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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여우를 키우고 있습니다
2018년 09월 19일 19시 48분  조회:897  추천:0  작성자: 장학규


수필

불여우를 키우고 있습니다

장학규


  금요일 오후이다.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이번 학기부터 딸애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반급 애들 태반이 학교에서 주숙한다면서 한사코 우겨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솔직히 우리 부부는 별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늦자식으로 키워서 처음으로 애를 집밖에 내놓기 때문이었다.

  이 한주일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른다. 마누라는 언제든 내놓을 자식인데 지금부터 단련시키는 것도 좋다면서 대범한체 했지만 가끔 창밖을 넋잃고 내다보기가 일쑤였다. 나는 나대로 말동무가 없어서 서운했다. 부부가 오래 같이 살면 할 말도 거의 없다. 몸으로도 눈길로도 상대가 할 말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딸애가 옆에서 재잘거리면서 나와 싱갱이질해주기를 더 바라는지 모른다. 그만큼 나는 딸애와 토크쇼삼아 입씨름하는게 마냥 즐겁기만 하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개학날도 그랬다. 아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땀을 벌벌 흘리면서 딸애가 한주일간 갈아입을 옷들과 생활필수품을 트렁크에 챙겨넣는데 딸애는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애완견과 영문 모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 없으면 아빠한테 많이 맞을 거야. 그래도 누나가 올 때까지 참아야 한다. 알겠지?”
  애완견은 마치도 알아들은 듯 우리안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불안하게 캐갱거렸다. 그넘은 포메라니안으로 딸애의 성화에 못이겨 반년전에 사온 것이다.
  “나를 보고싶으면 어쩔 거지? 응, 그렇게 울면 돼. 내 들을 수 있어.”
 
  나는 듣다 못해 한마디 시까슬렀다.
  “엄마 아빠가 너를 그렇게 귀하게 키웠어도 이제 보니 강아지만 못하구나.”
  “아빠 지금 베이베이랑 질투하는 거지?”
  “그게 질투랑 다른 문제야. 사실 우린 서운하거든.”
  “그럼 아빠 엄마도 잘 있어.”
  “성의 꼬물도 없구나. 그런 인사 어디 있어? 이제 니가 집에 다시 돌아올 즈음에는 베이베이가 집에 없을 줄 알아. 남한테 줘버리고 말테다.”

  우리 부녀간은 심심하면 이런 식의 대화를 한다.
 
  솔직히 나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북 고향에서 살때 곱게곱게 키우던 토종개를 어느 술군들이 한밤중에 가만히 훔쳐가서 술추렴을 한 다음부터 거의 강아지에 정을 끊고 살았다.

  청도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생활때문에 불편한 원인도 있었지만 왠지 자꾸 예전의 일이 조건반사적으로 생각나 강아지란 동물에 알레르기식 반응이 생겨나군 했다.

  그런데 딸애는 아니였다. 길을 가다가도 강아지만 보이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무작정 다가가 안군 했었다.

  한번은 기업하는 친구가 놀러오면서 애완견 한마리를 안고 왔었다. 보숭숭한 하얀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귀여운 놈이었다. 회사에서 키우던 놈인데 경비가 갑자기 사직하면서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난 친구가 딸애를 배려해서 가져온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딸애는 하늘이 낮다고 퐁퐁 뛰면서 기뻐 야단이었다.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날부터 딸애는 눈만 뜨면 애완견을 안고 못살게 굴었다. 좋다는게, 곱다는게 강아지를 정신 잃게 휘둘러놓거나 아니면 숨막힐 정도로 힘주어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바람에 발악하는 애완견한테 허비어 광견병 백신을 두번이나 맞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는 생각밖의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애완견 식량 마련은 물론 똥오줌을 청소하고 목욕 시키고 발톱을 깍아주고 모든 일이 고스란히 강아지를 제일 싫어하는 나한테 차려졌다. 좀만 청소가 늦어지면 온 바닥에 흰 서리같은 털이 한층 쭉 깔리군 했다. 거기에 애가 백신을 두번이나 맞으면서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달았고 마침내 그렇게 아내의 회사로 쫓겨나간 강아지를 어느날 누군가 안아가버렸다.

