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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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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장편소설 황혼 제1권(19) 류씨네 오누이 김장혁 댓글:  조회:544  추천:0  2024-07-15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9. 류씨네 오누이     류려평은 소낙비 댓살처럼 억수로 쏟아지는 철창 밖을 내다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중얼거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막급이야. 류행장은 숫처녀인 나를 강간해 임신시켜 놓았잖아. 그러고도 모자라 출장을 미끼로 무인지경 절벽에서 어쩜 날 또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류덕재와 그런 일 없었더라도 아빠는 날 종호한테 시집보내진 않았을 건데. 날마다 배가 불러오르니깐. 어떻게 하겠는가? 류덕재는 색시 있는 나그넨데. 그래서 부랴부랴 종호와 결혼시킨게지. 다행히 종호는 녀색에 어두워서 내 배 안의 애가 자기 애 아니라는 걸 여직껏 몰랐지...)    류려평은 감방 맹봉당에 맥없이 스르르 들어누었다. 차거운 널장판이 잔등을 시원하게 자극한다. 별로 저금소 주임 시절에  의자에 틀스레 잔등을 기댄 감각이 아닌가.    류려평이 저금소 주임이 돼 며칠도 안돼 류다재 행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 래일 나와 함께 성 소재지 총행에 회의하러 가야겠소. 갈만 하오?”   려평은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핼끔 곁눈질해보더니 주임실에 들어가서 나직이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이튿날 류려평은 류다재가 모는 도요다찌프에 앉아 성소재지로 회의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밤중에 돌아오는 길에서 뜻밖에 사고가 생길줄이야.   (그번 사고도 내 운명이겠지.)   이때 감방 밖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었다. 류려평이 바깥을 내다보니 먹장구름이 뒤덮여왔다.   꽈르릉, 꽝꽝!   요란한 우뢰소리에 뒤이어 대살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드디어 감방 바깥에서 숱한 실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날도 저렇게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댔지.”   류려평은 감방에 누어 중얼거리었다.   그녀는 그때 길에서 생긴 사고를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었다.   30여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었다. 류다재는 귀로에 들어서자 밤도와 소낙비를 무릅쓰고 도요다찌프를 쏜살같이 몰았다.    그런데 A현 경내 열두개나 되는 굽인돌이에서 사고 날줄이야.  급한 내리막 굽인돌이에서 쏜살같이 달리던 도요다찌프가낭떠러지 쪽으로 짓쳐나갔다. 차 속도가 빠른데다가 빗길에 미처 굽인돌이를 돌지 못했다.    “앗!”    꽝!    찌프는 육중한 소나무에 처박히어 차 대가리는 옥창이 됐다. 차가 소나무에 걸리었기에 다행히도 백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빠, 겁나 죽겠소.”    “어디에 다친데 없소?”   류려평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어둑시그레한 차 안에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겁나 마오.”   류다재가 류려평을 안정시키고 나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단위에 차를 가지고 오라고 알려야지.”   그러나 핸드폰을 꺼내 아무리 눌러도 신호가 없었다.    려평의 핸드폰도 무인지경 산골에서 신호가 하나도 없었다. 황차 핸드폰 둘 다 비물에 젖어 있었다.    류다재는 핸드폰을 훌 던지고 차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그러나 차문이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류다재는 황급히 운전좌석 옆의 공구상자 뚜껑을 열고 자그마한 손전지와 망치를 꺼냈다. 그는 손전지를 꺼내 켜 들고  망치로 차 유리창을 땅땅 두드려 깼다.    유리 차창이 깨지면서 비바람이 차 안에 몰려들어왔다.   류다재는 깨진 차문 구멍으로 간신히 기어나갔다. 뒤이어 류려평도 따라 기어나갔다. 류다재는 차창 밖에서 류려평의 허리를 껴안아 들면서 기어나오게 거들어주었다.   그들은 아름드리소나무에 걸린 차와 발 밑의 백길 낭떠러지를 돌아보고 머리 끼 곤두설 지경이었다.   그들은 손잡고 서로 부축하면서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굽인돌이길에 기어올라갔다. 지나가는 차라도 만나면 구해달라고 지원을 청원할 판이었다. 그러나 한식경이나 기다려도 소낙비 쏟아지는 밤중인지라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또 초조한 시간이 소낙비 속에서 흘러 지나갔다. 류다재는 자기 양복을 벗어 류려평의 머리에 씌워주고나서 려평의 허리를 껴안고 자기 몸으로 비바람을 막아주면서 차를 기다리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러지나갔다. 반시간, 한식경이 흘러지나갔다.    그때 저쪽에서 달려오는 헤드라이트가 보이었다.    “차가 와요!”    “이젠 살았구나.”    헤드라이트 불빛이 굽인돌이를 에돌아 나타났다.    류다재는 두 손을 입가에 모아대고 목청껏 고함쳤다.    “사람 살려주십시오! 교통사고 났습니다!”    헤드라이트는 멈춰 서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려줘요!”    급해맞은 류려평은 큰길에 뛰어나가 발까지 동동 구르며 손을 마구 저으면서 고함쳤다. 어떤 운전수들은 여자가 구원을 요청하면 차를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 화물차는 소낙비 속에서 멈춰 서지 않고 무정하게 굽인돌이를 에돌아 지나가 버리었다.    (누가 소낙비 쏟아져 내리는 밤중에 갈길을 가지 않고 도와주겠는가!)   류려평은 멀어져가는 화물차를 바라보면서 절망에 찬 나머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다재는 하늘을 쳐다보아도 인차 소낙비가 끊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러다가 얼어죽겠어. 가자, 차 안에 돌아가 소낙비를 끊고 보자!”   그러나 류려평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차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죽자고?”    “소나무에 걸려서 절대 떨어지지 않아. 가자. 비를 끊고 보자.”    류려평은 함참 뻗치다가 별 수 없었다. 사방 십여킬로메터 주위에 전등불이나 인적이 보이지 않는 사위를, 공포에 찬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녀는 별수 없이 류다재를 따라 소나무에 처박힌 차 쪽으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들 둘은 소낙비 쏟아지고 비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치는 밤중에 무인지경 령길에서 차안이란 비좁은 공간에 갇힌 신세로 돼버리었다.    “그날 밤중에 차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나는 그런 실수를 치지 않았을지도 몰라. 호-”    류려평은 그날 밤 일어난 일을 회상하기도 싫어 감방 침대에 올라가 스르르 누워 눈을 딱 감아버리었다. 그러나 그때 일이 눈앞에 자꾸 삼삼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깨진 차창으로 비바람이 불어쳐 들어와 그들의 몸은 흠씬 젖었다. 류려평은 추워서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이빨마저 마주 쪼아대며 신음소리마저 냈다.    류다재는 류려평을 꽉 껴안아주었다. 순간 그들 둘은 추위는 싹다 잊어버리고 따듯한 온기를 주고 받으며 따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류려평은 자기 얼굴을 길죽한 말상에 사르르 가져다댔다. 그러자 류다재의 손은 자연스레 류려평의 허리를 껴안고 어루쓸다가 구렝이처럼 점무덤 쪽으로 스르르 기어 올라갔다.    류려평은 얼굴을 훌 뗐다.    “오빠, 이러지 마세요. 우린 오누이인데요.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류행장?”    류다재는 코웃음치었다.    “흥! 오누이면 어쩌구. 오빠는 이쁜 널 꼬리빵즈한테 준게 아깝다, 아까워! 진짜 함박꽃이 둼 무지에 처박힌 게야.”    류다재는 스리슬쩍 류려평 젖무덤을 탐나게 끌어안으며 횡설수설했다.    “그래, 계속 콧구멍만한 셋집에서 얼어 죽을 작정이냐? 오빠가 어찌 젤 사랑하는 여동생이 고생하는 걸 보고 가만 놔둘 수 있겠니?     귀공주야, 황차 우린 촌수도 없는 종친이잖아? 오라. 소낙비 쏟아지는데 네 몸을 따뜻하게 덥혀 줄게.”    류다재는 조수석을 뒤로 훌 눕혔다. 뒤이어 멍해 앉아 있는 류려평의 허리를 껴안아 뒤로 훌 눕히어 놓았다.    “이러지 마세요. 난 유부남인데요.”    류다재는 길죽한 말상을 류려평의 보름달 같은 얼굴에 갖다대면서 중얼거리었다.    “아무 만족도 주지 못하는 꼬리빵즈도 남편이냐? 넌 시집 잘 못 갔어. 그런 가난뱅이 선비를 만나서 세집살이 밖에 차례질게 있어?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라. 모든 걸 다 만족시켜 주마.”    류려평은 자기 치마를 쳐들고 팬티를 내리는 류다재의 구렁이 같은 손을 더 밀칠 힘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길죽한 말상을 맞잡아 쳐들고 올려다보면서 정색해 물었다.    “오빠, 진짜 날 구해 줄 거죠?”    “그래. 근심말라. 래일 새 아파트 척 사 줄게. 신물나는 세집살이를 그만두고 새 집에서 살아 봐라. 얼마나 살맛이 나는가.”    류다재는 선선히 대답했다.    류려평은 말상을 붙잡았던 두 손을 맥없이 풀더니 눈을 스르르 감고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조개턱의 꺼슬꺼슬한 수염이 볼을 아프게 찌르고 점점 내려와 야들야들한 목과 가슴을 찌른다. 나중에 까실까실한 감이 아랫배로, 로 기어 내려온다.    한고조 후대, 류씨네 집안 자존심과 인륜이 페허로 무너져가는 순간이었다.    류려평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찡그리면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류씨 집안 촌수 개판이 되는 판이구나.)     류려평은 후에 신물나는 세집살이를 그만두고 류다재가 사준 새 아파트에 이사해가서 살게 됐다. 하지만 모든 정신기둥이 무너지고 썩은 불륜에서 더러운 싹이 싹트기 시작했다.     뜨끈뜨끈한 열기가 하신으로 기어들어와 꿈틀거린다. 비바람에 젖어 떨던 두 몸은 언제 추웠는가 싶이  화끈하끈해난다. 비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오는 차 안에서는 숨소리  거칠어져간다.    “살살 흔들어요. 차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 죽겠어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합선된 눈앞에 별찌가 탁탁 튕기고 혼이 아찔해나며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다. 비바람이 불어들어오는 차 안에서는 거친  숨소리에 이어 흐느낌소리 간간히 들려왔다…    오늘 밤중에도 감방 바깥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소낙비가 대야로 퍼붓듯이 창창 쏟아진다. 소낙비가 쏟아지던 그날 밤은 어째 그렇게 지지리 길었을가.    류려평은 끝없는 악몽 같은 추억에 빠져 이를 꼭 옥물고 간혹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려향의 질책하는 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한고조 보기 부끄럽지도 않는가?!”    류려평은 감방에서 창피해 머리를 푹 떨어뜨리었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그것도 내 기구한 팔자겠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겠지.”     빛을 잃은 쌍까풀눈에서는  참회의 피눈물을 하염없이 줄줄 흘러 내리었다. 너부죽한 볼은 패륜의 눈물로 더럽게 피범벅이 되어갔다.
423    장편소설 황혼 제1권(18) 참회의 눈물 김장혁 댓글:  조회:445  추천:0  2024-07-14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8. 참회의 눈물       류려평은 감방에 돌아오자 김빠진 공처럼 맥없이 쓰러지었다.     철창 속에 처량한 달빛이 쓸쓸히 들이비추며 여죄수들의 초조한 얼굴에 이리저리 어지러운 그림을 그린다.     류려평은 스르르 일어나 싸늘한 철창을 부여잡고 처량한 눈썹달을 쳐다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눈 앞에는 낮에 본 려향의 표독스런 눈길이 얼른거리었다.    귀전에서는 려향의 비수 같은 질책소리 울리었다.    “엄만 한고조를 보기도 부끄럽지 않아? 엄마는 류행장과 무슨 짓 했어? 한고조 후대들은 한 종친끼리도 꺼리낌없이 간통을 하는가?!”      류려평은 다시금 시퍼런 비수와 같은 그 질책소리에 마음이  면바로 찔리어 피가 꺼꾸로 흐르는 상 싶었다.   (다 그 놈 책벌레 때문이야. 바보! 책벌레! 그 촌방이 날 경제적으로 만족시켜 줘도 내가 왜 류행장과 그랬겠는가!)    그녀는 철창 속에 갇히자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다. 자기 기구한 팔자가 원망스럽고 가난뱅이 선비한테 시집간 것이 후회되였다.    그녀는 추억의 헌 돛배를 노저어 미친 연정의 늪으로 헤어갔다. 쓰라린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이런 저런 추억의 마디마다에 기구한 팔자와 운명이 대성통곡친다.…    류려평은 국장 집 귀공주로 자라서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배돌이고 놀음에는 악돌이었다. 그리하여 대학은 고사하고 위생학교도 국장애비가 여기저기 다리를 놓아 겨우 입학했던 것이다.    류국장은 실습기자로 취재하러 온 대학생 종호를 보자마자 사위로 삼기 싶은 욕심이 났다. 그는 류려평한테 종호를 소개하면서 하늘 높이 춰 올렸다.    “이목구비도 범상치 않지. 잘 부축해주면 장차 큰 일을 할 인재야.”    그러나 류려평은 눈을 곱게 흘기었다.    “꼬리빵즈 촌방이 싫어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릴 작작 해라. 촌방이면 시내에 졸업배치하면 되지. 대학생 신랑감 좀 좋아서. ”    대학 문에도 가보지 못한 종호가 대학생이라기에 좀 마음이 끌리었다.    “헤이, 참, 그때 대학생 빠지에 눈이 멀었댔지. 그런 바보한테 시집보낸 아빠도 미워!”    류려평은 아빠마저 원망스러웠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쓰라린 추억의 꼬리에는 또 욕정에 미친 색마의 몰골이 더럽게 묻어나온다   또 한국에 도망치면 대사필이라던 류다재 행장도 원망스러웠다.    (혹시 류행장은 자기 꼬리를 밟힐가 봐 날 생각하는 척 하면서 한국에 빼돌린게 아닐가? 류다재? 당신 진짜 날 속였어?)    류려평은 류행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리에 돌아와 쓸쓸히 감방 안을 비추는 달빛을 보노라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의 눈 앞에는 저도 몰래 희죽이 웃는 류다재 행장의 길죽한 말상과 뻐드렁이빨이 얼른거리었다.    (류다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시 이 지경에 빠지진 않았을 수도 있지.)    류려평은 위생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했다. 간호원의 로임으로 살기는 처녀일 때 본가집 부모 돈을 얻어 쓸 때보다도 손끝이 빳빳했다. 비록 본가집 부모가 계속 돈을 대주었지만 출가집 외인이 계속 년세 들어가는 부모 손만 들여다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독이 떵떵 어는 고통스러운 셋집살이는 그녀로 하여금 자기를 경제적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종호를 원망하며 바가지를 빡빡 긁어댔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절로 돈을 많이 벌어 세집살이를 하지 않고 남들처럼 잘 살고  싶었다. 그는 아빠를 보고도 세집살이를 못하겠다면서 집을 사게 돈을 대달라고 징징거리었다.    당시 관광국 국장인 류려평의 아버지는 시위 서기인, 류다재의  아버지와 종친이기에 형제처럼 보내는 사이었다. 류려평의 아버지는 류서기를 통해 류려평을 류다재네 은행에 전근시켰다.    행장 류다재는 애비 덕에 40대 초반에 벌써 시당위 조직부 부부장을 거쳐 일개 행장으로 헬기를 타고 직상승했다.    “이름도 웃긴다. ㅎㅎ.”    류려평은 처음 류다재 이름을 들었을 때 체면도 잃고 코를 싸쥐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류다재 앞에서 키득거리었다.    류다재 아버지는 원래 아들놈이 장차 “재간이 많으라.”는 뜻으로 맏아들의 이름을 “다재(多才)”로 지었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류다재는 장차 “재물이 많아지라”고 자기 이름을 “다재(多财)”로 고쳐버리었다.    “얼마나 웃기는 탐관인가. ㅋㅋ.”   류려평은 감방에서 류다재 말상을 피뜩 떠올리면서 피씩 웃었다.   류려평에게 처음에는 낯이 길죽한 류다재가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항상 새파란 여자들의 몸을 힐끔거리는 뱁새눈이  곱지 않았다.   그런데 류다재는 쩍하면 류려평을 자기 사무실에 불러다가 항상 “여동생, 여동생” 하며 치근거리었다.    려평은 으리으리한 행장실을 처음 들어와 보고 다리가 바들바들 떨릴 지경이 돼 몸둘바를 몰라했다.     “려평이, 앉소.”    류다재는 류려평을 쏘파에 앉혀놓고 뱁새눈을 가슴츠레 뜨고 눈뿌리 빠지게 뜯어보며 씨벌이었다.     “우리 두 집은 세교지간이오. 다 한고조 류방 대황제 후손이오. 려평이, 난 려평을 여동생으로 여기오. 무슨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하고 말하오.”    려평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두 손을 맞잡고 앉아 감지덕지해 했다.    “고맙습니다. 저는 행장과 같은 오빠 있어 행복합니다.”   류다재는 자리에서 우쭐 일어나 류려평의 손을 내밀었다.    “여동생, 우리 오누이처럼 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기오.”   류려평은 저도 몰래 류다재 가래짝 같은 손을 꼭 잡았다.    “예. 그럽시다.”    류다재는 류려평의 손을 으스러지게 쥐었다가 놔주었다.    그는 차탁 앞으로 스적스적 걸어가더니 손수 커피를 타서 려평한테 내밀었다.    “우리 은행에 들어왔다고 그저 돈이 마구 생기는 건 아니오.”    류다재는 처음에는 은행장처럼 점잔을 빼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은행은 저금이란 사업실적을 첫째로 보오. 머리를 써야 돈도 벌고 승진도 할 수 있소.”    류려평은 쌍까풀눈으로 류다재를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알겠습니다. 오빠, 노력해보지오.”    류려평은 승벽심이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저금소에서 누구보다 앞서 류다재 은행장한테 본때를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본가집 아버지가 아파트를 사라고 준 돈까지 종호 몰래 몽땅 자기가 일하는 저금소에 가져다가 정기저금을 했다. 또 본가집    부모와 친척들을 동원해 자기 저금소에 저금하게 했다.    하여 류려평의 저금액이 단통 저금소 내 최고로 껑충 뛰어 올라갔다.    때가 됐다고 여긴 류다재는 행장의 직권을 빌어 류려평을 그 저금소 주임으로 임명했다.    류려평은 여기까지 생각하자한때 자기 노력으로 빛났던 과거인생에 잠시나마 긍지감으로 가슴이 설레이었다. 뒤이어 철창 속 감방을 둘러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다.
422    장편소설 황혼 제1권(17) 면회 김장혁 댓글:  조회:539  추천:0  2024-07-14
       장편소설 황혼 제1권 김장혁       17.면회           삼복염천에 철창 속은 찜통처럼 무더워 숨이 헉헉 막힐 지경이었다.그래도 감방 복도에는 인도주의의 에어콘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삼복염천의 무더위를 몰아내기는 판 부족이었다.  (세상에 이런 생지옥이 어디 있는가? 중국에서 한다하는 지행장이 이게 뭐야? )    류려평은 철창을 부여잡고 복도를 내다보며 이전에 지행장으로 있을 때 으리으리한 지행장 사무실에서 호광스럽게 살던 일을 회상하면서 끊임없이 두덜거리었다.     그녀는 삼복철도 아닌데도  항상 에어콘을 켜놓은 지행장 사무실이 덥다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도 않았다.그녀는  아침에 수하 직원들한테 낯이나 보이고는 승용차를 몰고 사우나 실에 달려 갔다. 그녀는 류덕재라는 은행장과 함께 목욕을 하고 마사지방에 들어가 끌날 같은 총각들한테서 마사지나 받았다. 또 어떤 때에는 마작이나 꽝꽝 놀거나 은밀한 곳에 가서 류덕재 은행장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음양조화 보건양생”을 했던 것이다.    "아이마야, 이게 뭐야? 향락을 맘껏 누리시던 은행 지행장님께서 이런 생지옥에 갇겨 개고생 다하다니?"     아무리 하늘 땅을 원망해도 법망에 걸린 이상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류덕재 은행장의 귀띔을 받고 려향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빠져 나왔다.     류려평이 사우나실에 들어앉아 우유빛 몸을 씻는데 류덕재한테서 짝통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당장 한국으로 나가라.”    려평은 퉁사발눈이 데꾼해졌다.    “한국엔 왜?”    류려평은 불길한 징조를 느끼고 사우나실에서 나와 샤와복을 걸치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전화 받기 괜찮지?”    류려평은 퉁사발눈으로 복도 사위를 둘러보았다.    “네. 어서 말해요.”    “꼬리를 밟히기 전에 빨리 나가라. 지금 검찰원에서 널 수사하고 있어.”    “뭐라고?”    “전화로 말하기 불편해.”    “알겠소.”   려평은 급히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고 여사우나실에서 나왔다.   보마찌프에 올라 려평은 다시 류덕재한테 핸드폰을 쳤다.   “하필이면 왜 한국에 달아나겠소? 유럽이나 미국에 달아나지.”    “유럽이나 미국 비자 받을 새 없어. 유럽이나 미국에 간다고 경제범을 보호해줄 거 같아? 잔말 말고 한국에 나가라. 한국 비자는 이미 내 받아놨어.”    류덕재 처사능력에 탄복됐다.    “한국에 가면 딸의 엄호도 받을 수 있잖아. 한국은 너 같은 사람들이 숨어 살기 딱 좋은 곳이야. ㅎㅎㅎ.”    “오빠는?”    “잔말 말고 빨리 움직여라.”    그런데 부근 저금소에 가서 카드를 넣어보니 이미 수사기관에 의해 차봉되지 않았겠는가.    그제야 려평은 사태 엄중성을 직감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현금을 집에 많이 찾아뒀겠는 걸.)    려평은 평소에 돈을 가지고 다닐 필요 없었다. 류덕재 은행장과 함께 다니면 자기 돈을 쓸 필요없었다. 다 류덕재가 알아서 했기에 말이다.     “오빠, 카드 차단됐구만요. 한국에 가면 알거진데 어떻게 살아?”     “내 대줄게. 근심말고 가라.”    류려평은 쇠살창을 틀어쥐고 코웃음쳤다.    제딴에는 탐오회뢰한 일이 발각되기 전에고 여겼다.   (검찰원 수사일군들의 손아귀를 벗어났어. 이젠 살았어.)     그러나 한국에 도망쳐 나온 후 류덕재는 돈을 대주기는커녕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개자식, 네 놈이 배신하면 편안히 살 거 같애? 이 암범을 보기로 뭘로 봐? 흥!)    류려평은 철창을 탕탕 치면서 류덕재를 욕했다.     그녀는 종호를 안락사시키지 못한 것을 못내 통탄했다.   (다 그 놈 탓이야.분명 그놈이 날 신고했어.그 놈 숨통을 끊어놔야 되는데.나가기만 해라.네 놈 내 손에 죽을줄 알어.)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이빨을 쁙쁙 갈았다.  (악연이야. 그 놈과 어쩜 악연을 맺었어.)    그녀는 문제를 자기한테서 찾기는 고사하고 종호를 원망하고 종호와 혼인을 맺게 한 아빠를 원망했다. 나중에 자기 기구한 운명을 원망하고 자기를 나포한 경찰들을 저주하기까지 했다.     복도 저쪽에서 두 여경이 이쪽을 쏘아보며 다가왔다.    류려평은 뒤저참하며 철창을 놓고 벽 쪽에 다가가 엉덩방아를 찧듯 물앉았다.    이윽고 두 여경이 쇠살창문에 다가왔다.    한 여경이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감방 문을 드르릉 열었다.    류려평과 다른 여죄수들은 벽에 붙어 앉아 초조한 눈길로 여경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하회를 기다리었다.    여경은 날카로운 눈길로 여죄수들을 둘러보았다. 여경의 날카로운 눈길은 류려평한테 와서 멈추었다.    여경은 손가락으로 류려평을 가리키면서 순통한 한어로 말했다.    "류려평, 나왓!"    류려평은 거만하게 힐끔 손삿대질을 하는 여경을 째려보며 두덜거리었다.    "어디로 가?"    "누가 면회하러 왔어."    류려평은 한국 땅에서 누가 면회하러 오리라고는 믿지도 않았다.    "차라리 죽여라! 난 중국 공민이야.네놈들 한국 생지옥에서 하루도 못 살겠어!"    여경은 류려평의 잔등을 떠밀었다.   "걸엇!”    다른 여경이  째려보며 말했다.    “이제 중국에 보내주마.중국에 가면 널 지상낙원에 보내 향락을 누리게 할 거 같애? 흥!"    류려평은 이제 중국에 인도돼 돌아가면 거액 탐오회뢰죄에 살인미수죄로 사형에 처해질지도 몰랐다.그녀는 자기 지은 중죄를 알고 이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해버리었다.     류려평은 여경들한테 압송돼 긴 복도를 지나가 자그마한 면회실에 들어섰다.    류려평은 면회실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맞은 켠에 려향이 대기하고 있지 않겠는가.   "려향아!"   "어머니!"    그들 모녀는 자그마한 유리 구멍을 사이에 두고 두 손을 맞잡고 대성통곡치었다.    여경은 그들 모녀를 째려보더니 입귀를 비쭉거리며 문을 쾅 닫아버리었다.    려향은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엄마, 왜 아빠와 살지 않겠으면 말게지.왜 그랬어?난 엄마와 아빠를 다 잃고 싶잖아."    류려평은 아닌 보살을 떨었다.    "난 이젠 귀국하면 죽을 판인데.네 애비 생사하고 뭔 상관이냐?"     려향은 외까풀눈을 무섭게 똑바로 뜨고 려평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링겔병에 염화나트리움을 주사해넣었어? 아빠를 죽이려고 했어?"    류려평은 면회실 천정에서 조용히 내려다보는 몰카를 피끗 쳐다보며 려향이한테 눈짓하면서 말했다.    "말 조심해라.한어로 말하자.”    그녀는 다시 퉁사발눈을 려향한테 돌리었다.     “어째 생사람을 잡아 먹겠느냐? 한국 경찰서에서 너 보고 날 심문하라더니? 참,내 염화나트리움을 주사해넣었단 증거 있느냐?"    려향은 어처구니 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아빠 침대에 장치한 몰카에 엄마 한짓 다 찍혔어.지영이 깨진 유리병 쪼각을 가져다 바쳐 경찰서에서 화험해 나왔단 말이야."    려향은 차마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류려평의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난 링겔병에 맨물을 주사해넣었어.어느 놈이 염화나트리움인지 염화칼리움인지 주사했는지 누가 알아? 그날 네 애비도 말했잖아?자기가 자살하자고 링겔에 뭘 탔다고. 네 아빠가 안락사시켜달라고 누굴 시켰는지 어떻게 알아.혹시 종호 돈이 탐난 다른 놈이 한 짓인지 어떻게 알아? 흥, 어떻게 딱 내가 했다고만 할 수 있느냐? 허나 난 그런 짓 차마 못하겠더라. 조강지처 아니냐?"     려향은 엄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어처구니 없었다.진짜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야옹 하는 격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류려평 같은 것도 어미라고 보호하려고 들었다.    "엄마, 중국에 가지 않겠다고 한국 사법기관에 청구를 제기하세요.중국에 가면 사형당할 수도 있지 않아요?"    류려평은 콧방귀를 뀌었다.    "한국에 있으면 살려준다니?"    려향은 엄마 두 손을 꼭 잡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그녀는 엄마를 살리려는 일루의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한국 법은 중국 법보다 물러요.살인죄도 5년 내지 15년 형인데요.엄마는 한국에서 지은 살인미수죄를 승인하세요. 그럼 한   국 법원의 경한 판결을 수 있어요. 표현이 좋으면 감형될 수도 있어요."     류려평은 려향의 손을 매만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이젠 엄마 때문에 쓸데 없는 속을 태우지 말라.엄마는 어차피 죽게 됐어."    려향은 려평의 손을 마구 쥐어 흔들어대며 고함치었다.    "난 엄마를 잃을 수 없어. 엄마!도대체 또 무슨 죽을 죄를 졌기에 이래요?"    려평은 유리구멍으로 손을 내밀어 려향의 눈물범벅이 된 너부죽한 얼굴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엄마는 인터폴 공개수배도주범이야. 적색수사 명단에 든 중범죄자야. 절대 용서 받지 못해."    "엄마!"    "려향아, 울지 말라.어쩜 너한테 엄마 이 고운 쌍까풀눈을 물려주지 못하고 네 애비 보기도 싫은 외까풀눈을 물려 줬니?"    "엄마, 이젠 아빠 험담 그만 둬요."    류려평은 려향의 얼굴을 두 손으로 쳐받들고 마주 들여다보면서 띠엄띠엄 말했다.   "내 평생 후회되는 건 네 아빠하고 결혼한 거야. 악연이야.나는 남자 복이 없는 불쌍한 여자야. 넌 절대 꼬리빵즈와 결혼하지 말라.네 애비를 봐라.얼마나  대남자주의자야.살림살이를 하나도 모르는 나쁜 놈이야.여자감옥에 취재하러 간 척하고 매음녀들을 다 데리고 살았다. 네 애빈 사장 직권을 빌어 여자감옥 아가씨들을 감옥에서 보석받게 해가지고 데리고 산 나쁜 놈이야. 넌 꼭 한족남자하고 결혼해야 해.한족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얼마나 잘 해주니? 진심이고."    "또,또, 또!"    려향은 엄마 손을 훌 뿌리치며 눈을 흘기었다.    "난 시집 안 가.아빠, 엄마 사는 거 봐.맨날 싸우자고 결혼해? 혼자 살면 딱 제일이야.자식 근심할 일도 없고. 좀 좋아서."     려평은 넉두리 끊임없었다.    "엄마 한은 조선족 나쁜 놈과 결혼한 거야.그래서 널 짜궁배로 만들었고.네가 소학교 때부터 얼마나 애들한테 짜궁배라고 놀리움을 당하면서 어렵게 자랐니?이제부터 넌 민족을 한족이라고 고쳐라.넌 위대한 한족여성이야.그래야 전도가 창창한 거야. 절대 조선족이라는 말을 하지도 말라.전도 없어."     려향은 눈물을 주먹으로 쓱 닦으면서 가슴을 쑥 내밀고 머리를 번쩍 쳐들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쳇,난 영원히 조선족이야.아빠 말씀처럼 당당한 리씨 조선 왕조 후대인데요.리성계 시조왕의 후대 말이요.어디 가도 당당한 전주 리씨 목조팬데요."    "쳇!"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방귀를 뀌었다.   "네 애비 왕의 후손이 돼서 해 놓은 일이 뭐냐? 그래도 왕의 후손? 퉤! 도태되다 못해 지금 무슨 꼴이 됐니?  그저 책에 미친 놈, 바보 같은 책벌레야.”    류려평은 정색해 이런 말을 불쑥 꺼냈다.    “우리 류씨야 말로 위대한 대국 한고조 류방 대황제의 후대야.”    류려평은 려향의 두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    "제발 빈다.이담 혹시 결혼해 애를 낳으면 류씨 성을 따라라.그거야 말로 조상들의 영예를 빛내는 일이야."     “쳇, “    려향은 콧방귀를 뀌면서 표독스런 눈길로 류려평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엄만 한고조를 보기도 부끄럽지 않아? 엄마는 류행장과 무슨 짓 했어? 한고조 후대들은 한 종친끼리도 꺼리낌없이 간통을 하는가?!”       류려평은 시퍼런 비수와 같은 그 질책에 속마음이 면바로 찔리어 뻘건 더러운 피가 왈칵 터져나왔다.    "그만 해라!"     그때 여경이 문을 뚝 떼고 들어섰다.    "시간 됐어요."    류려평은 마지 못해 일어나면서 려향의 손을 꼭 잡아 흔들면서 한어로 목청껏 말했다.    "우리 모녀간은 죽어도 한고조 류방 대황제 후손이야.마지막 부탁이야.네 성도 류씨로 고쳐라.넌 영원히 류방 대황제 후손이야!"     려향은 눈물어린 눈길로 엄마를 유리 구멍 너머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엄마의 쌍까풀눈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절절한 빛이 번쩍이지 않겠는가.    려향은 철창 사이로 멀어지어 가는 엄마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철창 상이로 달빛이 처량하게 비껴들고 쓰라린 바람이 감방으로 비틀비틀 불어 들어갔다.썩은 내가 물씬 풍기면서 코를 아프게 찔렀다.
