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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밖에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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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귀신(鬼神)같은 인생(人生)외 몇편 댓글:  조회:2485  추천:2  2014-02-25
귀신(鬼神)같은 인생(人生) 매일같이 이상한 약물을 맞고 사느라니 자신의 정신상태도 파악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내 마음의 로출이 옳은지 아닌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어느 하루 머리가 흐리멍텅하고 생각이 돌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쓰려도 … 그것이 자연스러운것이라고 접수해야 한다. 접수하지 않을수도 없다. 누구한테 말해도 쓸모가 없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러한 인생은 귀신같다고 한다. 이러한 삶이 언제부터 시작되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최소 30년은 되는것 같다. 기억을 더듬으면 그보다 더 길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어느 하루 맑은 정신으로 사는것이 사치스러운 바램이였다. 그것이 10여년전부터 있은 생각이다. 전에는 독립적인 공간도 없었기에 자신이 이렇게 살고있다는 것마저 모르고 있었다. 그냥 자신의 신체가 허약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마음속으로만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해있음을 확신하고있다. 한때는 이러한 삶을 결속지을 생각도 가져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하려 하던 그 일을 할수 없다. 그 일이 바로 “내가 무엇때문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를 밝히는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러한 사유를 머리속에서 몇번을 중복했을까? 나로서도 알수 없다. 오늘도 머리가 흐리멍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후회는 없다. 해야 되는 일이면 해야 하고 부딪혀야 하는 일은 부딪혀야 한다. 오늘은 맞춤법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철자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그대로 수정하느라 하였다. 그리고 힘들어서 여기까지만 쓰려 한다. 내 인생의 또 한페지 기록이 끝난것이다. 아니 끝난것이 아니라 끝낸것이다. 남은 시간에는 일을 해야겠다. 2014년 2월 25일 9시 42분 착각속의 한자어 언젠가 조선어단어와 한자단어사이에 순서가 바뀌우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원의 판단에 착오가 생긴것이였다. 즉 어원이 일어인 단어를 어원이 한어인 단어로 오해했던것이다. 한자어가 아닌것을 한자어로 착각했다고도 할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는 나로서의 이유가 있다. 직역을 할때에는 순서를 바꾸지 않는것이 습관이다. 이렇게 하면 원래의 어원과 쉽게 련관이 되고 뜻을 리해하는데도 쉽기 때문이다. 일어가 어원이 된 원인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명확한 답안을 모른다. 발음문자밖에 없는 조선어 조선어는 발음문자이다. 영어는 서면문자외에 국제음표라는 발음문자가 있고 한어는 한자라는 서면문자외에 병음이라는 발음문자가 있지만 조선어는 서면문자가 없다. 아무리 고유어라 할지라도 문장의 전후를 보지 않고 하나의 단어만 써놓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확인할수 없다. 맞는것=진리? 내가 지금까지 견지해온가운데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맞는 일만 하기에 노력한것이다. 남에게는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것을 견지하기에 노력을 해보았다. 그외의 다른것은 하나도 견지하지 못했다. “맞는 것은 견지하자”는 마음을 간직한것만도 다행인지 모른다. 고독 어느 날 저녁 홀로 컴퓨터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있느라니 전에는 없었던 고독함과 쓸쓸함이 온몸에 스며든다. 스며든다 하가보다는 이미 온몸에 차서 넘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또 어떤 약물의 작용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쓸쓸함 그 슬픔 들을 천천히 느껴보았다. 전처럼 인츰 방법을 대여 그런 기분을 없애버리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 자신의 마음이 더 많이 자란다는 생각때문에 … 그 때의 나는 아프면서 자라고 있었다. 무엇인가 증명하는 과정 운명이라는 느낌이 늘 든다. 혹은 그것이 모두 나의 예감속에 있었던것이라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피면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알고있었던 그 일들을 자신의 인생을 대가로 증명해야 했던것이다. 내 인생의 보귀한 시간을 랑비하면서 … 그래서 그 운명속에서 자신의 배역을 잘 맡는것만이 내가 할수 있는 일이였던것이다. 전처럼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부질없는 생각은 접어야 할것 같다. 하지만 접어지지도 않는다. 잘 살아보아야겠다. 내 힘이 닫는데까지 …
20    엄마곁에 가고싶다 댓글:  조회:2123  추천:0  2009-11-19
