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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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54 ]

1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댓글:  조회:2141  추천:0  2013-09-18
이제 래일이면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의 하나인 한가위(추석)이다. 한가위날의 어원은 가배일(嘉俳日)이다. 김매순(金邁淳)의 《렬양세시기(冽陽歲時記)》 “8월 중추(中秋)”편에는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였다. 이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이라도 례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夜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고 기록되여있다. 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인만큼 먹을것이 가장 풍성하다. 또한 오랜만에 일손을 놓고 성묘를 하고 가족, 친척, 마을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과 인정을 나누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서도 우리 민족의 한가위날의 세시풍속은 크게 달라진바가 없다. 필자의 어린 시절 한가위날이면 집집마다 햇쌀로 송편을 만들고 햇과일, 소고기 등 정성껏 음식을 마련한후 조상의 무덤을 깨끗이 벌초하고 제사를 지냈다. 또 이날이면 마을에서는 운동회를 열었는데 그네, 널뛰기, 씨름 등 민속경기를 치르면서 온 마을이 들썽들썽했다. 하지만 아무리 풍성한 가을이 와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 우리 민족의 문화는 예로부터 벼농사 중심의 농경문화로서 협동과 근면, 상부상조의 나눔문화가 발달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세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부녀자의 인덕을 말할 때 쓰이였다. 부녀자들은 밥을 지을 때 식구수에 세몫을 덤으로 더했는데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웃들과 언제든지 나누어 먹기 위해서였다. 또 “좀도리”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옛날 어머니들이 밥을 지을 때 쌀을 미리 조금씩 덜어내 부뚜막에 있는 단지에 모아두었다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마을사람들은 모두 형제처럼 화목했다. 이웃과 떡을 나누고 김치를 나누었는데 바자굽을 넘어갔던 접시는 빈 접시로 돌아오지 않고 무언가 담겨져 돌아왔다. 우리는 요즘 매일 꽤나 풍성한 “한가위날”을 맞으면서 살고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풍성한 계절”이 와도 불우하고 소외된 삶을 살면서 그늘에 가려있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독거로인가정, 중환자가정, 장애자가정, 소년소녀가장가정… 필자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온정을 지닌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면서 우리 민족의 나눔과 배려 문화가 지금도 색이 바래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꼈다. 한철범은 도문시 장안진의 한 조선족농민으로 1992년부터 연자골을 도급맡고 60만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민둥산과 황무지에 사과배나무를 심고 락엽송을 심었다. 1998년의 어느날, 한 로인이 부모를 여읜 한 아이를 데리고 한철범이 경영하는 산장으로 찾아와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때로부터 한철범의 “애심”은 마른 장작에 불이 달린듯 타올랐다. 한철범은 2004년에 연자산장을 “애심복리원”으로 개조하였는데 지금까지 그가 부양한 한족, 조선족 로인과 고아는 60명을 초과한다. 그중 8명이 중등전문학교에, 3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한철범은 “평생 나를 따르려는 아이들이 안정된 삶을 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말한다. 연변중심혈액소에서 근무하는 박대철은 사람들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천사”로 불린다. 그는 1992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무려 44차례에 걸쳐 8800cc에 달하는 피를 헌혈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피로 생명을 되찾았는지 모른다. 박대철은 “피는 생명의 근원이고 사랑은 생명의 서광입니다. 자신의 조그마한 기여로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생명을 지켜주는것만큼 보람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고 말한다. 한철범씨나 박대철씨는 비록 가진 재부는 많지 않지만 마음의 부자인것만은 틀림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숨결이고 나눔과 배려는 일상이다. “그릇”은 물을 붓는데 사용된다. 큰 “그릇”중에 자신이 받는것에 비해 턱없이 적게 부어주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작은 “그릇”중에도 자신의것을 몽땅 부어주는 “그릇”도 있다. 한철범씨나 박대철씨는 후자와 같은 작은 “그릇”이지만 그들의 형상은 태산보다 크다.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우리 모두 숨을 고르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온정을 베푼다면 그들은 다시 일어설수 있는 지팽이와 새로운 삶의 불씨를 얻게 될것이며 우리 사회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살맛나는 사회로 거듭날것이다.
13    준비는 되였는가 댓글:  조회:1867  추천:2  2013-09-04
얼마전에 열린 전 주 보통대학교 졸업생 취업사업회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연변에 돌아온 대학졸업생은 7700여명이라고 한다. 이는 3년 사이 연변적을 가진 외지대학졸업생 총수의 30%를 넘어선 수치로 인심을 고무시키는 희소속이 아닐수 없다. 그중 6700여명이 이미 취업을 했고 올해 연변대학의 4400여명 졸업생중 64%가 취업을 했다고 한다. 또 올해 연변에 돌아올 의향을 밝힌 외지대학졸업생은 3000명 좌우라고 한다. 수자는 따분한것이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연변대학의 대부분 졸업생들이 연변에서 일자리를 찾는것을 선호하고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연변적 외지대학졸업생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것은 정말 가슴이 뿌듯한 희사가 아닐수 없다. 몇년 사이 연변은 여러 민족 인민들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거족적인 발전을 이룩하였고 또 “중국 두만강지역합작개발계획요강”과 길림성의 “선도구”전략의 깊이있는 실시 및 중국 훈춘국제합작시범구의 가동건설과 더불어 중국 두만강지역합작개발은 새로운 력사시기에 들어섰으며 연변의 발전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있다. 이에 따라 연변에서의 대학생들의 발전공간도 점점 넓어지고있다. 이는 연변적 외지대학생들이 고향행 유턴을 선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일것이다. 그리고 대도시에서의 경쟁이 점점 치렬해지면서 립지가 줄어들고 대도시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10년후면 연변건설의 주역이 될 우리의 금쪽같은 “자식”들이 고향의 품을 찾아오니 “어버이” 된 연변인민들로서는 반갑지 않을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뜨겁게 포옹할 준비가 되여있는걸가? 우선 우리는 그들에게 공평하게 경쟁할수 있도록 균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히 수의(随意)성이 강한 공무원, 사업단위의 면접시험에서 “안면보기”는 철저히 근절되여야 한다. 공평한 경쟁환경은 대학생들이 고향에 안주할수 있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며 고향인민들이 그들에게 안겨주는 가장 값지고 푸짐한 선물로 될것이다. 다음 정부차원에서 여러가지 방식의 대학졸업생초빙활동을 빈번하게 조직하여 취업정보와 구직경로를 한층 넓혀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대학졸업생에 한해서는 기능강습반에 참가시키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졸업생은 우선적으로 정부에서 개발한 공익성일터에 배치해 전사회가 대학졸업생취업을 관심하는 량호한 국면을 형성해야 한다. 연변에 돌아온 대학생들도 어려운 취직환경에 대비해 눈높이를 낮추는 심리적준비를 갖추어야 할것이다. 중국 대학졸업생들의 취업추이를 살펴보면 5년전까지만 하여도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국유기업, 국가기관, 사업단위 순이였으며 연해개방도시에서 취업하는 학생수가 근 68%에 달했으나 2011년과 2012년에 이르러 중, 서부 지구에서 취업하는 대학졸업생수가 이미 동부를 초과하고 민영기업에서 취직하는 비례도 해마다 상승하고있다. 2013년 국가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보통대학교 졸업생 규모는 699만명으로서 2012년에 비해 19만명이 증가한것으로 된다. 이런 준엄한 취업현실에 비추어 우리의 대학생들도 큰 뜻을 품고 향진기업, 민영기업 등 평범한 일터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을 심리적준비가 되여있어야 한다. 요즘 농촌지역을 취재하다보면 시골지역에서도 고향에 돌아와 창업하는 대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날수 있는데 그들의 용기는 정말 가상하지 않을수 없다. 다음 대학생창업도 좋은 취직선택이 아닐수 없다. 지금 대학생창업은 갈수록 사회의 인정을 받고있으며 정부차원의 창업지원도 갈수록 완벽해지고있다. 현재 국내의 여러 은행들에서는 자주적으로 창업하는 대학생들에게 5만원가량에 달하는 낮은 리자의 소액대부금을 발급하고있으며 대학졸업생들이 개체경영에 종사하면 1년간 개체공상비와 일체 세금을 면제해주는 우대정책을 실시하고있다. 대학생취업난을 완화시키고 해결하려면 경제발전에 의뢰해야 할뿐만아니라 체제개혁과 관념갱신도 병행되여야 한다. 대학생들의 취업난을 해결하는것은 체계적인 프로젝트로서 정부, 사회, 학교와 학생 자신 등 여러 면의 공동한 노력을 수요한다. 고향을 찾아온 대학생들은 정확한 취업관념을 수립함으로써 오직 개인의 리상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긴밀하게 련계시킬 때 사업에서 성공할수 있고 인생의 꿈을 실현할수 있을것이다.
