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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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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3    중국조선족시인 정몽호 篇 댓글:  조회:420  추천:0  2024-08-29
중국조선족시인 정몽호 篇 (자료를 찾는 中...)
2242    중국조선족시인 황장석 篇 댓글:  조회:344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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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1    중국조선족시인 김태갑 篇 댓글:  조회:312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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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0    중국조선족시인 김동호 篇 댓글:  조회:247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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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9    중국조선족시인 홍군식 篇 댓글:  조회:231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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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8    중국조선족시인 김춘산 篇 댓글:  조회:299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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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7    중국조선족시인 전광훈 篇 댓글:  조회:313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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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6    중국조선족시인 김진룡 篇 댓글:  조회:297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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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5    중국조선족시인 허룡구 篇 댓글:  조회:272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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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4    중국조선족시인 전춘매 篇 댓글:  조회:350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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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3    중국조선족시인 박설매 篇 댓글:  조회:229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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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2    중국조선족시인 박화 篇 댓글:  조회:207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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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1    중국조선족시인 설인 篇 댓글:  조회:238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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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    중국조선족시인 리욱 篇 댓글:  조회:168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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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9    중국조선족시인 한영남 篇 댓글:  조회:240  추천:0  2024-08-29
한영남 시인 篇 한폭의 작은 우주를 손바닥우에 올려놓으려는 시/허인 2014년 05월 28일  작성자: 허창렬   한폭의 작은 우주를 손바닥우에 올려놓으려는 시           한영남 근작시에서 살펴본 관념적 의식의 새로운 탈출                                                허인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인격이 있고 또한 독특한 개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시인의 인격은 시에서 주로 튼튼한 골격을 이루며 남달리 독특한 개성은 또한 피와 살과도 같은 시적인 언어들을 창출해내기도 한다.] 일찍 미셀 푸코는 이라는 저서에서 고 설파한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펴볼때 우리 이 시대의  시인들은 들임이 틀림없다 .어찌보면 지극히 단순한 자신의 은밀한 아픔마저도 가끔 시대적인 아픔으로, 영위되여 가고 있는 삶의 지혜와 그러한 끊임없는 모험, 자아해탈과 자아 모순속에서도 악착스레 갈구해가는 영구불멸적인 정신적 해탈, 어쩌면 한낱 허무와 공허의 불안함, 그러한 요소마저도 시인자체의것만이 아닌 시대적인 것으로 가끔 승화시켜놓고 거기에 쟁쟁한 공명을 이끌어내여 치유의 엔돌핀으로 증오와 사랑을 나름대로 담담하게 노래 부르고 서슴없이 고백하여가는 ㅡ 솔직히 한영남시인의 근작시들을 십여일전 이메일로 받아놓고 무엇을 쓸가? 어떻게 쓸가? 여러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오늘에야 비로소 필을 든다. 그럼 여기서 우리 함께 한영남시인의 탈변을 시도로 굵직한 몸부림이 돋보이는 근작시들을 차례대로 하나하나씩 읽어보기로 하자   절충을 강요하는 무형(无形)속의 새로운 이중관념   묻지 않으리 상처를 찢는 또 다른 상처가 될가봐   바라만 보리 그저 말없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눈빛으로   전문이다         일찍 프로이드는 해결되지 못한 상처를 꺼내 승화하여 치유하는 과정을 문학창작의 전반 과정으로 보았다. 등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륙속 출품시켜 한때 조선족시단을 나름대로 풍미했고 심플하게 러시 아워까지 이끌어 냈던 한영남시인의 전반 시적 풍격을 꼼꼼히 살펴보면 리드미컬하게, 혹은 한결같이ㅡ 세찬 파도나 거친 풍랑, 외재적인 그러한 바다와는 거리가 멀게 항상 내재적인 미가 더욱 돋보이도록 돌돌돌 맑고 깨끗한 시내물 과도 같이  잔잔하게 흘러오다가도 불쑥 시적 공명을 크게 울리는 그런 특징이 있었다 . 그런 한시인이 요즘 들어 근작시에서 절충에 절충을 강요해가면서 이중관념적인 여러가지 단시들로 지금 필자를 깜짝 놀래우고 있다. 도합 2련으로 나뉘여진 이 시의 제1련 /묻지 않으리/상처를 찢는 또 다른 상처가 될가봐/ 에서 볼수 있다싶이 누구나 쉽게 직시할수 있는 피크(顶峰)된 시인의 상처, 즉 유형(有形)과 무형(无形)의 비좁은 삶의 공간을 비집고 나와 어마어마한 전률로 독자들에게 다가서려 하는 클로즈업된 시인의 아픔과 그러한 상처자국들ㅡ어쩌면 필자나 독자들로써는 감히 그 깊이나 너비마저 예측할수 없는 삶속의 희노애락과 애환이 절절히 느껴지게끔 하며 특히 제 2련은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만 보리/그저 말없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눈빛으로/ 결속되여 이 시는  곱씹어 읽을수록 꼭 무엇이라 이름할수는 없지만 잔잔한 울림이 변두에서서부터 시작되여 점차 중심으로 모아지는 그런 특징이 있는것 같다. 그럼 아래에 어쩌면 모험을 시도로 하는 다른 두수의 단시도 조심스레 더 살펴보고 가도록 하자   저녁 황혼   놀 타네   늘 붉네       인생   울어라 바다가 넘쳐나도록 웃어라 하늘이 흔들리도록        여기서 은 도합 여섯글자로 그나마 1, 2련으로 나뉘여졌지만 은 고작 두개 련뿐이다. 꼼꼼히 살펴보면 은 보다싶이 제목자체가 그냥 이여도 무방하려만 특별히 앞에 을 덧붙여 시간적인 개념이나 강조의 뜻을 강하게 크게 나타내려고 하였음이 엿보이고 은 어쩌면 아무렇치도 않게ㅡ 혹은 대수롭지도 않게 쉽게 씌여진듯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과 , 와 , 그리고 재치있게 형용사 이 존속적인 결속어로 붙어있어 곱씹을수록 만만찮은 이미지즘을 이루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어쩌면 한영남시인이 자신의 한계라고 느껴지는 시적탈출구를 이번 근작시들에서 절충과 이률배반적인 모험으로 새롭게 헤쳐나가가려 하는 그런 과감한 행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일찍  을 보여주고저 철학가이며 정치가였던 폴 미셀 푸코는 전생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결국 이라는 온갖 비난과 모욕까지 다 들어가면서도 끝까지 아주 겸손한 하나의 사고방식만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여 준적이 있다. 그러한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까닭은 오늘도 개혁의 행보는 매 한발자국마저 조심스럽다는 그런 이야기로도 될수 있을것 같다 . 예술의 소외는 억압이 아닌 승화라고 말한 학자가 있다. 이렇듯 한영남시인의 새로운 행보, 즉 새로운 시도는 지속적일지 아니면 계획적인 잠시적 은페일지는 우리모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조심스레 지켜보아야 할것만 같다.   지성의 씨앗, 그리고 균열의 사고속에서 건져보는 자연과 삶의 찡한 감동          는 말이 있다. 비범한 자질은 시인으로 하여금 몸담그고 있는 사회나 어떤 현상에대하여 가끔 강렬하게 반응하게 하고 또한 기대 이상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공상들은 시인으로 하여금 불쑥 사회로부터 완전히 소외시되는듯한 그러한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며 가끔 병적인 상태로 몰아가기도 한다. 여기에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시인들은 작품을 창조하고 산고(产苦)하는 세월을 보내야 하는 그런 운명이기도 하다. 예술분야에서, 특히 언어예술부문에서 시인의 경우 그런 비극적인 음영은 더욱 짙으며, 그러한 비극의 중심에는 항상 광기의 그림자가 손을 드리우고 있다…p 브르노의 말 한마디를 개조하여 인용해본다. 한영남시인의 이번 근작시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이라고 하여도 아마도 무방할것 같다. 조금 더 진부하게 첨부되였고 나름대로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지는것은 삶과 자연속의 새로운 마찰속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그 애절하고도 가슴이 찡한 감동, 즉 뼈에 맺혀 아픔으로 여린 가슴에 되 돌아 울려오는 그런 공명감이 더욱 커진듯한 느낌이 든다. ㅡ 그럼 아래에 잔잔한 서정을 배경으로 하여 인문적 휴머니즘품격을 고차원으로 승화시켜 놓은  한영남시인의 시 몇수를 우리 함께 더 살펴보고 가도록 하자   오월 오후 해가 줄 볕 다 주며 느릿느릿 서산가 머물고   멀리 저리 하느작이는 풀잎들은 연초록 아니라도 좋으련만   하필 하얀 구름들이 또 푸른 하늘 걸려 시름없고   휘이 휘이 바람 부드런 손 내 땀이마 쓸어주는데   이일 저일 고향 옛일들 떠올라 울어버리고 싶네 전문이다          이 시의 제1련에서  텍스트의 모티브로 추정이 되는 /오월/오후/해가 줄 볕 다 주며/느릿느릿 서산가 머물고/는 재치있고 간결하게 설정한 환경묘사가 남달리 돋보이며  이 시적화자로 대두된 이 시의 잔잔한 흐름을 따라가노라면 제2련에서 별로 큰 소망도 아닌 어쩌면 너무나도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하느작이는 풀잎은/연초록이 아니여도 좋으련만/에서는 여리고 깨끗한 시인의 고백이 읽는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도 하며 특히 3련에서 /하필/ 하얀/ 구름들이 또/푸른 하늘에 걸려 시름없고/에서 은 잠시 전략적으로 굴절되여 있고 /구름들이 또/푸른 하늘에 걸려 시름없고/로 다시금 이미지를 집중시키였다가  마침내 제 4련에서는 벌써 눈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휘이/휘이/바람 부드러운 손/내 땀이마 쓸어주는데/로 단단히 초점을 모아놓고서 마침내 제5련에서 /이일/저일/고향 옛일들 떠올라/울어버리고 싶네/로 을 극대화시킨다.  모두 알다싶이 제목자체가 이고보니 시적화자가 견인해낸 은 시인을 울리기에 너무나도 충족하며 더불어 읽는이들의 가슴까지도 툭툭 건드려 공명감을 생성해가는 그런 효과음이 큰것 같다. 부킹된 휴먼드라마는 아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군더더기 하나없이 간결하면서도 운치가 철철 넘쳐 흐르는 이 시는 아마도 필자로써는 오랜간만에 읽어보는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1967년도생인 한영남시인은 양띠, 필자보다는 한살 이상 , 한영남시인에게는 아마도 남들이 아직 알지못하고 있는ㅡ 어쩌면 시인 혼자 평생을 울어도 결국 다 울어버릴수 없는 그런 가슴 아픈 옛이야기들과 아직도 굴벰이 죽죽하도록 아리고 쓰린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날 흐르는 눈물이 말라 내 앞에 놓인 접시에 한줌의 소금으로 고스란히 놓인다면 아직은 짠맛 모르는 당신에게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상처의 이름뿐이 아닌 사랑의 이름뿐이 아닌 긴 세월 그 이름으로 모두 드리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이제 더는 바보처럼 울지 아니하도록 혼자 아프지도 아니하도록 두 손 모아 매일 기도하며 내 앞에 놓인 소금 한접시   내 눈물이 말라비틀어진 소금 한접시를 당신께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얀 소금으로 당신곁에  남겠습니다   전문이다         눈물이 말라 한접시의 소금을 완성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고 또한 얼마만큼 애간장을 태워야 할지 필자로서는 알수조차 없지만 그렇게 완성이 된 눈물의 소금 한접시를 시인은 결국 /아직은 짠맛 모르는 당신에게 꽁짜로 그냥 드리겠다/고 고백한다. 특히 5행과 11행사이에서 /상처의 이름뿐이 아닌/사랑의 이름뿐이 아닌/긴 세월 그 이름으로 모두 드리겠습니다/로 재강조하여놓고 /살아가면서 더는 바보처럼 울지 아니하도록/환자처럼 /아프지도 아니하도록/두 손 모아 기도하며/내앞에 놓인 소금 한접시/를 /결속구인 제일 마지막 두련에서 /내 눈물이 말라비틀어진 소금 한접시를 당신께 다 드리겠습니다/하얀 소금으로 그냥 당신곁에 남겠습니다/고담담히 마무리한다. 여기서 하얀 소금은 말그대로 쓰나미처럼 하얗게 가슴에 다가와 읽는이의 가슴마저 너무 쓰리고 아프게 한다. 