우리가 안고있는, 또 풀기 어려운 난해한 문제가 아닐가 싶다.
"탑"도 그런 쪽으로 논리 가닥을 뻗고 있다. 25년간이나 촌당지부서기 사업을 해온 조성구노인에게는 남에게 말 못할 아픔이 있다. 25년간 룡포동네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계속 쪼들리고 가난한 생활을 이어왔다. 민족학교도 그냥 초가집이다. 그것이 사회체제가 빚어낸 악과라는것을 조성구노인은 젼혀 모르고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대를 이어 쌓아온 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나?) 식으로 민족사회라는 좁은 테두리속에서 문제를 찾기 때문에 그는 고향을 떠나는 시각까지도 답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사회조직의 말단에 위치한 조성구노인도 책임을 져야 할 일이였다. 허나 "남처럼 이렇게 저렇게 돈을 벌수 없는 처지다. 그저 아껴 먹고 아껴 입는것으로 돈을 모아야 했다."는 조성구노인에 대한 묘사에서 지나온 우리 사회의 비극을 우선 반성케 한다. 그렇지만 조성구는 참회를 할 대신 오로지 민족사회에 불만하는것으로 안주하며 "닭알을 한알 두알 모아서 팔고 돼지를 키워 팔고 그리고 김치장사를 하고 약재를 캐서 한푼두푼 모으는.." 고리오식 구두쇠생활을 영위한다. 그것을 촌학교 재건을 위한 의식적인 행위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소설에서 우리는 조성구가 꼭 학교재건에 나서야 할 아무런 리유와 계기를 발견할수 없다. 그러니까 조성구는 한낱 범인에 불과하다. 그더러 "민족의 탑" 운운을 시키는것은 어딘가 형이상학이다.
이러한 조성구의 형상은 이 소설이 처했던, 개인주의와 자유화가 고조에 치달았던 1988년 좌우의 사회현실과 상당히 외곡되고 있다. 어쩌면 그렇다는 사실이 이 인물의 존재의 합리성을 다소 잉태하고 나아가서 우리에게 쓸쓸한 충격을 주고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시절에나 있을 은주나 조성구에게는 많은 의문이 묻어있다. 지나간 력사의 매듭을 헤치는 실마리의 인간상이 아닐가 싶다.
특이한 이야기와 인물의 특이화
평론인의 감각은 이 부류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렵기적인 성격을 띠였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그전도 아니고 그후도 아닌 바로 20세기 80년대 중기의 문단이 다원화로 진입했던만큼 이런 성격의 소설도 비로서 출현이 가능케 되였던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것은 시간적으로 폭이 많이 벌어진 상기한 "리상형의 생경한 인간상"을 묘사한 작품들과는 달리 이 부류는 1986년과 1987년 2년 사이에 집중되였다는것이 주목된다.
우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80년대 중기의 문단은 활발한 양상을 띠고있었다. 상처문학, 반성문학, 개혁문학이 절대적으로 주류를 이루었던것이 그전의 문단의 상황이였다면 80년대 중반을 분수령으로 문단은 점차 다양화로 매진하였다. 한편 금전의 충격, 의식형태의 분화 등으로 하여 혼란한 국면도 조성되였다.
문학인들은 급변하는 시대를 나름대로 읽고 리해하면서 예술상상과 예술기교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그것을 반영하기에 급급했다.
우리 문단도 물론 주류사회와 주류문단의 충격을 받을수밖에 없었다.
김운룡선생의 경우 이 시기에 정부주관의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었기때문에 소설에서도 자연히 경제문제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하여 우리는 이런 소설들에서 변수가 많은 기업가들의 특이한 이야기들과 만나게 되고 금전으로 인한 갈등이나 인간관계를 통해 불쑥불쑥 나타나는 색다른 인간상을 접하게 된다.
