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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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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2017년 09월 15일 19시 29분  조회:654  추천:0  작성자: 장학규

수필

어느 하루

장학규

 
 
“안녕하세요” 핸드폰 알람입니다. 옛날에 시간 맞추어서 출근하지 않으면 안될 때 설정해놓았던 모닝콜입니다. 쫓기는 꿈을 꾸다가 그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악몽이 분명한데도 진땀은 없었습니다. 어쩐지 예전같지 않습니다. 꿈도 자극이 없이 그저 심드렁해집니다. 아침 다섯시입니다. 다시 잠들기는 열두번도 틀렸습니다. 늙었다는 징표가 틀림없습니다. 허글픈 웃음이 나갑니다. 그리고 정신을 도사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마약처럼 중독이 되여진겁니다. 열개가 넘는 위챗방들이 와글바글 끓여넘칩니다. 수십명이 수천마디는 한것 같습니다. 모두 무시해버리고 개인 대화방을 봅니다. 홍철이란 친구가 걸어온 말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언제나 타이핑하는것이 아니라 음성메시지를 남기기 즐깁니다. 어제 죽이 되도록 술을 같이 먹은 친구가 무슨 정신에 메시지를 다 남겼냐고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혹시나가 역시나로 “잘 자소.”가 고작입니다. 그다음 마누라가 새벽녁에 언제 돌아오냐구 차문한 문자가 보입니다. 내가 그렇게 늦었던가고 끊겨진 필름을 아무리 이어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모멘트는 더욱 난시가 아닙니다. 동네방네 아우성소리 없는게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긁어 올리면서 대수 아는 사람이면 무조건 모두 따봉을 해줍니다. 글까지 읽어줄 흥심은 아무래도 없습니다. 다시 내가 팔로우한 위챗공중계정에 들어갑니다. 할 일 없는 날이면 해종일 세월을 아쉽지 않게 보낼수 있는 수십개의 계정들이 서로 자기를 먼저 읽어달라고 빨간 유혹을 해댑니다. 그속에는 고금중외, 동서남북, 희노애락 없는게 없어 자기도 모르게 깊숙히 빠져듭니다. 밥 안 먹냐구, 출근 안할거냐구 안해가 쉴새없이 바가지를 긁어서야 마지못해 침대에서 궁둥이를 떼고 핸드폰에 그대로 눈을 꽂은채로 식탁으로 옮겨앉습니다. “우우, 핸드폰안에 쑥 들어가 살지 아예” 안해의 잔소리를 귀등으로 흘리며 아침을 먹습니다. 이제는 밥이고 채소고 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배를 불리기 위해 먹습니다. 밖에서는 한겨울인데도 시어미 구박을 억수로 받는 시집살이 며느리의 하소연같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이넘의 동네는 참말로 말릴수 없습니다. 회사로 나가면서 구멍 뚫린듯한 하늘을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제정신 잃고 한동안 올려다봅니다. 저렴하게 생겼으면 단순하게 노는게 제격이리라. 나의 신조이기도 합니다. 미스 리도 나오고 미스 권도 보이고 사무실 직원들은 다 나왔습니다. 언제나 착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큐큐에 도킹하기 바쁘게 하단에 노란 불이 깜박입니다. 대학동창 근석이가 말 걸어온겁니다. “뭐해? 점심에 술 한잔 빨자.” 이 자식은 입만 열면 술입니다. “안돼, 약속 있어.”. “그럼 저녁에 만나자.”. “저녁도 예정되여있어.”. “씨, 니 리총리보다 더 분망하구나.” 자식은 지지벌거리면서도 순순히 물러납니다. 동창은 이래서 좋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아무 말 해도 마음에 새겨두지 않습니다. 왈라당 절라당 쌍코피 터지게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보니 벌써 열두시가 다가옵니다. 그간 김사장으로부터 정확히 전화 세번, 핸드폰 메시지 네번 왔습니다. 회사 근처에 왔다고 했다가 다시 식당으로 이동했다고 했다가 또 요리 주문이 끝났다고 고리때마다 알려옵니다. 포워딩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두루 자기 회사를 좀 세상에 홍보해달라는 얘기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나서지만 솔직히 나는 술보다 그 술가치만큼 돈을 나한테 주면 더 좋겠습니다. 신체가 점점 말이 아닙니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쑤시고 술 먹지 않은 상태에서도 괜스레 마른 구토질이 나옵니다. 이 나이에는 죽음이란 형체가 어슴프레 보이고 냄새도 조금 맡을수 있습니다. 가끔 이름 모를 두려움이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갑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술상에만 앉으면 기분은 업됩니다. 딱 누가 오르가즘을 주사놓은듯 세상이 밝고 맑고 또 따스해집니다. 사는 꼬라지는 머슴급이여도 기분은 진시황급이라고 해야 할가요. 아무튼 그런대로 크고 싼 ‘외할머니네 떡’에다 소주 두병을 말아먹고 정신이 거의 가출 상태가 되여 식당을 나서는데 맞춤하게 마누라한테서 애한테 줄 방학 선물을 사오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젠 벼라별 선물이 다 있습니다. 김사장과 빠이빠이 하고 슈퍼에 들어가 아무거나 직원이 가리켜주는대로 한아름 선물이라고 샀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이대로 회사에 들어가기는 아무래도 무리인거 같아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는데 회사에서 느닷없이 호출이 들어왔습니다. 무좀발로 고생하며 어슬렁 회사에 갔더니 삶아놓은 숫돼지가 눈을 번쩍 뜰것 같은 깜짝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복리를 준다는겁니다. 빈상에 파리만 분주하게 앉았다가는 집안치고 대단히 굉장히 억수로 분에 넘치는 새해의 인사가 아닐수 없습니다. 홍철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시인의 ‘쥐구멍에도 빛이 들 날이 있다’란 시가 떠오릅니다. 기쁜 김에 세상이 새노랗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아직 술이 깨지지 않았는데도 저녁 미팅을 잡은 글친구들의 모임에서 전화가 오기 바쁘게 지금 당장 간다고 허드레를 떨고 도킹 길에 나섰습니다. 참 내 인생도 대략 난감합니다. 어느 랭장고에 랭장했다가 한 20년 후에 녹여서 세상에 다시 내놓으면 그럭저럭 인재 취급은 받을거 같은데 왜 이 활기찬 시대에 납셔가지고 민페가 되도록 과부집 숫캐처럼 싸다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내 삶은 덤으로 벌어진 느낌입니다. 고스톱 쳐서 따내온 나이입니다. 공짜로 얹어진 삶을 즐겁게 치렬하게 살아주는게 나의 도리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취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이태백을 말한거 같고 요즘 우리문단에서 화제가 되고있는 ‘단군문학상’을 얘기한거 같습니다. 1차에서 2차로 넘어간거까지는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택시에 태우고 한 말이 환청같이 들립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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