한수의 시에 왜 이처럼 많은 독자들이 웃고 또 우는지 한영남시인의 이번 시를 읽으면서 조금 알것도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면 세상 열리나 오면 세상 닫히나   열흘 열사흘 한해 두세해   맨날 그리다 행여 만나도   말도 못하고 손도 못잡고   그냥 그리움밖에 끝내 서글픔밖에   가면 세상 깨지나 오면 세상 터지나 전문이다          간다고 허망 열릴 세상이 아니고 온다고 쉽게 닫힐 그런 세상이 아님을 번연히 알면서도 시인의 각도로 살펴보는 허무와 공허의 불안한 요소들, 즉 가상적인 현실속에서 어찌보면 어젯날 이룰수 없었던 열련과의 뜻깊은 상봉, 혹은 그러한 갈구를 특히 3,4,5련에서 /맨날/그리다/행여/만나도/말도/ 못하고/손도/못잡고/그냥 /그리움밖에/끝내/서긑픔밖에/에서 시인의 특수한 애증표달을 표면만이 아닌 내면속의 진지한 감정으로 곧바로 승화시켜놓고서 제목자체에서 이미 독자들의 머리속에 미리 각인시켜놓은 을 자연스럽게 떠올려가면서 결국 /세상이 깨지나/세상이 터지나/로 이미지 총집합을 시도한듯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무리하면서         력사는 련속적이면서 동시에 불련속적인 특성을 띤다 . 이번 한영남시인의 근작시중에는 이외에도 > 등등 여러수의 시가 더 있지만 시간상 관계로 여기서 필자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이상 몇수의 시에서 살펴볼수 있는바 한영남시인의 근작시는 어쩌면 모험을 시도로 점층법과 겹쳐그리기 기법으로 완성 된것이 많으며 대부분 시들이 또한 한폭의 작은 우주를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오래도록 음미와 감상의 긴 여운으로 길게 남기려하는 시인의 대담한 시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오래도록 지속되여 온 구조주의적 모더니즘 사색에서 새롭게 탈출해보려는  시인의 굵직한 몸부림을 읽을수가 있어 무척 고무적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 다 함께 여기서 모더니즘 특성과 그 일곱가지 개념을 조심스럽게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모더니즘은 도시주의를 지향한다. 보들레르의 파리, 조이스의 더블린, 엘리어트의 런던, 도스패소스의 뉴욕 등등은 대체로 모든 모더니스트들은 자연이 아닌 도시적 삶의 문제를 형상화로 하였다. 둘째, 모더니즘은 공업기술주의를 지향한다. 기술세계란 도시적 삶의 토대라고도 할수 있다. 특히 립체파, 미래파, 다다이스트들이 무엇보다 강조한것이 기술성이다. 셋째, 모더니즘은 기술세계가 보여주는 그런 특성과 관계가 있는 비인간화를 지향한다. 비인간화는 오르테가 익가세트에 의해 현대예술의 기본개념으로 리론화된적이 있다. 넷째, 모더니즘은 원시주의를 지향한다. 원시주의란 추상화 된 삶,  현대시의 기본원리로 나타나는 은유나 상징 등도 이런 맥락우에 서 있다. 다섯째, 모더니즘은 에로티시즘을 지향한다. 따라서 모더니스트들의 과제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갈등을 해결함에 있었다 여섯째, 모더니즘에서 읽을수 있는것으로는 반도덕성을 들수 있다. 이른바 도덕률을 페기하는것은 현대미학이 삶의 도덕적 기초의 와해에서 출발하기때문이다. 일곱째, 모더니즘은 실험주의를 지향한다. 시간적 질서에 대한 회의, 따라서 모든 시간성을 공간으로 인식하려는 동시성의 개념이기도 하다.   시는 엄격히 말해서 독백의 양식에 속한다. 따라서 시에 대화의 양식을 활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필자로서는 궁금하기도 하다. 시에서 이중적구조법과 다성적 언어를 사용하면 곧바로 전통적인 시 쟝르의 해체라는 문제와 우리는 맞닥뜨리게 된다.아무튼 한영남시인의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이번 시적 행로가  좋은 결실을 맺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심양에서 2014년4월26일 发表于黑龙江新闻 7月11日第2版       전체 [ 9 ] 9   작성자 : 철리 날자:2014-06-10 09:58:33 창렬선생님의 진정 어린 에 감사합니다 님이 거론하신 시인들, 특히는 중년시인들, 조선족시단에서는 다 이름 있는 분들이 맞습니다, 저도 그들의 재능을 인정합니다. 사실 저는 근년에 나이 들어 시공부를 다시 좀 하면서도 문학에 정진하지는 못하고 취미로 좀 써보는 시애호자로서, 그저 그런 수준에 누구를 어떻다 말할 자격도 없으며 남들이 다 보는 댓글에다 남을 내리깎는 그런 못난 짓은 안합니다. 아무리 익명으로 쓰는 댓글이지만 누구를 마음 아프게 비하하거나 헐뜯고 인신공격하는 못된 짓을 말입니다... 나중에 허선생님에게 꼭 련계를 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8   작성자 : 허창렬 날자:2014-06-09 13:04:07 두분께먼저감사하다는말씀올려야할것같습니다.제가보건대중국조선족제1대로시인들로는(해방전을포함하지않음)아마도김성휘,조룡남,리상각,리삼월등이런시인분들인것같습니다.특정된시대의아주특징적인오묘한시들을써오신분들ㅡ허나개혁개방과더불어제일먼저개혁에앞장섰던분들로는김정호한춘최룡관시인님-이들중에서특히최룡관시인님은을완성시켜적잖은센세이숀을불러일으켰으며개혁파거장으로우뚝자리매김을한것같습니다.제2대시인(여기서는 주로 개혁개방이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시인들을 말하려 합니다)들로는 아마도 석화, 김학송, 리임원, 리성비 등등 시인들인것 같습니다 . 석화시인의 감학송시인의 그리고 리임원시인의 리성비시인의 이 이 모든것을 충분히 설명하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제3대 시인들로는 김영건 , 김승종, 한영남, 조광명, 등등 이런 시인들이 아닐가 생각됩니다. 김영건시인의 경우 시를 아우르는 령역이 넓고 거창하며 김승종시인의 경우 실험적인 모험정신이 누구보다 돋보이며 한영남시인의 경우 한과 상처문학을 계승 발전시켜 대표작이 제일 많으며 조광명시인의 경우 불교문화를 시속에 접목시켜 시적인 령역을 넓혔다고 할가요 . 허나 이들의 근작시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한계가 느껴집니다. 왜 그럴가요? 그 답안을 저는 김철호시인의 포스트모더니즘 접목에서 찾을수 있을것 같다고 확신합니다. 즉 하이퍼텍스트ㅡ아직 허다한 학자, 시인들이 하이퍼시하면 반대하는 양상이 있는듯 하신데 그럼 여기서 노벨상 수상자인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의 와 조향의 를 잠간 살펴 봅시다 기상도 시월 바다가 신기루 등지느러미를 달고 차갑게 반짝인다. 아무것도 요트경기의 백색 현기증을 기억하지 않는다 어슴프레한 호박빛이 마을위를 비추고 온갖 음향들이 천천히 날아다닌다 개가 짖는 소리는 정원위의 대기중에 그려진 상형문자다 정원에는 노란 과일이 나무를 바보 만들며 제 멋대로 떨어진다. 바다의 층계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手话机 녀인의 허벅지 낚지 까만 눈동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우에 손을 흔드는 하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끝에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이것이 시가 아니라면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가 어떻게 노벨상까지 받았을가요 ? 이번 평론에서 저는 한영남시인의 모험정신을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평론중에 고 하였고 은 좋다 나쁘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여기 댓글에서는 여러모로 이야기하기가 불편한듯 합니다.> 저의 qq입니다. 앞으로 우편함에 두 분의 고귀한 의견 엽서로 보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그때 가서 저의 전화번호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선배들로서ㅡ 형다운 형들로서ㅡ 따끔한 귀띔을 자주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럼 내내 행복하시고 오래오래 건필하세요 심양에서 허창렬 올림 7   작성자 : 힘내세요 날자:2014-06-08 13:27:49 6번님의 말이 좋은 같습니다. 우리 의 견해를 동감해주니 기분 또한 좋습니다.허창렬님은 아주 대바르고 정직한 면이 있어보여서 호감이 많습니다.보건대 허창렬님은 시를 아주 사랑하고 시에 아주 집착하고 있는 같습니다. 연변에 이런 분 아주 드물지요. 두루두루 보니 시에 집착하는 분을 헤여보니 거퍼 10명두 되나마나합니다.어떤 분들을 시에 집착한다고 하는가 하면 십몇년 수십년 하루도 빠짐없이 시만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이런 분들을 제가 직접목격해봤으니깐요 ㅎㅎㅎ .허창렬님은 앞으로 위대한 시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저명한 시인정도는 될같습니다(절대 풍자가 아닙니다).왜냐하면 마음 바르고 시에 아주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시에 끈질긴노력에 집착하면 이제 아무때건 하느님의 보살핌을 꼭 받을겁니다.허창렬님! 발전하려면 고집은 금물이란걸 미리 귀띔해주고 싶습니다(물론 님은 고집부릴사람 같지 않구요 ㅎㅎㅎ)힘을 내십시오! 6   작성자 : 철리 날자:2014-06-08 09:40:53 저 역시 조글로 글까페에서 허창렬선생님의 글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시에 대한 연구가 깊고 사람이 대바르고 베짱이 있어보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저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아래 분과, 두분의 시에 대한 토론분위기가 좋습니다 저는 그 누구와 시에 대한 쟁론에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나의 관점을 말할뿐. 저는 전통시와 현대시 그 중간을 좋아합니다. 그 중간을 일컬어 문학적으로 무어라 명명하는지는 몰라도. (어느 분이 알려주시죠) 그래서 두분의 주장에 다 수긍이 갑니다. 저는 너무 난해한 시는 거부합니다. 시는 그래도 읽고서 그 뜻을 감지할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룡관선생의 사람신체에 대한 시를 읽고는 탄복하였습니다...) 저는 철학이 깔려있는 시를 좋아합니다. 시속에 철리가 있다는 말 역시 시적발견이라는 말과도 통하겠지요 그래서 저 역시 리삼월의 시를 좋아합니다. 손 쉽게 리삼월의 단시 한수를 올립니다. 그녀는 라체조각상/ 말썽 많은 세상/ 호수가에 큰 엉덩이 내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머리가 있었지만/ 얼굴은 없었다. 5   작성자 : ㅎㅎㅎ 날자:2014-06-08 06:48:06 리상각선생님의 시 리삼월선생님의 시 등 좋은 시들이 많다봅니다. 그리고 리욱의 시 등 저는 이런 분들의 시를 좋아합니다. 발견이란 한마디로 일반사람들이 미처생각해내지 못한 생각을 해내는것이 발견이 아니겠습니까? 일반사람들이 다 아는 상식적인 생각을 시로 적는다면 시를 쓰나마나합니다. 그리고 발견없이 시를 쓰는 이들의 대채적인 공통점은 자기시를 암송하지못한다는것입니다.심지어 자기가 어떤 구절을 어떻게 되여 썼던지 도무지 기억도 안되는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이상각선생님은 저기의 수많은 시들을 왕왕 암송내여 읊습니다.그래서 탄복하는겁니다.발견도 없이 황당하게 쓰는 이 뚱단지말로 홍두깨를 내미는 이 몽롱하게만 쓰는이 이런분들께 한번 시험해보시라요 , 자기시를 암송할수 있는지 ? 남의 시라면 더더욱 암송하지도 않거니와 기억도 안 될겁니다.그러길래 발견이 중요하거니와 발견이란 신성시해보이기 합니다. 발견은 하늘이 주시는 겁니다.우리 시인들 발견없이 시쓰기에 습관된 이들 불알떼여놓고 장가드는격이 아닐가요?ㅎㅎㅎ 4   작성자 : 허창렬 날자:2014-06-07 14:02:59 선생님이이야기하시려는뜻은알만합니다만무엇이이고무엇이이 있고 을 넘어서려 하는 시인지 무척 궁금하고 감상하고 싶어집니다. 그럼 부탁 드릴게요. 기다리겠습니다 허창렬 올림 3   작성자 : 태산이 험난해도 날자:2014-06-06 21:17:47 우의 시들을 비롯해서 한해에 조선족시인들이 발표하는 시들을 죽 보십시오.거이 99%가 발견이 없거나 발견이 미미한 작품들입니다.우리 조선족시인들의 앞에는 발견이란 이런 태산이 앞을 가로 막고있습니다.그 태산이 험난해도 톺아 넘아가야 합니다. 넘어가자면 몇년 혹은 몇십년 혹은 한평생 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허다한 시인들은 그 태산을 넘기 싫으니깐 에돌아 갑니다.에돌아 간다는것이 왕왕 왜지밭으로 가기가 일쑤입니다. 례하면 황당한 비유라든가 몽롱한 표현들이거나 아니면 뚱단지같은 말로 불쑥 홍두깨를 내민다든가 하여튼 벼라별 지랄을 다 쓰고 있습니다.그래서 읽어보면 기억이 안되고 읽고난후엔 마음이 개운하지도 않고 오히려 왁작 스트레스가 오기까지 합니다.시를 써서 독자들을 흥분시키기는 커녕 작자자신마저도 슴슴해하는 시는 아예 쓰지 않는게 좋을 같습니다. 2   작성자 : 허창렬 날자:2014-06-06 15:57:44 선생님의날카로운지적에감사드립니다.이평론은한달전에조글로창작마당에올렸다가삭제했던글입니다.해빛도채못본채그냥방구석에쌓아두기엔너무아까워한영남시인의동의를얻은후다시조글로에올렸음을이야기하고싶습니다.오늘은울고싶어라마른눈물한접시특히마른눈물한접시는조금만더섬세한수개가있었더라면좋은시였으리라생각합니다.저녁황혼인생은모험적인것같습니다.특히저녁황혼의경우전통시각도에서살펴보면완성된작품이라고하기에는거리가있을것같습니다.허나파편문체특징으로재조명해볼때가능한시도라고하여도무방하지않을가요?어쩌면계륵일지도모를일이지만ㅡ매번시인들이내여놓는매수의시마다모두성공작일수는없다고봅니다.한마디로발표를념두에두지않은철저한실험적인시ㅡ한영남시인은제가좋아하는중청년시인입니다.솔직히선생님의허심탄회한조언을듣고싶습니다.그럼내내건강하시고항상건필하세요허창렬올림 1   작성자 : 평론에 대하여 날자:2014-06-05 19:45:43 우선 허창렬님의 끈질긴 시 탐구정신에 탐복합니다.우에서 여러 시들을 평했는데 필자가 보건대 잘 된작품이라 말하기엔 좀 그렇습니다. 시란 몇십초사이에 읽어보고 그 짧은 순간에 그 형상이 독자의 머리속에 남아야합니다. 이러길래 시를 성곡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는겁니다.허창렬님한테 묻겠지만 우의 시들을 보자마자 돌아서서 암송은 말고 그 내용이 도무지 앚혀지지않은 형상으로 기억할수 있는지요? 그저 수수한 사유에 머물면 그것이 관습니돼버려서 돌파적사유를 하지 못한다봅니다.짧은시의 단점장점을 보면 단점이란 바로 꼬리대가리없은 시로 되기 십상입니다.시의 성공의 여부는 그 시가 독자더러 기억하지 말래도 자연히 기억되게하는데 그 성곡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의 시들은 그 셩지에 미치는지? 우주 크나큰 의문부호를 달게 됩니다.     ///////////////////////////////////   꿈틀거리는 욕망 꿈틀거리는 몸짓 깨여나는 심상    한영남 근작시에서 살펴본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탐구정신                                          [ 평론 ] 허인   이니셜 내가 본 한영남ㅡ해학의 달인 통속언어창출의 놀라운 괴재                6월, 파겁을 시작한 뭇꽃이 앞 다투어 조잔한 열매를 두 손에 받아들고 어느새 초하(初夏)의 문턱- 높은  담너머로 고개를 기웃거리는 계절, 필자는 며칠전 할빈에서 이메일로 보내온 한영남시인의 근작시 10여수를 앞에 놓고 흥분으로 읽는다.  범상찮은 조짐 ㅡ 사실주의를 기초로 모더니즘의 싱싱한 점토우에 새롭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접목시켜 탈변을 목적으로 하려는 굵직한 몸부림 ㅡ 어찌보면 너무나도 익숙하고도 생소한 비유(比拟)와 은유(隐喻)를 단순히 형식적인 모험만이 아닌 형이상학적으로 변이ㅡ 변형시켜 이미지와 이미지사이를 직결로 링크, 꿀맛나는 이미지확장(扩张)을 하이브리드로 완성해보려 하는 대담한 착상, 그리고 언제봐도 심성이 항상 맑고 깨끗한 ㅡ 오직 한영남시인만이 완성시킬수 있는 독특한 시적인 질서와 그러한 조밀한 언어구조속에서 항상 가슴 따뜻하게 느낄수 있는 풋풋한 휴머니즘과 인문정신을 ㅡ추상적, 계기적, 구체적, 병치적ㅡ즉 리성보다는 본능, 질서보다는 충동,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더욱 폭 넓은 세계로 이어가려 하는 과감한 도전ㅡ 한마디로 꿈틀거리는 욕망, 꿈틀거리는 맥박, 깨여나는 심상(心象)을 함께 읽을수가 있어 무척 고무적이라고 총괄하고 싶다.   길림성 안도현 태생인 한영남시인은 일찍 초, 고중시절부터 벌써 신문잡지에 주옥같은 시작품들을 튝속 발표, 현재까지 '갈대는 저렇게 싱거워가지고', '환절기에 건강을 주문받습니다',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무깍지동네', '우리 서로 얘기 좀 합시다', '보리밭은 바람 아니더라도 설레이는것을' 등 시, 수필, 소설, 평론 등을 무려 300여만자 발표,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중국조선족동시탐구상, 중국조선족수필상, 도라지장락주문학상,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다수 수상, 2006년 시집 를 출간ㅡ현재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편집으로 사업중인것으로 알고 있다 . 