"황금세계"의 백기준은 이중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성위서기의 부름까지 받을만큼 부자가 된 그의 눈에 조강지처 봉녀는 행시주육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만큼 봉녀의 행색도 좀 구차하다. 배운 것이 없어 말을 함부로 하고 몸 거두매를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순임이는 청순하기만 하다. 젊고 예쁠뿐만 아니라 공장을 그대로 맡겨주어도 될만큼 경영재능도 갖추고 있다. 백기준의 마음이 순임이쪽으로 쏠리게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고 순임이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백기준은 결국 사랑없는 혼인을 고집하게 된다.
"아지 못할 사랑이여"의 강상호는 더 나아가 도인같은 인물로 형상화되였다. 그는 안해 월옥이가 윤칠이와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참을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군희의 유혹을 물리칠수 있는 심리적 준비가 되여있다. 오직 "모범공장장"답게 사업에만 몰두하는 로보트식 생활만을 탐닉한다. 결과 월옥이의 배반을 당하고 군희마저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월옥이라는 인간상을 상당한 깊이로 그리고 있다. "성체육학교 예술체조지도원"이라는 신분은 그녀에게 랑만과 풍류를 즐길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템포를 맞추지 못하는 강상호때문에 월옥이는 단연 월선을 단행한다. 그것도 남편한테 내놓고 론쟁할수 있을만큼 당당하게 단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이나 타매같은 흔적은 꼬물도 찾아볼수 없다. 오히려 여러 입을 통한 변명이나 동정이 사처에 널려있다. 분명 질책의 분동을 강상호쪽에 올려놓고있는것이다.
상기 두 소설에서 공통점은 순임이나 군희를 통해 시대변천에 따른 새로운 혼인관, 애정관을 제시했다는것이다. 물론 당시의 실정에서 순임이의 로골적인 유혹이나 군희의 당돌함은 어색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학적인 안광으로 볼때 백기준이 성격기질상 두 선을 긋고있기 때문에 순임이가 끼여들 틈이 생겼고 강상호는 사랑에서 시종 피동적인 지위에 서있기에 군희의 접근을 불러오고 그뒤에 따르는 반감도 재촉했다는 해석 역시 그럴듯 하다고 본다.
"압록강의 넋"은 제3자가 등장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구조에 많이 치우치는듯한 비환리합의 고루한 사랑이야기를 담고있다. 향숙이는 800원의 빚때문에 백치의 색시가 되고 밤마다 시고모의 감시하에 옷벗는 수모를 당한다. 그리고 "우숙이 오빠"와의 사랑도 상대방 가족의 반대로 실패하는 불행한 녀인이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것은 향숙이가 이런 운명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짠지장사로부터 시작해 "석동호텔"의 지배인이 된다는 이색적이고 아이러니한 운명그라프때문이다.
지금 보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 가령 우리가 정말 영화에서처럼 1987년으로 가볼수 있다면 그때 이런 이야기는 전설과 같은 충격을 주게 된다는것을 알수 있다. 역시 향숙이도 하나의 대상물이 되여졌으며 사회중심이 경제에로 전환된 시점에서 그녀의 특이한 형상과 함께 한 시대를 떠미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였을것이다.
"구름의 벽"도 혼인등기까지 한 녀자(안해)와 리혼도 하지 않고 다른 녀자를 안해로 데리고 산다는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두말할것 없이 얼마 안되여 금전으로 인해 부부간에 감정위기가 닥치게 되고 맞춤하게 전에 버림받은 녀자가 한 인물이 되여 기적같이 나타난다. 이제는 계월이같은 인물의 느닷없는 출현에 크게 놀라지 않아도 될것 같다.
시대와 맥박을 함께 하는 개성화된 인간상
어쩌면 이 부류가 전반 작품집의 주류부분이 아닐가 싶다. 문학이 현실생활의 반영이라고 할때 초랑만주의나 초현실주의보다는 사회와 시대에 밀착된 작품이 그래도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한 시대를 정확히 료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것보다도 당시 문단에서 유행되였던 사조나 주장들이 혹은 원형대로 혹은 창작수법으로 녹아들어 우리 앞에 나타나고있는것이 신기스럽기만 하다.
