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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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시]콤파스(윤휘윤[미국]) 댓글:  조회:1515  추천:11  2009-02-27
가랑이를 벌리고 집게다리하고 디딜 지점을 찾는 순간 지축을 꿰뚫은 듯 중심은 잡았지만 自轉의 의지를 잡지 못한 통 넓은 치마로 가릴 수밖에 없어 약해지는 마음에 눈 뜨는 만남의 약속은 여울이 되어 원을 그린다 끝도 없이 원을 그린다   《해외문학》에서
78    [시]물이 햇볕을 이긴다(차옥혜) 댓글:  조회:1421  추천:14  2009-02-27
한여름 뙤약볕에서 김을맨다. 몸은 햇볕과 전쟁을 벌이려 수문을다 열어 제치고 물은 빠르게 성벽 옷을 지나 햇볕을 향해 진격한다. 전쟁은 숨 막히고 치열하다 누가 이길 것인가 마침내 날이 저물고 일사병으로 쓰러지지않고 끝끝내 물로 햇볕을 밀어내며 밭을 다 맨 물기둥이 호미를 들고 일어선다. 아직도 흠뻑 젖은 깃발에 쌓여 땅거미 내린 들녁 한가운데 우뚝 물 깃대가 선다. 《해외문학》에서
77    [시]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전기철) 댓글:  조회:1419  추천:9  2009-02-27
아내는 나를 조금씩 바꾼다. 쇼핑몰을 다녀올 때마다 처음에는 장갑이나 양말을 사 오더니 양복을 사 오고 가발을 사 오고 이제는 내 팔과 다리까지도 사 온다. 그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두덜거리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당신, 이렇게 케케묵게 살 거예요, 하면 젊은 아내에게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얼마 전에는 술을 많이 마셔 눈이 흐릿하다고 했더니 쇼핑몰에 다녀 온 아내가 눈을 바꿔 끼라고 한다. 까무러칠 듯 놀라며 어떻게 눈까지 바꾸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들이 구식이라 그래요, 한다. 내 심장이나 성기까지도 바꾸고 싶어하는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서 쩔쩔맨다. 열심히 운동을 하여 아직 절마고 해도 아내는 나를 비웃으며 나무란다. 옆집 남자는 새 신랑이 도었어요. 당신은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 참아요, 한다. 그때마다 시무룩해진 아내가 안쓰러워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아침 일찍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거울 속에서 내 자신이었을 흔적을 찾느라 얼굴을아무리 뜯어보아도 내 모습이 없으니 밖에 나가면 검문에 걸릴까 두려워 일찍 귀가하곤 한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76    [시]여자는 몸의 물기를 닦는다(이원) 댓글:  조회:1373  추천:14  2009-02-27
목욕탕의 대형거울이 알몸의 여자를 정면으로 비춘다 여자의 왼쪽 유방이 있어야 할 자리가 납작하다 유방을 들어낸 자리에 가로로 흉터가 나 있다 뜨거운 시간에 닿았었는지 살이 오그라들었다 뜨거운 시간은 밀봉되는지 흉터가 달라붙은 입 같다 두 개의 유방을 가진 여자들은 재잘거린다 힐끔힐끔 여자의 시간을 빨아 먹는다 이내 뱉어버린다 여자는 수건을 들어 몸의 물기를 닦는다 왼쪽 유방이 있던 자리에서 여자의 손이 멈칫한다 여자는 없는 왼쪽 유방이 무겁다 없는 유방이 출렁거린다 유방을 도려낸 시간으로 여자는 뜨겁게 출렁거린다 유방을 남겨둔 시간으로 여자는 차갑게 출렁거린다 펄펄 끓는 손의 기억으로 여자에게 유방이 솟아오른다 오른쪽 유방이 제 그림자를 왼쪽 유방의 자리에 가만가만 드리워준다 외쪽 유방이 머물던 자리가 불빛을 둥글게 담는다 빛과 어둠으로 빚은 달항아리가 여자의 몸에서 탄생한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75    [시]그래, 생각이 에너지다(이문재) 댓글:  조회:1466  추천:9  2009-02-27
아무리 파도 기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을 팠다. 생각이 에너지다. sk에너지. 아무리 해도 사람들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텔레비전 반대편을 보았다. 맞다, 생각이 에너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지구를 그만 파야 한다. 그만 파야 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에너지라는 생각이 팠던 지구의 저 수많은 구멍들부터 막아야 한다. 지금 지구 반대편으로 달려가 구멍을 뚫고 기름을 뽑아올리는 생각은 새로운 에너지가 아니다. 지구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생각이 진정한 에너지다.   아무리 해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지구가 곧 내 몸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럼 그때 자기 몸의 반대편을 파보라. 그때 자기 마음의 안쪽을 보라. 먹고 입고 쓰고 타고 버리는 것의 앞뒤를 보라.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고 그것은 또 어떻게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그런 생각이 새로운 에너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새로운 생각도 못 된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74    [시]너무 어두운 꽃들이여(강태동) 댓글:  조회:1424  추천:14  2009-02-27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나무집에 들러 등불을 켜고 우두커니 들여다본다 꽃들이 환해! 기절을 할 것 같다 제 스스로 굿을 하는 꽃들이 수렁 수렁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칼을 뽑아 이 환한 꽃들을 베어본다 악, 악, 하는 소리 등불을 떨어뜨리고 나는 방금 수렁 수렁대던 꽃들의 어둠으로 걸어들어가 멀리서 곡하는 소리 들린다 방금 빼어 든 칼이 머리 위 그림자로 어른거려 꽃들은 어디 갔어? 멍한 눈을 뜨고 저기 멀리 흔들리는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8년 올해의 좋은시》에서
73    [시]겨울밤(강성은) 댓글:  조회:1318  추천:12  2009-02-26