엄마곁에 가고싶다 금년이 15년째다. 그런데 이젠 더 이렇게 충성심만 갖고 살고싶지 않다. 효성도 하고싶다. 전에 이런 말을 하였다고 기억된다. “나에게 제일 큰 재부는 부모가 모두 건강하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부모한테 어떻게 들렸고 또 어떻게 리해되였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 귀중한 재부를 절반이나 잃어버렸다. 작년 11월에 아버지가 돌아갔다. 년초까지도 “하지 말라는 일”을 그냥 하셨다. 몸이 불편하면서도 병원에는 가지 않았고 일상적인 약으로 응부만 하였다. … 지탱할수 없어 병원에 갔을때는 이미 간암말기였다. 그 진단서를 받은후 한달, 그렇게도 급하게 다른 세상으로 떠나갔다. 그해 년초 처음 몸이 불편할때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니가 와서 권고했으면 한다”고 하였다. “병원에 가보라고 …” 그런데도 “평소 건강하던 아버지가 무슨 큰 병에 걸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가보지 않았다. 자신의 맡은바 공작을 잘하여 부모의 근심을 더는것이 … 아니 나라에 대한, 교육사업에 대한 충성을 다하느라고 그랬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당원은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량심으로 책임진다. 말하는 사람이 없어도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의 직책을 다한다. 남모르는 노력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지 자신으로도 잘 모른다. 이제 나한테 남은건 엄마뿐이다. 그런데 60이 넘은 지금에도 젊은 시절처럼 일을 한다. 일거리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이여서 그런것 같다. 몇달에 한번씩, 볼때마다 몰라보게 변해가는 그 모습, 그냥 그렇게 보고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옆에서 지켜주고싶다. 내 이 그닥 건실하지 못한 어깨로라도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고싶다. 충동심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학교를 필업하여 꼬박 15년, 그사이 한 일이면 나라에 대한 충성도 교육사업에 대한 충성도 비슷하게 한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효성을 하고싶다. 엄마곁에 가고싶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할수 있는 효성을 다하고 싶다. 2009년 11월 18일  15시 40분 초고완성 2009년 11월 19일 4시 52분 컴퓨터에 올림
19    따라올 사람 따라할 사람 있니? 댓글:  조회:1969  추천:0  2009-11-01
따라올 사람 따라할 사람 있니? 지금까지의 인생을 신용으로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그 신용을 기초로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도 자신의 리익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제부턴가는 누구와 손잡고 큰 일 하자는 마음을 접었다. 내 능력껏 어떤 일을 하려 할 뿐이다. 맹세 잘하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일을 할만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거래가 적어 그런지는 모른다. 그런 사람 만나려고 날마다 길거리에서 헤매여야 하니? 전에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나는 중국조선족의 일만 생각한다. 중국의 일도 세계의 일도 나는 생각할 시간이 없고 정력도 없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생각을 조금 수정한다. 중국도 세계도 우리한테는 큰 환경이다. 큰 환경이 변화되면 우리도 영향을 받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부터 이 큰 환경문제도 조금은 생각해보기로 한다. 어릴때부터 이런 생각을 가져보았다. 어릴때 둔한 생각에는 깡패조직 비슷한것도 생각해보았다. 혹은 어떤 사람의 분석에는 그것이 지금 늘 말하는 공포조직이였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학시절에는 어떤 큰 일을 할수 있는 조직쯤 꾸려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일 하려 한다는 사람들의 지향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하려던 일 그냥 마음에만 두었다. 나는 말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지 않는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를 본다. 그래서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의 내심세계를 파악하기에 힘쓴다. 겉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는것보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심산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였겠는가를 파악하려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보다 생각하는것이 좀더 많다. 마음 나눌만한 사람 적다. 그런데도 마음 나누는척 하는 사람 적지 않다. 쉽게 말해서 잘 속히우는 그런 류형의 사람으로 오래동안 살았다. 내 말에서 구실 같은것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과분한 요구 협박에 접근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웃고 떠들고 그래도 마음만은 고독하다. 나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가진것도 그리 없고 아는것도 많지 못하다. 하나의 우점이 있다면 담이 큰것이다. 그리고 맞는것이면 따라한다. 그 맞는 도리를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겁이 많은 사람은 따라올수도 따라할수도 없다. 나의 생각도 틀리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근간에는 많이 수정한다. 그러나 맞는것은 수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도 이 사회에 적응되여 가고있는것이다. 저도 모르게 사회의 어떤 요구에 부합되는 사람으로 되려 하는것이다. 그래야 사회에서도 나를 받아줄것이 아닌가? 나는 언제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직업인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비슷한 보수만 받을수 있으면 된다.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에 비해 너무 큰 차이가 되는 보수를 받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그 보수을 받기 위해 하는 사람"처럼 죽기로 일을 한다. 그러니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많고 많다. 그러면서도 한때는 한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인척 했다. 그렇게 숨죽이고 살았다. 그래서 죽었다는 말도 들었다. 사람은 살아서 숨쉬여도 마음은 죽었다고 … 이제 내가 남은 인생을 내 멋대로 살려 한다. 따라올 사람 따라할 사람 있니? 2009년 11월 1일 6시 46분 이제 어느때쯤 내가 가게 되면 이 글들도 어떤 기록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은 모두 시간까지 준확하게 쓴다. 이것이 내가 화학전업을 배우며 인상이 깊은 일이였을것이다. 실험을 하면 결과가 정확하던 정확하지 않던 기록은 알심들여 잘해둔다. 그래야 금후 참고로 될수 있기 때문이다.