421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6) 일거량득 김장혁 댓글:  조회:405  추천:0  2024-07-14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6. 일거량득       어느 날 어쩌다가 하늘에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개이었다.     밝은 햇빛은 아침이슬로 옥구슬을 하나, 둘 꿰고 있었다.    병원 뜨락 나무 이파리 사이로 아침 햇빛이 스며든다.    따뜻한 햇살은 자애로운 사랑의 손길을 뻗쳐 창문 베란다를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똑똑똑.    조용한 노크소리와 함께 김춘희 박사가 회진하러 들어왔다.    그녀는 상냥한 외까풀눈으로 종호의 침대머리에 다가왔다.그녀는 칼로 벤 상처자국이 드러난 종호의 손목을 보고 상을 찡그리었다.    종호는 일어나 앉으려고 애썼다.옆에서 지영과 려향이 종호의 잔등을 춰 일으켜 앉혀주었다.    춘희 박사는 청진기를 종호의 가슴에 넣고 심장박동을 들어본다, 페에 대고 호흡도 청진해본다 하면서 세심히 검사했다.    뒤이어 우쭐 일어나더니 종호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빈혈이 심했는데요. 따님의 피를 많이 수혈했기에 지금 괜찮아요. 심장박동이 고르롭고 페 호흡도 괜찮아요. 이제 다음 주 쯤에 리사장님은 퇴원해도 될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종호는 김춘희 박사한테 깎듯이 인사했다.   김춘희 박사는 려향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종호한테 혀를 끌끌 차보이었다.   "리사장님은 참 훌륭한 효녀를 두었군요. 한국에서 무슨 일 하는지요?"   종호는 그때라고 딸 자랑을 했다.   "아직 박사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춘희는 반색했다.   "박사생?참 대단해요."    그녀는 려향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뭘 전공하는 박사생인가요?"   려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문학 공부를 해요."   "네-"   춘희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지금 세월에 문학을 해서 밥 먹기도 힘들겠는데.)    옆에서 듣는 지영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도 고중시절까지 글짓기를 하다가 그만 두었던 것이다. 전국 백일장에서 대상을 탄적도 있는 실력파였지만 필을 놓고 위생학교에 들어갔댔고 지금은 간병으로 구을어다니면서 살지 않는가.    (글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멋은 좋은데. 성공하자면 어디 그리 쉬운가?)   춘희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종호를 되돌아보며 엄지를 척 내들었다.   "리사장님은 좋은 후계자를 두었구만요."    종호는 코웃음쳤다.   "후계자는 무슨? 죽어도 글을 쓰지 않겠다는데도.허허.혹시 한국에서 글을 쓰면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글쓰기를 딱 싫어하니 별 수 없습니다."    춘희는 피뜩 무슨 생각이 머리를 탁 치는 것이었다.   (려향을 군철한테 붙여 놓으면 어떨가?)     그녀는 려향한테 머리를 돌리었다.    "려향이,남자친구도 박사겠지?"    려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었다.    종호가 부르튼 소리로 두덜거리었다.    "남자친구 있으면 좋지.로처녀 돼가지고서도 시집 안간다는데.흥!무서운 독신주의자!"    "아빠! 그만해요.지금 마흔살이 돼도 시집가지 않는 처녀들이 수두룩한데요. 삼십대 중반인데 로처녀라니요? 참."    려향은 종호한테 외까풀눈을 곱게 흘기었다.    춘희는 환성을 지르다싶이 놀란 소리쳤다.    "아니, 이렇게 이쁜 박사처녀 시집 안 간다니 웬 말인가요?"    춘희는 종호와 려향을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내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해 줄까요?"    종호는 온 얼굴에 주름이 쫙 퍼지더니 반색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난 쟤 시집가는 걸 보면 원이 더 없겠습니다.쟤 시집가지 않는 날엔 훌 죽어 버리겠습니다.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     려향은 부끄러워 아빠한테 외까풀눈을 곱게 흘기더니 병실에서 훌 나가 버리었다.    기실 려향은 결혼하려는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아빠와 엄마처럼 맨날 싸우면서 살 거면 결혼해 뭘 해?”    그녀는 천번이고 만번이고 속으로 시집 안 간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으면 아빠가 자살하려고까지 하기에 별 수 없이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게 되었다.    춘희 박사가 불시에 혼사말을 꺼내자 려향은 경악했다.   (올게 끊내 왔구나. 이렇게 빨리도 올줄이야.)    려향은 핍박에 의해 입으로라도 시집 갈 것처럼 해 아빠의 자살을 막아야 했다.    춘희는 려향의 속내는 모르고 제 좋은 궁리를 하면서 혼사말을 하려고 들었다.    (려향을 군철한테 붙여놓고 군철을 내 딸과 떼 놔야지. 그럼 문걸도 마음을 돌려 나와 재혼하겠는지 어찌 아는가?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라. 일거량득이 아닌가?)    춘희는 려향의 등뒤에 대고 웃음을 날리었다.    그녀는 지영마저 병실에서 나가자 얼굴을 종호한테 돌리었다.    “저리 물 찬 제비처럼 츨츨한 박사생이 여직껏 시집가지 않다니오?”    종호는 우물에 가서 숭늉을 달라고 할 지경이었다.    그는 안간힘을 써서 바로 앉으면서 춘희한테 물어 보았다.     “그래, 어디 좋은 총각이 있습니까? 딱 박사 아니라도 석사나 학사 쯤도 됩니다. 좋은 자리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춘희는 희죽이 웃으며 느슨히 혼사말을 하기 시작했다.    “있긴 한데요. 나이 좀 많아요.”    “몇살이기에?”    “올해 마흔 둘인데요.”    춘희는 종호의 너부죽한 얼굴을 흘끔 훔쳐 보았다.   종호는 개의치도 않았다.    “내 딸애도 이젠 서른여섯이나 되는데. 여섯살 이상 쯤은 지금 세월에 괜찮아요.”    춘희는 군철의 나이보다도 숫총각이 아닌데다가 애 둘까지 달린 것이 걸리어 제꺽 뒤를 잇지 못했다.    그때 오히려 종호가 다그치었다.    "그래, 그 총각의 학벌과 직업은 어떤 정황입니까?"   종호의 외까풀눈에는 절절한 기대의 빛이 어리어 있었다.     "학위야 있겠지?"    "물론이죠.학벌은 려향보다 좀 낮은데요.북경대학 석사생인데요."     춘희는 종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지금 한 한국 회사 전무입니다.능력가지오. 년금이 백만원도 넘는데요."     종호는 반기기는 고사하고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갔다.    그는  춘희를 치켜보았다.    "한국에 있는 회사서 일하는가요?"    "아닙니다. 중국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해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중얼거리었다.    "그렇게 유능하다는데, 에헴, 왜 아직도 장가가지 않았답니까? 이 세월에 그런 능력가 로총각도 드문데…"    "그런게 아니라…"    춘희는 차마 군철한테 애 둘이 달려 있다는 말을 더 하지 못했다.종호한테 단통 거절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속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녀는 종호의 눈치를 살피면서 완곡적으로 에둘러 말했다.    "지금 세월에 어디 그런 로총각이 있겠는가요?"    "그럼?"    "리혼했는데요.애도 둘이 달려 있습니다."    "뭐?"    종호는 깜짝 놀라 입이 함박만해지었다.  (보배 같은 내 딸을 어떻게 보고.흥! 애 둘이나 달린 홀애비를 다 소개해?)    그는 외까풀눈을 꾹 감고  한참이나 입에 빗장을 지르고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았다.     바빠 맞은 춘희는 제꺽 발뺌을 했다.사심에 찬 자기 속내가 발가질가봐 슬쩍 빠져나가는 찰나였다.    "이 혼사말을 꺼내지도 않을 걸로 해요.제가 실수했어요."    "아니,천만에 말씀을."    종호는 외까풀눈을 번쩍 떴다.    "아무튼 제 딸을 걱정해 줘 고맙습니다.애들의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려향한테 물어봐야겠습니다."    춘희는 종호의 그 말은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려향과 말도 꺼내지 마세요.원래 시집가기 싫어하는 독신주의자 같은데요.혼사말은 잘하면 술 석잔 차례지고 잘 못하면 칼 세자루 차례진다는데요.괜히 리사장님이나 제가 려향한테 욕 먹겠어요."     춘희는 이 혼사말을 계속 하다가 일거량득은커녕 욕을 먹을가 봐 부쩍 근심됐다.그녀는 떡 주자는 사람도 없는데 미역국부터 갖춰놓고 기다리는 격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춘희는 려향이 시집가지 않고 나이를 먹는 것이 근심되기보다는 마흔살도 넘는 홀애비 군철한테 보배 같은 외동딸이 전도를 망칠가 봐 근심이 태산 같았던 것이다.    그녀는 딸애 가은(일본 명:마끼)을 얼마나 욕했는지 모른다.    "어쩜 그렇게도 눈깔이  멀었어?서른살도 안되는 새파란 나이에 마흔도 넘은 홀애비한테 반해? 미쳤지, 미쳤어!"     춘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은이한테서 군철을 떼놓으려고 이를 옥물었다.     “안돼. 가은한테서 꼭 군철을 떼놓아야지.”     춘희는 군철한테 려향을 붙여놓고 자기 딸 마끼를 떼내려고 들었던 것이다.    오호, 천하의 엄마의 자식사랑, 그 가련한 마음이여.
420    장편소설 황혼 제1권(15) 쩍하면 수술 김장혁 댓글:  조회:724  추천:0  2024-07-13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제1권                  15. 쩍하면 수술       몽유인가? 아니면 환각인가?    먹칠한듯한 캄캄칠야에 혼이 유령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반디불이 가녀린 몸을 불태우면서 아무리 어둑컴컴한 암야를 밝히려고 몸부림치지만 온통 먹물을 부어놓은듯한 암흑을 몰아내기는 턱 부족이다.    홀몸으로 암흑을 몰아내려고 애쓰는 반디불이 가련할만치 불쌍했다.    딸애의 질문이 종호의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아빠는 마사지방이랑 노래방이랑 간 적도 없는가요?”    “내 마사지방과 노래방에도 가지 않았다면 넨들 믿겠니? 건 왜 물어?”    “엄마 그러던데요. 아빤 마사지방과 노래방 아가씨들과 색깔을 했다고 하던데요.”    종호는 어처구니없어 했다.    “그 말 믿니? 마사지방과 노래방에 가긴 갔지만 한번도 아가씨들과 부정당한 관계를 맺은 적도 없어.”    류려평의 저주소리 아프게 귀전을 때린다.   "저게 어째 뇌졸증이나 심장병이 발작해 썩어지지 않는가?! 남을 고생시키지 말고 콱 썩어졌으면!"   "아,저런 악처라고서니."   쿨룩쿨룩.   혼은 억이 막혀 기침을 쿨룩거리면서 중얼거리었다.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데."   쿨룩쿨룩.   "어쩜 저럴 수야?"   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종호가 심장 동맥경화에 계속 약을 달고 있었다.   류려평은 종호가 심장병 약을 먹는 것을 보기만 하면 약병을 훌 빼앗아 치우면서 두덜거리었다.   "어째 약을 먹기 그리 좋아하는가? 의학상식이 영펄이라도 이 지경인가요? 약마다 독이 있다는 걸 알기나 하오? 이제 자꾸 약을 먹다가 그 놈 심장이 약독에 썩어지지 않는가 봐!흥!"     려평은 퉁사발눈알을 희번뜩거리며 콧방귀까지 뀌었다.  (어째 남편한테 저럴까? 내 자기를 가정부담이 많은 시집에 데려다가 고생시켰다고 저럴까? 처음부터 저런 건 아니었지.물독이 떵떵 어는 콧구멍만한 세집에서 살면서도 저렇게까진 바가지를 긁은 소릴 치지 않았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은행 행장과 바람 피우면서부터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쩍하면 리혼하자고 떠들기 시작했지.그런줄도 모르고 어린 딸애 한쪽 날개 떨어질가 봐 리혼하지 않았지.그때 훌 리혼했더라면 엄마도 덜 욕 봤겠는 걸 그랬어.)    한번은 글쎄 종호가 출장갔다가 돌아오니 뭔가? 간경화복수로 만삭이 된 임신부 배처럼 뚱뚱한 엄마를 퇴원시켜 집에 홀로 누워 있게 하지 않았겠는가.    약봉지도 옷걸개에 높이 걸어놓지 않았겠는가. 일어나지도 못하는 엄마가 약도 먹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고 뭔가?    려평이 엄마를 퇴원시키려고 할 때 종호 동생들은 견결히 반대했다.   "어떻게 생사선에서 헤매는 엄마를 퇴원시킨단 말이오?퇴원시키지 못하오."   류려평은 퉁사발눈알을 희번뜩이면서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저네 돈이나 대면서 반대하오? 다 죽어가는 림종환자를 더 치료해 뭘 하오? 아까운 돈이나 낭비했지.흥!당장 퇴원시키오."   류려평은 불효는 둘째고 의료도덕마저 어기고 엄마를 기어이 퇴원시키고 말았다.   사후에 사연을 알게 된 종호는 억이 막혀 말도 더 나가지 않았다.   (의료일군 출신으로서 최저한도의 인도주의도 없는 년,세상에 이런 지독한 쥐며느리도 있단 말인가? 악처라도 이런 악처 또 어디 있겠는가?)    시에미 하루 빨리 죽으면 부담을 덜려는 것이 불 보듯 뻔했다.종호는 그때 충동 같았으면 단통 도끼로 대갈통을 까 죽여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종호는 려향의 엄마라고 꾹 참고 이날 이때까지 살았다.그때 종호는 시내에 남아 살자고 대학졸업 때 저런 한족여자를 만난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황금흑사심이라고 속에 든게 없는 류려평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엉덩이를 들이대고 지행장 자리를 얻어가지었던 것이다.지행장이 된 다음부터 려평은 평소에 은행일을 하지 않고  마작이나 잘깍잘깍 놀았고 봄과 가을 유람철에는 출장간다고 구실을 대고 행장과 찰떡처럼 붙어다니면서 동남으로부터 유럽과 아메리카주  유람이나 싸다니었다.    종호는 그런 줄도 모르고 려평에게 이때까지 속아서 살았던 것이다.그는 바람난 년 손에 아직까지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겼다.   (아니, 그년이 몇번이고 날 죽이려고 했는지도 몰라. 그런데 내 말을 듣지 않아 그 년이 제대로 손 쓰지 못했는지도 몰라.)    한번은 종호는 오른쪽 아래배 아파 급히 병원으로 갔다.    남성의사는 화험단을 보더니 안경알을 춰 올리면서 종호를 보고 "급성 맹장염이구만.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때 류려평이 진찰부에 뛰어들어왔다.평소에 류려평은  침대머리에마저 몰카를 장치해놓고 남편이 바람 피우지 않는가 감시했다.핸드폰에 위치공유앱을 공유하면서 암암리에 종호의 행적을 감시해왔다.그런데 악처는 이날에도 핸드폰으로 위치를 추적하다가 병원에 간 걸 발견하고 별로 관심하는 척하면서 불시에 병원에 찾아왔다.     종호는 류려평도 위생학교 졸업생 출신 안해라고 믿고 말했다.   "수술하지 않겠소.맹장염도 염증인데 소염약으로 치료하면 되잖소?"   류려평은 퉁사발눈이 데꾼해졌다.   "의료상식을 개뿔도 모르면서 의사 앞에서 아는 소릴 작작 치오. 의사 수술하자면 수술해야지.무슨 군소리 그리 많아?"    종호는 의료광고를 하면서 두루 본 의료지식이 있어 의사를 보면서 간청했다.   "먼저 소염약을 치료해보면 안됩니까?"   "무슨 소리오? 인차 수술하지 않으면 맹장이 꽝 터지면 당장 죽을 수도 있어."   류려평은 종호의 잔등을 마구 떠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왜 아직도 꾸물거려?! 빨리 수술실로 가잖고 뭘 해? 어째 맹자이 탕 터져 죽고 싶은가?!"   그때 남성의사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되겠소.환자가 수술을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하지 못하오.먼저 입원해 소염약으로 치료하며 관찰해 보기오."   종호는 어깨 너머 본 의료지식 덕분에 수술을 모면했다.그의 말대로 먼저 의사가 떼준 소염약을 먹고수술하지 않고서도 맹장염이  치료됐던 것이다.   (어째 저 악처는 날 기어이 수술해라고 했을까? 수술사고라도 나서 수술대에서 날 죽이려고 저주한 걸까?)    종호는 감히 상상하기도 싫었다.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었다.    한번은 종호는 코물이 오래동안 흐르다 못해 코가 막히고 코에서 썩은 악취가 너무 풍기어 병원에 가려고 했다.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흘기면서 두더벌거렸다.   "손가락으로 코를 자주 뚜지더니 잘됐구만."   "소금물에 코구멍을 자주 씻으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해 그랬지."   류려평은 때를 만났다고 끊임없이 비아냥거리었다.    "듣기 싫어.그래도 의료지식이 있는 척 하긴! 무지하기로서니.ㅉㅉㅉ,대학을 개 밑구멍으로 다녔어?!진짜 병원에 가기도 좋아한다.저걸 그저 병원에 콱 심어놨으면.흥!"     종호는 그저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그러나 꾹 참았다.   (어째 저럴가?치료비 아까워 저러는가?)    그때까지는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치었다.    (내 저 년 말처럼 너무 병 공포증이 심한가?)   종호는 어떻게 하나 병원에 가지 않고 약방에 가서 비염약을 사다 먹으면서 뻗치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안 가서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코피가 줄줄 흘렀다.    “여보, 코피 모질 나오. 어서 휴지를 가져다 주오.”   류려평은 휴지를 훌 줴 뿌리면서 바가지를 긁어댔다.   “언제까지 심부름 시킬 작정인가? 제절로 약을 사다 먹더니 잘 됐구만. 항상 아는 체 하면서 의사를 초과하던게. 흥!”   려평이 딱 마치 죽으라고 저주하는 것만 같아 종호는 속이 씁쓸하고 섭섭했다.   병원에 가서 X광선과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코에 염증이 너무 심해 코썩임증에 코낭종이 있는데다가 비두염까지 심해 이마 염증덩이가 대뇌 쪽에까지 허옇게 뒤덮여 있지 않겠는가.    남성 주임의사는 X광선과 초음파 필림을 들여다보면서 경악했다.   "아니,비염과 비두염이 이렇게 심한데 아프진 않았습니까?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큰 일 납니다."   종호는 억이 막혔다.   서의들은 쩍하면 수술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외까풀눈이 데꾼해 의사를 보고 물었다.   "이 수술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의사는 아주 대수롭잖게 알려주었다.   "두개골을 짜개고 대뇌에 들어간 염증을 긁어내면 됩니다."   "네?두개골을 짜갠다고?"   종호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듣기만 해도 몸서리 칠 소리 아닌가.   "난 두개골 짜개는 수술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류려평이 또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니, 또 수술하지 않겠다고? 얼음강판에 나선 황소  퉁사발눈이 돼 겁도 많다. 골에 들어찬 염증을 긁어내지 않으면 죽을줄 알아.흥!"    종호는 악처한테 버럭 성냈다.    "닥치지 못해?! 쩍하면 수술하라고? 난 죽어도 수술 안해. 전번에도 수술하지 않고 소염약으로 맹장염을 치료하지 않았어?"    이번에도 의사는 환자가 수술하는 걸 반대하면 할 수 없다면서 수술하지 않고 소염약을 떼주었다.    그런데 그번에도 기적적으로 이마쪽 비두염은 말끔히 치료되지 않았겠는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종호는 한사코 수술을 주장한 류려평의 속셈, 악처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대에서 두개골을 짜갰다가 수술 사고로 훌 죽으면 시름놓자는 걸가?"     그때 종호는 의문을 풀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실 악처는 자기 탐오수뢰죄 드러날가 봐 겁났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 죄행 내막을 젤 잘 아는 종호는 일종 시한폭탄과도 같다고 여겼다. 마녀 같은 악처는 수술칼을 빌어 수술대에서 의료사고로 종호를 죽여버리려고 획책했던 것이다.    혼이 육체로 되돌아오자 종호는 다시 돌이켜 생각만 해도 섬찍했다.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어.훌 죽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더러운 세상을 더 보지 말았으면 속시원하겠는데. 참.)    뒤이어 쓸쓸한 생각이 시퍼런 파도처럼 덮쳐와 삶의 방파제를 사정없이 갈겨댔다.    (허나사나 조강지처가 어쩜 악처로 돼 나한테 차마 이럴 수 있어.그래도 젊어서는 물이 떵떵 어는 셋집에서 살면서도 뜨거운 사  랑으로 두 몸을 달구면서 젤 어려운 세월을 이겨나오지 않았던가.사랑의 첫 결정체인 딸애도 낳지 않았던가.난 국장집 귀공주를 데려다가 고행시킨다고 마음 속으로 미안해 천방백계로 잘해주려고 애써왔는데. 왜 이다지도 들볶는단 말인가? 함께 역경을 딛고 이겨낸 남편한테 차마 이렇게 할수 있단 말인가? 어쩜 안락사약까지 링겔병에 타 죽이려고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종호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해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혹시 그때 죽었더라면 이 더러운 세상을 다시 보지 않을 걸.세상에 믿을게 어디 있는가? 세상 지독한 악처의 백골을 다시 보지 않을 걸 말이야.)    종호는 암야에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나 외까풀눈을 딱 감아버리었다.