12    그리운 동네골목길 댓글:  조회:2291  추천:3  2013-08-09
그리운 동네골목길   김인덕   우리 마을은 백여호가 넘는 꽤 큰 마을이였다. 게딱지만한 초가집들이 질서없이 옹기종기 들어앉다보니 달이 없는 밤에 오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보면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동네 골목길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어린 령혼을 품어주기에는 족했다. 세상과의 소통이 시작된 동네골목길은 나의 동년과 함께 아련하게 간직되여있다. 동네골목길 풍경의 백미는 울바자라고 할수 있다. 여름이면 열콩줄기가 푸른색으로 울바자를 장식했다. 남자애들은 열콩잎을 따다가 견장처럼 어깨에 달고 군대놀이를 즐겼고 녀자애들은 삼삼오오 바자굽그늘에 앉아 공기놀이를 즐겼으며 심심한 동네 나그네들은 길을 가다가 무심하게 열콩잎을 따다가 탕 내리쳐 소리를 내는것으로 울적한 심사를 달랬다. 울바자는 또 잠자리들의 천국이였다. 애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잠자리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소곰재(잠자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 나는 큰 애들한테서 그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매우 의아해했다. 먼데 가면 살겠는데 왜 죽는다고 할가. 나는 일곱살에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마당앞 울바자를 떠나 마을남쪽 학교곁에 있는 유치원에 갔다. 개학 첫날, 박정희선생님(후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유명 아나운서로 일함)이 모주석의 어깨가 교실벽보다 더 넓다고 하셨다. 여태까지 범인들의 어깨만 보아오던 나로서는 신기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다. 열둬살때부터 남자애들은 쇠파이프로 만든 화약총 하나쯤을 갖는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날 밖에 눈이 내리는지라 나는 혼자서 집에서 딱지를 접고있는데 웅걸이와 경철이가 화약총 한자루씩 들고 참새를 잡으러 가자고 하였다. 우리 셋은 온 오후 동네골목길을 누비며 참새사냥을 했지만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무렵 저쪽 바자굽에 웅크리고있던 경철이가 갑자기 “어이구.”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와 웅걸이가 웬일인가 경철이한테 다가가보니 경철이가 두손으로 배를 붙들고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총구를 배에다 대고 총을 손질하다가 오발했던것이다. 마을병원에 가보니 경철이의 배에 피딱지가 한방울 말라붙어있었는데 결국 현병원에 도착하기도전에 숨지고말았다. 어느덧 초중 2학년이 되였다. 나보다 두살 많지만 심한 뇨독증을 앓는 성국이는 우리 학급에 류급되였다. 어느날 점심, 나와 성국이는 학교앞 둔덕에 앉아있었다. 성국이는 자신은 예술학교에 진학하는것이 꿈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무슨 꿈을 갖고있는가 물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세상에 대학이란게 있는줄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멀거니 마을앞에 펼쳐진 논을 바라보았다. 대지는 새봄의 기운으로 약동하고있었다. 모내기를 위해 방금 갈아엎은 논에는 물이 넘실거렸고 들에서는 귀맛 좋은 종달새소리가 들렸다. 이때 한반에 다니는 태만이가 논 중간에 있는 전선대로 기여오르고있었다. 전선대꼭대기에 있는 새둥지를 들춰 새알을 얻기 위해서였다. 옆에 있던 성국이가 “저놈 봐라. 아버지가 전공일을 하더니 저놈도 전공일을 할셈인가. 얼마나 위험한데…” 전선대 꼭대기까지 오른 태만이가 한손을 전기줄우로 뻗어 새둥지에 넣으려는 찰나 고압전압에 감전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돌멩이처럼 논바닥으로 추락했다. 나와 성국이는 정신없이 태만이한테로 달려갔다. 성국이는 정면으로 코를 논바닥에 틀어박고 대자로 꽂혀있었는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고있었다. 결국 태만이는 목숨을 건졌지만 감전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성국이가 학교로 돌아오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넌 공부를 잘하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중점고중에 입학할거야.” 나는 열여섯살에 운이 좋게도 중점고중에 입학하게 되였다. 어머니는 뻐스에 오르려는 나에게 말씀했다. “휴, 호구까지 옮겨가게 됐으니 넌 이젠 우리 집 사람이 아니다.” 일자무식인 부모님들이 나더러 공부를 잘해 대학에 가라는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셔 못내 서운했었는데 이제 부모님들을 떠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거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여있었다. 오불꼬불한 동네골목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고향을 떠났다. 물론 가로등이 환히 비추는 도회지의 골목길에선 넘어질 념려는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도회지에서 살면서 오늘도 오불꼬불한 인생의 골목길을 무수하게 만들어가고있지 않는가. 고향의 울퉁불퉁한 동네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기껏해야 발목이 삐끗하겠지만 도회지의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마음에 상처를 입어 치유하기 힘들다.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동요가 맞는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먼데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왔지만 남은것이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살기 힘들다는 핑게로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들에게 생전에 챙겨드린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곁에서 살았더라면 랭수 한 대접이라도 올렸을텐데. 누구를 원망할것인가. 어디에 가서 안위를 얻을것인가. 이젠 고향에 가도 어제날의 고향이 아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텅 비여있는 고향에 내가 먼저 한몫 했으니 오래도록 도회지에서 상처를 입으며 살아야 할가부다.
