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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와 노스텔지어의 또다른 해석법
2017년 07월 23일 19시 27분  조회:396  추천:1  작성자: 장학규
디아스포라와 노스탤지어의 또다른 해석법
-소설집 “청도로그인”(장학규 저)을 다운해본다
한영남
 

새삼스러울것도 없이!
중국조선족들의 민족대이동은 벌써 시작되였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에는 조선이나 러시아로 보따리장사를 나서더니 1992년 중한수교이후 물꼬가 트면서 급물살을 탄 한국나들이는 코리안드림으로 이어졌다. 겸하여 중국 대도시나 연해도시로의 진출 역시 만만찮은 흐름이더니 이제 청도 조선족인구가 10만명을 웃돈다는 집계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연변 내지 동북3성 조선족 집거지역의 조선족학교 페교현상과 편부모현상 및 가짜리혼과 국제결혼 등으로 말미암은 가정파탄 역시 간과할수 없는 작금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변방오지에서 부자꿈은 꿀수 있을지 몰라도 그 꿈을 현실화하는데는 어디까지나 제한성이 있었고 그래서 너나없이 외국이나 연해도시진출을 꿈꾸는것이다. 그에 따라 그런 우리 민족들의 삶의 생생현장을 리얼하게 파헤친 문학작품들 역시 신문지상이나 잡지지면에서 심심찮게 오르내리고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문학작품들을 통해 이역에 진출한 조선족들의 삶을 편린적으로나마 살펴볼수 있었고 이제 그런 작품들은 당당하게 일석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북경, 소주, 광주, 심수, 항주, 청도, 위해, 연태, 조선, 러시아, 한국 등을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장학규 중국조선족 중견작가의 단편소설집 “청도로그인”과 만나게 되였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장학규형을 잘 모른다. 더러 선배문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실루엣으로 알아모셨고 중국연해조선족문인회가 발족되면서 그무렵 대련에 있었던 나는 그 초기멤버로 청도행을 하게 되였다. 그날 술상에서 정식 인사를 틀면서 술 몇잔 마신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그리고 우리는 메신저로 문학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작년이던가 학규형의 부탁을 받고 어쭙잖게도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작품집에 서평을 쓰기도 했고 청도조선족문인회 문학상 심사를 맡아 청도행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문학을 생명처럼 여기는 몇 안되는 문인들가운데 학규형이 있다. 그리고 문학은 철자, 띄여쓰기부터가 기본이라고 고집하는 학규형과는 의기상투한데가 없지 않았고 그것은 기어이 우리의 인연을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시 부연하거니와 나는 학규형을 잘 모른다. 잘 모르면서 술과 담배와 문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턱대고 감히 형이라 불러댔고 평소 이런저런 투정질도 곧잘 하군 했다.

그런데 정작 이 글을 쓰려고 보니 잘 모르는것(잘 모른다기보다 많이 접촉하지 못한것)이 오히려 순수 작품만으로 몰입할수 있지 않나 싶어 약간은 헷갈리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제 작품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노라면 작가 장학규는 인간 장학규로 다가오지 않을가 싶어 용기를 내여 소설집파일을 열고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스토리로의 접근
일단 이번 소설집에는 순수 청도진출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에 앵글을 맞추고있다. 그 스토리들을 대충 살펴볼것 같으면-

“하늘엔 울바자가 없다”에서 주인공 봉은 회사를 말아먹고 현실도피를 꾀하면서 등산길에 오른다. 절경은 아니더라도 부르면 선녀라도 나올것 같은 산행길에서 봉은 어느 순간 환각을 느끼며 폭포아래로 추락하고만다. 그런 봉을 곁에서 지켜본 조씨는 봉의 행장을 챙겨가지고 도관에 오고 도인들에 의해 구원된 봉을 꼬드겨 어느 동굴로 향한다. 그 동굴속에서 봉은 동반자살을 앞두고 집에 전화를 했다가 기사회생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죽기 위해 쓰는 힘으로 살면 살아내지 못할리 없다고 했던가. 거의 파묻힐번한 동굴에서 봉과 조씨는 죽기내기로 탈출을 강행하고 진작에 조씨와 동반자살이 약속된 취의 합류로 탈출을 완성한다. 소설은 봉의 육체적구원으로부터 시작되여 봉의 정신적구원(동굴에서의 탈출은 봉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으로 승화되면서 시종 탕개를 늦출수 없도록 독자들을 깊숙이 소설속에 빨아들이는 강한 인력을 보여주고있다.

