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월 2025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世界 색점선

전체 [ 533 ]

173    땡! 땡!... << 橋? >> 댓글:  조회:2225  추천:0  2016-01-19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인도와 인도를 연결시켜 주는 육교도 아니고 구름다리 같아 보이는 계단이 인도 중간에 직선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과연 저게 뭘까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습니다. "매일 보지만 볼 때마다 이걸 왜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는 글이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이곳은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는 '동안교' 입니다. 동안교 인도에 있는 이 하늘색 구조물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계단 있는 거 보니까 육교 같아 보이는데 저게 뭔가요" "혈세 또 낭비 했네" "공무원들 하는 게 그렇지" "저게 왜 인도위에 있을까" "계단으로 걸으면서 운동하라는 뜻인가" 등의 댓글이 보였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분당구 도로관리과 제공 분당구 도로관리과 제공 분당구 도로관리과 구조물 관리팀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관리팀이 직접 나가 확인해 본 결과 저 구조물은 '경관교량'이고 교량 근처에는 안내판이 있다고 합니다. 한 번 볼까요? 설계 특징 사항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산과 하천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하며 전체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고 교량 상부에 구조물 설치로 조망 기능을 두어 이용의 편리성을 확보…"라고 써 있습니다. 다리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계단이 있어 네티즌들을 혼동하게 만들었나봅니다. 이유가 있었지만 네티즌을 탓할 일도 아닙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디자인이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동의 하실 겁니다. 설계에서 '공감'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설계에 애꿎은 행정만 뭇매를 맞았습니다.
172    땡!... 8888 댓글:  조회:2446  추천:0  2016-01-19
숫자와 여행?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다. 한데, 아니다. 여행 포인트엔 의외로 숫자의 비밀이 숨어 있는 곳이 많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숫자의 비밀'이 숨은 관광 포인트. 꼭 한 번씩 가보시라. ◆55층 허공 수영장…마리나베이샌즈세계 최고층 수영장…싱가포르를 한눈에 숫자 5. 손가락 5개처럼 완성의 의미다. 방위에선 동서남북에 중앙까지 포함해 '오방'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선 오장, 농업에선 오곡이 있다. 묘하게 싱가포르의 상징 마리나베이샌즈의 전망대 높이가 55층이다. 3개의 건물 55층 전망대 위에 배 한 척이 걸려 샌즈를 완성한다. 명불허전 허공 수영장은 호텔 꼭대기층인 55층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 최고 명물인 수영장 길이는 무려 198m. 대한민국 올림픽 수영 경기장의 3배 규모다. 높이는 프랑스 에펠탑을 앞지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영장으로 꼽힌다. 샌즈는 쌍용건설의 작품이다. 3개의 건물이 거대한 배 모양의 '스카이 파크'를 떠받치고 있다. 이 각도가 예술이다. 지면에서 기울어진 각도가 '최고 52'. 그래서 붙은 애칭이 현대판 피사의 사탑이다. ▶ 마리나베이샌즈 투어 Tip=호텔은 지하 3층, 지상 55층 3개 동, 총 2561개의 룸을 보유하고 있다. 스카이파크엔 수영장 3개와 전망대, 정원, 산책로, 레스토랑 등이 조성돼 있다. ◆77층 전망대 스카이 포인트헬기 손에 잡힐 듯…놀라지 마시라 두말 필요 없는 행운의 숫자 7. 두 개가 겹쳤으니, 행운도 '더블'이다. 77층 전망대로 유명한 골드코스트 최고의 조망 명소 '스카이포인트'. 명불허전이다. 1년 중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총 300일이나 되는 데다 해안선 길이만 43㎞에 달하는 호주 버킷리스트 으뜸인 골드코스트엔 무려 35개의 비치가 있다. 이 중 '빅3'는 메인 비치, 서퍼스 파라다이스, 브로드 비치. 특히 관광 명소인 서퍼스 파라다이스 최고의 명물이 스카이포인트 건물이다. 호주 최고, 남태평양 두 번째 높이인 270m 상공이 전망대가 있는 77층이다. 이 빌딩 명물은 단연 엘리베이터다. 1층부터 77층 전망대까지 소요시간은 단 43초. 천장엔 모니터가 달려 전망대 위로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로프의 위용을 살벌하게(?) 관람까지 할 수 있다. 헬기 투어를 하는 헬기가 가끔 눈앞에 아른거릴 수 있으니 놀라지 마실 것. ▶스카이 포인트 투어 Tip=230m 높이인 77층에서 밖으로 나가 270m 높이까지 걸어 올라가 탁 트인 골드코스트의 경관을 보는 아찔한 등반 체험 액티비티도 있다. 전망대 운영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88층 중국 진마오타워"돈을 부르는 숫자 8" 완공 날짜도 8월8일 중국에서 최고로 치는 숫자는 8이다. 돈을 불러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당연히 이 숫자가 겹치면 대박이 증폭된다고 믿는다. 웬만한 특급호텔의 최초 고정 비밀번호가 '8888'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심지어 휴대폰 끝번호 8888은 1억원이 넘는 돈에 팔린다. 상하이 푸둥지구의 머스트 시(Must see) 포인트인 진마오타워. 높이가 무려 421m에 달하는 이 건물은 88층이다. 행운이 몰려온다며 관광객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투입된 비용만 총 5억달러, 우리 돈 7000억원대다. 건물 모양도 특이하다. 인간이 팔을 뻗어 몸을 안정시키기 위해 양손 깍지를 낀 특이한 형태다. 이 건물 이름인 진마오는 중국어로 '많은 돈'이라는 뜻이다. 잊을 뻔했다. ▶진마오타워 투어 Tip=8과 얽힌 이 빌딩의 태생 스토리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층수만 88이 아니다. 높이와 너비의 비율은 8대1, 전단벽 코어(core) 역시 8면체, 외곽 복합기둥 숫자도 놀랍게 8개. 여기서 끝이 아니다. 쐐기를 박는 완공일. 1998년 8월 8일이다.  
171    사진은 미화되지 않는 기록 댓글:  조회:3164  추천:0  2016-01-15
대만 嘉義시에서 (유리구두 교회).   한국 다큐사진의 첫 장을 연                             이경모 선생 격동기 한국현대사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          사진은 기록이다. 그것도 윤색되고 미화되지 않는 기록이다. 특히 다큐사진은 그 자체가 역사의 재현이자 하나의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다큐의 첫 장을 연 고 이경모 선생은 한국사진사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 역사현장에 근접해 있었고 목숨을 위협 받는 순간에도 쉼 없는 카메라를 눌렀다. 다큐사진작가로써 고 이경모 선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순사건이다. 격동의 해방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기이자 민족의 암흑기였다. 해방이후 좌우익이라는 이념의 악령이 한반도를 휩쓸었고 그 악마적 대치는 수많은 무고한 인명의 살상과 비극을 잉태한 것이었다. 형제도 없고 이웃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시대가 결국 폭발한 것이 바로 여순사건이다. 그는 바로 그곳에 있었고 그 참혹한 학살의 현장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경모는 광양읍 인서리에서 나고 자랐다. 본래 그는 화가 지망생. 1944년 18세의 광주서중 학생 이경모는 제23회 선전(鮮展)에 입선했다. 당시 상당한 화제감이었던 이 행운으로 중학생이던 이경모는 일본 우에노 미술학교 진학을 희망했다. 그러나 전남 광양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지방유지인 부친은 경성법전 진학을 권유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처지의 젊은 이경모는 야외에서 그림 스케치작업을 하거나, 아니면 당시 공개추첨 방식으로 겨우 구입할 수 있었던 값비싼 카메라를 메고 사진촬영을 하면서 해방직전까지 광양에 눌러앉아 소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해방직후부터 전혀 예기치 못했던 ‘현대사 격동의 현장’을 운명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그의 사진이 없었더라면 우리 현대사의 이미지들은 얼마쯤은 황량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듣는 사진작가 이경모. 이경모가 사진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돼 한반도가 소용돌이 치던 1946년 1월 광주일보의 전신인 호남신문사의 사진부장이 되면서 부터다. 이경모의 나이 스무 살 되던 해다. 호남신문은 일제시대 도 단위 신문이었던 전남신보를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 전남건준위가 접수해 문을 연 것으로 사장은 당시 전남 건준위장이었던 박준규가 맡았고 부사장겸 주필은 노산 이은상이었다. 입사한 계기는 노산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1938년 이후 은둔해 온 노산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광양에 내려왔고 여기서 광양지역의 유지였던 부친과 교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부친의 심부름으로 키도 작고 볼 품 없는 사람에게 쌀 봉지를 갖다 주고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바로 노산’이었다. 노산은 이후 1945년 5월 경찰서를 기습할 계획을 세웠다가 정보가 누설돼 붙잡힌 후 광양유치장에서 해방을 맞았고 호남신문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이경모를 사진기자로 불러올렸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이경모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전남 광주와 여수, 순천, 광양 등지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가 1945년 8월 시점에 찍은 광양의 사진은 해방 직후 벌어졌던 보편적 상황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한국 사진사에서 바라본 ‘이경모 사진’의 진수는 무엇보다 여순사건의 기록이다. 1946년 1월부터 호남신문의 유일한 사진부 기자로서 부장직을 겸임했던 그는 이 신문사 근무중 여순사건과 맞닥뜨린다. 여순사건은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48년 10월19일 밤에 제14연대 1개 대대병력이 일으킨 봉기가 그 시발이다. 이튿날인 20일 출근하면서 이 소식을 접한 그는 ‘현장에 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판단에 따라 곧바로 시가전이 한창인 순천을 찾는다. 취재장비는 필름을 단 한 장만 장착해 단발승부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일제 오토프레스 미놀타. 순천지검에 설치된 반군토벌사령관 송호성 준장의 22일 기자회견장에 유일한 사진기자로 참석한 것도 그다. 그가 좌우익 충돌의 참상을 담은 중요한 사진을 연속적으로 얻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신발이 가지런히 비어져 나온 채로 멍석에 둘둘 말려 지게 위에 올려져 대강 수습된 시신, 그 앞에서 석양으로 그림자를 길게 늘인 아낙이 자신의 옷고름을 쥐고 울음을 삼키고 있는 비통한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전시라는 비상상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학살, 살육, 그것도 동족간 살육현장을 한 걸음 비켜선 채 포착한 이 사진이 전해주는 고발정신과 휴머니즘은 오늘날에도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극의 리얼리티가 생생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신의 주인공이 이경모의 손아래 친구라는 점이다. 이경모의 증언에 따르면 시신은 당시 서울대 법대생 김영배다. 당시 현장은 광양과 순천의 경계부근이었고, 이경모는 집안머슴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친구의 어머니를 달래는 한편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영배야,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 연방 되뇌었다는 것이 그의 술회다. 이 때 잡은 여순사건의 현장사진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이미지로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장면들이다. 여학생들이 죽창을 손에 쥔 채 사열을 받고 있는 대동처녀단 광양지부 결단식 사진 등 그의 사진은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경모 선생이 보도사진 작업을 집중적으로 전개한 기간은 7년7개월에 불과하지만 그가 한국사진사에 남겨놓은 족적은 현장성과 역사성과 더불어 실로 재평가돼야 한다. 53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55년 국제보도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사진 일선에서 멀어지게 됐던 그는 50년대 중반이후의 사진활동에서는 문화재 사진, 풍경사진 등 ‘한국적 영상미’로 영역을 바꿨다. 그러나 그의 여수·순천반란사건 다큐먼트는 다큐멘터리사진의 시초가 됐다. 이후 국방부 정훈국 소속의 사진대 문관으로 활동하며 신탁통치 논란, 좌우익 격돌, 여순사건과 6.25등의 현장을 두루 증언하면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더나가 선생이 파인더에 올리던 대상은 광양과 순천, 전남 지역의 농촌 스케치에 실린 정겨운 고향의 풍물들, 정통성이 훼손되기 전 우리 문화 유산과 문화재 등 다양했다. 복원되기 직전의 경주 석굴암 본존불,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서울 뚝섬과 나주 가마니 공판장 등 전국을 누비면서 찍은 사진들은 전시된 사진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것으로, 다큐사진 작가로써뿐 아니라 예술작가로써의 평가가 수반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해준다. 한편 이경모 선생은 이화여대, 서라벌예술대, 동신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카메라 수집가였다. 그 역사의 편린들은 1996년 동신대 영상박물관이 세워지면서 집대성됐다. 선생은 국내 카메라 제작사인 대그룹의 유혹을 물리치고, 사진예술의 후진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 내에 카메라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모든 사진 관련 소장품을 기증했다. 만년에는 젊은 시절의 다큐사진들을 모아 두 권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이경모 사진집’을 펴내 자기정리도 마무리했다. 변변한 사진집 한 권 갖지 못한 작가들이 상당수인데 비해 이런 자기정리는 큰 행운이다. 또 사진집이 나오면서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92년)을 받았고, 백상출판문화상을 두 차례(90, 96년) 수상했다. 한국 다큐 사진의 시조로 평가 받아온 선생은 일흔 다섯의 나이로 지난 2001년 5월 17일 타계했다.