419    장편소설 황혼 제1권(14) 색마의 우멍눈 김장혁 댓글:  조회:672  추천:0  2024-07-13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14. 색마의 우멍눈      나영은 음식점에 부랴부랴 돌아와서 연길냉면을 만들면서도 려향의 의심에 찬 눈길을 보는 것만 같아 자못 괴로웠다.    귀전에서는 금방 려향이 하던 말이 아프게 울려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늙다리 색마의 가슴츠레한 눈길이 주방 안에서 개미 채바퀴 돌듯 하는 나영의 치마 밑의 탄력있는 하얀 다리를 핥고 있었다.    (야, 저 하들하들한 우유빛허벅다리를 쪽쪽 핥아보았으면, 헤헤헤.)    색마는 두툼한 입술을 쩝쩝 다시면서 야수처럼 입귀로 느침을 줄줄 흘리었다.   나영은 그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냉면그릇에 소 고기랑 사과 쪼각이랑 주어 놓았다.   그녀는 손님 상에 냉면그릇을 올리고 나서 주방에 돌아왔다. 허보스  날이 선 갱핏한 박대가리 그녀를 뒤따랐다.    나영은 피끗 늙다리 색마의 몰골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글쎄 늙다리 색마의 박대가리와 정호, 그 놈의 메스꺼운 대머리와 우먹눈이 겹치어 보이지 않겠는가.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방에 들어갔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쓰라린 추억에 빠지었다.   (정호, 그 놈 색마, 오늘까지 내 뒷다리를 잡아당길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순간 나영의 눈앞에 항상 당할 때 딱 올리쳐다보던 색마의 번대머리, 우멍눈이 떠올랐다.    욕정으로 이글이글 끓어번지는 유들유들한 낯빤대기, 성욕이 발작한 수캐 헤벌린 주둥이에 드러난 뻐드렁이빨,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그런데 그녀는 자꾸 회상하고 싶지도 않은 옛 추억에 휘말려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몇해 전에 문화국 국장인 최정호는 사무실에 나영을 유인해다가 얼리고 닥쳐 간음해 애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번은 최정호 국장이 전람관에 현지검사하러 갔다가 짧은 치마를 입고 해설하는 나영한테 홀딱 반해버렸다.   (아, 한 입에 삼켜도 비린내 날 거 같잖아.)   정호는 그날 현지검사는 대충하고 어떻게 하면 나영을 챌 것인가만 궁리했다.    점심에 전람관 관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정호는 관장 보고 점심 술상에 여자를 불러라고 힌트를 주었다. 눈치빠른 관장은 진작 최국장이 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전람관 1호 미녀 나영을 해설사로 내세웠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과연 최국장은 나영한테 눈독을 들인 것이 아니겠는가.    관장은 즉시 핸드폰으로 나영을 점심식사하자고 불러내 최국장한테 붙여놓았다.    그후부터 최정호 국장은 쩍하면 나영을 불러 식사하자고 하면서 느슨히 접근해 뭉치돈도 쥐어주면서 구슬렸다. 그런데 나영은 몸값을 잔뜩 높이면서 고까짓 돈 몇푼 받고 선선히 스무살이나 이상인 국장한테 몸을 내번지려는 막돼먹은 녀자는 아니었다.    정호는 국장 사무실에서 량미간을 찌프르고 궁리했다. 번개불처럼 피뜩 떠오르는 령감에 번대머리를 탁 쳤다.    어떤 사람들은 정호가 항상 무슨 일을 고민하다가도 피뜩 생각이 떠오르면 대머리를 탁 치는 버릇이 있어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번대머리로 됐다고 했다. 또 어떤 녀인들은 녀자들을 너무 많이 재낀 탓이라고 했다. 바빠맞은 녀자들이 정호의 머리털을 줴당겨 다 뽑아놔서 번대머리로 됐다고도 했다.      그는 사무실 전화기를 들었다.    “나영이오? 양, 최국장이오. 내 사무실에 인차 오오. 양? 점심식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소. 양, 개별조직담화를 하려고 그러오.”    그는 커피잔을 두개 가져다 커피를 풀었다. 철궤를 열고 쪽지모양종이봉지를 꺼내 수면제를 커피잔에 털어넣고 숟가락으로 슬슬 저었다.     그는 수면제를 탄 커피잔을 맞은 쪽에 놓고 음흉하게 헤쭉 웃었다.   “네년이 너무 몸값을 높이기에 별 수 없어.”    나영은 백사불구하고 사무실로 달려왔다. 그녀는 빨간 외투에 파란 짧은 치마 바람에 사무실에 사뿐 들어섰다.    정호는 맞은 켠 쏘파에 자리를 권하면서도 나영의 하얀 허벅다리에 음충한 눈길을 박았다.    “커피나 드오.”    정호는 음흉하게 수면제를 탄 커피잔을 나영한테 건네고 자기도 커피잔을 들고 점잖게 사무상에 가 앉았다.   “금방 말했잖소. 지금 전람관 해설원들을 잘 관리하고 조직하려고 국에서는 해설과 과장을 두기로 했소.”    나영은 커피잔을 든 채 기대에 찬 눈으로 말똥말똥 최국장을 쳐다보았다.   “지금 과장 후보를 고르고 있소. 아, 저 커피를 들면서 얘기하기오.”    나영은 그윽한 미소를 보내더니 커피잔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호호 불며 홀짝홀짝 마셨다.    “툭 찍어 말해서 난 나영을 아주 이쁘게 보오.”    “고맙습니다. 이쁘게 봐줘서 감사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나영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연신 꼽싹거렸다.   “난 나영을 과장으로 임명할가 하오. 나영은 인물체격이 좋지. 해설도 잘하지. 젊고 이쁘지. 전도가 창창하오.”   나영은 오쫄 일어나 허리를 꼽싹거렸다.   “감사합니다. 그 은공 꼭 갚겠습니다. 국장님, 잘 해드릴게요.”   정호는 때가 됐다고 우쭐 일어나 문 밖을 내다보더니 스리슬쩍 출입문을 잠궈버렸다.   그는 나영한테 다가가며 말했다.   “나영은 보은할줄도 알지. 이후에 과장뿐이겠소? 부관장도 할 수 있소. 내 한마디면 래일이라도 될 수 있소.”   나영은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잠겨 몸둘바를 몰라했다.    “부관장까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정호는 정희 어깨를 눌러 앉히더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내 말을 곰상곰상 들으면 관장도 할 수 있소.”    “?”   정호는 나영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나영은 화들짝 놀라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음충한 우멍눈과 부딪치는 순간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도로 내맡겼다.   “손이 진짜 부드럽군. 요 허벅다리는 더 이쁘구만. 허허허.”   정호는 손으로 나영의 야들야들한 허벅다리를 스리슬쩍슬쩍 쓰다듬었다.   나영이 옆으로 물러앉자 정호는 실망한 소리를 했다.   “녀자들이 승진하자면 자기 몸 무기를 쓸줄 알아야 하오. 그 무기로 과장이겠소? 부관장 자리도 쏴 떨굴 수 있소. 알만하오?”   “네? 아가씨도 아닌데요. 어떻게 그렇게까지야?”   나영은 핼쭉 웃었다.   “저를 재무과장을 시켜주십시오. 해설과 과장이라야 해설원 대여섯을 령도하는데요. 먹을알도 없는데요.”   정호는 제꺽 나영을 안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슬슬 매만지면서 구슬렸다.   “오후에 당장 전람관 부관장에 재무과장까지 임명할게. 어떻소?”   “어마나!”   나영은 너무나도 놀랐다.    그녀는 정호의 무릎 위에서 일어나 두 손을 맞잡고 퐁퐁 뛰었다. 그러나 나영은 수면제 약독이 피어 스르르 쏘파에 쓰러지었다.   색마의 대머리가 다가오더니 정욕으로 이글이글 불타는 음충한 우멍눈이 희죽이 웃었다. 뒤이어 번대머리가 그녀의 얼굴에 다가오더니 더러운 혓바닥이 하얀 얼굴이고 여린 목이고 개처럼  마구 핥아댔다. 나영은 뻔히 보면서도 수면제 약독이 피어 팔다리가 천근 무게나 되는 것 같고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색마는 나영을 안아 사무상에 눕히고 치마와 팬티를 훌 벗기어 쏘파에 훌 내던지었다. 번대머리가 다가오더니 나영의 젖무덤과 하신을 개처럼 핥아댔다. 나영은 색마 번대머리를 활 밀치고 싶었다. 하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멀거니 바라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말았다. 색마는 뒤로 달려들어 나영을 사정없이 유린하였다...       (이게 사건 진상이야. 그런데 류려평은 색마 정호가 한 추행을 리사장님한테 덮어 씌우다니. 어쩜 세상에 저런 악처도 다 있어? 건데 조강지처라고 여경들 앞에서 악처를 비호하는 리사장은 또 무슨 사람인가?)     나영은 팔짱을 끼고 소낙비 쏟아지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영의 눈 앞에 또다시 색마의 몰골이 얼른거리어 그녀를 괴롭히었다.    (그 놈은 나를 부관장 자리를 주고 내 몸을 여지없이 유린했지. 지어 임신까지 시켜놓았댔지. 그 놈은 날 생각하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친 놈이야. 어쩜 반부패탐오회뢰국에 날 5만원 횡령했다고  신고한단 말인가? 날 데리고 달아나기 위한 함정이었지. 그 놈의 음흉한 속내를 모른게 머저리지. 그 놈이 자기를 신고한 놈인지도 모르고 경찰들의 추적을 받으면서 그 놈을 따라 일본과 한국에까지 따라 다닌게 바보지.)     나영은 얼마 전에야 정호가 자기를 물어먹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공안국에서 일하는 사촌시형한테서 알고 남편 철석이 알려줘서야 뒤늦게나마 알게 됐던 것이다.   (그런 놈을 믿고 5만원 탐오한 일을 다 말한 내 바보지. 법망에서 빠져나가게 도와달라고 청까지 들었어?)     지금 생각해보아도 나영은 자기가 풀섶을 지고 불더미에 뛰어든 격이었다.     이제 와서 가슴을 꽝꽝 치며 후회해도 쓸데 없었다. 그럴수록 자기를 함정에 빠뜨린 색마가 가증오스러웠다.  .      (정호 놈한테 얼리우지 않았더라도 내 무슨 이런 고생 다 했겠어? 정호, 그 놈 색마 감옥에 갇혔다지? 감방에서 색갈을 다 했구나. ㅋㅋ. 콱 썩어나 져라!)     나영은 정호를 저주하면서 제리로 육수물통을 탕 치었다.    처절썩!   육수물보라가 사처로 튕기었다.   “미쳤어?!”   허보스가 주방에 뛰어들어왔다.    그는 우멍눈을 부라리면서 꽥 고함치었다.   “육수물이 원수나 졌어? 왜 탕 메쳐?!”    나영은 제리를 들고 허보스의 대머리와 우멍눈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당장 미칠 것만 같았다.    허보스 박대가리를 보는 순간 , 자기를 사무실에서 처음 유린하던 정호, 그 놈 색마의 게슴츠레한 대머리, 우멍눈으로 겹쳐 보이었다.    나영은 부엌에서 시퍼런 식도를 주어들고 허보의 길쭉한 박대가리를 노려 보았다.  나영의 쌍까풀눈은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질겁한 허보스는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끼낑거리며 주춤거리었다. 늙다리색마는 한대 얻어맞은 개처럼 주방에서 나가버리었다. 나영은 제리를 육수몰통에 활 쥐어뿌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그녀는 자기 전도를 망친 색마가 한스러웠다. 또 자기 때문에 쓸데 없는 말을 듣는 종호한테 미안해 바늘방석에 앉은듯해 안절부절 못했다.
418    장편소설 황혼제1권(13) 의심병 김장혁 댓글:  조회:496  추천:0  2024-07-13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13.의심병       아침 햇살은 이슬을 꿰어 옥구슬을 만들어 종호의 병실에 선물하고 있다. 악랄한 입방아질에 병원 앞 수림에서 지저귀던 새들도 놀라 도망친다.   종호는 류려평한테 억울한 무함을 당한 채 죽어 버리면 려향은 엄마 말만 곧이듣고 자기를 나쁜 놈으로 볼 것 같았다.   (류려평의 허위날조를 곧이들으면 세상 사람들이 날 뭐라고 해? 절대 죽어선 안돼. 그저 무함당하고 말겠는가.)   종호는 억울함에 반발심에 나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해 모지름을 썼다. 그러나 아직 건강이 채 회복되지 않아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그가 윽, 윽 힘 쓰는 걸 본 려향과 지영이 병상에 황급히 다가왔다.   려향은 아버지 입에서 산소호흡기를 떼고 물었다.   “아빠, 일어나겠는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려향과 지영은 천천히 종호 잔등과 손을 잡아 일으켜 앉혔다. 지영은 베개를 종호의 잔등과 침대 머리 사이에 받쳐주었다.   종호는 상을 찡그리더니 려향의 귀가에 얼굴을 가져가더니 나직이 귀속말을 했다.   “내 실수한 거 같아.”   려향은 외까풀눈이 데꾼해지었다.   “네? 알았어요.”    사실 종호가 날마다 식사는 못하고 링겔에 의해 살아갈 때는 대소변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영과 려향이 사 온 바나나랑 밥이랑 좀 먹기 시작하면서 대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려향은 지영과 함께 종호를 되돌려 눕히었다.   지영이 물었다.   “왜 되눕히오?”   려향은 지영과 제대로 말하기도 무엇했다. 그러나 처음 아버지 바지를 벗기고 대변을 받아내자니 아무리 부녀간이라도 좀 불편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쩔줄 몰라 안절부절하며 서성거리었다.   “혹시 아빠 대변보지 않았소?”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내 할게. 근심마오.”   “딸이 해야지. 어떻게 언니를 시키겠소?”   지영은 침대 밑에서 고무장갑이랑 대소변 요강을 꺼내며 말했다.   “돈 받고 간병하는데 내 하는게 옳소.”   지영은 려향을 뒤로 물러서게 침대 카텐을 쭉 당겨 치었다. 종호는 부끄러운대로 눈을 스르르 감고 모든 걸 내맡기고 모르는 척 했다.     종호는 재차 정신을 잃은 척하면서 눈을 지긋이 감아버리었다.    지영은 마스크를 끼고 엷은 고무장갑까지 손에 끼더니 종호를 모로 돌려 눕히어 놓고  환자복 바지를 벗기었다. 뒤이어 팬티도 아래로 천천히 내리었다.    순간, 구린내가 코를 찌르며 물씬 풍기어왔다.    지영은 외씨얼굴을 단통 돌리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아, 저게 뭐야?)   누런 똥이 팬티는 물론 엉덩이와 거기에도 누렇게 묻어 있지 않겠는가.   지영은 더러워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내 무슨 이런 개고생이냐? 아빠 알아 입원했을 때도 똥을 쳐본 적도 없어. 그땐 더러워 간병원을 고용해 대소변을 받아내게 했는데.)    지영은 상을 찡그리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글짓기 받는 애들이 줄어들지 않았어도 똥을 쳐내는 간병을 하진 않았을 건데. 참, 학원도 망했지. 할 수 없지.)   카텐 밖에서 려향은 그런 것까진 보지 못했기에 괜찮았다. 보지 않으면 약이라는 걸까.   지영은 더러운 건 둘째고 싯누런 똥이 묻은 종호의 두 다리 새 그걸  보기도 계면쩍었다. 그걸 쳐들고 중태에 묻은 싯누런 똥을 닦아버려야 했다. 그러나 차마 손이 거기에 가기 부끄러웠다.    순간, 지영은 종호 간병을 소개해준 나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간나새끼, 돈 벌겠으면 제나 똥 쳐 낼게지. 날 이런 더러운 엉치치개에 붙혀 놔?”   처음에 지영이 뒤에서 이렇게 말하자 나영은 도리머질을 했다.   “난 안돼.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잖아? 고정된 간병 일을 못해. 나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허보스 능욕도 받지 않고. 난 냉면점에서 임시 일하다가 언제든지 도망가야 해. 네 좀 수고해라. 공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13만원씩 주잖아?”    지영은 이제껏 간병을 해도 남자환자 거기에 묻은 똥은 닦은 적이 없었다. 대부분 여성환자나 생활을 자립하는 남성환자를 간병해 왔던 것이다.    이번엔 딱 맞띠웠으니 별수 없었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휴지를 쥐어 엉덩이에 묻은 누런 똥부터 닦아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그걸 쳐들고 거기에 묻은 싯누런 똥도 휴지로 닦아냈다. 뒤이어 수건을 대야의 물에 씻어가지고 엉덩이와 거기를 싹싹  닦아주었다.    이게 뭐야?    지영은 거시기를 쳐들고 중태에 묻은 싯누런 걸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다. 고환이 하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글쎄 중태에 섬찍한 수술자리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더 놀라운 정경이 벌어지었다.    거기를 닦아주니 그게 꿋꿋이 쳐들지 않겠는가.    (이분이 이젠 살아났구나. 그게 한 알 밖에 없는데도 이렇게? 남자들이 이게 죽으면 얼마 못 가 죽는다던데.)   구급환자인 종호에게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지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계명쩍은대로 대소변을 말끔히 닦아냈다.    계면쩍기는 종호도 마찬가지었다. 그놈이 글쎄 체면도 없이 지영의 손길이 몇번 닿자 머리를 쳐들다니? 별 수 없지. 미녀를 보니 그 놈도 머리를 쳐들고 보고 싶어하는 거. 어쩌겠는가?    (잠재한 본능은 로실한 거야. 어쩔 수 없지.)    “미안하오.”   종호는 몇번이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영이 불편해 할가 봐 눈을 지긋이 감고 모르는 척했다. 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꼴깍 삼켜버리었다.   지영은 진짜 부모의 대소변도 받아낸 적이 없었다.   지영은 혼자는 힘들어 려향과 함께 가텐 안에서 낑낑거리면서 종호의 엉덩이를 들고 팬티와 환자복마저 바꿔 입혔다.   똑, 똑똑.   처음 노크는 짧게 한번, 좀 쉬어 련속 두번 노크하는 소리를 들어보아 또 나영이 온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가. 나영이 또 망과랑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대야랑 들고 나가는 지영과 딱 마주치며 인사했다.   “수고 많구나.”   “수고뿐이야.”   지영은 단마디로 대충 대답하고는 병실 문 밖으로 나가버리었다.   한편 나영은 종호의 간호를 직접 하고 싶어도 경찰에 쫓기는 신세라 할 수 없어 지영이를 병간호하게 소개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내 마음에 내려가지 않아 자꾸 찾아왔다.     나영은 려향과 물었다.    “아빠, 괜찮소?”    “네. 아침에 일어나 앉기까지 했댔어요.”    려향은 나영과 함께 아빠 침대에 다가가 카텐을 훌 열었다.    “아빠, 나영 언니 또 왔어요.”    종호는 눈을 천천히 뜨더니 일어나 앉으려고 애썼다. 려향과 나영은 양쪽에서 종호의 잔등을 받치며 일으켜 앉혀 놓았다.    “리사장님, 건강 회복되니 기뻐요.”   종호는 나영의 수척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애를 데리고 바쁜데 자꾸 오지 마오.”   나영은 종호의 손을 잡아 매만지었다.   “애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어요. 근심 말아요. 음식점엔 아직 손님도 오지 않는데요.”   종호도 나영의 손을 잡고 근심했다.   “그래도 허보스 눈치 보이잖소?”   나영은 수척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었다.   “리사장님은 저의 구명은인인데요. 마땅히 찾아봐야죠.”   려향은 아빠한테 너무 친절한 나영을 보고 부쩍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아빠와 나영의 환한 표정을 보고 또다시 의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저 강렬한 눈빛을 봐. 아빠는 딸 같다면서 그런 사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따지만. 저 눈빛 이상야릇하잖아? 혹시 의지가지 없는 나영이 아빠를 짝사랑하고 있는 건가?)    려향은 아빠와 나영한테 툭 까놓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또 앓다가 갓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한 아빠를 피곤하게 구는 것 같아 망설이었다.    려향의 속내는 모르고 나영은 려향이 있는 걸 잊은듯이 주저없이 별 말을 다 했다.    “리사장님이나 저나 다 죽다 살아난 사람 아닌가요? 이젠 이전의 리사장님이나 나영은 다 죽었어요. 이젠 우리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새 삶을 살자요. 제가 리사장님이 톺아오르는  미끄러운 절벽길에 푸른 이끼가 돼 미끄러지는 발을 받쳐 주고 싶어요. ”    려향은 웬간히 놀라지 않았다.   (문학석사생답구나. 뭐? “절벽길의 푸른 이끼로 돼 미끄러지는 발을 받쳐 줘?’ 아주 문학적인 철리를 쏟아 내지 않는가?)   나영은 종호한테 어떻게 삶의 의욕을 북돋아 주느라고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려향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저 말은 무슨 뜻인가? 아빠하고 살겠다는 말 아닌가?)   려향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아빠와 나영을 삼조대면을 시키자고 들었다.   “나영 언니, 한가지 물어볼게 있소.”   나영과 종호는 려향한테 얼굴을 돌리었다.   “뭔데?”   려향은 핸드폰을 꺼내 식지로 훑어대더니 나영의 앞에 내들었다.    “이건 뭔가요?'    나영이 보니 이런 문자대화 사진이 아니겠는가.      호: 영이, 참 오랜만이오. 반갑소.    영: 그래요. 저도 기뻐요. 그대와의 위챗 대화 ㅋㅋ    호: 엊그제 끌끌한 청춘이었는데.    영: 세월이 넘 빨리 흘러갔네요. 오- 걷잡을 수 없는 세월 얄미워요.    호: 오-그 정열에 불타던 청춘의 추억이여.    영: 이런 말 자꾸 하면 난 어쩌는가요? 눈물만 자꾸 흐르는데요.    호: 그저 혼자 조용히 보고 싹 다 지워 버리오.    영: ㅋㅋ    호: 우리 둘의 정열을 불살라 남긴 사랑의 흔적은 당직실 깜깜한 구들에서부터 시작해 한강 뚝에, 모래톱에, 철길 옆 채마전에, 북한강 영월  버들방천에, 설악산 단풍나무숲 속에… 그 불탄 사랑의 흔적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구나. 아, 뼈 속에, 골수에 박힌 옛 추억이어, 해란강 사랑의 로맨스야-      나영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의심에 찬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으로 나영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이렇게 묻는 거 같았다.    “이건 어떻게 된 거요?”   려향은 바투 들이댔다.   “이건 언니 아빠하고 한 대화 아니오?”   “아니야!”   나영은 단마디로 부정해버리었다.   려향은 의심이 불찌처럼 툭툭 떨어지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나영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따지고 들었다.   “이걸 보오. 분명 종호란 '호'자와 나영이란 '영' 자가 박혀 있잖소? '영' 자 박힌 여자 사진 언니 아니고 뭐요? 그래도 떼를 쓸테오?”   나영은 머리를 푹 숙이고 한참 궁리하며 착잡한 생각에 빠지었다. 그녀는 자기 사생활을 려향 앞에서 터놓을 수는 없었다.    “오늘 삼조대면 했을 때 솔직히 말하오. 언니하구 아빠 주고 받은 대화 맞지? 도대체 아빠하고 뭔 지껄이를 했댔소? 우리 아빠, 엄마 사이에 끼어들어 울 아빠하고 살 작정인가?”    나영은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아빠를 억울하게 굴지 마오.”    “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솔직히 말하오.”    그녀는 려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건 내 문자대화 맞소. 그러나 아빠와는 무관하오? 이걸 보고 사진도 아빠 사진이 아니잖소?”   려향은 그 대화 쌍방의 닉넴과 사진을 찬찬히 보았다. 확실히 아빠 모멘트의 사진과 다른 사진, 낯모를 남자 사진이었다.   려향은 그래도 반신반의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 '호'는 아빠 아니라고? 아직도 변명할 테오?”   려향은 핸드폰을 아빠 눈 앞에도 내들어 보이었다.   “려향이, 그 문자대화 사진 내게 보내주오.”   이윽고 나영의 핸드폰에 메시지 들어오는 소리 울리었다.   나영은 자기 핸드폰을 꺼내 식지로 그으면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걸 보오. 여기 '호', 그 사람 사진을 찬찬히 보오. 아빠 아니잖소?”   려향이 보니 중절모를 쓴 호의 위챗 사진은 진짜 아빠가 아니었다.   “그럼 '호'란 이 사람 누구요?”   나영은 종호를 구하기 위해선 큰 결심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종호를 말끄러미 마주 보다가 고통스런 눈길을 려향한테 돌리더니 천천히 무거운 입을 떼었다.    “건 나하구 정호가 주고 받은 대화야.”   “정호라니오?”   려향은 어리둥절해 나영과 아빠를 번갈아보았다.   종호는 려향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맞아, 정호는 내 고중 때 동기생이야. 이전에 내한테 그런 문자 대화를 보내 자랑질 한 적이 있어.”   정호는 썩 전에 자기한테 이런 젊은 애인이 있다고 나영과의 대화 사진을 위챗으로 보내 왔던 것이다.   “그럼 언니 그분과...”   려향은 더 말치 못했다.   나영은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정호, 그 놈은 내 청춘과 가정, 전도를 망쳐 먹은 색마야. 그 놈 말 더 꺼내지 마오.”   나영은 손수건을 꺼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빠를 자꾸 의심하지 말아. 아빠를 더는 괴롭히지 말라. 려향의 아빠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야. 아빠는 내 털끝 하나 다친 적도 없어.”   종호도 말했다.   “그 문자는 정호가 내게 보낸 대화 사진이야. 나하고 글 쓰는 걸  토른하자면서 보낸 건데. 정호는 나 보고 자꾸 투쟁사요, 뭐요 쓰지 말고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해나는 남녀 사랑이나 련애를 쓰라면서 그런 문자대화를 보냈댔어.”    그제야 려향은 두 눈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었다.    “그걸 엄마 촬영했어?”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아마 내 잠든 틈에 내 핸드폰을 훑어 보고 그 대화를 촬영했겠지.”    려향은 엄마가 아빠 핸드폰 위에 자기 핸드폰을 얹어놓고 람야앱으로 아빠 핸드폰 모든 정보를 복제해낸 걸 알고 있는 터라 아빠 그 말을 믿었다.   그는 려향의 손을 잡고 간곡히 당부했다.   “이젠 나영을 의심말아. 난 그저 나영을 딸처럼 생각할 뿐이야. 딸 같은 나영이 음식점 허보스한테 능욕당할가 봐 세집에 데려 왔을 뿐이야. 너도 생각해 봐.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허망 나앉은 나영을 어떻게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 네라면 불쌍하지 않겠느냐? 동정하지 않겠느냐?”    그 진심에 찬 말을 들으며 나영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리사장님은 내 구명은인이야. 나는 구명은인을 잊지 못해 자주 찾아 오는게오. 아빠는 청백한 분이오. 절대 오해하지 마오. ”    려향은 종호와 나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외까풀눈에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빛이 어둡게 깔리어 있었다.   그녀의 귀전에는 엄마가 하던 말이 아프게 울리었다.    “네 아빤 신문사 사장실에서 나영을 재끼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나영의 치마를 들고 뒤로 했어...”    려향은 모든 걸 깨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빠 앞에서 나영을 더  까밝힐 수도 없었다.    려향은 아빠 옆에서 우쭐 일어나 문께로 나가면서 핸드폰을 들어 나영한테 문자를 보냈다.       언니, 미안하지만요. 누가 제보하던데요. 아빠가 신문사 사무실에서 나영 언니를 재꼈다던데요. 사실인가요?       그 문자메시지를 보자 나영은 인차 우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뒤이어 려향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꾸 이러면 더 할 말이 없소. 아빠와 나를 절대 의심하지 마오. 절대 그런 일 없소. 이건 무함이오. 려향이라면 제 아빠 같은 늙은이와 살겠소? 되지도 않는 말을 하지도 마오.      그러나 려향은 말을 꺼낸 바 하고는 끝장 내고 싶었다.    그녀는 아빠한테 따지고 들었다.    “엄마 그러던데요. 아빠 사장 사무실에서 나영을 재기었다던데요. 그런 일 있는가요?”    려향은 금방 나영과 주고 받은 메시지까지 보이었다.    “또 엄마 말한게지.”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종호는 정색해서 말했다.    “너만 알고 있어라. 이건 정호가 국장 사무실에서 한 여자를 재낀 사실을 가지고 나를 무함하는 거야.”    “네?”    려향은 외까풀눈이 화등잔이 다 돼버리었다.    “그 사실을 네 에미한테 말한 적 있는데 지금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려향은 아직도 모든 걸 반신반의하는 눈길을 풀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을뿐이었다.    병실에는 의심과 믿음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진동하며 울리었다. 이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 풍운조화는 모두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가.