물레가 돌아간다 투명한 실들이 흘러나온다 구불구불 빛이 흘러나온다 끝을 모르는 실들이 둘글게 감기고 또 감긴다 물레는 돌아가고 소녀는 비명을 지른다 날카로운 바늘이 통과한 손끝에선 새빨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밤을 돌리고 달을 돌리고 죽음을 돌리고 나를 돌려도 창밖은 아직 검고 바람은 성난 개처럼 유리창을 부수네 투명하고 무거운 실들은 내 발목을 칭칭 감고 놓아주지 않네 물레는 돌아가고 소녀는 비명을 지르고 늙은 여인은 노래 부른다 그녀 몸 속에는 녹슨 바늘이 수천 개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그녀 몸 속을 바느질하네 저 무서운 실들은 모두 그녀의 백발이라네 물레는 돌아가고 소녀는 비명을 지르고 늙은 여인은 노래 부르고 창밖에는 눈이 내린다 하얀 머리 위에 또 하얀 머리칼 하얀 눈 위에 또 하얀 눈송이들 어떤 노래는 백 년째 불리워지네 어떤 날개는 백년째 만들어도 완성되지 못하네 저 보이지 않는 무서운 실들 좀 봐 밤은 탄식하고 어떤 겨울은 백 년째 계속되네 《현장비평가가 뽐은 2008 올해의 좋은 시》에서
72    [시]落花(이형기) 댓글:  조회:1501  추천:11  2009-02-17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붐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느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71    [시]주저흔(躊躇痕 김경주) 댓글:  조회:1736  추천:14  2009-02-12
몇세기전 지층이 발견되였다 그는 지층에 묻혀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년대기를 물었고 다투어 생몰년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전 돌속에 스민 빗방울을 조금식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동굴밖에선 홰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서야 모습을 들어내는것이다. 동일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률을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타이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 보다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70    [시]어머니(얌명문) 댓글:  조회:1357  추천:10  2009-02-11
어머니, 여기 앉으셔요. 여기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적부터, 돌도끼로 나무 찍던 그 옛날부터 살아 온, 하늘 맑고 물 맑은 동네. 봄이면 살구꽃 곱게 피고, 가을이면 대추 다닥다닥 열리는 집 뜰, 네모났던 섬돌이 귀가 갈리어 두루뭉실하게 된, 진짜 우리집이올시다. 어머니, 아무런 일이 있더라도, 가령 땅 위에다 끓는 피로 꽃무늬를 놓더라도, 여기를 떠나지 마시고 앉아 계셔요. 여기는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들이 살아야 할, 잘 살아야 할, 진짜 아들의 땅이니까요. 어머니, 마음 푸욱 놓으시고 어서 여기 앉아 계셔요.
69    [시]길처럼(박목월) 댓글:  조회:1647  추천:33  2008-09-26
[시] 길처럼 박목월 먼 산 구비구비 돌아 갔기로 산 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날 같다.
68    [시]깃발(유치환) 댓글:  조회:1745  추천:30  2008-09-26
[시]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먼저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67    [시]껍데기는 가라(신동엽) 댓글:  조회:1563  추천:35  2008-09-26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同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는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달사 아녀사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 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산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66    [시]꽃(박두진) 댓글:  조회:1726  추천:29  2008-09-26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 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람의 호심(湖心)이다
65    [시]꽃나무(이상) 댓글:  조회:1602  추천:31  2008-09-26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히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였소.
64    [시]꽃덤불(신석정) 댓글:  조회:1706  추천:24  2008-09-26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여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여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63    [시]나는 바람으로 날아가오 댓글:  조회:1571  추천:25  2008-09-26
나는 바람처럼 날아가요 푸른 숲의 저 잎 하나 하나 눈여겨 날개에 새기면서 날아가요 날다가 푸른 잎들의 이쁜 짓을 생각하면 힘이 나니까요 맑은 햇살에 몸을 헹구고 하나의 바람만을 말해요 그 눈빛으로 숨을 불어보아요 당신에게 가고 싶어 햇살 한 올 한 올 풀어내어 당신의 몸을 묶고 당신의 가슴에 전각을 새길거야 그리고 몸을 떨면서 그 이름 부를거야 이 헛된 바람의 끝이라고 팔베개의 아슬한  춘몽이라고 당신 손바닥에 잠시 머물다가 난 또 날아가요 그 눈짓에 멍이 들어서 따스했던 순간들이 이생이었기를 보드라운 꽃잎의 바람이었기를 나는 바람으로 날아가요 (작자를 몰라서 밝히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62    [시]작은 만남(김남조) 댓글:  조회:1571  추천:25  2008-09-26
작은 만남이여 골짜기의 물꼬를 문득 바다로 돌렸네 한 다발 열쇠꾸러미 자물쇠마다 열어 놓으니 은밀한 내 마음 옷 벗은 채 반짝반짝 드러나고 바닥에 잠겼던 말들 生金가루 털며 솟아오르고 이를 어쩌나 어쩌나 작은 만남이여 저는 이름도 하나 없이 그나마 돌담 저켠을 서성이면서 내 눈 밝혀 내 마음 밝혀 실핏줄 하나까지 알게 하느니 작은 만남이여 놀랍고 가슴 아파라 작은 사랑이여
61    [시]바람의 말(마종기) 댓글:  조회:1707  추천:23  2008-09-26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60    [시]남해금산(이성복) 댓글:  조회:1527  추천:22  2008-09-26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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