“갈대의 뿌리는 얼마나 깊을가”에서 한국인 맹사장은 빚더미만 남긴채 어느날 잠적해버린다. 결국 통역을 해온 준호는 어쩔수없이 볼모로 잡히게 되고 쇼량과 쇼밍네 형제에 의해 컨테이너에 연금된다. 거기서 준호는 쇼량의 녀동생 링링을 만나게 되고 인적이 없는 그곳에서 준호와 링링은 사랑에 불을 붙인다. 지극히 피동적으로 연금되였던 준호는 갓 잡아올린 물고기마냥 싱싱한 링링한테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나아갈 길을 알아차린다. 맹사장이 남겨둔 낡은 기계를 다시 작동시켜 밀린 로임도 주고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한국인에만 의존하던 중국인 내지 중국조선족들이 스스로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있다. 특히 소설은 홍합에 대한 연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성실한 노력만이 살길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조곤조곤 까발리고있는것이다.

“가장자리”에는 청년 하나가 등장한다. 청년에 대한 일체 정보는 깡그리 삭제된채이지만 그것은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것이 아니다. 요는 란희가 그 청년을 대하는 태도변화에서 비록 돈만 주무르는 장사군이라 하지만 마음속 깊이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들의 순수하고 질박한 미덕이 부활하고있다는것이다.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삶의 터전을 닦는다는것은 전쟁에 다름아니다. 그런 삶의 소용돌이속에 란희라는 연약한 조선족녀성은 그래도 살아보려고 아득바득한다. 그런 란희네 상점으로 어느날 예고도 없이 문득 뛰여든 청년은 그러나 란희의 눈에 미운 사람이 아니다. 단지 조선말을 한다는 그 리유만으로도 충분히 이웃집 청년을 떠올리게 하고 그래서 란희는 라면을 끓여주고 남편앞에서 슬기롭게(?) 그 청년한테 돈 백원을 줄수가 있었다. 아리랑으로 같이 울수 있는 민족임을 다시한번 재확인할수 있는 대목이다.

“바람의 옵션”에서는 약간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국진출 한국인 준호는 조선족녀성인 춘심이한테 련정을 느끼고 모든것을 훌훌 털어버린채 둘만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은 처처에서 송곳이며 망치며를 내들고 찌르고 두드리며 못살게 군다. 돈만 부족되는 실정이라면 혹시 그들은 운명이라 체념한채 죽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집주인 진씨는 춘심이의 녀자를 넘보고있었고 위기일발의 시각에 준호가 등장한다. 욕심을 채우지 못한 진씨는 세상 소인배가 다 그러하듯 경찰에 신고했고 준호는 불법체류에 걸려 구치소에 갇힌다. 이 소설은 새로운 시각에서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투영시키고있어서 이채롭다.

그런가하면 연해진출 조선족들은 “129번” 버스를 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29번 버스에 승차한 주인공의 현실과 생각 사이를 넘나들면서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에 각광을 떨구고있는 점이 특이하다. 서두와 결말에서 “아, 미치겠네!”를 반복하면서 현실생활의 고달픔과 팍팍한 삶의 모습을 클로즈업시키고있다. 묘한 구성이라 해야겠다.