170    그림으로 보는 **主義 댓글:  조회:2533  추천:0  2016-01-05
    고전주의   18세기 중엽 이후가 되자 음악·회화·조각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통일성 ·이론성의 주장이 일어났으며,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오스트리아 고전파 음악, J.L.다비드, J.A.D.앵그르 등의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시대가 출현하였다. 그러나 예술을 갖가지 미(美)의 법칙으로 규제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였으므로, 19세기부터는 보다 자유롭고 정서적인 낭만주의가 대두되었다. 고전주의는 후에 생겨난 많은 예술사조의 한 정점을 이룬다. 조화 ·균정(均整) ·명석(明晳)함을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사조를 추구.           낭만주의   18세기에 주요한 유럽 국가들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확립된 고전주의를 일반적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이성(理性)을 인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계몽주의의 지배를 받았다. 고전주의는 보편절대적인 미(美)의 관념에 입각하여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복잡보다 간명(簡明)함을,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토속성보다 도회성을, 노골적인 것보다 우아함을, 파격보다 균제(均齊)를 중시하는 귀족문화였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이 되면서 절대왕정의 이완 및 부르주아지의 발흥과 함께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욕구가 분출하는 한편, 계몽주의 그 자체에서도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면이 드러나자 지금까지 경시되었던 감각현상들에서 인간성의 진실을 찾음과 동시에 고전주의가 모범으로 삼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고대(古典古代)로부터 자국의 과거로 눈을 돌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문화의 원천을 찾으려는 기운이 일어났다. 이 무렵에 일어난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사람들의 마음에 환멸감을 일으켰다.          사실주의   미술 ·문학에서 이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은 A.콩트가 주창한 실증주의의 영향과 함께 이상주의적 계몽주의와 환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19세기 중엽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예술운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중세 유럽에서도 낭만적 ·공상적 소설과 함께 사실적이며 풍자적인 우화시(寓話詩)나 《여우 이야기》와 같은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예술유파로서 확실하게 사실주의가 나타난 것은 19세기이며, 먼저 회화부문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G.쿠르베가 당시의 아카데미즘 화풍에 반항하여, 돌 깨는 작업이나, 목욕하는 여인 등 지극히 현실적인 그림을 사생(寫生)하였으며, 특히 유명한 《오르낭의 매장(埋葬)》(1850)과 같은 작품으로 사실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제자에게 “천사를 본 일이 있는가. 그대 아버지를 보고 그려라” 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쿠르베의 친구인 샹플뢰리가 문학의 영역에서 사실주의를 주장한 것이 프랑스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투쟁의 시초라고 한다.                 자연주의   자연을 유일의 현실로 간주하는 입장. 원래는 철학 용어이지만 1870년 이후 문학, 미술 등 예술 분야를 지배한 사조를 가리킨다. 사실주의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 제시하고자 하였다면 자연주의는 대상을 자연과학자 또는 박물학자의 눈으로 분석, 관찰, 검토, 보고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모든 자연 현상은 과학적으로 논증될 수 있다는 철학의 한 분파를 설명해 주며 또한 개인의 운명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던 문학의 학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결과 자연주의 작가들은 인물이 어느 정도 야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하면서 개인을 내적 혹은 외적 힘의 희생자로 그린다. 자연주의는 야비한 일상적 현실을 묘사한 극단적 사실주의의 한 형식이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가 이러한 학파의 중요 인물이었고 졸라를 추종한 사람들로는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무어(Edward Moore), 조지 기싱(George Gissing), 미국 작가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와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가 있다.                
169    땡! 땡! ㅡ 또 미술시간?... 댓글:  조회:2525  추천:0  2016-01-02
  다시 한번 명화속의 고양이를 감상해보아요~     [출처] 명화와 고양이 2탄|작성자 keroro  
168    땡! ㅡ 야,- 재밋있는 미술시간이다... 댓글:  조회:2423  추천:0  2016-01-02
                                                               
167    "중국 솔제니친" - 시인 北島 // 벼락 10만개... 댓글:  조회:2478  추천:0  2015-12-02
  중국 현대 최고 10 대 시인 ㆍ문학지 ‘종산’ 10대 시인 선정 발표     ‘중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베이다오(北島·61)가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선정됐다.    중국 장쑤성 작가협회가 발간하는 중국문학지 ‘종산(鍾山)’ 최근호는 1979~2009년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을 대상으로 ‘중국 10대 시인’을 선정한 결과 베이다오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교수·시인·평론가 등 12명으로 구성된 중국 10대 시인 선정위원회는 베이다오를 만장일치로 현존 중국 최고시인으로 추천했다. 2~10위에 오른 시인은 시촨(西川), 위젠(于堅), 자이융밍(翟永明), 창야오(昌耀), 하이쯔(海子), 어우양장허(歐陽江河), 양롄(楊煉), 왕샤오니 등이다.   베이다오는 사회주의 선전문학에 반대하며 개인의 서정과 감정을 중시하는 현대 중국 ‘몽롱파’ 문학의 대표자로 꼽힌다. 베이징 출신인 그는 1978년 시인 망커(芒克) 등과 함께 시전문지 ‘오늘(今天)’을 창간하며 중국 내 시 창작운동을 이끌었다. 인권운동에도 참여한 베이다오는 89년 톈안먼 사태에 연루돼 90년대에는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홍콩 중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나 아직도 중국 본토 방문은 금지당하고 있다.   자오전카이(趙振開)가 본명인 베이다오는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든 서정시를 발표해 92년을 비롯해 몇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베이다오의 작품은 낭송하기가 쉬워 독자층이 많다. 그가 30여년 전에 쓴 정치서정시 ‘대답(回答)’의 첫대목 ‘비루는 비루한 자의 통행증이고, 고상은 고상한 자의 묘지명이다’는 구절은 지금도 중국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또 본문이 ‘망’(網)이라는 한 글자로 이뤄진 ‘생활’이란 제목의 시는 독특한 발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이 시에 대해 “생활의 그물은 속박에서 나오고, 속박은 희망의 그물 구멍을 만들어 낸다”며 “시인은 묶인 그물 안에서 그물 구멍을 통해 희망을 찾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베이다오의 시집 등이 국내에 번역돼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편이다. 그는 창원시가 제정한 ‘창원 KC 국제시문학상’의 수상자 자격으로 한국을 다녀간적이 있다.   벼락 10만개 내리꽂은 호주 브리즈번…'세상 종말인줄'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한 여름으로 접어든 호주에서 보기 드문 무더기 천둥번개가 내려쳤다. 호주 퀸즐랜드주 남동부 지역에 뇌우가 집중. 퀸즐랜드주의 주도인 브리즈번 일대에는 무려 10만7000회이상의 번개가 내려쳤다.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 2015년 12월 02일 12시 10분 ]      
166    그림속의 실제사람?!... 댓글:  조회:2114  추천:0  2015-12-02
그림속에 실제사람이 숨어있다고? 찾아보세요~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2015년 12월 02일 10시 20분 ]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현재 베이징에서 행위 예술가 활동 중인 리우 불린(42)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란 애칭을 얻을 정도로 수준 높은 활동을 대중에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경북 칠곡군 어르신들께서 뒤늦게 한글을 배운 뒤 쓴 '시가 뭐고?' ㅡ 詩集 출간    
164    빼돌구두 신고 외줄타기 / 180메터 고공 유리현수교 요가쇼 댓글:  조회:2556  추천:0  2015-11-27
[ 2015년 11월 12일 08시 00분 ]     [ 2015년 11월 12일 08시 00분 ]     [ 2015년 11월 12일 08시 00분 ]        2015년 11월 12일 08시 00분      미국 출신 여성 모험가가 하이힐을 신고 외줄을 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중남부 오스틴에 사는 외줄 타기 세계기록 보유자 페이스 디키(26)가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외줄 타기에 도전. 페이스는 브라질 국립공원 ‘가베아 산’에서 하이힐을 신고 무려 840m 상공에서 외줄 타기에 성공. ============================================================================================= [ 2015년 11월 11일 03시 09분 ]   [ 2015년 11월 11일 03시 09분  ]   [ 2015년 11월 11일 03시 09분 ]           [ 2015년 11월 11일 03시 09분 ]     [ 2015년 11월 11일 03시 09분 ]           100여 명 요가 애호가들 요가쇼 = 후난(湖南) 핑장(平江) 스뉴자이(石牛寨)에서.
163    쉬여가는 페이지 - 3D그림 댓글:  조회:2397  추천:0  2015-11-27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 2015년 11월 10일 10시 37분 ]       남아프리카 화가 Iantha Naicker는 아크릴물감과 흰색 중성팬으로 자신의 손바닥에3D 그림을 그려 선보였다. 그는 매일 3-4시간을 리용해 손에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 원숭이, 참대곰, 나비 등을 그리는데 마치 살아숨쉬는듯이 생동했다.
162    三色 /// 영화 < 시 詩 > 댓글:  조회:2412  추천:0  2015-11-27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조회:2143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 2015년 11월 16일 07시 33분 ]       영화    -시詩poem가 죽어가기에     시詩poetry가 필요한 것이다...   이창동의 5번째 영화    제목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참으로 많은  의문이 들었죠. 이 영상 시대에 낡아빠진 저 문학 제목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지? 이창동의 는 도도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빠른 흐름 위로 떠내려오는 시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이야기하겠다면서,  오프닝 장면으로 교복 입은 여중생 시신이 떠내려오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 영화가 시에 대해 만만치 않은 시비를 걸 것임을 예고합니다.      1. 미자가 시 쓰고 싶은 생각이 난 것은   이 영화에서 미자(윤정희)는 시를 상징합니다.   아름답지만 추문이 되어버린 시 말입니다. 시와 시인의 말에 호감도 갖고 경청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만 이내 본색을 드러내어 시와 시인을 비웃고 업신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는 살아야 합니다.  아니, 시인은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미자의 삶은 시이고 미자는 시인입니다. 미자의 복장은 형편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복장만 고려한다면, 그녀는 넉넉한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반신불수 노인 환자(김희라) 간병인입니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는, 방금 전 본 꽃의 향기가 눈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중풍 환자를 목욕시켜야 합니다. 중풍 환자는 66세인 그녀를 여전히 성적인 눈으로 바라봅니다. 자신의 성기를 그녀가 눈여겨 보아주기를 희망합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좀더 자극적으로 쾌감 전달에 동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느라 안간힘 쓴 시선으로 그녀를 응원합니다.      그녀는, 물론, 그 시선을 외면합니다. 외면하지만 애써준 대가로 그녀는 중풍 환자로부터 팁 만 원을 받기도 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보조금도 받는다는 미자란 시 써서는 도저히 생활 불가능한 시인의 현실에 대한 환유입니다.   실어증으로 시작하는 오프닝도 환유입니다. 실어증에 걸려버린 미자란 실어증에 걸려버린 시를 말하는 것일 테니까요. 치유 불가능하리만치 속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시는 더이상 할 말을 잃었다고나 뜻일까요? 언어가 생명인 시가 언어를 잃었으니, 시는 끝장난 것이라 해야 하나요? 그녀는 혼자 삽니다. 남편에게서 낳은 것인지, 미혼모로 낳은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산에 사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미자는, 그 딸이 낳은 중학교 3학년인, 외손자와 삽니다. 미자의 손자 또한 남편에게서 낳은 것인지, 미혼모로 낳은 것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 보살펴 주어도 늘 욕구불만일 뿐이며 짜증만 부리려 드는 손자와 함께 삽니다. 누추한 것은 그녀가 사는 집만이 아닙니다. 도시를 닮아갈 뿐 여전히 시골일 뿐인 미자가 사는 마을이란 남자 중학생 6명이 6개월에 걸쳐 여자 중학생 한 명을 집요하게 성폭행한 곳입니다. 미자가 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시간이 바로 이때입니다.   마침내 성폭행당한 여자 중학생이 자살을 선택한 시간입니다. 미자의 병이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진단 결과가 난 시간입니다. 영화 에서 줄리엣 비노쉬는 자기 시력이 상실되고 있음을 인지해버리는 시간에 르부르박물관에 걸린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습니다.  아주 안 보이기 전에 말이죠. 똑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미자의 소망 또한 거기서 멀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명사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그 시간에  아직 동사를 잃어버리기 전인 시간에  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합니다.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명사와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동사의 상태에 미자는 있습니다.  이 난폭한 시대에,  시는 왜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하는가를 미자의 병은 알려줍니다. 이 난폭한 시대에, 시는 왜 아름다움을 상실했는가를 미자의 병은 알려줍니다. 이창동이 자신의 다섯번째 영화에다 제목을 주면서 시詩라고 할 때 그것은 왜 시 poem가 아닌 시 poetry로 기입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2. 미자가 시강연 현장에서 알게 된 것은    미자가 듣고 싶어하는 시강좌는 이미 마감 상태였습니다. 시인의 첫 시강연도 이미 시작된 그 시간에 갑자기 그 강연이 듣고 싶어 그녀는 문화강좌 실무자에게 사정사정하여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녀가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칠판에는 강연자인 김용탁(김용택 시인)이 써놓은 것으로 보이는 詩라는 한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詩 poem에 대한 설명은 못 들은 셈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 poetry에 대한 설명은 듣게 됩니다.  '보다'에 대해 듣게 된 것이죠. 그것은, 시를 쓰기 위한 첫과정과도 같은 '보다'에 대한 설명이었죠. 그것은, 그녀의 66세까지를 가리켜  아직 한 번도 진정한 '보다'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보다'에 대한 설명이었죠.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 대단한 보다를 그녀는 실천하고 싶어 합니다.  시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그녀는, 시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강의를 듣고서야, 그녀는, 싱크대 설거지통도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시상을 얻기 위해서요. 소문처럼, 시가 오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요. 가르침처럼, 시를 찾아가기 위해서요. 그러나 시 찾아나서기의 결과는 참담합니다. 진짜 보기를 실천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게 되지만 그 호기심은 이내 비웃음과 업신여김으로 돌아옵니다.  동네 할머니는 그녀의 '진짜 보기'를 실성으로 여깁니다. 