11    환경보호와 투자유치 댓글:  조회:1721  추천:1  2013-08-07
상해, 절강과 이웃한 항주만(杭州湾)은 우리 나라 동해어업자원의 중요한 기지였지만 지금은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여론의 구설수에 오르고있다. 국가환경보호부 “2012년 중국환경보호상황공보”에 따르면 항주만의 4등급 수질(수질이 극히 차한 등급)비례가 거의 100%에 달해 우리 나라 9개 중요한 해만(海湾)가운데서 꼴찌를 기록했다. 항주만연안의 어민들에 따르면 지난 세기 9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한척의 어선마다 몇천근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을 어획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칼치 등 누구나 익숙한 재래어종들은 종적을 감춘지 오래고 작은 물고기들만 드문드문 건져올리는데 그것마저도 전부 사람들은 전혀 먹을수 없는, 물고기의 사료용이라 한다. 하여 이 지역 어민들은 대대손손 이어오던 생계수단을 부득불 포기할수밖에 없게 되였다. 항주만연안에 자리한 210여개의 기업중 전기도금, 날염 등 다수의 환경피해기업들이 해마다 방출하는 근 200만톤에 달하는 공업페수들이 해양오염의 주범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소형기업들은 주말이나 어두운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염물질을 바다에 방출하고 대형기업들은 깊은 바다에 배수관을 묻어 “정정당당하게” 방출한다. 2013년, 절강성정부의 “항주만산업발전기획”은 항주만을 록색생태지구로 건설하는것을 목표로 저탄소, 고효익,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을 항주만의 “미래산업발전방향”으로 제정하였다. 하지만 “경제발전 제1주의”론리에 밀려 화학공업기업들이 버젓하게 항주만에 대거 밀려들기 시작했고 “청사진”은 물건너가게 되였다. 그 원인은 지방정부의 일부 지도자들이 GDP 성장이야말로 승진과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굳게 믿고 가시적인 경제실적에 매달리면서 환경보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때문이다. 환경파괴가 인간에게 주는 고통은 막대하다. 중국질병통제관리쎈터가 수년간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수질환경 및 종양사망지도집”에 따르면 “지도집”에 명부를 올린 지역들의 암사망률은 30년 사이 14~30배로 폭증했으며 인구대비로 볼 때 전국 평균보다 2배나 높은 암사망률을 기록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정부도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오염기업을 퇴출시키고있으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공장건설을 밀어붙인 일부 관리들을 해임시키고있다. 주지하다싶이 연변의 삼림면적 점유률은 80.3%로 세계 5대 천연약창고로 불리고있으며 1980년 유네스코로부터 중국에서 처음으로 “생태권보호구역”으로 지정되였다. 지금까지 연변이 이렇듯 좋은 청정지역으로 남을수 있었던것은 우리의 지도자들과 지역주민들이 환경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또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 로무송출, 의약산업 등 무공해산업을 기둥산업으로 제정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했기때문이다. 항주만의 교훈이 우리에게 시사하다싶이 “먼저 개발하고 후에 다스린다”는 “경제발전 제1주의”론리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물론 경제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신성장동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산업초기의 신성장동력은 자본이나 자원과 같은 물질적요소였지만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점차 지식과 문화와 같은 정신적인 요소로 바뀌고있다. 우리는 연변의 실정에 근거하여 풍력, 태양에네르기, 의약산업, 서비스, 로무송출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것이다. 환경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것이기도 하지만 더구나 후세의것이기도 하다. 후세에게서 환경을 빌려쓸 권리는 우리에게는 없으며 환경을 파괴하는것은 후세에게 죄를 짓는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에게는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에 힘을 쏟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것이다.
10    왜 애니메이션산업인가 댓글:  조회:2067  추천:0  2013-07-26
중국애니메이션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신흥산업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있다. “11.5”기간 우리 나라에서는 그림영화(动画)영화 78편, 텔레비죤그림영화 1266편을 창작함으로써 “10.5”기간보다 5배 성장하고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만화생산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또 2012년말 기준으로 애니메이션시장규모 685억원, 해외수출로 5억 7000만딸라의 외화를 창출함으로써 문화산업중의 주축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애니메이션이란 동작이나 모양을 조금씩 달리한 그림이나 인형을 련속시켜 마치 살아있는것처럼 보이게 촬영한 영화 또는 그 영화를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애니메이션은 그림(动画)과 만화(漫画)를 아우르는 합성어로 그 산업은 극장용 영화, 비디오, 텔레비죤, 핸드폰 및 게임, 서적, 어린이캐릭터완구, 어린이식품, 어린이문구를 비롯한 촘촘하고 방대한 산업사슬을 이루는것이 특징이다. 2012년 7월, 국가문화부에서 “‘12.5’시기 국가애니메이션발전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하면서 중국 전역에서 애니메이션활성화바람이 거세차게 불고있다. 게임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상해와 북경은 물론 광주, 항주, 상주, 소주 등 여러 지방도시들에서 자금지원, 산업단지조성, 인재양성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애니메이션 육성책을 펼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각축전에 안깐힘을 쏟고있다. 그렇다면 연변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연변에는 애니메이션제작회사가 나타났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속에 많은 회사들이 사라지고 고급인력들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버린 상태이다. 그리고 생존해있는 몇몇 애니메이션제작회사들도 규모가 작아 산업이라고 평가하기엔 미흡하며 자발적인 발전단계에 처해있는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전망이 어둡기만 한것은 아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독특하고도 풍부한 조선족특색의 전통문화가 있다. 이는 우리가 애니메이션산업을 발전시킬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토대로 된다. 다음 우리에게는 지역적우세와 언어적우세가 있다. 우선 지역적우세에서 연변은 애니메이션산업이 발전한 한국, 일본과 가까운 이웃에 있고 이러한 나라들과 문화교류가 활발하다. 언어우세는 국내는 물론 한국, 조선 등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인재를 유치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다. 요즘 도문경제개발구에 입주한 두개의 토종애니메이션회사가 성장가도를 달리고있다는 성공사례가 이 점을 잘 실증해준다. 이 두 기업은 각각 몇십명에 달하는 외국의 인재를 영입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있는데 업무량이 너무 많아 전체 주문량의 70%도 채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금 자체로 몇십명에 달하는 지방의 전문인재를 육성하고있는데 2년후면 자체의 애니메이션작품을 제작할 타산이라고 한다. 연길시의 발빠른 행보도 우리를 고무시키고있다. 연길시정부의 노력으로 항주국가애니메이션게임공공봉사플랫폼유한회사는 앞으로 6년의 시간을 들여 연길시에 네트워크오락, 게임, 레저를 일체화한 국제애니메이션게임가공제작봉사외주기지와 국제전자경기운동중심을 건설하게 되는데 완공되면 생산액 20억원을 창출하게 된다. 이젠 연변의 애니메이션산업발전을 위해 정부가 진두지휘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정부가 중장기발전전략을 세우고 국가의 정책과 자금을 쟁취하여 애니메이션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면 우리 연변도 애니메이션산업의 메카로 떠오를 날도 멀지 않을것이다.
9    게릴라정원사 댓글:  조회:1777  추천:0  2013-07-24
얼마전, 저녁식사후에 베란다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니 두 중년사나이가 어두움을 타 잔디가 깔린 아빠트정원을 삽으로 파헤치고있었다. 작년에 1층에 사는 입주민들이 아빠트남향 외벽으로부터 5메터가량 정원을 파헤쳐 밭을 일구고 남새를 심더니 이젠 두 사나이가 한발 더 나가 5메터 바깥을 파헤쳐 밭을 일구고있는판이였다. 이러다간 2층, 3층… 7층의 입주민들까지 가세한다면 옹근 아빠트정원이 남새밭으로 “개간”될 날도 멀지 않을것 같다. 지금 미국, 일본이나 아프리카, 유럽 지역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많은 게릴라정원사들이 활약하고있다. 게릴라정원사들은 록지를 찾아보기 힘든 현대의 도심속에서 “게릴라”방식으로 록지를 만드는 운동을 펼치고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밤마다 삽, 꽃씨, 물통 등으로 중무장하고 게릴라전술을 사용하듯이 비공식적으로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채로 방치된 공유지나 사유지에 화단을 만드는것이다. 이를 통해 원래는 지저분하고 흉물스럽던 장소가 정원으로 바뀌고 시민들은 평소 멀어져가고만 있는 자연을 만나게 된다. 게릴라정원사들은 시민들이 즐거워하고 더 나아가 도시의 분위기가 바뀌는것에 만족해한다. 기차를 타고 로씨야 극동지역을 유람하다보면 가없이 펼쳐진 기름진 평야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무연한 밭 한가운데 가담 한그루 또는 몇그루의 나무가 서있는것을 볼수 있다. 방관자가 보기에도 대형농기계를 사용하는 농부들에겐 그 나무들이 매우 거치장스러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헌데 농부들은 왜 그 나무들을 수호신처럼 아끼면서 베여버리지 않을가. 나무 한그루때문에 에돌아가는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수림이 바다처럼 넓은 극동지역에서 나무 한두그루를 베여버린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것도 아니고 자연도 파괴되지 않을터인데… 게릴라정원사들에 비하면 우리 아빠트내 “개간자”들은 “게릴라정원 파괴사”라 지칭해도 모자람이 없다. “게릴라정원 파괴사”들을 모아산에서도 어렵잖게 만날수 있다. 모아산을 오르다보면 길 서쪽켠에 뙈기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져있는것을 볼수 있다. 거의 다 “게릴라정원 파괴사”들의 몰상식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62년 주은래총리가 연변에 시찰을 왔다가 민둥산인 모아산을 보고나서 “모아산에 신을 신기고 모자를 씌우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에 따라 초대주장 주덕해는 공청단연변주위에 모아산에 식수할 지시를 내렸다. 따라서 연길시안의 청년들과 기관의 간부들이 총동원되여 모아산식수에 나섰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모아산은 사철 푸른 소나무로 새 단장을 할수 있게 되였다. 그런데 지금은 모아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나무가 병들면 가차없이 베여내는 진풍경만 보일뿐이다. 모아산수림 곳곳에는 몇헥타르씩 되는 대면적의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이 적지 않다. 이런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이 원래 있었는지 아니면 후에 나무를 찍어 개간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30년 세월은 이렇게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으로 방치된줄로 안다. 우리 나라에서 페경환림(退耕还林)정책을 시행한지도 어언 30년 세월을 훌쩍 넘어섰다. 하여 시골의 깊은 수림속 농경지들이 삼림으로 변한지도 벌써 강산이 세번이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지났으나 모아산의 농경지, 과수원, 양계장만은 요지부동이다. 그래도 모아산에 있는 농경지나 과수원은 약과다. 지금도 모아산에는 해마다 덩치가 큰 건물들이 한채씩 들어서고있다. 올해에도 모아산으로 향하는 동쪽켠에 산장 비슷한 큰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모아산으로 통하는 서쪽켠 큰 농경지 중간에는 공사중이니 곡식을 심지 말라는 경고패말이 버젓이 꽂혀있다. 아마도 대형건물을 지을 타산인것 같다. 물론 이런 건물들이 들어선 자리가 원래는 농경지였던것은 사실이나 왜 그 자리에 나무를 심지 않고 오히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건물을 지을가. 모아산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여야 한다. 정부의 몫도, 돈이 있는 개인의 몫도 아니다. 그리고 모아산은 온통 수림으로 뒤덮여야 명실공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올수 있는것이다. 우리에게도 게릴라정원사정신을 소유한 지도자들과 게릴라정원사들이 하루빨리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또다시 50년 세월이 흘렀을 때 모아산 전체가 울창한 수림으로 바뀐다면 후대들에게 얼마나 푸짐한 선물이 되겠는가.