18    잘 살려면 악을 써야 한다. 댓글:  조회:2037  추천:0  2009-10-18
잘 살려면 악(恶)을 써야 한다. 누구나 선량한 마음 착한 마음으로 살려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 좋은 사람뿐이 아니다. 선량한 사람 착한 사람을 밟고 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잘 살려면 악을 써야 한다. 나는 이 세상의 도리를 알만한 정도로 다 안다고 할수 있다. 그래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싶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희로애락을 감수하고 싶었던것이다. 그것을 이제 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때 이미 거의 40살에 접근하였다. 기실 어느때부터는 알면서도 행여 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실현해보려 하였다. 결국 실패한것이다. 세상에는 그래도 선량한 사람 착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며칠전에 지갑을 잃어버렸을때 그것에 대한 감수가 깊었다. 일에 전념하다보니 지갑을 떨어뜨린것도 몰랐는데 주은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던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였는지 모른다. 그냥 자신의 삶만 잘 살고 싶었다. 은거하고 싶은 마음도 가져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는 리유가 있었다. 그 리유를 지금은 잘 알수 없다. 기억이 엉망이 되였으니 말이다. 그것이 남들과 같은 인생을 향수하고싶은 욕심이였을것이다. 출가한 사람의 말로 하면 속세의 어떤것을 버리지 못한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의 일원이다. 그러니 평범한 일생을 살고 싶은것이다. 신경이 잘못된 사람처럼 자신을 “남보다 월등한 사람, 남보다 우수한 사람, 잘나가는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살고싶지 않다. 그런데도 자기 마음대로 잘 살려는 노력을 하려 하니 장애를 만들고 막아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 “너처럼 하찮은 인간이 나보다 잘되면 되는가” 하는 마음가짐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럴때마다 악을 썼다. 살인도 몇번은 시도했다. 그때의 기분에는 사는것보다 죽는것이 낫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였을것이다. 운수가 좋은 사람이여서 그런지 번마다 실패하였다. 그리고 그런 리유로 지금도 숨을 쉬고 있는것이다. 살인에 성공하면 사회에서도 용납을 받지 못할것이 뻔한 일이다. 그러나 금후에도 이런 경우에 부딪치면 악을 쓸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때면 자신도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나를 건드리려면 목숨을 걸어라. 나는 그냥 “죽기로 하는” 사람이다. 일을 해도 그렇고 삶을 살아도 그렇다. 그냥 그렇게 힘들어서 사무실에서 끄떡끄떡 졸면서도 할일은 다한다. “최우는 아니여도 최선을 다 한다”.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고 싶다. 그리고 뜻깊게 의의있게 보람있게 살고 싶다. 그러니 악을 쓰지 않을수 없다. 2009년 10월 18일 8시 9분  
17    자신의 직업을 생각해본다. 댓글:  조회:1899  추천:0  2009-09-17
자신의 직업을 생각해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일을 잘할수 있고 합리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할수 있겠는가도 생각해본다. 나의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것 같다. 혹은 그 말에서 허물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을수는 없다.… 우선 내가 종사하는 직업에 대하여 생각하던 일들을 적어본다. 교원은 학생을 관심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교원과 학생사이 (사생관계)의 한개 방면이다. 다른 한 방면에서 교원은 또 많은 학생가운데서 우수한 학생을 구분하고 선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원은 공정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학생은 특수한 학생이라고 생각하면 틀리는것이다. 혹은 학습을 잘한다거나 혹은 부모가 간부라거나 혹은 가정조건이 우월하다거나 하는 원인으로 특수한 대우를 해주어서는 안된다. 잠시는 말하는 학생이 없더라도 교원의 량심으로부터 출발해서라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교원의 리익은 학생의 발전과 밀접히 관계된다. 근년의 "학생이 교원을 평가"하는 제도하에서 교원의 리익은 학생의 성적과 밀접히 련계된다. 그러나 교원은 학생과 리익집단식의 관계를 형성해서는 안된다. 그 원인은 교원은 합격된 인재를 배양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있기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교원은 표준도달정도를 판단하는 경우 사회에 대해 책임지는 각도에서 사실대로 판단하고 말해야 한다. 감독하는 사람이 없다거나 문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리유로 혹은 그렇게 해야 학교에 유리하다는 등 원인으로 하여 그 표준을 개변하거나 취소하거나 응부해서는 안된다. 교원의 공작은 아주 번잡하다. 그 종류도 적지 않을뿐만아니라 량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늘 그 많은 공작중에서 선택성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공작에서 중요한 일은 더 중시하여 하고 주요한 공작과 련계가 없거나 형식적인 면이 많은 공작은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하여 쟁론도 있었다. 교원은 학생에게 시범이 될수 있게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교원은 학생이 아니다. 교원에게는 교원으로서의 공작이 따로 있다. 그러므로 교원에게 학생이 하는 모든 일을 같이 하라고 하는 요구는 합당하지 않다. 만약 교원에게도 학생을 대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교원에 대한 존중이 아닐것이다. 누군가 “뼈가 있는 문학인이 되는것은 힘든 일이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지금의 사회에서 “뼈가 있는 교원”이 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상급의 요구라고 하여 합리하지 않아도 그대로 하고 정확하지 않아도 견지하려 하는 사람들도 있기때문이다. 혹은 일부 사회의 특권층의 압력때문에 일부 정확하지 못한 일들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뼈가 있는 교원”이 되려면 수시로 이러저러한 압력을 받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어떤 보복을 당하여도 방법이 없다. 수중의 권리를 믿고 혹은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느낌으로 무턱대고 시비거리를 만드는 사람도 더러 있다. 교원의 직업은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원의 책임을 다하려면 각종 저애도 극복하고 여러 방면에서 오는 압력도 막아내야 한다. 그래도 쉽게 하려 하거나 리익이 더 많이 생기는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다. 량심적으로 교원의 직책을 다하고싶을뿐이다. 2009년 9월 18일 18시 48분