필자가 알건대 한영남시인이 오늘날 개성이 뚜렷하고 유망한 문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적잖은 아픔과 홀로서기의 나날이 있었던줄로 안다. 시를 써야하는 백공한번째 리유에서 한영남시인은 철없었던 문학도시절 량친부모를  잃고 억이 막혀 혼자 쿨쩍일 힘마저 없었을때 가슴 따뜻한 긍정적인 말 한마디 하여준 고마운 선배문인과 인정에 너무나도 시린 손발을 늘쌍 친동기처럼 어루만져주고 다독여주었던 고마운 동우시인들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늦게야 늙은 총각딱지를 마침내 떼고 늦장가 들어 득남까지 한줄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늦게나마 행복의 메신저로 축하의 박수를 열심히 보내드린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즉 는 뜻 ㅡ어쩌면 요즘처럼 독지층이 얇아져 가는 조선족 시단에서 읽어볼만한 시가 없기로는 시인이나 독자나 매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시기에 한영남시인의 이번 해학, 독백, 역설을 위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접목시킨 근작시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오랜간만에 가슴 설레도록 할것이며 또한 오래도록  긴 여운을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기게 되리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그럼 아래에 우리 함께 한영남시인의 이번에 보내온 주옥같은 근작시 12수를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질서와 의식ㅡ그리고 무의식속에서 이끌어낸 해학의 즐거운 잔치 한 마당     시의 혁신은 곧 사유의 혁신이며 또한 언어의 혁신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를 쓸때 우선 먼저 미학적인 고려를 하여야 하며 또한 감수성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라 해야겠다 . 일찍 리요다르는 총체성에 대한 갈망이 이 시대에 오면 곧 하나의 환상이거나 지적인 테러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말한적이 있다. 총체성에 대한 갈망이란 현실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모순을 하나의 지적인 체계로 종합하려는 그러한 태도를 말하는것이다.그런 갈망이 환상이거나 테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함은 결국 모든 종합주의적 사고가 허구라는 사실이기때문이다. 이렇듯 탈구성적인 리념은 형식주의적인 이데올리기의 억압에 대한 미적인 저항이며 또한 구성이 아니라 충동을 강조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구성의 파괴가 아닌 구성속의 자연 분만된 여러가지 복잡성, 그리고 얽히고 섥힌 여러가지 겹치기 구조, 이런 태도는 시 ,소설ㅡ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하나의 구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론을 전제로 하기도 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해체시의 경우 주체적인 생산을 위해서는 탈구성 혹은 해체 개념에 대한 정확한 리해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럼 여기서 우리 함께 한영남시인의 이번 근작시 중ㅡ 질서와 해학의 즐거운 잔치마당중에서도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부터 다 함께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발가락 하나 감기 걸렸소 머리카락 한오리 발기불능증이오 귀지 한숟가락 당뇨병이라오 눈썹 한 대 좌골신경통을 앓는다오 이빨 한 대 정신분렬증을 치르오 코털 한 대 페암인 듯 하오 손톱 하나 에이즈와 사귀었다오 배꼽 절반이 알콜중독쯤이라오 자지 가운데가 중풍을 맞았다오 겨드랑이털 서너이랑이 백전풍과 담판중이라오 발가락사이 때 한줌이 배 두드리며 만포식이라오   이상 간추린 소식이였습니다   거울속의 나는 싱싱하기만 했다     전문이다.     시는 구조적 통일성보다 오히려 단편적인 앙상블로 인식되기도 한다. 앞서 평론에서도 이미 여러번 말한적이 있지만 시는 엄격히 따지면 독백의 양식에 속한다. 을 읽고나면 시인의 놀라운 재치에 저도몰래 즐거운 탄성이 터져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다 . 즉 인체의 각 기관들로 온갖 병적인 현상들을 직결시켜 완성시킨 이 한 수의 시는 읽을수록 쿡쿡 저도몰래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또한 시인의 기이한 발상과 착상이 새롭고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아 그야말로 가관이라 해야 할것 같다. 꼭마치 라캉식 행동, 칸트식 발언 , 미셜 푸코식 사유인것처럼 ㅡ/발가락과 감기/, 머리카락 한오리와 발기불능증/, 귀지 한숟가락과 당뇨병/, /눈썹 한대와 좌골신경통/, 이빨 한대와 정신분렬증/, 코털 한대와 페암/, 손톱 하나와 에이즈/, 배꼽 절반이 올콜중독/, 자지 가운데와 중풍/, /겨드랑이털 서너이랑과 백전풍/, 발가락 사이 때 한줌과 만포식/은 어찌보면 단순하면서도 시인의 의도적인 변이, 변형을 통하여 우리 이 사회의 여러가지 병페적인 현상들을 아이러니컬하게 해학적으로ㅡ 즉 유머 있게 풍자 비판하고 있으며 더우기 시인은 줄곧 작자가 아닌 편집자의 립장에 서서 어쩌면 앵커다운 앵커가 되여 차분한 목소리로 뉴스를 진행하듯이 패러독스를 펼쳐가고 있지만 그 효과음은 분명 공명이라는 전환 리듬을 타고서  읽는 이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파와도 같이 ㅡ둥둥 웅굴진 북소리가 되여 오래도록 메아리치고 있는듯 싶다. 특히 제일 마지막 련ㅡ /이상 간추린소식이였습니다/ 거울속의 나는 싱싱하기만 했다/에서 살펴볼수 있듯이 시인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코 는 그런 병적인 현상에는 쉽사리 끌려가지 않으리라는 강한 의지를 비추어 보여주기도 하면서 참된 인간의 성실한 모습을 조심스레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는듯 싶다. 필자는 웬만하면 누구를 함부로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여기서는 꼭 한마디 해야 겠다 . 한영남시인은 우리 이 시대의  해학의 달인임이 틀림없으며 통속언어창출의 괴재(怪才)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귀지, 자지, 그리고 /겨드랑이털 서너이랑이 백전풍과 담판중이라오/라는 표현은 지방적인 방언색채마저 다분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더없이 친근감을 느끼게 하며 또한 이라는 익숙하고 지성적인 간결한 사유를 통하여 독자들은 이 시의 매력에 저도몰래 푹 빠지게도 된다. 그럼 아래에 해학의 또다른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개구리 주저앉는 뜻은 멀리 뛰기 위한데 있다고 하오 개구리도 너무 오래 주저앉아있으면 오금 저려 더 멀리 뛰지 못한다 하오   그런건 아무래도 좋소 뛰기 위한 개구리는 눈은 없어도 좋소 다리가 부러져도 좋소 허리가 부러져도 좋소 몸뚱이가 부러져도 좋소   밸은 없는게 낫소 뛰기로 작정한 놈 뛰기만 하면 그만이오 배꼽은 뛰기에 차라리 거추장스럽다 하오   허리 부러진 개구리는 마침내 뛰지 않아도 좋소     -이상의 ‘오감도’에 부쳐ㅡ전문이다.     의인화 수법으로 씌여진 이 시속의 주인공, 즉 ㅡ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하여 의 형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안일한 삶속의 리유ㅡ 즉 무승자박(无绳自搏) 이라는 단단한 포승에 꽁꽁 묶이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상을  마치 두눈에 생생히 보이는듯이 그려놓은듯 싶다 . 제1련에서부터 력설적인 어투로 시작된 이 시는 거의 아무런 휘핑도 없이 오직 헤드라인과 초감각적으로 /개구리 주저앉는 뜻은 /멀리 뛰기 위한데 있다고 하오/개구리도 너무 오래 주저앉아있으면 /오금 저려 더 멀리 뛰지 못한다 하오/로 최저한도의 상황제시를 하여놓고서  다시금 제2련에서 /그런건 아무래도 좋소 /뛰기 위한 개구리는/눈은 없어도 좋소…/로 >, , 마저 부려져도 무작정 뛰여야만 하는 강한 충동을 야유적으로 고조시켜놓은듯 싶으며 특히 제3련에서는 아예/밸은 없는게 낫소/뛰기로 작정한 놈 뛰기만 하면 그만이오/배꼽은 뛰기에 차라리 거추장스럽다 하오/로 한술 더 푸욱 떠서 이 없고 이 없어야 어쩌면 살아가는데 적응할수도 있으며 결국 제 4련에서는 /허리 부러진 개구리는 /마침내 뛰지 않아도 좋소/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부제에서부터 이미 살펴 볼수 있다싶이 편지이고보니 아무리 어찌해 보아도 넘을수 없는 장벽같은것을 마주선 인간의 여러가지 형태를 적라라하게 풍자적으로 그려놓은듯 싶다. 그럼 아래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접목하여 완성시킨 몇수의 시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별이 차마 섬뜩했다 걸음마 익히지 못한 포플러 다행히 속으로 울 권리 있었고 언제나 다정한 얼음조각 팔불출이어서 싱거웁다 깊은 재채기는 차라리 갈대의 웃음파편 끝내 누가 고운 비자루로 쓸어놓은 서슬푸른 밤하늘이 조용히 발정한다     /별이 차마 섬뜩했다/로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한 이 시에서 필자는 마치 파트 타임이 아닌 터닝 포인트, 어쩌면 긴 타월로 철철 흐르고 있는 식은 땀을 홀로 게면쩍게 슬쩍슬쩍 딲고 있는  이상하게 관심이 쏠리는 별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 별이 시인에게 주는 섬뜩함이란 도대체 무엇이였을가ㅡ시제가 인것만큼 시인이 말하는 별이 도대체 무엇일가 하는 핀트는 독자 나름대로 설정하여도 무방하다고 생각이 된다. 특히 제2련 /걸음마 익히지 못한 포플러/에서 포플러ㅡ 즉 백양나무는 모두 다 잘 알다싶이 포플러나무는 이 세상에 태여난 그 순간부터 오직 한 자리에만 서 있어야 할 운명임이 분명한데도 시인은 여기서  /걸음마 익히지 못하였다/고 재치있게 표현하여 인생의 허다한 막무가내와 그러한 속박에 저항해보려는 역반심리, 즉 어디론가다 툭툭 털어내치고 훨훨 떠나버리고 싶어지는 그러한 강한 충동, 즉 된 령혼의 가슴 시린 간절한 바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듯 하며 그 다음 자연스럽게 줄 지어 다가서는 /다행히 속으로 울 권리/는 또한 과 이라는 재밌고도 어깨 단단한 이지미를 멋스럽게 견인해 내여 단 한마디 / 싱거웁다/로 현실에 대한 불안, 혹은 그러한 불만정서를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듯 하며 특히 제6련에서 /깊은 재채기/는 시인의 세심한 배려와 지성적인 사유끝에 변이, 변형을 통하여 /차라리 갈대의 웃음파편/이라는 너무나도 궁색하고 허무한 결과ㅡ 즉 자다가도 다시금 벌떡 일어나 초불을 켜들고 찾아 읽고 싶어지도록 간결함의 극치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결과마저도 시린 가슴에 포옹으로 끌어안으려는 시인의 각근한 태도에 읽는 이마저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며  특히 제 8련에서 10련까지 /끝내 누군가가 고운 비자루로 쓸어놓은/서슬푸른 하늘이/조용히 발정한다/는 그물에 걸지리 않는 바람처럼  리상적인 자유와 지향을 향하여 달려가려 하는 끊임없는 추구와 변함없는 생명운동을 지성적인 사유를 통하여 실천해보려는 시인의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을 암시해주는듯 싶다. 여기서 걸음마 익히지 못한 포플러, 다정한 얼음쪼각, 갈대의 웃음파편은 폭력적조합을 이루면서도 전혀 이상하거나 낯선 감이 없어 한영남시인이 언어련금술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잘 다루고 있는지를 아낌없이 잘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분명한 질서와 구조속에서 생명운동이 진행중이다. 그럼 아래에 수학 매트르식이 아닌 속사로 생명구조와 분명한 질서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명운동을 마치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듯이 그려놓은 을 잠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마당에 전차 버스 트럭 차들이 서있다 곤하게 전차 버스 트럭 차들이 서있다   새벽같이 전차가 빠져나간다   마당에     버스 트럭 차들이 서있다 곤하게     버스 트럭 차들이 서있다   아침이면 버스도 빠져나간다   마당에          트럭 차들이 서있다 아직도          트럭 차들이 서있다   여보게 시작들 합세   마당에                차들이 없다 마당에                차들이 없다   하루가 도르르 말려 저쪽으로 사라지고 하루일에 지친 차들이 다시 들어온다   마당에 전차 버스 트럭 차들이 서있다 곤하게 전차 버스 트럭 차들이 잠잔다     전문이다   은유에 기대여 직조된 이미지 그 자체를 통해 많은 자유련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한수의 시는 없이도 매일 진행되는 생명과정에 대한 한차례의 미적감수를 경유했다는데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보여진다. 어쩌면 삶과 분리된 구성물이 아닌 진행속에 있는 구성물, 즉 제1련에서 볼수 있다싶이 을 바라는 시인의 시선은 정지된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물인 전차, 버스, 차, 트럭을 따라 움직이는것, 또한 혼자서는 절대로 저절로 움직일수조차 없는 피창조물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속에서 창조자인 인간이 기계에 기계적으로 매달려 살아가는 곤한 모습을 머리속에 떠올리게 하는듯 싶다. 꼼꼼히 살펴보면 새벽같이 전차가 빠져 나가고 나면 그 자리는 잠시 비게 되며 다음은 버스ㅡ 차들 ㅡ여기서 시인은 분명 원유의 질서를 해체하려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들을 재발견, 즉 차들의 움직임을 통하여 현대인의 바쁜 일상과 희노애락을 엿볼수 있게끔 하고 있는듯 싶다. 시의 언어는 의미전달의 언어구조가 아닌 의미형성의 새로운 이미지구조여야 한다. 특히 문체는 작품 자체가 가지고있는 세부의 기능이기때문에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특별한 태도라고 해야 할것 같다.그럼 아래에 남달리 시각 효과가 뛰여난 와,를 살펴보기로 하자      탐미주의적 경향  시대적 발현의 새로운 심상   나비   풀- 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훨 나 풀    나도 한수의 시로 남을수 있다면   나는 나를 위해 나의 누드를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정조를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사랑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아픔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행복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심장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령혼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무덤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의미를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이름을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용서를 버린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를 버린다 나를 위해 나의 모든것을 버린 나는 내가 모든것을 버려서 비여버린 나는 드디여 한수의 시로 남는다   길은 길에 미안하오   길은 어디로 어떻게 뚫린거라도 괜찮소 길은 걸어주는것이 도리요 길은 자주 걸어줄수록 길이요 길은 혼자만의 길이 있듯이 길은 여러 사람의 길도 있소 길은 혼자만 걷고 싶은 길임에도 길은 여러 사람이 자꾸 기웃거리오 길은 혼자 걸어도 길이요 길은 여럿이 걸어도 길이요 길은 길이기에 길들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오 길은 아무렇게나 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위험하오 길은 저만치 길다운데 길은 길일뿐이오     시인이 굳이 언어의 질서를 파괴하려 하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시어로 접근하려는 것은 어쩌면 어떤 사물에 대한 인습적인 사고를 단단히 긍정하면서도 또한 끊임없이 전복해보려는 시인의 각근한 노력과도 관계되는상 싶다. 