진찰실에 있는 동백꽃을 보며 그 붉은 빛의 꽃말을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담당 의사는, 시인이냐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의사는 그 꽃이 조화임을 잔인하게 가르쳐 줍니다. 어휘를 잃어버리고 있는 주제에 무슨 시쓰기냐는 조롱일까요? 시쓰기에나 골몰하고 있기 때문에 어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풍자일까요? 시를 쓰고 싶게 된 미자와 치매가 시작된 미자는 전혀 별개의 인물로 보이지만 오늘날 시가 놓인 현실을 돌아볼 때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3. 미자가 시낭송 현장에서 알게 된 것은   시쓰기에 대한 미자의 목마름은 우연히 알게 된 시낭송 정기 발표 동호인 모임 현장까지 찾아가게 합니다. 그녀가 거기서 듣게 되는 유명시인의 시는 두 종류였습니다. 하나는 너무 어려워 알 수 없는 시죠.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 죽어버려라" - 그리운 부석사, 정호승   다른 하나는 너무 쉽지만 도무지 시같지 않아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시죠.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어려운 시든 쉬운 시든 시는 거기 시낭송회 현장에서 추문이 되어버립니다.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보다  발표자가 시낭송을 막 끝낸 다음 시작하는 음담패설에 시낭송 동호인들이 더 솔깃함을 느끼는 순간 시는 거기서 사망을 선고 받게 됩니다. 미자가 참석한 시낭송 현장에서는 아마추어가 쓴 시도 낭송됩니다. 예쁘기만한, 현실과 유리된 말장난 같은 시들 말입니다. 그리하여 미자는 시낭송회 회원에게 말합니다. 시사랑 현장이 마치 시가 모욕당하는 자리 같다고요. 미자가 시낭송회 현장에서 알게 된 것은  시가, 시답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답지 않게 말초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 가 본 시낭송회 동호인 뒤풀이 현장에서 잠깐 빠져나와 어두운 구석에서 미자가 청승맞게 울고 있는 까닭은 시의 장례식장에 가서야 비로소 시의 부고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음담패설하던 남자의 말이 맞네요. 울고 있는 미자에게 남자는 말했었죠. "왜 울어요? 시 때문에 울어요?"   4. 미자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미자가 듣는 시강연 내용 중에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수강생이 이야기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시를 찾아 모인 사람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꼽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슬픈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은 기쁨보다 슬픔 쪽에 더 가까이 있는 눈물입니다. 미자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녀는, 어처구니 없게도, 3살 때의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자기에게 옷을 입혀주고는  "미자, 예쁘구나!"라고 칭찬해 주고는 "미자야, 이리 와!"라고 박수 치며 부르던 언니와의 추억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꼽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입니다. 철없는 할머니처럼 보이는 미자의 66년이 어떤 시간으로 쌓인 것인지를 단숨에 요약해버리는 장면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거기 시강연 현장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애써 말하는 이 장면은,   아름다운 순간이 꼭 있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그 긴 시간 동안 아름다움이라고는 전혀 혹은 거의 없는 삶을 살았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순간을 애써 찾아내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아니, 그 아프고도 슬픈 사연을 아름답게 길어올리는 그 순간이야말로 시가 찾아온 시간임을 알게 합니다. 시란, 현실과 삶으로부터 빠져나온 아름다움 달랑인 것이 아니라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감싸는 마음의 힘임을 알게 합니다.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는 현장에 정작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이 아픔과 슬픔의 시간인 것입니다. 시가 간신히 껴안은 아픔과 슬픔을 헤아리려는 공감 없이 포즈만의 아름다움만을 달랑 소비하려 할 때 시는 왜 음담패설과 만나 자진해서 확인 사살당하기를 선택하고 있는가를 이 영화 는 보여줍니다.  시사랑의 진정한 자리가 왜 시낭송 뒤의 음담패설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고백하는 자리 뒤이어야 하는지를 이 영화 는 보여줍니다. 시에서 아름다움만을 소비하려 할 때 시를 쓰지 못하던 미자 66세가 사랑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63년을 아프게 더듬은 뒤에야 비로소 시를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시가 죽어가는 난폭한 시대에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5. 미자에게,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을 애써 찾던 미자는 아프고도 슬픈 자리를 찾아갑니다. 자살한 여중생이 머물렀었던 곳으로 알려진 자리를 하나하나 찾아갑니다. 학교 외진 곳에 있다는 과학준비실에 애써 찾아가  성폭행이 있었던 자리가 어디쯤인지 그 현장을 창문으로 들여다봅니다. 중학교 3학년밖에 안 되는 자기 손자가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바지를 내리고, 키득키득거리며, 어쩌면 비명 소리 내려는 여중생의 입을 위협적으로 막아 쥐고는 단지 넣고 빼는 것일 뿐이었을 건조한 반복 행위를  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를 찾으려 합니다.  무엇에 홀려 그토록 끔찍한 동작을 하게 된 것인지를, 거기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거기는, 황량합니다. 먼지 묻은 채 굳은 얼굴일 뿐인, 이젠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과학 실습 도구함이  미자의 시선을 안타깝게 감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거기는, 중학생밖에 안 되는 여자 아이의 치마가 절대로 벗겨져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아니, 벗겨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되지 않는 낯 뜨거운 자리에 미자는 와 있습니다. 5명 남자 중학생 아버지들이,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피해자 엄마에게 얼마만큼의 위자료를 건네면 입막음할 수 있을까를 합동으로 고민하는 시간에 미자는, 자살한 여중생이 다녔다는 성당에 갑니다. 거기서, 미자는, 자살한 여중생 박희진을 위한 기도의 자리에 멀리서나마 함께 합니다. 거기서, 미자는, 자기 손자가 성폭행한 박희진의 얼굴과 사진으로나마 만납니다.  그 아프고도 슬픈 얼굴과 처음으로 만나 그 아프고도 슬픈 얼굴을 훔쳐 옵니다. 아마도 66년의 시간 동안 처음 있었을 '훔치다'였을 것입니다.   미자는, 교복 입은 박희진의 사진을 식탁에 놓아둡니다. 손자가 도저히 못 볼 수 없는 곳에 놓아둡니다. 그러나 손자는 잠깐, 찔끔, 했을 뿐입니다.  자기가 성폭행 한 여자의 얼굴이 한 번이 아니라 6개월에 걸쳐 자기가 성폭행 한 여자의 얼굴이 성폭행당하고도 가해자인 자기를 처벌해 주기 원하는 투서나 유서따위 없이  자살을 택한 여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서 두 눈 뜨고 쳐다보고 있어도 손자는, 재수 없다는 표정일 뿐입니다. 밥맛 달아났다는 표정일 뿐입니다.  무심하게, 리모콘 잡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텔레비전을 켤 뿐입니다.  아프고도 슬픈 얼굴로 남아야 할 피해자에 대한 애도는커녕 자책도 없습니다.  예전이라면 미자는 이 추문이 된 현실로부터 빨리 시선을 옮겨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미자는 손자로부터 시선을 옮기지 않습니다.  한때 "네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게 할머니의 가장 큰 행복이야."라고 말해 주었던 그 손자가, 어떻게 저 손자이어야 하는 것인지를 의아하게 바라봅니다. 미자가 처음으로 쓴 시는, 아마도, 그 아프고도 슬픈 얼굴인 박희진의 집을 찾아간 다음일 것입니다. 그 아프고도 슬픈 얼굴로 남은 박희진이 뛰어내린 남한강 다리 중간쯤을 둘러본 다음일 것입니다. 아니, 반신불수 노인이 간절하게 요청했지만 거절했던 '남자 구실'이라는 것을 들어준 다음이었을까요? 영화는, 미자의 시가 그 무엇의 다음에 이루어진 것인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프고도 슬픈 얼굴로 남은 여자 아이의 자살에 대해 쓰고 있는 그녀의 시는 아프고도 슬픈 애도를 늦게나마 주고 싶어 하는 미자의 몸던짐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자가 처음으로 쓴 시는, 그녀가 66세 되도록 알고 있었던 시형태인 아름다운 포즈가 아니라 그녀가 66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된 또다른 시형태인 아픔과 슬픔의 직시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미자의 시는, 5명의 아버지들과 미자가 분담하여 마련한 3000만원이 동석해 있는 피해자 어머니에게 전해지는 그 아프고도 슬픈 시간 직후에 작성됩니다. 미자의 시는, 피해자 어머니와 5명의 아버지와 학교 관계자와 경찰 관계자와 지역신문 기자가 5명 남자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거국적인 침묵을 약속하는 아프고도 슬픈 시간 직후에 작성됩니다. 그러므로 미자의 현실과 미자의 시는 모순입니다. 미자의 현실은,  입막음하기 위해 건네진 3000만 원의 육분의 일만큼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미자의 시는, 그 입막음에 해당하는 범죄 사건을 발설해버립니다. 치매 걸려버린 정신 나간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미자의 시는, 미자가 사라지고 없는 자리에 비로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실어증 걸려버린 미자의 시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쓰기 직전의 미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미자는 여중생 성폭력 은폐 현장 마지막인 자리에서 울고 싶은 얼굴로 빠져나오기 직전에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걸로 다 된 것인가요? 완전히 끝난 것인가요?"라고요. 아무도 못 알아 들었지만, 이 물음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정작 죽은 여자 아이를 위한 애도는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해자인 남자 아이들의 폭력은, 아직 어린 철 없는 것들이 저지른 폭력이므로, 그래도 그것들의 장래를 위해 아버지들이 대동단결 합의하여 없었던 일로 한다 해도, 죽은 여자 아이의 애통한 자살은 누가 위로해 주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어머니마저도, 죽은 여자 아이의 자살을 단지 3000만 원 수령만으로 맞바꿔버린다면 아무도 모르는 죽은 여자 아이의 자살은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자의 시는, 자살한 여자 아이의 죽기 전과 죽은 후의 아프고도 슬픈 현장에 대한 애도입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여자 아이의 상처뿐인 자살을 아버지 없이 딸을 키워냈으나 또다시 아버지 없는 손자를 보게 된 미자 자신의 상처로 껴안아 죽기 직전에 마주했을, 죽은 여자 아이의 두려움을 늦게나마 다독거려주는  아프고도 슬픈 현장에 대한 애도입니다.    여중생이 피 흘린 자리에, 미자 자신의 피 흘리고, 자기 손자의 피 흘리게 해 아무도 자기 피 흘리지 않고 남의 피 흘리게 하는 아 프고도 슬픈 현장에 대한 애도입니다. 미자의 66년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뜨거웠을 시간에 대한 기록, 그것이 바로 미자의 시詩 입니다.     -글, 태양을 쏘다
161    外訊이 꼽는 중국 최고의 아름다운 경치 댓글:  조회:2399  추천:0  2015-11-27
외신이 꼽은 중국 최고의 아름다운 경치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 2015년 11월 26일 09시 55분 ]           중국은 지구상에서 국토가 가장 넓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 중 하나. 영국 데일리 메일 홈페이지 관광 채널이 최근 공개한 장관을 이루는 사진은 중국의 상상 불가능한 극치의 아름다운 경치를 담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인민망   
160    음악에서 령감을 얻은 그림들 댓글:  조회:2243  추천:0  2015-11-27
[ 2015년 11월 26일 11시 01분 ]   [ 2015년 11월 26일 11시 01분 ]       [ 2015년 11월 26일 11시 01분 ]     [ 2015년 11월 26일 11시 01분 ]           [ 2015년 11월 26일 11시 01분 ]     [ 2015년 11월 26일 11시 01분 ]         칠레 산티아고에서 교육기관 'AIEP'의 예술학도들이 유명 음악가들에게서 령감을 받아 제작한 보디페인팅 디자인을 100여 명의 모델들에 그려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은 학생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모델. 
159    紀念堂 뒷얘기... 댓글:  조회:2508  추천:0  2015-11-27
[ 2015년 11월 27일 08시 39분 ]   [ 2015년 11월 27일 08시 39분 ]     [ 2015년 11월 27일 08시 39분 ]     [ 2015년 11월 27일 08시 39분 ]   [ 2015년 11월 27일 08시 39분 ]         모주석기념당은 국내 최고공정사와 기술인원의 심혈이 기울여져있을뿐만아니라 거의 모든 당과 국가령도들이 공사중 로동에 참가했다. 옛 사진들은 우리들에게 모주석기념당이 어떻게 건설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1976년 11월 24일, 북경의 로동자들, 농민, 인민해방군 등 각계대표 팔천여명이 모주석기념당 정초식에 참가한것으로 알려졌다.
158    에크뭐니야~ 내 돈?! 댓글:  조회:2439  추천:0  2015-11-27
땅속에 묻어둔 현금 3만5천원... [ 2015년 11월 27일 09시 01분 ]   [ 2015년 11월 27일 09시 01분 ]     [ 2015년 11월 27일 09시 01분 ]       사천성 덕양(德阳) 중강현(中江县)의 67세의 오할아버지는 은행에 돈을 저금하는게 귀찮고 비밀번호 또한 기억하지 못할가 두려워 3만5000원의 현금을 땅속에 묻어두었다. 이 돈은 할아버지가 물고기를 잡아 모은 돈과 양로보험금이였다. 최근 할아버지는 땅쏙에 5~6간 파묻어둔 돈을 꺼내보니 '에크뭐니~"반넘어 못쓰게 된게 아닌가.  은행직원들이 밤을 패가며 돈을 한쪼각한쪼각 붙인결과 겨우 2만여원을 건졌다.
157    재밋는 사진 몇컵 댓글:  조회:2799  추천:0  2015-11-22
  원본보기                  
156    세계편견(偏見)지도 댓글:  조회:2954  추천:0  2015-11-06
[ 2015년 11월 05일 09시 52분 ]                                                                             볼가리아 촬영사 Yanko Tsvetkov가 '기상천외'생각으로 각 국가를 부동한 각도로 정의한후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의 행정구역을 묘사한  "세계편견지도(世界偏见地图)" 화책이 출간
155    순간포착... 댓글:  조회:3514  추천:0  2015-10-18
  ** 웃기는 유머 엽기 모음    이게 옷입니까? 터졌는지? ..터진 옷을 입고 나왔는지?? ㅋㅋㅋㅋ  * * * * 훤한 대낮에 제 정신인지? 이래서 여름이 싫다니까요!(?) ㅎㅎㅎㅎㅎ 사실은 좋지만...ㅋㅋㅋ * * * * *   내껀 내가 본다 * *   이룰수 없는 사랑   * * 비나이다 비나이다 * * 어린눔이 * *                       전철역이름도가지가지    친구따라 가는    강남역    가장 싸게 지은    일원역    양력 설을 쇠는    신정역  숙녀가 좋아하는    신사역    불장난하다 사고친    방화역    역 3개가 함께 있는    역삼역  실수로 자주 내리는    오류역    서울에서에서 가장 긴    길음역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일산역    이산가족의 꿈을 이룬    상봉역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축역    어떤 여자라도 환영하는    남성역    앞에 구정물이 흐르는    압구정역    미안하네 그만 까먹었네    아차산역    타고있으면 다리가 저린    오금역    장사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문역    분쟁시 노사 간에 만나야하는    대화역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역  마라톤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월계역    그대 의견을 꼭 들어 주겠소    수락역    스포츠 경기 때마다 바빠지는    중계역    길 잃어버린 아이들이 모여있는    미아역    ‘양치기 소년’의 주인공이 사는    목동역   새벽부터 빈 물통 ?  사람들이몰려든  약수역    역내 화장실에 항상 뜨거운 물이 나오는    온수역    학교가기 싫어하는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학역    표검사뿐만 아니라 짐까지    속속들이 검사하는      수색역    구겨졌던 옷이 내릴 때 보니    말끔히 퍼져있는    대림역    대학도 아닌 역이 대학근처서  대학인 척하는    낙성대역      기초적인 바둑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  오목교역      맹자,공자,노자 등 성인들이 사는    군자역      젖먹이 아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유역        영화감독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개봉역      수도를 틀어도 석유가 나오는    중동역              사인 좀 해주세요     730 ) this.width=730;" border="0" height="369" src="http://club.clubfos.com/mansal/data/__126882116731944.jpg" style="cursor: pointer;" width="512" />         으메~얼마나 갈증이... ㅎㅎㅎ       아~항 **남자가 그리워 ㅎㅎㅎ     아그들아 난 독수공방 10년째라우.. 에~구     녹을때까지 운행정지       이 보다 더 신선한 우유는 없다   급한걸 어쩌.....   할배야 !    여기가.....   習字 ?          순간포착.....              
