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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자의 전통 답습이 주는 계시
2017년 02월 19일 16시 06분  조회:622  추천:0  작성자: 장학규
경험자의 전통 답습이 주는 계시

한춘옥 수필 “어처구니가 돌리는 맷돌”의 묘미

장학규
 


경험자는 모종 의미에서는 베테랑을 지칭한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겪었지만 그것에 대한 리해나 상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경험자라고 일컬을 수 없다. 경험자는 비단 몸소 현장을 체험했을뿐만 아니라 동시에 관련 지식을 장악하고 나아가서 그것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할 것이다. 
한춘옥선생에게 경험자란 타이틀을 스스럼없이 달아주게 된데는 모름지기 그런 경우를 여러차례 귀동냥했거나 목격했기 때문이다. 청도라는 이민족지역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떡메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 한춘옥이다. 타민족한테 페가 될가봐 모두가 출근한 한낮에 화장실에서 떡메로 찰떡을 쳤다는 일화는 사뭇 감동을 자아낸다. 슈퍼에 나가면 손쉽게 사먹을수 있는 장류나 김치류를 직접 담궈 먹는 건 물론 가끔 엿까지 달여서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그 향기롭고 달달한 냄새에 갈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기도 한다. 
한춘옥은 어머니가 살림살이를 참 깐지게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또한 손재주가 비범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너나없이 배고픈 어린시절을 보냈었지만 그래도 색다른 음식을 바꿔가면서 해먹는 재미로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부모의 솔선수범이 전통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였다. 
맷돌에 대한 설파도 우선 그런 생활적인 토대가 있었기에 한폭의 자연화마냥 진실하다. 
서두에서 작자는 맷돌을 돌리면서 등장하고 있다. “온집안에 그윽한 향기를 날리며 사락사락 절주있게 돌아가는 맷돌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온다. 엄마 손때 묻은 맷돌은 기나긴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돌아가고 있다.”는 지문으로 미루어 아마 지금쯤 작자가 아파트에 맷돌을 갖추어두었다고 믿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참 난감한 일은 요즘 젊은이들이 맷돌이 무엇인지 모르는것이다. 그래서 “편평한 돌 두개를 위아래로 겹쳐놓고 아래돌의 중심에 박은 중쇠에 윗돌 중심부의 구멍을 맞추어 손잡이인 어처구니로 회전시킨다.”고 맷돌의 생김새와 구조를 설명하는 자상함을 선사하지 않을수 없다. 자칫 군더더기 같은 이 대목이 전반 글을 살아나게 하는 역할을 놀고 있다. 민족과 더불어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맷돌”이 이젠 “믹서기”에 의해 대체되고 “박물관”에 전시된 처지가 되여 그 모양과 역할마저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은 코마루부터 찡하게 만든다. 
물론 맷돌에는 과거세대의 많은 추억이 묻어있는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작자에게 맷돌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가난을 갈고 고부갈등을 가는 매개물이였으며 까칠한 메밀이 매끌매끌한 묵으로 변신하는 먹거리였으며 콩을 많이 넣어도 되는 놀이감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자가 노린 것은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에 대한 아쉬움만은 아니다. 생활 절주가 빨라지면서 “여유와 정”을 점차 잃어가는 인간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깔려있다. 인내와 믿음, 사랑과 화합의 소중함을 “맷돌”이라는 상징물에 접목했다면 틀린 표현이 아닐 것이다. 
하기에 작자는 분명 젊은이들에게 많이 생소한 “맷돌”을 청도에도 갖다놓는다. “암맷돌바다와 숫맷돌육지는 서로 껴안고 수많은 충돌과 마찰로 백사장을  펼치는 “ 장관을 만들어낸다. 가히 녀장부다운 호매로움이라 하겠다. 
한편 동시에 어쩔수 없이 감성적인 녀성이라는 “한계성”때문에 향수를 자아내는 이률배반적인 장면을 여기저기 흘러놓는다. “엄마의 삶을 분쇄하면서 가족들의 주린배를 채우고 생활의 편리와 윤택을 가져다준 맷돌은 참 많은 옛말을 갈아냈다.”, “세대주들은 빙빙 돌면서 비벼 갈아내는 화해의 맛과 멋에 한가닥 곤두서는 자신감을 키웠다.”, “엄마의 긴긴 날 설움은 하나로 망울져 하냥 사락대는 맷돌소리에 마음 싣고 부모형제와 생이별한 애통과 그리움을 갈고 갈았다.”, “맷돌같은 부대낌에서 화해로 가는 옛날 부모님들처럼 서로 껴안고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다.” 등 섬세하고 부드럽고 감칠맛나는 말마디들을 조미료로 많이 섞어넣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문화와 사회 비전을 유기적으로 이어놓은 성공작이다. 
 