이러한 각근한 노력끝에 한영남시인이 를 바라본 시각현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가? 필자가 보건대 그건 아마도 단순히 한 사물을 바라보기 위한 수단인것이 아니라 사물의 전체적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즉 한가지 측면만 통하여 깊이 료해하고 결정해보려는 심리를 폭죽효과로 삶의 공간에 터뜨리려 한것 같다.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기서 은 어쩌면 바람앞에 흔들리는 일수도 있고 또한 의 줄임자일수도 있으며 무려 500여개의 은 마치 수천 수만마리의 나비가 동시에 하늘을 날아오르는듯한 환각을 주어 시각효과가 뛰여나며 다음 결속어 은 시인의 생명에 대한 무한한 열애와 환희를 나타내려 한것 같다. 반복구사법, 겹치기기법, 절충법으로 씌여진 ,역시 같은 실례라고 생각이 된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누드를 버린다/로 시작하여 정조, 사랑, 아픔, 행복, 심장 ,령혼 , 무덤, 의미 , 이름 , 용서, 훈민정음 ㅡ 그리고 무려 13차례나 되는 라는 고도로 집중이 되는 비움속에서 평생을 한수의 시로만 남고싶은 시인의 간절한 욕망, 그리고 동업자가 일수도 혹은 일수도 있기에 거기에서 오는 미안함을 길로 간결히 표현한 는 첫째, 시각효과가 뛰여나며 둘째, 군더더기 하나없이 주체의식이 명확하며 셋째, 시의 또다른 가능성마저 제시해주는듯 싶다. 다만 프로의 경우   탐미주의적 경향, 즉 시대적 발현의 새로운 심상으로 받아들여 지겠지만 아마추어의 경우 자칫하면 문자유희에 빠질 그런 우려가 있음을 모두 류의해야 할것 같다.   물덩이들의 반란   물들이 물덩이들이 왈칵왈칵 내 목구멍을 헤집는다 내 목의 겨불내를 닦아주기 위해서 얼마쯤 머뭇거리거나 서성거려주어야 하는데 녀석들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살겠다는듯이 내 위장속으로 란폭하게 쓸려들어간다 내 목구멍을 한껏 벌려버리고는 잘 줴기진 물덩이들이 제법 단단해가지고 한사코 아우성치며 빨리듯 들어간다 물은 물들은 이런것이 아니겠는데 부드러운 물들이여야 하는데 물덩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힘을 자랑한다   분명 나를 아프게 한 물덩이들이 사랑스럽다      리얼리즘이 세계성을 강조하고 모더니즘이 자율성을 강조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상호 텍스트성을 강조로 한다 . 무릇 이 시대의 모든 문화현상과 사회현상은 지극히 단순한 상호 반영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동일시되며 더 나아가서는 가끔 사회현상이 문화현상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더불어 문화현상이 사회현상을 시의 심층 구조속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는 말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 은 제목자체에서부터 이미 엿볼수가 있다싶이 지극히 익숙하고 자연스럽고 단순하였던것들이 가 되여 잘 줴기지고 때론 제법 이 단단해져 간혹 할수도 있지만 결국 사랑스럽다는 표현으로 상호 의존된 력학관계와 애잔한 관용의 미학을 섬세하게 그림으로 그려낸듯 싶다. 여기서
2228    중국조선족시인 심명주 篇 댓글:  조회:285  추천:0  2024-08-29
중국조선족시인 심명주 篇 동주의 순이가 되어 2018년 03월 08일 작성자: 명주 동주의 순이가 되여 -명동소학 옛터에서           심명주   명동의 하오 바람은 아직 어립니다 고작 백년을 불었을 뿐 구수한 촌부로 낡아온 옛터들과 철야를 바장이고도 사뭇 씩씩한 별들과 아직 파라니 젊은 하늘 이곳에 동주의 순이가 있습니다 고르로운 볕살을 아우라 삼아 걸어오는 남자, 명동의 사나이 그이 앞에 늙은 세상은 더 이상 춤추지 못하고 불탄 자리 오롯한 여기에서   옛 교가 부르며 명동의 하루 동주의 순이로 환생하여 봅니다 청색의 생가 사진속 바라만 보아도 더불어 푸르게 물들것 같은 미간이 강인한 북간도 명동 오라버니 아련한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숲같이 깊은 이야기들 륙도하는 뜨거운 한밤의 암등을 싣고 선바위와 어슷이 눈맞춤하며 느린 걸음 재촉합니다 이곳에서 순이가 되여 남의 나라 륙첩방에 누워 보고 현해탄 아스라이 관부선 걸음걸음 연희대와 숭실대 그리고 더기 우의 은진중학 오늘 하루 순이가 되여 우물과 굴뚝과 새벽바람 막아주는 한지 바른 창문에 육신이 어디서 가루로 빻아졌든 꿈엔들 잊었을가 동주의 청산, 여기 명동을 북간도 백살의 끼끗한 오라버니 오늘 하루 그 넋에 손 포개여 나도 북간도 한낱 토종 계집애 동주의 순이가 되여, 순이가 되여 파일 [ 6 ]       /////////////////////////////////////////////////////////////// 이름: 심명주 필명: 명주, 가람    길림대학 외국어학부 졸업  북경로신문학원 수료 1992년부터 (주)러시아 중국무역회사 근무  편집 기자,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 문화연구원 력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회원   시, 수필, 칼럼 등 각종 간행물에 발표 시집 "간밤에 꽃이 피였습니다" 간행   연변일보  시부분 대상 수상   제10회 연변지용제문학상 수상, 년도상 등      
2227    중국조선족시인 전병칠 篇 댓글:  조회:257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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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6    중국조선족시인 박문파 篇 댓글:  조회:337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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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5    중국조선족시인 김인덕 篇 댓글:  조회:315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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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4    중국조선족시인 송미자 篇 댓글:  조회:228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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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중국조선족시인 리순옥 篇 댓글:  조회:311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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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중국조선족시인 리춘렬 篇 댓글:  조회:245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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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1    중국조선족시인 김현순 篇 댓글:  조회:264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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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0    중국조선족시인 리임원 篇 댓글:  조회:167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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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9    중국조선족시인 리성비 篇 댓글:  조회:314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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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8    중국조선족시인 주성화 篇 댓글:  조회:252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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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7    중국조선족시인 주룡 篇 댓글:  조회:309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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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    중국조선족시인 전경업 篇 댓글:  조회:241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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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5    중국조선족시인 리상학 篇 댓글:  조회:319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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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4    중국조선족시인 리호원 篇 댓글:  조회:318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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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3    중국조선족시인 허흥식 篇 댓글:  조회:256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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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    중국조선족시인 김문회 篇 댓글:  조회:330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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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    중국조선족시인 리근영 篇 댓글:  조회:284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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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    중국조선족시인 현규동 篇 댓글:  조회:293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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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    중국조선족시인 김준 篇 댓글:  조회:243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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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    중국조선족시인 김영능 篇 댓글:  조회:293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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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    중국조선족시인 김동진 篇 댓글:  조회:294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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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    중국조선족시인 김응준 篇 댓글:  조회:283  추천:0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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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    중국조선족 우화시인 허두남 篇 댓글:  조회:376  추천:0  2024-08-29
조선족문단 우화시의 개척자-허두남   조선족문단 우화시의 개척자-허두남                  최룡관                                  세계적으로도 일생동안 심혈을 몰부어 우화와 우화시를 연구하는 작가는 아마 많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우리 연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일찍 이십대에 자신의 첫 우화시집이자 중국조선족문단의 첫 우화책을 펴내서부터 40년동안 우화와 우화시 창작에 몸을 담그어온 허두남이다.     1979년  첫 우화시집 “개미와 코끼리”로 우화책이 없던 우리 문단의 공백을 메꾼 허두남은 지금까지 8권의 우화책을 출판했는데 산문으로 쓴것이 2권, 시로 쓴것이 6권이다. 허두남은 산문으로 된 우화보다 우화시 창작에 더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허두남이 창작한 6권의 우화시집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저 한다. 일찍 맏형님의 영양을 받아 소학교시절부터 우화시를 습작해오던 허두남은 1979년 처녀작 우화시집《개미와 코끼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우화시 25수가 수록되여있는 이 책은 정영석의 중편소설 “제2호순라선에서”와 더불어 문화대혁명후 제일 먼저 출판된 개인아동문학서적이다. 책장을 열면 집채만한 코끼리로부터 입쌀알만한 개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동물들이 살아움직이는데 대뜸 아이들의 눈길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작품집중의 “잣새의 계획”은 국경30돐창작상을 받아안는 영예를 지녔고  소학교교과서에도 번듯이 올랐다. 작품집에 호구를 올린 우화시들은 거개 이야기가 흥미롭고 주제가 뚜렷하다. “잣새의 계획”은 조건타령을 하며 일을 미루다간 랑패볼수 있다는 도리 ,”사슴의 후회”는 작은 흠집도 제때에 고치지 않으면 큰 흠집이 될수 있다는 도리, “고양이건축기사”는 일을 첫시작부터 착실히 하지 않다간 망쳐버릴수 있다는 도리, “알깔줄 모르는 소쩍새”는 부질없는 자존심을 부려서는 배울것도 못배우게 된다는 도리를 재미있는 이야기속에 재치있게 집어넣었다. 그밖에 우화시 “뽐내던 원숭이”, “퇴박맞은 담비”, “여우의 선물” 같은 작품들은  풍자성과 유머감이 아주 짙다. 책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 반면 부족점도 적지 않다. 첫째: 산문화경향이 심한것이다. 