154    아이폰으로 찍다... 댓글:  조회:3119  추천:0  2015-10-16
웨이스트 레빌로 아이폰5 사용,  꿈결같은 장면 촬영.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올해의 작가 1등상 수상작. Michał Koralewski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올해의 작가 2등상 수상작. David Craik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올해의 작가 3등상 수상작. Yi-Chieh Yvonne Lu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어린이 부문 2등상 수상작. Aung Pyae Soe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여행 부문 2등상 수상작. Robert Radesic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기타 부문 1등상 수상작. Jose Luis Saez Martinez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피플 부문 1등상 수상작. Jose Luis Barcia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플라워 부문 1등상 수상작. Amy Paterson 8회 아이폰 포토그래피 어워즈 음식 부문 1등상 수상작. Xu Lin
153    시와 서예작품 댓글:  조회:4167  추천:0  2015-10-13
서예작품 모음 제4부 /춘강 서 愛蓮說(애련설) 6폭병풍/춘강서       愛蓮說(애련설) 水陸草木之花,(수륙초목지화)可愛者甚蕃,(가애자심번) 晉陶淵獨愛菊,(진도연독애국) 自李唐來世人甚愛牧丹,(자이당래세인심애목단) 予獨愛蓮之,(여독여련지) 出於淤泥而不染,(출어어니이불염)濯淸漣而不妖,(탁청연이불요) 中通外直不蔓不枝,(중통외직불만불지)香遠益淸亭亭淨植,(향원익청정정정식) 可遠觀而,(가원관이) 不可褻翫焉(불가설완언) 予謂,(여위) 菊花之隱逸者也,(국화지은일자야) 牧丹花之富貴者也,(목단화지부귀자야) 蓮花之君子也,(연화지군자야) 噫,(희); 菊之愛陶後鮮有聞,(국지애도후선유문) 蓮之愛,(연지애) 同予者何人,동여자하인) 牧丹之愛,(목단지애) 宜乎衆矣,(의당중의) [해설] 수륙에 사는 초목의 꽃으로서 사랑스런 것이 매우 많지만 진나라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했고 이 씨의 당나라 이후로는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목단을 사랑하지마는 나 홀로 연의 다음과 같음을 사랑 한다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넝쿨지지 않고 가지도 생기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고 정정하게 깨끗이 서서 멀리 바라 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 한다. 나는 말하 노라, 국화는 꽃 중에 은일자요, 목단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라, 아-: 국화를 사랑했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로 듣기가 드물고 연꽃을 사랑했다는 말은 나와 같은 자가 그 누구일까? 모란사랑을 하는 사람은 마땅히 많으리라. [출전; 고문진보] 지은이;周茂叔[주돈이] 水調歌頭(수조가두),蘇軾詩(소식시) 明月幾時有(명월기시유):밝은 저 달님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把酒問靑天(파주문청천):술잔 들고 저 푸른 하늘에게 물어본다. 不知天上宮闕(부지천상궁궐):하늘세상 궁궐은 今夕是何年(금석시하년):오늘 저녁은 어느 해일까? 我欲乘風歸去(아욕승풍귀거):바람 타고 하늘 궁궐 돌아가고 싶지만 唯恐瓊樓玉宇(유공경루옥우):아름다운 옥 누각, 高處不勝寒(고처부승한):저 높은 곳 추울까 두려워라 起舞弄淸影(기무농청영):춤추며 맑은 그림자 너울거리니 何事在人間(하사재인간):어찌 이 세상에 사는 것만 하랴. 轉朱閣(전주각):붉은 누각 돌고 돌아 低綺戶(저기호):아름다운 창가에 다가와 照無眠(조무면):잠 못 이루는 사람 비춘다. 不應有恨(불응유한):달님은 나하고 원한이 없어련만 何事長向別時圓(하사장향별시원):어이하여 언제나 헤어져 있을 때 둥근 걸까? 人有悲歡離合(인유비환이합):인간에게는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기쁨이 있고 月有陰晴圓缺(월유음청원결):달에게는 맑고 흐리고 둥글고 이지러질 때가 있으니, 此事古難全(차사고난전):인생이란 자고로 좋은 일만 있기 어려운 법. 但願人長久(단원인장구):다만 우리 모두 오래오래 살아서 千里共嬋娟(천리공선연):천리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저 달님 구경할 수 있기를...                       將進酒(장진주),李白(이백)/춘강 서         將進酒(장진주)술 한 잔 받으시오,李白(이백) 君不見(군불견):그대여! 보지 못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황하지수천상래):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분류도해불복회):바다로 내 닫아서는 돌아오지 않았음을! 君不見(군불견):그대여! 보지 못 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고당명경비백발):고대광실 밝은 거울에 비친 서글픈 백발,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아침에 검은머리 저녁때 백설 됨을!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인생 젊어 득의 찰 때 즐기기를 다할지니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금 술통 헛되이 달빛아래 두지 말지어다.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하늘이 나를 이 땅에 보낸 것은 쓸모가 있었음인데,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돈이야 흩어졌다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니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락):염소 삶고 소 잡아 맘껏 즐겨 보세나! 會須一飮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한번 마시기로 작정하면 삼백 잔은 마실 일 岑夫子丹丘生(잠부자단구생):잠부자여! 단구생아! 將進酒杯莫停(장진주배막정):술 권하거니 잔 멈추지 말고 與君歌一曲(여군가일곡):노래한곡 부를 테니 請君爲我側耳聽(청군위아측이청):귀 기우려 들어주게 鐘鼓饌玉不足貴(종고찬옥부족귀):고상한 음악 맛있는 음식 귀 할 것도 없으니 但願長醉不願醒(단원장취불원성):다만 원커니 이대로 취하여 부디 깨지 말기를! 古來聖賢皆寂寞(고래성현개적막):예로부터 성현들도 지금 모두 사라져 없고 惟有飮者留其名(유유음자유기명):오로지 술 잘 마시던 이들의 이름만 남았다네. 陳王昔時宴平樂(진왕 석시 연 평 락):그 옛날 진사왕이 평락관에서의 연회 斗酒十千恣歡謔(두주십천자환학):한말에 만냥 술로 질펀히도 즐겼다네.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여보시게 주인양반 어찌 돈이 모자라다 하나 徑須沽取對君酌(경수고취대군작):어서 가서 술 사오시게 같이 한잔 하자고야 五花馬千金裘(오화마천금구):오색빛 말과,모피옷 따위...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주):아이 불러 어서 술과 바꿔오시게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우리 함께 더불어 만고의 시름 잊어나 보세!     ☯염노교·적벽회고☯ 念奴嬌·赤壁懷古 宋(송) 東坡(동파) 蘇軾(소식) [起] 大江東去(대강동거))-長江은 동으로 묵묵히 흘러가고, 浪淘盡(랑도진)-물결따라 사라져갔네 千古風流人物(천고풍류인물):아득한 옛날의 풍류인물들.▶동으로 흐르는 장강의 물결은 옛 영웅의 흔적을 씻어 내려가고 故壘西邊(고루서변): 옛 성의 서편 人道是(인도시)-사람들은 이곳을 말한다 三國周郞赤壁(삼국주랑적벽)-삼국시대 周瑜의 赤壁大戰 터라고 ▶옛 보루의 서쪽을 사람들은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이었 다고 얘기한다 거대한 강 동으로 흘러 물결로 모조리 쓸어낼 듯 역사를 주름잡는 영웅들 옛 보루의 서쪽 사람들은 얘기하지,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이라고. [承] 亂石穿空(란석천운)-구름 뚫고 솟아 오른 절벽에 驚濤拍岸(경도열안)-기슭을 부숴 버릴 듯한 파도가 捲起千堆雪(권기천퇴설):천 겹의 물보라를 휘감아 올린다.▶난석은 하늘을 뚫고 성난 파도는 둑을 할퀴며 회오리는 눈보라를 일으킨다   江山如畵(강산여화)- 강산은 그림 같은데 一時多少豪傑(일시다소호걸)-한 시절, 호걸은 몇몇 이었던가! ▶ 강산은 그림과 같고 한때 얼마나 많은 호걸들이 있었던가 사방으로 뻗은 바위 구름을 찢고 성난 파도 강둑을 할키며 거대한 눈덩이를 말아 올린다. 강산은 그림같건만 피고 진 호걸들 얼마나 많았던가! [轉] 遙想公謹當年(요상공근당년):아득히 당시의 周瑜를 떠올리니 小喬初嫁了(소교초가료)-소교가 처음 시집왔을 때로 雄姿英發(웅자영발)- 영웅의 풍채가 당당했었네. 羽扇綸巾(우선윤건)-白羽扇에 비단 두건, 談笑間(담소간)- 담소하는 사이, 强虜灰飛煙滅(강로회발연멸)- 강력한 曹操軍隊 연기처럼 사라졌네. ▶ 주공근의 그 시절을 회상하니 소교와의 신혼시절 그 모습 영기 발랄하더라깃털 부채에 선비 차림의 제갈량과 담소하는 사이 적의 배들은 재가되고 연기가 되어 날아갔도다. (13字) [結] 故國神游(고국신유)-옛 전장터 누비는 상상의 날개, 多情應笑我(다정응소아)-다정 다감한 나를 비웃으리라 早生華發(조생화발)- 일찍 흰머리 난 것에. ▶마음은 옛 고향으로 내달리니 다정한 사람은 마땅히벌써백발이된 나를 비웃으리라. 人間如夢(인간여몽)- 인생은 꿈이거늘, 一尊還酹江月(일준환뢰강월)- 한 잔의 술, 강 위의 달에게 바친다. ▶인간세상이 꿈과 같으니 한 잔 술을 강물 위 달에 부어 바치노라. 고향으로 마음을 내달리면 다정한 사람은 마땅히 웃으리라. 벌써 백발이 났는가고, 인간세상이 꿈과 같으니, 또다시 한잔 술을 강의 달에 붓노라! 동파 소식은 시문학의 극성기 였던 당나라시데의 뒤를 이은 송나라 시대의 일므난 시인으로서, 당나라 시대의 시풍과는 다르게 송대 특유의 시풍을 완성시킨 인물로 손 꼽혀오고 있다. 소동파는 감성이나 분위기에 치우쳤던 당시(唐詩)와는 달리,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시 작품을 썻다. 그러 함에도 소동파의 시 역시 대부분은 개인적 서정을 읊거나 자연의 경치를 읊조렸으며, 그의 독특한 예술적 성취 또한 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개인적 서정을 읊은 시에서 인생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진지한 감정을 토로하였고, 자연의 경치를 노래한 시에서 시인으로서의 생활정취와 산수자연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또한 호방한 개성과 뛰어난 재기를 지녔던 그는 유·불·도의 사상을 고르게 수용한 거시적 인생철학을 구비하고, 시와 산문은 물론이고 송대에 새로이 흥성한 시가인 사(詞)와 전통시가의 하나인 부(賦)에 있어서도 제재(題材)의 무한한 확대를 이룩하여, 중국문학사상 가장 호방한 풍격의 작품을 지었다. 또한 이러한 그의 호방성은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詞)의 창작에서 특히 남김없이 발휘되었다. 그의 사는 호방한 표현에 사실적인 묘사를 구사하면서 거시적인 인생관을 그 안에 담고 있다. 그의 사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그가 "[적벽에서 옛날을 생각함"이라는 뜻으로 라고 부제목을 붙여 지은 <염노교(念奴嬌)>사(詞)가 위의 글이다. 이 라는 사(詞)에서 우리는 적벽대전에서 활약했던 주유와 제갈공명 등 영웅 호걸의 삶일지라도 장엄하고 영원한 자연에 비하면 한낱 보잘 것 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마디로 말한 그의 호방하고 거시적인 인생관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한 잔 술을 강에 비친 달 위에 부음으로써 영원히 자연에 귀의하려는 자신의 열망을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자연을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융화되고자 하는 인생관의 철학적인 배경을 깔아 지은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다. 이 작품을 기 승 전 결을 떠나서 상 하절로 구분하여 아래와 같이 감상 하여 볼수도 있다. 書法(서법)/춘강서 書法(서법) 作書不可不通篆隸(작서불가불통전예): 글씨 쓰기는 전서와 예서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데, 今人作書別字滿紙(금인작서별자만지): 요즈음 사람들은 글씨를 씀에 별의별 글자로 종이만 가득 메워 채울 뿐이다. 只緣未理其本(지연미리기본): 다만 그 근본 이치에는 이르지 못하고, 隨俗亂寫耳(수속난사이): 속됨을 따라서 어지러이 쓸 뿐이다. 通篆法則字體無差(통전법칙자체무차): 전서의 법에 통달하면 자체에 차이가 없게 되고 通隸法則用筆有則(통예법칙용필유칙): 예서의 법에 통달하면 용필에 법칙이 있게 되나니, 此正步(차정보): 이것이 (글씨를 배우는) 올바른 행보이다 참을인 忍/춘강서/참을인자의 비밀       참을인(忍) 자의 비밀...   참을인(忍)자는  칼도(刀)자밑에 마음심(心)자가  놓여있습니다   이대로참을인(忍)자를 해석하자면 가슴에 칼을얹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시퍼런 칼이 내가슴위에 놓여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가슴위에 놓인 칼에 찔지도 모를 상황 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와서 짜증나게 건드린다고 뿌리칠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수있겠습니까? 움직여봤자 나만 상하게됩니다.     하나는 일이생겨도, 감정이 밀어닥쳐도 죽은듯이 가만히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듯 참을인(忍)자는 참지 못하는자에게 가장 먼저 피해가 일어난다는 뜻을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평정을 잘유지할줄아는것이 인내입니다.   참을인(忍)자에는 또다른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의마음속에는 때로는 죽순처럼 아오르는것들이 있습니다   온갖미움, 증오, 분노, 배타심 그리고 탐욕들이 그러합니다.   이런것이 싹틀때마다 마음속에 담겨있는 칼로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내에는 아픔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고의 삶을 터득하는 사람에게는   그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인격이 주어질것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盡人事待天命/춘강서       快樂心經(쾌락심경)기분이 좋고 즐겁게 마음을 다스리는 말           快樂心經(쾌락심경)기분이 좋고 즐겁게 마음을 다스리는 말 每天唸三遍 快樂似神仙 (매천념삼편 쾌락사신선) -매일 세 번을 소리 내어 염송하면, 쾌락함이 신선같아 진다.- ①不埋怨要感恩(불매원요감은) -원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있어야 하고, ②不貪心要知足(부탐심요지족) -탐욕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려면,만족함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③不煩惱要樂觀(불번뇌요락관) -번뇌(마음의 괴로움)를 하지 않으며 낙관(즐겁게 여김)이 있어야 하고, ④不爭功要分享(불쟁공요분향) -공을 다투지 않으며 나누어 갖는 것이 있어야 한다. ⑤不記恨要寬恕(불기한요관서) -한을 기억치 않으며 너그럽게 용서함이 있어야 하고, ⑥不批評要讚美(불비평요찬미) -비평을 않으며 찬미함이 있어야 한다. ⑦不恐懼要心安(불공구요심안) -몹시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음이 안정돼 있어야 하고, ⑧不衝動要忍耐(불충동요인내) -충동질을 하지 않으며 참음이 있어야 한다. ⑨不嫉妒要欣賞(불질투요흔상) -질투를 하지 않으며 좋아하여 즐기는 것이 있어야 하고, ⑩不發怒要微笑(불발노요미소) -성을 내지 않으며 웃음 띠움이 있어야 한다. ⑪不計較要寬宏(불계교요관굉) -비교하고 재어봄을 아니하며 마음이 너그럽고 커야 하고. ⑫不拖延要積極(불타연요적극) -일을 질질 끌어가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나섬이 있어야 한다. ⑬不自私要捨得(불자사요사득) -이기적이지 않으며 이득을 아까워하지 않고 버림이 있어야 하고, ⑭不自誇要謙虛(불자과요겸허)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춤이 있어야 한다. ⑮不氣餒要振作(불기뇌요진작) -용기를 잃지 않으며 떨쳐 일어남이 있어야 하고, ⑯不欺騙要誠信(불기편요성신) -사람을 속여 재물을 가로채지 않으며 성실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踏雪,서산대사,禪詩[서예] 金春剛이 좌우명 제일 좋아하는서산대사 선시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을 밟고 들 가운데를 가는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모름지기 어지럽게 가서는 아니된다,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오늘의 내 발자취는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뒤따라 오는 사람에게 본보기가 될것이다 西山大師,禪詩로 白凡 金九 先生님이 愛誦詩로 널리 알려졌고 서예로도 많이 쓰여진 시다. 어른들이 행동을 잘 해야 어린 얘들이 본받아 행동을 잘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요즘 세상 어른들이 깊이 세겨야 할 銘禪詩다.     踏雪답설의 작자는 서산대사일까 ?                            이양연일까 ?   우선 너무나 잘 알려진 두시를 비교하여 보자   서산대사의 시 답설(踏雪)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지니.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이양연의 시 야설(野雪)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不須胡亂中(불수호란중) : 모름지기 어지러이 가지 말라.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遂爲後人程(수위후인정) :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단 세 글자가 틀리다.  한문학자인 정민교수등 최근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이 시는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영조 47)~1853(철종 4)이 지은 것 한시연구논고에서 발표하였다.  이양연의 자는 진숙(晉叔), 호는 임연(臨淵)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책을 읽어 모르는 것이 없다는 평이 있다. 그는 조선후기의 문인으로서 호조참판을 거쳐 1852년(철종 3) 동지의금부사에 이르고, 농민들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많이 지었다.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을 평생 사모하였고, 수 백수의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이양연의 문집인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과 장지연이 편찬한 '대동시선(大東詩選)' 등에 이양연의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정민교수는 주장했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수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서예가들이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휘호하였기에 혼란이 적지 않게 되었다. 생몰연대로 보면, 서산대사는 이양연보다 150년 전의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전하는 시와 이양연의 시를 비교하면, 천(穿)-답(踏), 조(朝)-일(日), 위(爲)-작(作) 등의 글자만 다르고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연구되어야 명확하게 판가름 날 것이다.    누가 지었느냐는 영원한 과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내용상으로 보면, 전인미답의 눈길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뒷사람이 그 눈 위에 새겨진 앞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사람은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백범 선생은 하루에 세 번씩 이 시를 낭송하고 실천했다고 하니 선구자의 삶이 얼마나 철저해야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흰눈이 내린 길을 걸어갈 때면 위의 시는 더욱 가슴으로 스며든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붓글씨로 이 시를 휘호하였기 때문에 김구 선생의 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계등의 논문등과 달리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중종 15)∼1604(선조37)의 선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산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활동한 승병장이었다.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이다.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85세까지 살았는데 의발(衣鉢)을 대흥사에 맡겼기 때문에 대흥사입구에 그의 부도가 남아있다.   아래는 서산대사의 시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 바탕이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들은 백번 꺽겨도 새 가지가 돋는다네.  