8    무한경쟁시대와 인성교육 댓글:  조회:3156  추천:1  2013-06-05
요즘 자살, 살인, 폭력, 유해음식 등 인성을 상실한 악성사건들이 빈발하면서 사회에 불안을 조성하고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입시와 성적 위주의 교육이 인성의 상실에 큰 몫을 하고있다는것에 입을 모으고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태여나자마자 성공을 위한 자녀교육프로젝트를 계획하는데 그 목표를 명문대학 진학에 두는 경우가 많다. 자식 한두명을 기르는 대부분의 가정들에서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면서 귀한 내 자식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경쟁에서 밀려서는 안된다는데 집착한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입학하여서부터 1등을 위한 “수난시대”를 맞이하는데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면서 책가방이 무겁고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무겁다. 필자의 고중시절, 같은 학급의 한 동창생이 현소재지에서 수석으로 연변1중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그 동창생이 학급에서 1등을 따내지 못하게 되자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현소재지성의 한 학교에 전학시켰는데 목표는 전교 1등이였다. 그런데 그 동창생이 현소재지의 고중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한 작은 진의 고중에 전학시켰다. 결국 그 동창생은 대학입시 첫해에 미역국을 먹고말았다. 학교성적이 사회에서의 성공과 관련이 적다는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버드대 졸업생 95명을 대상으로 수석 졸업생과 나머지 학생들의 사회생활을 비교해본 결과 두 집단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즉 수석졸업자나 그렇지 않은 학생이나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은 비슷했다. 이는 학교성적이 사회적성공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것을 의미한다. 교원이나 학원강사가 주는 “알약”만 삼키는 법만 알았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간판만 믿고있다가 큰코 다치게 된다. 또한 가정에서 자기 중심으로 생활하던 아이들은 자생력이 없이 사회에 나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심히 불만을 가지고 리성적인 교육을 받고서도 비리성적인 경쟁의 주역이 되기도 하고 악성사건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악성사건의 공통점은 사건의 대상자가 인성검사에서 “락제점수”를 맞고 “관심대상”으로 분류되거나 혹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것이다. 인성과 정서능력이 낮은 아이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격하게 반응하고 모든것을 싫은것과 좋은것으로 판단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줄 모른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리해할수 있다면 폭력은 필요없다. 인성과 감정이 순화된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성, 감성 교육을 리성교육과 똑같은 비중을 두고 중시해야 한다. 인성교육의 덕목은 신뢰, 존중, 책임, 공평, 봉사정신이다. 현대가정교양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양을 받는자로 하여금 은혜에 감사하고 행복을 아낄줄 알며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사람인지 인식하는 긍정적 가치관을 지니게 하는것이여야 한다. 인성교양에서 부모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아인식, 자신감, 소속감 등을 키워주어 세상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또한 미술, 음악, 체육 활동 등 직접체험과 독서 등 간접체험을 통해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을 키워줌으로써 남들이 만들어놓은 성공의 틀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해야 한다. 부모들은 우선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는 일을 하는 일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음악을,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는 미술을,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는 운동을 하도록 뒤받침해주어야 한다. 에디슨은 8살에 입학하였는데 공부시간에 엉뚱한 짓만 골라 하여 문제아이로 점찍혀 석달만에 퇴학당했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이 좋아하는 과목부터 가르쳤고 에디슨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도록 했다. 에디슨은 84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발명가로 되였다. 부모들은 현대문명시대에 “인공화합물”을 첨가하여 자식을 인재로 속성시키려는 옅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리성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며 1등은 상대적이며 한시적이며 인간은 자기의 삶을 살기 위해서 태여난 사회적동물임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7    중국식 길 건너기 댓글:  조회:2737  추천:2  2013-02-27
요즘 행인들과 차량들의 중국식 길 건너기가 세간의 화제로 구설수에 오르고있다. 필자는 한겨울 제일 추운 날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출퇴근을 도보로 하다보니 중국식 길 건너기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얼마전 연변일보사앞 네거리에서 맞띄운 일이다. 내가 위치한 맞은쪽에서 한 녀성이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소학생 2학년쯤 되였을 딸아이의 손목을 쥐고 길을 건너오자 함께 서있던 행인들이 우르르 실북 나들듯 오가는 차량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오는것이였다.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위태하게 급히 길을 건너온 그 녀성이 아이한테 하는 당부가 참 가관이다. “넌 절대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길을 건너서는 안돼. 알았어?” 요즘 적지 않은 행인들은 생명을 초개처럼 여기는것 같다. 신호등을 무시하는 그들은 유한한 생명을 무한한 차량의 흐름속에 선뜻 헌신하니 말이다. 무슨 갈 길이 그리 급한지? 템포가 빨라진 현대사회에서 락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다들 조급증에 걸렸나보다 하고 생각을 굴리다가도 정작 회의나 모임이 있을 때 지정한 시간을 반시간쯤 어기는 사람들이 태반인것을 감안하면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교통혼잡을 줄이려고 연길시에서는 2년전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여 하남국제무역청사앞에 지하인행도를 건설하였다. 헌데 정작 인행도를 리용하는 행인들은 거의 없다. 몇걸음을 더 에돌아가면 교통혼잡도 피하고 무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가련만 행인들은 굳이 떼를 지어 거침없이 굴러가는 차량속을 요리조리 헤집는가 하면 란간을 뛰여넘는 꽤 날랜 “허들운동선수”들도 적지 않다. 몇십초의 시간을 아끼느라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행인들이 적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면 다음에 교통사고를 겪을 확률이 더 커지게 된다는 도리를 모르는것 같다.  신호등을 무시하는 운전자에게 벌점 6점을 안기는 새로운 교통법규가 실행되면서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문명하게 차를 운전하나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에서는 안면을 바꾸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매일 아침 연변조의병원 네거리를 지나다보면 교통지옥이 따로 없다.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차량들이 서로 자기 갈 길을 고집하고 길을 양도하지 않다보니 네거리는 차량들이 실타래처럼 서로 얽혀 아비규환이다. 분명 앞의 차량이 한치도 움직일수 없는 상황인데도 제멋대로 클랙손을 울려대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의 운전수들의 횡포는 가히 살인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인들을 배려하여 속도를 줄이는 차량이 거의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하무인격으로 속력을 가하는 차량이 더 많다. 일본에서 8년간 체류하다가 귀국한 한 친구는 중국에서는 무서워서 핸들을 잡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제멋대로 끼여드는 차량에 손에 땀을 쥔적도 한두번이 아니고 달리는 차앞에 행인이 불쑥 나타나 가슴을 쓸어내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란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될수 있다. 일단 사고가 나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 “피해자”가 되는것이 교통사고이다. 량호한 행위규범, 문명한 운전습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규칙과 약속의 실행속에서 점차 굳어지는것이다. 중국식 길 건너기에서 획일적으로 행인이나 운전자들을 싸잡아 지탄해서는 안될줄로 안다. 어떤 네거리에서는 파란신호등이 켜졌는데 차량들이 우회전을 하다보니 행인들이 전혀 길을 건널수 없는가 하면 도로폭은 넓은데 행인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아 달리기하듯 통과해야 하는것도 문제시된다. 행인이나 운전자들의 교통의식 제고는 물론 관계부문에서도 도로상황과 관련된 데이터들을 과학적으로 수집, 분석하여 불합리한 규정을 적시적으로 수정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도 쾌적하게 도로를 리용할수 있도록 조건을 지어주어야 할것이다. 