16    누구한테나 도움이 될수 있는 사람 댓글:  조회:2035  추천:0  2009-09-06
누구한테나 도움이 될수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은 그 누구한테나 다 도움이 될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익조에 비유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다른 사람에게 신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어떤 일을 하나 성실한 태도로 정직하게 일을 하고싶다. 다른 사람의 시름을 하나 덜어주는것도 도움을 주는것과 같은것이다. 언제나 유익한 일만 하고싶다. 그 유익한 일로 하여 다른 사람이 조금이나마 안위를 느낄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받은것보다 주는것이 더 많은 사람으로 되고싶다. 혹은 받은것보다 창조한것이 더 많은 사람으로 되고싶다. 그러면 사회적재부의 루적을 위해 조그마한 공헌이라도 한것이 된다. 쟁론을 적게 하고 일을 많이 하고싶다. 자신의 제한된 시간은 유용한 일을 하는데만 쓰고싶다. 그래야 언제쯤 자신의 지난일을 돌이켜보게 될때 “나의 모든 시간은 사회적부를 창조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일부 사람을 위해서는 다른 일부 사람을 해치게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나 다 도움이 될수 있는 사람으로 되고싶다. 2009년 9월 6일
15    그래서 그 말이 아름답다. 댓글:  조회:2838  추천:0  2009-09-06
그래서 그 말이 아름답다. “말이 길면 거칠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말을 하라고 하면 그냥 짧게만 말한다. 그래야 그 말이 듣기 좋다고 한다. 전에는 글을 쓰려면 뼈 같은 곳에밖에 쓸수 없었다. 그래서 그 힘든 일을 적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 얻기 힘든 재료를 절약해쓰기 위해 글자수를 줄이는데 노력했다 한다. 그래서 갑골문 한글자에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한다. 신체가 허약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잘 먹으면 된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외곡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냥 잘 먹기만 하면 되는가 한다. 결국 “조선사람이 조선말도 알아듣지 못한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조선말을 잘 알아듣는데는 듣는 사람의 좋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잘 먹으면 좋게 해석할것이고 마음을 잘 먹지 못하면 외곡한다고 한다. 말을 잘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잘난척 한다”고 한다. 혹시 말은 길게 해야 옳은듯 싶다. 그러나 무슨 말이나 다 해석하느라면 그 말이 그냥 속말(俗话)로 되여버린다. 그러면 그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아름답던 말이 거칠기만 한 속말로 된다. 그래서 조선사람은 마음(가슴)으로 느끼면서 산다고 했다. “꿈을 안고 산다”는 말이 여기서 생긴것 같다.  한마디 말에도 가능하게 깊은 도리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고 매일 하는 그 말을 연설처럼 길게 할수는 없다. 한마디로 해석하면 또 쉽게 외곡되기만 한다. 그러니 말은 그냥 맞는 부분만 해야 할것 같다. 그래서 그 말 한마디가 다 론증을 거친 론문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말 한마디를 해도 한글자한글자 생각을 더듬어본다. 그렇게 한 말이면 “던질 말이 없다”고 한다. “탁”해 다르고 “툭”해 다르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말을 짧게 해야 아름답다. 그래야 “새겨볼 가능성도 있고 또 돌이켜 생각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한마디만 한다. 그래서 그 말이 아름답다. 2008년 9년 13일 6시 31시            
14    노래를 들으며 댓글:  조회:2413  추천:0  2008-12-22
노래를 들으며 한국노래 “나의 길”[혹은 “마이웨이(MY WAY)”]을 들으면 김학철선생의 책 《나의 길》을 생각하게 된다. 한때 그냥 주저안고 물러서고 세속에 물들려 할때 내 마음을 바로잡은 책이《나의 길》였다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는 한국노래 “팔자타령”에서 말한것처럼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무거운 짐을  나에게 주나”하고 한탄을 한적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배심(배짱이 있는 마음)이 있다는것을 알려주려고 어리석은 일을 한것도 같다. 그래서 나의 선택이 아닌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다 포기하기만 했다. 그냥 내가 원하는것을 얻지 못하면 내가 바라지 않는것은 더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갖고싶은 마음이 없다. 기실 나한테 이런 배심을 묻어준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것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각도에서 나에게 할수 있는 선택은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는것이였다. 우리 말에 “부모자식간에도 일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는것 같다. 그런 리유로 볼때 “큰짐을 지웠다”는 것은 “큰 사랑을 주었다”는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때는 그 큰 사랑때문에 그냥 토피(逃避)만 하고싶었다. 합당하지 않은 비유를 하면 그 사랑은 태양의 따뜻함이라고 해야 맞을것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면 그 따뜻함을 만끽할수 있지만 너무 가까우면 그 견디기 어려운 더위때문에 싫증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고 반감을 느끼게 되는것이다. “사랑이 과하면 미움으로 된다”는 말이 이렇게 생긴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길은” 정해진것이라고 한다. 그 주어진 길에서 나는 묵묵히 가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순종하고 따라주어야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 그냥 내 나름대로 평범한 삶을 살고싶다. 허나 나한테는 선택할 여지도 없고 쟁취할 희망도 없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노력이라도 도움이 못된다”(再多努力也无助)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에게는 그러한 것이 현실에서 발생한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는 “평범한 삶을 사는것도 사치스러운 요구(奢侈的要求)가 된다”고 한것 같다. 