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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밖에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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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학생부담의 경감에 대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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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외이로다. 댓글:  조회:1690  추천:0  2009-11-24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외이로다. 고시조 한수가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 - 양사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는 양사언의 시조이다. 이 시조에서 “뫼”는 “외(岳)”의 오해라고 추측한다. 명확한 근거가 없기에 나의 추측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이렇게 추측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뫼, 메, 모, 묘 등은 모두 무덤의 방언이다. 전에 왕들의 무덤은 두텁게 봉토(封土)를 하였다. 그 봉토가 흔히 어지간한 산과 비슷하였다. 이런 대화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A: 저것이 무엇입니까? B: 그게 뫼다 A의 생각: 분명히 산인데 왜 뫼라고 할까? 그렇게 되여 A는 뫼는 산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오해하였다. 둘째, 글자체에서 “ㅇ”이 “ㅁ”과 비슷하게 보이는 글자체가 있다. 요즈음 글자체를 안장하여 사용하면서 발견한 문제이다. 이런 리유에 근거하여 나는 이 시조는 다음과 같다고 추측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외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외만 높다 하더라 한어로 다음과 같이 번역해보았다. 泰山高,天下岳; 攀不止(肯攀登),可登顶; 人不攀,叹岳高。 혹은 泰山虽高天下岳, 攀登不止可登顶, 人不攀登叹岳高。 2009년 11월 21일 15시 16분
6    전면발전을 어떻게 리해해야 정확할까? 2 댓글:  조회:2253  추천:0  2008-04-21
전면발전을 어떻게 리해해야 정확할까? 2       사람마다 흥취애호가 다르고 그들의 능력기교방면의 발전을 보아도 다 차이점이 있다. 그런데 꼭 선발만을 위하여 하는 일을 하다보니 성적만 고려하고 그 성적이 어떤 의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     3, 전면발전이라는 말은 어느 방면이나 다 고루고루 발전해야 한다는 말과는 다른것 같다. 어느 방면의 소질이나 다 일정한 정도로 발전하면 좋지만 그것에 대하여 고정적인 규정을 한다는것은 잘 맞지 않는것 같다. 어떠한 규정이든 절대적인 표준을 정했다는것은 선발을 위한 목적이라고밖에 리해할수 없다.     전면발전이라는 말은 합리한 지식구조를 형성하고 합리한 능력구조를 형성하는것을 말한다. 전의 사람들을 보면 신체방면에서는 건강하지만 지식능력이 차하거나 지식능력방면이 강하면 신체가 허약한 문제가 있었다. 나의 리해대로라면 새로운 시대의 인재는 반드시 운동원다운 신체에 학자다운 지식 그리고 기술원다운 연구정신과 탐구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매개 사람의 지식 능력의 구조상에서 다 차이가 있을수 있다. 그러니 선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적인 표준으로 요구할 필요가 없는것이며 그러한 절대적인 표준때문에 학생의 개성적인 발전을 제한할 필요도 없는것이다.      자신의 자각적인 노력이 없고 그냥 안배해주어야만 하는 사람은 능력방면에서 가장 중요한 그 어느 소질이 결핍한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학생의 학습자각성이 없는 원인을 교원의 교육에 문제가 있는것으로 판단하는것은 틀린것이다. 이 문제에서 가능하게 사회 혹은 가정의 영향을 받는것과 관계되지도 않는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각적으로 학습한다는것은 정확하게 자신의 공작 생활과 오락 등 방면의 관계를 잘 처리한다거나 자신의 잠시적인 눈앞의 향수를 제한할수 있는 심리소질이 있다는것을 말해주기때문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고생을 이겨낼수 있고 향수를 못하여 생긴다는 불공평심리를 극복할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학과라면 학생 혹은 가장들이 접수할수 있도록 설득할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학생이거나 어느 가장도 설득할수 없으면서 꼭 해야 한다는것은 "도리가 없는 말을 도리가 있다고 하는것"과 같은것이다. 