6    축제행사는 내실을 다져야 댓글:  조회:2229  추천:1  2013-01-16
관광기류에 편승해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축제가 생겨나고 운영되고있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진달래절”, “사과배꽃절”, “송이버섯절”, “두만강문화관광절” 등이다. 이러한 축제들은 연변을 대외에 홍보하고 연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면서 관광객들을 우리 지역으로 유치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축제는 보여주기 위한 축제일뿐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규모는 성대하나 경제수익을 적극적으로 창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있으나 대중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있다. 원인은 축제의 주제설정이 명확하지 못하고 활력이 결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농산물 홍보를 주제로 하는 축제에서 홍보도 주요하겠지만 지역주민들의 경제수익 창출과 이어지는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례를 들면 봄에 치러지는 “사과배꽃절”은 봄의 산뜻한 절기와 화사한 사과배꽃향연이 어우러져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는데는 성공하고있지만 사과배농들의 사과배 판매에는 도움을 얼마 주지 못하고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과배를 따는 계절에 “사과배따기절”을 기획해보는것도 좋은 대안이 아닐수 없다. ㅋ"축제도 경영이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최자의 립장에서 볼 때 투입만 있고 창출이 없다면 축제의 후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특히 정부가 아닌 민간인이 축제의 주최자일 경우 축제의 경영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지역의 어떤 축제는 발상은 참신했으나 경영에서 뒤를 꼬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고있다. 해마다 1월 5일부터 2월 5일까지 개최되는 할빈빙등제는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얼음축제 가운데 하나이다. 개최기간중 전 세계의 유명한 얼음조각가들이 모여들어 세계의 유명 건축물이나 동물, 미술품, 녀신상 등 1500여점의 얼음조각을 만들어 전시한다. 축제는 건축과 조각,  회화,  음악,  춤 등이 한데 어우러져 성황을 이루는데 입장권 수입만 해도 가관이다. 해마다 개최되는 우리 지역의 “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은 할빈빙등제와는 규모로 비길수는 없으나 내실을 다짐으로써 해가 거듭될수록 생명력을 더해가고있다. 지역특색, 민족특색, 문화특색이 강조되고있으나 축제의 오락적인 요소와 광환(狂欢)적인 요소가 결핍하다. 축제가 사회생활에서 주는 의미는 제한된 시간 동안에 잠시나마 일상생활을 떠나 일상생활을 잊고 하나의 다른 삶을 체험하게 하는것이다. 브라질의 삼바축제는 광환의 축제로 세계적으로 최고의 축제이고 축제의 아이콘으로불리운다. 삼바축제기간 삼바무용수들은 거리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삼바를 추는데 축제기간 전 세계에서 약 6만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축제 스토리텔링이 미미하여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그리 높지 못하다. 스토리텔링은 학문적으로는 “이야기하다”의 뜻이다. 플러스알파 요소중의 하나인 “스토리텔링”은 마케팅적인 요소를 더하여 좀 더 인간에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접근할수 있게 해준다. 테마는 력사적인 사건이나 인물들이 주로 되며 이야기나 전설이 되기도 한다. 례를 들면 진달래에 이야기나 전설의 “옷”을 입힘으로써 “진달래절”의 고유성, 매력성, 교육성, 흥미성을 더해주고 참가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광객들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여줌으로써 관광객들이 우리 지역으로 다시금 발길을 돌리게 하는것이다. 총적으로 축제행사는 시대맥박을 장악하고 시대의 발전과 맥락을 함께 해야 하며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킴과 동시에 축제브랜드를 육성함으로써 대중들이 즐겨 참여하는 축제로 승격시켜야 한다.
5    금돌이의 죽음 댓글:  조회:2327  추천:3  2012-12-04
금돌이의 죽음 —김인덕   금돌이는 우리 집에서 5년간 애지중지 기르던 애완견의 이름이다. 우리 부부의 장중보옥이나 다름없는 금돌이는 우리가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안아달라고 갖은 요란을 떨었고 안아주면 얼굴이고 입이고 사정없이 핥아댔다. 저녁이면 침대에 뛰여올라 중간위치에 잠자리를 잡는데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금돌이는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재작년 겨울의 어느날, 나는 금돌이를 데리고 모아산으로 갔다가 큰 봉변을 당할번했다. 모아산등산길에서 덩치가 큰 개를 만났는데 그 개가 금돌이를 보더니 으르렁거리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급해난 나는 금돌이를 잽싸게 품에 안았다. 헌데 눈에 달이 오른 그 개가 몸을 솟구치더니 금돌이를 문다는것이 나의 솜옷을 물어뜯었다. 개가 밀치는 충격에 나는 나무단처럼 나동그라지고 솜옷은 길게 찢어졌다. 다행이 주인이 급히 달려왔기에 액운은 면하게 되였다. 그런데 우리의 가족이나 다름없던 금돌이가 작년 섣달그믐날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금돌이를 데리고 동네산책을 나갔다. 8시쯤되였을가. 명대아빠트단지 여기저기서 폭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폭죽소리를 몹시 싫어하는 금돌이의 성질을 아는지라 나는 부랴부랴 금돌이를 불러 집에 돌아오기 시작했다. 집부근에 거의 다다를 무렵 대포소리처럼 굉장히 큰 폭죽폭발음에 화들짝 놀란 금돌이가 정신없이 내뛰였다. 금돌이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어도 금돌이는 멈춰서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폭죽소리에 목소리를 가려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혼비백산해 경황이 없었는지 금돌이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양력설을 쇠려고 우리 집에 모였던 친척들까지 합세하여 8명이서 2시간동안 명대아빠트구역을 참빗질하듯 훑었지만 우리는 끝내 금돌이를 찾지 못했다. 다들 맥없이 집에 돌아온후 냄새로 길을 확인하는 개의 습성으로 보아 금돌이가 화약냄새가 짙어 집을 찾지 못하는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돌이가 사라진지 일주일째 되는 날 새벽 2시경, 금돌이가 앞발로 문을 긁는 나지막한 소리에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벌떡 잠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 문을 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기쁨도 잠시였다. 금돌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너무 야윈 나머지 배가 등짝에 붙었고 온몸은 먼지를 뒤집어써 흰털이 한올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끔찍한것은 다른 개에게 물렸는지 아니면 폭죽파편에 맞았는지 눈알이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있었다. 