누구라도 한번쯤 시도해보았을법한 “일탈”에 이른다. 일상에 찌들고 지친 동이는 일탈을 꿈꾸면서 바다낚시에 나선다. 그는 바다낚시를 하다가 바지락을 줏는 녀인과 조우하게 되고 그 녀인을 보는 순간 언뜻 고향집 쌍가매를 떠올린다. 그리고 어쩔수없이 밀물에 포위된 두사람. 그들은 살기 위해 같이 불을 지펴야 했고 그들은 살기 위해 음식을 나눠먹어야 했으며 그들은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를 탐해야 했다. 썰물이 가고 녀인은 사라져간다. 그 녀인을 바라보는 동이의 눈에는 기어이 쌍가매가 다시 떠오르고있었다. “일탈”은 자연속에서 인간의 본모습을 적라라하게 보여주었다는데서, 또 그것이야말로 우리 본연의 모습임을 환기시켜주었다는데서 점수를 획득하고있다.

“인저리타임”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주인공 조씨는 밥집의 남주인이다. 그의 유일한 락이라면 바다서리를 하는것이다. 그러나 어느날인가 흰얼굴의 등장으로 그의 바다서리는 서리를 맞게 된다. 그렇게 등장한 흰얼굴은 “주인장, 여기 술 한잔 주시오”를 네번 정도 웨치면서 각각의 꿈과 모습으로 조씨앞에 나타난다. 한국행을 해야만 돈을 벌수 있다고 여기는, 그리고 일확천금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는 우리 민족의 못난 모습을 아프게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인상적인것은 매번 같은 말로 나타나지만 매번 다른 옷차림인 흰얼굴은 그대로 그의 부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있으며 그런 흰얼굴의 부침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투영시켜주었다는데서 이 소설은 성공하고있는것이다.

소설집의 타이틀로 된 “청도로그인”은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의 축영이라 해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주인공 위동의 눈에 얼비친 신우, 범철, 남수, 찐따거, 장박사 등은 각각의 위치에서 각각의 우리 신변 인물들을 대변하고있다. 특히 이 소설은 재미나는 에피소드들을 소스로 얹어주어 재미있게 읽히면서 진한 사색을 던져주고있다. 타향에서의 조선족들의 삶, 그들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다. 살아가는 소리들의 하모니이다. 아니다. 살아있는 목숨들의 히질긴 아우성이다. 그것을 “청도로그인”은 한 사람(위동)의 스케줄에 따라 주욱 우리앞에 펼쳐보이고있다. 

“사거리”는 특이한 스토리를 가지고있다. 이 소설은 같은 서두를 가지고 시작된 여섯개의 이야기가 각각의 다른 결말에 이르면서 소설의 묘미를 더해주고있다.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인용이 장황하지만 이런 서두로 시작된 이야기들은 그러나 각각 다른 흐름으로 번지면서 읽는 이들에게 자못 신선한 의미로 다가온다. 결국 같은 아침을 맞이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써나가는 오늘 우리 삶의 모습 그 자체인것이다.

“조깅”은 만득이의 아침조깅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과 회상의 짬뽕맛이 일품이다. 
눈 없는 이곳의 미적지근한 겨울이 다가오면 항상 저멀리 처마밑에 고드름을 만드는 고향의 겨울이 떠올랐고 주변 농군들이 바짝 메마른 누르끼한 땅에 인분을 퍼놓고 종자를 뿌리는 봄날이면 어린시절 늘 보아왔던 시꺼면 흙에 그대로 싱싱하게 곡식이 자라던 고향의 비옥진 들판이 눈앞에 우렷이 나타났다.

어쩌면 청도 조선족들의 노스탤지어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아닐가 싶다.

