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리포터는 덤으로 받은 행운
가끔 내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였을가 저절로도 궁금해진다. 마을에 우리말 학교가 없어서 앞동네로 유학 다니다가 소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영문 모르게 되쫓겨와 초중까지 동네한족학교를 쭉 다녔었다. 가정이 가난해 그 초중도 끝내 마치지 못하고 그만 사회청년이 되고말았다. 내 가방끈은 대개 여기까지이다.
후에 글이란 것에 반하게 되면서 어찌어찌하다가 연변대학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운수가 좋아서였다. 넘어진게 용케 떡함지에 엎어지거나 지나가는 미인의 품에 덜컥 안겨진 형국이라 형용해도 크게 과하지는 않다. 로또 당첨같은 기적이였다. 정말이지 내딴것이 어떻게.
그만큼 내가 글을 쓰게 되였다는게 꿈만 같고 신기하다.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모르겠다. 따분한 농촌생활이, 지긋지긋한 가난이 나를 글쟁이로 변신시켜준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신문기사는 내 글의 기반이고 모태가 틀림 없다. 시골의 통신원으로부터 시작해 료녕신문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흑룡강신문사까지 두루 전전하면서 36년동안 내가 쓴 리포트는 어림잡아 1천편은 넘어된다. 문학작품의 배가 넘는 수치이다. 작가이기전에 먼저 기자의 타이틀을 달아야 맞겠지만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공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숙명으로 믿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천만다행스럽게도 또한 사람을 잘 만난 행운을 지니고 있다. 골목마다 구비마다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감사한 분들이 있었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아마 나는 오늘날까지 뻗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선 흑룡강신문사의 리장수 선생을 꼽아야겠다. 나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준 스승이다. 그다음은 료녕조선문보의 김광명 선생님이다. 내가 전문인의 길을 걷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멘토같은 분이다. 그리고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의 김두필 선생이다. 더 넓은 길로 나아가게 곬을 만들어준 고마운 은인이다. 끝으로 청도에서 만난 박백림, 박영만 두분 선생이다. 이분들은 나에게 운신의 플랫폼을 만들어준 지인들이다.
더불어 이날이때까지 경제적인 후원을 해주면서도 이름을 밝히지 못하게 하는 모 지성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한다.
아마 문학작품집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리포트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가 한다.
청도에서
2017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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