게다가 뇌막염에 걸린 금돌이는 동물병원에 입원하여 일주일간 점적주사를 맞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리 부부는 애석한 나머지 돈 2백원을 팔아가며 언 땅을 파고 모아산에 금돌이를 묻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마다 양력설부터 보름까지 폭죽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폭죽은 생산, 보관, 류통, 판매, 소비 등 모든 단계에서 위험요소를 내재하고있다. 특히 생산과정에서 화약이 폭발하면 여러 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대형참사로 이어진다. 폭죽은 소비단계단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유발한다. 2011년, 음력설기간만 해도 전국적으로 폭죽으로 인한 화재가 3224건에 발생했는데 출동차량은 44871차, 출동소방인원은 26만인차에 달했다고 한다. 2010년, 음력설기간에는 전국적으로 폭죽으로 인한 상망사고가 1626건 발생하였는데 그중 11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폭죽으로 인한 대기오염도 만만치 않는데 지구온난화에 부치질하고있는 격이다. 지구온난화로 폭염과 가뭄이 발생하면서 숲이 건조해진 탓에 산불이 일어나는가 하면 홍수가 지속되여 산사태가 일어나 대형참사로 이어지며 또한 쓰나미가 발생하여 해안지역을 초토화시키기도 한다. 폭죽이 터질 때의 소음도 절대 간과할수 없다. 온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폭죽소리에 잠을 설치는것은 약과고 폭죽의 굉장한 폭발음에 고혈압환자가 기겁해 쓰러지고 임신부가 화들짝 놀라 류산하는 등 끔찍한 사고가 우리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우리 지역에서도 폭죽으로 인한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차원에서 실제적조치를 강구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한다. 대형폭죽은 아예 판매를 금지시키거나 북경, 상해 등 대도시를 본떠 폭죽을 터치우는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거나 아예 향항의 경험을 도입하는것도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향항에서는 일찍 1967년에 개인이 사사로이 시구역에서 폭죽을 터치우는것을 전면 금지했다. 반면 전통적인 풍속의 명맥을 유지하고 명절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1982년부터 정부차원에서 음력초이튿날 빅토리아항구에서 대형불꽃놀이를 가동하고있는데 갈수록 시민들의 명절년례행사로 각광받고있다. 금돌이가 죽은후로 우리 가정에서는 여태껏 한번도 폭죽을 산적도 터뜨린적도 없다. 물론 올해에도 폭죽과 멀리할것임은 분명하다.
4    생태관광과 사회주의새농촌건설 댓글:  조회:2328  추천:3  2012-12-04
 생태관광과 사회주의새농촌건설   김인덕   관광산업은 자연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성장산업이자 무공해산업의 하나로서 정보통신, 국제무역에 이어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산업의 하나이다. 국내에서도 국민소득이 날로 증가하면서 자연관광, 문화관광, 민속관광, 홍색관광, 도시관광 등 다양한 관광붐의 뒤를 이어 생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이미지의 생태관광붐이 일고있다. 생태관관의 개념은 최초로 환경보호자들이 미국 북부의 조류번식지인 습지를 보전하기 위해 운동을 펼치면서 내놓은것이다. 개발업자들의 무절제한 개발을 저지시키고 조류관찰 같은 생태관광이 지역경제를 부흥시키고 생태계보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리념의 관광인것이다. 더 이상 지역주민의 희생만으로는 자연을 지킬수 없다는 사실이 점차 인식되고있으며 또 지역주민에게만 보전의 의무를 떠맡기는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라는데 관광학자들의 공동한 견해이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생태관광은 천연열대림을 광범위하게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이를 지키려는 관리자의 노력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부득불 열대림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죽여야 했던 원주민 사이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보아 생태관광의 개념에는 두개 층차의 함의가 포함된다. 지역주민(공급자)립장 혹은 관광객(수요자)립장에서 보았을 때 다소 상이한 정의가 가능하다. 관광객의 립장에서 볼 때 생태관광을 통해 환경교육을 접수하며 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생태관광지의 자연과 문화를 보전하고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지역주민의 립장에서 볼 때 지역에 기반을 둔 경제활동을 통해 경제적발전을 꾀하되 환경보전의 가치와 필요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것이다. 생태관광은 수요중심의 개발이 아닌 공급중심의 개발을 의미하며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목표가 통합적으로 달성되여야 함을 의미한다. 즉 생태관광 대상지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자원에 대한 권한 위임”을 통해 자원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보전하는 동시에 생태관광을 통해 경제리익을 얻는 상황을 의미한다. 현재 연변주내에는 “민속촌”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태관광시설들이 날로 많아지고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관광은 주체 확정이 모호하다. 우리 주변의 생태관광시설들을 훓어보면 투자자가 태반이 한두명 개인들로 공급자의 주체는 당지 주민이 아니다. 따라서 생태관광에서 얻는 수익에는 지역주민들의 몫이 없으며 따라서 지역주민들도 지역환경보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돌려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생태관광과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을 긴밀히 결부시키는것이다. 즉 향촌의 농가를 주체로 한 농촌생태관광을 추진하는것이다. 농촌지역의 생태관광은 발생하는 리익이 적더라도 대규모 기반시설투자보다는 소규모투자에 의한 낮은 수준의 개발방식을 채택하는것이 바람직하다. 례를 들면 주말농장방식을 도입하여 도시인들에게 밭을 도급주어 주말이면 온 가족이 농촌에 내려와 진정한 의미의 농촌생활을 체험케 하는 주말농장이나 연변의 독특한 생태농업을 기반으로 “양봉생태농업관광”, “인삼생태농업관광”, “검정귀버섯생태농업관광” 등 생태농업관광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것이다. 투자가 적고 조작이 간편하고 실효성이 높은것이 농업생태관광의 우세이고 특점이다. 농업생태관광은 거세지고있는 유해먹거리에 대한 론란을 자연스럽게 불식시켜주고 도시생활에 찌든 도시인들의 “도피처”를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무궁한 매력을 갖고있는것으로 무한한 발전잠재력과 성공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관건은 농호들을 인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것이다. 농업생태관광은 도시인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과 색다른 체험공간을 제공해주며 도시인들은 민박, 시골식사, 농산물구입 등을 통해 농가소득증대에 기여하면서 농촌의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관광의 붐에 편승하여 생태관광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을 확산시켜 여전히 틈새시장에 머물고있는 생태관광시장을 확대한다면 사회주의새농촌건설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게 될것이다.  