그렇게 내가 편안스레 사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는 사람이 있는것이다. 그냥 나에게 질투를 하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기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내가 있기때문이란다. 결국은 나한테 차려진 “내가 요구한것도 아닌 그 큰 사랑”때문에 화를 보는것이였다. 이 모든것은 내가 선택한 그 맞는 길때문이라고 한다. 나처럼 “고생을 락”으로 보는 것도 싫고 나처럼 “구지구지 연명”하는것도 싫고 그냥 신선처럼 살려고 한다고 했다. “나”라는 참조물이 있는것조차 한으로 생각되였기때문이다. “땀 흘리는 것이 그리도 힘드냐”하던 말을 들은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러한 일은 힘들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 품성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선택되였다고도 한다.  “우수하기때문에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는 도리를 깨치지 못한것 같다. 그냥 우수하기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향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길”은 그들이 선택한 길과 어우릴수도 없는 “수화상극(水火相克)”이였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를 얻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한 기여를 하였는가에 있다”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나는 나대로 나의 인생만 잘 살고싶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자사한 삶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일을 할수 있는가? 나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도리여 나더러 자신들처럼 살라고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삶이라고 한다. 나는 남을 개변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남이 나를 개변하는것만은 거부할 능력을 갖고있다. “인간다운 존경을 받으며 살고싶다”는 나의 도량의 극한이라고 할수 있다. 나의 인격마저 무시하는 행위는 나를 벼랑가에 몰아넣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그래서 “노예같은 삶을 살것이면 죽음을 택하겠다”가 그때의 선택으로 되는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일이 아직 있다는 생각때문에 그 마지막용단을 못하고 숙어들고말았다. “나의 길”은 나로서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길에 또 어떠한 가시밭길이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전같으면 어리석은 일을 하는것으로 주위사람들의 질투를 잠시나마 소거하였을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다. 그렇게 나를 주목할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한테 기대를 품고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바르게 꿋꿋하게만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나의 길”을 걸으며 생각한 일들이다. 2008년 9월 7일 7시 26분  
13    성신의 대가는 무엇인가? 댓글:  조회:2404  추천:0  2008-06-20
    근간에는 글을 보는 시간이 적어서인지 어떤 말에 대해서는 그냥 서먹서먹한 감이 든다. 성신이라는 말은 한어말을 그대로 직역한것이다. 그 성신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지불해야 하는가?     첫째는 성신을 지키는 사람에 적어짐에 따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이 적어진다. 그래서 무슨 일이나 그냥 말하는것을 믿는데 그치지 않는다. 다른 경로를 통하여서라도 그 말의 정확성을 확인하고야 그만둔다. 그것도 믿어지지 않는지 그냥 두 세사람을 거쳐서 알아보고야 시름을 놓는다.     둘째는 성신을 지키는 사람이 적어지기에 무슨 일이나 다 자신이 직접 한다. 그렇게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면 그일이 확신정도가 어느정도인지 확인할수 없다는것이다.     셌째는 사람보다 설비를 더 믿는다. 사람의 말을 듣는것보다도 어떤 설비를 통하여 엿들은것을 더 신임한다. 그러니 그러한 설비를 사는데도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성신을 지키지 않으니 나도 성신을 그냥 고집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에게 리로운 일이면 성신을 버리는 일이라도 하여야 한다고 한다. 나한테 이러한 선전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실제생활에서 진짜 그렇게 하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맞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아는 맞는 방법대로만 일을 한다. 지금 그렇게 할뿐만아니라 금후에도 그냥 이대로 하려 한다.     성신을 잃은 뒤에 지불하게 되는 대가는 이뿐이 아닐것이다. 그래도 그냥 자신의 말과 행동(언행)이 정확하다고 고집할것인가? 2008년 6월 20일 14시 52분
12    나의 일기책에 적었던 한 마디 댓글:  조회:3432  추천:0  2008-02-22
나의 일기책에 적었던 한마디         나의 일기책에도 좌우명이라고 할만한 한단락의 말이 있었다. 그것을 완정하게 쓴것은 2006년이지만 유관내용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부터였다.       아래에 이 말을 적어보기로 한다.       말한대로 해야 하고 아는대로 해야 한다.     맞는것은 견지하고 틀린것은 고쳐야 한다.     어떤 원인으로 개변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목적으로 개변하지 말아야 한다.       言行一致,知行统一;     对的坚持,错的改正;     不能因为什么而改变;     不能为了什么而改变。       그중의 두번째 말은 후에 보충한것이다. 그번 교장과의 담화가 있은후 보충한것이다. 그 일은 2002년에 있은 일이다. 그것은 한마디 말의 보충만이 아니였다. 그러한 정도로 어디에서 잘못되였는가를 알고싶은 심정이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어떤 관념 혹은 가치에 대한 쟁론이였다. 그러나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냥 그 여덟글자(对的坚持,错的改正)뿐이였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생활경력과 관계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때도 적지 않다. 그렇게 자기주위의 사람에 대한 신심이 없는것이 문제가 된것 같다. 이런 일을 두고 환경이 사람을 개변시킨다고 할것이다. 그래서 그냥 주의하는 문제가 "한수 남기는것"이였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임을 주더라도 의외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대책도 그냥 준비한다. 그렇게 준비를 충분히 하고보면 어떤 의외에도 태연하게 대처할수 있다. 