무었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좋은 일을 학생들이 접수하지 않고 가장들이 접수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까? 좋은 일을 잘 하려면 꼭 도리로서 설득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냥 이것은 상급에서 포치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학생을 위한 일인지 누가 알수 있을까?     4, 무엇이나 다 아는 사람을 선발해야 하는가? 그러한 인재가 십여년의 교육을 통하여 배양될수 있는가? 지금의 사회에서 무엇이나 다 아는 사람은 없다. 대학교의 교육을 받은 학생이라 해도 실제공작에 대해서는 료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그냥 지금의 대학생의 소질이 차하다고만 하지 말아야 할것 같다. 그냥 적극적으로 학습하려 하고 적극적으로 공작하려는 마음만 있고 또 상응한 행동적인 표현만 있어도 될것 같다. 몇년을 그렇게 하느라면 대응되는 기교되 배우게 되고 그에 따라 전업지식방면의 우세 학습능력상의 우세 탐구능력 분석능력 등 방면의 우세 등도 나타날것이다.     학교에서 모든 기능을 다 련마하려면 몇년을 대학교에 있어야 합당할까? 그냥 연구생 학습까지 마친 사람이라도 공작에 참가하여서는 유관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 학습을 하여야 한다. 최저한 경험을 루적하는 과정이 있어야 그 공작을 숙련되게 할수 있다. 이런 각도에서 대학교를 필업한 학생이 그 항업의 일부 중등전문학교나 필업한 사람보다 림시적으로 못한 경우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예견이 있다면 그냥 지금 대학생의 소질이 낮다고만 말하지 않을것이다.     전의 학생들은 그냥 학습만 중시하다보니 신체건강 등 방면에서 차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학습난도를 낮추고 학습부담을 경감하는 등 조취를 취한다. 그 결과로 학생들의 신체정황도 전에 비하여 일정한 개변이 있다고 할수 있다. 이것은 지금의 공작이 효과가 있다는것을 말하고 일정하게 성적을 취득하였다고도 말할수 있다. 그러니 그전의 학생들에 비하여 지식상 능력상에서 차할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한 결과를 예상하였다면 더이상 그 어느 학생을 탓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그전대로 무엇이나 다 학교에서 배워주고 시험으로 검사하는 방식을 취하여 금방 조금이나마 감소되기 시작한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다시 증가하지 말아야 할것이 아닌가?     진정으로 학생들의 과중한 학업부담을 경감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로 인한 학생들의 일부 방면의 지식 능력상의 저하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여 상응한 취직전 배양같은것을 하면 그들이 공작을 배치받는데도 유리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제한된 시간내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유용한 지식을 배우게 할수 있겠는가도 연구해야 할것 같다. 만약 공작시간을 8시간으로 정한 기초상에서 공작량을 정한다면 학생들의 학습도 학습시간을 일정한 범위내에 정한 기초상에서 그들의 학습량을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여야 학생들이 과중한 학습부담때문에 휴식시간도 휴식하지 못하고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 등 일들도 피면할수 있을것이다. 그냥 사회에서 수요하는 지식이거나 기교라 하여 다 하라고 한다면 학생들의 부담은 어느때면 경감될수 있는가?     전면발전이란 그냥 아주 큰 문제인것 같다. 그러니 전면발전에 대하여 그냥 이대로 생각하는대로 계렬식으로 써내려고 한다. 그러니 그냥 기대하시여도 좋다.     2008년 4월 21일     나의 글이 그냥 반말로만 되였다고 탓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나로서의 생각이 있는것이다. 생리적인 년령으로 말하면 나는 아직 어리다고 할수 있지만 심리년령으로 말하면 나는 절대로 어리지 않다. 그러한 각도 내 심리년령의 각도에서 글을 쓰다나니 그냥 이렇게 된다. 그러니 많이 량해해주기만 바라는 심정이다.