 
 

부록:
 
수필
어처구니가 돌리는 맷돌
한춘옥
 
  온집안에 그윽한 향기를 날리며 사락사락 절주있게 돌아가는 맷돌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온다. 엄마 손때묻은 맷돌은 기나긴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돌아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맷돌은 생활속에서 사용하기에는 비효율적인 물건이요 단지 옛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인테리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 청도의 어처구니는 자연의 맷돌을 하루도 쉼없이 잘도 돌리고 있다.
  옛날에 석기인들이 최초로 회전축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낸것이 바로 맷돌이였다. 편평한 돌 두개를 위아래로 겹쳐놓고 아랫돌의 중심에 박은 중쇠에 윗돌 중심부의 구멍을 맞추어 손잡이인 어처구니로 회전시킨다. 마치 부부가 서로 만나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둥글게둥글게 갈아가듯이... 
  요즘 커피세대들과 자판기세대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맷돌이지만 옛날에는 집집마다 맛깔나는 음식을 하는 생활의 필수품이요 보물이였다. 지금은 믹서기가 자리바꿈을 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돌고 돌아야 했던 맷돌은 박물관에 모셔졌어도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엄마의 삶을 분쇄하면서 가족들의 주린배를 채우고 생활의 편리와 윤택을 가져다준 맷돌은 참 많은 옛말을 갈아냈다. 어쩌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 마주 앉아 맷돌의 어처구니를 돌리며 가난을 갈고 고부갈등을 갈아 냈으리라. 단단한 돌로 다듬어진 맷돌은 이민의 삶과 설움을 갈아내며 인내와 사랑을 키워냈다. 아이들은 사락사락 돌아가는 맷돌소리만 들려도 맛있는 밥상을 상상하면서 달콤한 군침을 흘리며 코를 벌름거렸다. 어린시절에는 딱딱한 콩알이 부드러운 젖빛두부로 까칠한 메밀이 매끌매끌한 묵으로 변신시키는 맷돌의 마술이 너무도 신기했다. 엄마는 무더운 삼복철에 메밀을 물에 불려서 맷돌에 곱게 갈아 묵을 만든다. 암맷돌과 숫맷돌이 서로 껴안고 갈아 만든 묵은 천하일품이다. 들깨와콩을 갈아서 고소하고 선들선들한 콩물을 만든다.
  물같은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빠른것이 <먹새>지!” 하면서 신나게 묵그릇에 바가지로 콩물을 푹푹 떠담는다. 콩과 메밀에 삶도 조곤조곤 갈아내시는 아버지는 허허하하 만족스럽게 웃으시며 가족들에게 인정을 팍팍 심어준다. 암맷돌과 숫맷돌이 서로 껴안고 수많은 충돌과 마찰이 만들어낸 부침개와 떡, 묵과 두부는 우리에게 진수성찬이였고 천국같은 행복이였다. 세대주들은 빙빙 돌면서 비벼갈아내는 화해의 맛과 멋에 한가닥 곤두서는 자신감을 키웠다. 덕분에 자식농사와 벼농사를 부지런하게 잘도 하셨다. 아마도 부드러운 두부에 양념장을 듬뿍 올려놓고 술잔을 쭉쭉 내면서 체력을 키웠는가 보다. 
  엄마의 긴긴날 설움은 하나로 망울져 하냥 사락대는 맷돌소리에 마음 싣고 부모형제와 생이별한 애통과 그리움을 갈고 갈았다. 부대끼며 마찰로 돌아가는 맷돌에서 여유와 인정을 터득했다.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알수없는 나는 두부콩을 갈때면 그냥 신나는 놀이처럼 덤벼본다.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돌리지만 둥글소처럼 떡 버티고선 맷돌은 심술부리며 어처구니 없는 나를 골탕 먹인다.
   엄마와 마주 앉아 어처구니를 잡고 돌리면서 나는 여유의 매력에 인정이란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 맷돌은 욕심부리지 않고 물과 콩의 맞춤형에 따라 적절하게 걸쭉한 콩즙을 갈아낸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조급해서 맷돌 아가리에 콩을 많이 넣어준다. 변성기같은  이상한 소리와 더불어 콩 알맹이가 줄줄 흘러 나온다. 머들머들한 콩짜개가 보이니 엄마는 나를 흘겨보며 “맷돌을 속힐려구? ”하면서  옆구리에 흘러나오는 콩즙을 숫가락으로 아가리에 떠넣는다. 맷돌은 성실과 기다림을 가르치는 어르신처럼 참신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요즘은 빨리빨리 공회전을 어지럽게 돌리며 여유와 정을 많이 잃어버리는 어처구니가 많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진다. 맷돌같은 부대낌에서 화해로 가는 옛날 부모님들처럼 서로 껴안고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다. 단번에 갈아버리는 믹스기보다는 맷돌이 갈아내는 구수한 맛과 멋이 그립다. 
   나는 청도에서 해안선을 바라보며 바다와 육지의 멋진 맷돌에 빠져든다. 하얀포말은 엄마의 넋이 되여 파도어처구니를 끝없이 돌린다. 암맷돌바다와 숫맷돌육지는 서로 껴안고 수많은 충돌과 마찰로 백사장을 펼친다. 맷돌아, 우리마음에 애환과 갈등을 갈며 여유와 정으로 사락사락 돌고 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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