417    장편소설 황혼 제1권(12) 조강지처 김장혁 댓글:  조회:569  추천:0  2024-07-13
      김쟝혁 작 장편소설 황혼                12.조강지처       려향은 엄마를 나포해간 병실을 눈물어린 눈길로 둘러보았다. 아빠마저 눈을 딱 감고 침묵을 지킨다. 숨막힐듯한 쓸쓸한 적막이 납덩이처럼 흘러갔다.     려향은 아빠를 침대에 바로 눕혀주고 피기 없는 아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려향은 누구도 몰래 침대머리에 초미형몰카를 장치해 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병실이 비면 누구도 몰래 몰카를 뜯어내 돌리어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확실히 링겔 병에 뭔가 주사해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엄마가 병실이 빈 틈을 타서 아빠 핸드폰 위에 침대보를 펴고 그 위에 엄마 핸드폰을 얹어놓는 것도 모두 몰카가 촬영한 동영상을 다보았던 것이다. 엄마는 분명 엄마를 살해하려고 했다. 엄마는 분명 아빠 핸드폰에서 모든 정보를 빼가서 돈을 훔쳐 쓰려는 것도 다 알았다.     (엄마는 음험한 강도야. 지능도적놈이야.)     그러나 려향은 엄마의 모든 것을 까밝힐 수 없었다. 그는 아빠가 쓰러졌는데 엄마마저 쓰러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자기를 살해하려는 엄마를 비호해 말하지 않았는가.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던데요.아빤 조강지처를 버리진  않았군요!)   려향은 칼로 에이는듯이 마음이 아파났다.   (엄만 어째 이렇게 도량이 넓고 착한 아빠를 살해하려고 해? 정말 나빠.)   종호는 속으로 려향한테 이렇게 말했다.   (려향아, 난 절대 네가 엄마까지 잃게 하고 싶잖아. 내가 훌 죽으면 그만인데...)   그러나 려향은 아빠나 엄마 중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부랴부랴 몰카에서 엄마 죄증을 몽땅 지워 버리었다.   종호는 혼미상태에 빠졌다 정신 차렸다 하면서도 병실에서 벌어진 일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했던 것이다.   종호는 쓰라린 눈물을 눈귀로 주르르 흘릴뿐이었다.   (아, 어쩜 조강지처가 날 살해하자고 할 지경까지 됐을까?)   그는 눈을 스르르 감고 돌이키고도 싫은 옛 추억에 빠지었다.   (우린 처음부터 악연인 건 아니었지.)   종호가 처음 려평을 만났을 때 한족 처녀여서 좀 께름직했다. 하지만 우유빛얼굴에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퍽 매력적이어서 첫눈에 마음이 확 끌리었다. 쌍까풀눈에는 좀 숨은 심술기가 어린 것 같았지만 생글방글 웃는 모습이 퍽 이뻤다. 황차 류려평은 국장의 딸이었다. 종호는 류려평이란 바줄을 타고 국장의 힘을 빌어 자기 꿈대로 시내에서 신문사 기자로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눈을 질끈 감고 류려평과 약혼하고 결혼까지 했던 것이다.      류려평은 비록 농촌태생인 종호 가정 배경이 좀 마음에 걸리었다. 하지만 종호가 사내답게 생긴데다가 대학생 배찌를 달고 있어 그런대로 결혼했던 것이다.    종호는 지금 후회막급이었다.    (시내 녀자라고 대학 문도 나오지 못한 저 려평과 결혼한게 내 인생에 치명적인 잘 못이었지. 이렇게 악연이 될줄은 실로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종호는 시내 국장 집 공주 같은 딸을 콧구멍만한 세집에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이 항상 마음 속으로 미안했다. 그리하여 려평이 임신해 배가 부러오를수록 가무를 전담하다싶이 거들어주었다.    종호는 아침 일찌기 일어나 떵떵 얼어붙은 물독의 얼음을 깨고 바가지로 살얼음이 간 물을 퍼 가마에 넣고 석탄불을 피워 부글부글 끓이어 감자장물을 끓이었고 바가지로 쌀을 일어 전기밥가마에 넣고 전기를 넣었다.    거기까지 회상하자 종호는 피씩 웃었다.   (려평은 시내 국장집에서 공주처럼 곱게 자라서 스물넷에 시집왔건만 쌀을 일줄도 몰랐지. ㅎㅎ.)    그래도 농촌에서 자란 종호는 엄마한테서 배워서 쌀을 일줄 알았다. 아빠랑 엄마랑 일밭에 가면 종호는 제법 쌀을 일어 솥에 넣고 벼집단을 쑤시어넣고 불을 때 밥을 지어 점심상에 올리군 했다.    종호는 려평의 하얀 손을 잡고 쌀바가지로 쌀을 이는 걸 배워주었다.   류려평은 하얀 입쌀에 까만 돌싸락이 가득한 쌀바가지를 들여다보며 뒤저참하며 물앉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못해! 이 숱한 돌을 어떻게 다 골라내?”   려평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벌써 눈물이 글썽해지었다.    “그럼 내 할게. 넌 밥 짓지 말아도 돼.”   그후부터 종호는 아예 려평을 시킬 념도 하지 않고 밥짓기는 도맡아했다.   종호는 려평이 뚱뚱한 배를 안고 병원에 가서 밤당직을 서러 가야 될 때에는 혹시 얼음강판에 넘어질가 봐 항상 려평의 팔을 껴안고 데려다 주군 했다.    (지금처럼 승용차라도 있었더라면 려평을 그렇게 고생시키지는 않았겠는데. 80년대에는 차도 그렇게 귀했지.)    종호는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했다.류려평이 애를 낳던 그 날의 정경이…   종호가 집에 가서 애 포대기를 가지고 산부인과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산실에서 애의 울음소리 간간히 들리지 않겠는가.  (아들을 낳았을까?아니면?)    그는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산부인과 산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었다.    그때 어머니가 나오면서 반색했다.   "애 아버지, 축하하오."   종호는 엄마 손을 잡으면서 다급히 물었다.   "아들입둥?"   엄마는 산부인과 산실 쪽을 뒤돌아보더니 나직이 귀속말로 알려주었다.   "딸이오."    종호는 엄마가 입귀를 삐쭉해 보이는 것을 보고 엄마 손을 활 놓아주며 무릎을 탁 치었다.   "재수없군."   "딸이 좀 좋아 그러오? 아들들이 어디 부모를 돌볼 새 있소? 딸들이 그래도 부모를 꼼꼼히 챙기지."    종호는 눈을 흘기었다.   "우리 전주 리씨 대를 끊겠습구마."   "지금 세월에 대를 이어 뭘 해? 잘 살면 되지.흥."    종호는 엄마가 지금 불효를 저지른 아들을 빗대고 꾸짖는다고 느끼었다. 그후 종호는 대를 잇지 못한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입 에 빗장을 지르고 말았다.    그는 산실에서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류려평의 피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당신 수고 많았소."    려평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을 흘기었다.   "아들을 낳지 못했는데 수고는 무슨 수고?흥!"   그러나 종호는 려평을 더는 나무리지 못했다.피가 즐벅한 그녀의 바지를 보는 순간,대를 끊을 위기, 아들을 낳지 못한 모든 꼬까운 생각 등등이 몽땅 연소돼 사라지어 버리었다.   (애도 낳고 살기 힘 드니깐. 날따라 류려평의 불평소리는 높아만 갔지.)    지금도 종호는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콧구멍만한 세집에, 그것도 남이 닭을 치던 창고에 구들을 놓은 셋집에서 애를 데리고 셋집살이를 한다는 것은 진짜 눈물겨웠다. 새도 둥지 있는데.대졸생이 남의 닭굴자리 창고에서 산다는 것에 릉욕감까지 생겼다.주인 집에 가서 물초롱으로 물을 길어올 때면  려평은 항상 종호를 욕하면서 두덜거리었다.   "나그네 어찌 제 구실을 잘 했으면 이런 셋집살이를 다 해?그러고도 남편이느라고 틀을 차려?남편이 가정 기둥을 떠메야 하는데 이건 뭔가? 한푼도 차례지지 않는 글을 맨날 써선 뭘 해?"    밥상 하나를 놓으면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 콧구멍만한 셋집은 아무리 불을 때도 엄동설한에 견디기 어려웠다.    죄꼬만 려향은 너무 추워서 아빠와 엄마 사이에 누웠다가도 고사리손을 뻗치어 아빠를 가리키며 종알거리었다.   "아빠는 그 쪽이 추워 어쩌겠니? 내하고 바꿔 누워 볼까?"   "응? 그래자."   종호는 너무 추워 꾀를 부리는 려향을 보고 콧마루 시큼해났다.   바꿔 누워 봐도 춥자 려향은 또 꾀를 부리었다.   "아빠, 그 쪽이 덥겠다.바꿔 누워 잘까?"   "그래자."   어린 딸애도 살자고 꾀를 쓰는 걸 보고 종호나 려평이나 칼로 에이는듯이 가슴이 아파났다.   려평은 본가집에 들어가서 살자고 했다. 그러나 종호는 가시집에는 절대 들어가 얹혀 살지 않겠다고 했다.   "이 주제에 사내느라고 바보처럼 자존심을 세워? 그걸 떼 개를 줘라."   (80년대 초기는 개혁개방 초기어서 주택건설이 따라가지 못해 진짜 석탄창고 자리 셋집도 얻기 힘들었지.)    종호는 국장 집 공주를 데려다가 고생시킨 것에 항상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대신 려평을 인간적으로 잘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려평은 항상 본가집 신세에 집을 샀다는지, 시집 식구들을 몽땅 시내에 들여왔다는지 하면서 행악질하며 종호를 돈을 팔아 책을 낸다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괴롭혔다.    심지어 종호가 술을 마시고 늦어 집에 들어가면 의심해 행적을 추궁하었다.누구와 술 마셨는가 따지고도 모자라 주먹코를 벌름거리면서 종호의 몸 아래 위를 냄새를 맡아댔다.지어 그것까지 이리저리 번지면서 살피고 냄새까지 맡아댔다.     그래도 종호는 이날 이때까지 조강지처라고 참고 참으면서 인간적으로 잘해주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   (오,이젠 려평은 날 안락사시키려고까지 하지 않는가?)    종호는 쓰라린 피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빠,왜 울어?"   옆에서 지켜보던 려향이 아빠 볼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우린 조강지처인데 왜 이 지경이 됐지? 마음이 아프다, 아파."   려향은 옆에 지영도 없는지라 조용히 물었다.   "아빠,왜 엄마를 두고 나영하고 바람 피웠어?"   그때 나영은 병실 문 앞에 와서 노크하려고 하다가 병실에서 들리는 려향의 말소리에 쳐들었던 손을 내리었다. 그녀는 복도 사위를 살피더니  병실에서 두런두런 주고 받는 부녀의 말소리에 귀를 도사리었다.    그 말에 종호는 벌떡 일어났다.   "그런 일 털끝만치도 없어? 누가 그래? 이건 무함이야."    려향은 진실을 알고 싶었다.   "아빠는 신문사 부사장 재직 때 나영을 인터뷰 하는 기회에 사무실에서 나영을 재꼈다던데요."   "개소리!근본 나영을 인터뷰 한 적도 없어.바람 피운 일도 없어."    종호는 격노해 침대를 마구 쳐댔다.    뒤이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나영이 홀로 들집도 없이 헤매는 걸 동정해 우리 셋집에 데려다 재운 것 뿐이야.나영이 불편해 할가 봐  나영이를 셋집에서 자게 하고 종각역 층계에서 쪽잠을 잤댔어. 그후 나영이 날 보고 셋집에서 자지 않으면 자기가 나가겠다고 해서 한 집에서 잤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녀가 한 집에서 잤는데 그런 일 없다면 세상에 누가 믿겠는가요? 병신이 아니고서야 젊은 여자를 가만 놔둘 수 있겠나요? 흥!”   려향은 외까풀눈을 슴벅이며 종호 눈을 들여다보며 진가를 가르려고 들었다.    “아빤 나영과 함께 살자고 엄마하고 리혼하자는건 아닌가요?"   종호는 억울하고 너무 한심해 푸념질했다.   "건 아니야.이건 버선 목이니 번져 보이겠니? 난 의지가지 없는 나영을 불쌍해 딸처럼 생각해 줬지. 함께 살자고 도운 건 절대 아니야. 그런 음충한 마음을 가진 적도 없어.이건 참, 착한 마음으로 의지가지 없는 여자를 돕다가 억울하게 의심받다니? 너마저 의심해? 진짜 세상이 더러워서 못 살겠다.그래서 자살하자고 했어."   려향은 황급히 손사래를 저었다.   "자살하긴요? 미안해요? 저도 아빠 진실을 알고 싶었어요. 아빠, 착한 아빠를 줄곧 믿어 왔어요.우리 아빤 절대 그런 나쁜 바람둥이 아니죠. 정인군자지요.우리 부녀간 서로 믿고 도우면서 험악한 세상에서 굳세게 살자요."    딸이 울면서 말하자 종호는 침대에 쓰러지더니 눈을 스르르 감아버리었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나영이 병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다.   "맞아요. 리사장님은 세상에 둘도 없이 청백하고 착한 분인데요.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우린 서로 도우면서 굳세게 살아야 해요."    나영의 목소리를 듣자 종호는 두 눈을 번쩍 떴다.나영은 그들 부녀간이 주고 받는 말을 복도에서 다 들은 것 같았다.    나영은 바나나랑 사과랑 꺼내 침대 머리 차탁에 놓아 주었다.    그녀는 바나나 껍질을 손수 벗겨 종호한테 드리며 살뜰히 문안했다.   "몸은 괜찮지요? 리사장님 정신 차린 걸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종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나영의 손에서 바나나를 받아 천천히 한 입 떼 먹었다.   그는 보름 너머 쌀알 한 알 먹지 못하고 링겔로 연명해 왔다.  오늘 어쩌다 처음 바나나라도 먹는 걸 보고 나영과 려향은 무척 기뻤다.   종호는 바나나를 달콤하게 먹으면서 수척한 외씨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콧마루가 찡해나 눈물이 글썽해지었다.   려향은 손수건을 꺼내 아빠 볼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드리었다.    나영은 멜가방에서 책 몇개 꺼내 종호의 눈 앞에 내밀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출판한 책을 가져 왔어요.”    나영은 종호가 젤 좋아하는 선물이 책이란 걸 알고 종호의 새로 출간한 책을 가지고 와서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었다.    “한국 서점에서도 선생님이 애나게 쓴 책을 팔더군요. 이 좋은 세상에서 왜 죽겠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내고 싶은 책을 출판해내면서 빛나게 살아야죠."    종호는 나영의 열기 띤 열변을 듣기만 해도 사는 재미 있을 것 같았다.    나영은 자그마한 핸드빽에서 5만원 지페 한 묶음이나 꺼내 척 내밀었다.   "자, 적은대로 받으세요.    종호는 눈이 데꾼해지었다.   "아니, 이건?"    려향도 저으기 놀랐다.    "아니, 전번에도 병문안 오면서 숱한 돈을 내놓고 또…"    "선생님의 책 출판할 비용으로 쓰세요."     나영은 손으로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쌍까풀눈에 웃음꽃을 곱게 피우면서 종알거리었다.    "리사장님은 저의 구명은인인데요.선생님 은공에 비하면 요만한 건 아무 것도 아닌데요.이전에 짧은 생각을 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죽을 용기 있으면 왜 살 용기는 없는가?' 이젠 그 말씀 선생님한테 돌리어 드립니다. 용기를 내서 우리 굳세게 살아봅시다."    종호는 나영의 보들보들한 따뜻한 손을 잡는 순간,새 삶에 대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감이 들었다.   웬 일일가?    조강지처고 뭐고 다 허깨비처럼 다 날아가고 새 삶에 대한 동경이 옹달샘처럼 퐁퐁 솟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416    장편소설 황혼(11) 나포 김장혁 댓글:  조회:433  추천:0  2024-07-12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11.  나포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점심, 뜻밖에도 려평이 병원에 나타났다.    그녀는 복도에서 도적고양이 걸음을 하면서 사위를 둘러보았다.아무리 퉁사발눈을 희번뜩거려 봐도 수상한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려평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더니 슬금슬금 종호의 병실로 다가가 문을 벌컥 열었다.   "엄마!"   려향은 놀란 눈길로 려평을 쏘아보며 마중했다.   지영은 어두운 기색으로 려평을 흘끔 곁눈질하며 건성으로 눈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가버리었다.   그녀는 복도로 나가 굽인돌이를 돌자마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저기요.류려평이 병원에 나타났어요. 네.리선생님 병실에 금방 들어갔어요."   경찰서에 신고한 후 지영은 경각심 높이 종호네 병실을 주시했다.    한편, 병실에서 류려평과 려향은 서로 눈치놀음을 했다.      려향은 이젠 류려평을 엄마라기보다 불청객이랄까, 경계대상이랄까 환영받지 못하는 여자로 여기게 됐다. 그녀는 도적놈을 대하듯 눈을 떼지 않고 암범의 일거일동을 살피었다.      종호와 려향은 류려평을 암범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류려평이 범띠인 것도 있겠지만 범처럼 너무 뭇섭게 독살스럽기 때문이었다.    류려평도 이상한지 횡설수설하면서 허리 굽혀 침대 밑이랑 탁자 밑이랑 살피었다. 혹시 병 쪼각이라도 남지 않았는가 근십됐던 것이다.   그러나 려평은 어찌 알겠는가? 지영이 진작 병 쪼각을 주어 경찰서에 가져다 바치고 신고했다는 것을.    인터폴 법망이 점점 자기한테 옥죄여 온다는 것은 더욱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류려평이 종호를 자꾸 찾아온 것은 종호의 병문안보다도 로임카드에 관심이 갔던 것이다. 국내 같으면 탐오하고 얻어먹은 돈이 가득해서 종호의 로임 같은 건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검은 돈을 하나도 가지고 한국에 나오지 못한 려평은 종호 로임카드의 돈이 아니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핸드폰은행카드를 들여다보니 자기 모든 카드는 이미 진작 차단됐던 것이다.   (분명 수사기관에서 내 탐오횡령죄를 수사해내고 은행에 위탁해 자금줄을 차압한 거야. 난 어떻게 살아?)   류려평은 돈도 돈이겠지만 링겔에 주사해 놓은 사건 정체가 발각되는 날에는 한국에서도 발을 못 붙힐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류려평은 오늘도 무슨 단서를 남긴가 근심돼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기웃거리면서 살펴 보아도 병 쪼각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뒤이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거친 숨소리를 내는 종호를 내려다보면서 두덜거리었다.   "네 애빈 그 개도 먹지 않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날리자고 제 집을 다 팔아먹은 망할 놈이야."   려향은 려평에게 눈을 흘기었다.   "또, 또, 시작인가요?"   "흥!"   려평은 콧방귀를 뀌었다.   "네 애빈 세상 바람둥이야."   려향은 몸까지 마구 흔들고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하며 고함쳤다.   "근거 없이 아빠를 마구 욕하지 말아요."   "근거 있어."   류려평은 뜨물에 빠진 돼지 쌍까풀눈으로 려향을 표독스레 쏘아보며 고함치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어느날 급한 일 있어 신문사 사장실에 찾아갔더니. 뭐겠니? 저 놈이 글쎄 사장실에서 나영이란 년과   한창 그 짓을 하지 않겠니? 얼마나 메스껍던지. 저 짐승 같은 놈이 시퍼런 대낮에 단위 사무실에서 사무상에 나영을 엎디게 하고 치마를 들고 뒤로 달려들어 그 짓을 했어!"   진짜 심통히도 제 눈으로 본듯이 헐뜯었다.   려향은 누가 들을가 봐 손으로 려평의 입을 마구 막았다.   "생사람 작작 잡아!"   그때 종호가 억울한듯이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   려평은 려향의 손을 마구 쥐어 뿌리치었다.   "걷어치워!내 생사람을 잡는다고?! 넌 왜 아빠 역성만 드니?"   려향은 려평을 손가락질하며 질챘했다.  "아빠를 억울하게 굴지 말어.그런 아빠하고 결혼할 건 뭐야? 이제 와 악착스레 물고 늘어져?!"    려평은 두덜거리었다.   "저런 색마일줄 누가 알았겠어.내 눈깔이 멀었지.저런 것두 대학생이라고 결혼했지."   려평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려향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넌 절대 저런 색마한테 시집가지 말라.대상자 소박치 어떤가 다 뽑아보기 전엔 절대 결혼하지 말라.가정배경도 좋은가 보고 시    집가야 해.난 저런 가난뱅이 촌빵을 만나 한뉘 개고생했어."   려향도 뾰로통해 두덜거리었다.   "누가 시집간다고 했어? 엄마 아빠처럼 맨날 티격태격 싸우자고 시집가? 시집 가서 좋구 나머지를 받아 키우면서 셋집에서 개고  생하라고? 모두 자식 덕이 뭐 있는가요? 애나게 키워 아글타글 번 돈으로 대학까지 보내도 부모들이 무슨 자식 덕을 보는가요? 숱한 돈을 팔아 집까지 사 줘야지.손주들까지 다 키워주고나면 자기 죽을 때 되겠는데.한뉘 개고생하자고 시집가? 안가! 절대 안가!나처럼 자식은 다 애군이고 부담거리야. 시집가 자식 낳아 키우는 돈이면 나 혼자 실컷 쓰면서 살겠다. 그 돈이면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관광이나 다니면서 향수하면서 살겠다."    종호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또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저게 뭔가!   여경 둘이 병실에 뛰어 들어왔다.   "누가 류려평인가요?"   여경은 려평과 려향을 번갈아보았다.   려향은 머리로 려평을 가리켰다.   눈치를 챈 여경들은 려평한테 다가왔다.   "꼼짝 말엇!"   여경은 쇠고랑이를 꺼내 들었다.   "류려평 맞지요?"    려평은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제가 려평인데요."    려평은 아주 순통한 한국어로 대답하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죄 있는가요?"   려평의 손목에 차거운 쇠고랑이 절컥 채워졌다.   "류려평, 살인미수혐의로 체포해요."   "억울해요.항의해요.무슨 증거가 있는가요?"    여경은 려평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종호씨의 링겔 병에 염화칼리움액을 주사해 넣었지요.국과수 화험결과도 있어요.당신은 남편을 염화칼리움으로 천천히 안락사시키려고 한 혐의가 있어요."    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딴에는 깨진 링겔병 쪼각을 다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내다 다 던져 증거를 없앴다고 여기었는데.   (웬 일일가? 쓰레기통에서 주어다 경찰서에 바쳤어?"    려평은 쌍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미심한 눈길로 려향을 쏘아보았다.    려향은 깨고소해하는 눈치가 아니겠는가.   류려평은 머리를 돌려 여경을 돌아보며 시간을 끌려고 불쑥 물었다.   "체포장이 있는가요?"    다른 여경이 체포장을 쳐들었다.   "투약살인혐의로 체포해요."   쇠고랑이를 채운 여경은 려평의 잔등을 떠밀었다.   "가자!"   "딴 짓 부리지 말고 경찰서에 가자."   려평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무겁게 끌리어 나갔다.   갑자기 려평은 뻗디디며 멈춰서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가만! 난 중국 공민이란 말이야. 너희들 뭔데? 한국 경찰이 날 체포해?"   여경이 대답했다.   “한국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한국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해.”   다른 여경이 려평의 등뒤를 탁 치며 떠밀었다.   “걸엇!”   그때 등뒤에서 종호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리었다.   “가, 가만!”   려평은 놀란 눈길로 종호를 되돌아보았다.   (저놈, 또 뭐라고 날 물어먹자고?)   "아빠!끝내 깨났어요?"   려향은 환호하며 아빠를 부축해 일으키었다.   종호는 산소호흡기까지 떼고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려향이 옆에서 잔등을 다독이어 주었다.   종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경들에게 손을 가로 저으며 띠염띠염 뜻밖의 말을 했다.   "내 안,안해는 아무 죄,죄도 없소."   "네?"   여경들은 놀란 눈길로 종호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려평은 링겔병에 아무 것도 주사해 넣은 적이 없소.내 자살하려고 한 짓이오. 난 이 어두운 세상에서 살기 싫어 안락사 약을 넣 었댔소.주사바늘도 빼놨소."   "뭐? 뭐?"   여경은 려평과 려향을 돌아보았다.   려평도 종호를 물끄러미 돌아보면서 놀랐다.   려평은 종호의 뜻밖의 위증에 눈물까지 주르르 흘리었다.   (저 놈은 절대 날 동정하는게 아니야.자기 딸이 엄마까지 잃게 하기 싫어 그래.누가 자기를 잡아먹자는 악처를 변호하자겠는가! 쳇.)    종호는 려향을 마주보면서 말했다.   "난 몇번이고 자살하려고 했소. 려향아, 그렇지?"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사건의 복잡성을 느낀 여경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었다.   “좋아요.”   여경은 종호한테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위엄있게  나직이 물었다.   “당신은 링겔병에 뭘 주사해 넣었는가요?”   종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목석처럼 눈을 꾹 감고 묵묵히 누워 있었다.   여경은 허리를 펴더니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몽땅 경찰서에 연행해 심문해야겠어요."   려향은 여경의 두 손을 잡고 통사정했다.   "저의 아빠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구급환자인데요. 당장 경찰서에 가지 못해요.시간을 좀 주세요."   여경은 결단성 있게 말했다.   "좋아요. 병세가 호전되면 알리세요. 그때 경찰서에 오세요."   다른 여경이 경고투로 말했다.   "거짓말로 위증을 서면 위증죄를 범한다는 걸 똑똑히 알아두세요."   여경들은 려평을 풀어주지 않고 뒤잔등을 떠밀었다.   "억울한게 있으면 경찰서에 가서 말하세요."   려평은 몸을 마구 흔들면서 떼질 썼다.   "내 남편이 다 자기 한 짓이라고 증명 섰는데요.왜 억울한 사람 마구 잡아가요?"   "억울하다고?"   여경은 픽 코웃음치었다.   다른 여경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똑똑히 봐! 인터폴 지명수배령이야.”    “엉?”   류려평은 퉁사발눈이 희번뜩 번지어질 지경이었다.   여경은 목소리를 높이었다.   “류려평, 당신은 중국에서 한국에 도주해온 인터폴 지명적색수배자야.국가 돈을 횡령한 부패분자, 어디로 도망쳐?!"   "걸엇!"   여경들은 려평을 마구 끌고 갔다.   려평은 그제야 머리를 툭 떨어뜨리었다.   그녀는 병실 문께로 끌리어 나가면서 머리를 돌려 종호와 려향을 번갈아보며 구원을 요청하는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종호와 려향도 속수무책이었다.   려향은 끌려나가는 엄마를 보고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엄마가 무슨 죽을 죄를 졌기에 인터폴 지명적색수배자로 됐어?)   류려평이 끌리어 복도로 나갈 때다.    맞은 켠에서 지영이 주사기 판대기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사뿐사뿐 다가왔다.   지영은 쇠고랑이를 찬 려평을 째려 보면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류려평의 뒤를 려향이 부랴부랴 따라나왔다.   지영은 속으로 잘코사니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그녀들 모녀간을 보는 척 마는 척하면서 스쳐지 나갔다.   려평의 등뒤에서 여경은 마주 지나쳐가는 지영이한테 살짝 눈웃음 지어 보이었다.   지영은 머리를 폭 숙이며 눈길을 발끝에 떨어뜨리었다.그녀는 총총 걸음쳐 종호의 병실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아 버리었다.   복도에는 적막과 함께 평온이 스물스물 찾아왔다.