고향의 하늘이 기억에 새롭다. 티 한점 찾아볼수 없이 맑고 깨끗했던 하늘이 태반이였다. 사람의 모습이던것이 급작스레 짐승의 형상으로 변하고 산수가 불시에 수목으로 바뀌는 흰구름의 조화는 신비하기만 했다. 봄이면 아지랑이 몰몰 피여오르는 가운데 강남 갔던 제비가 하늘을 오르내리며 회귀를 자랑했고 여름에 접어들기 바쁘게 싱그러운 꽃향기에 실려 잠자리들이 너울너울 춤춘다. 가을이면 애처로운 울음을 남기며 새로운 서식처로 자리를 옮기는 기러기떼가 줄을 이었고 겨울이면 솜같이 가벼운 눈꽃이 하늘하늘 춤추며 내렸었다. 고향은 대체로 랑만이였고 동화였다.
고향은 만득이가 남보다 더 일찍 돌아가야 할 인생역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만득이의 고향에는 그가 그토록 잊을수 없어하는 민정이가 있다.

이 소설은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저마다의 고향생활을 떠올리면서 먼 고향하늘 우러러 눈물 글썽이게 만드는 매력 아니, 마력이 있다. 

“필터링”은 다분히 기봉소설스럽다. 그러나 우연을 필연처럼 만들고 필연을 우연인듯이 받아들여야 하는게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주인공 환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마작판에 끌려들게 되고 그로부터 구레나룻의 끈질긴 추격에 시달린다. 도망치는 환에게는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저런 기회들이 생겨나고 나중에 환은 떳떳이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1원짜리 동전은 스토리전개를 위해서뿐만아니라 주인공의 성격발전변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필수불가결의 요소인셈이다.

이제 “살어리민박”에 들려 이야기를 들어보자. 민대리로 통하는 봉수는 한국사장인 한사장이 회사부도로 경영을 접게 되자 마무리를 도울 양으로 살어리민박에 머문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뚱보아줌마, 한국 김씨와 연길 김씨, 심양 신씨와 그의 녀자인 말라꽹이 등이 등장해서 나름대로의 역할에 충실한다. 민박 자체는 별 볼일 없어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보일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의 하나가 될것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할수 있는 조건부를 만족시키고 각자 부담없이 자기 편한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는 여기에 민박의 재미스러움이 깃들어있는것이다. 살제 소설에서도 삶에 지친 사람들과 꿈에 부푼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재기를 꿈꾸는 무대로 살어리민박은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은 각 지역인들의 성격특점까지도 간과하지 않고 극명하게 그려보이는 세심한 배려까지 하고있다.

황혼사랑을 그려보인 “네모난 하늘”(건국댁과 해방씨라는 작명이 인상적이였음)과 사랑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석로인의 전설”(재치넘치는 대화가 읽는 내내 독자들의 입귀에 미소가 걸리게 만드는 소설), 인생은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온다는 “노오란 동그라미”(사랑놀이에 대한 묘사가 백미였음) 등 소설들도 각각의 스토리로 독특한 맛들을 내면서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모두어보면 학규형의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일제히 연해지역진출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에 서치라이트를 켜고 시종 그들의 희노애락을 다루면서 우리 민족들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데서, 특히 우리 조선족들의 청도 현주소를 짚어보였다는데서 조선족문단의 한 공백을 메우는 장거로 된다고 감히 우기고싶다.

 
언어로의 접근
학규형은 언어야말로 문학의 기본이라고 힘주어 설파하거니와 소설적인 언어를 주조해내는 마술사적인 힘을 가지고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의 소설적언어들은 자칫 쉽게 스칠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하나 곰곰 따지고 음미해보면 그 생동함과 그 풋풋함과 그 신선함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백마디 말하는것보다 그의 소설속에서 쉽게 채집할수 있는 례문들을 같이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것이 오히려 설레발치기보다 나으리라.
 