5    전면발전을 어떻게 리해해야 정확할까? 1 댓글:  조회:2047  추천:0  2008-01-18
전면발전을 어떻게 리해해야 정확할까? 1     교육법에 규정한 우리 나라의 교육방침은 다음과 같다. "교육은 반드시 사회주의 현대화건설을 위하여 복무해야 하며 반드시 생산로동과 결합하여야 하며 덕지체미로가 전면발전한 사회주의 건설자와 계승자를 배양하여야 한다".     그러면 전면발전이란 무엇인가? 내가 알기에는 준확한 개념이 없다. 혹은 각자가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있다. "어떠한 정도이면 전면발전하는 요구에 도달하는가" 하는 표준은 더구나 없다. 그러니 어느 사람이 전면발전하고 어느 사람이 전면발전하지 못했는가는 판달할수 없는것이다.     1, 무엇이나 다 알아야 전면발전인가? 어느 사람이나 시간상 능력상의 제한으로 하여 모든 지식을 다 배울수 없고 모든 능력을 다 배양할수 없다. "무엇이나 다 아는 사람은 없다"는 도리는 누구나 다 아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 문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것이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할라 치면 이 도리를 잊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믿어지지 않는가? 그러면 아래의 내용을 계속하여 보시라. 그리고 자신과 비교하여보시라. 그러면 느껴지는바가 있을것이다. 우리의 주위에는 이미 학업을 마치고 공작에 참가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어떤 지식은 유용하다" 혹은 "어떤 지식은 큰 쓸모가 없다"는 식의 의론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공작에 참가한 사람으로 말하면 전문적인 학습을 할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하여 학습내용에 대한 선택을 매우 중시하게 된다. 혹은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이 없으니 별다른 좋은 방법이 없는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학생들은 그냥 학습만 해야 하는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건강한 아이를 배양하는것은 지식을 전수하는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의 학생들에게서 제일 중요한것은 심신(심리와 신체)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는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매일 책만 보아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하는가? 그것은 선발의 중요성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았기때문이다. 자식이 우수한 사람이 되는것을 바라서라기보다도 자신이 이미 얻은 그 좋은 위치를 잃을가 걱정하는것이 더 앞섰기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지식이든 다 학습하라고 강요한다.     2, 전과합격이 전면발전인가? 전과합격은 모든 학과목의 시험에서 모두 합격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지육 한개 방면의 내용만 포함되는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덕지체미로의 전면발전과 다르지 않는가? 그전의 교육사로는 표준화였다. 즉 한 사람이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에 대하여 과학적인 예측(혹은 통계학적인 판단)을 한후 그에 의하여 매개 단계의 발전표준을 제정한후 그러한 표준에 도달하게끔 학생들을 독촉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표준에 든 학생들가운데서 성적이 우수한자를 선발하여 고등교육을 받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준의 결함이 바로 학생들의 보편적인 공동점만 보고 학생들의 독특한 면 즉 개성적인 면을 홀시하였다. 