415    장편소설 황혼(10) 욕망 김장혁 댓글:  조회:451  추천:0  2024-07-12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10. 욕망     나영은 종호가 정신을 차렸다는 말에 코마루가 시큼해나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입귀에까지 흘리었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면서 얼굴에 기쁜 표정을 곱게 지었다.    “리사장님, 살아났어요.”   그녀의 발걸음은 전에없이 날듯이 가벼워지었다.          사실 나영은 고향에 있을 때 전람관 부관장 겸 재회과 과장이란 직무편리를 이용해 단위 재건설 비용 5만원을 탐오했던 것이다.  그 죄가 두려워 문화국 국장인 정호를 따라 천애지각까지 도망쳤다.그러나 국내 검사들과 경찰들의 추적에 더 배기지 못하고 정호를 따라 일본에 도망쳤다.일본에서 인터폴에 추격당하자 또 한국 기생 미희 오빠의 어선을 타고 한국에 밀입국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인터폴 지명수배를 받아 정호는 나포돼 중국에 이송돼 갔다. 정호를 나포하는 사이 나영은 모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창문으로 빠져나가 가스관을 타고 미끌어져 내려 간신히 경찰들의 마수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그후 나영은 허보스네 음식점에 숨어서 일하면서 근근득식하며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심장을 두근거리면서살아왔다.   그녀는 허보수와 상의하고 연길냉면과 중국료리로 숱한 손님을 흡인해 숱한 영업액을 올리었다.   그때 나영은 연길냉면 먹으러 자주 음식점에 오는 리종호 사장을 면목익히게 됐다.그것이 인연으로 돼 나영은 점차 종호에게 마음을 의탁하게 되였다.   종호는 나영의 정체를 여지껏 모르고 그녀가 위태로울 때마다 선뜻이 나서서 이모저모로 아낌없이 힘껏 도와주었다.   그녀가 정호와 속살을 섞어 임신한 악과를 낙태할 때에도 종호가 애나게 번 돈을 벌어 대주었다.   심지어 나영이 인터폴에 추적당할 때도 종호는 그녀의 탐오죄는 모르고 그저 불법체류했다고 추적하는가고 오해하고 나영이 피신하게끔  돈까지 대주면서 도와주었던 것이다.    나영은 심장이 콩알만해 허보수네 음식점에 숨어서 연길냉면을 팔면서  살았다.   허보스가 욕망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색마의 눈길로 그녀의 탄력있는 엉덩이를 노려보면서 자꾸 치근거리어 나영은 견디기 어려웠다. 나영은 혹시 중국에서 온 손님이 자기 정체를 발견하고 신고할가 봐 손님들의 눈을 피해 주방에 들어가 냉면이나 만들어내보내면서 일했다.   허보스는 쩍 하면 주방에 들어와 치근거리었다. 허보수가 글쎄 홀애비인 건 좀 리해됐다. 그러나 칠순도 다 된 령감태기 아직도 여자 엉덩이를 노리어 보며 게침을 줄줄 흘리는게 리해 안됐다.   (아직도 그게 되는 모양이지. 더러운 색마령감. 흥!)   칠순도 넘은 영감태기 정력도 놀라울 정도로 왕성했다. 고의로 나영한테 자기 아직도 여자를 다룰 수 있다는 걸 보이어려고 그러는지 허 보스는 항상 괴춤 속으로 그걸 꿋꿋이 세워가지고 주방에 들어와 나영과 치근거리었다.   어느날, 먹장구름이 뒤덮여 오더니 음식점 안마저 어두어지었다. 뒤이어 천지를 뒤흔드는 우뢰소리 울리더니 장대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음식점 추녀 끝에서 무수한 실폭포가 쫠쫠 쏟아지었다.   소낙비가 쏟아지자 그날 따라 음식점에 손님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허보수는 우멍눈으로 주방을 흘끔흘끔 들여다보더니 주방에 기신기신 기어들어왔다.   색마는 꿋꿋한 그걸 자랑하고 싶은지 뒤로 마구 덮쳐들어 비벼대려고 들었다.   “헤헤헤. 나 좀 해소하자. 돈 줄께.”   나영은 동료 아줌마 눈치 보이어 소리도 못치고 그저 밀치기만 했다.   “왜 이래요? 난 냉면집 주방장이지 아가씨 아닌데요.”   나영은 허보수를 마구 떠밀어버리며 고함치었다.   "돈을 줄게.좀 살려달락꼬."   나영은 돈을 탁 쳐버리고 허보스를 활 밀치었다.   "이년 이게!"   나영은 간신히 늙은 색마의 마수에서 몸을 빼자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대살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창창 쏟아지는데 어디로 간단 말인가?   허보수는 아쉬운 눈길로 나영을 내다보며 마른 혀바닥을 쩝쩝 다시었다.   나영은 실폭포 쏟아지는 추녀 밑에 서서 먹장구름이 뒤덮힌 하늘을 멍해 쳐다보면서 신세타령을 했다.   (훌 죽어버리고 싶어.)   그녀는 또다시 자살해버리고 싶은 절망이 또다시 머리를 쳐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성림만 아니면 정말 죽어버리고 싶어.)   사실 나영은 남편 철석과 토론한 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애 성림을 여동생 춘영이 한국에 나올 때 데려내오게 했던 것이다.   나영은 아들애를 홀로 두고 죽고 파도 차마 죽을 수 없었다.   허보스는 나영을 어쩔 수 없게 되자  변태적으로 끓어번지는 욕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주방에서 걸레질을 하는 한국 과부아줌마를 뒤로 달려들어 꽉 껴안았다.   “날 좀 살려달라고.”   “왜 이래요?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새파란 중국 색시한테 코 떼우니 나한테 왜 이래? 난 싸디싼 감자인가 해요?"   아줌마도 마구 밀치며 반항했다.   "중국 새악시 잡아먹을게지. 더 이쁜데요. 흥! 허무한 나한테 왜 이래?"    한국 아줌마도 마구 떠밀며 반항하는 소리,그 격앙된 목소리를 바깥에 서 있는 나영도 들었다.    “나락꼬 하마 그리 호락호락한가 하는가요?”    “돈 줄게. 돈도 싫어?”    “얼마 줄래요?”   “5만원 줄게.”   “고까짓 걸? 날 뭘로 봐? 싸구려 기생년인가 해? 흥!”   “이년, 오늘 아무 일도 하잖고 10만원 가지잖아? 5만원 덤으로 합치면 15만 아냐?"   허보스는 5만원짜리 지페 두장 쑥 꺼내 내밀었다.   "자, 이거 갖고 나 좀 살려달라고.”   “호호호. 웃겨요. 이 돈이면 기생집에 갈게죠. 새파란 아가씨 수태 기다리는데요. 참.”    “잔소릴 작작 해. 당장 죽을 거 같은데. 언제 기생집에 가? 좀 제끼, 제끼(어서 빨리) 고분고분 말 좀 들으락꼬."     허보스는 제주도 사투리 마구 쏟아졌다.     “호호호. 늙다리 색마! 아직도 남자 구실 하기나 해요?”     “문제 없어. 자,보라고. ㅋㅋ.”     허보수는 늘쌍 그러고 나선 기분이 좋아서 뽀나스로 5만원짜리 지페 한장씩 더 주군 했다.     그 멋에 아줌마는 부끄러운대로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앙다물고 참고 견디어왔다.       소낙비가 쏟아지거나 함박눈이 내려 손님만 오지 않으면 색마 허보수는 아줌마 아니면 나영한테 치근거리었다.    그는 나영한테 5만원 짜리 지페 두장이나 내밀면서 덤비어들었다. 나영이 내려다 보니 벌써 괴춤 속에서 그게 우산대처럼 꿋꿋이 치받치고 있었다.     “닥쳐요!”     나영은 그 더러운 돈을 탁 쳐 버리었다.     나영은 허보수를 마구 주방에서 떠밀어내보냈다. 한국 아줌마는 그러는 나영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었다.     “에이구메, 바보라고. 눈을 질끈 감고 좀 참으면 10만원 벌건데. ㅉㅉ.”     나영은 메쓰꺼워 트렁크를 끌고 허망 바깥에 나가 버리었다.     그때도 종호는 그녀를 자기 쪽방에 데려다 자게 했다.     나영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종호는 자기를 편히 자라고 쪽방에서 자지도 않고 지하철 종각역 서점 앞에 가서 쪽잠을 잤다.     어느 날 밤, 나영은 종호가 밤마다 어디 가서 자는가고 뒤를 밟아갔다가 칼로 어이는듯이 마음이 아팠다.     종호는 글쎄 그 차디찬 지하철 층계에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쪼그리고 앉아 쪽잠을 자고 있지 않겠는가.     그 이튿날 밤 나영은 또 지하철 역에 가려는 종호 팔을 꽉 붙잡고 대성통곡쳤다.     "리사장님,제 집을 두고 어디로 가요?"     종호는 능청을 떨었다.     "공지에 당직 서러 가오."    나영은  종호의 두 손을 잡아 침대에 끌고 갔다.   "여기서 쉬세요. 안 그럼 제가 종각역에 가서 잘게요."   종호는 쌍까풀눈이 데꾼해지었다.   "양? 뒤를 밟았소?"   나영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끄덕이었다.   "네."   그리하여 그날부터 종호는 부엌쪽 맨 구들에 요대기를 펴고 잤다. 종호가 극구 사양해 나영은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자게 됐다.   그런데 불시에 쪽방에 돌아온 려향한테 모든 것이 탄로났다.   후에 종호가 아무리 나영과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해석해도 려향은 곧이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일로 해 려향은 나영을 아빠와 엄마를 갈라놓는 여자라고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죽어가는 아빠를 살리기 위해 려향은 나영이 찾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려향은 종호가 확실히 나영의 말만 하면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 이상할만치 놀라웠다.   종호의 혼은 천정에 디룽디룽 매달려 있다가 대뇌로 날아 되돌아가 자리잡았다.   종호는 정신을 좀 차리자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었다.   나영을 보자 종호의 쌍까풀눈에서 이상한 빛이 반짝이었다. 그 눈빛에는 그 무슨 강렬한 의욕이랄가, 욕망이 잔잔히 파도치고 있었다.    종호는 천천히 손을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영은 제꺽 종호의 손을 잡아주었다.   순간 종호는 웬 일인지, 자살할 때와는 달리 삶의 욕망이 옹달샘처럼 퐁퐁 용솟음치는 감을 서서히 느끼었다. 나영도 착잡한 생각에 잠기었다.    (부패분자 나영은 이젠 죽었다. 바람둥이 나영도 이 세상에 없다.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영은 류려평이란 악마가 종호와 자기를 저주하면 할수록 저도 몰래 일종 강렬한 반발심이 생기었다.   (그래, 내 리사장님과 좋아하면 어째?)   그녀는 가슴 속에서 일종 새로운 삶의 욕망이랄가 옹달샘처럼 퐁퐁 용솟은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 좋은 세상에서 왜 죽어? 이젠 부패분자도 바람둥이도 다 죽었다. 다만 악착스레 살아가려는 나영 밖에 없어.)   그녀는 쓰라린 눈물을 닦아버리고 교보문고에 총망히 갔다.   그녀는 종호가 젤 집착하는 책, 종호가 출판한 책을 사서 멜가방에 넣어가지고 종호가 입원한 병원으로 떠나갔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 병원 울안에서 바들바들 떠는 은행나무 잎새로 실오리 같은 새 삶의 욕망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   
414    장편소설 황혼 제1권 (9) 안락사 김장혁 댓글:  조회:460  추천:0  2024-07-12
          김장혁 장편소설 황혼 제1권         9.안락사        생사선에서 헤매는 공포가 죽음의 전주곡을 부르려고 선률을 고르고 있다.    정신차린 혼은 창문으로 해 다시 종호의 뇌리로 날아들어가 철싸닥 붙었다.    불여우의 간사한 꼬리는 어찌나 길었는지 슬기로운 지영한테 밟히고 말았다.    지영은 병실을 청소하다가 종호의 침대 머리 탁자 밑에서 깨진 링겔병 쪼각을 발견했다.    오목한 병 유리쪼각에는 액체가 좀 남아 있었다.    (이건 증거야. 그년 무슨 짓을 했는가 밝혀 내야지.)    지영은 인차 주사기 통에 그 링겔병 유리쪼각을 조심스레 걷어넣었다.    그때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려향이 들어섰다.    지영은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면서 장대걸레로 침대 밑이랑 훌훌 밀었다.    “언니, 청소하오?”    “음. 그래.”   려향은 침대머리에 다가와 아빠를 들여다보았다. 산소호흡기랑 제대로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녀는 어두운 그림자가 흐르는 얼굴로 아빠의 퉁퉁 부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려향은 피뜩 링겔병 쇠걸개를 보자 금방 있은 일이 떠올랐다.    (아빠 쓰러졌는데 엄마도 감옥에 배낼 순 없어.)   려향은 황급히 우쭐 일어나 병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침대 밑이랑 탁자 주위랑 아무리 둘러보아도 병 쪼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려향은 지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금방 깨진 병 쪼각을 보지 못했는가요?”   그러나 지영은 단마디로 “못 보았소.”라고 잘라버리었다.    “네-”   려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어쩌는 수 없었다. 병실은 진작 말끔히 청소돼 있었으니까.   려향은 혹시나 해 쓰레기통에 다가가 뒤져 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어 좀 위안됐다.    호-    려향은 한시름 놓았다. 그녀는 절대로 엄마를 잡아먹는 빌미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지영은 청소를 마치자마자 주사통과 소독약통이랑 담은 밀차를 밀고 복도로 스리슬쩍 나가버리었다.   그때 복도 맞은 켠에서 나영이 과일구럭을 들고 다가왔다.   “어째 음식점에 돌아가지 않았니?”   나영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악처 가는 거 보고 되돌아오는 길이야.”   “그래?”   지영은 나영을 눈치질해 복도굽인돌이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영을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악처야, 암범 같은 그년이 오늘 링겔 병까지 깨면서 개지랄 했어.”    지영은 나영의 귀에 대고 나직이 금방 있은 일을 쭉 말했다.    “링겔병에 무슨 개지랄 했는지. 도적놈이 제 발등이 저린 모양이지. 부랴부랴 링겔병까지 깨고. 평소에 비자루도 안 쥐던 년이 글쎄    링겔병 유리쪼각을 몽땅 쓸어 내다 던지지 않겠어. 참 수상해.”   그녀는 종호 병실 쪽을 힐끔 되돌아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이제 깨진 링겔병 유리쪼각에 남긴 액체를 화험실에 가져다 화험시키면 모든 죄악이 드러날 거야.”   “잘했어.”   나영은 지영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리사장님, 괜찮지?”   “그래. 정신 차렸어. 내 화험실에 갔다가 인차 갈게.”   “음. 그래.”   그들은 누가 볼가 봐 인차 갈라지었다.   지영은 간호실에 들어가자 다른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병쪼각이 든 주사통을 꺼내 손가방에 스리슬쩍 걷어넣었다.   뒤이어 간호사장한테 다가가 청을 들었다.   "급한 일 있어 잠간 청가를 맡아도 되겠나요?"   간호사장은  상을 찡그리었다.   "뭔 일인데? 퇴근 후에 하면 안돼?"   "급진환자 있는데요.급히 주사를 놔달라고 해세요."   "지금 의사들 집단휴진해 환자들 치료 제때에 못한다고 극성인데요.고양이 발도 빌어쓸 지경인데."   간호사장은 외까풀눈으로 째려보며 마땅찮아했다.   "병원에 와서 주사 맞게 하면 안돼?"   지영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청을 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 돼서요. 한시간만 청가 주세요.오늘 로임은 그만두세요."   "그래?"   간호사장은 지영의 오늘 로임 가로 챌 기회가 생겼다.비정규직 간병원한테선 로임을 뜯어내기 한창 좋았다. 물론 려향이 간병비를 내지만 간호사장은 지영을 간병원에서 제명할 권한도 있었고 간병비를 정할 권한도 있었다.   그녀는 언제 째려 보았던가 시피 금시 해시시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오케이! 인차 갔다 오세요."   "고맙습니다."   지영은 곱게 인사하고 바람결처럼 복도로 나가 사라지어 버리었다.그녀는 하루 로임보다도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을 까 밝히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병원 문 앞에 나가자마자 택시를 불렀다.   "경찰서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택시는 지영을 싣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택시가 경찰서 문 앞에 급정거하자 지영은 곧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왔는가요?"   여경이 예지로 빛나는 눈길로 지영의 거동을 살피면서 맞아주었다.   "신고하러 왔습니다."   여경의 눈에 대뜸 긴장한 빛이 어리었다.   "무슨 일인데요?"    지영은 손가방에서 주사통을 꺼냈다.   "이 유리 쪼각에 묻은 액체를 화험해주세요."   지영은 주사통을 열어보이었다.   "이건 뭔데요?"   여경은 지영을 쳐다보며 의아해했다.   지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 병 쪼각에 깃든 이왕지사를 쭉 말했다.그러고 나서 이런 제의를 했다.   "이 병 쪼각을 화험하면 그 악처가 링겔 병에 뭘 주사해넣었는가를 밝혀 낼 수 있을 겁니다.분명 저의 환자를 살해하려고 무슨 독약을 주사한 것 같아요."    경찰들이 우르르 모이어 왔다.   "잠간 기다리세요."   경찰들이 한쪽 구석에 가서 토론했다.   이윽고 여경이 돌아왔다.   "좀 기다리세요.이걸 국가과학기술수사 부문에 보내 화험해야겠어요."    여경은 지영의 성명,직장,핸드폰번호 그리고 투약혐의자 성명 등을 컴퓨터에 꼼꼼히 기록했다.    여경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류려평이라고?”    “네. 류려평입니다.”    여경은 다른 여경을 불렀다. 여경들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눈길을 맞추었다.    이윽고 여경은 지영을 마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직장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세요."    여경은 부탁했다.   "누구한테도 신고한 일을 까딱 알리지 마세요.류려평, 그 여자 거동을 비밀리에 면밀히 주시해 주세요."    여경은 경찰서 전화 번호도 알려주었다.   "수시로 연락 부탁드려요."   "네.알겠습니다."   여경은 지영을 경찰서 문 앞에까지 배웅해주고 손까지 꼭 잡아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안전에 주의하세요."    "고맙습니다."    지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급급히 병원으로 돌아갔다.   지영이 퇴근하려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었다.경찰서에서 걸리어 온 전화였다.   "박지영씨, 경찰서에 오세요."   "네.알겠습니다."   지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경찰서로 달려갔다.   경찰서에 들어가자 여경이 경악할 소식을 알려주었다.   "유리 쪼각에 묻은 액체에는 염화칼리움이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지었어요. 염화칼리움은 여러번에 나눠 과량으로 주사하면 안락사를 당할 수도 있어요. 당장에서 사망하지 않고 천천히 사망하기에 사망원인을 밝히기도 어렵죠.대단히 교묘한 수법으로 남편을 안락사를 시키려고 들었군요."       지영은 너무나 섬찍해 뒤저참했다.   (염화칼리움 때문에 리사장님이 겉늙었고 자꾸 앓았을까?)    여경은 지영을 보고 물었다.    "류려평은 직종이 뭔지요?"   "딸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후에 은행 지행장으로 근무했다던데요."   여경보다 상사인듯한 경관이 다가왔다.   "류려평을 즉시 나포해야겠어요.그 병원에 다시 나타날가요?"   "글쎄요. 꼬리를 밟힐가 봐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경관과 여경은 눈길을 맞추었다.   여경은 지영한테 물었다.   "지금 류려평이 어디서 주숙하는지 아는가요?"   지영은 쌍까풀눈을 치켜뜨며 궁리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류려평이 딸의 세집에 주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류려평은 손에 쥔 돈이 없는지 남편의 로임카드 돈을 다 탐내 맨날 병원에 와서 서랍이랑 들추고 그래요. 경찰들이 수사하는 걸 알면 딸집에서 도망칠 수도 있지요."   "딸의 이름은 뭔가요?"   "리려화입니다." "리려화 집 주소를 아는가요?" "잘 몰라요. 저의 친구 나영과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경은 지영을 보고 부탁했다.   "나영이나 류려평이 병원에 나타나면 즉시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영은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다리가 떨리는 감을 느끼었다.   (악처, 리사장님과 안 살겠으면 리혼할게지. 어쩜 음흉하게 안락사까지 획책해?)     인터폴 법망이 점점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서서히 조이어 들고 있었다.     그물에 든 물고기는 간담이 서늘해 물 위로 펄떡펄떡 뛰어오른다.
413    장편소설 황혼(8) 무함 김장혁 댓글:  조회:537  추천:0  2024-07-11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8.무함      암암리에 음모가 여우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저으면서 횡행할 때였다.   조용히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려향이 들어섰다.   려평은 황급히 창문께로 돌아서 창 밖을 내다보는 척 했다.   려향은 이상한 눈길로 당황해하는 엄마를 살피며 종호 침대머리로 다가갔다.   “아니, 이게 뭐야?”   아빠 손목의 링겔 주사바늘이 빠져 있지 않겠는가.   “어째?”   능청스러운 려평은 창문께에서 침대머리에 돌아와 들여다보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금방까지도 주사바늘이 손등에 꽂혀 있던데...”   려향은 허리를 펴면서 려평을 쏘아보았다.   려평은 주사바늘을 쥐어 종호의 손등에 되꽂으려고 했다.   려향은 주사바늘을 빼앗아내고 엄마를 활 밀어놓으며 질책했다.   “저리 가! 아빠한테 무슨 짓거리 했어?”   려평도 퉁사발눈깔을 희번뜩거리며 변명했다.   “날 의심하는 거야? 이건 버선목이라고 번져보이겠는가? 원, 참.”   그때 혼은 황급히 천정에서 날아내려 종호의 뇌리에 되들어갔다.   지영도 들어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째?”   려향은 억지로 웃어 보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데요. 주사바늘이 빠졌는데 꽂을줄 몰라서 그래요.”   지영은 인차 주사바늘을 받아쥐어 종호의 손등에 꽂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글쎄 종호가 황급히 손사래치지 않겠는가!   지영과 려향은 깜짝 놀랐다.   려평은 깜짝 놀라 기혼할 번 했다.   (저놈이 다 알고 있었어?)   려평은 독기어린 퉁방울눈으로 종호를 쏘아보았다.   (정신 잃은 척 했는가? 눈 감고 있는 척하면서 다 봤어?)   “아빠, 정신 차렸어요?”   종호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었다.   원래 종호는 려평이 링겔 병에 뭘 주사해 놓고 호주머니랑 들추는 것도  다 보았던 것이다.주사바늘도 그가 제꺽 빼놓았던 것이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지영과 려향을 번갈아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려평과 링겔병을 가리켰다.   “저기에...뭘...타...”   “얼빠진 소릴!”   갑자기 류려평은 고함치며 릴겔 병을 벗겨 땅바닥에 꽝 메쳤다.   “미쳤어?”   려향은 링겔병 쪼각을 내려다보다가 외까풀눈으로 려평을 쏘아보았다.   "왜 이래?"   "너 애빈 정신 나갔어. 얼빠진 잡소릴 다 듣니?"   려평은 쓰레바퀴를 가져다 깨진 병 쪼각을 주섬주섬 주어 담았다.   려평이 쓰레바퀴를 들고 나가려는데 지영이 따라 나섰다.   "내 버릴게요."   병실에서 종호는 려향이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네 에,에미, 링결 병에 뭘 주,주사해 넣더라."   "네? 엄마?"   려향은 기절초풍할만치 놀랐다.  "날 안락사시키자고 그러는지 어떻게 알아?"   종호는 이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증거 없이 더 전개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려향은 입 속 말로 나지막이 부르짓더니 복도로 휑 하니 뛰어나갔다.   려평은 쓰레바퀴를 쥐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꼬리 빳빳해 도망치었다. 뒤에서 려화가 려평을 뒤쫓아갔다.   려평은 바람결처럼 쓰레기통에 뛰어가서 링겔 병 쪼각을 활 쏟아넣었다. 모든 증거를 없애고 나니 홀가분했다.   려평은 빈 쓰레바퀴를 쥐고 돌아서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뒤쫓아간 려향은 외까풀눈으로 려평을 무섭게 쏘아보았다.그 외까풀눈에는 의심과 적대감 어린 빛이 번뜩이었다.   "엄마,무슨 짓거리를 했어?"   "뭘 어쨌다고 이래?"   려평은 아닌 보살하며 시치미를 땄다.   "링겔 병에 뭘 주사해 넣었어?"   "뭐라고? 너 지금 엄마를 무함해? 넌 엄마 딸 아니냐?"   려향은 병원 울 안에서 산책하는 환자들이 많은지라 한쪽 구석 수림 속으로 데리고 갔다.   종호의 혼이 병실 창문으로 날아나가 볼라니.   허, 워쩐 걸.   려향은 자꾸 몸을 빼려는 려평을 소나무 기둥에 밀어붙이며 족따지고 들었다.   "로실하게 탄백하라구.뭘 탔어? 왜 링겔 병을 메쳐 깼어?"   려평은 바늘 방석에 앉은듯했다.   "네 애비 같은 놈은 죽어야 해? 약은 무슨 약이야?죽어야 내나 네나 싹 다 시름놓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   려향은 한심해 입을 함박만큼이나 쫙 벌렸다.   "그것도 말이라고 해? 함께 살잖겠으면 갈라질게지. 해칠 것까지야 없잖아?"   류려평은 딸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궁리 끝에 류려평은 악처의 본색을 드러냈다. 악처는 독사 혀바닥을 놀려 종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네 아빠 어떤 놈인지 알기나 하고 그래?"    려향은 연지꼰지 처바른 엄마의 퉁퉁하고 유들유들한 낯을 마주 바라보며 피씩 웃었다.   "아빠 치분을 중간을 눌러 짜 쓴다고 리혼하자고 하잖았는가요?"   "그래."   류려평은 부정하지 않았다.   "치분 낭비한 거 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려향은 듣기도 싫었다.   "또 뭐야? 류씨 집안 외할아버지 신세에 할머니랑 삼촌이랑 고모네랑 다 시내 호구 올리어 주었다는 거겠죠.이젠 엄마 넉두리에  귀에 못이 박히겠어요.흥!"    류려평은 눈물 콧물 줴짜며 연기하면서 지꿎게 물고 늘어지었다.   "리종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 바람둥이야. 내 어떻게 참고 이날 이때까지 살았는지 알아? 흑흑, 흑흑흑…"   "뭐라고?”   려향은 손으로 려평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빠를 모독하지 말어. 세상에 둘도 없는 정인군자인데."   "흥!"   려평은 콧방귀를 뀌었다.   "알기나 하고 그러냐?”    려평은 핸드폰을 들어 이것 저것 찾더니 려향의 앞에 내밀었다.    “이걸 봐.”    려향은 핸드폰을 가져다 들여다보았다.    아니, 영이라는 여자와 주고 받은 문자대화 사진이 아니겠는가.        호: 참 오랜만이오 반갑소.        영: 그래요. 저도 기뻐요. 그대와의 위챗 대화 ㅋㅋ        호: 엊그제 끌끌한 청춘이었는데.        영 : 세월이 넘 빨리 흘러갔네요. 오- 걷잡을 수 없는 세월 얄미워요.        호: 오-그 정열에 불타던 청춘의 추억이여.        영: 이런 말 자꾸 하면 난 어쩌는가요? 눈물만 자꾸 흐르는데요.           호: 그저 혼자 조용히 보고 싹 다 지워 버리오.        영: ㅋㅋㅋ        호: 우리 둘의 정열을 불살라 남긴 사랑의 흔적은 당직실 깜깜한 구들에서부터 시작해 한강 뚝에, 모래톱에, 철길 옆 채마전에, 북한강 영월  버들방천에, 설악산 단풍나무숲 속에…      그 불탄 사랑의 흔적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구나.       아, 뼈 속에, 골수에 박힌 옛 추억이어, 해란강 사랑의 로맨스야-      “봐. 이 년놈들이 한국 사처에 돌아다니면서 바람 피우지 않았어? 얼마나 위선적인 정인군자이냐?”    려향은 극구 아빠를 변호하고 싶었다.    “아빤,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니깐.”    그녀는 그 문자 대화를 자기 위책에 옮기고 핸드폰을 려평한테 돌리어 주었다.    “혹시 남의 걸 사진 찍어 뒀을 수도 있겠지요.”    류려평은 손가락으로 려향의 콧등을 콕 찔러놓았다.     “이년아, 아무리 애비라도 변명하지 말라. 너 애빈 재직 때도 숱한 여자들과 희희닥닥거리면서 밤중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술 처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안고 돌아가구 마사지방에 드나들면서 세상 개지잘을 다 했어.”     종호의 혼은 단풍나무 잎에 매달려 들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노래방과 마사지방에는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나 부정당한 관계는 벌리지 않았어.”     종호의 목소리에 려평이나 려향이나 다 깜짝 놀랐다.    주위를 둘러 봐도 종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환각인가?)    류려평은 계속 종호를 헐뜯어댔다.    “네 애빈 여기 한국에 나오기 전에 벌써 저 나영이랑 지영이란 년이랑 바람 피웠어."   "거짓말, 나영과 지영 언닌 여기 와서 갓 면목익힌 사이라던데."    려평은 심통한 소리를 쳤다.   "다 거짓말이야.네 애빈 사장 직권을 리용해 나영과 지영을 한국에 보내줬어.저 나영이란 년도 나쁜 년이야.내 갓 알았는데. 저년 중국에서 전람관 부관장에 재무과장을 했다더라.단위 돈 5만원을 탐오한 범죄자야. 지금 인터폴이 지명수배하는 도주범이야."    "네?"    그 말엔 려향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영이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른 것은 진자 금시초문이었다.    "엄만,걸 어떻게 알아요?"    그때 저쪽 멀리에서 나영이 과일꾸럭을 들고 입원처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피뜩 보이었다.    "내 시 공안국 박동국 국장이랑 잘 알어.이번에 나올 때 나한테 부탁하더라. 나영이란 년 행적을 보면 신고하라고 부탁까지 받았다."    려향이 풀이 죽어가는 걸 보고 려평은 살기등등해 지껄여댔다.    "네 애비 얼마나 나쁜 놈이냐? 인터폴 지명수배 도주범을 셋집에 숨겨두었잖아? 도주범을 도우면 공범 아니고 뭐야?"    려평의 말 마디마다 점점 더 살기 넘쳤다.    "이제 신고해버릴 거야. 꼴 보기 좋겠다.콧구멍 같은 셋집에서 가달에 끼고 바람 피우더니. 흥, 바람둥이 년놈들, 꼬락서니들 보기 좋겠다.흥,쇠고랑이를 차고 중국에 압송돼가는 꼴!"     려향은 살기등등한 엄마의 독살이 내비치는 퉁사발눈을 보기에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류려평이 엄마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잡아 먹지 못해 미쳐 날뛰는 여악마로 보이었다.    (안돼, 아빠는 어디까지나 내 아빠야.그런데 엄마 입을 어떻게 막아버릴가? 링겔 병 쪼각마저 다 버렸어.이걸 어쩌나? 증거 없잖은가?)      려향은 류려평을 그저 놔 둘 수 없었다.      “엄마 아빠를 신고해보지. 금방 링겔 병 일을 신고할테야.”      려향은 기 죽어가는 려평의 꼴을 보고 제대로 칼을 박았구나고 생각하고 한번 더 칼을 들이댔다.      “금방 링겔 병에 무슨 짓 했어?”    려평은 두 손으로 려향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생사람을 잡지 말어. 네 애비 손등에서 주사바늘이 빠져서 그랬어.”    “주사바늘이 빠진 거 하고 뭔 상관이야?”    려평은 퉁사발눈을 흘기며 두덜거리었다.    “네 애비 링겔 못 맞고 빨리 썩어지라고 그랬어? 됐어?”     려향은 너무 허탈해 려평을 놔 주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링겔병을 깨 버렸기에 아무 증거도 없어. 저런 것도 에미라고 살려 둬?)    그러나 려향은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아빠를 잃고 엄마마저 잃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생모 아닌가. 어쩌다 내 아빠 엄마 이 지경이 됐어? 참, 하늘도 야속해.)    그녀의 가슴은 칼로 오리오리 에이는듯이 아파났다. 그러나 링겔병 진실은 어디까지나 밝혀내고 싶었다. 그래야 이후에라도 아빠를 구할 것만 같았다.