이렇게 하느라니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든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을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쓸모도 없는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하기때문이다.       맞는것은 맞는것이고 틀린것은 틀린것이다. 많은 경우에는 그냥 기분에 따라 맞는것도 틀린것으로 틀린것도 맞는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는 옳고 그름을 꼭 갈라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원칙성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이런 고집때문에 말을 들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그냥 그것을 고칠수 없다. 맞는것은 견지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냥 그렇게 할때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어찌할수 있는가? 그래서 의혹은 커가고 일은 그런대로 하게 된다. 내가 고집한다고 그 무엇이 개변되는것도 아니니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이 말을 처음으로 생각하였을때 조선어로 썼던지 아니면 한어로 썼던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도 잘 되였는지 알수 없다. 그러나 더 큰 의혹은 그것뿐이 아니다.   2008년 2월 22일 6시 50분
11    나의 친인이기에 힘들다. 댓글:  조회:3402  추천:0  2008-01-23
나의 친인이기에 힘들다.     나의 친인(亲人)으로 있는것은 아주 힘든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당원(党员)도 아니면서 자신의 수양만 중시하고 자신에 대하여 높은 요구만 제기하는 내가 있음으로 하여 나의 친인으로 있는다는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내가 그렇게 할수 없는 만큼 나의 친인에게서도 그러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강요를 하지 않는다. 그럴만큼 내가 어느정도의 책임을 더 짊어지려 할뿐이다.     "나"라는 자식이 있음으로 하여 명절에도 온 가족이 함께 모이지 못한다. 그래도 부모는 참고견뎌야 한다. 국가대사를 보는것도 아니고 교육가다운 큰 일을 하는것도 아니면서 그냥 학교에만 붙어있으니 언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 있겠는가? 휴식일이라고 찾아와도 점심시간에 얼마만한 시간을 함께 있을수 있을뿐이다. "학교일을 혼자서 하니" 하는 의문도 제기한다.     "나"라는 자식이 있음으로 하여 남들처럼 호강을 부리지 못한다. 남들처럼 갖은 방법을 대여 돈만 벌려고 하지 않는 자식이 한스러원지도 모른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을 왜 안하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냥 "값 있는 인생"을 살려는 추구만 생각하는 나로서는 돈만 고려할수 없다. "하루를 살아도 값 있게 살자"라는 말이 그냥 잊혀지지 않는다.     "나"라는 자식이 있음으로 하여 걱정만 해야 한다. 일을 할라 치면 끝을 보고야 마는 그 성격때문에 밥먹는 일을 잊을가 걱정하신다. 그래서 전화의 첫마디는 언제나 "밥을 먹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언제든 집에 가면 먹을것부터 갖춘다. 혹 어디서 굶고다니다 오지 않았는가 생각한단다.     나의 친인이기에 힘들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자기소원대로만 하는 것도 그냥 받아준다. 그래서 나의 친인에 대한 그리움이 강해진다. 2008년 1월 23일 8시 50분
10    광고를 생각해본다. 댓글:  조회:2939  추천:0  2008-01-19
광고를 생각해본다.     광고가 그냥 나쁜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의 광고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에 광고를 내는것마저 반감한다.     나보다 그런것을 모를 사람들이 없으리라고 믿으면서도 그런 광고에 속을 사람이 있을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전에 나는 텔레비죤에 나는 광고를 거의 절대로 믿다싶이 했다. 그래서 늘 텔레비죤에 나오는 물것이면 그것을 갖고싶은 마음이 생기군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였다. 후에 겪은 일들이 아니여도 나는 지금처럼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되지 않았을것이다.     어제 텔레비죤을 보다가 이런 뉴스(소식)를 보았는데 근간에 텔레비죤쇼핑광고로 인한 소비자의 제보가 비교적 많다고 한다. 그리고 전에도 이런 광고중의 일부 광고가 나중에 가짜라는것이 증명된것을 본적이 있다. 그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지금 사람들이 많이 중시하는 감비(减肥)광고이다. 그리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학습성적제고에 관한 광고도 있다. 그것들은 결국 이름이 그닥 알려지지 않은 그러한 배우들을 청하여 찍은것이라는것이 밝혀진바 있다. 그러니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속히울수 있었던것이다.     돈을 위해서는 못하는 일이 없다. 속옷만 입은 여자의 그림을 시내중심에 번듯하게 달아놓는다. 그랬다고 사람들이 다 그곳에 몰려들까? 그런 광고가 우리의 후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것인가는 고려하지도 않는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어른들로 말하면 그러한 그림이 아무런 영향도 있을수 없다. 하지만 나이 어린 아이들일수록 그러한 것의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뿐이 아니다. 내가 알기에 연변에서의 광고문자는 조선글자를 꼭 써야 한다. 하지만 한자로만 쓴 광고판도 드문드문 볼수 있다. 광고판을 만드는 사람이 몰라서일까? 아니면 감독하는 사람이 게을러서일까? 그리고 조선글자와 한자가 함께 있는 경우 크기상 위치상 조선글자를 우선적으로 하여야 한다. 하지만 한자를 더 크게 쓰거나 한자를 앞에 쓰는 광고도 적지 않다. 그냥 몰라서 하는 일일까?      내가 알기에는 의약전문가거나 환자의 명의로 약효과를 선전하는 광고는 다 비법광고에 속한다. 하지만 근간에도 이곳의 텔레비죤에서는 이런 광고를 여전히 볼수 있다. "이는 또 무엇때문일까?" 하고 생각할때도 있다. 그러한 "부작용"의 하나가 지금은 다른 사람한테서 얻어듣게 되는 말도 믿지 못하는것이다. 그냥 자신의 체험한 일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약광고가 아닌가 하고 착각만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일지를 한편 쓴다. 나의 블로그에 있는 광고라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날마다 삭제해도 날마다 생기는것이기에 그냥 있을수 있다. 그러니 절대 믿지 말기를 바란다. 2008년 1월 19일 8시 41분
9    개구리눈 댓글:  조회:2566  추천:0  2008-01-17