그러다나니 학생들의 부동한 발전수요 흥취 잠재력 등은 더구나 고려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식의 실제생활에서의 응용은 더구나 고려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많은 학과지식은 기초적인것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실제응용과 관계되는 것은 고등학교거나 직업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만이 접촉할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정황에서 기초교육은 더욱 많이는 인재양성을 위한것이 아니라 인재선발을 위한것이였다. 힘이 모여지면 일이 잘될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모여서 학생에 대한 압력으로 된다면 그것은 부작용만 일으킬것이다. 그 합력이 정확한 작용을 하려면 노력하여 학생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야 하는것이다. 잠시 돈을 적게 벌더라도 자식배양을 중시해야 한다. "자식에게 재부를 남기는것이 아니라 자식을 재부로 배양해야 하는것이다".     그냥 쓰려고 했는데 쓰기 시작하고보니 한번에 그리고 한편으로 끝낼수 없는 문장같다. 그래서 첫 문장은 이로서 끝내려고 한다. 2008년 1월 22일 9시
4    학생부담을 경감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없다. 2 댓글:  조회:1928  추천:0  2008-01-16
학생부담을 경감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없다. 2     학생부담을 경감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없다. 그냥 학생의 발전을 고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할수 있는 일들이 많고 많다.     련합시험(会考)은 필요없다. 지금 초급중학교에서 지리 생물의 련합시험이 있는데 이런 시험은 완전히 불필요한것이다. 만약 지금 상태로 그냥 둔다면 그 시험은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만 끼치게 될것이다.(시험이라 하면서 보고쓰게 하니 학생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주겠는가? 직접 본 일이 없으므로 그냥 이 정도로 쓸수밖에 없다.) 듣는 말에 의하면 금후에는 필업시험도 필요없다고 하는데 왜 련합시험을 취소하지 못하는가? 시험을 한번 치면 학생들의 소질이 증가된다고 믿는가? 아니면 지식면이 증가된다고 생각하는가?     필요하다면 초급중학교에서 문리과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학습이 진정 주동적인것으로 되는것이다. 대학입시는 이미 고중단계에서만 중시하는 시험이 아니다. 초급중학교 소학교 심지어 유치원단계부터 그 시험을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 감고 야웅 한다"(자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귀여운척 하는 것을 말함)거나 "귀 막고 방울 도적질하는"(내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가 하는것)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할것이 아닌가? 사회사람들이라도 믿지 않는 그러한 단순한 일들을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믿고있다고 한다.     금후의 교육개혁은 학생들이 자체로 학습과목을 선택하여 학습할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 학생의 자각성 주동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수 있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을 배양하는것이지 교육을 한가지 항업(行业 혹은 직업)으로 발전시키는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교원대오에는 8시간의 로동시간이나 지키고 공자를 타려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의 배양에 있다면 학생의 배양에 유리하게끔 교육개혁을 해야 할것이 아닌가?     쓰고보니 또 쓸모도 없는 잡담인것 같다. 하지만 잡담이라도 할수 있으면 꼭 하려 한다. 그래서 교육이 학생의 발전에 더 리로운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약간의 기여라도 되면 좋겠다. 보수도 찬양도 필요없다. 그냥 살아서 의의있는 일을 하였다면 그보다 더 반가운것이 어디 있겠는가? 2008년 1월 16일 13시 15분