우화시에선 산문화를 허용한다고는 하나 허용한다는 것은 좋다는 말과는 다르다. 이야기를 담자면 산문화를 피면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너무나 산문화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작품집의 많은 우화시들은 시행을 붙여놓으면 산문이 된다. 둘째: 편폭이 너무 길다. 우화시라면 무조건 꼭 짧아야 한다는 도리는 없지만 어느 작품이나 다 기니 문제인것이다. 우화시 “민들레씨의 이사”는 주견 없는 민들레씨가 좋은 고장으로 이사가려다가 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생동하게 그려낸 작품인데 내용은 매우 좋으나  산문화되고 편폭이 너무 길다. 무려 58행이나 된다. 주인공 민들레씨가 네 인물-동풍, 서풍, 남 풍,북풍과 대화를 주고받은것을  직접담화법의 수법으로 옮겼으니 그렇게 길어질수 밖에 없는것이다. 전반 시도 길고 시행도 늘차니 좀 숨이 찬감이 난다. 허두남의 우화시집《승냥이와 범》은 첫 작품집이 출판되여서부터 5년뒤인 1984 년에 료녕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되였다. 이 책엔 31수의 신작이 수록되여있는데 책을 읽어보면 작자가 첫 작품집에서 나 타난 약점을 미봉하려고 모대긴 흔적을 “함축”이라는 두 글자로 함축할수 있다. 이 책에도 좋은 우화시들이 적잖게 있다. 첫 작품집에서 나타났던 시가 너무 긴  페단을 극복하고 완정한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간결하게 쓴 우화시들이 여러편이다. “범나비”, “도마뱀의 재간”, “대충의 대화””후회만 하는 염소” 등은 아주 풍자적이고 재미 있다. 우화시 “범나비”를 살펴보기로 하자.   풀이슬에 날개 젖은 친 범나비/큰길에 앉아 볕쪼임하는데/ 꼬꼬수탉 한마리/모 이 찾아 기웃기웃 다가왔다// “거기 오는 수탉놈아/ 냉큼 제자리에 서지 못할가?/ 내가 누구라고 / 감히 내앞으로 지나가려하는거냐?/ 그 말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다가오는 꼬꼬수탉// 범나비는 가장 위엄있게/ 목청을 가다듬어 꾸짖었다./ “이 버릇 없는 수탉놈아/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느냐?/ 내 이름을 들으면 넌 기절할게다./ 이 어른이 바로 범나비란말이다.// 여진히 못들은듯/ 기웃기웃 다가오는 꼬꼬수탉// 범 나비는 날개를 퍼덕이며/ 고래고래 욕설 퍼부었다./ “이 되지 못한 수탉놈아/ 하루강 아지 범 부서운줄 모른다더니/  내 이름 듣고도 그냥 다가와?/ 범나비란 나는 범이란 말이다./ 네놈이 뛰는 범 무서운줄 알면서/ 나는 범 무서운줄 모르다니…”// 그제야 범나비를 발견한 꼬꼬수탉/ 씽 달려가 뚝 찍어먹었다. 이 우화시를 보면 웃음을 금할수 없다. 범나비야말로 풍자의 대상이고 우습광스 러운 우화적 인물이다. 이름보다 실속이 중요하고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것을 반면적으로 일러주고있다. 그런데 작품은 내용은 재미 있지만 표현수법은 별루인감이 든다. 전반 시는 29 행으로 첫번째 우화집에 실렸던 대다수의 우화시들보다 절반가량의 편폭이다. 그런데 도 여전히 함축미가 결여한 느낌이 드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 원인은  작품구상이 산문적으로 되였기 때문이다. 이 우화시는 비록 편폭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첫번째 책 에 수록된 우화시들과 똑 같은 수법으로 창작되였다. 사건발전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서술했는바 붙여놓으면 산문이 된다. 이 작품집에 실린 많은 우화시들이 이런 공통적인 단점을 갖고있다. 편폭은 줄이 려고 애썼으나 다양한 수법을 동원하여 재치 있게 예술적으로 표현하지 못했기에 단 조롭고 딱딱하며 매력이 모자란다. 우화시를 보다 짧고 감칠맛 있게 쓰려면 고운 시어를 고르고 조화롭게 다듬는것 도 중요하지만  구상할때 “시적”으로 구상하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줄글의 구성과 시 의 구성은 서로 다른 특점을 갖고있는것이다.  우화제재를 찾기가 그처럼 어려운데 마음 드는 제재를 손에 넣었다면 매 한편의 작품마다 제재를 찾는것만큼 그 형식에도 고심해야 할것이다. 1995년에 출판된 세번째우화시집 《춰주는 바람에》(우화시 64수)에서는 작자가 시도한 개혁이 보다 폭이 크다 앞의 두책에서는 이야기과정을 전개했지면 세번째책에서는 과정을 전개하지 않고있다. 따라서  산문적이던 구성도 시적으로 해결되였다    우화시 “떨어져버린 록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따스한 새 봄/ 꽃사슴 머리에 돋아났어요/ 솜털 보시시한 “록용나무”가// 귀한 보약이라/ 만나는 짐승마다/ 간청 했어요, 록용 팔라고// (어쩔가, 팔가?/ 안야/ 두고 두고 자랑거리 삼을테야!)// 꽃사슴 고개 건뜩/ 어깨를 으쓱/ ㅡ나의 보밴 한평생 안 판다 안 팔아// 가을 되니 보배 록용/ 뼈처럼 땅땅/ 이듬해 봄 되자 떨어져버렸어요   이왕에 쓴 우화시같으면 또 독자가 다 내다본 과정을 지루하게 서술했을것이다. 례컨대 곰할아버지가 록용을 팔라고 청들었지만 도리머리를 저으며 안 팔았다, 노루아저씨가 사정했지만 또 밀막아버렸다, 토끼아우가 간청했지만 그것도 외면해버렸다….그렇게 전개했더라면 그 편폭이 “민들레씨의 이사”와 거의 비슷하게 되였을것이다. 하지만 작자는 이 작품에서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고 내용을 집중,개괄하여 표현했기에 편폭이 절반나마 줄어들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대다수의 우화시가 이 우화시처럼 이야기를 씀에 있어서  사건을 따라가며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점에 서서 그려냈다.  역시 우화시 64수가 수록된 네번째 우화시집《세수해선 뭘해, 또 때가 낄텐데》 (동북3성교육출판사,2002년년)는 많은 새로운 특점이 있다. 첫째: 동식물을 쓰던데로부터 아이들을 쓰는것으로 개혁을 가져왔다.   64수가운데56편이 아이들을 쓰고있다. 이른바 “랑만주의우화시”로부터  “사실주의우 화시”로 바뀐것이다. 둘째: 시어가 한층 세련된 것이다  우화시 곤충채집은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돌쇠하고 누나하고/ 곤충채집 간다야// 누나는야 맨손이지만/ 돌쇠에겐 포충망// 나풀나풀 꽃나비/ 또로록또로록 베짱이// 나무잎우에 앉아/ 그네뛰는 매미// 쑥초리끝에서 파르르/ 발레추는 잠자리// 누나는야 살금살금/ 발꿈치 살짝 매미 한놈// 돌쇠는야 우쭐우쭐/ 포충망 휙 잠자리 한놈// 누나는야 한나절에/ 열마리 잡았는데// 돌쇠는야 웬 일일가/ 살펴보면 빈 포충망// 포충망에 포충망에/ 구멍난줄 몰랐네.   이 우화시는 허두남에게서 늘 나타나는 산문화가 가장 잘 극복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제를 볼 때 전혀 새롭지 않다 가능하게 “구멍난 독에 물 퍼붓기”란 속담에서부터 구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어가 아주 잘 짜였다.  “그네 뛰는 매미”,  “발레추는  잠자리” 등 구절들은 매우 생동하며 운률도 성공적이다.  전반 작품이 이른바 산문적으로가 아니라 시적으로 언어구사가 이루어졌다. 셋째: 유머감이 한층 진해졌다.  우화시 우화시 “약 먹을 때”를 살펴보자.   파리가 썰매 탈지경/ 윤기 반들 대머리 만지며/ 의사 선생님/ 한 눈 찡긋 일러준 말//ㅡ꼬마아가씨/ 이 약 먹을때/ 물 마시면 절대 안돼/ 물 마시는 날엔/ 이 할아버지처럼 대머리가 돼// 의사 선생님의 대머리/ 참기름이라도 칠했나/ 내 눈길도 미끄러져 떨어지는듯/ 몸이 오싹// (어마나! 롱구공 같네요/ 내 머리가 대머리 되면/ 작은 배구공 같을거야!)/ 머리가 대머리 될가봐/ 작은 배구공 될가봐/ 갈증이 나도/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어요//해님이라도 삼킨듯/ 너무너무 목이 탈때면/ 한꺼번에/ 얼음과자 열대 먹었을뿐   이 작품은 풍자와 유머가 강할뿐 아니라 표현도 아주 훌륭하다. “파리가 썰매탈지경 윤기 반들 대머리”, “의사선생님의 대머리 참기름이라도 칠했나 내 눈길로 미끌어떨어지는듯”, “어마나! 롱구공 같네요. 내 머리가 대머리 되는 날엔 작은 배구공 같을거야!”. 해님이라도 삼킨듯 너무너무 목이 탈때면” 등 표현들은  극히 성공적이다. 이렇듯 작품의 언어가 갓난아기처럼 귀한 주요원인은 아이들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천진란만한 동심에 비쳐진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냈기때문이다.     춰주면 좋아하는 아이/ 코흘리개는/ 숱한 애들이 앞다투어/ 너 참 힘세다 춰주니/ 너무 좋아 코를 풀쩍풀쩍/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나 진짜 힘장사야/ 얼마나 센지 보련?/ 커다란 돌 척 들고서/ 다들 보라는듯 우쭐우쭐/ 국수오리 같은 코물이/ 발등까지 드리운줄도 몰랐대요   이는 우화시 “코흘리개”의 전문이다. 이 글의 주제는 “칭찬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놈에게 쉽게 리용된다.”로 될것이다. 이 주제를 표현하자면 “큰 인물”의 “큰 사건”을 가지고 “큰소리”를 치는 페단이 생길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작자는 그와는 정반대로 코를 많이 흘리는 한 아이를 통해 그것을 생동한 만화처럼 잘 보여줬다. 자칫 꽛꽛하게 만들수 있는 문제를  작고 재미있는 해학으로 원만히 표현하였다   앞으로 이러루한 제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작자는 이 책에서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내용을 많이 취급했다.  흔히 아이들을 쓴 작품들에 학굫생활, 특히 공부에 대해 쓴것이 적다 그만큼 중요하고 가장 일반적인 것일수록 쓰기 힘들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학교생활, 공부를 두고 쓴 우화시가 상당한 수를 차지한다.  “성급한 아이”, “사내애가 그럼 못써”, “구멍난 책장”,   “”그런 로봇”, “락제생된 사연”, “두고보자”, “책을 많이 읽을테야”,  “빵점”,  “꾀보→“울보”,  “지각대장” 등이다  작자의 다섯번째 우화시집 《사탕을 좋아하는 애》(우화시 80수)는 2006년 한국에서 출판되였다. 이 책에는 네번째 책의 우화가 절반 넘게 들어있다 하지만 그대로 실은 우화는 기본상 없고 다시 손본것들이다 작자는 이 책에서 우화시의 언어를 많이 “미용”했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을 창조하려고 품을 넣었다. 우화시 “뚝쇠의 자존심”을 보기로 하자   아이참, 저 뚝쇠/ 머리는 뚝 막혀가지고/ 자존심은 쇠처럼 강해서/ 이름도/ 뚝/ 쇠// 저보세요/ 상우에 숙제책 펼쳐놓고/ 책장우에 연필장단 똑똑/ 귀불만 만지작만지작// 녀동생 꽃분이 들여다보더니/ 오빠, 내 알려줄가?// 힐끗 동생을 지릅떠본 뚝쇠/ 까불지 마/ 쥐방울같은게 뭘 알아서…// 연필장단에/ 애꿎은 책장은 벌집 되여도/ 뚝쇠와 숨바꼭질하는/ 답안// 시계소리 재깍재깍/ 텔레비죤아동프로 이제 곧 시작한다/ 뚝쇠를 재촉하며 재깍재깍’’ 바빠 난 뚝쇠/ 궁둥이 들썩들썩/ 솥뚜껑우의 개미인가/ 안절부절/ (이 뚝쇠를 구해줄 사람은 없나?)// 이제 다시 동생에게/ 묻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하고   이 작품도 인물에게 꼭 맞는 어휘를 사금 일듯 골라서 주인공의 행동을 잘 묘사했다. 하나도 능하게 없으면서 녀동생앞에서 으시대는 이웃집의 코흘리개와 비슷한 뚝쇠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온다. “연필장단 똑쪽”, “귀불만 만지작만지작”, “힐끗 녀동생을 지릅떠본 뚝쇠”, “쥐방울같은게”, “”연필장단에 책장은 벌집 되여도”, “뚝쇠와 숨박곡질하는 답안”, “솥뚜껑우의 개미인가 안절부절”, 등 구절들은 머리는 뚝 막혀가지고 동생앞에서 오빠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웃기는 아이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격이다. 마지막 련에서 “묻지도 못하고”를 반복한것도 주제을 강조하는면에서도 좋거니와 문체론적효과도 충분히 나타냈다. 마지막련도 잘 처리했지만 이 작품이서 특히 훌륭하게 쓴 부분은 첫련이다. 첫행에서  “아이참, 저 뚝쇠”-이렇게 “문을 열자 산이 보이는” 수법으로 시작한것부터 좋다. 편폭이 짧은 우화시에서 “짧은 밤에 긴 노래 부를”것 없이 글줄을 아낀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첫 련에서도 가장 첱금싸게 잘된 점은 이름도 뚝 쇠 이렇게 세개행에다 갈라놓은 것이다. 이것은 형태이미지이다. 종이를 랑비하면서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뚝쇠라는 이름이 바로 주제이기 때문에 강조한것이다. 서로 상반되는 모순의 성격을 이 두 글자로 잘 표현했지 않은가? 그러니 두 글자에게 당당하고 분명한 자리를 드린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행을 한글자씩 뜯어서 내리배렬하니 자기도 한번쯤 그렇게 해본 그런 언어장난과는 전혀 다른 좋은 착상이고 설정이다.  “뚝쇠의 자존심”이 이름 두글자를 두행에 나눠놓은것이 형식상 성공적이라면 전반 우화시를 새로운 형식으로 쓴것도 있다.  우화시 “착한 일”이 그렇게 씌여졌다.   일과에서 빠짐없는/ 일기 적기/ 착한 일 적기// 보배둥이 일기책에/ 또박또박/ 연필도 신이났나/ 미끄럼질 쭉쭉// ㅡ오늘은 뜻깊은 날/ 낯선 할머니 도와/ 짐 들어다 드린 날/ 착한 일 찾아하니/ 칭찬받은것보다 더 기쁘다// 귓가에 속삭이는/ 자애로운 목소리/ 일기란 진실하게 써야 해!//! 뒤머리 썩썩/ 덧붙이는 몇줄// 아래 학급 돌이/ 자기가 할머니 돕겠다/ 짐 붙잡고 놓지 않았다/ 달래여도 듣지 않아/ 겁을 줘도 듣지 않아/ 빵! 한주먹 먹이고/ 제꺽 짐 빼앗았지 헤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 그러면서도 너무 진실하게 아이의 성격을 그려낸 성공작이다. 내용도 새롭고 형식도 새롭다. 작자는 천진란만한 아이의 성격을 잘 그려냈을뿐 만 아니라 그 그림을 일기라는 액틀에다 정히 넣어서 걸었는데 형식이 아주 맘에 쏙 든다     형식이 생신하고 독특한 우화시로는 또 “친구사귀기”가 있다. “친구사귀기는 인터넷사이트를 리용해서 친구를 사귀는 형식을 빌어 웃음거울에 비친듯 우습광스러운 주인공의 형상을 보여주고있다.   인터넷 사이트로/ 친구나 사귀여 볼가/ 아무렴!/ 나처럼 훌륭한 애에겐/ 친구도 많아야지// 제 자랑한다 말아/ 나하고 사귀고 싶은 애들은/ 검색 창에 내 간력 쳐보렴/ 내가 허풍 쳤나// 나는나는/ 장점은 하늘만큼/ 단점은 손톱눈만큼// 내 또래중 키도 껑충/ 학급에서 힘도 으뜸/ 성미 활달한 사내대장부// 밥은 아빠보다 더 먹고/ (애들은 잘 먹어야 잘 큰대)/ 잠은 하루 열시간/ (애들은 잘 자야 건강하대)/ 늘 토끼처럼 뛰놀지/ (애들은 잘 놀아야 밝게 자란대)// 장점은 무지무지/ 많고 많지만/ 단점은 딱 하나 공부싫어증   “친구사귀기”나 “착한 일”같은 형식은 아주 좋은 추구이다. 앞으로 이런 추구들이 많아져 허두남이 독자친구들을 더 많이 사귈수 있기를 바란다. 우화시집 “사탕을 좋아하는 애”도 생동성, 형상성면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남긴 다. 2015년에 출판된 여섯번째 우화시집 《빵순이 다이어트》(연변인민출판사)에는 보다 세련된 우화시가 무려137나 수록되여있다. 이 책에서 작자는 우화시를 보다 동시처럼 개조하는데 모를 박았고 많은 성과를 올리고있다. 작자는 아예 책의 쟝르를 우화동시집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이전의 책들보다 질이 한 차원 높아졌다. 우선 우화시들이 재미 있어졌다. 다음 편폭이 한층 짧아졌다. 편폭은 짧아졌지만 작품을 인위적으로 줄여놓은 느 낌이 들지 않고 생동한 세부와 형상적인 구절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간결하고 재 치로우며 깜찍하다. 많은 우화시들은 형식상 완전히 일반적인 동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반 동시처럼 쓰여진 몇편의 우화시를  살펴보자     내 가슴속에 피여난 꿈/  아롱다롱 칠색무지개/ 저 하늘의 무지개보다 더 고운 고운 꿈/ 목화송이 흰구름 말끔히 닦은/ 파란 저 하늘보다 더 고운 꽃꿈//나의 고운 꿈 멋진 꿈은/ 아롱다롱 칠색무지개 베여다가/ 색동저고리 지어 입고/ 파란 하늘 한 자락 살짝 베여다가/  파란 치마 곱게 지어 입는거야!// 너무 너무 소중한 꿈이기에/ 맘속으로만 고이 키우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 다른 사람 내 꿈 훔쳐갈가봐//저 높은 곳에 있는 무지개를/  어떻게 베여올가?