152    이육사문학제에 다녀오다 댓글:  조회:2471  추천:0  2015-09-23
                                                                                                                                                                ▲육사 선생 양손자 이승엽군이 술잔을 올리며...                       ▲육사 선생 따님 이옥비 여사가 꽃을 올리며...                            
151    은둔속에서 핀 예술의 魂 ㅡ 에밀리 디킨슨 - 1775편 詩 댓글:  조회:2827  추천:0  2015-09-17
바람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     바람이 피곤한 나그네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다. 주인처럼 나는 근엄하게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그러자 발 없는 손님이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에게 의자를 내주려 했으나 그것은 공기에게 소파를 내주는 것처럼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손님은 몸을 지탱시켜 줄 뼈가 없었다. 그가 말을 꺼내면 우거진 수풀에서 수많은 벌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지나갈 때는 소용돌이치는 얼굴과 손가락이 유리컵 안에서 떨며 도는 바람의 곡조처럼 음악소리를 냈다. 우리 집에 와서 경쾌하게 날아다니다가 소심한 사람처럼 그는  당황스러워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바람에게서 뼈 없는 몸과 빠른 걸음을 보는 시인. 바람의 한 동작 한 동작에서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듣는 시인. 앉을 수만있다면 바람에게 의자를 내주고 마실 수만 있다면 바람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어 하는 시인. 사소한 사물의 작은 움직임에도 온몸의 호기심이 일어나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이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귀엽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사물에게 생동감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섬세한 감각이 놀랍다.     바람조차도 찾아오면 반갑고 함께 놀고 싶어 보내기 싫어하는 장면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마음으로는 친하고 싶어 하면서도 몸은 금방 숨어버리고 마는 바람의 모습이 시인을 꼭 닮은 것 같다.  시인으로 활동하지도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골방에서 시를 썼지만, 모든 사물과 자연이 친구였기에 마음은 풍요로웠으리라. 사후에 제목 없는 시 원고 이천편가량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임의로 첫 행에서 따왔다. -김기택(시인)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년) 그리고 1775편의 시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00여 편에 달하는 시는 그저 혼자 내뱉은 독백 같았습니다. 사랑, 이별, 죽음, 영혼, 천국, 자연 등을 다룬 시는,  은둔생활 속에서 핀 꽃이었나 봐요. 그는 내내 고독했지만,  그 고독은 그의 모든 것이었던 시를 잉태한 동력이었습니다. 시와 고독을 평생 친구로 곁에 두고 지냈던 이 사람, 영문학사상 최고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입니다. 이상하고 의외의 일이죠? 그가 살아서는 별 볼 일 없는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에요. 하긴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그의 시를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겠지요. 에밀리를 얘기할 때, 가장 흔히 따르는 것은,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 그닥 부각돼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을 인류보편의 것으로 인식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독신생활하면서 시 짓기에만 몰두하다시피 한 그의 행보는,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입방아에 올릴 수 있는 호기심거리가 될 수 있었겠죠. 마치 시와 결혼한 듯,  자신만의 공간에서 치열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그였기에, 보통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의 궤적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엠허스트에서, 변호사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과 에밀리 노크로스의 둘째 딸로 세상과 접촉했습니다. 잘 보시면, 그의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서 하나씩 딴 것이죠.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신학교에도 진학했지만,  그는 보수적인 청교도 신앙에 그닥 흥미를 느낀 것 같진 않습니다. 청교도 정신부활을 위한 '영적대각성운동'이 있었을 때도, 그는 되레 청교도 신앙과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숨기지 않았으니까요. 에밀리를 에워싸고 있던 종교가 시작(詩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반면, 한 만남이 그를, 그의 시상(詩想)을 일깨웠습니다. 설핏 짐작 가시죠?  맞아요. 역시나 사랑. 독신이었다지만, 설마 그가 사랑 한번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셨죠? 아버지가 하원으로 당선돼,  그의 가족은 1854년부터 이듬해까지 워싱턴에서 살았는데,  필라델피아의 한 장로교회에서 만난 찰스 워즈워스 목사를 만났습니다. 찰스 목사는 스승과도 같았습니다. 문학적인 설교와 칼뱅주의에 입각한 그의 웅변이,  에밀리의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던 거죠. 그것은 하나의 지적도전과도 같았고, 시작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받았고,  워싱턴을 떠나 다시 엠허스트로 돌아간 에밀리를 찰스 목사가 찾기도 했습니다. 에밀리는 여러 글에서 그를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나 역시나 장벽은 존재했죠. 찰스 목사는 기혼자였고, 그가 1861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로 옮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어요. 에밀리는 그를 정녕, 사랑했나봅니다. 친구부부와 동생에게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고, 더더욱 시에 매달렸습니다. 사랑의 아픔 때문인지 시는 봇물처럼 흘러넘쳤고, 좌절된 사랑으로 둘 곳 없는 마음은 작품 속에서 영적인 결합을 이뤘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을까요. 실연을 겪고 난 뒤, 그러니까 30세 이후 은둔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흰 옷만 입고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도 그래서 지어졌습니다. 시작도 계속했으나, 그는 출판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생전에 불과 7편의 시만 발표했을 정도로,  그는 철저히 고립된 속에서 시와 함께 했어요. 물론, 에밀리에게 사랑이 한번만 거쳐 간 것은 아니지만, 그는 독신생활을 청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로드 판사와도,  사랑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의 서신에서도 서로 사랑했음이 충분히 드러나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독신생활을 버리지 못해,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1884년 로드 판사가 죽자, 실의에 빠져 있던 에밀리는,  결국 건강 악화로 2년 뒤인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겪은 사랑의 아픔, 그의 전부였던 시도,  그를 더 이상 지탱시켜주지 못했나 봅니다.     에밀리가 죽은 뒤, 그의 동생이 1775편에 달하는 시를 묶어 발표했습니다. 그의 시는 1890~1945년 동안 8권의 시집으로 묶여 출판됐고,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시들은 20세기에 와서 제대로 평가를 받았어요. 그는 겉으로 보기엔 은둔자였지요. 가사 일을 끝내고 이층 방안에서 시작에만 몰두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시피 했으니.  그러나 시와 편지를 보자면 열정적이고 재치있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친밀한 언어로 생과 죽음, 영원과 자연 등에 대해 무한한 상상과 사색, 사랑과 이별을 담았습니다. 그의 예술혼은 그래서 아직도 후세인들에게 전파되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 아니겠어요?!
150    턱수염 예술가 댓글:  조회:2214  추천:0  2015-09-07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조나단 달과 브라이언 델루렌티는 ‘턱수염 예술가’로 불린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턱수염을 예술로 바꾼 사진들을 선보여 지난해부터 SNS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턱수염 예술가들은 길고 무성하게 기른 턱수염을 온갖 종류의 물건들로 장식한다. 촛불, 과일, 과자, 페인트, 꽃, 깃털 등 턱수염 아트의 재료는 너무나 다양하다. 이 남자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장난이 아닌 진짜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는 평가다.  약 35,000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조나단 달과 브라이언 델루렌티는 지금도 계속해서 상상을 뛰어 넘는 ‘턱수염 예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꽃과 깃털 그리고 과자와 촛불 심지어 반짝거리는 작은 전구로 장식된 턱수염에 많은 이들이 매료된 것이 사실이다. 
149    력사... 추억... 70... 댓글:  조회:2374  추천:0  2015-08-31
[ 2015년 09월 07일 09시 11분 ]     1969년 ~1973년 -
148    중국 아방가르드 당대미술가 - 종표 작품들 댓글:  조회:2300  추천:0  2015-08-26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남긴 명작 '모나리자'의 비밀을 파헤친 연구결과가 또 나왔다. 최근 영국 셰필드할람 대학등 공동연구팀은 다빈치가 눈의 착각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신비한 모나리자 미소를 만들었으며 또 다른 작품에서도 이같은 특징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는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신비한 미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데 정면에서 봤을 때는 입가에 미소가 드러나지 않으나 측면에서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같은 눈의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다빈치는 그림에 여러 겹의 물감을 덧칠해 사물의 윤곽선을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릿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했다. 특히 이 사실은 지난 2010년 프랑스 박물관 연구 복원센터 전문가들이 X선 형광분광기를 동원해 모나리자 물감층과 화학성분을 분석한 결과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당시 연구에 따르면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눈가와 입가 등에 산화망간 성분의 얇은 막을 최대 30겹까지 입혔다. 이번 연구에 대상이 된 작품은 세계적으로 큰 화제와 논란을 일으킨 다빈치의 또다른 걸작 '아름다운 왕녀'(La Bella Principessa)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이 그림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주는 시각적인 실험을 실시했다. 예를들어 멀리 떨어져서, 흐릿한 그림으로, 입과 눈 등 특정 부위를 가리고 보여주는 등의 실험을 실시한 것. 그 결과 그림의 표정 변화는 입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연구팀은 이를 '붙잡을 수 없는 미소'(uncatchable smile)라 불렀다. 연구를 이끈 알렉산드로 소란조 박사는 "이 그림의 미소를 느끼게 되는 순간 사라져 붙잡을 수 없는 미소라 부르는 것" 이라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시각적 기법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사람이 바로 다빈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빈치는 눈의 착각을 일으키는 이같은 기술을 의도적으로 여러 작품에 넣었다" 고 덧붙였다. 한편 '아름다운 왕녀'는 지난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당시 이 그림은 19세기 초 독일 미술학도가 다빈치를 흉내낸 작품으로 오인돼 경매에 올랐고 이 때문에 판매 가격은 불과 1만 2039파운드로 당시 환율로 채 2000만원이 안됐다. 그러나 10년 뒤 이 그림에서 다빈치의 지문과 탄소연대 측정 결과 1440~1650년에 제작된 것이 확인되면서 세계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석좌교수 마틴 캠프는 이 그림의 인물이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자(1452~1508년)의 딸인 비앙카 스포르자라고 주장하면서 '아름다운 왕녀'라는 작품명을 갖게됐다.