부담경감령(减负令)이 있으면 학생들을 나귀처럼 살지 않게 할수 있는가? 2007년 12월 30일 红网     11월 30일 무한시교육국에서는 <진일보 중소학교의 관리를 가강하고 중소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줄일데 관한 의견>을 출범하여 17조목의 "부담경감령을 제기하였다. 료해에 의하면 이는 2000년이래 무한시에서 제출한 제일 전면적이고 력도가 제일큰 "부담경감"행동이다.     중소학교의 학업부담이 무거운것은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줄곧 관심하는 문제이다. 민요에서는 "닭보다 일찍 일어나고 개보다 늦게 잠을 자며 사는것이 나귀보다 더 힘들다"고 하였다. 조사에 의하면 목전 중소학교학생가운데는 보편적으로 "3가지가 많고 3가지가 적은" 현상이 존해하는데 이것들은 작업이 많고 보충교수가 많으며 시험이 많고 수면이 적으며 체육활동이 적고 사회실천이 적은것이다. 학생들이 무거운 부담을 참지 못하기에 염학을 초래하고 심리가 굽어들고 체질이 내려갔으며 심지어 돌이킬수 없는 일을 하는 현상이 늘 발생한다.     그리하여 건국이래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경감하라는 웨침이 종래로 끊은적이 없었는데 1985년부터 2000년의 15년사이에만 중앙에서는 각종 "부담경감령"을 49번 하달하였다. 이처럼 재삼 명령을 내리고 태도가 견결하고 어휘사용이 강경하였는데 "탐오부패를 다스리는 폭풍"보다 더욱 심하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부담은 줄어들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숙제를 해야 하고 휴식일에도 여전히 상과를 해야 하며 업외시간에도 여러가지 복습반에 다녀야 하기에 명실공히 "특곤생"-특히 피곤한 학생으로 되였다.     구경 어떤 마력이 학교, 교원 가장들을 고집불통으로 되게 하고 심지어는 공공연히 중앙과 각급지방정부에서 하달한 "부담경감령"에 대항하게 하였는가? 처벌이 제대로 미치지 않은것도 확실한 원인의 하나이다. 우리는 종래로 어느 유관책임자가 학생의 학업부담을 증가한 원인으로 처벌을 받은것을 본적이 없을뿐만아니라 정황은 바로 상반되여 그들은 여러 방면으로부터 여러가지 칭찬과 장려를 받았다. 말로는 "업무에 대한 충성"이고 "책임을 지는것"이며 "새로운 일대의 성장에 신성한 사명감이 충만되였다고 한다. 중소학생들에 대한 손상과 고달픔을 주는 마귀행위를 신성화하고 학생의 심신에 대한 손상과 고달픔을 "업무에 충성하고 책임을 지는것"과 혼돈하였다. 사회의 주류관념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외곡되였으므로 유관되는 책임자가 당연히 "하루사이에 두 천사가 되는 것을 안타가워할것"이고 학생들이 고달픔을 배로 받고 도탄에 빠지는것도 원망할수 도 없는 있이 되였다.     더욱 중요한것은 현실체재, 사회관념, 문화력사전통, 등 여러가지 요소가 학생들의 학업부담이 증가되는 여러가지 력량이 모여 일종의 집체적인 비리성을 형성하였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에 의하면 사람을 키우는 교육은 승학하는 교육이고 그 때문에 점수는 사람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으며 승학하는 목표는 사람과 사회의 발전목표를 대체하였다. "고급중학교-대학교-사회의 정영"은 사람들의 마음속의 유일한 인재로 되는 길로 되였다. 교육평가기제는 선발성적인 공구로 타락되고 변하였고 대중심리와 사회분위기는 붙는불에 키질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학새으이 학습정황은 가장들이 토론하는 열점화제의 하나이고 학생이 취득한 우수한 성적, 이름있는 대학에 입학한것 등은 학교, 교원 가장의 자랑거리로 되였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무한시교육국에서는 "부담경감령"을 내렸는데 어떤 사람은 여러방면의 반향을 이렇게 개괄하였다. "학생은 기뻐하고 가장은 조급해하며 교원은 힘들어하고 교장은 믿지 않는다"는데 이는 문제를 잘 반영하는것이다. 모진 고통을 겪고있는 중학생들이 몹씨 기뻐할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 일은 더 말하지 않는다. 가장, 교원, 교장은 모두 중소학교에서 모진 고통을 겪어온 사람들이므로 응당 번중학 학업부담에 대하여 고통이 크고 원한이 깊을것이며 뼈에 사무치게 미워해야 할것이며 "부담경감령"의 견결한 옹호자로 되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고해를 떠나면 일률로 상처가 나으니 아픔을 잊는것처럼 응당 기뻐해야 할 일에 "급해하고 힘들어하며 의심하는" 태도를 보였으니 실로 부득이한것이다.     이로부터 볼때 중소학생들이 "닭보다 일찍 일어나고 개보다 늦게 자며 사는것이 나귀보다 더 힘든 " 엄혹한 현실을 개변하는것은 임무가 중하고 길이 멀며 단순한 "부담경감령"에 기대할수는 없는것이다. (책임편집:리동)  