개구리눈     개구리눈의 특점은 움직이는 물체는 볼수 있고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보지 못하는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나의 눈도 그와 비슷한 특점이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사이트를 펼칠때면 자연히 화면에서 오가는 그 광고화면에 먼저 주의하게 된다. 다른 내용보다 언제나 먼저 보게 된다.     일을 하다가 자그마한 나사못같은 것을 땅에 떨어뜨릴때가 있다.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것이 비자루로 한번 쓸면 그 움직임을 보고 인츰 찾게 된다. "금방도 눈앞에 있었는데 비자루로 쓸지 않을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하고 생각에 잠긴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시각도 이제는 개구리눈같은 특점이 조금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2008년 1월 17일 15시 57분
8    밥을 먹는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댓글:  조회:2583  추천:0  2008-01-17
밥을 먹는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공작을 하는 사람으로 말하면 밥을 먹는것도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나로 말하면 그 문제가 더욱 돌출하다. 몸에 들어간 약물때문에 식욕을 잃을때가 많다. 머리가 마비되다나니 늘 배고픈감도 없다. 확실히 때를 건넸는데도 조금도 알리지 않는다. 그러니 밥을 먹는것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을 하려 하는데 힘이 나지 않는다. 허나 무엇이든 다 먹고싶은 생각이 없다. 허니 전의 말대로 한다면 밥을 먹는 "전투"를 벌려야 하는것이다. 그냥 겸사겸사 할수 없고 온몸의 정력을 다 집중해야 잘 할수 있는것이다.     어떻게든 정한 량의 음식을 다 먹도록 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 나는 무슨 일이나 자신의 직감에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밥을 먹는 일만은 그렇게 할수 없는듯하다. 그냥 시간표대로 해야 정상적이 신체건강을 유지할수 있는듯하다. 그리고 "기계에 기름을 넣듯"이 정량을 해야 할것 같다. 누군가 "신체는 혁명의 근본"이라고 하였단다. 그러니 "혁명"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 할것이 아닌가?     쓰고 보니 그냥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는 비망록 같다. 허지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2008년 1월 17일 12시 27분
7    매일 읽어보아야 할 ... 댓글:  조회:3566  추천:0  2008-01-05
매일 읽어보아야 할 ...     사람은 정서대로 할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은 매일 하여야 한다. 자아수양에 속하는것이거나 공작에서 주의할 문제같은것은 매일 읽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는 것이다.     1, 유익한 일만 하고 쓸모없는 일은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 유익한 일만 해도 다 못하겠는데 언제 쓸모없는 일을 관계할 시간이 있겠는가?     2, 주차를 가려 일의 선후를 정하여야 한다. 그래야 모순이 없이 여러가지 일을 질서있게 해결할수 있는것이다.     3, 다른 사람의 일을 우선적으로 하여야 한다. 그래야 전기화교연조(电教组)의 교학보조작용을 제대로 한것으로 되기때문이다.     4, 다른 사람의 태도에 따라 개변하지 말고 응당 해야 하는 이미 정해진 방법으로 일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언제든 할말이 있다.     5, 비준을 거쳐야 할수 있는 일은 꼭 비준을 거친 다음 해야 한다. 그래야 모순이 적어지고 흠집을 잡는 사람도 적어지게 된다.     6,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화를 낼 필요는 없다. 그것이 나에 대한 어떤 "보복"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구나 화를 낼 필요가 없는것이다. 어디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있겠는가?     7,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배워주어야 할 내용을 배워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된다. 컴퓨터교원은 무엇이나 다 알아야 하는것처럼...     8, 할수 없는 일은 할수 없는 원인을 사실대로 말해주어야 한다. 될수 있으면 해결할수 있는 경로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하여야 하는 일은 다 한것으로 된다.     9, 절대적으로 완미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때 자기로서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 "맞는 것은 견지하고 틀린 것은 시정해야 한다."     10, 쉽게 돈을 번다거나 상품이 생겼다거나 하는 광고를 믿지 말라. 자신의 로동으로 얻은 재부만이 당당하게 쓸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광고에는 진실보다 거짓이 더 많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계률(戒律)을 쓰는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생각한 내용과는 차이점도 많다. 시간이 있으면 고쳐야겠다. 2008년 1월 5일
6    학자다운 삶을 살고싶다. 댓글:  조회:2555  추천:0  2008-01-02
학자다운 삶을 살고싶다.     나는 진정한 학자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저 일반 중학교교원에 지나지 않는다. 명문대학을 다니지도 못했고 또 연구생공부도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학자다운 삶을 살고싶다.     학자라면 학문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니 어느때던 명석한 대뇌가 수요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술을 금하려 한다. 한때는 "공작을 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리론의 압력을 못이겨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제는 내 나름대로 술을 금하려 한다.     학자라면 학자다운 생활방식이 있어야 한다. 될수록이면 생활을 규칙적으로 안배하고싶다. 그리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할수 있는 유용한 일들을 하려 한다. 인생의 가치는 거기에서 실현될것이다.     학자라면 학자다운 생활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문을 연구할 시간이 있게 된다. 세속에 따라 여기저기에 다니고나면 언제 시간이 있어 학문을 할수 있겠는가?     누군가 교원은 학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교원은 우선 학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그런 학자다운 삶을 설계하련다. 그 누군가 뼈가 있는 문학인이 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뼈가 있는 사람으로 학자로 되련다. 거기에 내 인생을 걸려 한다. 그것이 존엄이 있는 인생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김학철의 말로 하면 "사람답게 사는것"이다.     학자는 학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학자에게는 학자다운 삶이 필요하다. 2007년 12월 30일 19시 35분  