412    장편소설 황혼(7) 악처 김장혁 댓글:  조회:674  추천:0  2024-07-11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7. 악처     제우스 신의 머리 속에서 딸 헤라 신이 춤을 추는가? 도깨비, 허깨비들이 종호의 머리 속에서도 탈춤을 추며 뛰논다.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아 참기 어려웠다.   종호는 생명의 끝자락을 잡고 생사선에서 헤매다가 서서히 이승으로 혜염쳐나오고 있었다.진짜 단떼 "신곡"의 지옥이면 어디 그런 지옥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옥에서 련옥으로 기어나오는 과정 또한 어려운 행로였다. 진짜 화장실 똥구덩이에서 구더기가 기어나오다가 두르르 구을러 떨어지고 떨어지면 또 기어나오는 그런 행로라고나 할가.   종호는 살려고 그리 아득바득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려향을 비롯한 몇몇 여자들은 그를 기어이 구하려고 들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노크소리에 뒤이어 나영이 과일구럭을 들고 들어섰다.   려향이 나영을 반갑게 맞았다.   "언니, 바쁜데.또 찾아왔는가요?"   "아니,별말을, 리선생님은 저의 구명은인인데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하오."   나영은 과일구럭을 침대머리에 놓고 산소호흡기를 단 종호의 부은 얼굴을 다정하게 들여다보았다.   "리사장님은 어떻소?"   "수혈을 한 후 많이 나았소."   "수고했소.아빠한테 숱한 피를 수혈하고 해쓱해졌구만.보신을 좀 하오."   나영은 호주머니에서 5만원권 열장을 꺼내 내밀었다.   려향은 지페를 도로 밀어주었다.   "아니,이건,받지 못하겠어요."   나영은 기어이 려향의 호주머니에 찔러넣어 주었다.   "꼭 받아 보신하오."   나영은 종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리사장님은 내 아플 때 공지에서 애나게 번 돈을 가져다 주었댔소.그 은공을 갚지 못해 속이 내려가지 않소."   나영은 보은하려는 생각일뿐이었다.   려향은 나영의 그 돈을 그저 고맙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영이 자꾸 아빠를 찾아오는 것조차 그리 반갑지 않았다.그것은    나영이 어머니한테서 아빠를 떼갈가 봐 퍽 근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나 아빠와 엄마를 함께 살게 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완고한 독신주의자인 그녀는 생각을 고쳐 하기 싫은 결혼을 다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려향은 아빠와 어머니 사이 감정상 곬이 아주 깊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아빠와 어머니는 서로 원망하고 욕하고.아니, 서로 원수나 된 것처럼 이를 쁙쁙 갈면서 증오하고 있지 않는가.   그 감정의 곬은 뛰어넘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협곡으로 돼버리었다. 이젠 되돌아 올 수 없는 협곡을 넘은 것 같았다. (에라, 그런 바 하고는 나영 언니 사랑의 힘을 빌어 아빠를 먼저 구하고 보자.)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려향과 주고 받는 나영의 목멘 목소리를 들어서인가.   종호의 혼이 뇌리에 서서히 들어가 바로 자리잡았다.   드디어 종호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빠!"   "리사장님!"   려향과 나영은 병실이 떠나가게 환성을 질렀다.   그녀들은 침대머리에 달려가 종호의 두 손을 잡고 종호를 정겹게 내려다보았다.   "아빠,끝내 깨났군요."   "리사장님,저를 알아 보겠나요?"   종호는 려향과 나영을 번갈아보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알아보았는가요? 리사장님."    나영은 종호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서 일어나세요.나영이 두 손 모아 빕니다."    나영의 보드랍고 따뜻한 손의 감각이 종호의 온 몸에 전해져 후덥게 만들었다. 이윽고 종호를 서서히 흥분되게까지 만들었다.   그때 젊은 간병원이 들어왔다.   그녀는 나영을 보고 반색했다.   “나영아, 여긴 어째 왔니?”   나영은 눈물 어린 눈을 그녀한테로 돌리었다.   “아니, 지영아.”   나영은 발딱 일어나 지영을 마주 나가 꽉 끌어안고 반기었다.   “참, 오랜만이구나.”   나영과 지영은 고중 동기 딱 친구이었다.   지영은 나영의 수척한 얼굴을 마주 보며 문안했다.   “그래. 그간 잘 있었니?”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응. 여기서 만날줄은 진짜 몰랐어.”   지영은 나영이 낙태수술을 할 때 간병하는 여가에 병원에서 가만히 시술칼이며 소독약과 마취약을 가져자 주며 도왔던 것이다. 실로 일본으로부터 색마 정호를 따라 한국에 건너온 후 나영에게는 둘도 없는 딱친구었다.    전에 간호하던 간병원은 불시에 남편이 앓는 바람에 종호를 간호하지 못하게 되어 지영이 불시에 이날부터 대신 종호를 간호하게 됐던 것이다.       지영은 옆에서 호기심에 찬 눈길로 보는 려향을 인사시켰다.   "중학생 때 동기오."   려향은 나영과 지영을 번갈아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네- 나영 언니하구 동기라니 시름놨어요."    지영은 외까풀눈으로 려향을 빤히 마주보며 말했다.    "저도 리선생님의 얘기를 이전에 나영이한테서도 많이 들었어요.신문사 사장이고. 정의적이고 마음씨 착한 분이라더군요.제가 잘 간호해드릴테니 근심말고 박사공부나 잘 하오."    려향한 감지덕지해 했다.   "고마워요.수고시키는데요.이담 제가 취직하면 꼭 은공을 갚아드릴게요."   지영은 사람좋게 웃으며 소탈하게 말했다.   "뭐 공짜로 간병하는 것도 아닌데요. 잘 해 드릴게요."   그때 류려평이 문을 활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쌍까풀눈이 꼿꼿해 나영과 지영을 번갈아 쏘아보며 두덜거렸다.   "썩어지기 전에 숱한 미녀들을 친한 덕을 톡톡히 보는구만. 아침부터 숱한 미녀들이 병문안도 오고. 흥!"    그 소리에 나영과 지영은 모두 억이 막혀 입을 하 벌리고 려평을 흘기어보다가 눈길을 서로 맞추었다.    종호는 여직껏 정겨운 눈으로 나영과 려향을 쳐다보다가 눈을 감아버리었다.   려향은 너무 기막혀 려평의 팔을 잡아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 조용하세요. 아빠, 정신을 차렸는데요. 엄마 욕하는 소릴 다 듣습니다."   그러나 려평은 계속 두덜거리었다.   "들으라고 말한 거야.어째? 아직도 썩어지지 않고 네까지 애먹인다니?"   려향은 려평의 팔을 활 뿌리치며 욕했다.   "엄마,말이 아니군요. 너무 해요.생사선에서 헤매는 아빠를 그렇게 욕하는가요?"   순간 종호는 이전에 어머니 간복수 와서 배 남산만 해 생사선에서 헤맬 때 일이 떠 올랐다.   한번은 종호가 출장 갔다가 돌아와 문꼬리를 잡았을 때었다.  집 안에서 어머니와 려평이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리었다.   "려평이 어쩌다가 엄마를 보러 다 왔어? 해 서산에서 뜨잖는가? "    그는 좋은 쪽으로 기대하면서 려평과 엄마가 주고 받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며느리, 내 죽을 땐 죽더라도 아프지 말았으면 얼마나 좋겠소? 저 벽에 걸어놓은 약을 좀 먹게 내려다주오."   "어떤 땐 쥐며느리라고 욕하더니, 흥. 이럴 땐 며느린가? 썩어졌는가 보러 왔지. 약 주자고 왔는가 하는가?"   "어째 약을 내리워 먹지 못하게 벽에 걸어놓소?"   "더러운 약침재 노친, 콱 썩어질게지. 밤낮 약만 찾는가? 퉤!"   "뭐라구?"   종호는 문을 뚝 떼고 들어가 류려평의 멱살을 틀어쥐고 귀쌈을 쨩 갈겼다.    류려평은 울며불며 종호한테 달려들어 쥐어뜯고 허비며 야단쳤다.     어머니가 경각을 다툴 땐 어찌겠는가.    아직도 류려평의 욕하던  앙칼진 목소리 귀에 쟁쟁하다.   "에이구, 저 노친 꽤나 질기긴 질기다. 아직도 썩어지 않고 내까지 애를 먹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엄동설한에 종호는 실오리 같은 숨이 붙어 있는 엄마, 간신히 생사선에서 헤매는 어머니를 업고 병원으로 달아다니었다.    종호는 엄마를 업은 채 병원에 갔다가 주사와 마취약을 떼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는  어머니를 구들에 눕혀 놓은 후 류려평을 보고 비난사정했다.     "여보, 마지막으로 마취주사 한대만 놔주겠소?"   류려평은 개잡은 포수처럼 조개턱을 개턱처럼 쳐들고 코웃음까지 치며 빈정거리었다.    "흥! 어떤 땐 호랑이처럼 으르릉거리면서 귀쌈까지 치더니, 흥! 주사를 놔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빌어봐. 놔주는가. 퉤!"    류려평은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다 퍼붓고 나 몰라라고 여우처럼  피해 달아났던 것이다.    (저런 악처도 안해라고 어머니한테 마지막으로 마취주사를 놔달라 했더니, 쳇, 시어머니께 주사 한대도 안 놔주는 년,  어떻게 병원에서 간호원질을 다 했어? 의료일군으로서 최저한도 인도주의도 없는 년이야. 넌 인간도 아니야!)    사후에  이 일을 알게 된 려향이 엄마가 너무 했다고  욕하자 려평은 뭐라고 통통한 소리를 쳤는지 아는가?   "병원에 간호원이 쌔고 버렸는데 항상 욕하던 쥐 며느리를 불러 뭘 해?"     종호는 려평의 독기어린 퉁방울눈깔을 흐릿하게 보는 순간 백골 눈확으로 보이어 소름이 쫙 끼쳤다.   눈확이 푹 꺼져 들어간 백골, 독이 서린 이빨을 악문 백골, 독사 혀바닥처럼 날름거리는 혓바닥…   종호는 보기도  싫어 눈을 딱 감아버렸다.   순간, 그의 혼은 머리에서 쑥 빠져나가 또다시 천정에 날아올라가 매달리었다.   웬 일일가?   혼의 눈에 놀랍게도 기이한 광경이 나타났다.   글쎄 악처 려평의 뚱뚱한 배가 탕 터지었다. 뒤이어 빼꼽에서 숱한 얼럭덜럭한 독사들이 스르르 기어나왔다. 끊임없이 두덜거리는 주둥이에서도 숱한 독사가 기어나와 뻘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류려평은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다가 국장질하는 애비 덕분에 은행으로 들어갔댔다. 그녀는 은행 행장 류다재한테 묵직한 돈뭉치를 제주고 나중에는 몸까지 바치고 인차 지행장으로 제발됐던 것이다.그런데 지행장 직권을 빌어 대부금을 내주고 얻어먹은 일로, 저금호의 돈을 가로챈 일로, 죄를 많이 지었다. 려평은 죄가 탄로날가 봐 딸 려향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국내에 있을 때 항상 부모한테 손을 내밀 수만 없어 여직껏 종호의 로임카드의 돈을 몽땅 꺼내 썼다. 그런데 종호가 퇴직하면서 로임카드를 찾아가지고 한국에 나온데다가 로임카드 비밀번호를 다 바꿔버리자 살기 막막했다. 그러나 결코 종호가 앓는다고 옆을 지켜주려고 하지 않았다.     혼이 머리 속에 되돌아와 앉자 종호는 려평의 바가지를 긁는 소리 듣기도 싫었다.   순간 종호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갑자기 그는 손을 들어 손삿대질했다.   려향이 보기에도 아빠는 엄마를 나가라고 손짓하는 걸로 보이었다.그러나 그녀는 무등 기뻐했다.   "아빠, 손 들었어!"   그러나 류려평은 한쪽에서 콧방귀를 뀌지 않겠는가.   나영은 려평을 쏘아보았다. (남편이 살아나는게 저렇게도 싫은가? 악처, 저런 독사처럼 악독한 악처, 세상에 저런 악처 또 있을까?)   순간 나영은 종호가 한없이 불쌍했다.   그녀는 뭐라고 려평을 쏴 주려고 하다가 지영이 눈치질하며 말리자 그만 두었다.   나영은 그 자리에 더 있기도 싫어 지영과 뭐라고 나직이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에서 훌 바람결처럼 나가버리었다.   려향과 지영이 복도에까지 쫓아나갔다.    나영은 복도 엘레베이터 쪽으로 총총 걸음을 쳤다.    "언니!"   려향은 엘레베이터에 따라 올라가며 나영의 손을 꽉 잡았다.   "언니,내 엄말 널리 양해하오."   나영은 격분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아니, 엄마를 원망해 뭘 하겠소.리사장님이 불쌍하오."   그녀는 속으로는 악처를 만나 고생하는 종호가 불쌍해 울고 있었다.또 인터폴에 쫓겨다니는 초상집 암캐 처지가 스스로 가엾어 쓰디쓴 피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나영은 기실 려평의 눈길이 곱지 않을 것을 눈치채자 그 자리에 더  있기 싫었다.혹시 려평이 인터폴에 신고하는 날엔 큰 일이었다.    종호의 혼이 링겔병 쇠걸개에 매달려 있다가 류려평의 거동에 깜짝 놀랐다.    병실이 텅텅 비자 악처는 호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주사기를 꺼내지 않겠는가.   류려평은 복도 동정에 귀를 도사리며 링겔 병 고무마개에 주사바늘을 쏙 꽂았다.아주 숙련된 솜씨로 주사기로 무슨 약을 링겔 병에 주입하지 않겠는가!   (뭔 짓거린가?!)    악처는 황급히 종호의 환자복 호주머니를 들췄다.   뒤이어 악처는 실망스레 도리머리질 하며 중얼거리었다.   (아니, 이 놈 새끼 로임카드를 어디에 뒀을까?)   침대머리 서랍을 열고 들췄다.   서랍에도 없었다.   허나 사나 은행직원이기에 류려평은 직권을 빌어 리혼도 하지 않은 남편, 종호의 퇴직 로임 카드의 돈을 얼마든지 꺼낼 수 있었다. 그러나한국에 도망쳐 알거지로 된 지금 처지에서 그녀는 수하 직원들과도 카드 돈을 빼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황차 종호는 로임카드의 비번마저 다 바꿔 놓았던 것이다.   용 빼는 수 없게 되자 류려평은 다른 수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종호의 로임카드를 훔치어 원시적인 방법으로 비번을 열고 꺼내려고 했다.    카드마저 찾지 못한 려평은 이번엔 최후의 수를 썼다.   려평은 병실이 빈 틈을 타 아주 숙련된 솜씨로 자기 핸드폰을 꺼내 "람야(蓝牙)앱"을 꼭꼭 눌러 침대보 밑에 놓은 뒤  그 우에 종호의 핸드폰을 살짝 올려 놓았다.5분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종호 핸드폰의 모든 정보를 복제해냈다.   류려평은 침대보 밑에서 핸드폰을 스리슬쩍 꺼냈다. 복도 쪽에서 발자취 소리 들렸다. 려평은 부랴부랴 핸드폰을 핸드빽에 걷어넣었다.     종호의 혼은 여직껏 살펴보다가 너무나도 놀라 링겔병 쇠걸개에서 천정에 날아올라가 매달렸다.혼은 깜짝 놀라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뒤이어 령리한 혼은  절레절레 도리머지질했다.   안해(남편)를 잘 만나는 것도 복 중 복인데 어쩜 종호는 저런 악처를 만났을까? 그것도 한족녀편네를, 진짜 악연이야...
411    장편소설 황혼(6) 미련 김장혁 댓글:  조회:434  추천:0  2024-07-11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6. 미련     지칠대로 지친 혼은 종호의 머리에 되돌아와 대뇌에 스리슬쩍 들어가 앉았다.퐁퐁 솟는 샘물로 홧홧 달아오른 목을 마음껏 축이고 싶었다.   갑자기 독사가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모래불에서 기어나와 마라토너의 종아리를 딱 깨문다.   전갈도 점프하면서 집게발로 발목을 집어 문다.   “악!”   마라토너는 모래불 위에 털썩 쓰러진다.   그는 손으로 발목의 전갈을 쳐댄다. 입으로 얼룩독사를 물어뜯는다. 그러나 독사와 전갈은 마라토너 발목을 놓칠 않고 악착스레 물어뜯는다 …   “사람 살려라!”   종호가 비명을 질러댔다.   “아빠, 깨나세요.”   려향은 종호의 머리를 받쳐안고 쓰다듬어주었다.   옆에서 류려평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정신 차리면 알려라.”   그녀는 춘희 박사한테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살아날 가망이 있는가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정신 차릴 거 같아요. 손목의 정맥을 끊었을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빈혈이 심해요. 또 수혈해야겠어요.”   려향이 팔을 걷으며 나섰다.   “제 피를 수혈해요.”   “이미 숱한 피를 수혈했는데 괜찮겠소? 혈고에서 혈장을 가져다 수혈해도 되오.”   려향은 옆의 침대에 누우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저의 피를 수혈하세요. 다른 사람의 피보다 딸의 피를 수혈하는게 젤 좋을 거 같아요. 후유증도 없고…”   춘희 박사는 려향의 효성에 자못 감동됐다.   “심청보다 못잖은 효녀군요.”   그러나 류려평은 종호를 돌아다보며 눈을 흘기었다.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헌 독이 성한 독을 쳐 마스고 말 작정이구나. 그 잘난 애비를 구하다가 하나 밖에 없는 딸마저 잡아 먹겠다.)   그녀는 딸의 팔 혈관에서 흘러나온 빨간 피가 비닐호스로 해 종호의 손목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퉁사발눈을 슴벅이며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딸의 옆에 다가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저 양반, 도대체 어떻게 자살하자고 한 거냐?”   려향은 회상하기도 싫은 참사를 어머니한테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학원에서 셋집에 돌아오니 안으로 문이 걸리어 있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아빠를 불러도 문을 열지 않잖겠어요. 그래서 주인집 어른한테 알렸지요. 주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야 셋집에 들어가보았지요…”     그때 려향은 셋집 구들에 쓰러진 아버지, 아버지 손 목에서 구들바닥에 줄줄 흐르는 시뻘건 피를 보고 기절할 번 했다.   려향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쳤다.   “아빠! 왜 이래요? 바보처럼 왜 이레요? 네?!”   집 주인은 꿇어 앉아 손을 종호의 코 앞에 대보고 고함쳤다.   “아직 살아 있어. 이럴 새 없어!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해.”   집 주인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려향은 긴 치마자락을 쭉 찢어 아빠 손목을 꽉 동이었다. 좀 지혈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달려왔다. 구급대원들이 침대를 들고 콧구멍만한 셋집에 달려 들어왔다…     춘희 박사가 나가고 병실에는 간호원이 남았다.   려향은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머금고 애원했다.   “어머니,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치뜨며 딸을 내려다 보았다.   “뭔데?”   려향은 간호원이 자리를 잠시 비우자 마음 속에 오래동안 품었던 말을 꺼냈다.   “아빠하고 함께 삽시다.”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대번에 희번뜩거리었다.   “되지도 않을 소릴!”   “왜?”   류려평은 외씨처럼 수척해진 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네 아빠는 가정 살림살이를 할 사람이 아니야. 누가 저 나그네와 살면 누가 곤경을 당해.”   려향은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딸의 전도를 봐서라도 함께 살면 안 돼요? 아빠는 사회에선 둘도 없는 사업가이죠. 당당한 신문사 부사장이 아닌가요? 우리 민족을 위해 많은 일 해 존경받는 분이죠.”   “지금 그런 책 내는 거 누가 환영하기나 하겠구나. 건데 네 애빈 책 내느라고 하나 밖에 없는 아파트마저 다 팔아먹은 바보야. 지금 누가 책을 봐? 온라인시대에 참. 더 말하기도 싫어.”   “아빠는 효자지요, 살림을 잘 못하면 차차 내 아빠를 고치게 말씀드릴게요. 우리 세 식구 함께 살자요.”   류려평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관둬. 다신 말도 말아. 우린 쌍방이 자원해서 졸혼한 거야. 각기 자기 삶을 살아왔어. 효녀라면 부모들의 생활질서를 파괴하지 말아야 해. 알만해? 우리 일에 작작 끼어들어라. 좀.”   말을 마치자 류려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었다.   “어머니! 어머니!”   문께서는 봄날에 차디찬 바람이 휙 불어들어올뿐 려평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려향은 아빠가 불쌍해 엉엉 울었다.   그때 종호는 꿈인지 생신지 금방 모녀 지간에 주고 받는 말을 다 들었다.    뒤이어 그는 넉두리인지. 잠꼬대인지 중얼거리었다.    “귀여운 딸아, 내 유언 들어 봐. 아빠도 저런 불효녀와 함께 살려는 생각 하나도 없어. 어쩐지? 려평을 보면 허연 백골로 보인다. 허연 해골, 쑥 꺼져 들어간 눈확, 악문 이빨... 무섭다. 여악마의 그 몰골.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려평과 복혼은 절대 없다. 나는 려평과 졸혼하고 얼마나 날듯이 기뻤는지 몰라. 너도 알지만 난 졸혼하고서야 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잖아. 그런데 딸이 마음이 아파할가 봐 복혼하라고? 힘들구나. 제발 날 놔 달라. 절대 동정하지 말라. 이젠 나를 가고 싶은데로 가게 놔둬라.” 아빠의 절절한 유언 같았다.   그러나 려향은 대노해 부르짖었다.   “아빠, 난 절대 부모가 갈라서 사는 걸 놔둘 수 없어요. 조강지처를 버리다니오. 으흐흑, 흑흑흑.”   아, 가엽구나, 엄마, 아빠를 억지로라도 함께 살게 하려는 딸의 눈물 겨운 효심.   허황하구나, 바람 따라 허깨비처럼 날려가는 아빠 혼의 끝자락을 잡고 놓치려고 하지 않는 미련의 한숨소리.   아빠 얼굴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가슴을 어이는 슬픔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니, 효녀의 효심이 방울방울 피눈물로 맺혀 떨어지며 대성통곡친다.    그 대성통곡 소리는 아빠 엄마를 한 구들에 모시고 살려는 려향의 미련의 한탄소리일지도 모른다.
410    장편소설 황혼(5) 꿈인가 생신가? 김장혁 댓글:  조회:414  추천:0  2024-07-10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5. 꿈인가 생신가?         아, 가엽구나.      책짐 메고 달아다니던      저 사막의 마라토너         눈을 집어 뜯으며       글 쓰던 저 마라토너 작가       뜨거운 심장       사막에서 선인장으로 재생하리.         사막의 마라토너여,       이젠 모든 걸 내려놓으라.       몇십년 벼린 필도       무거운 책짐도       모두 내려놓고       편안히 쉬시라…     화장터에서 정호인가 읽는 추도사인지 시인지 종호의 귓전을 아프게,  쓸쓸하게 때린다.      “개소릴 작작 쳐라. 사막의 마라토넌 네 할애비라고 해라.”    종호는 병상에서 또 잠꼬대를 했다.   (내 모든 걸 내려놓는 이날 기다렸어? 돈과 미녀 밖에 모르는 부패분자! 정호, 네놈 색마 보기도 싫어. 성감옥에 갔다더니 왜 추도식에 바라왔어? 누가 보겠다데? 네놈들한테 내 추한 꼴 보이기 싫어 추도식을 열지 말라고 분부해놨는데. 참.)   김춘희 박사는 외까풀눈으로 려향을 돌아보았다.   “리사장님은 아마 몽유 하는 거 같아요.”   려향이는 아빠의 머리를 따뜻한 수건으로 살살 닦아 주었다.   그녀는 침대머리에 걸어둔 현광판을 쳐다보았다. 심률이 고르롭게 흘러지나가고 있었다.   종호의 혼은 눈 앞을 가리기 힘든 사막으로 날아갔다.   허약한 혼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산에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종호를 따라 헤매다가 사막에 벌러덩 쓰러졌다. 귀전에는 주산알 딸까닥 딸까닥 튕기는 소리 울린다.    별의별 앙칼진 비아냥거리는 소리 다 사막에서 불어치는 모래바람 속에서 란무한다 -    “당신 책은 피 냄새만 나고 짜릿한 사랑 얘기 하나도 없어요. 그런 책을 누가 보는가요? 우리 출판사 망하겠어요.”   “당신 책 화약 냄새만 나고 너무 예술성이 없어요. 이런 책은 팔리지 않아요. 이런 책 내면 우리 출판사 부도나요.”   (에이,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사회 효과성은 하나도 보지 않고 남의 책을 비하해? 흥!)   종호는 그런 수전노들한테, 민족의 력사에는 관심도 없는 그런 얼빠진 놈들이 역겨워 침을 뱉었다.   “얼빠진 놈들, 더러워! 저런 수전노들한테 책 내는 문턱을  맡기다니?”   누르스름한 바탕에 벌거스름하게 활활 타번지는 락조가 비낀 무연한 사막, 모래바람이 윙윙 휘물아쳐 사위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목구멍까지 홧홧 달아오르는 사막에서 한 마라토너는 완강한 의력으로 무거운 책짐을 메고 비틀거리며 걸어나가고 있다.    전갈과 얼룩독사가 모래불에 몸을 모래불에 파묻고 한쪽 눈깔만 내놓고 팬들거리며 마라토너를 노린다.   “바보 같은 놈. 이런 사막에서 누가 네 놈의 책을 산다고 저래?”   전갈은 삐뚤어진 입귀로 조소를 흘리었다.   독사도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누가 저런 책 본다고 책짐을 메고 사막에까지 와서 돌아다녀? 어디 죽어 봐.”   독사는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마라토너 종아리를 노리어 본다.   저게 뭔가?   마라토너 허리 벨트 툭 끊어지었다. 괴춤이 훌렁 내리어진다. 책짐이 툭 떨어지며 풀린다. 모래바람에 책들이 훌 날려간다.   마라토너는 괴춤을 춰 입을 새도 없이 책을 쫓아간다.   “아, 저 책을!”   어찌 애 탄 두 발로 바람을 따라가 붙잡을 수 있을까?   저게 뭔가?   꿈인가? 생신가?   하느님이 돕는 걸까?   아니면, 선렬들의 혼이 돕는 건가?   바람에 날려간 책들이 기적처럼 황혼이 붉게 타오르는 무연한 사막의 하늘에 신기루로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그래, 아무리 세찬 바람도 책을 빼앗아가지 못해.)   종호의 혼은 황혼이 깃든 사막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며 달려갔다.   천천히 다가가면서 보니 신기루는 구름을 찌르는 마천루도 아니고 무져놓은 책더미 아니겠는가.   그때 책 신기루는 서서히 뻘겋게 피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비낀 사막에 서서히 내린다. 갑자기 신기루는 책 금자탑으로 우뚝 솟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건 또 뭔가?    책 금자탑 상공에는 오색령롱한 오로라가 온 누리에 빛 뿌린다.   금자탑 붉게 타오르는 상공에 웬 장군님이 나타났다. 쏘련 홍군의 군모를 입은 장군님, 저 장군님은 항일명장 홍범도 장군님이 아닌가.   책 금자탑 뻘건 상공에는 겨레의 무수한 영혼이 서서히 타나나지 않겠는가.   환각인가?   아니면 종호의 혼이 너무 우리 겨레의 영혼을 너무 그려서 나타났을가?   구름 속에 이등박문을 쏘아눕힌 안중근 의사님, 용정 서전의숙의 창시자 리상설 선생님,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제 적장들을 삼대처럼 쓸어눕힌 윤봉길 의사님, 천왕궁 앞에서 일제 천왕이 앉은 마차에 폭탄을 던진 리봉창 의사님,청산리대첩을 올린 김좌진 장군님,항일명장 리홍광 장군님…   민족영웅들의 늠름한 모습이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나타지 않겠는가.   "돌격!"    적진으로 달려가는 렬사와 영웅들의 고함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광복 만세!”   “인민정권 만세!”    누르스럼한 황혼이 빨갛게 붉게 타오르는 사막의 서쪽 하늘에 영웅들의 넋이 오색찬란한 오로라로 빛 뿌린다.    그 찬란한 빛을 받아서인가?    사막의 책 금자탑 앞에는 뜻밖에도 사랑의 오아시스가 기적적으로 펼쳐진다.    모래바람이 불어치는 사막 복판의 그 오아시스에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이쁜 얼굴을 반쯤 내밀고 금자탑을 쳐다본다.저쪽에서 한나산 하얀 무궁화도 꽃잎을 활짝 펼치고 생글방글 웃음지으며 두 손들고 달려오며 환호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아시스 한가운데서 옹달샘이 퐁퐁 솟는다.사막에서 옹달샘이 솟다니? 그 기적에 목마른 사람들은 목을 축이며 환락으로 들끓는다.    불시에 맑은 옹달샘물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하늘에 은은한 도라지 노래에 맞춰 분수로 솟아오른다.사막의 모래바람이 멎는다.생명의 분수를 맞은 연분홍 진달래 꽃잎은 씻은듯이 더욱 청초하고 이쁘다.사막에서도 꽃 피는 연분홍진달래가 서글프기만 하다.   연분홍 진달래 꽃잎 새에서 불어치는 신선한 바람에 슬픔이 스치고 지나가며 쓸쓸하게 아리랑을 부른다.   벌거스럼한 황혼 락조가 서서히 져가는 사랑의 오아시스 언덕에서인가, 모래담장 너머 어디에서인가 어린이들이 ㄱ, ㄴ, ㄷ, ㄹ  읽는 낭랑한 소리 구슬프게 은은히 울리어 메마른 사막에 잔잔히 스며든다.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종호의 혼은 두팔을 벌리고 미친듯이 환호하며 사막에 유일한 사랑의 오아시스로 달려갔다.