2    학생부담을 경감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없다.1 댓글:  조회:2103  추천:0  2007-12-14
학생부담을 경감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없다.1     학생부담을 경감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없다. 그냥 학생의 발전을 고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할수 있는 일들이 많고 많다.   첫째, 상수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 지금과 같은 정보시대에 그 어느 상수를 찾을 방도가 없단 말인가? 그래 꼭 그 상수를 머리에 기억해야만 사용할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둘째, 어떤 공식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인 공식에서 연변되여나온 일부 공식은 특정된 조건 특정된 경우에만 쓰일수 있는것이고 또한 기본공식만 장악하면 그로부터 유도하는것도 완전히 가능하다. 이외에도 이런 특수한 공식은 그 항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말하면 자전처럼 공구서적에서 찾아 사용할수 있다.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가에 따라 학습방법과 학습의 중심도 그에 따라 변화될것이다. 만약 시험에서 이러한 상수 공식을 위주로 한다면 학생의 학습은 이런 상수 공식을 기억하는데 일정한 시간을 랑비할것이고 시험에서 주요한 원리 등을 위주로 한다면 학생의 주의력도 진정한 학과의 주요사상 주요내용을 학습하는데 집중될것이다.    노력하여 환경의 개선에 진력하는것이 교원의 한개 직책이라면 학생으로서 현유의 환경에 적응하는것도 한개 능력 혹은 소질일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즉 환경에 적응하는자는 살아남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자는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고보면 살아남은자는 모두 <적자>일것이다.   개성이 있다는것은  <환경>만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닐것이다. 그러니 도태된뒤에 그 어떤 구실을 말하는것도 소질이 차한 표현의 하나일것이다. 능력이 있으면 우선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공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것도 내가 학생들에게 늘 하고싶은 말이다.   2007년 12월14일
1    시험과목을 줄이는것은 학생부담을 줄이는 필요한 수단 댓글:  조회:2210  추천:1  2007-11-26
我所想到的:减少考试科目是中学生减负的必由之路 读完“高考变革三十年成败检讨”之后,留在头脑中并无法忘记的是一句关于“减少考试科目不能达到中学生减负目的”的叙述。原文如下:“刘海峰表示,想通过减少高考科目,来减轻中学生负担是不可能的。如同七项全能和跑单项百米的运动员,都会以体力的极限一博。”“杨学为表达了相近的意思,高考压力的根源在于竞争,竞争的根源在巨大的社会差别,高考改革解决不了中学生减负的问题。”果真如此吗?我并不能赞同此观点,但从作者是记者这一身份来讲,得出这样的错误结论也是可能出现的问题。我想用以下的几个方面来叙述一下我的观点。 第一,减少高考科目才能减轻学生的负担。如果不是,那为什么试着以减少高考科目和降低考试的难度来达到中学生减负的目的?减少考试中的“偏、难、怪”题的目的不也是在于给学生的学习减轻负担吗?“刘海峰表示,想通过减少高考科目,来减轻中学生负担是不可能的。如同七项全能和跑单项百米的运动员,都会以体力的极限一博。”虽然“七项全能”和“跑单项百米”的运动员同样要用体力的极限一拼,但是如果让一个“跑单项百米”的运动员对“七项全能的所有项目”都进行训练,肯定会影响其“跑单项百米”的成绩。做为“跑单项百米”的运动员,为什么要对七项全能全部学习和练习?并且以降低“跑单项百米”的成绩做为代价。我认为这是认识上出现了问题。我们都知道一个人的思想政治水平不能以相关科目的考试分数来衡量,既然如此我们为什么还要以此做为人才选拔的依据。我们都知道一个人的能力有限、精力有限,每个人都不能做到学习所有的知识。既然如此我们为什么不能减少盲目记忆的内容,给学生减负,让学生有时间和机会进行思考,让学生有时间和机会进行研究呢?一方面反对死记硬背,另一方面不研究更好的方法,这不是一个自相矛盾的做法吗?只有考试中减少了盲目记忆的内容,教学中才会有更多的研究和探讨的可能。