5    나는 걸림돌? 내 잔등은 바늘쌈지? 댓글:  조회:2403  추천:0  2007-12-26
나는 걸림돌? 내 잔등은 바늘쌈지?     어느때부터인지 모른다. 그냥 내가 그 어느분 혹은 어떤 분들의 걸림돌이 되였다. 그 덕분으로 내 잔등은 아예 바늘쌈지가 되여버렸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뒤에는 늘 잔등이 이곳저곳 아파나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아픔뿐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이 아니것 같다.     이제는 늘 생각이 잘 나지도 않는다. 머리가 굳어져버린듯이... 허나 무엇을 먹으려 해도 식욕은 조금도 없다. 그러니 먹는 것이 차해서 영양문제로 하여 그렇게 된것은 아닐것이다. 내 몸에 약물이 들어갔으니 그렇게 되지 않을수 없는듯 하다. 그러나 나를 제한한다고 일이 개변되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지 그냥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여서든지 진정으로 일을 하고 유용한 일을 하는것이 나의 인생목표이기때문이다. 혹은 그것이 나의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사회에 유용한 사람으로 되는것이 나의 리상이고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하는것이 나의 목표인것이다. 그러니 내가 쓴 글들은 어떤 사람들로 말하면 "치부의 길"을 막은것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내 몸은 아예 약병이나 된듯 하다. 그리고 늘 마약의 피해를 입다보니 머리는 늘 마비된듯한 상태이다. 그로 인하여 늘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것인가"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전에 이와 비슷한 글을 쓴적이 있다. 그 제목은 "공작의 어려움은 공작자체에만 있는것이 아니다"이다. 지금의 이 문장을 보면 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알수 있을것이다.     내가 한 일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는것 같다. 그렇잖으면 왜 나의 문장을 수장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가? 나는 또 내가 왜서 이런 문장을 쓰게 되였던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 목적은 자신의 공작환경을 개선하고 학생의 학습환경을 개선시키려는것 외에는 더 없었다. 자신의 공작환경의 개선이란 자신의 주요한 정력과 시간이 더 의의 있는 일을 하는데 쓰이게 하는것이고 학생의 학습환경의 개선이란 그 환경이 학생의 발전에 더욱 유리하도록 하는것이였다. 그러니 그 매 한가지의 일이 다 나 자신을 위한것만은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잔등은 바늘쌈지가 되였고 내 몸은 실험품이 되였다. 혹은 그 어떤 나에게 고통을 줄수 있는 그 무엇을 다 시험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이 이러했듯이 래일도 그러할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옳은 일을 하지 않을수는 없다. 그러니 끝까지 견지할것이다. 2007년 12월 25일 19시 40분 초고를 완성    
4    공작의 어려움은 공작자체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댓글:  조회:3818  추천:0  2007-12-04
工作的难度不只在工作本身     每天回家后,始终发展自己的身上又有一些阵痛,其感觉就象是刚在哪里打过一针。跸不知不觉中撅了起来,头皮好象是紧缩着,想不起事又感觉控制不了自己的情绪。     我不知道我为什么承受这样的事情,但我知道这与什么疾病无关。我不知道为什么要我来承受这样的事,但我每天都在承受类似的事情。如果我的记忆还没有大的差错,或许这样的事情不止发生了一两天,也许已经有十几、二十几年的时间吧。     那么这一切都是什么,为了什么?我经常因此而分散注意力,不能把精力集中于工作。我经常因此而感到疲惫,一天只能做很少的一部分事情。我经常做一些毫无意义、又毫无结果的事情,原因可能仅仅是为了省钱。     我的困惑是因为不能做事,不能把自己更多的精力集中于最有意义的事情上。健康很重要,我也没有放松过对自身健康的关注。可我身上的问题,为何与健康无关呢?        更多的疑问不断在脑海中闪现,但我不能只顾自己。 2007年11月1日5点
3    나는 이런 교원으로 되고싶다. 댓글:  조회:3676  추천:0  2007-11-27
我要当这样的老师     曾在政治学习中学过这样一篇文章,文章的题目是“今天我们怎样做老师”,后来又在上网时找到了相关的视频并进行了学习。学习之余我想到了这样的一个问题,我要当一个什么样的老师?这就是我的演讲题目,“我要当这样的老师”。     首先,当一名有原则的老师。     一个人要有原则,一名老师更要有原则。     原则是什么?原则是根本的法则。原则是适用于多数事物或普遍现象的法则。有人说“原则是一个人处理事情的依据和尺度”。还有人说“原则是长期积累的经验”。我认为:原则是待人的基本方法,做事的基本方法。     有原则,所以要讲真话;有原则,所以要办实事。从为人师表的角度出发,老师无论如何都要讲真话、办实事。     有原则,所以要做到言行一致,“说了算,算了做。”     有原则,所以要知行统一,对的坚持,错的改正,不应该“说一套,做一套。”     有原则,所以不会对权威盲从;有原则,所以不会对学生纵容。     有原则,所以不会担心有麻烦;有原则,所以不会担心会吃苦。     中国有一句话:有理走遍天下,无理寸步难行。有原则的人:可能显得呆板,但确实可信。     其次,当一名有责任心的老师。     什么是责任心呢?曾经有教育家把它比作是进入二十一世纪的护照和青少年能力发展的催化剂。所谓责任心,是指每个人对自己和他人,对家庭和集体,对国家和社会承担应有的责任和履行义务的自觉态度。责任心是个人必备的道德修养,它既包括对自己的责任,也包括对他人、对社会的责任。     有责任心,所以对自己所说的话负责;有责任心,所以对自己所做的事负责。     有责任心,所以要求自己所说的每一句话都有价值;有责任心,所以要求自己所做的每一件事都有意义。     有责任心,所以教学生一种负责任的态度;有责任心,所以用自己负责任的行动去给学生树立榜样。     有责任心,所以对学生现在的进步关心;有责任心,所以更关注学生将来的发展。     有责任心,所以对学生负责;有责任心,所以对社会负责。     曾经在一篇文章中看到过这样一段话:一个孩子的失败,对一个老师来说,只是几十分之一的失败,但对于一个家庭来说,就是百分之百的失败。这段话深深地震撼了我,使我深深地体会到老师的责任之重大。     最后,当一名能坚持的老师。     什么是坚持?好行为、好习惯靠后天培养,而要养成好行为、好习惯,靠的是持之以恒。我想:道理每个人都懂,难就难在坚持。有时,坚持是要付出代价、作出牺牲,甚至忍辱负重、委曲求全。     因为坚持之难,于是有人干脆一开始就放弃,有人坚持了一阵子之后才放弃,有人坚持到了最紧要的关头终于还是无奈选择了放弃。只有那些意志极为坚定的人,做事极为认真的人,能够不为外界干扰所动的人,才能够坚持到最后,哪怕成了孤家寡人,他也要咬紧牙关苦苦坚持。     我想用这样一段话来结束演讲,那就是:“言行一致,知行统一;对的坚持,错的改正;不能为了什么而改变,不能因为什么而改变。”      作者:lienhao2004  2006-7-2011:52 
2    내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충성을 표달하고싶다. 댓글:  조회:3522  추천:0  2007-11-27
用自己的方式表示对教育的“忠诚”       我不知道用什么样的方式来表示对职业的热爱,我不知道用什么样的方式来表示对教育的忠诚。但,我知道应该怎样做和做什么不应该做什么和不该做什么。所以我“有所为,有所不为”。     我不知道如何做才会让社会满意,但我知道怎样做才对社会有利。所以,我用我自己的方式来表示对教育的热爱,对教育的“忠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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