"인심"은 그 창작년대(1983년)가 귀띔해주고 있는것만큼이나 과시 상처문학의 범주에 들수 있는 작품이다.
전반 줄거리에 꿰여진 아픔들은 단 하나의 상처에서 오게 된다. 27년전 "나"의 아버지가 의외의 사고를 당하면서부터이다. 입원치료를 거치자면 백원은 있어야 했지만 그 돈을 도무지 구할수가 없었다. 대대당지부서기였던 아버지가 고지식하게 무당 만근이란 부당하다고 상급에 사실대로 회보한 보응이였다. 다행히 군관인 외삼촌이 결혼비용으로 부친 돈이 마침 도착해 아버지는 병치료를 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그 일이 빌미가 되여 “우리 가정”의 아픔이 곧바로 이어진다. 우선 첫날 이불도 없고 상도 받지 못한 외숙모가 앙탈을 부리며 떠나갔고 뒤이여 외삼촌의 새살림을 보러 갔던 어머니가 쫓겨오고 아버지의 상사와 나의 희사에도 외삼촌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뿐이 아니다. 어머니의 회갑상을 마련하려고 "우리 내외"가 시내로 갔던 김에 외삼촌네 집에 들러보니 그날은 마침 외삼촌의 큰딸 용순이의 잔치날이였고 청첩도 받지 못한 불청객들은 거지와 같은 구박과 대접을 받게 된다. 저주 받을 그 년대의 자그마한 사건 하나가 둘도 없는 혈육사이를 20년간이나 벌려놓고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동하고 실감이 난다. 맏이인 "나"는 무던하면서도 주대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민족 녀성상인 외유내강형이고 외삼촌은 우유부단하고 안해한테 쥐여사는 전형이다. 가장 잘 다루어진 인물은 외숙모이다. 퉁명스럽고 실리적이며 솔직한 일면도 가지고 있다. 이런 인물들의 부동한 성격이 등장하고 충돌하면서 가난이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주제를 유도해낸다. 따라서 새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부활한 "쌀독에서 인심이 니온다"는 천고명을 재확인한다.
"곱사등 황말구"는 새로운 아품을 체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지주의 손자로 태여난 황말구는 천대와 기시를 받을대로 받아온 인간이다. 작가는 그의 과거를 의식적으로 회피하고있지만 사닥다리에서 떨어져 곱사등이 되는 사실에서 그 세월의 반인간성, 반사회성을 얼마든지 상상해낼수 있다.
물론 작가의 치중점은 거기에 있는것이 아니였다. 하기에 우리는 장애인이지만 정부의 배려로 기술을 익혀 부자의 꿈을 이루어가는 황말구를 보게 된다. 황말구의 비극적 근원은 어디까지나 불구라는 그 자체에 있는것이라고 소설은 항소하고있다. 동네 아낙네들의 식후 한담거리가 되고 지어 자기가 도와준 봉수한테서도 "...오성구하고 붙었으면 그래도...그렇지만 말구하고말이야..." 하는 멸시의 평을 듣게 된다. 말구에게는 피리외에 친구가 없고 생활동반자 역시 있을수 없다. 웬 사기군 처녀한테 3,000원을 떼운후부터 그는 녀자들을 더 경계하는듯 하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예외었다. 봉사 아버지를 가진 나는 남들처럼 황말구를 대할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의 부드러움과 선량함이 황말구의 얼어든 마음을 녹여주었던지 그는 용기를 내여 "나"에게 접근해왔고 여러 기회를 리용하여 "나"를 도와주었다. 그 행위는 결코 여느 사람처럼 음특한 마음에서 생겨난것이 아니였다. 인간사이에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싶었을 뿐이였다. 그런데 그런 행위들이 결국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황말구는 두 시형에게 얻어맞아 머리가 터지고 "나"도 남편한테 맞고 동네에서 머리카락을 잘리우는 망신을 당한다. 이어 황말구는 나의 청백과 명예를 되돌리려고 결연히 죽음을 택한다.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황말구의 형상을 통해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어려운 삶을 실감케 한다. 원체 동정을 받고 도움을 받아야 할 장애인들이 오히려 기시 받고 박대당하는 사회현실을 질타한것이다. 이 소설은 "장애자보호법"이 나온 바로 그 전해에 창작된 것으로 선각자적 역할을 충분히 발휘한것으로 된다.