只有减少了考试科目,才有可能在某一方面有专长的学生更早地学到有用的知识,使自己专长得到充分的发展。我们都知道13——19岁即中学阶段是无意识记忆能力最好的阶段,要达到利用好这一阶段来培养学生某一方面特长和专长也要先做减少考试科目这一件事情。过分地研究普适性而不研究特殊性,也是我们很难培养诺贝尔奖获得者的原因之一吧。能吃苦也是一个人所必须的素质,同样耐得住寂寞也是一个人必备的素质。很容易做成的事人人都可以做。只有把不可能做成的事变为可能的人,才会成就大事情才会成为优秀的人。减少考试科目,才能有利于专门人才的选拔。只要有竞争,就能使学生克服一切的困难(包括寂寞),使他们的专业水平真正地提高上去。 第二,竞争是学生无法做到中学生减负的最大的原因吗?就算我们阻止校园内的竞争,还能制止校外的竞争吗?就算我们能制止学校阶段的竞争,还能制止社会上的竞争吗?就算我们能制止国内的竞争,还能制止国际上的竞争吗?我们都知道适当的竞争有利于个人的积极性主动性的激发,而且在实际社会生活中竞争能力不也是每个人必须具备的素质和能力吗?“杨学为表达了相近的意思,高考压力的根源在于竞争,竞争的根源在巨大的社会差别,高考改革解决不了中学生减负的问题。”其实,高考是一个学会竞争的最重要的场合,学会高考中的竞争的人,才会学会社会上的竞争。竞争不是不能中学生减负的主要原因,而真正的原因在于盲目的和无目的的竞争。我们都知道在社会上的竞争可能仅存在于同行之间,只有在做着相同和相似事情的之间才会有竞争。而我们在高考中做的竞争是和所有的人做的竞争,不管在特长和将来的发展方面有什么样的区别,在高考面前只能做一个分数的竞争。考核方法的单一和选拔标准的单一,才是造成这种盲目竞争的原因。人才培养的选拔的角度分析,减少考试科目比降低难度更有利。一方面减少高考科目可以使学生把精力集中到将来在社会实践中应用到的知识方面。如果能让学生有时间锻炼身体素质,那不是一件更好的事情吗?我们做的中学生减负的目的不就是为了提高学生的身体素质吗?另一方面由于“仍存在着竞争”绝不会出现因考试科目的减少而学习更加不努力的现象出现。虽然在一个学校,学生各自学习的科目和要进行考试的内容不同,但在全国、全省及至全地区而言,要竞争的人还是很多,因此也不可能存在因减少考试科目而让他们不学习的理由。另外,减少考试科目才能真正做到“**素质从娃娃起培养”的目的。正是因为高考的单一化,使得学生对如信息技术等非考试科目的学习不可能做到专业化,就算信息技术等科目安排到小学,也不能使学生对此学习产生兴趣并和高考考试科目一样地重视。在中国自古就有为达目的不择手段的传统,不能扬自己的长处就揭他人的短处,甚至故意限制他人的发展。记得有一幅漫画是这样画的。画中有一只免子和乌龟,免子被关在笼子里而乌龟则在笼子外不紧不慢地向前爬,旁边则站着一个人用手指着乌龟说:“看!它跑得多快。”这个漫画比喻的正是目前社会中存在的某种限制竞争、限制优秀人才脱颖而出的客观环境。用电视剧“宰相刘罗锅”主题曲中的一段歌词来形容,那就是“说是就是不是也是,说不是就不是是也不是。”目前高考中的盲目竞争已经成为资源的竞争、家庭条件的竞争,只有减少考试科目才能做到选拔更为优秀的人才,限制此种不合理的竞争。还有一种说法就是“他人当不了状元,我不就有机会当状元?”的想法。自己不想付出更多的努力,不想吃更多的苦,又不想看到他人走在自己的前面,除了想尽办法限制和抑制他人外还能有什么办法?这些都是目前存在不合理的竞争和盲目的竞争的一个原因吧。 第三,培养人才的目的并不是培养看起来全面发展的学生,而是培养“社会主义事业的建设者和接班人。”建设者需要的是某一方面有一定的专长,而且这种专长必须得明显、突出。能在国内的竞争中有优势,而且要在国际的竞争中也要有优势。这样才能成为“社会主义事业的建设者和接班人”。爱拼才会赢,只有懂得竞争中取胜的人,才会在激烈的国际竞争中生存,才会为社会做有益的事。我不相信“连自身的生存问题都不能解决的人,还能做出对社会、对国家有益的事情。”做事一定要有主次、轻重,高考的引导作用也应该达到“让人学会分清主次、轻重”的目的。考试必须考将来可能用到的最主要的、重要的知识和技能,这样才有利于使考试起到促进学习、促进发展的目的。从现实的需求上可知,一个某一方面有专长的学生也应该有进一步受教育的机会。从这个角度分析选拔人才也不应过分苛求全面的发展。一个人能学习的知识有限,从这个意义上我们必须尊重学科发展和学生发展的客观规律。在全面发展的名益下,让多数人失去自信和人格尊严并不是教育的真正目的。考试、选拔只有能促进人才的发展,促进社会发展时,才能更好地发挥其正面的作用。随着机器翻译水平的不断提高,外语是否是必修课越来越受到质疑。在这样的现状下,我们也必须尊重和培养那些外语成绩但专业水平高的学生,使他们有一个进一步提高自身专业水平的机会。在这里我们要对全面发展有一个全面的认识,只有认清楚全面发展的含义才不会使“全面发展”成为成才路上的一个障碍。首先,全面发展并不是什么都学什么都会,而是德智体美劳的全面发展。一个人的能力有限精力有限,而世界知识总量也正在越来越快的速度翻番,一个人不可能做到无所不知无所不能越来越难而且也不可能做到。只有认清了这一点,才能明白为什么做事要有轻重缓急主次的原因,只有这样才能真正地把好事做好。其次,全面发展并不是什么方面都做到第一。每一个人都有优劣长短,只有认清了这一点才能做到使每一个人充分地发挥自己的优点,为社会为国家做自己该做的贡献。只有认识到这一点,才能看到他人的优点自己的缺点,才能做到与人交往与人合作。 从以上的分析,我得出的结论是:减少考试科目是中学生减负的必由之路。 2007年7月9日星期一第一次完稿并输入计算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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