/ 누가 저 높은 곳에 올라가서/  파란 하늘을 베여온담?/ 그리 큰 가위는 또 어데서 구하나?        이는 우화시 “고운 꿈”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존의 우화들과 완전히 다르게 일반 동시처럼 썼 다. 아주 감칠맛 난다. 작자는 한 녀자애의 아롱다롱 고운 무지개꿈을 그리고있다. 파란하늘을 베여다가 치마를 지어입고 칠색무지개를 베여다가 색동저고리를 지어입 었으면 하는 천진란만한 어린아이의 꿈은 그야말로 “목화송이 흰 구름이 말끔히 닦은 파란 저 하늘보다 더 곱고 아롱다롱 칠색무지개보다도 더 고운 꽃꿈인것이다. 좋기는 파란 하늘을 베여올  때 해까지 함께 베여다가 옷을 지어입는다면 더 리상적이겠지. 하늘색 파란 바탕에 황금빛 해를 수놓은 옷,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옷이 아름다운걸 물론 해까지 있으니 겨울에 춥지도 않고 그처럼 좋은 옷이 더 없을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서 눈이 비뚤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파란 하늘을 누가 베여오고 어떻게 베여오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우화시는 이소프의 우화 “쥐들의 회의”와 비슷하다. 쥐들이 모여서 어떻게 고양이를 대처할가를 토론하는 회의에서 모두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자고 한다. 어떤 방울을 달고 어떤 끈으로 달 것인지를 열렬하게 토론했지만 누가 가서 그 무서운 고 양이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하자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고양이가 무서워서 방울을 못 달듯이 하늘은 너무 높아서 팔이 자라지 않으니 베여올수 없다. “분선이가 미워요”도 일반 동시처럼 쓴 우화시이다.   속눈섭 긴 쌍가풀눈도 미워요/ 오똑한 코도 미워요/ 볼우물 파며 생글생글/사과 같은 얼굴도 미워요// 선생님 물음에/ 남먼저 대답하는 입/ 남먼저 쳐드는 손도 미워 요/ 이름도 미워요// 남학생들 눈길 혼자 끌어가는/ 욕심쟁이 분선이/ 얄미운분선이// 미운 분선이/ 요즘 더 미운 짓 해요/ 밤마다 내 머리속에 찾아와/ 단잠 들지 못하게/  막 휘저어놓군 해요// 분선이를 미워하다가/잃어버린 잠       이렇게 써도 우화가 되는가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 존의 우화형식에 길들어있는 사람들이다. 꼭 “토끼와 거부기”처럼 보자마자 그 뜻이 다 알리게 써야만 하는가? 일정한 심도를 심어주고 사색을 거쳐야 그 뜻이 알리게 쓰는것이 더 예술적효과가 있고 현대적 미감에 맞는다고 생각된다. 풍자속에 교훈을 담으면 우화시는 다양한 형식으로 쓸수 있다고 본다. 아니, 다양한 형식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싶다. 그럼 이 작품이 왜서 우화로 될수 있는가?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 작품 의 주제는 친구를 미워하고 미워하다가 밤잠까지 잃게 되였다는것이다. 남을 너무 미 워하다가 결국 자신을 해쳤다는 뜻이니 풍자가 성립되는것이며 풍자속에 분명한 따끔 한 교훈도 담긴것이다. 지금껏 그 누구도 우화시를 이런 형식으로 쓴적이 없는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써서는 안된다는 도리는 없다. 우화시를 “이야기→교훈” “교훈→이야기”의 낡은 도식으로 가두지 말고 다양한 새 형식으로 써서 작품의 매력을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는 우화시 “바람”을 살펴보자   살구나무가지끝에서 /바람이 앵앵 울고있어요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못된 장난 재미삼던 개구쟁이 바람 /빨래줄에 걸린 옷 팽개치고 /장독뚜껑 허공중에 날려버리더 니 /나무가지 부러뜨리려 심술 부리다가 /가지끝에 옷자락 걸렸나봐요/도와줘요!/도 와줘요 /애처롭게 구원 청하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네요 /저러다 옷자락이 찢어지 면 어쩐담? /아이참, 그러게 /고약한 미운 짓 일삼지 말게지   얼핏 봐도 훌륭한 동시이다. 내용으로 보면 이는 또한 교훈과 풍자를 두루 갖춘 완미한 우화이기도 하다. 잘 짜인 동시안에 “남잡이 제잡이”라는 철리와 나쁜 일을 일삼는 자는 도와주는 이가 없다는 철리를 담고있다.     완전한 동시형태로 쓰여진 우화시로는 또 “파란 호수”를 들수 있다.       아빠 함께 뽀트 타던 날/파란 호수물 처음 보았다/노랑병아리빛 치마에 파란 물 튕길가/가슴에 두손 포개고 조심히 서있는데/심술쟁이 파도가 처절썩/치마자락에 물방 울 튕겨놓겠지/난 몰라/난 몰라/내 옷 어쩌나 발 동동 굴렀는데/참말 신기했다/옷에 한 점도 옮지 않은 파란 물감    이 작품을 보고 한수의 매력적인 동시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파란 호수물을 눈에 보는듯이 그려낸 한폭의 수채화이다. 물방울이 튕기면 옷에 파란 물이 옮으리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은 진실하게 과장 없이 표현된것이다. 이 작품은 시어도 참 아름답게 씌여졌다. “노랑병아리빛 치마” “가슴에 두손 포개 고” “심술쟁이 파도”  “난 몰라! 난 몰라!” “발 동동 굴렀는데” 등 구절들은 말이 고우 면서도 어린 소녀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 그럼 이처럼 아름다운 동시가 어떻게 우화시로 될수 있는가? 무엇을 풍자했고 어 떤 교훈을 던져주고있는가?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볼줄 모른다는 천진란만한 생 각에 가벼운 웃음이 생기는 풍자적인 요소가 살짝 깃들어있는것이다. 파란 물감을 풀 어놓아 파란 물과 해빛이 반사되여 파랗게 보이는 물은 얼핏 보면 비슷한 면이 있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물방울이 튕기면 옷에 파란 물이 옮으리라고 생각하는건 서 산마루에 물든 빨간 저녁노을을 보고 서산에 불이 났다고 소방대에다 전화를거는것과 같은것이라 하겠다. 우화시 “내 만약 미용마술사라면”도 일반 동시의 형태로 씌여졌다.   내 만약 미용마술사라면/ /엄마를 다시 젊어지게 하고싶다/더 예쁘게 만들고싶다 // 눈귀와 입귀 잔주름/  /다리미질한듯 곱게 펴드리고 세월의 그늘 비낀 볼도/싱싱한 사과처럼/ 반들반들 윤기 돌게 만들련다// 군데군데 나이살/  날씬한 곡선 잃어가는 엄마에게/ 그제날의 몸매 돌려드리고/ 날아갈듯 사뿐사뿐/ 예쁜 걸음걸이도 되찾아드 리련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아름답게는 안 만들거야/  선녀처럼 변한 엄마/옷자락  이 날개로 변하여/ /훨훨 하늘로 날아가면 안되니깐!/ 옛말에 나오는 선녀처럼/아빠와 날 버리고 가버리면 안되니깐!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다 이외에도 벨, 시계바늘 날 닮았어, 무지개, 세배 등 동시처럼 쓴 우화시들이 여 러편이다. 이 책에서 작자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짓는데도 정성을 쏟아부었다. 하는 짓이 망태기인 개차반 망택이, 옹졸한 옹남이, 얼핏하면 앵돌아지는 앵나, 노래 잘 부르는 여울이, 큰소리 잘 치는 왕구, 남의 흠 잘 잡는 “짹짹2인방”, 그외에 도 꽃분이, 초롱이, 영재, 망칠이, 뚝쇠, 대식이, 미숙이, 울남이, 떼돌이, 빵순이, 달 인이, 으뜸이, 우승이, 진수, 보석이, 금이, 구슬이, 똘똘이, “배살공주” 등 이름들은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고 작품의 주제를 반영하는데 한몫 담당하고있다. 이상으로 우화작가 허두남이 40여년간 땀으로 가꾸어온 6권의 우화시집에 대해 살펴보았다. 모두어보면 허두남은 크릴로브우화시와 조선의 우화시 등 재래의 우화시로부터 양을 섭취하였으나 그의 우화시는 재래의 우화시들보다 많은 다른 개성적특점이 있다. 제일 중요한 특점은 이야기 과정을 전개하지 않고 일반 동시와 비슷한 형태로 쓴것이다. 허두남은 초기에는 동화시 비슷하게 이야기 과정을 전개했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서 일반 동시형태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였다. 재래의 우화시를 “풍자시. 철리시. 이야기시”로 정의를 내린다면 허두남 우화시는 “풍자시, 철리시. 동시”로 정의를 내릴수 있다. 비뚠 인물의 비뚠 행동을 빌어 작고 깜찍한 도리를 귀띔해주는 우며동시-이것이 허두남이 수십년의 탐구로 만들어낸 우화시이다. 허두남우화시의 다른 특점은 동식물을 주로 쓰던 전통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주인 공으로 한것이다. 허두남은 끈질긴 노력으로  우화시창작에서 많은 결실을 맺었지만 그의 우화시에 는 미숙한 점이 적지 않다. 여섯권의 책에 공동으로 존재하는 부족점은 생동성과 형상성이 부족한것이다. 많은 우화시들은 형상이 론리에 묻히고있다. 우화작품은 론리정연해야할것이 자명하 지만 우화도 문학인이상 생동하고 형상적이여야 하며 재미있어야 한다.     갱신을 위해 공을 들이는데 린색하지 않은 작자가 이제 꼭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 로 돌려놓을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 조선족문단에 한떨기 이색적인 꽃을 피운 우화작가 허두남, 재능 있는 구연 작가인 그가 앞으로 구연작품의 특점을 우화시에 배합하여 완정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스찔을 갖춘 우화작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2204    중국조선족시인 박문희 篇 댓글:  조회:380  추천:0  2024-08-29
박문희 시인 [시평] 와 련결고리 2019년 03월 04일 10시 01분  작성자: 박문희 ⦁시 평⦁ 와 련결고리 --정두민의 하이퍼시 를 읽고나서 □박문희 1. 앞머리에 정두민 시인의 는 다질적인 변형, 이질적인 접속과 그것에 의해 련쇄적으로 탄생한 새롭고 다양한 이미지로 씌여진 하이퍼시다. 하이퍼시란 새로운 류형의 시가 탄생한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고 우리한테는 창작기법이나 감상, 평론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리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씌여진 시를 논평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퍼시를 배우는 일개인으로서 새 리론 공부는 피치 못할 사안이라 생각되여 결국 시험적으로나마 평론을 쓰기에 이르렀다. 논의의 방법상 들뢰즈와 가타리의 명저 에서 고원 전체를 아우르고 통솔하는 기본고리격인 리좀리론에 기대고자 한다. 왜냐하면 정두민 시인이 하이퍼시 를 창작함에 있어서 리좀리론의 련결접속의 원리, 다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등 여러 가지 원리를 두루 적용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좀의 특성에 있어서 련결접속의 원리는 제1원리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질성 원리, 다양체 원리 등 기타 원리를 거느리는 핵심원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의 제목을《〈련결고리〉와 련결고리》라고 달았다. 2. 심하게 충돌되는 시어들을 자유롭게 이어보기 형식상 이 시는 또 로 련을 나누지 않은 시다. 그러나 내적 측면에서 보면 6개 이미지단위로 나뉘여져 있다. 하여 논의의 편의상 시 전문을 6개 이미지단위로 나누어 토론코자 한다. 1. 려명의 피를 뽑은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2.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3. 날짐승 깃소리 진렬대 세우려고 종달새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4.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5.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 6. 변성수술을 거절한 마련화향기가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이 시를 보면 매 이미지단위마다에 이미지주체를 하나씩, 도합 6개의 주체(안테나, 바람, 계곡, 흰점무리, 피뢰침, 마련화향기)를 등장시켰다. 그 매 하나의 주체는 또 적어도 2개 지어 그 이상(3개 혹은 4개)의 행위의 대상을 거느리고 있다. 안테나--행위대상은 ‘려명의 피’와 ‘맑은 날씨’ (2개) 바람---대상은 ‘펌프’, ‘움튼 라체의 기저귀’ (2개) 계곡--대상은 ‘날짐승 깃소리’, ‘종달새 목청’, ‘하프’, ‘흐름의 선률’ (4개) 흰점무리--대상은 ‘꽃사슴의 몸체’, ‘북극성꿈의 장기’와 ‘천수관음의 천궁’ (3개) 피뢰침--대상은 ‘진달래꽃’, ‘말(=번개의 웨침)’ (2개) 마련화향기--대상은 ‘변성수술’, ‘담벽’과 ‘하늘’ (3개) 여기서 6개의 행위주체는 서로 아무런 련관성도 없는 동떨어진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주체와 행위대상의 관계를 보면 매 하나의 주체가 가지는 행위대상 역시 동질적이 아닌 이질적인 것들이다. 례컨대 ‘흰점무리’의 행위대상은 ‘꽃사슴의 몸체’, ‘북극성꿈의 장기’와 ‘천수관음의 천궁’인데 돼지밭에 감자 뛰여다닌다는 식으로 아주 뚱딴지같은 사물들의 집합이다. 이 시를 시어자체의 본의에 따라 의미를 풀면, 행위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표출된 주체들의 동작은 다음과 같다---- 1. 안테나가 려명의 피를 뽑아, 날씨를 예보하며 (2가지 동작), 2. 바람이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녹은 땅속에서) 길어 올린 다음, (그 숨결을 가지고)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2가지 동작), 3. 계곡이 날짐승의 깃소리를 진렬대에 (진렬해)세우려 하며, (그러기 위해서) 계곡이 종달새의 목청을 대패질하며, (나아가) 계곡은 하프를 튕기면서, 흐름의 선률을 편집하며(4가지 동작), 4. 흰점무리들이 꽃사슴 몸에서 탈출하며, (탈출로 자유를 얻은 후에는) 북극성꿈 한 쪼박을 따먹으며, (따먹고 난 뒤)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하며(3가지 동작), 5. 피뢰침이 미인계시합에서 왕관을 따낸 진달래꽃을 지켜주며, (그런 창날 같은 피뢰침이) 말(=번개의 웨침)을 위협해 줄행랑을 놓게 하며(2가지 동작) 6. 마련화의 향기가 변성수술을 거부하며, (거부 후에는)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3가지 동작). 이 의미풀이의 결과를 보면 6개 주체이미지의 동작은 행위대상의 개수와 맞먹는다. 한개 대상에 한가지 행위만을 취한 셈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한개 대상에 여러 가지 행위도 가능할 것이다. 례하면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 동작은 “담벽을 허물어 짓밟아 뭉개고 하늘을 늘여서 물어뜯”는 행위로도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엉뚱한 접속으로 새 이미지 창출하기 아래 6개 이미지단위를 하나하나 분석해보도록 하자. [제1 이미지단위] 려명의 피를 뽑은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려명의 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침노을이다. 왜냐하면 노을은 피처럼 빨갛기 때문이다. 또 피를 뽑는다 하면 련상되는 것이 주사바늘이다. 멀리서 보는 안테나는 주사바늘이나 수액관을 닮은 데가 있다. 주사바늘을 닮은 안테나가 주사로 피를 뽑듯 아침노을을 빨아들이는데, 참 근사한 상상이다. 여기서 안테나는 전파를 보내거나 받기 위하여 설치하는 도선으로 방송국 통신장비의 대명사로도 쓰일 수 있다. 주사침이나 수액관을 직유할 수 있을 뿐더러 천기예보를 하는 아나운서를 은유할 수도 있다. 안테나는 전파를 받거나 보낸다는 의미에서는 피를 뽑거나 수혈하는 주사바늘과 통하는 데가 있다. 한편 려명과 피와 안테나는 아주 이질적이며 서로 동떨어진 객관적 상관물들이다. 