409    장편소설 황혼(4) 나영이 김장혁 댓글:  조회:394  추천:0  2024-07-10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4. 나영이     둥둥, 둥둥둥!   저승사자 황천길을 재촉하는 북소리 요란하건만 삶의 실오리만한 미련의 꼬리가 혼을 육체한테 끄집어 당기어다 넣으려고 모지름을 쓴다.   공포가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염라전의 층계에 도사리고 앉아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황천의 블랙홀에서는 억울하게 시들어간 혼들이 아우성치며 소용돌이에 휘말리어 간다.   허깨비 같은 혼은 용케도 저승의 블랙홀 절벽 틈 사이에 손톱, 발톱을 박으며 한발자욱, 한발자욱 련옥을 지나 이승으로 기어나온다.   아, 그게 단떼의 “신곡”의 지옥과 련옥을 이은 무지개 다리인가? 아니면 베니스성의 “7보한숨” 소리인지 누가 알리오?   혼은 천정에 디룽디룽 매달려 있다가 종호의 육신으로 되돌아와 안착하며 한숨을 호- 내쉰다.   “아빠! 좀 깨나세요. 이젠 보름 동안이나 누어 있었는데요. 좀 일어나세요.”   갑자기 귓구멍이 뻥 뚫린다. 온갖 잡소리 다 들리어온다.   창 밖의 새소리인가?   (아니야, 내 딸의 목멘 부름소리 아닌가?)   종호는 살며시 눈을 뜨려고 애썼다. 그러나 눈까풀은 천근 무게나 되는 것 같아 좀처럼 뜰 수 없었다.   (참, 삶의 의욕이란 고약하구나. 이 놈 세상에서 살기 싫어 왼 손목 핏줄을 끊어 자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점점 정신이 말쑥해지면서 딸을 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이때 내 귀에는 분명 려향이 목소리 들리었다.   “나영 언니 아빠를 보려고 왔어요.”   (뭐? 나영이?)   이게 뭐야? 여자 이름 들리자 종호의 눈이 번쩍 뜨인다.   “아빠!”   려향의 걀죽한 얼굴이 흐리마리하게 보이잖겠는가?   그 옆에 웬 하얀 옷들이 빼곡이 둘러 서 있다. 무슨 구경거리 있다고 이래? 남은 다 죽어가는데. 참. 아직도 어수선한 세상이야.    내 입술이 저도 몰래 씰룩거렸다.   “나영인가?”   그러나 나영의 걀죽한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다.   려향이 내 입에 귀를 바싹 대었다.   “나영이…”   “오- 아빠, 나영 언니 급한 일이 있어 갔어요. 내일 또 올 거예요.”   려향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순간 뜨거운 눈물방울이 내 볼에, 눈확에 방울방울 떨어지었다.   려향은 아버지가 혹시 나영이 이름을 부르면 깨나겠는가 해 수를 써 보았던 것이다. 그 수는 진짜 효험을 보았던 것이다.   내 얼굴을 간지르는 나른한 머리카락 사이로 슬픔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린다. 눈물 방울 사이로 우는 사랑의 바람소리 귀를 스치며 통곡친다…   며칠 후 나는 나영이 왔다는 소리에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분명 귀여운 딸애 얼굴 옆에 나영의 걀죽한 얼굴을 흐릿하게 볼 수 있었다.   “리선생님, 끝내 깨났군요.”   “기적이오!”   “김춘희 박사님, 감사해요. 유럽 관광을 가기로 했다던데요. 어쩜 여기까지 와서 아빠를 구해주셨어요?”   “감사는 무슨, 감사는 아버지 고중동기 딱친구 리문걸선생님한테 드리오. 리문걸선생님은 입원치료 받는 처지에서도 날 보고 종호  사장님을 꼭 구해달라고 하잖겠어요.”   “네-고마운 분이군요. 이담 꼭 찾아 인사드려야겠어요.”   종호는 흐리터분한 눈길을 려향이와 말을 주고 받는 여성한테 돌리었다. 그저 시허연 벽과 하얀 옷, 흰 모자가 희미하게 허상처럼 보일뿐이다.   (그럼 김춘희 박사가 한국까지 나와서 날 구했단 말인가? 아님, 내가 지금 중국에 돌아왔는가? 여긴 도대체 어디지?)   나는 놀랍게도 무슨 속궁리까지 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날마다 아빠하고 몇마디 말이라도 주고 받아요. 그럼 정신회복에 도움이 돼요.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오래 하진 마세요.”   “네. 알겠어요.”   이때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리선생님, 좀 괜찮지오?”   종호는 쌍까풀눈을 크게 뜨려고 무등 애썼다.   “누, 누구…?”   그러나 입술이 무거워 온전히 말을 번지지 못했다.   나영은 뜨거운 눈물방울을 종호의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뜨리었다.   “리선생님, 저, 나영인데요. 선생님, 왜 이렇게 바보처럼 짧은 생각을 하는가요?”   종호는 눈을 맥없이 스르르 감아버리었다.   나영은 종호의 손을 잡아 매만지면서 흑흑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흑흑, 선생님, 선생님은 이전에 제가 자살하려고 했다고 이렇게 일깨워주지 않았던가요? ‘왜 죽겠소? 죽을 용기 다 있으면 왜 살 용기 없소? 악을 쓰면서 살아야지.’”   (그래, 아리숭하게 기억나. 그때 나영한테 그런 말 했지.)   나영은 종호의 두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말했다.   “리선생님, 선생님은 저의 목숨을 구한 구명은인인데요. 이젠 제발 잡생각 마세요. 병마를 훌훌 털어버리고 어서 일어나세요.”   갑자기 종호가 입을 열었다.   “그만 두오. 세상이 더럽소… 보기 싫어…”   “끝내 말하시는군요.”   나영은 너무 기뻐 환성을 지르며 려향을 돌아보았다.   려향도 아빠 손을 맞잡았다.   “뭘요? 뭐가 자꾸 보기 싫어요.”   “암범, 악처, 색마…”   려향은 아빠 손을 활 놓아 버리며 두덜거리었다.   “왜 자꾸 어머니를 그래요?”   종호는 맥없이 머리를 끄덕이었다.   “정호는 감옥에 있는데요. 보이지도 않아요.”   “아니야. 금방 그 놈 내 추, 추모사를…”   “환각인데요. 아빠, 근본 추도대회도 열잖았는데. 어디서 난 부패분자 정호가 추도사를 했다고 그래요? 허깨비 왔다 갔겠어요.”   나영은 너무 한심했다.   그녀는 종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함께 용기 내 삽시다.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리선생님처럼 정의감이 있고 남을 잘 돕는 착한 마을 가진 선량한 분들도 많찮  아요? 우리 착한 사람들끼리 함께 삽시다.”    종호는 쌍까풀눈을 살며시 떴다. 기대에 찬 미소를 짓는 여인의 얼굴, 걀죽한 우유빛얼굴이 어슴푸레 보인다.    (우리 함께 살자고? 나하구 살겠다고?)   종호는  삶의 의욕이 은은히 생기어 나는 감을 느꼈다.   (사람이란 고약해. 금방 세상이 더러워서 죽어버릴 상 하더니 또 살겠다고 돌아누어?)   그는 손을 들어 눈물을 흘리는 나영의 걀죽한 얼굴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팔은 바위돌을 처매놓은듯해 들래야 들 수 없었다.   그는 모진 세상풍파를 겪으면서도 의악스레 살아온 걀죽한 여자의 얼굴에서 내비치는 강인한 빛을 보아냈다.   나영은 계속 사랑이 넘치는 말을 했다.   “저의 목숨을 리선생님이 준 거나 다름없어요. 저는 리선생님을 모시고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젓고 싶었다.   “이 놈 세상 보기, 보기 싫어.”   나영은 해쭉 웃어 보이었다.   “그럼 눈 감고 사세요. 저만 보고 사세요.”   “세상 모든게 듣기 싫어.”   “저의 말도?”   종호는 도리머리를 젓고 싶었지만 머리 무거워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귀를 막고 사세요. 려향이와 저의 말만 듣고 살면 되지요. 호호호. 드문드문 전유진이나 정수주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나 듣고.   호호호.”   종호는 점점 정신을 차리었다.   그는 나영한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세상 모든 걸 보지도 않고 듣지 않으면서 살아서 뭘 해? 렬사하고 영웅들의 책도 쓰잖고 살아서 무슨 삶의 가치 있어? 난 죽어야 해.)   그러나 이런 말을 번질 수 없었다. 입술이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난, 난 실패한 인, 인생이야…”   “아니예요. 리선생님은 신문사 사장 아닌가요? 우리 민족의 렬사와 영웅들의 사적을 숱한 책으로 출판하잖았는가요? 한국 젤 큰 서점에서도 선생님의 책이 팔리던데요. 리선생님은 성공한 인생인데요. 그보다 선생님은 곤경에 빠진 저 같은 여자를 구해준 좋은 사람이죠.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분인데요. ”    나영은 종호의 두 손을 꼭 잡고 발까지 동동 굴렀다.   “리선생님, 어서 병마와 잡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세요. 흐흐흑, 흑흑.”   그녀는 흐느껴 대성통곡치었다.   정호의 혼은 이번에는 흑흑 흐느끼는 나영의 콧구멍으로 해 심장으로 스리슬쩍 들어가보았다. 그녀가 혹시 가살을 피우지 않는지 속을 들춰보기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심장은 이렇게 흐느끼며 속삭이고 있지 않겠는가.   (리선생님, 어서 일어나세요. 리선생님은 저의 구명은인인데요. 저는 알아요. 선생님은 저를 좋아한다는 걸. 나이 차 때문에 저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몰라요. 저는 선생님이 좋아할 여자 아닌데요. 아니, 죄범인데요. 저는 탐오죄를 범해 한국에 도망쳐 나온 여자인요. 저는 정파답지 못한 패륜여자인데요. 정호와 더럽게 몸과 마음을 섞은 적 있는 화냥년인데요. 일순간 육신의 괘락을 위해 정조를 지키지 않은 불결한 년인데요."    나영의 심장은 자책감에서인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심장의 뜨거운 피는 갑자기 주춤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제가 이런 나쁜 년인지도 모르고 제가 일하는 음식점에 와서 연길냉면을 잡수시면서 자주 찾아 주었지요. 저는 정호와의 맺은 악과가 배 속에서 뚱뚱하게 부펄어 올라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모텔에서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배를 찌르고 손목을 베 자살을 시도했지요. 그때 선생님이 선뜻이 나서서 애나게 번 돈으로 저의 구급치료비와 개왕절개 시술비를 다 대주었지요. 지금도 기억나요. 저를 자기 집에서 자게 하려고 엄동설한에 종각 지하철역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새우잠을 자던 리선생님의 그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과일구럭을 들고 저의 병문안을 오던 리선생님의 모습을 지금도 방불히 보는 거 같았어요.)    나영은 눈물 코물 흘리며 감등을 먹는 거 같았다. 그녀의 심장의 맑은 피는 진실을 담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제가 탐오범죄자라는 걸 알아도 저를 좋아하겠는가요? 그래 진정 저를 좋아했나요? 딸 같은 저를 동정한 건가요? 나무리지 않는다면 언제든 저는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줄래요. 마음의 문을 열어 줄거요…어서 깨나세요. 리선생님, 흑흑, 흑흑흑…)    내 혼은 나영의 머리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얼빠진채 멍해 나영의 심장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영은 그저 구명은혜에 보답하려는 거겠지. 그걸 바라고 나영을 도운 건 아닌데…)   혼이 나영의 속에서 기어나와 다시 링겔 쇠걸개에 대롱대롱 매달려 나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영은 놀란 표정을 짓다가 희죽이 웃는 내 표정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다. 뜨거운 눈물 방울이 방울방울 내 얼굴에 떨어지며  뭐라고 속삭이고 있지 않겠는가.    그때 종호는 감히 나영을 쳐다보지 못하고 놀랍게도 손가락으로 려향을 가리켰다.    (뭐야? 시집도 안 가고? 불효녀야! 난 아들도 없어. 세종대왕의 후손인데. 조선을 500년이나 통치한 우리 전주 리씨 집안 대를 끊는  불효자야. 이젠 책도 온전히 내지 못할 바에야 살아서 뭘 하겠느냐?)    눈치 빠른 려향이는 아빠가 지금 자기를 질책한다는 것을 아픈 가슴으로 느꼈다.    “아빠, 제가 불효를 저질렀어요. 이젠 제가 시집 갈게요. 아빠한테 손주 서넛 안겨 줄게요. 아빠를 도와 영어, 일어로 책을 낼 거예요. 책으로 우리 민족에게기념비를 세워 줄테요.”    종호는 웃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얼굴이 새까맣게 질리어 갔다.   “아서라.”   종호는 속으로 딸한테 충고했다.   (아서라, 아들딸을 낳아 기르면서 편안하게 살겠으면 나처럼 책짐을 메고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지 말라. 물 한방울도 차례지지 않는 사막의 외길에 들어서지 말라. 난 그 책더미 때문에 집 다 팔아먹고 네 박사  청춘마저 엄청 허비했다. 절대 아빠 따라 하지 마. 그러나 사회를 위해 정의롭게 살겠으면 … 아, 나도 몰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갑자기 혼이 육신에서 쑥 빠져 산소호흡기를 타고 바라올라가더니 천정으로 훌 날아올라가 찰싹 붙어 버리었다.    “아빠!”   려향은 종호를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치었다.   “리선생님, 깨나세요! 네? 절 버리고 제발 혼자 가지 마세요.”   “그만 하세요. 리선생님은 피곤해 쉬는 거예요. ”   김춘희 박사가 황급히 다가와 려향이와 나영을 말리었다.   종호의 허약한 혼은 천정에 디룽디룽 매달리었다가도 너무 피곤해 내 육신에 스며들었다.   천정과 육신 사이에서, 나와 나영이, 려향의 사이에서 지친 혼은 사랑의 자장가를 부르며 날아옌다.   려향과 나영의 혼도 종호의 혼과 함께 참된 신생의 삶으로 서정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트롯미스 전유진의 청아한 노래소리 은은히 들리어온다.
408    장편소설 황혼(3) 한족본처 김장혁 댓글:  조회:492  추천:0  2024-07-09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3. 한족본처           이상해. 분명 자살했는데 혼은 왜 정신이 올똘할까?    육체는 죽어도 혼은 살아 있는가? 육체를 떠난 무형의 혼은 천정에 붙어 있다가도 유령처럼 육체를 따라 다니는게 아닌가? 진짜 유령이 떠다니는게 아닌가?    “괘씸한 년!”   내 혼은 한족본처 류려평을 보자 대번에 소름이 끼쳤다. 육체는 용광로에 들어갈 판인데 저게 뭔가? 암범 같은 저 악처가 또 왜 왔어? 진짜 악연이야. 사람은 본처를 잘 만나야 하는데. 어쩜 저런 여자 복도 그렇게 없어? 숱한 여대생을 두고 어쩜 저런 애 때 공부도 제대로 못한 막돼먹은 여자를, 독살이 센 한족악처를 만났을가? 내 팔자도 기구하지. 참.    혼은 두 발로 염라전 문턱을 딱 뻗치다 못해 장례식장 칠성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빠!”   제일 먼저 려향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빠, 살아 계셨군요.”   려향이 나를 끌어안고 통곡치지 않겠는가!   려평도 오늘만은 평소의 암범 위풍을 잠시 훌훌 털어버린 척하고 사타구니에 암범의 꼬리를 끼고 퉁사발눈을 희번뜩거리면서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었다.  평소보다는 완곡하게 말한다는 소리 이러하다.   “여보! 웬 일인가요? 편안히 갈게지. 마지막까지 곁사람들을 혼낼 작정인가?!”   종호는 벌떡 일어나 앉아 려평을 쏘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 년, 내 죽잖는게 원수냐?”   암범은 퉁사발 같은 쌍까풀눈을 흘기었다.   “당신, 웬 말인가요?”   암범의 말꼬리는 더욱 뜻밖이었다.   “비록 함께 살진 않지만요. 우린 려향이를 낳은 아빠, 엄마 아닌가요? 30년 함께 살아 온 부부 아닌가요?”   “퉤! 더러워. 안팎이 다른 년!”   (그 주제에 그래도 조선말을 해? 서투르기 그지 없어. 그래도 조선족집 며느리느라고? 허위적인 한족녀편네, 네 년이 보기도 싫어.)   웬 일일가?   나는 다시 칠성판에 훌 들어누웠다.   내 혼은 스리슬쩍 류려평의 퉁사발 같은 쌍까풀눈으로 해 머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내 혼은 무형이어서 어디로 날아 다니든지 어디로 기어들어 가든지 류려평이나 려향이나 다 털끝만치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 혼은 려평의 어둡고 음흉한 머리를 거쳐 목으로 해 더러운 밸을 앙기작앙기작 걸어 심장 가까이 다가갔다. 려평의 펄떡펄떡 높뛰는 심장을 내다보며 코웃음쳤다. 드디어 혼은 심장에 기어들어갔다. 탐욕스런 피, 돈때 묻은 더러운 피가 쿨쿨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혼은 악처의 아랫배에 들어가 보았다. 구불구불한 밸 아랫쪽에 량쪽으로 뻗어 있는 건 뭔가?    그게 수란관이지.     오, 그 어구지에껀 뭐지?     자궁이야.     오, 그렇구나. 건데 자궁이 왜 한 절반 잘리워 나갔지?     것도 몰라? 암범이 바람 피우다가 매독에 걸려 자궁까지 다 썩어버렸지. 그래서 한 절반 썩은 걸 수술해 버렸지.    와- 세상에, 저렇게 환하게 생긴 여자 그런 일도 다 있어? ㅋㅋ.   뒤이어 심장을 꿰지르고 건너가 류려평의 마음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뭐야?   암범의 음흉한 마음 속이 환히 드러나지 않겠는가.   류려평은 말로는 문안하러 왔다지만 마음 속으로는 악착한 궁리를 하고 있지 않겠는가.   “저게 어째 썩어지지 않니? 지레 목을 끊을 거지. 왜 손목을 벴어? 언제 끝을 보겠니? 꽤나 질기구나.”   내 혼은 깜짝 놀라 고함쳤다.   “뭐라고? 더러운 년! 문안허러 온게 아니었구나. 내 죽기를 그렇게도 바라느냐?”   류려평은 깜짝 놀랐다.   “아니, 내 뭐랬다고 그래요? 아무 말도 안한 착한 안해 보고 뭔 욕설인가요?”   그녀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구정물에 뛰어든 돼지 쌍까풀눈으로 병상에 누운 종호의 얼굴을 빤히 돌아보았다.   (분명 병상에 누어 눈을 딱 감고 있는데. 어떻게 내 속궁리를 알까? 이 놈이 혹시 관심법을 써서 내 속을 환히 꿰뚫어 보는 건가?)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진짜 악연이야. 내 이런 조선족놈한테 시집 온 것부터 악연이야. 대학생이라고 이런 조선족 놈한테 시집 와서 한뉘 고생하지 않는가?)   내 혼도 류려평의 뱃속에서 콧웃음쳤다.   “흥! 나도 시내에 남자고 너 같은 똥되놈한테 장가간게 후회된다.”   “아니?”   류려평은 허리를 펴며 놀랐다.   (분명 내 뱃속에서 종호의 목소리가 들리잖아? 귀신이 장난해?)   분명 종호는 병상에서 희죽이 웃고 있지 않겠는가?   (저 놈이 자는 척 하면서 다 듣고 있는 거 잖아?)   류려평은 너무 이상해 려향을 돌아보았다.   “얘, 금방 아빠 뭐라고 말하는 거 들었니?”   “네?”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들었는데요. 뭐랍디까?” “아니, 혹시 뭐라던가 해서.” 웬 소리인가? 하얀 벽을 배경으로 숱한 하얀 옷들이 모여와 부동한 내심을 담은 눈길로 나를 들여다본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눈까풀을 번지는게 아닌가? “괜찮아요. 아마 가짜 죽음(假死)인거 같아요.” “뭐? 그럼 아빠 살아있단 말인가요?” 상해에서 특별히 왕진 온 김춘희 박사가 결론을 내리었다. “그래요. 이제 며칠 있으면 스스로 일어날 거요.” “아이고, 내 아빠,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려향은 기뻐 어쩔줄 모른다. 내 혼이 천정에 붙어 볼라니 그 애는 칠성판을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훌쩍훌쩍 운다. (이게 웬 일인가? 저 하얀 옷을 입은 녀자, 춘희 박사 아닌가? 쌍까풀눈을 봐. 아니, 춘희 박사는 외까풀눈인데. 아님, 황선희 박사인가? 김박사하구 황박사는 남방에 가지 않았던가? 군철이네 회사 병원에서 일했다던데. 회사 전무 군철한테 제명당하지 않았던가? ) 나는 분명 장례식장 칠성판에 누워 있었잖은가? 이게 화장터 아니고 어디란 말인가? 한어로 쓴 화장터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글로 “특급구급실”이란 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긴 한국인가?) 내 혼은 육체를 떠나 천정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링겔 쇠걸개에 사뿐 내려 앉아 매달리지 않겠는가. 나는 혼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본 적도 친한 적도 없다. 그런데 혼은 내 육체 가까이 다정하게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여긴 화장터 아니고 병원 특급구급실이군요. 아마 되살아날 거 같아요.” 내 육체는 칠성판에서 또 벌떡 일어났다. “뭐? 안돼! 날 제발 살리지 말라!” 그때 누군가 내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지 않겠는가. “살아 있는 모든 이는 모두 당신의 어머니오. 세파의 바람에 멍든 당긴의 가슴은 지금 너무 우울해 정신 이상에 걸린 거 같소. 당신은 지금 세상만사를 다 팽개치고 평안을 찾으려 하고 있소. 모든 이를 다 미워하고 있는게 진짜 중병이오.” 나는 칠성판에 되들어 누우며 저도 몰래 나직이 두덜거렸다. “개소릴 작작 쳐라. 그래 류려평, 정호, 저 더러운 년놈들을 보기 싫어한게 잘못이란 말인가? 저 년놈들이 어떤 물건짝들인지 아는가? 려평인 시어머니 죽으라고 모든 걸 못 본 척 하면서 돕지 않은 개쌍년이야. 불효녀야. 내 엄마 마지막길을 톺아오르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주사 한대 놔주지 않은 년이야. 언제 숨이 떨어지겠는가 고대한 년이야. 엄마 인차 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뭐랬는지 아는가? ‘아이고, 이 로친이 아직도 죽지 않았어? 이제도 며칠 밤낮 마지막까지애를 먹일 작정인가?’ 한족며느리 저주하는 소릴 듣고 엄마는 한을 품고 눈도 감으시지 못했다. 려향아, 네 에미도 사람이냐? 사람 가죽을 쓴 암범이야, 아니, 녀악마야. 지금 또 내 죽지 않는다고 속으로 저주하고 있어.” 려향이 뾰로통해 두덜거리었다. “아빤 왜 엄마를 욕해요? 좀 없는 소릴 작작 하세요.” “려향아, 내 혼은 녀악마 속으로 들어가 저주하는 소릴 다 들었다. ” 뭐야? 류려평이 말대구 소리 내 귀에 똑똑히 들린다. “그만해요. 내 아버지 덕분에 농촌에서 살던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을 몽땅 시내 호적에 올려주고 잘 살게 했는데. 배은망덕해? 날 욕해요?” 류려평의 넉두리는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려향이 보기 구차해 그러는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잖겠는가. 그러나 종호는 려평의 뱃속으로, 아니, 마음 속으로 기어들어간 혼 덕분에 그녀의 속알멀치를 다 알고 있어 곧이듣지 않았다. (우리 그때 어디 숨이나 크게 쉬면서 살았는가? 30평방 밖에 안되는 두간 방에서 시어머니, 시동생들까지 해 일곱식구가 살지 않았는가요?” 암범은 남이 들을가 봐 그러는지 좀 목소리를 낮추더니 례의를 갖추면서 말하려고 애쓰는게 알리었다. (밤마다 당신 주책 있었는가요? 미닫이 건너 아래 방에서 숱한 보초군들이 귀를 도사리고 있었는데도 밤마다 달려들었죠. 나는 발로 차버리면서 마구 꼬집어놔도 당신 청춘의 불길과 기갈을 막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숨을 딱 죽이고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에 맞춰 밀고 당기면서 살지 않았던가요? 그래도 난 한마디 원망소리 없이 시집살이를 하잖았던가요? 진짜 어찌 시집살이 신물이 났으면 난 ‘시’자 들어간 건 다 싫었지요. 시금치도 사먹지 않았지요. 그렇게 좋아하던 짜릿한 애정시도 감상하기 싫어지었지요. 당신은 살림에는 관심이 없고 로임만 타면 절반씩이나 떼내 취재비용으로 썼고 숱한 돈을 팔아 책을 내군 했죠.  가정 살림살이할 돈을 다 책에 처넣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요? 나중에 집까지 다 팔아먹고 허망 나앉지 않았는가요? 책을 내서 남은게 뭔가요? 다 허영심에 차서 ‘리종호’ 이름 석자를 기념비로 새기자는 것 밖에 또 뭣이 있는가요? 당신은 자기 이름 석자 때문에 가정을 말아먹은 나쁜 사람이예요. 퇴직하면 그만 두겠는가 했죠. 그런데 뭔가요? 퇴직하니 고삐 끊은 들말처럼 한국까지 나와 책을 내느라고 미쳐 날뛰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우린 졸혼하고 서로 제 갈 길을 가기로 했지요. 당신은 졸혼해도 책 내는 거 밖에 모르는 본성을 고치지 못했지요. 난 가정살림을 모르는 당신 같은 바보, 그런 바보 나그네 믿고 살 수 없었지요. 이혼하는 길 밖에 없어요…) 종호의 혼도 려평의 뱃속에서 대성질호했다. “관둬! 더러운 년. 넌 악처야. 여악마야.” “난 이 집에서 며느리 못해!” 려평은 내 보기 싫어 장례식장 문을 박차고 훌 나가 버렸다. 숱한 상객들은 문귀에 끼운 암범의 꼬리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려향은 어머니 너무 한다고 속으로 욕했다. 혼이 천정에 매달려 볼라니깐. 숱한 상객들이 려평의 뒤꽁무니에 대고 손삿대질 하더구나. 화장터 철문이 열리는 드르렁 아츠런 소리 들린다. 아마 이젠 내 육신을 태우려고 불아궁이에 쓰르르 미끄러져 가는 거겠지. 악처 류려평이 좋아할 시각이 닥쳐 왔구나. (이젠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저승에서 편안히 보내자.) “아빠, 구급실에서 나가 좋은 병실에 옮겨가니깐요. 근심 말아요.” (뭐라고? 려향아, 날 어디로 밀어가? 날, 응? 제발 가게 놔둬라.)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천근무게나 되는 거 같아 떨어지지 않는다. 내 혼도 바보로 됐는가? 어쩜 천정에 매달려 있다가 링겔 쇠걸개에 매달려 내 육신을 따라 움직이지? (야, 이 놈 혼아, 날 따라 더러운 세상으로 가지 말라. 네 놈은 훌훌 날아서 지상낙원으로 가야 해. 아니, 하늘 나라에 가야 해. 시람의 육신은 죽었는데 혼은 정말 살아 있단 말인가? 분명 나는 손목을 잘라 자살했잖은가. 그런데 려향이 울음소리나 낯도 모를 녀성들이 주고 받는 말소리도 똑똑히 들리지 않는가. 그래 사람은 죽어도 혼이 살아 있어? 그럼 혼은 육신을 떠나지 말아야겠는데. 그래야 살아 있는 건데.) 고약한게 사람의 마음인가 봐. 종호의 혼은 딸 려향이를 보고 삶의 미련의 꼬리를 놓고 싶지 않은가 봐.
407    장편소설 황혼(2) 유언 김장혁 댓글:  조회:544  추천:0  2024-07-09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2. 유언      유령은 천장과 용광로 사이를 동동 떠돌아다니었다.    “저, 부패분자!”   내 혼은 유령처럼 나타나 화장터 천정에 매달려 정호를 손가락질하며 대성질호했다.   (네놈, 그래도 국장이노라고 추모사를 읽어? 추도사? 거 뭐야? 격에 맞지도 않게 시를 읊어? 네놈 누구를 큰 별과 등대에 견줘 번쩍 춰 올려? 원래 넌 권력에 아부를 일삼아온 아첨쟁이야. 뭐? 책짐 싫어나르던 쪽배 어쩌구? 저쩌구? 책짐 배 파도에 휘말려 가면 너 그렇게 좋아? 참, 어처구니 없어. 추도사를 하는 척 하면서 뭐 횡설수설해? 추도사는 청렴한 총경리 성호 총경리 읽어야 하는 건데. 왜 그 친구 안 보이지? 참, 내 총망히 염라전에 오면서 깜빡 잊었군. 성호한테 미리 부탁해두는 건데.)        장례식장이란 건 또 뭔가?    이상해. 장례식장 정면에 마땅히 걸려 있어야 할 편액이 보이지 않는다.    뭐, “고 사막의 마라토너 리종호선생(사장) 추도대회”라던가. 그런 글 보통 걸려 있는데 말이야. 대신 뭐 “특급구급실”이란 간판이 걸려 있지 않는가?    참, 살기 싫어 자살한 사람을 구급해 뭐 하는가? 훌 화장해 버리면 그만인데. 그럼 딸도 시름 놓고 직장에서도 시름놓겠는데. 왜 이다지도 사람을 두번 죽게 한단 말인가? 천천히 지루하게 말리워 죽게 만드는가?    (려향아, 어서 아빠 혼을 불러 육체와 함께 훌 태워버려라. 혼이 육체를 떠나 유령처럼 바람에 둥둥 떠돌아다니면 어쩌니? 난 더 고통스럽다. 혼마저 빨리 저세상에 보내달라.)    그러나 이상했다. 혼은 멀쩡한데유. 육체가 죽어서 그런지 입술이 천근 무게 돼 열리지 않는다.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유서라도 남겨 놓았을 걸. 참. 후회막급이야. 세상에 후회약이라도 있다면 아마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아놓았을 걸. 그래도 내 혼은 자꾸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한테 뭐라고 자꾸 말하고 싶어지는게 이상하다.    (내 죽으면 비석도 필요없다. 이전에 난 내가 죽으면 골회를 내 부모 산소 옆에 파묻고 자그마한 비석이라도 세워달라고 했지. 죽어서라도 생전에 부모에게 다 하지 못한 효성을 다하고 뼈가루 돼서라도 부모 산소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다 부질 없는 일이다. 육체가 다 타고 나머지 뼈가루가 어찌 부모를 지키고 효성을 한단 말이냐? 오히려 내 골회를 보면 내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겠느냐? 그러지 말자. 더는 그런 악착스런 불효를 저지르지 말자.)    내 혼은 좀 궁리하고 계속 려향이한테 부탁했다. 려향이 들을 수 있겠는지도 모르고.    (려향아, 골회함도 필요없다. 공돈을 팔지 말라. 그 돈이면 렬사들의 사적을 쓴 책 몇권이라도 찍어 렬사들의 영 전에 올리겠다. 그저 나를 다 태우면 뼈가루를 보에 싸서 부모 산소와 렬사릉원에 훌훌 뿌려달라. 비록 육신은 다 탔지만 혼은 바람처럼 날아다니면서 부모와 렬사들의 혼을 지키고 싶구나. 선렬들의 피로 바꿔온 이 땅을 영원히 지키고 싶다. 다만 죽어서 렬사들의 사적을 더 쓰지 못하는게 한일 뿐이야.)    려향이 이렇게 묻는 거 같았다.    “아빠, 그럼 왜 자살했는가요? 살아서 계속 렬사들의 사적을 책으로 써내야죠.”    그러나 나는 려향이한테 모든 걸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내 입을 잘 못 놀렸다가 려향이 전도를 그르칠가 봐.    (려향아, 나는 모든 걸 무덤에 가지고 가련다. 더는 책을 내겠다고 하지 않겠다. 널 보고 “내 책을 한어로 번역해라, 일어와 영어로도 번역해라.”고 하지 않겠다. 너도 시름놓고 박사 공부나 해라. 이젠 내 근심하지도 말라. 책을 내겠다고 아글타글 건축공지에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시름 싹 놔라. 너와 못할 말이지만, 내 공지에서 일하다가 남자의 그거 한쪽 잃어버린 거 너도 알잖니? 물론 안해도 없는 내가 그게 무슨 쓸데 있겠느냐만은.)    혼은 어느덧 옛날 내가 일하던 공지로 헛깨비처럼 훨훨 날아갔다. 공지에서는 귀신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고 모두 피해 숨어 버린다.    (난 사람이지 귀신이 아닌데. 왜 저러지?)   헛깨비 같은 내 육체는 돈 한푼이라도 벌어 책을 내려고 철근을 메어 날라다 고층 아프트 건축물 천정 바닥에 펴고 가는 쇠줄로 가로 세로 얽어맨다.    꽈르릉 쾅!   툭!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한창 짓던 건물 천정이 푹 물앉았다. 나의  몸뚱이는 아래 층에 허공 곤두박혔다. 아차, 철근에 불중태로부터 아랫배로 해서 잔등까지 꿰창을 맞은듯이 찔리었다. 나는 이미 혼미상태에 처해 혼이 저승문턱에 간 채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생벼락이 어디 또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래도 한국 소방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페허 속에 파묻힌 나를 구원했지. 먼저 탐지견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으면서 나를 발견하고 컹컹 짖어댔다. 소방대원들은 페허 속에서 나를 파내 구급차에 실었다.   려향아, 너도 알잖니?   (나는 한국 의료일군들에 의해 한달만에 구급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었지. 그러나 내가 왜 자살했는가고? 얘야, 너무 슬퍼하지 말라. 아빠는 건설공지에서 신장과 고환 하나를 잃은 딱 그게 때문이 아니야. 사람 사는게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야.  그러나 이젠 살고 싶잖다. 더 보고 듣고 살고 싶지 않다. 세상에 오래 사노라면 너무 보지 못할 걸 많이 본다. 네가 시집가지 않고 마흔살 다 돼가는게 가슴 아프다. 로처녀로 한뉘 살 예산이냐? 우리 전주 리씨 네 대에 와서 대 끊어지게 됐다. 아차, 아니야. 다 내 차실이지. 내 아들을 봐야는데. 무남독녀 너 하나만 낳고 말았으니까. 허나 네가 이제라도 시집가면 괜찮아. 지금은 애들이 엄마 성을 타도 된다고 하지 않느냐? 넌 생육년령일 때 꼭 시집가서 손자를 안겨달라. 그땐 구천에 가서도 난 눈을 감을 거 같아. 아들을 낳아도 엄마 성을 타게 하겠다는 남자한테 시집가라. 그래야 이 애비 원을 꺼줄 수 있잖니?...)   내 넉두린지. 유언인지 끝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웬 하소연 그리도 길가?   해는 저물어 가는데 마른 풀잎이 염라전 층계에 쓰러져 제네바행진곡을 연주한다.   처용이 달밤에 나타났는가?    인생도 붉게 타오르는 황혼의 탈을 바꿔쓰고 공포의 블랙홀로 휘말려들어가며 애처로운 죽음의 노래에 맞춰 탈춤을 춘다. 저게 뭐야?   탈을 쓴 허깨비 혼이 염라전에서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들과 함께 너울너울 칼춤을 춘다. 입으로는 뭐라고 허무한 인생이 애닲아 중얼중얼 굿을 한다. 대머리가 제상의 바나나를 덥썩 쥐어 발가서 우물우물 씹으며 우멍눈으로 곁눈질하지 않겠는가.     아, 저 암범을 봐라. 나를 빨리 태우라고 려향한테 손삿대질 하고 있지 않는가.     혼은 암범 한족본댁 류려평을 보자 대번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류려평은 어찌나 독살이 센지 공포 자체였다. 퉁사발눈깔을 희번뜩이면서 고래고래 고함칠 때면 진짜 오뉴월에 장독에 서리 다 칠 지경이었다.    암범의 표독스런 쌍까풀 퉁사발눈이 내 유체를 째려보면서 한쪽 구석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저주하고 있지 않겠는가.    “빨리 가옵소서. 시름 싹 놓고 살게.” 
