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는 후회 같은 거 해본 적 있어요? 만약이라는 게 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
'상아'가 젊은 시절 공장 생활을 함께하며 욕망을 좇았던 '정숙'에게 묻는다. 중년의 여인이 되어 묻는 '부질없는 질문'에 정숙은 "다시 한번 선택하라고 해도 그렇게 살았을 거"라고 쓸쓸하게 답한다. 그 시절 그녀는 말했다. "나쁘고 좋고가 어딨니? 그게 다 운이고 능력이지. 난 이제 알았어. 지금은 그저 돈 없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란 걸. 선한 마음만 있으면 뭐 해? 그거 가지고는 아무도 도울 수 없는데."
그들이 지나온 세월은 자본주의 물결이 노도처럼 밀려오던 중국의 개방개혁 초창기였다. 조선족 마을에서 나고 자란 상아가 돈을 벌기 위해 나아간 1998년 톈진(天津·천진)은, "'대외로는 개방하고 대내로는 개혁하자'는 등소평의 이념이 유례없이 뜨겁고 처절한 가운데 선전을 필두로 한 연해 도시들이 외자 유치에 눈부신 성과를 보이던 그 혁명적인 시간"이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 기치가 완전히 내려지고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문호 개방이 높은 경제성장률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개혁 개방 바람에 마을이 붕괴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는 이제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거세게 덮친 황금의 유혹에 그들은 어떻게 허둥지둥 반응했는지,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조선족 마을 출신 한 여성을 통해 돌아보는 소설이 출간됐다. 저들의 족적을 직접 체험한 조선족 작가 금희(본명 김금희·41)의 장편 '천진 시절'(창비)이 그것이다. 외부에서 취재한 관찰자의 기록이 아니라 내부에서 질풍노도의 시절을 직접 헤쳐 나온 이가 한글로 묘파한 작품이라는 차원에서,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주목할 만한 장편이다.
상아는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마을 '남산촌'에서 나고 자랐다. 달에 사는 선녀라는 이름 '상아'로 인해 성장기에 놀림도 받았다. 출산 직전까지 뭉그적거리던 아버지가 뒤늦게 어머니를 병원으로 이송하다 길 위에서 양수가 터져 찾아든 늙은 한족 집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한족 할아범이 도배지의 월궁선녀 그림을 보고 저 이름으로 딸 이름을 지으라고 하자, 경황이 없던 아버지가 그 이름을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초등학교 때 난로에서 덥히던 도시락이 동네 두부장수 아들 '무군'의 것과 바뀌었을 때, 한 학년 위인 그 더벅머리 소년이 도시락을 건네주며 "네가 상아니?"라며 미소를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모두 외지로 나가 돈벌이를 하는 광풍 속에서 몇 안 남은 젊은이들 모임에서 상아와 무군은 자연스럽게 짝이 지워지는 분위기였지만, 상아에게 그는 성에 차지 않는 대상이었다. 무군의 누님이 대도시에서 그들을 불러들여 일자리를 주선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약혼식'을 겸한 동네잔치까지 벌이고 천진으로 떠났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 명의 남자와 단 한 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상아는 주저하면서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간다. 천진에서 무군과 상아는 좁은 셋방 한 칸에서 신혼 같은 살림을 이어간다. 좁은 골목에서 밤늦게까지 사내들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속에서 '밤일'을 치르고, 아침이면 죄인처럼 머리를 수그린 채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이웃집들을 총총 지나쳤다. 무군은 그 생활이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 단계라고 받아들였겠지만, 상아는 같은 공장의 정숙과 그녀의 애인 희철을 만나면서 서서히 새로운 삶을 갈망하게 된다. 어느 날 혼잣말처럼 정숙이 말했다. "가난을 증오한다고. 같이 가난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도 증오한다고."
중국에 들어와 공장을 경영하는 한국 남자의 욕망을 받아내는 상아의 동창 허춘란은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생활을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깨우친' 인물이다. 춘란의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려고 수속을 밟다 집문서 땅문서 모두 사기당하자, 어머니가 대신 위장결혼으로 외국에 나갔다가 빚은 갚았지만 그녀가 중학교 다닐 때 정말로 남편과 헤어졌다. 춘란의 언니도 남편과 헤어졌다. 춘란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의 구조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는지 가장 빠른 경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존재였다. 그 구조의 상층부에 포함되면 '더 진화한 인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것 같았다. 이런 욕망의 바다 속에서 쉼 없이 흔들리는 그녀들의 마음은 모른 채 무군과 희철은 그들의 사랑법을 너무 믿은 게 탈이었다. 세월이 지난 후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상아는 아프게 복기한다.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변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자라는 족속은 시작이 바로 결과라고 유추하는,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방심하는 한심한 군체였다. 희철이 그랬고 무군이 그랬다."
그렇게 그들은 천진 시절, 모든 것이 급속히 바뀌어가던 질풍노도의 그 시절을 살았고 헤어졌다. 무군을 떠났고, 희철은 죽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남동생의 결혼식 참석차 상하이에 온 상아가 그곳에서 정숙과 해후를 앞두고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플롯이다. 그렇게 더 '진화'하기 위해 떠나간 그녀들의 현재는 그 시절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상아는 한국으로 떠나 갈빗집 서빙을 하다가 로프를 타고 고층 유리를 닦던 동포 남자를 만나 아이를 가졌고, 귀국해 아이를 낳은 뒤 남자는 다시 한국으로 떠나 생활비를 보내온다. 그렇게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중년 주부 상아와 만나는 정숙은 도박에 빠진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처지다. 지나간 것들이 애틋한 이유는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일 터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니 상아에게 '무군'은 가장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상아는 무군과 헤어져 고향에 돌아갔을 때 보이지 않게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토록 붐비는 광장에서 나의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심장이 툭툭 뛰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그것은 끝난 사랑에 예의를 표하는 진실한 고백이었다.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이제 안다. 무군, 그만큼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것을."
'천진 시절'은 이산과 붕괴의 과정을 겪어온 조선족의 현실을 애틋한 감성으로 세밀하게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문학이야말로 한 시대의 미시사를 가장 우월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작품이다. '헐금씨금' '발밤발밤' '올롱해졌다' 같은 조선족 말들도 흥미롭거니와, 국내 작가들에게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진중한 문체도 흥감하다. 이를테면 상아가 도시로 떠날 때 "짓물러진 동백꽃잎처럼 붉은 저녁노을이 아버지 앞에서 가슴 짠하게 타올랐다"고 금희는 쓴다.
금희는 중국 지린성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옌지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다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고, 2007년 '연변문학'에서 주관하는 윤동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첫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를 선보인 뒤 한국에서도 '세상에 없는 나의 집'(창비·2015)을 펴내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1970년대 시골에서 상경한 여공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경숙의 '외딴 방'이 산업화시대 한국의 세밀화라면, 금희의 '천진 시절'은 사회주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조선족 사회의 '외딴 방'을 기록한 또 하나의 벽화인 셈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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