일반 론리에 따르면 “려명”은 “빛” 등과의 직접적인 접속이나 “지는 해 피와 같아라”는 식으로 “피”와의 간접적 접속은 가능하지만 “려명의 피”처럼 “피”와의 직접적 접속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리좀리론에는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왜냐 하면 리좀의 “련결접속의 원리”나 “다질성의 원리”에 따르면 “리좀은 매우 잡다한 모든 양태들에 대해 새로운 접속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양체의 원리와도 상통한다.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한다. 려명과 피, 이질적인 두개 이미지의 접속. 그것은 “려명”도 아니고 “피”도 아닌 다른 무엇이다. 노을일 수도 있고 불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물의 까만 뼈, 구름의 쌍날개, 바위의 도끼눈, 번개의 새끼발가락. 오솔길의 긴 꼬리, 모두가 가능하다. 이 이미지단위의 “려명”, “안테나”, “맑은 날씨”, “예보” 등 시어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계절, 날씨, 시간 등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제2 이미지단위]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합리적 론리사유로는 에너지를 리용해 액체를 끌어올리거나 압축하는 장치로서의 펌프는 샘물이나 기름 따위만 길어 올릴 수 있게 돼 있으므로 “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와 같은 언어와의 결합은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펌프가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리”는 행위와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행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좀의 사유에서는 그것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그런 이질성 혹은 다질성 사물간의 상호접속은 필수적인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여기서 펌프가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린다는 묘사는 해동을 의미하며,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준다는 묘사는 움튼 라목의 신진대사를 암시한다. 요컨대 제2 이미지단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해토무렵 검은 땅이 숨결을 가다듬을 때 땅을 깨우는 봄의 산들바람이 움튼 라목을 어루만지는 모습이다. 여기서는 바람이 주체다. 무슨 바람인가? 두말할 것 없이 봄바람이다. 봄바람이 모처럼 펌프로 길어올린 흑토의 숨결을 모셔다가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게 하는 것이다.   [제3 이미지단위] 날짐승 깃소리 진렬대 세우려고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계곡 하면 떠올려지는 것이 항상 촐랑이는 산간 벽계수다. 종달새 지종 하면 역시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날을 련상시킨다. 화창한 봄날 가뜩이나 고운 종달새의 노래소리를 더 이쁘게 대패질해서 전하는 계곡은 오현금을 튕기며 벽계수의 촐랑이는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이 제3 이미지단위에서 주체이미지인 계곡이 세가지 동작을 하는데 이 세가지 동작 간에는 아무런 련관성도 없다. 첫행에서는 “날짐승의 깃소리를 진렬대에 세우려 하”지만 다음 행들에서 하는 짓을 보면 생뚱맞게도 “종달새의 목청을 대패질하”지 않으면 “하프를 튕기”거나 무슨 “흐름의 선률” 같은 것을 “편집”한다. 어떤 합리성으로 주어진 선에서의 계곡, 산과 산 사이에 좁고 길게 움푹 패여들어간 곳으로서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계곡은 워낙 흐르는 물이나 계절이나 지역과 관련되는 언어와 련결되는 것이 상례다. 그리고 종달새의 목청은 맑고 구성진 노래 따위와 련결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단위에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전부 그런 주어진 선과 연을 끊고 그 선들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들이 주어진 어떤 선과 연을 끊고 그 선들에서 벗어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새로운 이미지들과 접속하여 또 다른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제4 이미지단위]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이 단위의 주체이미지는 꽃사슴도 아니고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한 흰점무리다. 흰점의 집합들이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하며 한쪼박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먹는다. 참으로 근사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북극성의 꿈”은 “북극성”과 “꿈”이란 한쌍의 이질적 이미지의 접속이다. 이질적이미지의 접속으로 “북극성꿈”이란 새로운 사물이 탄생했다. 꿈이란 원래 생명현상인데, 여기서는 “북극성꿈”과 “장기”란 또 다른 한 쌍의 이질적 이미지의 새로운 접속을 통해 “북극성꿈”은 “장기(례컨대 심장)”를 가진 또 하나의 특이한 생명체 “북극성꿈의 장기”를 생성했다. 이는 리좀적 다양체원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하나의 척도,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의 집합이고, 따라서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 전체의 의미를 크게 다르게 만드는 그런 다양체이다. 흰점무리가 별꿈의 장기를 따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하는데, 천수관음이라 하면 중국장애인예술단의 청각을 잃은 장애인들이 눈부신 무대를 배경으로 펼친 황홀한 무용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떠올리게 한다. 꽃사슴의 몸에 난 흰점들이 나비 날듯 날아올라 천궁을 유람하는 상상속의 광경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황홀경을 련상시키기에 족하다.   [제5 이미지단위]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 ▲진달래꽃이 미인계왕관을 따다. 피뢰침이 진달래꽃 지키다--역시 이질적 이미지의 접속으로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는 것이고, 그 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그 어떤 주어진 선과 연을 끊고 그 선에서 벗어나야 이질적인 다른 이미지와의 접속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말이 피뢰침(의 진공)에 (놀라) 줄행랑 놓다. (피뢰침에 줄행랑 놓는) 말은 (번개의) 웨침--말을 혼비백산케 한 피뢰침은 창이나 칼과 같은 존재다. 피뢰침은 높은 건축물 등을 벼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장치로서 피뢰침의 돌침에 번개가 맞으면 번개의 전류를 도선으로 유도해서 접지전극을 통해 땅으로 흘려보내는데, 피뢰침과 번개의 겨룸에서 피뢰침은 자연 승자(勝者)이고 땅속으로 버려진(혹은 도망간) 번개는 당연히 패자(敗者)다. 피뢰침의 보호를 받는 진달래꽃은 두말할 것 없이 피뢰침과 더불어 승자가 된다. 그것은 또한 봄의 상징이기도 하다. “번개의 웨침”은 겨울의 잔영(殘影) 혹은 비명(悲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말은 네굽 날려 줄행랑 놓는 패자의 랑패상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이미지다. 말하자면 “말의 줄행랑”과 “번개의 비명” 이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즉 “패자의 랑패상”을 생성한 것이다.   [제6 이미지단위] 변성수술을 거절한 마련화향기가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마련화향기’와 ‘변성수술’ 역시 접속의 원리에 의한 이질적인 언어의 결합이다. ○향기가 코를 찌른다(주체의 주동형).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온다(주체의 피동형). 이런 것은 합리적 론리사유에 의한 묘사이다. 하지만 하이퍼시는 이런 묘사를 거부한다. ○마련화 향기가 손을 뻗어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군다. 향기가 지팽이를 휘둘러 꽃사슴을 쫓는다. 우주공간에 물길을 빼고 은하수를 에워 온다. 이런 것들은 합리적 론리를 깬 서술,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으로 하이퍼시가 지향하는 묘사기법이다. 이 련에서 마련화의 향기는 역시 봄과의 련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4. 창작기법 몇가지로 귀납해보기 이상에서 시의 각 련에 나타난 다양한 이미지와 그 다양한 이미지간의 다질성 접속 등 기본기법에 대해 초보적으로 살펴보았다. 초보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귀납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 구태로부터의 탈피와 불련속적 상상의 가지치기 하이퍼시는 기존의 인과적, 순차적, 론리적, 선형적 전개에서 탈피하여 비인과적, 비순차적, 비론리적, 비선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불련속적 상상의 가지치기 또는 이미지의 집합으로 완성되는, 따라서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히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문학형태이다. 이 문학형태는 연결접속의 원리, 다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탈기표 작용적인 단절의 원리 등을 근간으로 하는 리좀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두민 시인의 시 는 하이퍼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를 두루 갖춘 시라고 생각되며 창작방법에 있어서는 들뢰즈, 가타리의 리좀리론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례컨대 내재적으로 나뉜 6개의 이미지단위는 그 주체이미지로 보나 그 주체이미지와 관련을 지으면서 뻗어나간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보나 서로 간에 아무런 련관도 없이 단절되여 있으며 각 이미지단위 안에서도 기성의 론리를 깨는 이질적 련결접속이 교차적으로 전개되면서 시 때 없이 마찰의 불꽃을 튕긴다. 이처럼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길어 올리고,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고, 북극성꿈의 장기를 따 먹고, 담벽을 허물어 하늘을 늘구고 하는 이런 서로 동이 닿지 않는 이미지의 움직임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모두 배렬하고 전체적으로 계절의 어느 한 부분을 표현해내는 이런 특이한 구성은 아마 하이퍼시만의 작시기법이 아닐가 싶다. (2)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의 조화 하이퍼시 창작에 있어서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자못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로 태여난 시라야 싱싱한 감각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시 의 시구를 례로 들어보자. “피를 뽑는다”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나 “안테나가 려명의 피를 뽑는다” 하면 이것은 상상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과 시적 상상력의 조화인 것이다. “펌프로 흑토의 숨결을 길어올린다” , “바람이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준다” , “계곡이 종달새목청을 대패질 한다”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상상력의 현실이며  삶의 현실과 시적상상력의 조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처럼 삶의 현실과 시적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 의외의 명구생성도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이미지들이 허상으로 혹은 가상으로 시적 이미지의 새로움과 시인의 새로운 창조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보기 드문 명창’이라고 할 만한 구절이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흰점배기 꽃사슴의 몸에서 흰나비 같은 흰점무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개를 파득이며 훨훨 무리쳐 날아오르는 모습, 그리고 흰점들이 떠나가 버려 조금은 이상해진 꽃사슴의 몸뚱이를 상상해 보라. 참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상상의 신선함,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다. 순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튀여나오는 새롭고 다양한 이미지들에서 우리는 모종 정서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데 그런 매력으로는 언어적 유희, 발랄한 상상, 재빠른 이미지의 전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리좀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내물이며, 량쪽 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는 리좀리론의 명제처럼 하이퍼시는 첫 시어의 이미지와 뒤이어지는 이미지가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절은 다른 연결고리와 접속하면서 거기서 속도를 내는 그런 단절이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이 례문을 보면 첫 이미지(펌프)와 뒤에 따라오는 이미지들(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의 기저귀, 바람)이 의미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는 듯한 생뚱같은 이미지들은 기실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앞뒤와의 다른 연결고리를 통해 교차접속되면서 더욱 탄탄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다양한 이미지간의 충돌을 통해 첫 시행에서 출발한 사유가 새로 만나는 사물들은 제마끔 새로운 관념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3) 내면 의식의 흐름 파악하기 일반적으로 '의식의 흐름'이라 하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현대시 창작론에서 흔히 써온 말이다. 그러나 하이퍼시 창작론에서는 의식의 흐름을 강조하지 않고 '무의식의 흐름'이나 '무의식의 반복충동'을 강조한다. 하이퍼시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내면 무의식의 흐름에 대한 파악이다. 이런 무의식의 흐름을 ‘하이퍼시의 맥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시의 맥락은 하이퍼텍스트시의 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한다. 