406    장편소설 황혼 제1권(1) 나의 장례식 김장혁 댓글:  조회:766  추천:0  2024-07-09
   장편소설      황혼       김장혁       1. 나의 장례식     홧홧 타오르는 열기에  잿빛벽돌들이 탁탁 튀어 오르며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바람에 팔락이는 실오리만한 혼의 꼬리를 집어삼킨다. 화장터 용광로는 피와 살 냄새를 맡고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음흉한 실웃음을 짓는다.    인생이 허무하다. 염라전에 오면 영웅호걸도 절세미인도, 더러운 세상을 버린 육체는 뻘건 염라전 불길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에서  재가루로 돼 하늘로 오를 것이거니.     허나 혼은 "봉황열반"처럼 새로운 봉황으로 태어나 하늘을 훨훨 날아예며 새 세상을 노래할 것이다. 밤중에 끊임없이 우짖는 귀뚜라미처럼 끝없이 우짖으며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합할 것이리라.    바람 따라 날아가는 사랑의 그림자를 허무하게 뒤쫓아 가다가 지치어 쓰러진 언덕에 하얀 그리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무시무시한 백골들이 쩍 벌린 아가리로 죽음의 공포를 뱉어내고 낮잠을 청한다.    얼룩 독사가 움푹 파인 백골 눈확에서 기어나와  혀를 날름거리며 가냘프게 시들어가는 황혼을 쳐다보며 한숨의 꼬리를 잡고 모래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사막의 밤 하늘을  노크한다.    얼빠진 황혼은 비틀거리며 염라전에서 라체무를 추며 허무한 인생의 콧노래를 부르며 어두운 밤의 고독한 악기를 고른다.    장례식장 칠성 판에는 고독하게 이 세상을 누비던 내 혼의 가죽이 파르르 떨며 누어 있다.    “아버지! 왜 이리 멍청한 짓을 해요? 네?”    (그래도 딸이 있어 다행이야. 저승길에 너무 외롭진 않아.)    황혼 인생의 마지막 길에 추모곡은 울리지 않아도 그래도 처량하게 우는 무남독녀의 곡성이 들리지 않는가?   염라전의 문턱에서 지쳐 쓰러진 혼, 식어가는 혼은 화장터로 들어가면서도 희쭉 웃으며 뜨거운 열기를 받아들인다.    “아버지, 이 딸을 두고 어디로 간다고 이래요?”   칠성판에 오른 나의 혼은 딸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려향아, 슬퍼 말라. 난 그래도 우리 겨레를 위해 뭔가 해놓았다. 이젠 시름놓고 가야겠다. 지금 가면 딱 맞춤해. 존엄도 지키고. 좀 조용히 가게 해달라. 네가 울면 내 황천길이 너무 쓸쓸해진다. 이젠 좀 울음 딱 끄쳐라. 네가 운들 죽은 혼이 되살아나겠느냐? 부질없는 통곡을 제발 멈춰라.)    “아버지, 어쩜 이 세상에 외로운 딸 두고 그렇게 총망히 갈 수 있나요?”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난 분명 칼로 내 손목 동맥을 잘랐는데. 려향의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분명 자살했는데. 유독 고독한 혼은 이 더러운 세상에 살아 있단 말인가?)   종호의 혼은 세상이 보기 싫어 눈을 딱 감았다. 그런데 보기 싫어할수록 희미하게 보인다.   분명 하나 밖에 없는 려향이 칠성판에 올라와 나를 부둥켜 안고 울고 불고 야단친다.   그런데 다른 젊은 여인의 통곡소리도 애절하게 들리지 않겠는가.   “리사장님, 이게 웬 일인가요? 어쩜 나를 홀로 두고 이렇게 총망히 가는가요? 네, 사장님은 저승 문턱에 간 나를 구해 삶의 용기를 주었는데요. 왜 이렇게 짧은 생각을 다 하는가요?”   말귀를 들어봐서는 나영 같았다. 흐느껴 우는 울음소리도 어쩜 저렇게 쓸쓸할가.   “리사장님이 없이 제가 홀로 어떻게 사는가요? 흐흐흑, 흑흑,”   뒤이어 장송곡이 울리고 웬 남성이 뭘 선독한다.   (뭐? 고 리종호 부사장, 작가 추모식? 세상 웃긴다. 난 이미 이 세상과 하직했는데. 추모식을 해 뭘 해? 그저 기름을 치고 화로불에 태워 하늘에 훌 날궈 버리면 다야. 나는 자유로운 새처럼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바다로, 광야로 훨훨 날아가련다. 저 봐라. 바람이 산의 속살에 날아들어간다. 바다를 다독여 세찬 파도를 일으킨다. 바람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붕붕 날아다니면서 뭔가를 속삭이며 귀띔해주고 있지 않는가.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내 갈 길을 막지 말라.)    종호의 혼은 별스럽게 화장터 칠성판에 올라도 공포를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별 궁리를 다 했다. 그런데 웬 일일가?   혼이 화장터 천정에 올라가 떡 철싸닥 붙지 않겠는가. 혼은 가련하게 삶의 미련을 타고 천정에 대룽대룽 전등알처럼 매달려 내려다 보고 있다.   려향이 또 숱한 상객들 앞에서 아빠 육체를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친다. 빈소의 관리일군이 려향을 말려도 소용없다.   “아버지! 못 가요! 저를 두고 어데 간다고 이래요?”   “넌 시집도 가지 않고 불효를 저저리는데 내 살아 뭘 하겠느냐? 로처녀로 늙어가는 널 보면서 황혼을 재빛으로 태우면서 살라고? 어림도 없다.”   (웬 일인가?)   화장터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린 혼은 깜짝 놀랐다. 하마트면 천정에서 퉁 떨어질번 했다.   (난 분명 속으로 되뇌였잖은가? 건데 상객들이 다 듣게 소리 나갔잖어? 별 일도 다 있다. 참.)   종호의 혼은 간사스럽게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상객들 속에 놀랍게도 류려평도 와 있지 않겠는가. 저쪽 구석으로 해 나영도 서 있고  또 그 옆에는 정호도 서 있지 않겠는가!   (저 년놈들을 보기도 싫어! 저 년놈들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과 “졸혼”에도 드문드문 나오던 추악한 인물들이 아닌가? 숱한 혼을 빼간 년놈들. 바람둥이들! 저 년놈들이 보기 싫어 내 자살한게 아닌가!)   종호의 혼은 경악했다.   (날 되살아나라고? 관둬라! 한 많은 이 세상에서 두번 다신 살진 않겠어.)   혼은 천정에서 화로에 퉁 뛰어들어갔다.   뿌지직! 뿌지직!   천도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를 뱉어낸다. 육신은 씨뻘건 화염에 싸여 타버리며 쓸쓸한 황혼 인생의 찬송가를 부른다. 타버리는 잿빛 황혼은 용광로 속에도 뻘건 빛을 온 누리에 빛뿌린다. 황혼 빛은 어두운 밤을 밝히려고 몸부림치며 어려운 행진곡을 힘겹게 부른다.   웬 일일가?   육신은 다 타서 재가루 됐는데도 얼빠진 황혼의 혼은 계속 콧노래를 부르며 달갑게 공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웬 일일가?   말로는 공포의 블랙홀에 휘말려 들어갔다는데 아닌가? 건데 왜엉뚱한 사유는 계속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려향의 울음소리 똑똑히 들리지 않는가? 류려평이 말리는 소리도…    (색마 정호가 내 추모사를 읽어선 안돼. 정의용사 성호가 읽어야는데. 참. 황혼에 이르니 옆에 사람도 없어. 어쩜 번대머리가 추모사 읽는 소리가 계속 들려? 저런 것도 문화국 국장 책상머리 퇴물림이라고, 시도 모르던 놈이 뭐 그것도 시라고 읊어대? 세상 어처구니 없기로서니. 하긴 사슴이 돛대에 올라 해금을 켜는 세월이니. 이상할 것도 아니지.)            황혼은 붉게 타다가 맥없이 져가는데       캄캄한 하늘에서 큰 별이 류성처럼 떨어지니       곡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진달래 꽃잎에 맺힌 눈물 방울       바다를 메우며 노호하네.         지지리 어두운 밤에       등대 잃은 저 쪽배를 어찌 할꼬?       키잡이 잃어버린 저 책짐 실은 쪽배      야수처럼 덮쳐드는 세찬 파도를 어찌 할꼬?           …
40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0) 뜻밖의 상봉 김장혁 댓글:  조회:484  추천:0  2024-07-0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포수대           11. 뜻밖의 상봉       사실 병수는 점심 때 우시장에 있는 길수의 집에 가서 은녀를 만나 기름떡을 얻어가지고 장마당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은녀는 병수에게서 아버지가 아들딸 근심에 속을 태우다가 기막혀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고, 우리 아버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시름시름 앓더니 이렇게 불쌍하게 돌아가시다니. 아이고, 내 아버지, 불쌍한 내 아버지, 흐 흐 흑, 흑 흑.”    은녀는 대성통곡하면서 “아버지 장례에 가겠어요.” 하고 길수에게 사정했다.   한길수는 소를 잃어버렸는데 은녀마저 달아날까 봐 근심됐다.   “가긴 어디로 가? 네년이 가면 우리 집 밥은 누가 해?”   은녀는 한길수 앞에 꿇어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바래드리게 보내 줍소. 제발, 주인님.”   인정머리라곤 꼬물만치도 없는 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성대문을 나서더니 기생집으로 가버렸다.   아버지 장례에도 가지 못한 은녀는 더는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 달밤에 그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월선의 호령에 못 이겨 물동이를 팔에 끼고 물을 길으러 비칠비칠 걸어갔다.   (아버지 폐병치료에 일전 한 푼 돕지 못하고 장례에도 가지 못할 바엔 아예 죽는 게 낫지. 상호도 종무소식이고 은희마저 한 영감의 영월동 집에 머슴으로 끌려갔다지. 뭘 보고 이 세상에서 산단 말인가?)   철렁!   드레박이 우물에 떨어지면서 죽음의 비명소리를 질렀다.   순간 은녀는 드레박처럼 우물에 철렁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 나겠는 걸 하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은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우물 틀 우에 간신히 올라섰다.   그녀는 얼음 쪼각 같은 눈썹달을 쳐다보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하느님이시여, 아버지와 엄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먼저 가는 불효녀를 용서해주옵소서.”   말을 마치자 은녀는 치마폭을 뒤집어쓰고 우물에 뛰어들려고 했다.  그 때다.   순간 뒤에서 꺽쇠 같은 팔이 은녀를 꽉 끌어안아 우물 틀 우에서 내리웠다.   가슴을 할딱이던 은녀는 자기를 안아 내리운 마차몰이군 병수의 거머틱틱한 얼굴이 어슴푸레 보이었다.   병수는 소를 잃어버리자 장마당에서 도망쳐 우시장 경찰국 뒷산 수림 속에 가서 동정을 살피면서 숨어있었다. 그는 뒷산 수림 속에서 똘만이가 자전거를 타고 경찰국 울안에 달려 들어오고 헌병대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눈보라를 흩날리면서 달려 나가는 것을 다 보았다.    한참 후에 경찰국 대문 안에 뚱뚱보와 소가 들어오고 한길수가 똘만이 등 자위대원들과 함께 철규를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묶인 뚱뚱보를 때리며 심문하고 철규는 묶이지 않은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정말 철규 말처럼 소를 빼앗긴 걸까?)   그러나 병수는 소를 잃어버렸기에 악마 같은 한길수에게 죽을지 살지 몰라 영월동에 돌아가지 못했다.   병수는 겨울해가 뉘엿뉘엿 지자 산속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허기증을 달래려고 우물가에서 서성거리면서 은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혹시 은녀 뒤를 밟는 자가 있을까봐 사위를 둘러보고 머리를 우물터에 머리를 돌리는 순간 물을 길으러 온 은녀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그가 황급히 달려가 은녀를 안아 내리우지 않았더라면 은녀는 한 많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길수는 이전에는 득호나 마을사람들을 일을 시키면 품삯을 주는 척 하였지만 지금은 일본 놈들에게서 강도행세를 배워가지고 아예 일전 한푼 주지도 않고 강제로 일을 시켰다. 은녀나 은희나 일전 한푼 받지 못하고 여종으로 뼈가 물러나도록 일했다. 아버지가 병환에 계셨지만 딸로서 일전 한푼 치료비로 보태주지 못한 은녀와 은희의 아픈 마음이야 이루 더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살 바에야 우물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병수는 은녀가 우물에 뛰어들려 한 얘기를 듣고 말리였다.   “은녀, 죽어서는 안 돼. 우린 지금 아무것도 없이 힘들게 살지만 이를 악물고 살아나가야 하오.”    은녀는 우물 턱에 기댄 채 맥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한길수 물이나 긷자구 살라오?”    “집엔 엄마와 은희, 상호가 있지 않소?”   그제야 은녀는 한숨을 땅이 꺼지 후~ 내 쉬었다.   “오빠는 어떻게 돼 여기 왔소?”   병수는 한숨을 내쉬더니 오늘 낮에 장마당에서 있은 이야기를 했다.   “그럼 저녁도 못 잡쉈겠구먼. 내 물을 길어가지고 갔다가 올게.”   병수는 드레박으로 물을 길어 쏟아 붓네 하고 안아 한길수의 집 쪽으로 들어다주었다.   “됐소. 괜히 자위대에 들키겠소. 어서 우물에 가서 기다리오.”   은녀 말에 병수는 은녀의 머리 우에 물동이를 올려놔주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눈으로 비칠비칠 토성에 난 대문 쪽으로 물동이를 이고 걸어 들어가는 은희의 뒷모습이 불쌍했다.   한참 후 은녀가 물동이를 팔에 끼고 우물터에 나타났다.   은녀는 물동이 안에 주먹밥과 누룽지 그리고 기름떡까지 넣어 왔다. 그것으로도 며칠은 먹을 것 같았다.   “배고프겠는데 어서 잡숫소.”   훤칠하게 생긴 병수는 기름떡을 먹으면서 말했다.   “금방 은녀를 보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소. 여기서 종살이를 한뉘 할게면 우리 간도로 달아날까?”   뜻밖의 말에 은희는 깜짝 놀랐다.   이윽고 그녀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반신반의했다.   “만주로 간다고 잘 살겠소? 엄마와 은희랑 어찌 하고? 들키는 날엔 한길수가 잡아먹자고 할게오.”   병수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우리 달아났다고 어쩔 거 같소? 상호가 달아나도 어쨌소? 은희를 부려 먹으려고 어쩌지 못하오.”   은녀는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손에 쥔 게 없이 산 설고 낯선 간도에 갔다가 굶어 죽으면 어쩌겠소. 가지 말기요. 이 추운 겨울에 간도로 갔다가 얼어 죽겠소.”   병수는 은녀의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말했다.   “나를 믿소. 우린 아직 젊소. 간도에 가서 우리 함께 잘 살아 보기요.”   은녀는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희읍스름한 달빛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병수의 길쭉한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오늘 오빠가 아니었으면 난 이미 죽은 사람일 게요. 구명은인 오빠를 따라 이 놈 지옥에서 훌 달아났으면 좋겠소.”   병수는 은녀를 꼭 끌어안고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 옷이랑 먹을 걸 물동이에 넣어가지고 나오오.”   “알았소. 내 인차 갔다가 나올게.”   병수는 우물터와 좀 떨어진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 숨어 우물터에 은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은녀가 사위를 둘러보면서 눈을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와 함께 우물터에 나타났다.   병수와 은녀는 골목에 들어가 옷을 보에 싸안고 희읍스름한 달빛이 깔린 골목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은희는 병수를 따라 눈길로 달아나면서 말했다.   “오빠, 금방 집에 돌아가니까 한영감이 ‘잃어버린 소를 찾았는데 병수를 잃어버려 큰일 났다.’고 하더군요.”   “누가 그 개소리를 믿어. 나를 한뉘 마차몰이꾼으로 부려 먹자는 게지.”   병수는 은녀의 손을 잡고 더 빨리 달으면서 물었다.   “철규는 무사하오?”   은희는 숨이 차 할딱거리면서 대답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물매를 맞았습니다. 영팔이랑 죽여 버리자고 하니까 누가 소를 먹이겠는가 하면서 철규를 잡아두고 덕팔이 삼촌이랑 잡자고 합데.”    병수는 닫다가 주춤 멈춰 섰다.   “아차, 한 가지 잊었다. 이대로 달아나지 말구 한영감 집에 불이라도 콱 싸질러 놓을 거 그랬다.”   은희는 병수의 손을 잡아챘다.   “그만두오. 헌병들이랑 자위대원들이랑 욱실거리는데 붙잡히겠소.”   병수는 우시장 저 멀리 한길수의 집 쪽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은녀의 손을 잡고 다시 달아났다.   은녀는 달아나면서도 속으로 고향마을에 있는 엄마와 은희가 근심됐다.   (엄마랑 무사한지 모르겠다. 빨리 가서 같이 간도로 달아나자고 해야지)   한편 은희는 고향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를 뒷산 기슭에 장례지낸 후 날마다 악몽 속에서 허덕이었다.   은희는 심란한 김에 이날 밤에도 내일 밥을 지을 물을 더 길으려고 일어나 몸채 부엌간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 더듬으로 물동이를 더듬어 팔에 끼였다.   “누구야!”  위방 밀창문이 열리면서 한길수가 반쯤 몸뚱이를 일으키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이 달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은희예요.”   “이 밤중에 뭘 떨꺽거리느냐? 잠을 깨우면서 성가시게. 에이 참.”   “물을 긷자고 그래요.”   “음, 알았다. 내일부턴 우리 잘 때 떨꺽거리자 말아라.”   탁 미닫이문이 닫기는 소리 나고 두덜거리는 소리와 도도고리는 소리가 엇바꿔 들리었다.   은희는 머리채를 뒤로 젖히고 물동이를 팔에 끼고 바깥으로 조심조심 나왔다. 그러나 연 며칠 자위대원을 시켜 은희 뒤를 밟게 해보아도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자 월선이도 심드렁해져 오늘은 미행을 그만두게 했다.   그녀는 희읍스름한 달빛과 눈을 사뿐사뿐 밟으면서 골짜기 막치기에 있는 우물가에 다가갔다. 가을바람에 나무들이 무섭게 비명을 질러 공포를 자아냈다.   우물가에서 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푸려고 바가지를 우물에 넣던 은희는 처량한 반달이 비껴있는 우물을 들여다보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났다.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할 바에는 이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모든 게 끝이겠는데.)   그런데 샘물에 비낀 달 옆에 총총 박힌 뭇별들이 차디찬 샘물에 잠겨 추위에 바르르 떨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그 순간 몇 해 전 여름에 은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우물가에서 성칠 오빠가 은녀의 눈을 두 손으로 싸쥐고 누군가 알아 맞추라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때 오빠는 은녀가 떠준 샘물을 두 바가지나 마시고 시원하다고 하면서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지. 호, 오빠, 이젠 다시 볼 것 같지 않소. 성칠 오빠, 상호는 지금 어데 있소?”    어려울 때마다 자기네 일가를 도와 나서던 성칠 오빠가 이 순간 더욱 그리웠다. 기실 성칠과 은희는 열대여섯 살이나 차 있기에 기실 삼촌 벌이 됐지만 어려서부터 성칠이 그렇게 습관을 시켜 은녀나 은희나 다 오빠라고 불렀고 상호는 형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은희는 착잡한 생각에 잠겨 흑흑 흐느껴 울면서 바가지로 우물속의 달과 별들이 담긴 물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퍼서 물동이에 담았다. 물동이안의 달과 별들이 점점 물동이 아구리 쪽으로 올라와 차 넘쳤다.    은희가 물동이안의 달과 별들의 우에 바가지를 동동 띄워놓고 물동이를 이려고 할 때였다.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났다.   은희가 머리를 돌려보니 골짜기에서 난데없는 검둥이가 뛰어나왔다.   “아니, 검둥아, 네가 어떻게 돼 왔니?”   검둥이는 은희의 치맛자락을 물어 당기더니 끼깅거리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때 뒤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리었다.   “이게 은희 아니냐?”    나직한 부름소리가 들리었다.   (아니, 이게 성칠 오빠의 목소리가 아닌가!)   몸을 돌리는 순간 은희는 자기 앞에 두 사내가 달 빛 속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상호!”   은희는 놀라 풀렁 물앉았다.   “쉿~”   상호가 식지를 입에 대면서 은희를 안아 일으키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옆에는 성칠 오빠가 서있지 않는가?   은희는 대번에 상호오빠의 품에 와락 안기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정말 왔구먼. 이게 꿈이요, 생시요?”   “그래 이건 생시요.”    상호는 은희의 파도치는 어깨를 다독이면서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샘물터에 오면 너를 만날 거 같아 여기 왔다.”   은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성칠을 쳐다보았다. 뒤이어 은희는 상호의 품에 안기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마구 쳐댔다.   “어데 갔다 이제야 왔니?”   “사냥하러 갔지.”   은희는 여기저기 살피면서 서있는 성칠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빠, 오빠가 사라진 후 저 한길수가 오빠네 집을 빼앗아 림산파출소라는 걸 들여앉히고 일본 헌병들이 들어 살고 있소.”   “그랬니? 여긴 얘기하기 위험하니깐. 저쪽 숲 속으로 가자.”   성칠은 물동이를 안고 상호네 오누이를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오빠, 그간 한길수란 놈은 별의별 악독한 짓을 다했소. 흐 흑 흑.”   은희에게서 그간 고향마을에 있은 일들을 죽 들은 성칠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 원수는 꼭 갚아야 한다.”   성칠은 은희에게서 한길수의 영월동 토성안집의 형편도 묻고 나서 말했다.   “넌 아무 일도 없은 듯이 물동이를 이고 토성 안에 들어가라. 그 다음 철규와 함께 이렇게 해라.”   성칠은 사위를 둘러보더니 은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예~ 알았소. 그렇게 할게.”   은희는 물동이에 물을 퍼 담아 이고 허연 눈 위에 깔린 희읍스름한 달빛을 밟으면서 토성 안 집 쪽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성칠과 상호가 우물터 옆 소나무숲속에서 보복행동계획대로 손을 쓸 준비를 다그칠 때다.   우물터 아래쪽에서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는 소리가 들리었다.   “쉿!”   소나무숲 속에서 성칠이 입에 식지를 가져다대면서 허리춤에서 모젤권총을 쓱 뺐다. 상호는 시퍼런 비수를 빼들었다.   저쪽에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쪽으로 빠드득빠드득 계속 걸어오면서 도란도란 말까지 했다.   “은희는 늘 저녁에 여기로 물 길으러 올게오.”   “글쎄 말이오. 한길수나 영팔이나 이렇게 추운 날에 여기로 오겠소?”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   소나무 뒤에 몸을 숨긴 상호는 성칠에게 다가서면서 “어째 은녀 누나 목소리 같소.” 하고 나직이 말했다.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샘물터에 눈길을 돌렸다.   두 검은 그림자가 샘물터에 가까워 올수록 여자의 목소리는 더 똑똑히 들리었다.   “여기서 은희를 만나면 얼마나 좋겠소?”   남자가 하는 말소리.   “은희를 만나 고향 마을 정황을 안 후 엄마를 만나는 게 옳소.”   분명 은녀의 목소리 아니겠는가.   상호는 성칠에게 “은녀 누나요." 하고 말하고 나서 비수를 허리춤에 꽂아 넣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성칠은 상호의 팔을 걷잡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휴-휴-   소나무가 설레는 소리 밖에 다른 동태가 없었다.   “나가봐라. 옆의 사내를 주의해라.”   상호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소나무 숲에서 나가면서 조용히 불렀다.   “누나, 은녀 누나.”   “엇, 누나라니?”   다가오던 남녀가 주춤 멈춰서더니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누나, 상호요.”   “뭐라고? 상호?”   은녀는 품에 안았던 보꾸러미를 툭 떨어뜨리더니 이쪽으로 달려왔다.   은녀와 상호는 달려 나가 와락 끌어안았다. 뒤에 선 사내도 다가왔다.   “누구요?”   그러자 저쪽 사내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상호야, 난 병수다.”   성칠도 슬금슬금 소나무숲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밟으면서 나갔다.   “저건 누구냐?”   은녀의 물음에 상호가 나직이 대답했다.   “성칠 형님이오.”   “오빠라고? 오빠가 살아 있어?”   “그래, 난 살아있다.”   성칠은 성큼성큼 걸어 나가 은녀와 병수를 일일이 손잡아주었다.   “너희들이 얼마나 고생했니?”   은녀는 너무 기쁨과 설음에 마음이 설레어 떨어뜨린 보꾸러미를 주어 안더니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성칠은 은녀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말했다.   “됐다, 금방 은희도 여기 왔다가 갔다. 다시 오지 않을 거다.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 소나무숲속으로 들어가 이야기하자.”   뜻밖에 상봉한 그들은 소나무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간 서로들 있은 이야기를 했다.  성칠은 은녀와 병수  말을 듣고 나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간도로 무턱 대고 어떻게 간다고 그래?”   병수는 초신 감발한 발로 소나무 밑 둥을 탁 걷어차면서 성칠을 보고 물었다.   “간도에 가지 않으면 여기서 어떻게 사오?”   “우리 독립군에 들어가야 산다.”   “독립군에?”   병수는 놀란 나머지 소나무 숲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쳤다.   성칠이 식지를 입에 대고 사위를 둘러보자 병수가 물었다.   “형님과 상호랑 독립군에 들어갔소?”   “그래. 너희들도 독립군에 들어가 총을 쥐고 일본 놈들과 한길수 같은 개다리들을 이 고향에서 몰아내야 잘 살 수 있다.”   은녀는 소스러치 듯 놀라했다.   “상호야, 너도 독립군이냐?”   상호가 머리를 끄덕이자 생각 밖으로 은녀는 상호의 손으로 잔등을 톡톡 쳤다.   “참 장하다! 우리 철천지원수 한길수를 처단해 우리 원수를 갚아라!”   이윽고 병수는 이렇게 말했다.   “말몰이군도 독립군에서 받아주면 들겠소. 그런데 은녀랑 은희랑은 고향마을에 둘 수 없소. 한뉘 어떻게 한길수의 종살이를 하게 내  버려두겠소? 여자들도 독립군에서 받았으면 좋겠는데.”   성칠은 선뜻이 대답했다.   “독립군에 들어오라. 독립군에도 여자대원이 할 일이 가득하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총도 쏴야지.”   성칠은 은녀에게 물었다.   “독립군 소대장 진달래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니?”    은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들었소. 그 돌멩이를 잘 뿌리는 처녀장군 말이 아니오?”   “맞다. 지난 번에도 나를 구할 때 돌멩이로 일본 놈과 자위대 놈들을 여럿을 까 눕혔다.”   “나도 진달래 언니처럼 독리군 여대원이 되겠소.”   성칠은 은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좋다. 우리 힘을 합쳐 우리 고향마을에서 한길수와 야마모도 소장 같은 일본 놈들을 몰아내자. 원수를 꼭 갚고야 말자.”    뒤이어 그들은 성칠의 영솔 하에 은희가 알려 준대로 엄창렬의 산소로 떠나갔다. 그들은 눈이 무릎까지 펑펑 빠지는 뒷산 비탈로 올라갔다.   한참 후 아버지 산소에 이르자 상호와 은녀는 아버지 산소에 절을 세 번 올리고 나서 풀쩍 엎드려 엉엉 통곡 쳤다.   성칠이 다가가 은녀와 상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여기도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그들은 다시 눈보라를 무릅쓰고 담대하게도 은녀의 집으로 내려가 삽작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쌩쌩 휘몰아쳤다.    한길수나 응삼이 지어 야마모도소장도 이 눈보라치는 야밤삼경에 성칠과 상호 그리고 은녀와 병수가 이 마을에 숨어들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긴 반년 넘어 영월동의 성칠과 덕팔, 동욱, 상호네 집에 넓은 그물을 치고 밤낮없이 지켰지만 그들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놈들은 겨울에 접어들자 몇 달째 경계가 허술해졌던 것이다.    한편 야밤삼경에 명순은 은녀와 이태 남짓이 사라졌던 상호를 꿈결에서처럼 만나자 부둥켜안고 엉엉 운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바깥에서 보초를 서는 성칠은 그들 삼모녀의 통곡소리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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