146    력사를 잊지말기... 댓글:  조회:2546  추천:0  2015-08-15
        8.15해방  사진 모음   위 사진은 59년전 8월 15일 조국이 일제로 부터 해방돼 서울 시민들이 남산 국기게양대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 이 사진은 촬영한 사람이 누구인지,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은 정부 자료 사진입니다. 또한 사진에 대한 해설도 불충분 합니다. 해방 한달쯤 뒤 국민학교가 개교해 첫수업을 하는 장면,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색 사진으로 알려진 해방 1주년 기념행사 사진 등 귀중한 사료도 포함돼 있습니다.   1945 년 8 월 6 일 이 히로시마에 최초로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고  그로 인하여 일본은 무장 해제되었다 .  그러나 그로 인하여 핵무기 경쟁은 시작되었고 드디어 밥은 굶더라도  핵무기보유가 생겨나게 되었다 .              1945 년 폭격으로 페허가 된 오사까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일본인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다.  기록을 위해서도 찍었고 , 격려차 찍은 사진들 ,  선전에 사용할 목적이 다분히 있는 사진들이다 .         일본의 전통 스포츠 ' 수모 ' 씨름 꾼들이 훈련을 받고있다 합니다.         1945 년 주부들을 모아 놓고 죽창으로 대항하는 훈련을시키고있다 .  미군이 침공해 들어 왔을 때를 대비하는 훈련이다 .        스님들이 허리에 칼을 차고 어깨에 총을 메고  정규군 장교로부터 제식 훈련을 받고있다 .  사찰 앞마당에서 .         도꾜의 대학생들이 치치 부 근교에서 의료 봉사를하고있다 .  할머니 , 아이들이 진료를 받았다 .         ' 애국 부녀회 ' 회원들이 시가 행진을하고있다 .  군인들이 시가 행진을하는 중에 맨 마지막으로  애국 부녀회가 따라가는 것이다 .      도꾜의 국민학교 학생들이 목총을 들고 황제와 황후의 사진을  모신 ' 고시에 이사 ' 에다 맹세하고있다 .  이러한 행사는 아이들에게 황제에 대한 복종 심을 심어주는 교육의 일환이다 .       어린이날 해군 대장 복장을 한 아이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경례하고있다 .       전국적으로 우량아 대회를하고있다 .  살찐 아이는 우량아로 선정되고 엄마가 부상을 받느다 .  아이를 많이 낳아야한다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치루는 행사이다 .      도꾜 극장 전면에 전쟁을 독려하는 광고가 걸려있다 .  그림 밑에 " 우리는 공격을 중지하지 않을 것이다 . " 라고 쓰여있다 .       도꾜 거리 인도교에 거대한 미국 성조기를 그려 놓고  행인들에게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서 저주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심리전의 일환이다 .       이즈 반도의 주민들이 매일 아침 일본의 상징 후지산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아침 체조를하면서  황국의 영광을 다짐한다 . 반상회에서 결의한 사항을 실천하는 중이다 .      부자가 같이 도시락을 먹는다 .  흰밥 가운데 붉은 자두 짱아 치로 일장기를 만든 도시락이다 .  매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국가에 목숨을 바친다는  다짐을하는 것이다 .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그려 놓고 일본 군인이 죽창으로 찌르고있다 .  옆에있는 팻말이 가 에는  " 통행인은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가라 " 라고 쓰여있다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위한 공출은 끝이없이 이어 ?  사찰에서 중들이 철이나 놋쇠를 공출하고있다 .  징들 , 유골 단지 , 주전자 , 촛대들 , 꽃병 , 화로등 여러가지이다 .        도꾜에서 아이들이 고철을 손수레에 싣고왔다 .        중학생들이 알루 미니움 동전을 모아왔다 .  비행기를 만들기위한 공출이다 .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프라스틱 장난감이나  금속 장난감을 제출하고있다 .         자전거 상회에서는 오래된 자전거이거나  못쓰는 부속품들을 제공하고있다 .          히로시마에있는 한 가정집에서는 가재 도구와 부엌 용기들을 바첬다 .        사찰 종들도 모두 공출 대상이다 .         심지어 스팀 히터까지 걷어 갔다 .       도꾜 군수 공장에서 기관포 탄약 불량품을 골라내고있다 .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에 비해서 인건비가 반 밖에 안된다 .         공장에서 발생된 아주 작은 금속 부스러기들 중에서 ,  반상회에 모인 아주머니들이 쓸만한 금속만 골라 내고있다 .         여학생 세명이 교관의 지시대로 기계 다루는 일을 배우고있다 .  남자들이하던 일을 여학생들이 대신 이어가는 중이다 .         푸대 자루를 접착시키는 단순 노동 공장이다 .  지루한 일을하는 노동자들은 한달에 두번 쉬는날을  주기로되어 있는데 그마저 제공되지 않는다 .         여학생들이 기모노에 달려있는 금실이나 은실까지도 뜯어내고있다 .         여자 용접공이 비행기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있다 .  1944 년 현재 는 4 백만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근무 중이다 .         학생이 포함된 여성 근로자 팀이 명예의  ' 생산량초과달성반 '는 선정되었다 가 에.  작은 비행기 부품을 생산하고있다 .         여학생들이 병원에서 사용하던 환자복을  군인 부상자들이 입을수있게 고치고있다 .  중고 환자복을 수리 하다보니 병균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기에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있다 .  수업은 하루에 2 시간으로 줄이고 재봉 일로 봉사하고있다 .       사하 린에있는 가라후토항 .  남자들이 부족해서 여성들이 부두 노동을 대신하고있다 .  여성 노동자들이 많아 지자 법으로  여성은 격렬한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을 금지했다 .      나이든 여성 나무꾼들이 숯가마를 시내로 나르고있다 .  주로 돈 많은 치치부 기생들이 쓸 숯이다 .      남자들은 군에가고 여자들은 공장에 일하러 갔다 .  어린 학생들이 논일을하고있다 .      사찰에서 살고있는 중들이 식량난으로 뒷산에 밭을 일구 고있다 .       1945 년 2 월 이 도꾜의 우에노 공원을 논으로  전환 시켜놓고 벼를 심고있다 .  중학생들이 일하고있는 모습니다 .  전국적으로 3 백만 중학생들이 노동력을 보태고있다 .         시골 농부들은 짜투라기 땅에도 벼를 심는다 .  심지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조그마한 땅에도 벼를 심는다 .      만주에 주둔하고있는 군인 아내들이 호스를 메고  신부 수업을 받으러 가고있다 .  아이를 많이 낳아야한다는 교육을 받는다 .         1945 년 7 월 10 일 사까이시 상공에 나타난 B29 폭격기에  써치 라이트를 비추며 공격하고있다 .       1945 년 3 월 10 일 은 단 하루 동안 폭격으로 도꾜는  잿더미가되었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  살아 남은 사람들이 송장을 치우는데 25 일이 걸렸다 .      제복을 입은 군인이 폭격으로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한 방화 훈련을시키고있다 .       ' 애국 부인회 ' 회원들이 주먹밥을 만들고있다 .  방공 훈련받는 사람들에게 먹일 점심이다 .        중학생들이 방공호를 파고있는 중이다 .  학생들이 이마에 띠를 두른 것은 군인들과 같은  애국심에 불탄다는 것을 상징한다 .         1945 년 봄 , 도꾜 시민이 다 허물어진 집  지하에서 밥 해 먹을 준비를하고있다 .       1945 년 5 월 29 일 폭격으로 페허가 된  요꼬 하마 시민들이 시골로 피난 가고있다 .  1945 년 한해에만 1 백만명이 폭격에 희생되었다 .        도꾜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 버려진  막사에서 살림을 꾸리 고있다 .         못쓰게 된 뻐스들을 도꾜 교외에 세워 놓고  폭격으로 집을 잃은 피난민들을 수용하고있다 .         1945 년 5 월 이 고베에서 폭격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짐을 챙겨 피난길에 나섰다 .  곳 연합군이 상륙하는 줄로 알았 었 단다 .       국민학교 학생들이 방공호 안에서 수업을 받고있다 .       ' 육탄 삼 용사 '  청소년 학생들이 ' 육탄 삼 용사 ' 탑에 묵년하고있다 .  1932 년 상하이에서 중국군 방어망을 뚫는데 인간 돌피토 역활을 자청한 년이  삼용사를 기리는 기념탑이다 .자청한 삼용 사를 기리는 기념탑이다 .    사무라이 정신을 근대 전에 접목시키려는 것은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  가미가제나 육탄이나 모두 병력 손실로 이어지고 공격을  지시한 자나 지켜보는 병사 들이나 사기가 저하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  잠시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 패전으로 방향 전환되고 만다 광복절 노래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    
145    전쟁은 가라... 그리고, 평화는 오라... 댓글:  조회:3015  추천:0  2015-08-15
      美軍 앵글에 잡힌 6.25 戰爭          6·25전쟁 당시 미군 사진사들과 카메라맨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바로 역사적 정보의 "보고(寶庫)"       1.  men of the 24th Inf. Regt. move up to the firing line in Korea. July 18, 1950. Breeding. (Army)   24 보병연대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2.  Railroad cars loaded with barbed wire at Taegu  RTO (Railway Transportation Office), Korea.  July 24, 1950. Sgt. Riley. (Army)   철조망을 싣고 대구역을 출발하는 화물 열차.      3.  Wounded American soldiers are given medical treatment at a first aid station, somewhere in Korea. July 25, 1950. Pfc. Tom Nebbia. (Army)   부상병이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4.  Pfc. Orvin L. Morris, 27th Regiment, takes a much deserved rest during his evacuation to Pusan, Korea, on a hospital train. He was wounded by enemy mortar fire on front lines. July 29, 1950. Sgt. Dunlap. (Army)   북한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 당한 병사가 부산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5.  United Nations flag waves over crowd waiting to hear Dr. Syngman Rhee speak to the United Nations Council in Taegu, Korea. July 30, 1950. Sgt. Girard. (ARmy)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군중이 모여 있다     6.  U.S. Marines stand along the rail and watch the ocean aboard the USS Clymer. To the aft a Marine is washing his dungarees by dragging them along behind the ship. July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해군 병사들이  배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다     7.   Three BD-110A switchboards on left and one BD-96 on extreme right being operated by Pfc. James Grahn of Co. B, 71st Sig. Svc. Bn., Pusan, Korea. August 1, 1950. Cpl. Crowe. (Army)   3개의 BD-100A와 BD-96을 제임스가 조작하고 있다     8.   U.S. troops are pictured on pier after debarking from ship, somewhere in Korea. August 6, 1950. Sgt. Dunlap. (Army)   상륙후 부두에서 쉬고 있는 미군 병사들     9.   Pfc. Clarence Whitmore, voice radio operator, 24th Infantry Regiment, reads the latest news while enjoying chow during lull in battle, near Sangju, Korea. August 9, 1950. Pfc. Charles Fabiszak, Army. (USIA)   전투가 소강 상태일 때 무전병이 신문을 보며 음식을 먹고 있다     10.  Fresh and eager U.S. Marine troops, newly-arrived at the vital southern supply port of Pusan, are shown prior to moving up to the front lines. August 1950. INP. (USIA)   새로 도착한 미 해병 대원들이 전선으로 이동하기 전의 모습     11.  How a man died on the way to Maeson Dong. September 2, 1950. Sgt. Turnbull. (Army)   전사자 모습      12.   Men of the 9th Inf. Regt. man an M-26 tank to await an enemy attempt to cross the Naktong River September 3, 1950. Cpl. Thomas Marotta. (Army)   9보병연대 병사들과 M26 탱크가 북한군의 낙동강 도강에 대비히고 있다     13.  North Korean prisoner of Marines who rolled enemy back in Naktong River fighting. He wear a "Prisoner of War" tag and was treated in accordance with United Nations' rules of international warfare. September 4, 1950. S. Sgt. Walter W. Frank. (Marine Corps)   북한군포로의 모습, 그는 전쟁 포로라는 판을 목에 걸고  유엔법에 따라 관리되었다    14.   Landing craft loaded with Marines head for the smoking beach in invasion of Inchon, September 15,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해병대를 태운 상륙정이 인천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15.   Invasion of Ichon, Korea. Four LST's unload men and equipment on beach. Three of the LST's shown are LST-611, LST-745, and LST-715. September 15, 1950. C.K. Rose. (Navy)   4척의 상륙정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가 내려지고 있다     16.   Carrying scaling ladders, U.S. Marines in landing crafts head for the seawall at Inchon. September 15, 1950. S.Sgt. W. W. Frank. (Marine Corps)   사다리를 싣고 인천 상륙을 위해 상륙정에 승선한 해병들     17.   Leathernecks lead patrol between destroyed buildings in "mop-up" of Wolmi Island, gateway to Inchon. September 15,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인천의 관문인 을미도에서 북한군을 소탕 중인 해병대     18.   As against "The Shores of Tripoli" in the Marine Hymn, Leathernecks use scaling ladders to storm ashore at Inchon in amphibious invasion September 15, 1950. The attack was so swift that casualties were surprisingly low. S.Sgt. W.W. Frank. (Marine Corps)   해병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인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이 공격은 신속했으며 부상자는 놀랄 정도로 적었다     19.  Brig. Gen. Courtney Whitney; Gen. Douglas MacArthur, Commander in Chief of U.N. Forces; and Maj. Gen. Edward M. Almond observe the shelling of Inchon from the U.S.S. Mt. McKinley, September 15, 1950. Nutter (Army)   상륙 작전중 인천 해안을 살피는 맥아더 사령관     20.  A small South Korean child sits alone in the street, after elements of the 1st Marine Div. and South Korean Marines invaded the city of Inchon, in an offensive launched against the North Korean forces in that area. September 16, 1950. Pfc. Ronald L. Hancock. (Army)   어린 소녀가 길가에 앉아 울고 있다. 미해병과 한국 해병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21.   Al Jolson entertains U.S. troops at Pusan Stadium during his visit to the fighting front. He died shortly after his return from Koera where he gave of his talent untirigly and unceasingly. He made the trip at his own expense. September 17, 1950. Kondreck. (Army)    al jolson이 부산 운동장에서 공연을 하고있다  그는 자비로 공연을 했으며 한국에서 돌아간 직후 사망했다      22.  Wreckage of big transport which North Koreans hit while it was on Kimpo Airfield, is again in friendly hands, upon recapture of field. September 18,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북한군의 공격으로 김포 공항에서 파괴된 비행기가 1950년 9월18일 다시 미군의 손에 들어왔다.     23.   Troops of the 31st Inf. Regt. land at Inchon Harbor, Korea, aboard LST's. September 18, 1950. Hunkins. (Army)   31연대 병력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24.  Two North Korean boys, serving in the North Korean Army, taken prisoner in the Sindang-dong area by elements of the 389th Inf. Regt., are interrogated by a U.S. soldier shortly after their capture. September 18, 1950. Pfc. Francis Mullin. (Army)   신당동에서 미군에 잡힌 북한 소년병이 신문을 받고 있다     25.   Pfc. Thomas Conlon, 21st Inf. Regt., lies on a stretcher at a medical aid station, after being wonunded while crossing the Naktong River in Korea. September 19, 1950. Cpl. Dennis P. Buckley. (Army)   낙동강을 건너다 부상 당한 병사가 들것에 누워 있다     26.   United Nations troops fighting in the streets of Seoul, Korea. September 20, 1950. Lt. Robert L. Strickland and Cpl. John Romanowski. (Army)   시가전 중인 유엔군     27.  A U.S. Marine tank follows a line of prisoners of war down a village street. September 26, 1950. S. Sgt. John Babyak, Jr. (Marine Corps)                탱크가 포로 행렬을 따르고 있다     28.  55arine Pvt. 1st Class Luther Leguire raises U.S. Flag at American consulate in Seoul, while fighting for the city raged around the compound. September 27, 1950. Sgt. John Babyak, Jr. (Marine Corps)   미영사관에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29.  A Korean family mourns their murdered father, victim of the wholesale murder at Chonju by North Koreans. September 27, 1950. M. Sgt. E. T. Tarr. (Army)   북한군에 의해 대량 학살된 시신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한국인     30.  