하이퍼시의 시어들은 시인의 무의식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앉으면서도 하이퍼시가 지닌 정보의 수평적 결합처럼 내면적 질서를 갖추고 있다. 정두민의 시 전반을 보면 거의 모든 주체이미지와 그것의 움직임이 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려명의 피, 흑토의 숨결, 움튼 라체, 종달새 목청,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들, 천궁 유람, 진달래꽃, 마련화향기 등 다양한 이미지와 안테나, 바람, 계곡, 천궁, 피뢰침, 담벽 등의 다각적인 시각으로 봄 기상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설적이 아니라 철저히 암시적이며 은폐적이다. (4) 시어의 선택차원에서 문제점 꼬집기   ◎려명의 피를 뽑는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앞뒤구절의 련관속에서 바라볼 때 뒤구절인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는 너무 직설적이며 새롭지 않고 평범하여 앞 구절에서 떠올린 상상력의 맛을 뒤구절에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소지가 있다. 물론 그 어떤 경우나를 막론하고 새로운 이미지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한개 이미지단위 내의 지나치게 많은 이미지 창출이 이 시의 매력과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경우 두번째 행에 대한 수정은 가능해 보인다. 혹시 두번째 구절을 앞구절에 걸맞게 “동녁하늘에 잠자리떼 날린다” 이런 식으로 바꾼다면 어느 정도 직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라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여기서 “움튼 라체”는 도대체 무슨 라체인지 알 수 없다. 상상에 맡길 수도 있겠으나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례컨대 ‘움튼 바위’ 혹은 ‘움튼 라목(裸木)’이라 하면 이미지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종달새 목청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 “흐름의 선률을 편집한다”도 전부 추상어로 구성이 되었는데 별로 신통치 않아 보인다.   ◎꽃사슴에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 ▶여기서 “꽃사슴에서 탈출”은 어페이다. “꽃사슴의 몸에서 탈출”로 돼야 한다. 5. 마치면서 이상에서 정두민 시인의 시 를 창작기법의 몇가지 측면에서 풀이해 보았다. 잘못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회원들의 기탄없는 지적을 바란다. 요컨대 정시인은 리좀리론을 하이퍼시 창작에 활용함에서 성과를 올렸으며 동인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시인이 계속 하이퍼시 창작에 정진하면서 보다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기를 기대한다. 2017.11.30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문고(7)《비비(飛飛)》2019.2 ===================================================== 변주의 미학   ----강동한 시 단평    ▢박문희      한수의 시에 대한 단평에 이란 거창한 제목을 단다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대로 모종의 그럴만한 리유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여 그대로 쓰기로 했다.   '변주'는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중 제하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네이버사전에서는 '변주'를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르게 바꿈'으로 해석, 이를테면 한복들이 현대에 시류를 타 변화하는 것도 '변주'(중문으로 된 《천개의 고원》에서는 '流變'으로 번역되였음)로 표현한다. 한편 동음어인 음악의 '변주(變奏)'로도 통한다.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함을 일컫는 말이다.   '변주'에 대한 들뢰즈-가타리의 말을 조금 따다 음미해보자.   "...변주의 련속체를 만듦으로써, 그리고 상수들을 조이고 변주들을 풀어주도록 변수들을 조작함으로써, 언어가 말을 더듬도록 하라. 또는 언어가 '삐약삐약 울게' 하라..., 언어 전체에, 심지어 문어에도 텐서(tensor/张量)들을 설치하라. 그리고 거기서 웨침, 아우성, 음높이, 지속, 음색, 억양, 강렬함을 끌어내라....바꿔 말하기에 대한 취향..." (《천개의 고원》중 , 201페이지)   '변주리론'에 대한 나의 리해를 한마디로 개괄하면 시어를 해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현대시류를 타 변화시키듯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양하게 바꾸고 음악에서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듯 바꿔주면서 원래의 틀 안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강동한 시인의 시 한수를 옮겨온다.   만경창파 건너온 너 나 자취 더듬어 몇 만리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오랜 보뚝 터져 녹아내린 눈가의 고드름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고 있는 개바자의 해바라기꽃   언젠간 단비 되여 말라 찢긴 가슴 적셔 주리라   ----시 전문   4개 련에 12행으로 씌여진 시로서 제목은 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우리는 읽고자 하는 시를 접할 때 우선 시 제목부터 보게 된다. 제목을 봐야 읽고자 하는 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시문을 여는 열쇠이자 시를 리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또한 각 련과 행을 련결하는 하이퍼링크 기능의 주요담당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전부의 담당자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목-행-련’을 련결하는 구도를 갖는 링크기능은 각 련, 각 행, 지어 모든 시어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시 읽기와 시 쓰기에서 링크기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시제가 이니 내용도 편지와 관련이 있기 마련이다. 칼로 자르듯 철저한 단절, 도주와 탈령토를 운운하면서 그것을 련결과는 아주 무관하게 취급하는 것을 하이퍼시의 한 개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일도 있지만, 실상 분리탈주와 접속련결 및 탈영토와 재령토의 변증관계를 외면하고 도주, 분리와 단절만 강조하는 사고방법은 재고되여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제목과 내용의 관계처리도 그렇지만 련과 련, 행과 행과의 관계처리도 마찬가지이다.   만경창파 건너온 너 나 자취 더듬어 몇만리   시 의 첫 련이다. 시 제목이 이므로 첫 행의 '너'를 편지로 상정해볼 수 있다. 만경창파 수만리 먼 이역 땅에서 날아온 편지. 그러나 제목이 라 해서 내용이 반드시 편지라는 보장은 없다. 편지가 단지 상징물에 불과해 그것이 상징하는 대상이 다른 사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례컨대 막언의 장편소설 제목이 《풍유비둔(丰乳肥臀)》이라 해서 그 내용이 풍만한 가슴에 큼직한 엉덩이를 쓴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제2련: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이 련은 '떨리는 손으로 옷 벗겼을 제'를 첫 행으로 시작된다.   의인화된 2인칭 '너'의 '옷'을 떨리는 손으로 벗기는 이미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모종의 전률감을 줄 수 있는 시행이다. 여기서 '옷'은 편지봉투의 상징물이다. 하지만 '다르게 바뀐 내용물'로서의 '옷'은 필경 변주의 결과이며, 편지란 령토로부터의 탈주 혹은 탈령토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가타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조금 긴대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련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령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우리가 상황이나 변수라고 부르는 것들도 사실은 탈령토화의 정도들 자체이다. 한편으로 내용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몸체의 혼합체 또는 몸체의 결집체 안에 있는 비률들이다. 다른 한편으로 표현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언표행위 내부에 있는 요소들이다... 요컨대 표현은 내용을 발견하거나 표상함으로써 내용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여들고 작용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의 상대적 탈령토화의 량자들의 결합 때문이다." (《천개의 고원》 중 171페이지)   시 제목 와 시 첫련의 '너'와 2련 첫행의 '옷'을 내용과 표현을 언급한 들뢰즈-가타리의 말에 련계시켜 보면 '편지'는 내용에 속하고 '너'와 '옷'은 표현에 속한다.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련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령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그것은 부단히 진행되는 변주의 과정이기도 하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여들고 작용하면서 '편지'는 령토로부터 탈령토, 재령토로의 과정을 밟는데 그것은 내용과 형식이 상대적으로 탈령토화한 량자들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수놓은 터밭의 화원 하얗게 뜬 초가의 록비 해진 젖살 달래주는 토장의 손길   이것은 2련 첫행 뒤에 오는 3행의 시구다.   '너'의 '옷'을 벗긴 후에 나타난 경상은 눈처럼 희디흰 피부가 아니라 생뚱맞은 '수놓은 화원', '하얗게 뜬 녹비'와 '토장의 손길'이다. 이런 시어들의 조합은 일상론리에는 맞지 않으나 시적 론리에는 맞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행 '해진 젖살을 달래주는 익은 토장의 손길'은 '떨리는 손'에 대한 대응이면서 또한 이질적 언어의 무단 접속(례컨대 '해진 젖살', '토장의 손길')의 내포도 가진다. 이 시구들을 몇 번 음미해 보노라면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향기를 련상케 하는 전통 삶에 대한 회고의 의미도 지니지만 표현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다음 제3련을 보자.   오랜 보뚝 터져 녹아내린 눈가의 고드름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고 있는 개바자의 해바라기꽃   느닷없이 오랜 보뚝이 터지고 눈가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내리며 또 예고 없이 개바자의 해바라기꽃이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어재낀다. 이 역시 변주이다. '리듬이나 선률 또는 화성 등을 여러 가지로 바꾸고 꾸며서 연주하는 변주(變奏)'이기도 하고 '색갈이나 모양 또는 내용을 다르게 바꾸'는 변주(流變)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랜 보뚝' 과 '녹아내린 고드름'은 눈물샘과 눈물의 변주이며 '해바라기꽃'은 '나'의 화신이자 변주이다.   이제 마지막 련을 보자.   언젠간 단비 되여 말라 찢긴 가슴 적셔 주리라   여기서 '나'는 '해바라기꽃'에서 탈주하여 '단비'로 '재령토화' 된다. 마른 '가슴'을 적신다는 대목에서 그 '가슴'이 상정하는 의미는 상당히 다양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읽는 이들이 스스로 읽어내야 할 터이다.   이제 시 전문을 표현대상의 측면에서 귀납해 보자.   1련: 너, 나 2련: 화원, 록비, 손길 3련: 보뚝, 고드름, 해바라기꽃 4련: 단비, 가슴   보다싶이 각 련의 표현대상들은 분명 자립성과 독립성을 가지며 그것들 서로간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례컨대 2련의 화원, 녹비, 손길과 3련의 보뚝, 고드름, 해바라기꽃은 각 련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서로간에 아무런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란 제목의 링크기능에 의해 우리는 편지와 각 련이 분명 련결되고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오랜 보뚝의 터짐과 고드름의 녹아내림은 쏟아지는 눈물과 감정의 폭포일 터이고 얼음의 빈구석에서 울어 예는 해바라기꽃은 만경창파 수만리 이국타향에서 정든 고향을 그리는 화자의 화신일 터이다. 각 련과 행들에 새로 발생하는 이미지들은 변주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러한 변주들이 시 전반에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을 이라 한 리유라면 리유겠다.   이상에서 우리는 시 를 한번 훑어보았다. 시 전반에 걸쳐 우리는 시어의 의미화에 대한 강동한 시인의 추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미지의 활발한 변주와 확장도 맛보게 된다. '떨리는 손, 벗기는 옷, 해진 젖살, 울고 있는 해바라기꽃'과 같은 이미지의 변주와 확장된 이미지는 읽는 이의 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시어의 구사를 봐도 반 마디 설교도 없이 진지한 표현만 있을 뿐이며 내용은 진지하고 깊은데 반해 표현은 감각적이고 유연하다.   이런 점이 자못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지의 활발한 변주와 확장 및 시어의 의미화에 대한 의도적인 추구를 소홀이 한다면 우리의 시는 자칫 무의미한 언어유희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시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유미주의적 감각을 충분히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시는 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살려야 할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을 충분히 확장함과 동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살리는 것은 우리 시인들에게 있어 필수과목이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2023.5.28.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창작세미나에서) ////////////////////////////////////////////////////// 박문희 1950년 9월 7일 龍井 출생 1968년 上山下鄕 운동 가담 1972년부터 연변한사,연변대학 중문 전공 1974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 1980년 연변일보사 입사 1985년 길림신문사에 이적 2011년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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