나무의 초록색보다 바위의 회색빛이 더 많이 보일 정도로 순도높은 바위산이다. 굵은 바위덩치들이 곳곳에서 힘자랑을 한다. -”하늘엔 울바자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옆에 있어봤자 밥축이나 내는외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남편이란 인간때문에 반나절 남짓 뇌신경에 바이러스가 감겨든게 억울하기도 했다. -”가장자리”

사실 란희도 인젠 모가 다 갈리여 더이상 정 맞을 자리도 없다. 벌써 오래전부터 내릴대로 내려 더이상 내릴 꼬리도 없다. -”가장자리”

조물주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갖다붙여놓은듯한 벌름코에서 벌렁벌렁 코방울이 나왔다들어갔다할때면 세상은 완전 지옥이였다. -”바람의 옵션”

대신 심술이 온몸에 방울방울 묻어났다. -”바람의 옵션”

남보다 먼저 올라가도 어차피 시루속 콩나물처럼 허리 휠 틈도 없이 꼿꼿이 서서 가야 할 운명이 분명하지만 목숨을 걸듯이 밀고닥치며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인생이 참 더럽고 역겹다는 느낌뿐이었다. -”129번”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우울이 그대로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129번”

10월 중순의 청도의 아침 해살은 미안한줄도 모르고 그저 따갑기만 하다. -”일탈”

이제는 수도 없이 돌리고 돌린 레코트판이다. 스팸메일 같은 과거로 무조건 삭제하고프기만 한 아픈 기억이다. -”일탈”

하기사 모기 배꼽마저 빼먹을 요즘 세상에 누구를 믿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였다. -”인저리타임”

“아이쿠 얼마나 말을 조리있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깜짝 속히겠더라구요.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사람이데요.” -”인저리타임”

하품이 줄달음쳐 나왔다. -”청도로그인”

사는건 머슴급인데 포부는 세종대왕급이라고나 할가. -”사거리”

희는 마침 울고싶었는데 때맞추어 뺨을 때렸다는듯 눈가에 실눈물을 떠올렸다. -”사거리”

양부장이랑은 같은 채널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끔 둘이 묘하게 도킹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조깅”

“이기기 다행인줄 알어. 저 친구 숨쉬는거 내놓고 다 거짓말인데 오늘은 간만에 부처님이 되실 모양이야.” -”필터링”

어쩌면 후둑후둑 튀던 심장이 눈깜짝할 사이에 랍치당한 모양이다. -”필터링”

아무튼 정신이 약간 가출된 상태가 아니고서는 뚱보아줌마와 보조를 같이한다는건 어림 반푼도 없었다. -”살어리민박”

무지막지한걸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모양으로 김씨는 항상 대방의 기분 같은것을 념두에도 두지 않았다. -”살어리민박”

무안해진 뚱보아줌마가 왕벌처럼 왕 고아댔다. -”살어리민박”

그러나 솔직히 건국댁은 그런 자연의 위대함에는 멸치 똥만큼도 관심이 없다. -”네모난 하늘”

개 풀 뜯어먹다가 기침하는 소리하고있네. -”네모난 하늘”

물론 물고기에게 수영 가르치는 격이지만 평생 총을 가지고 논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있었다. -”네모난 하늘”

번지수 다른 소리 고만해! 나 지금 요상한 쇼를 구경할 여유가 없거든. -”석로인의 전설”

13억 인민 모두 그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석로인의 전설”

손가락으로 슬쩍 밀었다가 놓으니 씽하고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는것이 생동하게 알려왔다. -”노오란 동그라미”

작가란 모름지기 언어의 마술사여야 하고 언어의 련금술사여야 할것이다. 언어의 마술사란 언어를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가 될것이고 언어의 련금술사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서 작품의 감칠맛을 더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규형의 소설에 등장하는 언어조합들은 그 아니면 아무라도 쉽게 흉내낼수 없는 오로지 그만의 소설적언어로서 이런 언어들을 씹으며 읽는 그의 소설은 그래서 그대로 농익은 감주같은 깊은 맛을 내는것이다.

화석화된 고루한 언어가 아닌, 그렇고 그런 매너리즘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살아 숨쉬는 싱싱한 소설언어들의 향연은 이 소설집의 품위를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우리들에게 탈상식적인 서사방법을 제시해주고있다. 