3    유기견잡감 댓글:  조회:2533  추천:1  2012-11-30
 유기견잡감   김인덕   생활이 유족해지고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날로 늘어나고있다. 현대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인간간의 련계가 훨씬 원활해진 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회적소통은 날로 단절되고있는 실정에서 개개인은 인간본연의 사회성을 보상받기 위해 애완견을 반려동물로 생각하고 기르는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유기견을 정서적안정을 위한 진정제적 존재자로 생각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가 거리에서 유기견을 심심찮게 만날수 있게 되였다. 유기(遗弃)는 말 그대로 내다 버린다는 뜻이다. 물론 유기견중에는 주인의 실수로 잃어버린 애완견도 있겠지만 그 수자는 어디까지나 미미하다. 거리에서 떠도는 유기견을 한눈에 가려볼수 있다. 덕지덕지 때가 묻어 행색이 초라한데다 겨릅대처럼 빼빼 마르고 다리나 혹은 눈에 장애가 있는것이 공통한 특징이라 하겠다. 유기견은 낯선 사람을 만나서도 애교를 잘 부리는데 그것은 이미 인간의 사랑에 길들여져 주인의 때 묻은 손길을 잊지 못하고 사랑을 갈구하기때문인것으로 해석된다. 때로는 길바닥에서 대굴대굴 구을기도 하고 흰배를 드러내놓고 네 다리를 강동거리기도 하는데 음식물을 얻고저 하는 유기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한때는 주인의 손끝에서 애지중지 호강을 부리다가 한날한시에 버림받은 유기견들의 처지가 십분 처절하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유기견에 맞닥뜨릴 때마다 염병에라도 걸릴가봐 멀찌감치 피해가기가 일쑤이다. 모스크바에도 유기견이 많은데 우리 고장의 유기견과는 달리 덩치가 큰것이 특징이다. 같은 유기견이지만 모스크바 유기견과 우리 지방의 유기견의 처지는 크게 다르다. 모스크바 교외 인적이 드문 공장지대에서 사는 유기견들은 먹이를 찾아 인간처럼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출근한다. 그들은 벤치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음식을 구걸하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의 반을 덜어준다. 이런 유기견들은 추우면 정거장 걸상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다가도 사람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간다. 도심에서 사는 개들도 유유자적한 생활을 누린다. 동네 로파들이 매일 어김없이 유기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데 먹이를 다투기 위해 서로 으르렁거리는 법도 없다. 로씨야인들의 동물사랑은 유별나다. 하루는 같은 려관에서 투숙하고있는 월남인들이 명절을 맞아 돼지를 잡으려고 돼지의 목에 바줄을 걸어 가로수에 매여놓았는데 지나가던 로씨야로파가 다가와 돼지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하는것이였다. 돼지의 운명이 너무나 가엾다고 넋두리하는 로파의 거동을 리해하지 못하기는 월남인들이나 우리들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우리의 선조들도 동물을 퍽 사랑해왔다. 조선 태종때 가난한 젊은 선비가 있었다. 한번은 한양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의 대문을 두드려 하루밤을 묵을것을 부탁했다. 선비의 옷차림을 본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단박에 거절하였다. 피로에 지친 선비는 잠시 쉴 료량으로 그 집 담벼락에 기대고 앉았다. 그런데 부자집 아이가 큰 진주알을 가지고 노는게 아닌가. 아이가 진주를 땅에 떨어뜨리자 거위가 그것을 냉큼 삼켜버렸다. 아이는 거위가 삼킨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진주를 찾더니 선비를 빤히 쳐다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집주인이 달려나와 다짜고짜 진주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그리고는 선비의 몸을 마구 뒤졌다. 선비의 몸에서 진주가 나오지 않자, 주인은 머슴을 시켜 선비를 묵으라고 했다.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래일 관가에 데리고 간다는것이였다. 윤희는 아무 말 없이 묶이면서 주인에게 거위의 발을 묶어 자기 곁에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별 미친놈 다 보겠군.” 하며 주인은 거위의 발을 묶어 선비의 곁에 두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이 나오자, 선비는 거위가 눈 똥을 가리키며 헤쳐보라고 했다.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 똥을 헤쳐보니 진주가 나왔다. 깜짝 놀란 주인이 백배사죄를 했다. “왜 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내가 어제 주인장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다면 주인장은 아마도 가엾은 거위를 죽여 배를 갈랐겠지요. 불쌍한 거위를 죽이느니 제가 잠시 루명을 쓰는게 더 낫지 않습니까?” 2년전 한 직장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느날부터인가 직장의 마당에서 유기견이 떠돌고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여윌 대신 배가 항상 뚱뚱 불러있었다. 자초지종을 알고보니 직장의 마음씨 고운 선배가 유기견에게 굴을 지어주고 매일 음식을 날라준다는것이였다. 그 선배는 유기견이 다른 사람들이 음식물을 너무 많이 가져다주어 비만이 온것이라 생각하고 굴옆에 “음식물을 함부로 갖다 주지 마세요.”라는 글을 적어놓기까지 했다. 후에 그 유기견이 임신한것을 알고는 집에 데려다가 보살폈는데 얼마후에 새끼 세마리를 낳았다. 동물들은 인간 먼저 지구라는 커다란 공간에서 자유롭게 저마다 삶의 공간을 차지한채 살아왔다. 하지만 인류가 나타나고 개발이라는 명목이 생기면서 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그 생존마저 위협받고있다. 이제 우리는 자연속에서 모든 동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여가생활이 풍부해지면서 우리 주에서도 여러가지 민간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있는데 주급민간단체만도 500여개를 웃돈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보호민간단체는 아직 한개도 없는줄로 안다. 애완견이 늘어날수록 유기견이 정비례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우리도 이젠 먹고 살만하게 되였으니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유기견보호소를 세움으로써 유기견의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2    조선족과 진달래 댓글:  조회:2761  추천:2  2012-11-30
조선족과 진달래   김인덕   조선족은 진달래에 대해 각별한 정감과 애정을 지니고있다. 중국에서 진달래는 조선족을 상징하는 꽃이며 조선족의 대명사이며 조선족은 “진달래민족”으로도 통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화(州花)로 진달래가 지정된것도 물이 곬을 따라 흐르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조선족의 진달래에 대한 애정은 화끈하다기보다는 우리의 정감 속에, 생활 속에 스며들어 무소불재, 무처불유(無所不在, 無處不有)의 경지에 이르렀다. 진달래는 장백산과 함께 연변의 명물이다. 진달래 피는 계절이면 연변의 산촌마다 앞문을 열어도 진달래요, 뒤문을 열어도 진달래라, 연변은 진달래의 고향이 되기에 아무런 손색이 없다. 조선족녀성에게 치마저고리가 가장 잘 어울리듯이 진달래는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낸 장백산맥의 가장 기려한 복식이다. 산봉우리에 오롯하게 피어나면 수집은 처녀의 얼굴이요, 봉우리 가장자리에 피면 운치가 돋보이는 기운이요, 산의 가슴에 피면 봄바람에 부푸는 소녀의 산뜻한 저고리이며, 산기슭에 피면 꽃을 수놓은 화려한 치마자락이다. 고중할바는 없지만 우리네 선조들이 쪽박 차고 남부녀대하여 두만강을 건넌 때도 진달래 피는 계절이었으리라. 그네들이 기름이 자르르 도는 이 땅에 개간의 첫 보습을 박고 씨앗을 뿌릴제 폐부깊이 감돌아치는 진달래 향기와 억- 막혀오는 환희로움에 전률했으리. 진달래 피는 샘물터에서 목을 축이며 분홍빛 래일을 설계했으리. 진달래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넉넉히 담은 정감의 꽃이다. 장미의 랑만도, 튤립의 화려함도, 올리브의 깊은 사색도 지니지 않은 수수한 꽃이다. 진달래는 랑만을 외면한 꽃이다. 