"사랑의 그림자"는 다른 류형의 피해자를 등장시키고있다.
산월이는 부모가 도맡아 정해준 혼인으로 하여 병신이 된 성룡이와 살아가는 불행한 녀인이다. 그녀는 밤마다 이어지는 성룡이의 변태적인 발악과 행패를 초인간적인 의력으로 감내한다. 어차피 그녀도 동정을 자아내는 약자가 분명하지만 련민에 앞서 울분부터 터진다. 그녀의 불행은 스스로 자초했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팔자 타령만 부르며 체념에 빠져 있는 산월이의 형상은 얄밉기만 하다. "병신인데 불쌍해요", "남이 욕해요.죄 만나요." 따위의 낡은 륜리도덕관념으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고집하는데는 억이 막힐수밖에 없다. 더우기 성룡이가 병이 위중해 병원에 입원한 사이 박털보와 곽천이의 변을 당하고난 산월이가 말도 안되게 성룡이를 출원시켜 데리고 오는 장면에서는 주먹이 불끈 쥐여지기도 했다. 이것이 그 시대 우리 녀인상일가고 생각하면 그저 서러워지고 소름이 끼친다. 한편 도의적인 멍에를 걸머진 산월이의 정조관이 "나"의 출현으로 하여 조금씩 흔들리고 변화되여가고 있는것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밝은 생활양식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작품집의 표제로도 되여있는것을 보면 작자가 특별히 만족하고 득의하는 소설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산월이의 형상을 다각적으로 해부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작가의 심미취향 같은것을 유인해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산월이는 성룡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오직 녀자의 직분을 지키고 정절을 지킬 따름이다.". 그래도 그녀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만다. 어디로 갔을가? 물론 "그녀는 불구자남편을 버리고 행복을 찾을 녀인이 아니다.". 하다면 그녀가 성룡의 옆으로 다시 돌아올수도 있다는 제시인가? 누구처럼 기적같이 많은 돈을 벌어가지고 와서 성룡이의 병을 고치고 행복하게 살아갈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작가는 대답하지 않았다.산월이는 그런 확정성과 불확정성을 동시에 가지고있는 인간상이다. 허울뿐인 남편을 위해 일생을 희생할 각오가 되여있는가 하면 외간남자인 "나"에게 마음을 내여줄 여유도 있다. 모순당착한 산월이의 형상을 통해 우리는 변혁기를 살았던 우리 민족 녀성들의 고민과 몸부림을 느껴받을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산월이의 거처나 앞날이 별로 중요한것도 아니란 말이다.
"노을이 사라진 곳"은 상기 작품들과는 맥락을 달리하는 소설이다. 녀인의 몸체까지 포함한 모든것이 점차 상품화되여가는 현실에서 울고 웃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격변기에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림해야 하는가 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도출하고 있다. 형민이의 무능이 숙녀를 사창가의 녀인으로 만들었다면 궤변일가. 적자생존의 시대에 살면서 안일을 자랑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런 현상에서 전반 민족의 반성을 촉구하는 사색거리가 아닐가.
종합적으로 김운룡선생님의 작품은 매우 활달한 문제를 보여주고있다. 시대감을 지니면서도 초월의식이 뛰여난다. 자기 탐색의 주제를 이 정도로 구체화할수 있는 작가가 20세기 80년대의 새로운 문학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모을만 하다.
* 이 평론에서 "양귀비꽃"은 별종으로 제외하였음을 특히 밝힌다.
*주: 본 평론은 2005년 7월 김룡운선생 편저로 된 작가론 "김운룡과 그의 소설연구"에 수록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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