 
테마로의 접근
전반 소설집의 15편 소설들은 일제히 청도를 배경으로 하고있으며 조선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있다.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이 결코 생경하지 않는 요즘 이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엮어가고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장 쉽게 얼비치는것은 다름아닌 노스탤지어이다. 살다가 지쳐서 어느날 술 한잔을 하거나 비 내리는 날 창가에 서서 먼 고향하늘켠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고향에 대한 향수가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는것은 인지상정이다. 하다면 우리는 왜 이 고향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가는것일가. 인간은 아무라도 모체귀환으로의 본능을 가지고있다. 잠 잘 때 자궁속 모습을 하는것이 가장 편하다는 연구결과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아무래도 그 세포마다에 본능적인것들을 소지하고있는 모양이다. 자궁-엄마-고향으로 이어지는 이런 모체귀환의식은 자궁이 곧 엄마요 엄마는 곧 고향이라는 대용을 가능케해주며 그런 의미에서 고향은 무의식속에서라도 떠올려지는 가장 따스한 품이 되는것이다.

소설집 “청도로그인”은 청도진출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에 각광을 떨구고있다. 확대경을 대든 프리즘을 대든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우리 민족의 한 군체를 대변하고있는 청도조선족들은 지극히 상징적이다. 세계 각지에 널려있는 유태인들의 그것과도 변별되는, 세계 각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민족들의 그것과도 변별되는 오로지 중국조선족들의 현주소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도조선족들은 다분히 상징적이고 오늘날 현시점에서 우리 민족의 또다른 양상을 보여주고있는 셈이다.

두고온 고향에는 어릴적 깜장네도 있을것이고 고향의 아무 풀가지나 꺾어보아도 거기에서는 어릴적 추억들이 까르르 웃어줄것이다. 또 어쩌면 사립문 열면 엄마의 고무신 먼저 아버지의 쿨룩거리는 기침소리가 마중나올것 같은 고향, 그래서 고향은 우리의 가장 큰 뒤심이고 그 뒤심이 있어 우리는 타향에서도 씩씩하게 살아낼수 있는지도 모른다.

전반 소설집을 관통하고있는 이런 노스탤지어는 바로 오늘날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고있는 청도진출 조선족들의 심층 밑바닥에 흥건히 고여있는 민족정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것을 이번 소설집에서는 하나의 올곧은 맥으로 시종 꿰주고있는것이다. 환언하면 청도진출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이면서 인간들의 궁극적인 심상을 그려보이고있다는것이다. 이것은 소설집 전반이 텍스트이기에 구태여 례를 드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좋을것이다.

이상 스토리와, 언어와, 테마의 각도에서 소설집 “청도로그인”을 살펴보았다. 요약해보면 학규형의 이번 소설집은 청도진출 조선족들의 삶의 양상에 앵글을 맞추고 그들의 디아스포라적인 삶의 궤적을 가감없이 보여주면서 우리 민족의 오늘날 현주소를 현장감있게 보여주고있다. 매끄러운 소설적언어들에 힘입은 소설들은 또 맛스러운 유머와 번뜩이는 위트까지 동원시켜 독자들의 구독을 부채질하고있으며 장학규형 혼자만의 목소리를 내고있다. 우리는 일단 “청도로그인”이라는 도어스커프를 통해 청도진출 조선족들의 삶을 엿볼수 있다는데서 이 소설의 성공을 미리 축하할수 있는것이다.
학규형의 또다른 작품들과 만날 그날을 기다려본다.
 
갑오년 사랑의 달에
할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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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촌놈
날자:2017-07-24 08:50:34
디아스포라와 노스텔지어의 또다른 해석법
열여덟글자 제목에 열한글자가 외래어이다, 이래야만 박식을 뽐낼수 있는가,그저 글쓴 사람의 결핍증을 보여줄뿐이다.평론은 화려한 말장난을 수요하지 않는다. 위평론가들이 란무하고있는 연변문단,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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