진달래는 덜먹총각의 나무지게에 얹혀왔다가 처녀의 손에 쥐여지지 못한채 총각에 집 창턱에 속절없이 피였다가 고스란히 지고 마는 못난 꽃이다. 진달래는 너무 흔하다보니 사고파는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고대광실보다는 봄 해빛이 조으는 초가집의 창턱이 훨씬 어울린다. 진달래는 화려함도 갖추지 못한 꽃이다. 가지가 많아 지저분한 느낌이 들고 가지는 연한 갈색으로 우아하지 못하며 덕지덕지한 바늘조각으로 고귀하지 못하다. 또 꽃은 수효가 너무 많고 꽃잎은 작아서 조촐한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다. 하지만 진달래는 남다른데가 있다. 진달래는 겉볼안 같은 우리 민족의 성격과 흡사한 꽃이다. 진달래는 기나긴 동북의 겨울을 용케 이겨내고 새봄을 맞아 흥에 겨워 멋에 겨워 한껏 피여나는 꽃이다. 우리 민족은 진달래 꽃철이면 모여앉아 “진달래 꽃전” 놀이를 하였다. 진달래 꽃잎을 따다가 씻어서 곱게 빻은 찹쌀가루를 버무려 한입에 먹을수 있게 둥글납작하게 만들어 먹는것이 “진달래꽃전”이다. 화전놀이의 참뜻은 부지깽이도 심으면 살아난다는 봄이 되었으니 모두 일손 맞춰 어거리 대풍을 약속하자는 화합의 잔치라 하겠다. 어수선했던 겨울의 삭 거름을 진달래 꽃불에 활활 불사르고 논밭 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시작한다. 들쥐대신 나타나는 종달새의 우짖음에 취해 흥겨운 밭전놀이도 잊지 않았다. 진달래는 자기의 키를 훨씬 넘는 오기와 굴강함을 지녔으며 독립과 자유를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불사르는 불사조의 신념을 갖춘 꽃이다. 진달래는 시간을 거슬러 지난세기 30년대, 할아버지가 항일의 굳센 신념을 안고 진달래 피는 “아리랑 산” 언덕길로 멀어져가던 진한 감동이며 그 자국마다 장한 뜻이 어려 새봄에 유난히 붉게 피여나는 꽃이다. 풀뿌리로 보리고개를 달래면서도 쌀을 구하러온 항일전사에게 마지막 쌀 한자루를 넘겨주던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꽃이다. 어디 그뿐이랴. 장백산 고요한 밀영앞, 진달래 비낀 계곡의 물에 서슬 푸르게 총칼을 갈던 젊은 항일전사의 굳은 의지이며 허술한 밀영에서도 스스로 나슬나슬 피여나는 녀전사의 아름다운 청춘이며 코신을 거꾸로 신고 적을 유인했다는 녀전사의 지혜로움이 서린 꽃이다. 진달래는 중국의 항일전쟁에 자식을 보낸 우리 민족 녀성들의 생생불식(生生不息)의 꽃이다. 14년(1931-1945) 중국항전시기 10만 조선족 열혈남아들 이 침략자를 몰아내는 성전에 떨쳐나섰다. 연안에서 태항산까지 장강이북에서 해남도까지 불사조마냥 광활한 중국대지를 주름잡으면서 침략자를 무찔렀다. 또 10만 조선족청년들이 민주와 자유를 위해 중국해방전쟁에 뛰여들었다. 진달래는 쓰러진 렬사를 가리는 꽃이며 적탄에 구멍난 용사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로 물든 꽃이다. 하기에 중국의 저명한 시인 하경지는 이렇게 읊조리지 않았던가. “산기슭마다 진달래가 붉게 피여있고 마을마다 열사비가 솟아있네.” 우리 민족은 얼마나 많은 고난의 령길과 설음과 한(恨)의 고개를 넘어왔는지 진달래의 뿌리를 캐보면 너무나 잘 알것 같다. 험난한 세상의 고달품을 감내하여 가슴속깊이 감추느라 설음이 한이 되여 뿌리마다 얼키고 설키였으리. 그래서 화사하게 피여난 진달래는 더욱 값진것이요, 더더욱 눈물겨운것이리라. 진달래 꽃 웃음속에는 민족의 수난사가 깃들어있고 희로애락의 절창이 담겨져있고 미래에 대한 지향이 깔려있다. 진달래는 미래 지향의 꽃임에 틀림없다. 진달래는 짧은 한생 일월을 다투어 잎 먼저 꽃을 피우는 강한 개성과 저력을 지닌 꽃이다.  이제 진달래는 단순한 꽃의 의미를 벗어나 민족정신의 늪에 앙금된 색 바래지 않는 얼이며 세새대대 지키고 가꾸어가야 할 민족문화의 정수이다.  
1    비물세론란 댓글:  조회:2728  추천:4  2012-11-27
비물세는 비물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을 말한다.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가 잦아진데다 건물 신축이나 도로 건설 등 도시화 진척이 가속화되면서 불투수(不透水)면적이 늘어남에 따라 하수도시설 등을 증설하는 비용을 원인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세금을 말한다.  비물세는 1990년대에 독일에서 처음 도입한뒤 북유럽, 미국 등에서 도입하였으며 현재 여러 나라들에서 비물세 도입을 두고 론란을 거듭하고있다. 비물세론란에 대해서는 잠시 담론을 접어두고 비물세를 도입한 국가들에서는 시민들의 비물재활용, 불투수면적에 대한 감소 등을 유도해 하수도로 류입되는 비물량을 줄임으로써 저지대침수피해를 적지 않게 감소시키는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우리 지역의 도시들도 도시면적의 근 절반가량이 땅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지역인데다 가상이변으로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도시내 저지대침수피해가 심심찮게 발생하고있다.  저지대침수피해를 막고저 일부 발달한 국가들에서는 인행도블록을 침수블록으로 대체하고 인행도나 정차장을 줄여 나무를 심고 옥상을 화원으로 개조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있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저지대침수피해에 대해 외면하고있는 실정이다.  저지대침수피해를 불러오는 주범중의 하나가 불투수면적의 지속족인 확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지역의 도시들을 둘러보면 해마다 광장이 늘어나면서 도시주민들의 레저, 운동, 휴식의 좋은 장소로 되고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광장은 많은 사람이 모일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이니 우리 지역의 광장들이 자기의 기능을 착실하게 리행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광장들은 콩크리트를 매립하여 만든 넓은 빈터일뿐 나무 한그루 찾아볼수 없어 허전한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다.  우리 지역은 온대대륙성기후로 여름에 무덥고 겨울에 춥다. 비록 우리의 광장들은 인성을 고려하여 광장 곳곳에 시민들이 휴식할수 있는 걸상들이 비치되여있지만 정착 한여름 무더운 날씨에 땡볕을 막을수 있는 나무 한그루조차 찾아 볼수 없고 콩크리트가 발산하는 열기로 인해 걸상을 리용하는 시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여름날 한낮이나 겨우내내 광장을 리용하는 시민은 흔치 않다. 단 여름날 저녁이면 시민들이 모여들어 레저, 운동,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광장을 건설할 때 우리 지역의 기후특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저지대침수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광장의 “주역”을 콩크리트부터 “나무”로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수림은 충족한 산소와 음이온을 방출하기에 지구의 페라고 말한다. 모스크바는 세계적으로도 삼림속의 도시로 명망이 높다. 모스크바는 록화면적이 시구역면적의 40%를 점하며 시구역에 11개 자연삼림구, 89개의 대규모공원, 1400여개의 소규모공원이 있다. 내가 머물고있던 모스크바 부다이스끼 려관앞에도 무변광대한 수림이 있었다. 수림이 어찌나 큰지 12층 옥상에 올라서도 수림의 끝을 볼수 없다. 다만 밤이면 수림너머 도시의 불빛이 우련히 안겨올뿐이다. 하루는 승용차로 이 수림의 주위를 한바퀴 드라이브했는데 메터기가 정확히 45킬레메터를 기록했다. 한번은 한 려관의 허씨가 어느날 오후에 이 수림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이튿날 아침에야 려관에 들어온적이 있다.  모스크바의 땅값은 촌토촌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무를 찍어 광장을 건설하거나 길을 넓히거나 대규모로 아빠트단지를 건설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들이 토지를 개발하여 수익을 창출할줄 몰라서도 아니고 도시를 경영할줄 몰라서도 아니다. 한 려관에 있던 로씨야친구가 중국 심수, 상해를 유람하고나서 중국의 대도시의 발전을 두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자신은 콩크리트 숲이 우거진 그런 삭막한 도시에서 살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도시가 그 어떤 조형물이나 표지성건물로 장식되는것도 좋지만 도시에 활력을 불러넣어주고 도시인들의 건강을 지켜주는것은 그래도 수목이다. 땅으로 회귀본능을 가진 도시인들이 손바닥만한 공지에다 자류지를 가꾸는것처럼 우리의 도시들도 공터마다 나무를 심고 또 심어야 할줄로 안다. 큼직한 빈터에는 광장보다 조선족들의 정서에 많는 살구꽃거리, 복숭아거리 혹은 단풍나무거리를 조성하여 도시인들의 정서적인 삶을 가꾸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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