The wreckage of a bridge and North Korean Communist tank south of Suwon, Korea. The tank was caught on a bridge and put out of action by the Air Force. October 7, 1950. Marks. (Army)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 위의 탱크     31.  ROK military police pose before the ruins of a devastated building in Pohang. Most buildings that housed red troops were destroyed. October 17, 1950. (Navy)   한국군 헌병이 무너진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2.  Scene of war damage in residential section of Seoul, Korea. The capitol building can be seen in the background (right). October 18, 1950. Sfc. Cecil Riley. (Army)    서울의 주거지의 파괴된 모습.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33.  Officers and men of the 62nd Engineers stand in front of the first train to cross the new railroad bridge which they built across the Han River at Seoul, Korea. October 19, 1950. Sfc. Albert Guyette. (Army)   한강에 새로 건설된 철교에 처음으로 지나가는 기차 앞에서 62공병대 병사들과 사병들     34.  A 16-inche salvo from the USS Missouri at Chong Jin, Korea, in effort to cut Northern Korean communications. Chong Jin is only 39 miles from the border of China. October 21, 1950. (Navy)   북한군의 통신 단절을 위한 청진에서 16인치포 일제사격,  청진은 중국에서 39마일 떨어져 있다     35.  Audience reaction to the Bob Hope show at Seoul, Korea. October 23, 1950. Capt. Bloomquist. (Army)   밥 호프의 공연을 보며 웃고 있는 병사들.     36.  Navy Sky Raiders from the USS Valley Forge fire 5-inch wing rockets at North Korean communist field positions. October 24, 1950. PhoM3c. Burke. (Navy)   북한군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미해군 전투기     37.   The Hon. S.Y. Lee, Vice President of South Korea, leads cheers at the close of the UN Day ceremony at Seoul. October 24, 1950. Sgt. Ray Turnbull. (Army)   유엔의 날에 마지막에  한국의 부통령(이시영)이 만세를 선창하고 있다      38.  Bob Hope, radio and screen star, sits with men of X Corps, as members of his troupe enterain at Womsan, Korea. October 26, 1950. Cpl. Alex Klein. (Army)   위문 공연을 온 밥 호프와 함께 포즈를 취한 병사들     39.   A refugee family from Ching Pung Men near Masan, now living in a refugee camp at Changseung-po, Korea. October 1950. United Nations. (USIA)   마산 근처의 ching pung면에서 피난 온 가족. 지금은 장생포에 있다     40.  An aged Korean woman pauses in her search for salvageable materials among the ruins of Seoul, Korea. November 1, 1950. Capt. C. W. Huff. (Army)   폐허가된 서울에서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41.  Korean women and children search the rubble of Seoul for anything that can be used or burned as fuel. November 1, 1950. Capt. F. L. Scheiber. (Army)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42.   Miss Mo Yun Sook, famed Korean poetess, is telling how she escaped the Communist-led North Koreans when they captured Seoul, by hiding in the mountains until the U.N. forces liberated the city. November 8, 1950. Cpl. Robert Dangel. (Army)   한국의 여류시인 모윤숙이 어떻게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 탈출했는지 말하고 있다 유엔군이 올때까지 산에 숨어 지냈다     43.   Navy AD-3 dive bomber pulls out of dive after dropping a 2000 lb. bomb on Korean side of a bridge crossing the Yalu River at Sinuiju, into Manchuria. Note: anti-aircraft gun emplacement on both sides of the river. November 15, 1950. (Navy)   미해군 폭격기가 신의주 압록강 다리를 폭격하고 있다   44.  Homeless, this brother and sister search empty cans for morsels of food, and try to keep warm beside a small fire in the Seoul, Korea, railroad yards. November 17, 1950. Pfc. Fulton. (Army)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작은불 옆에 있다.     45.  Fighting with the 2nd Inf. Div. north of the Chongchon River, Sfc. Major Cleveland, weapons squad leader, points out communist-led North Korean position to his machine gun crew. November 20, 1950. Pfc. James Cox. (Army)   청천강에서 북한군 진지를 겨냥하고 있는 병사들     46.   M/Sgt. George Miller selects human blood for patient at the 8076t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at Kunr-ri, Korea. November 27, 1950. Cpl.Fred Rice. (Army)    환자들을 위해서 조지 밀러가 피를  모으고 있다     47.  A wounded chaplain reads a memorial service over the snow-covered bodies of dead Marines. Koto-ri, Korea. December 3, 1950. Cpl. W. T. Wolfe. (Marine Corps)   부상당한 목사님이 전사한 해병들을 위해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48.  These men of the Heavy Mortar Co., 7th Inf. Regt., go native, cooking rice in their foxhole in the Kagae-dong area, Korea. December 7, 1950. Pfc. Donald Dunbar. (Army)   밥을 짖고 있는 세 병사     49.   Wounded soldiers use wheelchairs and crutches until they learn how to walk with a synthetic limb. Pfc. Charles Woody, injured near Taegu, walks on crutches. Walter Reed Mil. Hosp. Washington, DC. December 8, 1950. T. Sgt. Trehearne, USAF; PhoM2c. Knudsen, USN. (USIA)   부상 당한 병사들은 의족 의수를 어떻게 쓰는지 익숙해 질 때 까지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했다     50.  Supplies and equipment are also evacuated from the onslaught of the Communist Forces bearing down on Hungnam, Korea. December 11, 1950. Pfc. Emerich M. Christ. (Army)    공산군의 맹공으로 흥남에서 철수하는 보급품과 장비들     51.  A U.N. LST slips into the harbor at Inchon prior to invasion by U.S. Marines. December 13, 1950. (Navy)   UN군의 LST가 인천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52.  Marine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 pay their respects to fallen buddies during memorial services at the division's cemetery at Hamhung, Korea, following the break-out from Chosin Reservoir, December 13, 1950. Cpl. Uthe. (Marine Corps)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3.  Marine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 pay their respects to fallen buddies during memorial services at the division's cemetery at Hamhung, Korea, following the break-out from Chosin Reservoir, December 13, 1950. Cpl. Uthe. (Marine Corps)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4.   President Harry S. Truman is shown at his desk at the White House signing a proclamation declaring a national emergency. December 16, 1950. Acme. (USIA)   투루먼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55.  North Korean refugees use anything that will float to evacuate Hungnam. Here they jam the decks of a South Korean LST and many fishing boats. December 19, 1950. (Navy)   북한의 피난민들이 흥남을 떠나고 있다.     56.  Korean natives prepare to board an LST during the evacuation of Hungnam, while other refugees unload some of their meager belongings from an ox-cart and load them on a fishing boat. December 19, 1950. (Navy)   피난민들이 LST에 승선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피난민들은 우마차에서 짐을 내려 어선에 옮기고 있다.     57.  The USS Missouri fires 16-inch shell into enemy lines at Hungnam. A 16-inch 3-gun salvo is on its way to commies. December 26, 1950. (Navy)   흥남으로 함폭 사격 중인 미해군     58.   U.S. Marines move forward after effective close-air support flushes out the enemy from their hillside entrenchments. Billows of smoke rise skyward from the target area. Hagaru-ri. December 26, 1950. Cpl. McDonald. (Marine Corps)   전투기의 근접 지원 후 전진 중인 미해병     59.   Astonished Marines of the 5th and 7th Regiments, who hurled back a surprise onslaught by three Chinese communist divisions, hear that they are to withdraw! Ca. December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중공군의 맹공에 후퇴하는 미군     60.    Jacob A. Malik, Soviet representative on the U.N. Security Council, raises his hand to cast the only dissenting vote to the resolution calling on the Chinese Communists to withdraw troops from Korea. Lake Success, NY. December 1950. INP. (USIA)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국에서 중공군의 철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소련 대표     61.  North Korean prisoners, taken by the Marines in a foothills fight, march single file across a rice paddy. 1950 (Marine Corps)   논을 따라 이동중인 북한군 포로들     62.   U.S. Marines guarding three captured North Koreans, ca. 1950. Sgt. W. M. Compton. (Marine Corps)    미해병이 지키고 있는 북한군 포로     63.   Crossing the 38th parallel. United Nations forces withdraw from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They recrossed the 38th parallel. 1950. (USIA)   평양으로부터 철수하여 38선을 건너는 유엔군     64.  Leatherneck machine gun crew dug in for the night in Korea. Ca. 1950. (Marine Corps)   참호에 있는 미해병     65.   Marine Corps tanks - ready for the front lines - are swung aboard a barge at the Naval Supply Center by crane, for transhipment to our forces in the Pacific Far Eastern Command. Oakland, CA, 1950. Acme. (USIA)   극동태평양사령부로부터 보급된 탱크가 항구로 내려지고 있다     66.   During South Korean evacuation of Suwon Airfield, a 37-mm anti-tank gun is hauled out of the area for repairs, by a weapons carrier. 1950. INP. (USIA)   수원비행장의 한국인들이 철수하는 동안 대전차포가 수리를 위해 트럭에 의해 이동되고 있다     67.  San Diego, Calif. A young officer and his wife sitting in their car at the dock and staring quietly at the waiting aircraft carrier before he leaves for Korea. 1950. Black Star. (USIA)   한 장교의 그의 아내가 자동차에 조용히 앉아서 장교가 한국으로 타고 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68.   Cpl. John W. Simms of Bradbury Heights, MD, is shown bidding his wife, Ann, and their 8-month-old son, John Jr., goodbye as he leaves for Korea, 1950. Washington Post. (USIA)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미군 병사        
144    잠시 쉬여가기... 댓글:  조회:2752  추천:0  2015-08-12
143    앗, 징글스워라... 꿈에 보일래... 댓글:  조회:2258  추천:0  2015-07-17
      The wing         Condition for Ordinary_Settlement Oil on Resin, Wood /45 x 41 x 96 cm /2012               Condition for Ordinary_Colonization - detail Oil on Resin, Steel /45 x 52 x 103 cm /2013     The One (detail) oil on resin /50×50×78cm /2007     The Akward Age (Girl) oil on resin /24×17×82cm /2007           The Entangled Couple (detail) oil on resin /150×120×240cm /2007       Reflection       Islets of Aspergers Type IV, detail oil on resin /37×58×46cm /2009             Isometric_Female Oil on Resin /38 x 38 x 89 cm /2013       Isometric_Female - detail Oil on Resin /38 x 38 x 89 cm /2013           Perception - detail Oil on Resin /50 x 30 x 86 cm /2012     Isometric_Male oil on resin /47w x 61d x 95h cm /2013    
142    시를 쓰려면 미술공부도 해야... 미술필독서 100 댓글:  조회:2706  추천:0  2015-07-06
한국미술분야  『한국회화의 전통』안휘준, 문예출판사, 1997년  『한국미의 조명』 조요한, 열화당, 1999년  『한국미학시론(한국학연구총서 2)』권영필 외, 국학자료원, 1994년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99년  『한국미의 탐구』김원용, 열화당, 1998년  『한국미술의 자생성』 최몽룡 외, 한길아트, 1999년  『한국 미술의 미의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년  『지금 바로 여기』송항룡, 동인서원, 1999년  『한국현대미술사(열화당 미술 책방 11)』오광수, 열화당, 2000년  『조선공예개관』 야나기무네요시 외, 동문선, 1997년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정동주, 한길아트, 2001년  『조선을 생각한다(학고재 신서 7)』야나기무네요시, 학고재, 1996년  『근대한국화의 흐름』이구열, 미진사, 1984년  『나의문화유산 답사기Ⅰ,Ⅱ,Ⅲ』유홍준, 창작과비평사, 1997년  『한국의 정체성』탁석산, 책세상, 2000년  『한국인의 조형의식』김영기, 창지사, 1991년  『한국현대미술사(열화당 미술 책방 11)』오광수, 열화당, 2000년  동양미술분야  『노자도덕경(동양학총서 13)』노재욱 편, 자유문고, 1997년  『장자』오강남 풀이, 현암사, 1999년  『중국미학사』이택후 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년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장파, 푸른숲, 1999년  『중국철학과 예술정신』조민환, 예문서원, 1997년  『동양회화미학』최병식, 東文選出版社, 1994년  『수묵의 사상과 역사』최병식, 東文選出版社, 2003년  『중국예술의 정신』서복관, 권덕주역, 동문선, 1990년  『華夏美學』이택후, 동문선, 1999년  『중국미학사』이택후 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년  『다도와 일본의 미(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7)』야나기무네요시, 소화, 1996년  서양, 현대미술분야  『프레드릭 제임슨 : 맑스주의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숀 호머, 문화과학사, 2002년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리얼리즘』브랜든 테일러(B.TAYLOR), 시각과언어, 1993년  『뒤샹과 친구들』김광우, 미술문화, 2001년  『현대 미술과 오브제(미진신서 46)』로제 보르디에, 미진사, 1999년  『새로운 예술론』최정호 엮음, 나남, 2001년  『오늘의 미술』브랜든 테일러, 예경, 2002년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가림, 월간미술, 2000년  『인간을 위한 디자인』 빅터파파넷, 미진사, 1983년  『현대미술의 풍경』 윤난지, 예경, 2000년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김상환, 민음사, 1999년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윤난지 엮음, 눈빛, 1999년  『서양미술 100장면』최승규, 한명, 2001년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김욱동 편, 문학과지성사, 1996년  『현대조각의 흐름』로잘린드, 예경, 1997년  『예술사의 철학』아놀드 하우저 저, 황지우 역, 돌베게, 1983년  『기호와 현대예술』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 1998년  미술비평, 미술사  『미술비평의 역사(열화당 미술 책방 7)』앙드레 리샤르, 열화당, 2000년  『미술사방법론』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조형교육, 1999년  『미술비평사』리오넬로 V.벤투리, 문예출판사 , 1988년  『서양미술사』 E.H.곰브리치, 예경, 1994년  『현대미술비평 30선』계간미술편집부, 중앙일보사, 1987년  미학, 철학, 사상분야  『미학 오디세이 1, 2』진중권, 새길, 2001년  『한 권으로 읽는 니체』로버트 솔로몬 외, 푸른숲, 2001년  『미학이론』D.W.