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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비비에' 총괄 디자이너 게라르도 펠로니
턱을 거뭇거뭇하게 덮은 수염만 아니었다면 "프레디 머큐리!"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전매특허인 콧수염에 고풍스러운 목걸이를 치렁치렁하게 곁들인 모습이 영락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별명이 '슈즈계의 프레디 머큐리'. 프랑스 신발 브랜드 '로저 비비에'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39) 얘기다. 외모뿐 아니라 오페라식 무대를 연출하는 것까지 머큐리와 닮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는 "좋은 제품을 내놓는 게 최선인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지난해 브랜드 총괄 디자이너 자리에 오른 뒤 '2019 봄여름'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펠로니가 창조해낸 건 '호텔 비비에'라는 가상의 공간. 성악가, 클래식 연주자 등 예술가들로 분장한 연기자들이 방마다 배치돼 고객들을 향해 대사를 읊는 등 마치 '관객 참여형 연극'처럼 연출했다. 펠로니는 "소비자들이 지루해하는 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이탈리아 신발 공장을 대물림해 일군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디올 등에서 일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로저 비비에는 프랑스 슈즈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1907~1998)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브랜드. 1950~1960년대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 이브 생로랑 등의 패션쇼 슈즈를 만들며 명성을 얻었다. 1953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일명 '뾰족구두'인 스틸레토 역시 로저 비비에가 탄생시킨 것이다. 현재 '스틸레토의 제왕'으로 불리는 크리스티앙 루부탱(56)이 로저 비비에 밑에서 일한 견습생 출신이니 "꿈이 이루어졌다"고 감격하는 펠로니의 감탄사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인 펠로니는 "예술적인 무대 의상 같은 한복과 온갖 색상이 조화된 한식 상차림이 매우 드라마틱하더라"며 "한복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자리에서 샀다"고 말했다.
펠로니는 "샤넬이나 디오르처럼 역사상 대성공을 이룬 디자이너들은 그 당시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획기적 디자인을 내놓은 사람"이라며 "여성에게 신발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도구"라고 했다.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 상승과 신발 굽 높이는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초기인 1980년대엔 어깨가 강조된 '파워 슈트'나 '스틸레토 힐'이 인기를 끌었지만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 최근엔 3~4㎝ 정도의 낮은 굽인 '키튼 힐'이나 운동화 같은 제품이 큰 인기를 누린다는 것. 그가 로저 비비에 총괄디자이너를 맡으며 새롭게 선보인 운동화도 내놓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제품이 됐다.
인기는 곧 '짝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로저 비비에의 대표적인 사각형 버클 디자인 신발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짝퉁을 달리 말하면 인기라고 할 수 있지요. 나폴리에도 수도 없이 널렸으니까요. 우리 제품인 줄 모르고 단지 예뻐서 카피한 길거리 짝퉁 제품엔 가끔 우쭐대기도 하지만, 알 만한 브랜드까지도 베껴서 내놓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어요. 디자이너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죠." 그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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