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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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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잡이 리묵 선생
2018년 05월 15일 15시 58분  조회:875  추천:0  작성자: 장학규
 
인생의 길잡이 리묵선생
장학규
 
 
1986년 4월, 북방 특유의 맵짠 봄바람이 불어치는 어느날, 마을 확성기에서 느닷없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문사에서 온 분이 찾고 있으니 속히 촌사무실로 나오라는것이였다. 
(허, 내가 언제 인기인물이 되었나?)
집구석에 처박혀 잘 되어지지 않는 글을 한창 긁적거리던 나는 오리무중에 빠져 문을 나섰다. 
웅장한 체구에 풍채 늠름한 분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데 세상물정에 눈 어두운 나는 되려 서먹서먹해서 간신히
“누구신지요?”
하는 물음만 겨우 내뱉었다. 
“이장수라고 부르오.”
선생은 나의 과문(寡闻)을 별로 탓하는 눈치가 없이 시원스레 대답하며 명함장을 내주는 것이었다. 눈은 있어도 망울이 없는 격이지. 내가 당황하여 관청에 잡혀간 촌닭 같이 어색하게 명함장을 받아서 대강 훑어보고 또 멋없이 되돌려주는데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가지라는 것이었다. 
(행운의 신이 드디어 추파를 보내는 건가? 간밤에 꿈자리가 좋더니…)
나는 꿀 먹은 벙어리 같이 헤벌쭉해서 누가 그것을 빼앗기라도 하듯 명함장을 바삐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땅콩을 공짜로 주어먹는 심정이었다. 
이런 재치있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선생과 마주 앉은 그 자리에서 나는 톡톡하게 ‘욕’을 얻어먹었다. 눈알이 툭 튀어나오게 ‘욕’을 얻어먹었다. 
보아하니 필력은 약간 있는 것 같은데 알맹이가 전혀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초중도 졸업하지 못하고 그것도 절반은 한족학교에 다니고서 어떻게 글을 쓴단 말인가? 예리한 분석력, 힘있는 필력을 갖추자면 반드시 대학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지금 연변대학에서 통신생을 모집하니 대학공부를 하라.
대개 이러루한 ‘욕’이였다. 아니, 충고였다. 위가 아파 시달리고 있는 리묵선생이 ‘욕’할 상대가 없어 시골벽지로 어슬렁 찾아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초학자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병중의 몸으로 8리 길을 걸어오고 또 걸어가도록 촉구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글이 잘 안되는 것이었구나.)
나는 눈앞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러 해를 두고 응어리졌던 마음속 의문이 싹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나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차례졌다. 바로 그해의 한여름에 우리 집 문앞에 연변대학의 자비반이 세워져서 나는 일면 농사를 지으면서 일면 지식의 바다에서 서툰 자맥질이나마 답습할 수가 있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날의 그 정경을 돌이켜보면 저도 모르게 한없는 자격지심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점심을 잡숫고 가시라는 말씀도 여쭙지 못하고 자전거로 모셔갈 궁리는 더더욱 하지 못했던 나였으니깐. 몰인정해도 유분수이지.
나는 그렇게 철부지였다. 세상을 통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리묵선생은 틈틈히 시간을 짜내어 편지를 보내와 나를 고무하고 격려해주었다. 문학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여러 장소에서 나를 꽤나 추었던 모양으로 많은 문우들이 나와 선생과의 관계를 문의해오기도 했다.
“나의 선생님입니다.”
직접 학문을 전수받은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그렇게 대답하고픈 마음이었다. 높은 가지에 매달리자는 약은 수작은 절대 아니다. 나로 하여금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엄격히 말해서) 나의 스승임에 틀림없다. 
이런 것을 두고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지우지은은 영생불망이라’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내 마음속에 건드릴 수 없는 우상으로 남겨진 선생님이시다. 이름난 평론가 리묵 선생에 앞서 우선 살뜰한 부형과 같은 존재로 나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그후로 여러번 리묵 선생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엄숙하지만 유머가 결핍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칼날 같은 성격을 소유한 선생을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술은 썩 잘하나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인치고는 퍼그나 드문 현상이었다. 
‘은하수’잡지 창간 100호 기념모임에 참가했을 때다. 그때 리묵 선생은 신문사 일을 계속 보면서 목단강 모 기업에 잠간 몸을 붙이고 있었다. 회의 기간에 약간의 틈이 생겨서 나는 선생을 따라 그의 사무실에 갔었다. 이심전심이랄지 선생의 뜨거운 사랑에 감사를 드리고픈 마음이 불시에 생겨서 도중에 괜찮다는 담배 한곽을 사서 드렸었다. 딴에는 가장 통크게 논셈이었다. 
“여직 몰랐어? 나는 담배를 안하는데.”
그러면서도 나의 마음을 상할까봐 그러는지 받아두는 것이었다. 타인을 어떻게 존중해야 되는가 하는 생동한 교육을 나는 받았다. 
그날 선생은 처음으로 많은 말을 했다. 기업에 몸을 묻게 된 연유로부터 문학과 경제의 관계, 그리고 인생에 대한 투철한 이해들을 이야기했다. 
어찌보면 그번의 상면이 또 한번 나의 인생에 큰 충격을 준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오늘날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앞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또다시 끈질기게 새로운 도전에 맞설 수 있고 또한 얼마간 성숙될 수 있은데는 리묵 선생의 장자답고 지성인다운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때문에 선생과의 거래가 중단된 상태이지만도. 내가 바삐 돈다는 실정만으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씀할 거라는 믿음만으로도 나는 리묵 선생께 부끄럽지 않고 미안하지 않다. 
청도에서 리광수 선생을 우연히 만나 리묵 선생께서 부교수급으로 진급된다는 소식과 평론집을 출판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우연히 듣고 오래동안 흥분되었었다. 따라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 책을 구할 방도가 없어 여간만 섭섭하지 않았다. 
그만큼 언제, 어디서나 선생의 따스한 가르침을 받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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