크로포드, 서광사, 1995년  『미학 예술학 사전』竹內敏雄 편; 안영길 외역, 미진사, 1993년  『광기의 역사(현대프랑스철학총서 11)』미셸 푸꼬, 인간사랑, 1991년  『시뮬라시옹 (현대사상의 모험 5)』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2001년  『존재 이야기(조광제의 철학 유혹)』조광제, 미래M&B, 2002년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까뮈, 문예출판사, 2001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른스트 캇시러, 서광사, 1989년  『인간의 마음』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2002년  『모더니티 입문』앙리 르페브르, 동문선, 1999년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민글  『천재와 광기』필리브 브르노, 동문선, 1998년  『정신분석학 입문』 프로이드 Freud, Sigmund, 미문출판사, 1986년  『욕망 이론』자크 라캉, 문예출판사, 1994년  『해체』자크 데리다, 문예출판사, 1996년  『현대 사회와 예술』(인문예술총서 4) 발터 벤야민, 문학과지성사, 1980년  『미학·예술학 사전』 竹內敏雄 편, 안영길 외역, 미진사, 1993년  『광기의 역사』미셸 푸꼬, 인간사랑, 1991년  예술, 미술경영분야  『미술시장과 경영』최병식, 동문선, 2001년  『소더비』 Peter Watson 저, 공경희 옮김, 청림출판, 1997년  『예술경제란 무엇인가』유진룡 외편, 신구미디어, 1993년  『예술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레이그 드리즌·팸 코자 공저, 이은옥·용호성 공역, 민음사, 1997년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정태환 외, 지식산업사, 1995년  『그림과 그림값』김재준, 자음과 모음, 1997년  『문화정책과 예술진흥』구광모, 중앙대학교출판부, 2000년  『성공적인 예술경영(예술 경영 총서 1)』앨빈H.레이스, 세종출판사, 2000년  『예술과 경영』유민영 외, 태학사, 2002년  『큐레이터의 딜레마』니콜라스 세로타 저, 하계훈 역, 조형교육, 2000년  미술일반  『이중섭평전』최석태, 돌베개 , 2000년  『이상평전』 고은, 청하, 1992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가림, 월간미술, 2000년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이석우, 시공사, 2002년  『길섶의 미술』손수호, 한울, 1999년  예술일반  『예술이란 무엇인가』수잔 K.랭거(S.K.LANGER), 문예출판사, 1984년  『페미니즘.비디오.미술』김홍희, 재원, 1998년  『예술의 규칙』피에르 부르디외, 동문선, 1999년  『예술심리학』루돌프 아른하임,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5년  『예술과 인간가치』멜빈 레이더 외, 까치, 2001년  종합  『신의 지문(상 하)』그레이엄 핸콕, 까치, 1996년  『여섯가지개념의 역사』블라디슬로프 타타르키비츠 저, 이론과실천, 1990년  『유혹의 기술』로버트 그린, 이마고, 2002년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롤랑 바르트, 강, 1997년  『몸의 사회학』 크리스 쉴링, 나남, 1999년  『문명화과정 1, 2』노르베르트 엘리아스, 한길사, 1999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루터킹 자서전)』클레이본 카슨 엮음, 바다출판사, 2000년  『소피의 세계 1,2,3』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 1994년  『꿈의 해석』프로이트, 정민미디어, 2002년  『제3의 물결(혜원교양신서 12)』앨빈 토플러, 혜원출판사, 1992년  『권력이동』앨빈 토플러, 한국경제신문사, 1990년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 김영사, 1997년  『생각의 속도』빌게이츠, 청림출판, 1999년  『인간과 상징』칼G.융, 열린책들, 1996년  『오리엔탈리즘』EDWARD W.SAID, 교보문고, 2000년  『만다라를 통한 미술치료』수잔 핀처, 학지사, 1998년  『세계의 미술교육』김정, 예경, 1993년  『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엮음, 월간미술, 1999년 
141    현대사진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댓글:  조회:2873  추천:0  2015-06-28
현대사진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현대사진의 강한 조류는 포스트모더니즘 테두리의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근대적 예술적 감각이 모더니즘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보수성 절대성을 거부한 다양한 실험적 문화운동입니다.  그럼 덩어리가 큰 문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공부해 보시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부연설명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미니아튀르)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 ·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 ·건축 ·무용 ·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모더니즘이란?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  부연설명 :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 아트(modern art)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으나, 이것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리얼리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前衛藝術: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였다.  한국 문학에서는 1931년경 프로문학의 퇴장과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의 대두를 계기로 나타났으며, 일명 주지주의라고 일컬었다. 김기림(金起林)이 시의 낭만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시작(詩作) 자체의 의식성을 강조하는 시의 기술주의(技術主義)를 주장하면서 형태화하였다. 김기림은 모더니즘 시운동을 벌였으며, 그 특징은  ① 정서적 우세에서 지성적 우세로,  ② 현실에 대한 초월적 태도에 대하여 비판적 적극성을,  ③ 청각적 요소에 대하여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소설에서는 1934년 최재서(崔載瑞)가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고, 실제로 이상(李箱)의 작품을 중심으로 심리주의적 경향을 비평하면서 전개되었다.  '포스트모던한 전망 속의 다원주의(이합 핫산, 1987 발행)'에서 밝힌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 8 가지  ① 불확실성(Indeterminacy)  경제학자 갈브레드가 2차 대전 이후의 서구세계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지은 것처럼과학분야에서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 토마스 쿤(Thomas S. Khun)의 「패러다임」, 폴회이에르 벤드의 「과학의 다다이즘」등이 대두되면서 사회 각분야에서 상대주의적이고 불확정적인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 사업이자 무정부주의는 법과 질서의 대안보다 훨씬 인도적이며 발전을 고무시켜 준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변화와 실험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영역에서조차도 즐거운 실험을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 다다이스트"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유파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조의 견해, 그리고 문학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개방성, 해체, 반항, 변용, 다원성, 이단의 정신 등의 불확정적인 이론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단편화(Fragment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 인식론적 종합을 거부하고 총체성을 오명으로 여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유명한 글의 결론 부분에서 "총체성에 선전 포고를 하자. 제시할 수 없는 것에 증인이 되자, 차이를 활성화하여 차이의 명예를 구해내자"고 주장한다. 확신, 차이, 변증의 시대가 되며 몽따지 수법, 꼴라쥬 등의 기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유와 환유가 중요시되고 역설, 배리, 병렬결합이 자주 등장하는 정신분석적 시대가 도래한다.  ③ 탈 경전화(Decanonization)  리오타르는 현대사회를 지배담론(Masternarrative)의 탈 권위와 붕괴의 시대라고 지적하며 그 대신 소수의 담화이며 언어게임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소설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 체계인 진리, 주체, 초월적 이성 등을 거부하고 규범과 경전에 대한 도전은 엘리트주의, 남성 우선주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대중의 참여와 비평을 유도하며, 대중문화, 여성문화,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노동자 예술,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대중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한다.  ④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장르가 붕괴되고 혼합되는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모방을 거부하고 예술의 한계를 추구하며 소모를 즐기고 침묵 속에 존재하면서 예술고유의 재현(Representation)양식을 문제시하여 반리얼리즘의 성격을 가른다. 리오타르는 동시의 상황은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종합적 분석대신 구대 불가사이를 인정한 칸트의 '숭고미(Sublime)'의 개념을 증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대 기술 문화의 무형태성, 공해, 절대 등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들이 주는 위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혼성모방(Hybridization)  풍자적, 조롱적 모방, 우스운 모방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르의식의 붕괴와 혼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다원적이고 확산적이며 논리를 무시하는 유동적인 현상황에 맞추기 위한 전략으로 문학에서는 '뉴 리얼리즘', '논픽션 소설'등으로 나타나서 허구와 사실이 두드러지게 배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에 대한 다른 개념을 보완하다. 지속과 단절, 고급 문화와 저급문화가 혼합되고 현재 속에서 과거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확장시키게 된다. 다원적인 현재 속에서 모든 형식들은 현재와 현재가 아닌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과거의 동시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공간 상호성 즉 병렬적, 수평적, 평등적 공간의 확산을 통한 공동체 의식도 얻게 된다.  ⑥ 대중주의(Populism)  고급문화와 본격 모더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역력히 드러나며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마르쉘 뒤상의 기성풍 이론은 예술의 기존 관념을 깬 것으로 '이미 만들어진' 즉 주변의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하였고 앤디워홀은 스프깡통, 브릴로 상자, 슈퍼맨 만화 등 대중적인 사물을 이용하여 혼합 모방기법을 연출하였다. 또한 화가인 라우센버그에게서 재미있는 것은 도시의 상업적인 추함에 영원성과 자연의 불변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는 도시 일상의 재료들을 즐겁게, 그리고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에게는 도시의 추한 면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⑦ 행위(Performance)와 참여(Particip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직접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행위로 연출되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행위를 통하여 시간, 공간, 또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완성된다. 요즈음은 예술의 여러 가지 경향을 관통하는 인식들은 '놀이'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엄격한 통제와 인간관계의 틀을 버리고 우연의 작용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에서도 구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존재하고 의미하기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⑧ 보편내재성(Immensity)  앞서 지적한 불확실성의 분산은 거대한 확산을 이룬다. 보편 재재성의 경향은 율동, 상호작용, 의사소통, 상호의존, 상호침투 등의 잡다한 개념들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념들 속에서 가치관의 세계화, 보편화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아놀드 토인비의 영혼화, 어비 다드로즈의 개념화, 빅 인스트홀러의 무상화, 칼 마르크스의 역사화 한 자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상징을 통해 인간의 정신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정신적인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인간은 새로운 통신수단과 전자매체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의식과 정신의 끊임없는 확장을 경험한다.  사진. 장   소 - 서울 강변북로,          제   목 - 시간          촬영자 - 이형묵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말입니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됩니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냅니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습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합니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입니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합니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습니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140    논밭 그림 그리기 댓글:  조회:5783  추천:0  2015-06-27
        하룻밤만에 매우 크고 기하학적인 그림이 논에 그려지는 불가사의한 미스테리서클..   아직 원인을 알 수 없다하고 외계인의 소행이라는등 추측만 무성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호랑이 모양의 미스테리 서클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무슨일 일까요 ?????                   달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역동적인 모습이 멋지네요 !!  하지만 일반 미스테리서클과는 다른 느낌이죠?     사실 미스테리서클이 아니라 우리 농민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ㅎㅎ     늠름하고 멋진 호랑이 논그림은 괴산 문광면 양곡리 양곡저수지 아래에 무려 가로 50m, 세로 60m 크기로 만들어졌답니다.     친환경 세계화를 향한 역동적인 괴산군을 표현했다고 하네요                     이 논그림을 어떻게 만든 것일까요? 단순히 물감으로 칠한 것일까요?           바로, 꽃처럼 벼에 색이있는 "유색벼"라고 합니다.    왼쪽은 황도(노란색벼)이고 오른쪽은 자도(흑색벼)                       자주색, 황색, 붉은색, 흰색, 초록색 등 다섯 색상의 유색벼로 논그림을 만들었다고 해요 ^-^     유색벼로 만든 다른 논그림들도 살펴볼까요                  이번엔 풍물놀이의 상모돌리기 모습 논그림입니다.             이곳까지 풍악소리가 들리는듯 신명나는 논그림이네요 ^^           논그림의 묘미는 벼가 자라는 과정에 따라 그림도 서서히 변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익지않은 벼그림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죠?                                농악놀이 논그림.                   이번엔 널뛰기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야! 뜨네 라고 써놓은것이 참 재미있네요 ㅎㅎ     이 논그림은 감물면 백양리 이담저수지 아래에 가로 200m, 세로 150m 로 그려졌답니다.   호랑이 논그림보다 무려 3배는 더 크죠~        이 보기만해도 행복한 논그림은 풍요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                   논그림은 5월말부터 6월말까지 한달동안 200여명을 동원하여 그림 도안, 밑그림그리기, 유색벼 손모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노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논밭의 예술품 이네요~     8월에는 논그림 사진촬영대회 를, 추수기에는 유색벼베기 체험행사를 연다고 하니  멋진 논그림을 보러 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논밭 아트」는 각기 다른 벼의 품종을 이용하여 논밭에 그림을 그리는 대규모 아트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죠. 최근엔 확인된 곳만도 일본 전국에서 137곳이며 주로 도후쿠지방을 중심으로 논밭 아트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논밭 아트」를 보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위에서 보는 방법 평평한 지상에서 보면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계단식 논이나 다리 위 또는 전망대에서 보면 그다지 왜곡되지 않고 확실히 보입니다. ■보는 시점을 고정하고 보는 방법(원근법) 정확히는 전망대 위에 있는 한 점에서 볼 때 그림을 왜곡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실제로는 논밭의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모내기를 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두가지 방법 모두 설계한 것 처럼 모내기를 하기가 힘든 일입니다. 모내기 면적의 규모가 커지고 그림이 정밀해 짐에 따라 난이도도 따라서 올라갑니다.  고대미의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등의 각각의 색상의 잎이나 이삭을 사용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는 것으로 착색제나 화학약품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니 놀랍네요.  최근 「논밭 아트」는 전국에 알려져 관광목적의 버스투어가 펼쳐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있다고 합니다. 아오모리현 이나카다테무라는 매년 10만명에서 2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합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139    머리를 쉬우고 눈을 즐겁게 하기 댓글:  조회:2660  추천:0  2015-06-19
위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전경들.                                                        
138    자연으로 돌아가기 댓글:  조회:2755  추천:0  2015-06-10
[ 2015년 06월 10일 08시 34분 ]     이곳은 절강성 주산군도 (浙江舟山嵊泗嵊山岛后陀湾)에 위치한 한 섬, 예전의 "주택"풍경, 지금은 텅빈 민가, 자연이 평화롭게 숨쉬고 있고...  
137    2.1m = 102kg 댓글:  조회:2169  추천:0  2015-06-07
바다낚시로 2.1m 넘는 ‘광어’를...  [ 2015년 06월 03일 09시 44분 ]      
136    4톤 동전 = 66만원 댓글:  조회:2274  추천:0  2015-06-07
심양 시민  4톤 되는 동전 1320묶음 = 66만원 새차 구입 [ 2015년 06월 05일 07시 16분 ]      
135    5메터와 16명 댓글:  조회:2676  추천:0  2015-06-07
5메터 거대 산갈치 [ 2015년 06월 05일 07시 35분 ]      
134    광고의 효과... 댓글:  조회:2221  추천:0  2015-05-31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