  그뒤로 딸애는 시도때도 없이 나때문에 애완견이 잃어졌다며 똑같은 걸로 사내라고 조르군 했다. 2년이란 질긴 마라톤식의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내가 져서 정말로 똑같은 포메라니안을 다시 사온게 이제 반년정도 된 것이다.

  딸애는 학교에 가면서도 그넘을 잊지 못해했고 나는 나대로 딸애가 강아지에 너무 많은 마음을 주고 있다고 서운해했다.

  아닌게 아니라 첫주일의 기숙사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애가 첫마디에 애완견을 찾았다.
  “아빠, 베이베이가 잘 있어?”
  “남한테 줘버린다고 했잖아. 벌써 남집에 갔어.”
  “거짓말!”
  그래도 혹시나 해서 성급하게 집안으로 뛰어들어간 딸애는 자기를 반갑게 맞아주는 베이베이를 보더니 그대로 끌어안고 좀체로 놓아줄념을 하지 않았다. 키스를 하고 등에 업기도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한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부부는 그저 착찹한 심정이었다. 자식이라고 애지중지 키워봤자 뭐하냐싶었다고 할까. 아무튼 마음이 텅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하긴 양로원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강아지 밥 줘야 한다면서 얼굴 보기 바쁘게 급히 집으로 돌아간 어느 후레자식의 뉴스도 듣긴 했었다. 사람을 물려는 강아지를 때렸다고 주인과 길손이 칼들고 피박나게 싸웠다는 레전드도 화제를 모으긴 했었다. 그리고 파트너 대신 강이지와 의지해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이슈가 되긴 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닌 듯 싶었다. 아직은 부모한테 의지해서 자라야 할 어린 자식한테 부모가 개밖의 관심사로 윤락해서는 아니된다는 절박함이 앞섰다.

  저녁식사 후 나는 조용히 딸애를 불러앉혔다. 철부지는 분명하더라도 열두살이면 분별능력은 어느 정도 가질법 했다. 나는 아주 가벼운 톤으로 부모자식 간의 인연을 얘기했고 자식의 도리를 설명했다. 아닌게 아니라 딸애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딸애가 충분히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고 믿었다. 딸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첫날밤 침실애 셋이 모두 울었어. 엄마 아빠가 너무 생각나서말이야. 엄마가 제일 보고싶었고 그다음 아빠였어. 베이베이는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어.”
  “그건 속심말이 아니잖아? 그런 니가 오자마자 베이베이부터 안고 난시쳤어? 우리가 얼마 낙담했는지 알아?”
   “부모랑 베이베이랑 어떻게 같은 레벨이야? 베이베이는 즐겁게 가지고 노는 물건일뿐이잖아. 그러나 부모는 생각하면 지금처럼 눈물이 나오는 존재란 말이야.”
  너무 어른스러운 말에 나는 한동안 질식할 듯한 침묵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말을 기가 막히게 조리있게 하는 애이다. 장편소설을 쓴다고 납뜨는 애고보면 철리적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눈물이 나오는 존재인 부모를 눈물이 나올까봐 의식적으로 외면했다는 그 말은 그대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내색 한번 없이 천연덕스럽게 태연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을까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먼저번 애완견이 잃어졌을 때 딸애는 징징거리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울지는 않았었다.

  벌써 애가 이렇게 커버렸다. 자기를 억제할 줄도 감출 줄도 아는 불여우같은 요사함을 지닌 진정한 사람으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암, 그렇구말구. 그게 사람이지. 겉과 속이 같다고 떠벌이는 건 절대 사람이 아니야. 사람일 수 없어. 사람은 객관에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다변성과 다중성을 가졌어. 어차피 불여우같아야 해. 불여우는 오명을 뒤집어쓴게 분명하거든.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과 미지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소유했을뿐이야. 사람도 그런 삶을 살아가게 디자인되어있단다. 그게 또한 진실한 인성이야. 그래야 인간세상이 다채롭고 다양하고 비로서 다분하게 살멋과 살맛이 나는 거야.

  불여우같은 딸애를 키우고있는 아빠는 선택된 아빠일 것이다.

                                                                                                                2017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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