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14일 "관점을 달리하면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은 성폭행범이자 여성 납치범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사단법인 거버넌스센터 주최로 열린 '성평등 사회 비전과 거버넌스' 포럼에서 "성평등을 위해 관점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무꾼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녀 입장, 아이들 입장, 선녀 부모님 입장을 비교해 보면 나무꾼은 성폭행범이자 여성 납치범"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은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동화다. 나무꾼은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는 동안, 날개옷을 몰래 숨겼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를 집에 데려가 아내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둘 낳은 선녀가 '날개옷을 보여달라'고 애원하자, 나무꾼은 선녀 부탁을 들어준다.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아이 둘을 양팔에 안아 하늘로 돌아갔고, 결국 나무꾼은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됐다는 내용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지식, 윤리, 상식들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형성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성평등 정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여성을 억압하는 내용'이라며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성평등 교육을 하고 있다.
정 장관 말대로 나무꾼은 성폭행범일까. 법적으로 보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평가다. 성폭행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을 저항할 수 없게 만든 뒤 강제로 간음을 해야 인정된다. 그러나 이 동화에선 나무꾼이 선녀를 강제했다는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나무꾼과 선녀는 서로를 아끼며 아이 둘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어요' 등 두 사람이 각자 뜻에 따라 혼인을 하고 자녀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 얘기가 나온다. 한 판사는 "책 속에 선녀의 의사가 어땠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성폭행이 성립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나무꾼의 행위는 '결혼 목적의 약취·유인죄'에 해당할 수 있다. 서범석 변호사는 "나무꾼이 선녀를 속여 집으로 끌어들인 뒤(유인) 자신의 지배력하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결혼을 위한 약취·유인죄의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 7일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 비공식적으로 다녀온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 시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는 발언들이 많이 나왔는데, 정 장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분이 혜화역에서 외친 생생한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자 "대통령을 욕하는 시위에 장관이 왜 동조하느냐"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우리나라 미투운동은 지지 세력이 많은데 동시에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지지와 혐오 사이에서 갈등이 나타난다"며 "이럴 때일수록 성차별 구조와 인식을 극복하는 미투운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성평등은 서로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양성(兩性)이 모두 인간으로 존엄성을 최대한으로 누리자는 것"이라며 "일부 사람들은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가부는 남녀 모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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